미지2025-05-29 23:17:24
[시사회] 얼어붙은 마음들이 모여서
<브레이킹 아이스> 후기
개봉 | 2025.06.04.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국가 | 중국, 싱가포르
러닝타임 | 100분
배급 | ㈜디스테이션
시놉시스 |
연길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나나(주동우)는 휴대폰을 잃어 홀로 고립된 여행객 하오펑(류호연)을 샤오(굴초소)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한다. 다음 날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놓친 하오펑은 나나, 샤오와 함께 어울리기 시작하고 그들이 함께한 7일 동안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세 사람의 세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지난 15일,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브레이킹 아이스> 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괴물> 등의 감독을 맡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어떤 영화였는지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노볼을 흔들면 문득
약속들 반짝이며 흩어졌다 눈송이처럼 가라앉는다
그 시간을 한 생이라 부르지 말자
이은규, <스노볼*>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기대어 쓰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시 구절입니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중국 북부의 국경 도시 연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길은 몹시 추운 지역이고,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도 무척 뜸하죠.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연길을 찾았던 하오펑은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나나, 샤오와 함께 연길에 며칠간 머물게 됩니다. 셋의 관계는 우정과 사랑을 넘나들며 엉키기 시작하죠. 셋은 각자만의 결핍을 안고 있습니다. 하오펑은 정신과에서 걸려오는 상담 전화를 회피하고 있었고, 나나는 과거 피겨스케이팅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꿈을 접었으며, 샤오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상에 지쳐 있습니다.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 속에서 이들은 위로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의 내면적 고립과 상호 작용을 통해 현대 청년들의 정체성과 소외감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이들이 머무는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은 이들의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죠. 앤서니 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즉흥성과 감정의 흐름에 집중하여,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싱가포르 출신의 앤서니 첸 감독은 더운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추운 날씨에 대해 풀어보고 싶었다고 배경 설정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죠.
사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짜임새나 캐릭터의 입체성을 중시하는 분은 이 영화를 통해 큰 울림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스토리가 촘촘하다고 느낀다든지,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들에 공감이 간다든지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정동”으로 일컬을 수 있는, 인물들이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정서가 이 영화에선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 감정은 인물들 사이에서 전염되고, 유영하며 관객들에게까지 서서히 번집니다. 이러한 감정의 이동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합니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얼음”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현대 청년들의 내면적 고립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상호 작용을 통해 삶의 의미와 연결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는 해당 영화가 섬세한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2023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싱가포르의 2024년 아카데미 국제 장편영화 부문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서사보다는 인물들의 감정 그 자체에 깊이 몰입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