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2025-06-03 15:44:55
가정이라는 이름의 정권, 혹은 저항의 씨앗
<신성한 나무의 씨앗> 영화 리뷰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이후 이란 전역에서 일어난 '여성, 생명, 자유' 시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억압적 체제 속에서 무너지는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정치와 일상이 만나는 지점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주인공 이만은 시위가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수사 판사로 승진하며 가족의 안전을 명분으로 총을 받는다. 하지만 이 총이 사라진 순간부터 그는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불안과 권력욕이 겹치며 점점 독재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결국 신뢰는 깨지고, 가정은 붕괴한다.
이만의 가족은 체제 내 다양한 위치와 시선을 상징한다. 이만은 억압하는 정권을, 아내는 전통적 가치에 묶인 여성상을, 딸들은 변화와 저항의 가능성을 담는다. 특히 영화 곳곳에 삽입된 실제 시위 장면과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모습은 현실과 극의 경계를 허물며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지급된 총은 결국 가족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고, 일상을 기록하던 캠코더마저 후반부엔 취조와 감시의 시선으로 변질된다. 보호와 통제, 기록과 감시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냉철하게 보여준다.

이만이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다”라고 말하지만 그가 가족 중 총을 가져간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포로 통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가 이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권력과 신념이 결합한 자의 위험성을 영화는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만은 가족들을 심문하기까지 이르고, 아내인 나즈메는 이만처럼 좋은 아버지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아이들을 다그친다. 가정도 하나의 서열이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이만은 누구에게 그런 권력을 부여받았을까. 오랜 가부장제, 침묵을 강요당해 온 여성들, 자기검열에 익숙한 사회가 그 답일 것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머리 염색, 매니큐어, 히잡, 옷차림 하나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그 현실 속에서 변화의 목소리는 죽음과 폭력으로 되돌아온다.
반면 둘째 딸 사나는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부모가 자신을 아이로 여길 때, 몰래 언니의 친구를 집에 숨겨 들이고, 총을 감춘다. 이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는 결국 가족 중에서도 가장 약자로 인식했던 사나인 셈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낯설지 않게 마주해왔다.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과거 세대와, 가부장적인 그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재 세대 사이의 균열.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2시간 47분의 상영시간, 점점 고조되는 갈등과 폭력의 수위가 때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지독하게 현실적이라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이만의 붕괴는 마치 변화를 막고 억압만 해서는 긍정적인 결말을 맞을 수 없다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단지 스크린 속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나즈메를 연기한 배우는 영화 출연으로 인해 사실상 자택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로 전해진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영화 안과 밖 모두에서 저항과 용기를 담은 기록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에 뿌려진 이 씨앗이 어떤 나무로 자라날지는, 이 영화를 마주한 우리의 몫이다.
본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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