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2025-06-04 04:16:59
현실에서 영화로 그리고 다시 현실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2025)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지금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올해 가장 용감한 걸작.
<신성한 나무의 씨앗> 줄거리
영화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히잡반대시위가 벌어졌던 2022년을 배경으로 한다. '여성, 삶, 자유'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시위는 여대생이었던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던 사건을 기점으로 벌어진 대규모 시위이다.
영화는 이만이 수사판사가 되면서 시작된다. 그가 하는 업무는 범죄행위를 조사하고 내려온 판결을 확정하는 것으로, 사실상 시위를 하다 잡혀온 이들의 사형선고를 내리는 일이다. 그의 가족들은 수사판사인 이만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도 SNS를 통해 그리고 일이 벌어지는 거리를 직접 보며 시위대를 탄압하는 정부의 행태를 목격한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실제 시위 모습이 삽입되어 있어 당시 이란 정부가 시위대를 포함한 시민들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했는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이렇게 실제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라는 비현실에서도 현실이었던 정부의 잔혹한 탄압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체감할 수 있다.
중반부로 들어서며 영화는 초반부에 배치해놓은 히잡반대시위의 현장보다는 이만의 가정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구시대의 불합리함에 맞섰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한 가정의 갈등 과정을 통해 시대를 드러낸다. 정부에 의해 정제된 방송을 보며 남편인 이만이 일궈놓은 세상을 지키고 있는 '나즈메'. 정부가 막지 못한 그대로의 진상이 드러난 SNS 영상을 보며 시위에 참여하고 탄압의 대상이 된 친구들을 목격한 '레즈반'. 그리고 염색과 매니큐어를 하고 싶어하고 레즈반과 같이 날 것의 영상으로 정부의 탄압을 접하고 있는 '사나'까지. 각각 다른 세 여성은 한 가정 내에서 공동체로 묶여있다.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 이만의 안위를 이유로 가정 내에서 사소한 행동까지 제제당한다. 하지만 이런 통제 속에서도 그들은 거리와 휴대폰으로 시위를 접하고 세상을 본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동참하진 않지만 그들은 국민을 탄압하는 정부에 의문을 갖고 진실을 들여다봄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는 인물들이다. 반대로 나즈메는 이만의 가정을 지키고자 한다. 나즈메는 본인의 의지로 나즈메와 사나의 행동을 억압하고, 약간이라도 가정을 흔들만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는 정부가 유지하려 하는 옛 것에 동화된 인물로 시위대를 폭도로 칭하는 언론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잔혹한 현실에 눈을 감는다. 하지만 동시에 정부의 폭력에 다친 레즈반의 친구를 치료해 주고, 경찰에 잡혀간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도 한다. 이런 나즈메의 모습은 구체제에 대한 의심은 없지만 눈앞에 보이는 폭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인간성을 그리고 약한 연대를 보여준다.
반면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만은 구시대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자신의 아내와 딸들이 그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자 않는, 순종적인 존재일 때는 그 역시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정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반항이 생기고 급기야 호신용 총이 사라지며 그는 변한다. 가족 중 누군가 가져간 거라 확신하며 실토하지 않는 가족 모두를 의심한다. 그는 이 상황 자체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 반항으로 받아들이며 다정한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가족 모두를 억압하고 거짓말쟁이라 칭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히잡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했다 판단한 이란 정부의 모습과 닮아있다. 정부는 여성들의 당연한 권리 주장까지 국가에 대한 반항으로 받아들이며 시위대를 포함한 시민들을 폭력으로 억압하고 폭도로 규정했다.
레즈반과 사나, 그리고 나즈메는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로 구분되기는 하나 권위자로부터 서로를 지키기 위하여 연대한다. 억압하는 자인 나즈메는 그들에게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만이라는 권위자에게 오랜 기간 통제당해온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지막까지 권위자와 타협하려는 자와 맞서는 자로 나눠지지만 결국 서로를 도와 다 같이 새로운 시대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이만은 다르다. 그의 자상함은 세 여성이 '자신'의 가정 아래 복종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유지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이 아닌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목격한 이만에게 이제 세 여성은 불순분자로 권위에 위협되는 존재이다. 이만은 이란 정부처럼 국민, 즉 가족과의 재화합을 명목으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통제를 시작한다. 억압의 주체이자 세 여성, 그리고 국민들이 반발한 구시대의 현현인 이만은 그가 구시대 자체이기에,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탄압을 자행했기 때문에 새 시대로 갈 수 없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과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 반정부적인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의 탄압을 당했다고 한다. 감독과 레즈반, 사나, 사디프 역의 배우는 이란을 탈출해 망명했다고 하며, 나즈메 역의 배우는 테헤란 자택에 연금된 상태이다. 영화의 배경인 2022년 히잡반대시위부터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만들어진 과정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들까지 생각하면 영화에서 보여진 일들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더 나아가 현실로 다시 이어진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미래를 희망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이 영화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