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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25-06-24 13:39:12

당신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영화 [그을린 사랑] 리뷰

이 글은 영화 [그을린 사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갈 땐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인정해야 했다. 

나왈(루브나 아자발) 고난을 관음 했음을. 그녀가 생명을 담보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서야 겨우 소화해 냈을 고난을 그저 영화의 참신함을 측정하는 척도로 보며 감탄했음을. 충격적이다.라는 말 뒤에 숨어서 나왈의 삶을 위안으로 삼으려 하는데 스스로가 동조했다는 것도. 그러나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했는가.라는 물음에는 그녀의 인생을 세 번째로 들여다보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까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 속이라 해도 나왈의 온기는 사라졌고. 그녀의 인생은 이제 유서 몇 장으로 남아있을 뿐이니까. 그나마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녀의 삶이 증오와 사랑. 이 두 가지로 거의 이뤄져 있다는 정도. 

 

누군가는 증오와 사랑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마치 나왈의 품에서 태어난 쌍둥이 시몬(맥심 고데트)과 잔느(멜리사 데 조르모 풀랭)처럼. 그러나 가끔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등을 스스로 봐야 하는 난제를 푸는 것과 같은 차이라고 한다면. 이 지독하게도 다르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열렬히 타오르는 두 감정을 마음 가득 품고서, 그렇게도 침착하고 냉정해 보였던 나왈의 마음이 쉬이 이해될 리가 없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더군다나 쌍둥이를 비롯한 타인의 눈으로 그녀의 인생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은 나왈이 낸 숙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간접성을 더한다. 또한 몇십 년이나 지난 뒤에야 사실을 파헤치게 함으로써 관망에서 오는 무력감 또한 선사한다. 분명 그녀가 전쟁이란 참혹함 속에서 겪은 일이라 생각하며 이제 벌써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한 나왈의 숨결을 따라갔건만. 그녀의 인생 전체가 전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되어서야 그 참혹함은 배가된다.

 

차라리 다른 전쟁들처럼 포탄이 터지거나. 고지를 두고 피 튀기는 살육으로 점철되거나. 하다못해 비명소리라도 끊이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나왈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파헤쳐지고 무너진 전쟁터 그 자체였지만.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은 채 폐허가 된 그녀의 영혼을 껴안고 고스란히 그 참사를 삼켰다. 

 

눌러 삼키려 애썼던 그 모든 일들은. 때론 자신의 인생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처럼 안쓰럽고 그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애착과 자신에게 닥친 일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역겨웠을 것이다. 뱉을 수도. 그렇다고 넘길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감당해야 했을 모든 괴로움들을. 그녀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숨을 고르는 듯한 그녀의 침착한 모습만을 우리는 바라만 보아야 한다. 아니. 상상에서 불러와야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나는 그녀의 선택에. 그리고 그녀가 취하는 태도에서 언제나 안쓰러움과 경외감을 함께 느낀다. 그녀는 마음을 가득 채운 분노가 사그라지면 그 자리에는 완전히 연소한 재 밖에 남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 마음을 품은 채 산다면 썩은 냄새에만 침을 흘리는 하이에나처럼. 자신의 비참함이 아물지 못하게 손톱으로 파내며 피냄새가 멈추지 않는 삶을 살며 조금씩 부패하고 삭아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움 자체에 중독되는 삶을 거부했다. 그녀의 발목에 달린 추의 무게를 자랑하는 노예 같은 삶을 거부했다. 그녀는 용서라는 형태의 사랑을 행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녀의 인생을 따라가던 모두를 오롯이 목격자로 만든다. 

 

매번 그녀에게 질문한다. 정녕 이것이 사랑이냐고. 그때마다 그녀는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 번의 전쟁을 겪어 내고, 결국 목구멍을 넘어가서 그녀의 삶을 담보로 소화해 낸 이 모든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게. 그리고 묻는다. 

 

과연 당신은. 그녀의 삶에서 어디까지. 그리고 어느 정도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본 리뷰는 씨네랩에서 제공한 시사회에 초대되어 작성했습니다. 

 

[이 글의 TMI]

1.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다른 작품인 [듄]을 보는 것 같았음. 너무 황량하고 메말라서 모래를 입 안에 가득 넣고 버석버석 씹는 느낌이 계속 들었음. 

2.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3. 이제 6월 재개봉 영화는 드디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남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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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

출처 . https://brunch.co.kr/@iltallife/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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