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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까2025-09-22 09:48:16

[30th BIFF 데일리]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을 빚는다

영화 <모모의 모양>

만두 요리 '모모'는 인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족주의적 문화가 있는 인도에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모모를 빚어 먹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모(만두)의 모양을 두고 농담처럼 오가는 말들 뒤에 유독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부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요.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성이 겪는 불평등의 무게를 만두 빚기와 같은 일상으로 드러내 보이는 영화 <모모의 모양>을 감상했습니다. 

모모의 모양
Shape of Momo



Summary
'비슈누'는 델리에서 일을 그만두고, 히말라야 근처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아들이 자신을 두바이에 초청해 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할머니,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집안과 마을 일을 꾸려오던 엄마, 시어머니 및 남편과의 갈등을 피해 친정으로 온 임신한 언니를 보면서 '비슈누'는 최선을 다해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어느 날, 건축가 '기얀'을 만나고 관계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비슈누'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트리베니 라이 
출연: 가우마야 구룽, 파슈파티 라이 외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름, '여성'


<모모의 모양>에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비슈누'와 그의 언니, 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비슈누'는 가정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등 여성에게 씌워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을 돕고자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 틀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성별에 따라 배정되는 역할들, 성별에 기대되는 행동들, 그로 인해 가로막히는 개인으로서의 독립적이고 온전한 삶을 3대에 걸친 여성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로 드러냅니다.

여성이 겪는 현실은 가족들의 자아실현을 돕던 ‘비슈누’가 결국 자신 앞에 놓인 여성으로 사는 삶 앞에서 좌절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그가 겪는 무력감은 '비슈누'가 커다란 바위 위에 몸을 뉘고 있는 장면들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로도 그려집니다. 인간이 자연 속 작은 미물처럼 보이는 이러한 장면들은, 여성이 느끼는 무력감이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압도적인 무력감과 닮아 있다는 것을 표현하죠. 영화에서 가장 고요한 장면들이지만, 그 어떤 장면들보다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 ⊙ ⊙

누구나 부담 없이 만두를 빚을 수 있는 세상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영화의 제목처럼 '모모의 모양'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여성 가족 구성원(할머니, 엄마, 딸)들이 한데 모여 모모를 빚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모모를 먹는 장면들이지요. 남성 가족 구성원(딸의 남편과 남자 친구)은 모모 빚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빚은 이상한 모양의 모모를 먹으며 웃고 떠들지만, 그것이 자기 일이라고는 전혀 여기지 않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두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해서 눈칫밥을 먹어 본 남성이 과연 있을까?' 물론 드물게는 있을지 모르지만, 단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성을 향한 질문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만두를 곱게 빚지 못해 눈칫밥을 먹어 온 여성은 과연 얼마나 많을까?' 제 기억 속에도 여성이라면 응당 어떤 역할이나 행동을 잘해야 한다는 기대,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의 부담을 느꼈던 순간들이 수두룩합니다. 이럴 때면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갇힌 듯한 갑갑함이 차오릅니다. 

사실 만두에서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니라 맛이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만의 고유한 존재 방식으로 이해받고 받아들여져야 합니다(맛).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틀 안에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합니다(모양).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모모를 빚을 수 있고, 모양은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요. 모양이 예뻐야 할 이유도, 그것을 예쁘게 빚어야 하는 것이 여성의 몫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오늘날의 여성들은 만두를 빚는 순간, 저도 모르게 부담을 느낄 겁니다. 아마 저 역시도 그럴 거고요. 

⊙ ⊙ ⊙

인도의 모습을 담은 영화지만, 크게 다를 바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여성이 아닌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온전히 체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습니다. 만약 당신의 눈앞에 놓인 운동장이 기울어져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이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저는 믿습니다. 당신은 고개를 바로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감은 눈을 뜰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의 가능성을 알기에, 우리나라의 젠더 갈등이 더 허탈하고 슬프게 느껴집니다. 

Schedule in BIFF
2025.09.21(일)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6:30
2025.09.22(월) CGV센텀시티 5관 12:00
2025.09.23(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11:00
2025.09.25(목) CGV센텀시티 2관 17:00

작성자 . 방자까

출처 . https://brunch.co.kr/@hreecord/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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