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katniss 2025-06-25 22:03:12
드라마 <졸업> :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주세요, 빛나는 졸업장을"
안판석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졸업> (TvN, 2024) 은 공개 전부터 관심과 우려를 한 번에 받았다. 시장이 감독의 전작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느린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합이라도 하듯, 콘텐츠는 조각나 숏폼으로, 유튜브 축약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시대 속 문학적인 대사, 켜켜히 쌓이는 감정선, 그 안의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안 감독의 <졸업> 은 느린 이야기의 건재함을 증명한다.
안 감독은 항상 로맨스의 외피를 통해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학원 강사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사회에 자리 잡은 계급과 교육 문제를 드러낸다. 드라마의 배경은 사교육의 천국, 대치동 학원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는 계급을 결정하는 첫번째 통과의례이다. 모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고난 계급을 지키거나,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시에 전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조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린다. 드라마 속 한밤중까지 불이 켜진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은 이런 욕망이 얽힌 한국 사회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극은 일타 강사 서혜진(정려원)과 10년 전 제자 이준호(위하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과거 혜진이 처음으로 가르쳤던 이준호는 혜진의 가르침을 통하여 꼴찌 생활을 청산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정석 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어느 날 준호가 혜진의 학원에 선생으로 입사하며 혜진의 일상에는 큰 파문이 인다. 준호는 혜진의 실적 중심의 교육 신념을 흔들고, 주변 대치동 사람들은 혜진을 끌어내리기 위한 공작을 끊임없이 펼친다.
문제의식이 없던 한 인물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사랑. 그로 인해 문제에 눈을 뜨고 변화하는 인물. 안 감독이 유구하게 추구하는 로맨스의 방식이다. 혜진은 10년 전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인 국어의 본질을 가르침으로써 학생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인물이었다. 지금의 혜진은 성공했지만 더이상 자신을 교육자라 여기지 않는다. 혜진에게 자신의 역할은 “학생들 성적이나 올려서 좋은 대학 보내는 사람”이고,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다. 연인으로 발전한 준호와 혜진은 교육관의 차이로 부딪힌다. 성적 상승이 입시교육의 목적이라는 혜진의 의견은 계급 담론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교육의 현주소를, 국어가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고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준호의 의견은 교육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한다. 여기에 힘없는 공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원 선생이 된 표상섭(김송일)과 문제 풀이를 넘어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 이시우(차강윤)가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로맨스를 넘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교육과 배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12년의 학제를 통틀어 좇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에 가는 물질적인 목표를 이룬 후에,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남는가. 준호와 상섭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아가는 혜진의 모습을 통하여 감독은 말한다. 입시 교육이 대변하는 무한 경쟁과 물질주의에 경도된 삶을 살아가는 한, 우리는 평생 ‘졸업’하여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고. 우리의 삶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또 성찰하라고. 또 교육은 그런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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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약함은 연대한다 ‘디피컬트’
블랙 프라이데이, 환경 단체가 대형 쇼핑몰을 점거하며 외친다. “1도, 2도, 3도, 오르는 기후. 소비는 반인륜적 범죄” 싼값에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과 소비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과격하게 대치한다. 격렬한 시위 장면으로 시작하는 <디피컬트>는 기후 위기와 환경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원제 ‘A difficult year’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삶의 힘듦과 우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경 운동가 캑터스는 기후 우울증으로 무력감을 느낀다. 브루노와 알베르는 대출을 반복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거주지도 불분명한 신세가 됐다. 브루노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고, 알베르는 공항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물건을 되팔아 근근이 돈을 마련한다. 환경 운동가와 리셀러,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세 사람이 환경 운동으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환경 운동과 가난이 맞닿는 지점들이다. 알베르와 브루노는 공짜 맥주와 음식에 혹해서 환경 단체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코웃음 치지만, 자선 바자회가 물건을 빼돌려 되팔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에 가담한다. 환경 운동에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캑터스에 대한 알베르의 호감, 시위 현장이 주는 묘한 흥분 등은 이들로 하여금 환경 운동에 가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빈곤과 환경 운동은 또한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캑터스는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한다. 하나의 물건을 들일 때는 하나의 물건을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유지한다. 알베르와 브루노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전문가는 물건을 사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가? 정말 필요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가?’ 최소한의 소비는 환경 문제와 재정적 문제에 봉착한 개인들의 실천이자 투쟁이다.
이는 기후 위기와 빈곤이 끊임없이 달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루노가 자본의 중심지인 프랑스 은행을 점거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이 화석 연료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후 재난을 가속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는 채무 변제 서류에 접근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환경 운동과 연결되는 의외의 상황들은 삶의 취약함이 여러 지점에서 우연히 연결됨을 보여준다. 우리의 우울이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때 취약함은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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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력은 증명했으나 감동은 이어가지 못하다
애니메이션을 정말 재밌게 봤기에 실사화된 작품 역시 기대하고 봤었던 영화 <라이온 킹>. 하지만 실사화된 작품에서는 그 묘미를 잘 살리지 못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실사화를 해서 되는 작품이 있고, 아닌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라이온 킹> 시놉시스
새로운 세상, 너의 시대가 올 것이다!
어린 사자 ‘심바’는 프라이드 랜드의 왕인 아버지 ‘무파사’를 야심과 욕망이 가득한 삼촌 ‘스카’의 음모로 잃고 왕국에서도 쫓겨난다.
기억해라! 네가 누군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심바’는 의욕 충만한 친구들 ‘품바’와 ‘티몬’의 도움으로 희망을 되찾는다. 어느 날 우연히 옛 친구 ‘날라’를 만난 ‘심바’는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얻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위대하고도 험난한 도전을 떠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라이온 킹>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실사화 하나는 정말 끝내줬던 작품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던 디즈니의 CG. 우리의 기술력이 여기까지 발전했다!!를 대놓고 보여준 작품이었다. 정말 그럴만했다. 사자의 수염 하나, 새의 깃털 하나, 지나가는 벌레 하나, 정말 실제의 모습과 다름없이 있는 그대로 똑같이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약간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2시간 가량의 영상을 랜더링 돌리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정말 대단하다 하는 경외심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실사화를 해서 독이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웠던 점은 그 대상이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이온킹을 실사화 하다보니 동물들의 표정이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라이온킹의 매력은 등장하는 동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연기다. 하지만 실사화가 된 사자와 다른 동물들에게 인간의 표정을 대입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면 실사화라는 개념은 실제 있는 동물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표정을 넣어버린다면 그것은 실사화와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그냥 입이 움직이면 대사가 흘러나오고 표정이 없다보니 딱히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답답하고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또 실사화를 기가막히게 잘해서 감탄을 하게 되고,,, 좋았다가 실망했다가 오락가락했던 작품이었다.
넘버의 가치를 담지 못하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넘버였다. 그 유명하다는 Circle of Life를 살리지 못할 줄은 몰랐다. 애니메이션 속 Circle of Life는 굉장히 짜릿했는데 실사로 보니까 그 감정이 덜해지는 바람에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비욘세가 불렀다고 해서 엄청 기대했던 넘버 역시,,, 극 속에 녹아들었다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콘서트장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것은 영화인가,, 콘서트장인가..? 이렇게 튀어도 되는 것인가..? 혼란했다.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영화 <라이온킹>. 디즈니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실사화의 안 좋은 예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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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
한국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는 굳이 리메이크까지 되었어야 했나 싶을 만큼 많은 대만 청춘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특히 기시감이 들 만큼 서사 구조까지 비슷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12년 작품으로 거의 10년여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름날 우리>는 그 시절부터 성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참신함까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서사의 진부함이나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자체가 진부한 글이 될 만큼 아시아의 청춘 영화들은 <꽃보다 남자>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이 글이 진부해지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수많은 영화들이 첫사랑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흔히들 첫사랑은 특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종국에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오랫동안 기억한다(그게 첫사랑일 수도 있다). <여름날 우리>를 위시한 수많은 청춘 멜로 영화들은 왜 첫사랑이라는 클리셰에 이토록 매달리는지, 관객들은 왜 알고도 당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또 왜 미디어에 등장하는 수많은 첫사랑들은 초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 시기에 등장하는가(간혹 중학생 시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여학생에 비해 신체적 성숙이 늦는 남학생들은 중학생 시기까지도 성인보다는 어린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곤 한다. 흔히 말하는 "남자애들은 고등학생 때 쑥쑥 커"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여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중학교를 마무리할 무렵 성장을 거의 마무리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고등학교 즈음이 되어야 성장이 마무리된다(군대에 가서도 몇센치 커온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들어봤다). 따라서 중학생 시기의 연애를 묘사하기엔 여학생은 성인같은데 남학생은 어린이같은 구도가 그려지게 된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 나이가 많고 신장도 큰 경우를 더 자주 묘사하기 때문에 중학생 시기는 미디어 입맛에 맞는 시기가 아니다. 대학생은 온전히 성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사실은 미성숙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풋사랑을 그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고등학생 시기는 여학생이나 남학생 모두 성인같지만 자유가 온전히 주어지지 않은 시점이다. 학교에 다니고 가족에게 귀속된 삶을 살면서도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어쩌면 연애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미디어는 고등학생을 풋사랑을 그리기에 최적의 시점(?)으로 간주하고 첫사랑을 배치한다. 또 한가지 이유로는 30대가 넘어가는 시기까지 서사를 진행할 게 아니라면 20대 안팎의 배우들에게 10대부터 20대까지를 쭉 연기시킬 수도 있다. 이래저래 고등학생이 마치 첫사랑의 적기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사실은 미디어의 편의와 농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첫사랑과 연애해서 결혼까지 골인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문데다 대부분은 초반의 순수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지 못한다. 연애와는 달리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하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그렇게 많다며?). 그럼에도 <여름날 우리>에 등장하는 저우 샤오치(허광한 분)와 요우 용츠(장약남 분)는 마치 순수한 사랑만을 한 것처럼 그려진다. 비록 이들의 사랑이 영원토록 유지되지는 않지만 영화만 봐서는 싸운 적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웬만한 판타지 영화보다도 비현실적인 이들의 사랑에는 당연히 온갖 고난이 함께하게 되는데 그 고난은 대부분 현실에서 기인한다. 용츠의 가족사, 샤오치의 진학 등 샤오치와 용츠가 만나지 못할 이유는 수두룩빽빽한데 그 고난들을 다 뚫고 만나 연애하는 이 커플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영화는 이것이 사랑의 힘이에요! 라고 주장하지만 종국에는 현실을 인정하는 결말을 보여주고, 모두가 말하듯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명제에 힘을 실어준다. 신기할 정도로 용츠에게 매달리는 샤오치는 마지막까지도 용츠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진정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샤오치는 용츠에게 그토록 매달리는가. 샤오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녕 용츠였을까. 그걸 샤오치가 일찍 알았다면 용츠와 백년해로했을까.샤오치와 용츠가 잘 만나다가도 헤어지는 시점은 바로 이 현실이 샤오치에게 내리꽂을 때다. 안됐지만 사랑으로 인해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2~3년 정도다. 고3시절 처음 용츠를 만난 샤오치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용츠를 잊지 못한 건 용츠에 대한 사랑도 있겠지만 사실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에 가깝다. 전교생의 흠모 대상이었던 용츠를 놓고 샤크와 대결한 샤오치는 수영 대결에서 지지만 용츠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러고도 정식 연인 사이가 아닌 용츠의 변장용(?) 연인으로 활동하던 샤오치는 급작스럽게 용츠와 헤어진다. 기실 용츠를 위해 수영하고, 용츠를 다시 만나기 위해 공부하는 샤오치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연애상이 아니다. <팜 스프링스>의 세라가 말했듯 나는 너 없이도 잘 살겠지만 너와 함께라면 이 세상이 덜 지루할 거라는 연애관이 가장 건강한 연애관이다. 샤오치는 끊임없이 용츠를 얻고 용츠를 기뻐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용츠의 요구조건에 맞춰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샤오치 자신의 삶의 목표가 생겨버렸다는 점이다. 얼떨결에 수영 대표가 된 샤오치는 이제 수영 챔피언을 꿈꾼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용츠로 인해 꿈을 잃게 된 샤오치는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다. 평생의 사랑이 자신의 꿈을 꺾은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샤오치는 용츠를 사랑하는 동시에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샤오치는 이제 용츠를 미워할 수 없을 지경까지 자신의 삶을 용츠에게 맞추어 왔다. 이제와서 용츠를 미워하면 그간 용츠에게 맞춰온 자신의 삶이 모두 부정당하게 된다. 결국 샤오치는 용츠를 선택하지만 문제는 그런 샤오치의 마음을 용츠가 알아버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수영 챔피언이라는 꿈이 끼어들기 전까지 샤오치의 삶에는 용츠밖에 없었지만 용츠의 삶에는 샤오치가 아닌 다른 것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이다. 용츠에게는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래서 돌봐야 할 가정이 있었고 공부를 잘했기에 목표가 있었다.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던 꿈이 샤오치를 만나면서 다시 삶의 목표가 되었지만 동시에 용츠는 샤오치에게 구속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유학을 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 때문에 꿈이 좌절당한 샤오치를 2년이나 홀로 방치해야 한다. 샤오치의 챔피언 좌절은 샤오치 자신에게도 큰 상처였지만 용츠에게도 평생의 굴레로 작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샤오치와 용츠를 엮어주는 동시에 어긋나게 만드는데 이는 샤오치와 용츠가 삶에서 연인과 꿈을 중요시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샤오치와 용츠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용츠가 각자 살아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을, 둘이 함께하는 한 그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샤오치가 용츠가 일찍이 깨달았던 이 삶의 진리를 깨달을 때쯤 다시 용츠를 만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각자의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샤오치와 용츠는 조금 다른 연애를 했을지 모른다. 샤오치는 용츠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수영했을 것이고 용츠는 샤오치에게 빚진 마음으로 연애하는 대신 진정 샤오치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샤오치와 용츠에게 중요했던 건 서로를 만났던 시점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깨닫는 시점이었다. 샤오치가 마침내 용츠 없이 삶을 살아내고 새로운 삶에서 보람을 느끼며 목표를 찾는 순간 샤오치는 용츠를 보내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그 시점에 다시 이들이 만났더라면 정말 백년해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아름다운 것이라는 명제를 지키기 위해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결말을 주지 않는다.
<여름날 우리>는 말했다시피 진부한 이야기지만 연애에 대한 관점을 다시 돌아볼 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에는 당신의 연인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있으며, 각각은 삶을 다채롭게 해준다. 연인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 로맨틱할지는 몰라도 능사는 아니다. 미디어는 마치 평생의 연인을 찾고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기저에 은근히 당신의 삶을 살 것을 응원하기도 한다. 샤오치와 용츠는 평생 서로를 잊지는 못하겠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낼 것이며 서로의 삶을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우정은 그들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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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기가 필요한 청춘의 파들파들 떨리는 날갯짓
한국이 싫어서 (Because I Hate Korea, 2024)
온기가 필요한 청춘의 파들파들 떨리는 날갯짓
개봉일 : 2024.08.28.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청춘
러닝타임 : 107분
감독 : 장건재
출연 :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 이상희, 오민애, 김지영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없음
누군가는 이 영화를 뜬구름 잡는 청년의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고 끝도 없이 징징대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주인공 계나와 그녀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적어도 욕하고 짓누르려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어딜 가든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니던 때가 있었다. 치솟는 물가와 집값, 점점 어려워지는 취업.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열심히 돈을 모아도 서울에 번듯한 내 집하나 사기 힘든 현실과 점점 삭막해지는 사회 속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멀리 있는 희망찬 미래가 아닌 가까이 있는 현재의 불행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불행을 “다들 이렇게 사니까 괜찮다”라며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탈출을 선택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가장 후자, 살기 위해 탈출을 선택한 청년이다. 이 영화는 인생에 좀 더 많은 온기가 필요했던 청년 계나의 한국 탈출기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야 하니까. 계나에게 한국은 발걸음을 늦출 수 없는 추운 겨울 그 자체다.
계나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녀는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야 했다. 공부도 홀로 척척 해내야 했고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또 취업을 한 후엔 돈을 아끼기 위해 매일같이 지옥철을 타고 긴 통근을 견뎌내야 했다. 이렇게 빡빡한 하루를 살아낸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나의 성공이 행복이라 말하는 엄마와 하나도 따뜻하지 않은 이불, 시야를 꽉 채우는 입김뿐이다.
사는 게 참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힘들다고 발걸음을 늦추면 그 자리에서 얼어 죽는다. 계나는 이런 겨울이, 겨울이 지속되는 한국이 싫다. 그래서 한국과 정반대에 위치한 뉴질랜드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 한국에서는 못 살겠다며 뉴질랜드로 떠난 청춘. 이 부분만 보면 외국과 이민을 찬양하고 한국을 헬조선이라 규정해버리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는 단순히 헬조선을 탈출해 새로운 삶을 사는 청년의 이야기가 아닌 어디서든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파들거리는 청년의 날갯짓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을 뭔지 모르겠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 인생의 행복. 계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아름답고 따뜻한 땅에도 겨울은 온다
계나는 한국의 추위가 너무 싫다며 뉴질랜드로 향한다. 영화는 (중반부까진) 한국을 춥고 답답한 곳, 뉴질랜드를 온화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표현한다. 한국은 차갑고 딱딱한 색감으로 표현되고 뉴질랜드는 밝고 명료한 색감으로 표현된다. 계나의 옷차림과 행동 역시 뉴질랜드에선 더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따뜻한 날씨와 만 원도 안 하는 와인과 과자, 아름다운 자연. 미래와 가족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이 정도면 지상낙원이 아닌가? 싶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곳에도 어려움은 있다.
먼저 말 시켜놓고 냅다 영어부터 배우라고 구박하는 현지인, 인천 집처럼 바람이 슝슝 통해 침낭을 깔고 자야 하는 차고를 개조한 방, 신발 하나로 트집 잡는 인종차별주의자, 친구 앨리의 범법 행위, 커다란 자연재해. 한국을 떠나기 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온갖 문제들이 계나를 덮쳐온다.
추운 한국에도 언젠간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이 오듯 따뜻한 뉴질랜드에도 언젠간 추운 겨울이 오기 마련이다. 뉴질랜드에서도 다시 겨울(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계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겨울과 여름을 살아본 계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 계나 가족의 집은 지하철역에서 먼 오래된 주택이 아닌 지하철과 가까운 신축 아파트가 되어 있었고 계절은 겨울을 지나 여름이 되어 있었다.
이제 집안, 결혼에 대한 부담은 대부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지만 계나는 여전히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녀는 아직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나는 한국의 겨울과 여름, 뉴질랜드의 여름을 살며 다양한 행복과 죽음을 함께 목격한다. 한국의 겨울을 살면서도 희망을 외쳤던 희망 전도사의 죽음, 겨울을 지나 곧 여름을 맞이할 거라 믿었던 친구 경윤의 죽음. 희망만 가득할 것 같았던 따뜻한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하준이 가족의 죽음까지.
어떤 땅, 어떤 계절이든 나름의 불안과 슬픔이 있다. 계나는 이들의 인생과 죽음을 목격하고 느끼며 다시 한번 짐을 싼다. 다시는 춥지 않을 조금 더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해서.
영화는 계나의 성장을 눈에 띄게 보여주지 않고, 뉴질랜드의 장점만을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계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하고 오랜만에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과 뉴질랜드에 대한 자랑을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종착지, 행복의 답을 찾지 못한 계나처럼 <한국이 싫어서>도 계나의 여정, 행복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어디에나 나름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영화는 그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끝이 난다. 이 흐릿함은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잠시 쉼표가 되어줄 수도 있고 답답함과 영화에 대한 불만족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누군가는 계나의 선택을 그저 외국병 걸린 사람으로 치부할 수도 있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어디를 가든 힘든 건 똑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계나의 선택을 존중하거나 부러워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관객의 자유다. 계나에게 한국을 싫어한다고 말할 자유와 떠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상상의 자유, 너무나 모호한 의견을 남기고 간 영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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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뚜기 월드'가 된 <쥬라기 월드 3>의 의미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되고, 섬을 벗어나 세상 밖에 자리 잡은 공룡들.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들을 보살피고,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써먼)'를 지키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제 인간 연구를 진행하려는 기업 '바이오신'에 의해 메이지가 납치당하고, 오웬과 클레어는 메이지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한편, 미국 서부에 나타나 농가들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를 조사하던 '엘리 새틀러(로라 던)'는 오래된 친구 '앨런 그랜트(샘 닐)'과 함께 메뚜기들이 바이오신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에 엘리와 앨런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인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의 도움을 받아 공룡들이 모여 있는 바이오신 소유의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29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부터 <쥬라기 공원> 삼부작의 주인공인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샘 닐까지 한 자리에 모여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를 가장 화려하게 꾸며주는 이들은 역시나 공룡이다. 전편에서 이슬라 누블라를 탈출해 북미 대륙에 상륙한 공룡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항상 공원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던 공룡들은 이제 바다에서도, 눈 내리는 산맥에서도, 소들이 뛰어놀던 평원에서도, 심지어 암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영화는 정작 공룡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간 공룡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메뚜기 떼이고, 영화의 메인 플롯도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개발한 기업인 바이오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룡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 대목은 긴 시리즈에서 반복되던 메시지를 탈피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일견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만의 개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역인 공룡의 임팩트가 약해지고, 시리즈의 마무리로서도, 또 단독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주제와 메시지
그간 <쥬라기 공원> 삼부작과 <쥬라기 월드> 1편의 주제는 분명했다.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경고였다. 공룡이라는 환상 속에는 윤리 없이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혼돈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는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쥬라기 공원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고, 성공적인 듯 보였던 쥬라기 월드마저 폐장해야 했던 공통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시리즈는 기본적인 뼈대는 간직한 채 주제를 조금씩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며 파괴되는 이슬라 누불라 섬에서 공룡들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한 축이고, 다른 생명의 흥망성쇠에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른 한 축이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도 마찬가지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인터뷰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데리고 나온 공룡들을 더 큰 세상 속에 풀어놓게 된 거예요. 그것의 결과를 탐험해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우리가 자연계의 힘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다. 특히 '자연계의 힘'이라는 말은 영화가 공룡들이 일으키는 문제보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 집중한 이유를 암시한다. 이제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공룡, 그리고 공룡과 인간의 공존을 넘어서서 인간과 공룡까지도 포함하는 쥬라기 '월드', 곧 공룡이 사는 '세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생태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변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변화에서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정치생태학자인 그녀는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는 주장한다. 그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의지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 사물, 비인간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넷에 따르면 비인간 행위자에게도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의 방향성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식물, 동물, 무생물, 자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매 순간 사물과 결합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자연과 뒤얽혀 활기차게 반응한 결과이듯이, 인간의 의도 역시 거대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과 환경을 만나 실현된다.
거대 메뚜기의 등장도 정치생태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이오신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곡물 종자들을 배포하고, 비대한 메뚜기 떼를 개발해 식량 공급망을 혼란시킨 후 식량 산업을 지배하려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신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메뚜기들 역시 그 계획에 반응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바이오신의 CEO '도지슨(캠벨 스콧)'은 증거 인멸을 위해 키우고 있던 메뚜기 떼를 모두 소각 처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메뚜기들은 연구실을 탈출해 공룡이 거주하는 숲 전체에 불을 퍼뜨리며 도지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반응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편이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 인간이 주체로서 어떻게 개입할 지에 주목했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오웬과 벨로시랩터 '블루'가 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오웬과 블루의 관계는 항상 특별했다. 비록 누구도 쉽사리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웬은 언제나 블루를 조련할 방법은 없으며 그저 그의 선택과 행위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오웬과 블루는 동등한 주체로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과 공룡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바이오신이 새끼인 베타를 납치하자 극도로 난폭해진 블루. 그런 블루에게 오웬은 메이지와 함께 베타도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그의 약속에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 사태가 더해진 결과 바이오신의 악행은 온 세상에 공개되고, 공룡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생기며, 블루와 오웬은 각각 가족을 되찾는다. 메이지와 베타의 관계가 오웬과 블루처럼 진전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공룡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계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력도, 비중도 없는 공룡들
문제는 공룡으로 인해 변화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시리즈의 주역인 공룡의 매력과 비중이 모두 급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중 공룡들은 전개에 따른 부속품 정도로 묘사된다. 이는 지난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지속적인 등장시키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각하며 개성을 어필해왔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쥬라기 월드>에서 비정상적인 흉포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도미누스 렉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생물병기로 길러졌던 인도랩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공룡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룡들은 공룡 암시장이 있는 몰타에서, 하늘에서, 얼어붙은 댐 위에서, 그리고 지하 터널 등에서 주인공들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진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블루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나 비중과는 별개로 시작과 끝에 겨우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친다. 시리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의 대우도 다르지 않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액션씬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의 힘에 밀려 시종일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렉시의 모습은 시리즈의 상징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렉시가 다른 공룡과 협력하면서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다 보니 렉시의 등장에는 반가움과 의문이 공존하기도 한다. 빌런 포지션에 가까운 기가노토사우루스 역시 평범한 육식 공룡에 불과할 뿐, 뇌리에 각인될만한 캐릭터성을 어필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후반부 공룡들의 액션씬에서 카메라가 공룡보다 싸우는 현장을 탈출하려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들의 존재감은 안타깝게도 더욱 줄어든다.
피날레로서도, 독립 작품으로서도 아쉬운 완성도
이에 더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쥬라기 월드> 3부작과 <쥬라기 공원> 3부작을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머지 영화의 메시지가 묻히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크게 세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케일라가 바이오신에게 납치된 메이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엘리 새틀러 박사와 앨런 그랜트 박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거대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 바이오신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마지막은 도지슨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안 말콤 박사와 램지 콜의 서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토리는 제각기 진행되다가 3막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시리즈를 하나로 종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세 개의 이야기를 묶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바이오신 건물에서 탈출한 엘리, 앨런, 이안 일행의 차는 숲 한가운데서 전복되는데, 이 사고는 때마침 오웬과 클레어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 복제 인간인 메이지를 세 스토리의 교집합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선택처럼 보인다. 전편에서 미처 다 공개되지 않았던 메이지의 과거사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관해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메이지의 개인사를 철저히 가족애와 모성애를 강조하는 감정적 측면에만 제한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만다. 두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어서 시리즈의 전통도 살리고 향수도 고취하려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보니 14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 '케일라 와츠(드완다 와이즈)'나 '램지 콜(마무드 아티)'만 해도 배경 설명이 없다. 케일라는 지나가다가 흘끗 본 아이(메이지)를 구하기 위해 직업과 목숨을 걸고 오웬과 클레어를 도울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케일라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램지 콜 또한 바이오신 회사에 협력하는 중관 관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의 부패를 고발한 반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시리즈의 메인 악역이었던 '헨리 우(B.D. 웡)'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내에서 그 과정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된 결과 영화 전반의 개연성도 부족해진다.
물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락영화로서, 또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낸다. 특히 중반부 몰타에서 펼쳐진 공룡과의 속도감 있고 강렬한 추격씬은 마치 <분노의 질주>를 연상케 한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쥬라기 공원>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일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시리즈의 끝으로서도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메시지마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사이의 불협화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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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노라 에프론이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
- 끝나지 않을 운명적 사랑에 대한 믿음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뻔하지만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늘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플레이 리스트에는 왜 예전에 즐겨보던 작품들뿐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저 재미있게 보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게 해주었던 로맨틱 코미디만의 몽글몽글함이 이제는 장르적 쇠퇴를 맞이한 것일까?
할리우드 또한 시대별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볼 수 있는데 1930년대 계급 차이를 극복하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스크루 볼 코미디를 시작으로, 50~60년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앞세운 관습적인 역할을 지나 90~2000년대 전문직 여성까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점도 있는데,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업적 경력에도 언제나 실수를 남발하고 꼭 위기 상황에 남자 주인공이 구해주며, 사회적 성공과 반대로 연애의 부재로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자 취향을 맞춰주는 여자가 매력적이라는 관념을 내세우며 언제나 파트너의 행동에 맞춘 쿨한 매력을 겸비한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공평한 관계를 이상적으로 그려나갔으니 양산형 영화가 쏟아지는 흐름에 갈피를 잃고, 정치적 올바름이라 부르는 PC 요소들의 대두되며 더욱 괴리감이 생겼으리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일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사랑과 운명을 믿고 싶다면 꼭 기억해 달라고 언급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뉴욕 타임스와 에스콰이어의 기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했고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며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노라 에프론이다. 인간의 소통에서 비롯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는 두 사람의 운명적 이끌림을 통해 사랑의 힘을 전하며 관객의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시대가 흐르며 여타 장르들과의 혼재를 통해 다양한 변주로 강렬한 감정을 끌어내는 로맨스가 유행되었지만, 그때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인간으로서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판타지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안긴다. 어쩌면 남녀 관계와 사랑에 대해 가벼워진 사회 분위기에 운명은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로맨스 코미디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 즐거운 무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참 낭만적인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이끌 수 있다는 평범한 삶을 바라보는 작가적 시점에 대해 노라 에프론이 남긴 한마디 ‘모든 것은 카피다(Everything is copy)’. 정확하게는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지만, 우스갯소리를 덧붙여 정작 본인의 카피는 언제쯤 나올지 몰랐던 것 같다. 대표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할 남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설렘을 다루며 빠져들 수밖에 없는 멜로/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말장난 섞인 가벼운 하위 장르로 여겨졌던 로맨틱 코미디에서 알면서도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을 통한 하나의 형식적 법칙으로 정립하며 시대를 대변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파워우먼으로 꼽히게 된다.
대체로 뻔하고 명확한 형태로 다소 오글거릴 수 있는 과정에도 오히려 관객이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로 전환시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매력을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통해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표현한다. 이 같은 전개는 고전 로맨스 소설의 대가 제인 오스틴과도 같은 맥락을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비틀며 시대상을 반영한 노라 에프론식 로맨틱 코미디로 거듭난다. 운명에 대한 믿음을 유쾌하면서도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가며 아직도 그녀의 작품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도 될 근사한 낭만으로 가득 찬 사랑의 기억을 머물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그녀를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추앙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①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년 발표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대화들이 즐비한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타일인 동시에 노라 에프론이라 각본가로서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를 정립한 첫 히트작이다. 두 사람이 이어지기까지 12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고,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제2의 연인’ 속 결혼 전을 보는 듯한 전개를 보인다. 1977년 봄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졸업과 함께 직장이 있는 뉴욕으로 우연히 동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라는 결론이 날 수 없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고 서로를 별종이라 칭하며 헤어진다. 몇 년 뒤, 각자의 이별과 이혼을 통보받은 시기에 운명처럼 재회하고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은 늘 해리와 샐리 주변을 맴돌았고, 그저 서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선을 긋고 다가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스킨쉽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첨예하고 장황한 설명은 지칠 법도 한데, 결국 헤어지기 싫다는 애증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으로 즐거움을 준다.
재치 있는 각본과 별개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로맨스는 아니지만,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의 따뜻하고 포근한 케미스트리는 설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견고히 하고, 사소한 단점 하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성장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오랜 친구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연인이 된다는 뻔한 전개와 뻔한 결말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평범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가 5년 공백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노부부(연기자들) 이야기들이 들어간 부분은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언제 처음 만났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짧지도 길지도 않게 말해주며 각자의 사연들을 통해 해리와 샐리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는 현실을 입힌다. 마치 해리와 샐리에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인생의 평범함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노라 에프론은 보편적인 삶 속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들과 운명적인 상황들로 극적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관객에게 영화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카츠 델리’ 식당에서 맥 라이언의 ‘가짜 오르가슴’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장면은 이제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당시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스탠 바이 미’로 명장 반열에 오른 로브 라이너의 창의적인 연출력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빅’ 등의 촬영 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 등 독특한 세계관을 펼친 베리 소넨필드가 의기투합해 빛났던 재능꾼들의 젊은 시절이리라 생각된다.
② 1993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뒤 1992년 ‘행복찾기’로 감독까지 데뷔한 그녀는 현재까지 대중들에게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를 발표한다. 극 중 여주인공 애니가 매일 밤 보며 대사까지 외우는 1957년 ‘러브 어페어’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각본을 바탕으로,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사랑을 믿으시나요?’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을 풀어헤친다. 이후 ‘유브 갓 메일’에서도 빛나지만, 남녀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대한 설정에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감성을 품고 있다. 지금은 앱으로 간소화까지 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수천 마일이 떨어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적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실의 빠져있는 아버지 샘을 위로하려는 아들 조나의 발칙한 사연으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은 매일 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진심이 담긴 그의 행복한 추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애니의 마음을 강타해 공감 어린 눈물을 흘리게 하며 결혼을 앞둔 약혼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운명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는 이별과 상처가 되는 순간이 교차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아도 이상하지 않지만, 해리와 샐리가 서로에 대해 고민한 많은 시간만큼 여기에서도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는 세 번의 장면들로 에프론은 운명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 같은 장치는 마지막 엠파이어 빌딩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으로 감독의 확신에 찬 답변으로 보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바라보는 방식은 실제 마주하지 않기에 오롯이 배우들이 홀로 표현하는 감정선에 집중한 채 과거 50~60년대 로맨스 드라마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접적인 소통으로 인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애틋함을 더한다. 라디오라는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사연을 주고받고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느리고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낭만적이었던 과거의 향수들이 불현듯 찾아온 운명이 보내는 신호를 믿고 싶은 마음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운명의 사랑에 대한 답변을 나타내는 듯하다. 1990년 ‘볼케이노’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을 보고 캐스팅한 것이겠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확신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연기는 마법과 같은 사랑을 향한 9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을 짙게 한다. 셀린 디온과 클리브 그리핀이 듀엣으로 부른 ‘When I Fall In Love’, 태미 와이넷의 ‘Stand By Your Man’ 또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감성 한 스푼을 더해준다.
③ 1998년 <유브 갓 메일>
전작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애틋함에 안타까웠던 것인지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한 컷에 담아 1998년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로 찾아온다. 지금 시대에 유행하는 독립서점처럼 보이는 길모퉁이 서점과 웹서핑 초기 시절의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사랑스러운 상황들로 러닝타임을 채운다. 문학과 뉴욕을 사랑하는 공통점을 가진 뉴요커 조와 캐슬린이 우연히 채팅룸에서 만나 친분을 쌓지만, 현실에서는 앙숙인 대형 체인 서점 폭스 북스의 사장과 길모퉁이 서점의 사장으로 빚어지는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담는다. 동생 델리아와 함께 집필한 이번 작품에서 자매의 문학적 소양 차이를 두 캐릭터에 녹여낸 듯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조지 버나드 쇼의 ‘캠벨 여사와의 서신 교환’, 영화 대부 등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급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성향과 성격임을 남녀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추억과 낭만을 간직한 작지만 예쁜 서점을 지키려는 감성적인 캐슬린과 따뜻한 마음에도 전형적인 비즈니스 마인드에 차갑게 비치는 조의 설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쫄깃한 밀당을 더욱 마음 졸이게 한다.
익명에 숨긴 채 서로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행동과 매번 울리는 ‘You've Got Mail!’의 알림은 그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미워하지만 깨닫지 못했다는 상황을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결말에 이르러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전환된다. 서로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들이 쌓여 그들이 마주한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감독의 운명론적 이야기는 컴퓨터를 켰을 때 설렘과 즐거움을 주었던 ‘You've Got Mail’ 알림음과 ‘당신이길 바랐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다시 한번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소소한 일상, 누구나 해보는 고민들, 사람들 간의 따뜻한 대화들이 담긴 섬세한 묘사들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통한다는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 중간에 놓인 감독만의 감성을 품는다. 늦게 데뷔해 단숨에 최전성기에 오른 감독으로서 뉴욕을 향한 자신의 진심 어린 사랑을 가장 뉴욕다운 풍경으로 담아낸 실력,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더할 나위 없는 호흡, 꿈같은 사랑이 전하는 특유의 안락함은 이 작품을 최고는 아니더라도 명작으로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운명과 뉴욕을 사랑한 뉴요커
우리가 사랑한 노라 에프론의 필모그래피에는 공통적으로 뉴욕이 배경에 꼭 들어간다는 것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로 운명을 믿는 마음을 담아낸다. 조금 지나간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명 ‘자만추’라는 정해진 소개팅이나 맞선이 아닌 남녀 주인공 모두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연애를 추구한다. 지고지순한 순애보 끝에 다다른 일방적인 구애가 아닌 N, S로 분리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말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서도 일어날 수 있는 남녀의 스파크를 캐치해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믿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운명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스스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내세우는 또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시나리오 데뷔작 ‘실크우드’에서는 진실과 권리를 되찾으려는 노조 대표를, ‘제2의 연인’에서는 자신이 경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상처를 빗대어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커리어 우먼을, 첫 연출 데뷔작 ‘행복찾기’(1992)에서는 판타지 속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던 공주가 아닌 세상과 타협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믿음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으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과 이에 얽힌 운명적 상대를 그린다. 보수적인 90년대의 분위기에서 억압되었던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행동의 제약을 깨부수며 신여성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녀가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던 맥 라이언의 등장이다. 초창기 두 작품의 시나리오로 연달아 만난 메릴 스트립도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연인’에서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앞서 언급한 ‘행복찾기’에서 싱글맘 코미디언을 연기한 줄리 카브너 역시 큰 전환점을 만들지만, 노라 에프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연달아 흥행한 세 작품의 여주인공을 맡아 완벽한 페르소나로 거듭나며 배우와 감독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시절 맥 라이언은 지금도 정석이라 불리는 숏단발컷을 유행시켰고 헐렁한 오버사이즈의 놈코어 룩으로 편안함과 러블리함, 커리어 우먼의 세련미를 동시에 추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맥 라이언이 노라 에프론을 만났을 때’라는 제목 패러디가 생겼을 만큼 그저 귀엽기만 했던 한 여배우를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열었다. 지금의 애인이 진정한 사랑일까라는 고민을 늘 품는 주인공에 어울리는 왠지 모를 나약함과 몽상적인 상상이 어색하지 않은 귀여움은 많은 이들을 판타지에만 존재할 것 같은 운명으로 초대했고 감독이 원하는 사랑은 인생이고, 인생은 판타지라는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고전 로맨스에 대한 적절하고 탁월한 활용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카사블랑카’와 우디 앨런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를 효과적으로 배치했으며, ‘유브 갓 메일’에서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모퉁이 가게’ 리메이크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보이는 허영심에 비친 비현실적인 요소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짜이지만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첫 작품 ‘실크우드’에서는 기자였던 과거 시절처럼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들었고, 이혼 문제를 다룬 ‘제2의 연인’에서는 사회적인 시선과 문제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공통분모를 찾아내 프레임을 씌우고 언제나 자신을 반영시킨 캐릭터를 통해 희망적 판타지의 결론을 통해 웃음과 설렘을 선사한 것이다. 남녀의 성격묘사에서 서로를 공격해 무너뜨리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결말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내는 묘미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이 작용해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다. 그리고 감독에 이르러 공통적으로 내세운 운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주인공의 만남에 마법 같은 느낌을 부여해 대중을 만족시키는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클래식 할리우드의 느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별은 영원히 반짝인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는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요즘이다. 주인공 커플들이 재미를 선사하려고 온갖 멜랑꼴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로맨틱 홀리데이’,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노트북’,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정확히 로맨틱 코미디로 한정 지었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성과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지만, 지금 영화 업계에서 슈퍼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 등 속편, 스핀오프, 리부트라는 명명하에 흥행하면 좋다는 식으로 찍어내는 제작사의 방식도 현실적 어려움을 더한다. 궁극적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진 현실과 DM으로 고백과 이별을 전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과거 로맨틱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스러운 운명의 만남으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며 감정을 이입시켰던 전형적인 로맨스 방식은 이제 꿈에나 나올 법한 일이라 자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이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감성과 레트로라는 문화를 이끌며 다양해진 OTT 서비스를 통해 고전 멜로/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 점에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걸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난 믿고 있어’라는 명대사처럼 시대가 변하며 뻔한 로맨스라 여겨지는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고 저장되며 로맨스 하면 TOP 10에 꼽히는 건 희망적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로맨스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첫사랑처럼 다가온 운명의 두근거림과 가슴 뛰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의 감성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와 세대의 취향은 시시각각 바뀌어 갈지 몰라도 최소한 낭만은 계속 이어지고, 여전히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또 다른 노라 에프론의 등장을 희망하며 사라지지 않을 로맨틱 코미디의 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언제고 다시 시작될지 모를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칼럼식으로 써봤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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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티키타카!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습니다.
배우인 조은지 감독의 상업장편 영화 데뷔작이죠.
주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고, 특히 류승룡 배우의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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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탈 컴뱃>
R등급 액션의 신화, 피니시!
어스렐름과 아웃월드의 최강 챔피언들이 지구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대혈전 모탈 컴뱃.
MMA 격투 선수 콜 영은 대전을 앞두고 선택 받은 전사들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서브제로의 공격을 받는다.
지구와 가족을 보호하고 자기 혈통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모탈 컴뱃 토너먼트에 참가해 죽음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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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괴짜들의 로맨스> 메인 예고편
강박증을 앓고 있는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으로 거울처럼 닮은 서로를 알아본다. 썸에서 사랑 마침내 소울메이트가 된 이들, 우리, 평범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의 세상 안에서 우리는 모두 괴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