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6-29 22:41:39
🎫 6월 4주차 개봉예정작
🏁 브래드 피트가 전설의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로 돌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6월 4주차 개봉예정작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 큰거 왔습니다…
🏁 <F1: 더 무비>
브래드 피트가 전설의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로 돌아왔습니다.
한때 주목받던 챔피언의 화려한 부활과 천재 신예 루키의 대결,
최하위팀의 드라마를 고속 레이스처럼 그려낸 영화인데요
✈️ <탑건> 감독과 제작진이라니, 더 기대됩니다! 🔥
이번 주에는 영화관에서 시원하게 레이싱 할수 있는 기회! 극장에서 놓치면 후회할 것 같네요 🥹
🎬 6월 4주차 PICK!
►<F1 더 무비>
►<네이키드 런치>
►<바다호랑이>
►<후레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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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가족을 품고 사는 이들의 슬픔과 희망!
서서히 죽어가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슬프고 힘든 건 없다.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은 물론, 언제까지 이 지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디즈니 플러스 영화 <썬코스트>는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안고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삶의 한계에 다다른 이들의 민낯을 보여준다. 미안함, 죄책감, 답답함 등으로 얼버무려져 있는 이들의 복잡한 심경 사이로 명확히 보이는 건 슬픔, 현실, 그리고 작은 희망이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10대 소녀 도리스(니코 파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오빠를 돌봐야 하고, 아들을 고통을 마주한지 오래되어 매사 신경이 곤두서있는 엄마(로라 리니)의 눈치도 봐야 한다. 호스피스 병원 ‘썬코스트’로 오빠를 옮긴 이후에도 팍팍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건 파티가 일상인 학교 친구들, 썬코스트에서 만난 아저씨 폴(우디 해럴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오빠와의 이별의 시간은 다가온다.
<썬코스트>는 실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오빠를 향한 로라 친 감독의 뒤늦은 연서이자, 자신의 성장담이다. 감독은 과거 10대 시절 가졌던 마음을 도리스에게 투영시켜, 오빠를 향한 슬픔과 미안함, 평범한 10대의 삶을 살고 싶었던 양가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영화는 전자보단 후자에 무게 중심을 두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리스는 오빠로 인해 삶이 저당잡혔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시청 못 할 정도로 엄마의 압박에 시달리고, 언제나 아픈 오빠가 먼저고, 자신은 뒷전인 상황은 못마땅하다. 아픈 오빠를 위한 희생은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엄마와 세상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도리스의 딜레마는 썬코스트에 입원한 ‘테리 샤이보’ 사건으로 이어진다. 2005년 실제 있었던 이 일은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테리 샤이보라는 여성이 영양 공급 튜브를 제거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숨지게 된 사건이다. 테리 샤이보의 부모는 물론, 당시 존엄사를 반대한 이들과 달리, 법원은 그녀가 정상이었을 때 이런 식의 생명 유지는 원치 않는다는 말했었다며 영양 공급 튜브 제거를 청원한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윤리적 관점이나 남편의 좋지 않은 행실은 제외하고라도 이 사건은 아픈 가족을 품고 사는 이들이 겪는 현실적 고민과 다른 입장을 표방하는 사회의 목소리가 충돌한 계기로 비친다. 아마 도리스는 남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터.
그 마음을 대변하듯 영화는 윤리적, 도덕적 갈등을 떠나 이 비통한 상황을 아는 이는 가족이나 동일한 아픔을 가졌던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극 중 썬코스트 앞에서 테리 샤이보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학교에서 존엄사의 비윤리적 문제에 대해 논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보다 비록 테리 샤이보의 생존권 운동에 동참한 강성 생명윤리주의자이나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폴에게 도리스가 마음의 문을 여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건 성장이다. 감독은 외형이 아닌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학교 졸업 파티가 아닌 유명을 달리한 오빠에게 진심을 전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뒤늦은 고백이자 마음이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다음 발걸음을 뗄 수 있다고 덧붙인다. 더불어 아들의 가느다란 실과 같은 생명줄을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는 엄마 또한 자식을 떠난 보낸 후 비로서 자신과 딸을 바라보며 또 다른 삶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듯 <썬코스트>는 죽음을 앞둔 가족을 두고 모녀 간의 복잡한 관계와 성장 과정에 집중하지만, 그 깊이가 얕은 건 아쉬운 지점이다. 그동안 응어리졌던 모녀간 관계 해결 부분이 약하다 보니 관계 개선이 급작스럽게 되는 부분 등 작품이 지닌 단점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빛을 발하는 건 신예 니코 파커, 베테랑 로라 리니와 우디 해럴슨의 연기다. 니코 파커는 여느 10대 소녀의 말간 모습을 보여주는데, 연기 원숙도를 떠나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라 리니, 우디 해럴슨은 베테랑으로서 감정의 진폭을 조율하며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다. 특히 니코 파커는 이 영화로 제40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미국 드라마)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공: IMDB
평점: 2.5 / 5.0
한줄평: 걸출한 성장 서사는 아니지만 마음에 가닿는 상실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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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고 있나요?
봄바람이 불어오면 삶의 속도를 생각한다. 지난겨울엔 걸음이 빨랐다.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를 꽁꽁 싸매고 어깨를 잔뜩 움츠려 내 몸에서 바람을 맞을 면적을 최대한 줄인 뒤,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따뜻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하면, 늘 비추던 햇빛도 더 따사롭게 느껴져 어깨를 펼치고 조금 느긋하게 걷게 된다.
“목련이 피기 시작했네, 여기 산수유나무가 있었어?”
봄의 따듯한 공기는 차가운 것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입김을 불며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던 겨울과 다르게 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변하는 계절을 즐길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빠르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내 일상의 속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순간이다. 쌩쌩 부는 겨울바람의 속도와 벚꽃이 내리는 속도의 차이처럼 말이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야기’ ‘ 우주비행사’ ‘초속 5센티미터’ 세 가지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1994년 도쿄를 배경으로 1년 차이로 전학 온 타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다. 둘 다 전학생이었던 지라, 학교에서 조금 겉돌지만 둘 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서로 친해진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헤어지고, 둘만의 특별한 추억만 남은 채 시간이 흐른다. 반년이 지난 뒤 아카리는 타카키에게 편지를 보내고 다시 둘은 연락하게 되며 만남을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타카키가 아카리를 만나러 가는 그날, 폭설이 내린다. 열차는 계속 지연되어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 깊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다. 하지만 아카리는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고 마침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2부는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인 ‘타카키’ 이야기다. 보내지 못하는 메시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타카키는 여전히 아카리를 그리워하는 듯하다. 그런 타카키를 처음 만난 중2 때부터 지금 까지 몇 년을 혼자 짝사랑해 온 카나에. 진로도 정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씩 가능한 일부터 하자고 마음먹는다. 카나에가 서핑을 하는 여름바다와 우주선이 쏘아 올려지는 여름 밤하늘이 아름답다.
3부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카리와
도쿄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는 타카키의 30대를 보여준다.
“그냥 일상생활만 해도 슬픔은 여기저기에 쌓인다.”
타카키의 집은 엉망이고, 일상은 공허함과 무기력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창문 밖엔 벚꽃이 흩날리는 봄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열세 살의 둘은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릴 적 소망처럼 함께 벚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벚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으로 남을 두 사람.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더 나아가 관계와 삶의 속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무표정하게 ‘요 몇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대고 싶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향하는 건지도 모르고 거의 협박 같은 마음이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무작정 일을 했고 문득 나날이 탄력을 잃어 가는 내 마음이 몹시 괴롭게 느껴졌다.’ 고 독백하는 타카키의 얼굴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 프리랜서로 일하며 책상에 내려앉은 벚꽃을 보고 산책을 가는 길에 입가에 살짝 지어진 미소로 바뀌는 미묘한 변화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는 ‘나’ 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나’를 만나고, 진짜 ‘나’로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로 생각해 보는 오늘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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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공포영화? 이별영화?
사교(邪教)를 통해 보여준 예술과 종교의 존재에 대한 사유
눈부시게 아름다울수록 공포와 두려움은 커지고 기이한 오컬트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가 느껴진다. 개봉 전부터 로튼 토마토에서 고득점을 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 <유전>과 <미드소마> 모두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미드소마>는 <유전>과 달리 주인공을 불안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한 가정에서 개인으로 옮겨 귀신이나 신이나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요소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여주며 화려하고 이색적인 풍경에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이함에 놓여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영화이다. 전작 <유전>으로도 큰 호응을 얻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미드소마>가 로튼 토마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데에는 수많은 걸작의 탄탄한 레퍼런스와 실제 연출을 위한 감독의 섬세한 연구 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드소마>는 감독이 연인과 싸우고 쓴 각본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영화에서 연인의 관계, 결혼, 이별, 이혼 들을 통한 의존적 관계에 대해 고심한 감독의 노력이 다방면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국내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의 팬임을 밝히고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작의 제작까지 참여 예정인 아리 애스터는 이 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나리오 레퍼런스로 <결혼의 풍경(1973)>, <결혼과 이혼 사이(1981)>, 미장센 레퍼런스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1964)>, <석류의 빛깔(1969)>,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2000)> 등 치밀하게 준비한 덕에 1970년대의 <위커맨(1973)>의 뒤를 이을 2019년의 포크 호러작 <미드소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는 미장센의 대표적인 예로, 영화의 초반부인 대니의 집의 벽에 걸린 축제를 벌이는 듯한 기이한 그림의 액자 등과 같이 많은 이스터 에그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사원이나 제물이 불에 타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감독은 버림받은 주인공이 과거와 연관된 물건들을 태우고 나서야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관계의 파탄을 보여줄 수 있는 전형적인 방식을 차용하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는 대니가 가족을 잃으며 시작하여 새로운 가족(공동체)을 얻으며 끝나는 시나리오와도 맞닿아있다.
아리 애스터의 또 다른 두드러진 연출로는, 다른 대중적인 호러물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남성 제작가의 시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부터 다수의 호러물, 스릴러에서 관객의 몰입도와 교감 신경 자극을 위하여 성적 긴장감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미드소마>의 경우 ‘일반적인’ 성적 긴장감을 조성할만한 요소들이 다수 있으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러한 감독의 시각의 영향으로 감독의 성장 배경 및 개인사를 고려해 볼 수 있는데, 이성애와 권력의 관계를 뒤집어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전 단편작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에서도 보이듯 동성애와 종교적으로 받은 억압이 감독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종종 삐뚤어진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감독은 관객들이 밝고 화려한 호르가 구성원들의 의식에 함께 빠져들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감독이 정말로 전하고자 했던 장면은 바로 대니가 울자 함께 더 크게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일 것이다. 주인공 대니가 겪은 어려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대니의 상실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대니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지만 울고 있는 대니의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 중 후자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주인공을 철저하게 상실로 인한 결핍 속에 배치한 뒤 서서히 권력을 부여하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특이한 오컬트 영화로 포장했지만 속은 대니의 이별 영화인 셈이다. 예술이라는 기술이 하는 능력은 소외와 결핍을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것이 종교이다. 기이한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그들의 사이엔 유대가 생기고 공감을 자아내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따라서 영화라는 예술을 이용하여 종교의 능력을 보여준 것 자체가 예술로써의 역할까지 완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종교가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사유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장센적인 측면에서, 장르적 특성에서, 컬트 영화사의 한 작품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니와 함께 울어주는 호르가 구성원들의 장면이다. 다양한 흥미로운 요소들로 꾸며진, 속은 제대로 된 알맹이 덕에 영화는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평을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오컬트 영화 이상으로 결핍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작품에서 보여줄 감독의 시선이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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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질서에 기우는 정의의 병폐 속 무기력한 개인
끔찍한 비명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바깥과는 달리 고급 저택에서는 호화로운 결혼 파티를 펼치고 있다. 녹색과 빨간색으로 점점 물들고 있는 세상은 내부에 신호를 주지만 그저 불안의 기우일 뿐이라고 넘긴다. 한편 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마리안느는 유모를 돕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마리안느가 나간 사이 들이닥친 시위대는 집 안의 곳곳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믿었던 집안의 피고용인들이 합세해 혼란과 피바람이 몰아친다. 이유 없는 폭력의 시위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참혹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또다시 절망을 바라보며 새 질서를 거듭한다. 하지만 새 질서를 가져올수록 부패와 부조리함이 반복될 뿐, 더욱 혼란에 빠지며 폭력과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수많은 혼란 속에서도 다른 계급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마리안과 마르타 모자뿐이다.
영화의 무자비한 폭력에 어떤 사회에서도 공평함을 발견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체제 변환 이후의 모습이 아닌 파국 이후의 새 질서를 그리면서 최악을 생각했지만, 그 보다 더 최악인 순간에서 끊임없이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고 배신과 폭력의 연속은 체제 변환의 전쟁일 뿐이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는 또 다른 대비를 불러와 거꾸로 비치는 제목이 머지않은 미래를 비추듯 관객을 비춘다. 부패가 청산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대신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 이 말과 함께 그저 이름뿐인 전쟁 같은 새 질서가 펼쳐진다.
*멕시코의 국기는 초록색, 하얀색,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엔 멕시코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초록색은 독립과 대지, 하얀색은 순결과 통일, 빨간색은 백인과 인디오, 메스티소 등 인종의 통합과 국가 독립을 위해 바친 희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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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말없이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
본 글은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없이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
진정한 사랑은 모두 해피엔딩일까?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에서는 사랑에 빠진 두 인물이 고난 과 역경을 이겨내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다. 이와 같이 사랑이 진정하다면 결국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완성되어야 하며, 완성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까? 이 물음에 <헤어질 결심>은 아니라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과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서래’의 이야기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해준’이 용의자 ‘서래’에게 관심을 느끼며 일어나는 일이다. <헤어질 결심>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에서 벗어나 수사극의 틀을 사용한다. 사랑의 동기와 사랑의 행위를 담기보다는 사건의 동기와 사건의 전말을 담는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사랑을 전달하지 않는다. 행동과 선택, 이별로 사랑을 표현한다. 결국,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며, 완성되지 못하는 미결의 형태로 남는다.
그럼에도 관객은 <헤어질 결심>을 보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런 <헤어질 결심>은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강렬하면서도 안개처럼 모호하게 표현한다. 사건 같으면서 사랑같은 일들이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멜로 장르와 수사 장르의 시너지
<헤어질 결심>은 수사물과 멜로물이 겹쳐있다. 두 장르의 결합은 둘의 사랑을 모호하게 만들 면서도 입체적으로 만드는 포인트였다. 영화는 초반부터 수사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형사와 살인사건 그리고 용의자로 구성된 전통적인 수사물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조사하고, 취조하는 과정을 따른다. 이와 동시에 멜로물도 진행된다. 멜로물에서는 두 인물이 만나 서로를 알게 되며 사랑에 빠진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가 만나 취조와 조사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며 사랑에 빠진다. 수사물의 구조와 멜로물의 구조가 겹쳐 진행되며 둘의 관계를 깊어진다.
‘해준’은 올곧은 형사이다. 부하에게 존경을 받으며,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지구’와의 취조에서 알 수 있듯 신사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이런 형사이기에 용의자인 ‘서래’를 계속 의심한다. 여기서 멜로물의 주인공이기도 한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며 계속 생각한다. ‘서래’를 감시하며 ‘서래’에 대해서 상상한다. 동시에 범인일 가능성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기도수’ 사건이 마무리되고 ‘서래’와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던 때라도 월요일 할머니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올곧은 형사로서의 태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형사의 태도로 결국 ‘서래’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해준’은 ‘서래’를 체포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지켜오던 올곧은 형사의 자부심보다도 ‘서래’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래’를 지키고, 형사인 자신의 붕괴를 선택한다. 형사로서 자부심 있는 사람이 사랑으로 붕괴되는 모습은 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큰 사랑은 단순 멜로물이 아니라 중반부까지 수사물로 쌓아온 형사 ‘해준’의 캐릭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형사 ‘해준’이 보여주던 수사극의 틀은 영화 초반부터 주 장르로 이어지며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해준’의 사랑이 이를 엎고, 수사를 망치게 되며 멜로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다.
두 장르를 활용해 사랑을 보여준 것은 ‘해준’만이 아니다. 이포에서 이루어지는 2부에서는 ‘서래’가 수사물에서 용의자의 역할로 사랑을 보여준다. 부산에서의 ‘서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서래’는 자유를 위해 살인을 하고, 범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사인 ‘해준’의 마음을 이용했다. 목적한 바를 이룰 만큼 똑똑하고 강한 인물이다. 그런 ‘서래’가 이포에서는 ‘해준’을 위해서 살인을 벌인다. 부산에서의 ‘서래’는 수사물에서 악의 축인 범인의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심지어 수사를 빠져나왔다. 그런 ‘서래’가 사랑을 느끼고는 다시 수사망으로 걸어간다. 사랑으로 수사물의 캐릭터가 멜로물의 캐릭터에게 밀려난 것이다. 이포에서는 ‘해준’이 다시 형사 로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서래’와의 취조와 조사를 통해 다시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바뀐다. 의심하고 경계하지만, 호미산에서의 ‘서래’의 고백과 스마트워치 녹음본을 들으며 ‘해준’은 ‘서래’를 놓지 못한다. ‘해준’이 형사로 사건을 알아감에 따라 ‘서래’의 사랑을 찾게 된다. <헤어질 결심>의 요소들은 따로 보았을 때는 멜로 이야기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사랑의 동기, 행위가 아닌 사건의 동기와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인물이 서로를 위해 수사물 속 자신의 캐릭터를 붕괴시키고, 희생하는 모습이 결합하여 사랑으로 보기 어렵던 요소들은 사랑으로 이해된다.
진정한 사랑, 거울 구조와 이항대립
<헤어질 결심>은 1부 부산에서의 ‘해준’의 사랑과 2부 이포에서의 ‘서래’의 사랑을 거울 구조로 보여준다. 1부에서는 사건 발생, 관찰, 사랑, 진실 순으로 진행된다. ‘기도수’의 사건으로 ‘서래’를 알게 되고, ‘서래’를 관찰하며 스마트워치에 녹음한다. 그러다 ‘해준’은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그 후 진실을 알게 되고 이별을 맞이한다. 2부에서는 ‘서래’가 ‘해준’의 거울처럼 반대로 이어간다. ‘서래’는 진실을 말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다. ‘서래’는 ‘해준’처럼 스마트워치를 통해서 ‘해준’에 대해 기록하고, 이포에서 ‘해준’을 관찰한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해준’과 ‘서래’는 거울 구조로 서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구조는 ‘해준’이 말한 것처럼 ‘해준’과 ‘서래’가 동족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해준’이 ‘서래’ 를 사랑했던 것처럼 ‘서래’도 ‘해준’을 사랑하고 있음을 서사 구조의 유사함으로 드러내고 있다. 닮아 있는 둘을 보여주면서 사랑한다는 말 하나 없이도 그들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가장 쉽게 사랑을 드러낼 방법은 베드신, 결혼과 같은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일부러 더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다. 완성된 사랑과 스킨십, 결혼 대신 미결인 사랑과 범인과 용의자의 관계, 불륜이라는 관계를 내세웠다. 어려운 관계의 사랑은 사랑을 표현할 때 조심스럽게 만든다. 잘못 다룰 시에는 얕은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은 더욱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섹슈얼한 연출을 사용하지 않고, 거울 구조를 통해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드러냈다. 거기다 둘은 관찰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서로의 스마트워치 녹음본을 듣는다. 서로의 관찰을 다시 바꾸어 듣는 모습은 단순히 닮은 것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며 닮아가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와 다른 인물과의 대비로 <헤어질 결심>의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안과 ‘해준’의 관계와 ‘서래’와 ‘해준’의 관계는 섹스로 대조된다. ‘정안’과 ‘해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계를 가지기로 약속했다. ‘정안’은 그 약속에 만족감을 느끼고, 관계를 통해 ‘해준’과 행복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안’은 섹스가 서로의 관계가 문제없음을 보여준다고 느낀다. 그런 ‘정안’은 ‘해준’과 대화에서 서로에 차이를 이야기한다. 정안은 이과이고 살인과 피가 없어도 행복하지만, ‘해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해준’과 ‘서래’는 단 하나의 키스신 외에는 섹슈얼한 연출이 드러나지 않는다. 둘은 대화와 시선을 통해 관계를 드러낸다. ‘해준’은 ‘서래’에게 같은 동족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둘은 유사한 점이 많다. 말씀보다는 사진,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 ‘해준’은 ‘서래’와의 대화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보인다. ‘서래’는 ‘해준’의 사건에 관심을 가져준다. 함께 사건 이야기를 하거나 ‘해준’의 일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처럼 두 관계는 대조됨을 알 수 있다.
육체와 정서의 대조뿐 아니라 완성과 미결의 대조이기도 하다. 정안은 ‘해준’과 결혼한 사이이며, 섹스하는 사이이다. 결혼과 섹스는 로맨스 장르에서 사랑의 완성, 이어짐을 상징한다. ‘서래’는 결혼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육체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해준’은 두 관계 모두 파괴되지만, ‘서래’와의 관계를 우선했다. 두 관계의 비교로 <헤어질 결심>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랑이 정서적인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정서적인 사랑만 있을 때보다 이항 대립 되는 관계를 통해 말하고자 한 사랑을 돋보이게 했다.
‘서래’의 관계에서도 <헤어질 결심>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서래’의 2명의 남편은 ‘서래’를 존중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위해 ‘서래’를 희생하도록 만든다. ‘기도수’의 경우에는 ‘기도수’의 소유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문신을 하게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위해 ‘서래’를 폭행한다. ‘임호신’의 경우는 ‘서래’의 흡연을 금지시킨다. 호통치며 나가서 피라고 하는 ‘임호신’의 모습은 설득이 아닌 일방적인 금지이다. 이처럼 ‘서래’는 2명의 남편에게 희생되었다. ‘서래’는 그 두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해준’은 ‘서래’를 존중한다. ‘서래’의 흡연을 금지시키지 않으며, ‘서래’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준’은 ‘서래’를 위해 희생했다. 평생 지켜오던 형사의 자부심을 버리고 ‘서래’를 지켜냈다. ‘서래’는 그 순간 사랑을 깨닫는다. ‘해준’과 ‘기도수’, ‘임호신’의 대조를 통해 <헤어질 결심>이 보여주고자 하는 희생적인 사랑이 보인다.
이렇게 <헤어질 결심>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두 가지의 개념을 통해 <헤어질 결심>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랑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은 상반되는 것들의 관계, 즉 이항 대립을 통해 차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헤어질 결심>이 제시하는 대립을 통해 ‘서래’와 ‘해준’이 선택한 정서적이고, 미결인 사랑에 대해 인식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 마지막엔 ‘서래’의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을 통해 이전에 사건들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 후 녹음본을 통해 이전부터 인식되던 사랑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사랑의 징조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사용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체계적으로 짜인 영화이다. 또 수사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복선을 통해 촘촘히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복선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월요일 할머니의 “월요일이 되길 바라면 가끔 정말로 월요일이 빨리 와”는 ‘서래’가 사용한 트릭에 대한 복선이었다. 거친 ‘서래’의 손, 함께 맞춘 월요일 할머니와 ‘서래’의 폰도 복선으로 역할 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복선을 통해 ‘해준’과 ‘서래’의 사랑을 보여줬다. 사랑한다는 말대신 인물의 습관과 화면전환을 통해 인물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아내와 관계 후 ‘해준’의 모습은 곰팡이, 엑스레이 화면이 전환되면서 다시 보인다. 곰팡이의 위치와 ‘해준’의 엑스레이 화면이 겹치는 부근은 심장 근처이다. 대사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해준’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또, ‘해준’이 가진 ‘서래’에 대한 마음은 ‘해준’이 ‘서래’ 남편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복선 중에서도 '해준'이 '서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에 가깝다. ‘해준’이 무의식적으로 ‘서래’의 남편들을 따라 하며 ‘서래’의 남편이 되고 싶은 상태를 보여준다.
질곡동 사건으로는 <헤어질 결심>의 두 주인공의 결말을 암시하기도 했다. 질곡동 사건의 범인 '홍산오'는 '오가인'을 너무 사랑했기에 살인을 저지른다. '홍산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감옥에 가는 일을 결심하고 벌인 일이다. '홍산오'는 결국 잡히기 직전 죽음을 택한다. '홍산오'는 죽음으로 ‘해준’을 피했고, 결국 ‘해준’은 사건을 완결시키지 못했다. 또한 '오가인'과 '홍산오'의 사랑도 완성도, 실패도 아닌 모습으로 남겨졌다. 이런 '홍산오'의 모습은 ‘해준’과 ‘서래’ 둘과 닮았다. '홍산오'의 행동으로 이포에서의 ‘서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죽을 만큼 사랑하는 ‘해준’을 위해 ‘서래’는 살인을 벌이고, 사라짐으로 ‘해준’에게 해결되지 못한 사건으로 남겨진다.
촘촘히 짜인 미결
<헤어질 결심>은 거울 구조와 이항 대립 관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미결의 사랑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복선을 통해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1부와 2부로 나뉜 사건들을 연결한다. 장르를 결합하여 서사를 강화한다. 심층에 깔려있는 촘촘한 구조들로 관객이 살인 사건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사랑을 느끼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의 구조는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계속 대칭되고 대조된다. 관객이 <헤어질 결심>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이라는 표현 대신 상황을 통해 ‘해준’처럼 고민하게 만든다. ‘진실된 사랑일까?’, ‘이게 맞는 행동일까?’, ‘서래와 ‘해준’은 같은 마음일까?’. <헤어질 결심>은 이렇게 이어진 생각을 결말에서 ‘서래’의 대사를 통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이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명확한 말을 앞세우지 않고 안개처럼 흐릿하게 사랑을 찾아다니게 한다. 둘의 대화와 마음을 사랑이라고 확실히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흐릿함 속에서 무엇이 대조하고, 대칭시켜 사랑이라는 존재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런 영화의 구조는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와 비교할 때는 새롭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 사랑과 비교하면 새롭지 않다. 사랑은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은 영화의 구조처럼 끊임없이 대조하고 내면의 구조를 따라가며 사랑을 찾고자 한다. ‘서래’처럼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해준’처럼 고민하기도 한다. 둘의 사랑처럼 사랑이 ‘헤어질 결심’이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개념에 가장 대표적인 기표 ‘사랑’을 가려서 우리가 계속 찾아다니던 사랑의 의미를 들여다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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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걸 더 믿으세요?
본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어떤 것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달라진다. 물론 그 믿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나씩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고 또 그것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완성된 믿음은 어떤 누가 와도 깨기 힘들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믿음 안으로 주변사람이 같이 들어오길 원한다. 그것에 같이 공감하고 같이 이야기해나가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누군가와는 충돌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는 더 가까워진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확고해 보이지만 개개인마다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일 것이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해당 종교에 대한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저 무의미한 정보와 이론일 뿐이다. 서로 강하게 충돌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상대방의 믿음에 대한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어떤 걸 봤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그 믿음이 모양은 모두 다르다. 그것이 믿음의 크기를 재는데 큰 영향을 준다.
몽유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 현수와 수진
영화 <잠>에 등장하는 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신혼부부다. 영화 초반 이들이 가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일반적인 생활에 대한 믿음은 거의 비슷해 보인다. 그들의 집 거실 벽에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라는 글귀가 붙여져 있다. 그 글귀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해서 자신이 하는 일과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해가고 있다.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부의 평범한 일상은 어느 날부터 현수가 몽유병 증상을 보이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현수는 밤에 일어나 앉아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돌아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한다.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의식이 쉽게 깨어나지 못하고 그걸 보는 임산부 수진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자면서 피가 흥건히 나올 때까지 얼굴을 긁고 생고기를 먹거나 키우는 강아지를 괴롭히는 현수의 모습은 이 부부사이에 작은 틈을 만든다.
수진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남편 현수에게 수면클리닉을 권하면서 몽유병, 그러니까 질병으로서 바라보고 그것의 치료법을 찾는다. 현수는 최대한 아내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집밖으로 나와 차에서 자는 등 떨어져서 자는 방법을 시도하지만 수진은 어쨌든 피하지 않고 '둘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면서 다시 현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영화는 영화 초반에 이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깝고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가까워 보이고, 수진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의 증거로 생각된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카메라에 아주 평범하게 담긴다. 평범하게 담긴다는 의미는 카메라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의심과 공포가 없다는 뜻이다.
수진의 출산 이후, 조금씩 깨지는 두 사람의 믿음
하지만 영화 중반, 만삭이었던 수진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뀐다. 아이를 무사히 키워내야 하는 이들에게 현수의 몽유병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 공포를 더 크게 느낀 건 엄마가 된 수진이다. 현수의 몽유병으로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야 했던 수진에게는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카메라는 수진의 얼굴을 조금 다른 각도로 비추기 시작한다. 그늘이 져 보이는 옆얼굴을 비춘다거나 흔들리는 눈동자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등, 수진이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큰 변수 중 하나는 수진의 엄마(이경진)다. 영화 초반 수진의 엄마는 자신이 잘 아는 무당의 부적을 수진에게 전달하며 액운을 없애는 것이라 침대 밑에 붙이라고 한다. 그때 수진은 그것에 대해 무척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수진은 무당이나 미신을 믿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그건 현수도 마찬가지고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진과 현수의 믿음은 동등했다.
현수의 출산으로 아이가 생기면서 그가 가지게 된 공포심은 그 일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만들게 된다. 의사의 처방으로 받은 약도 바로 효과가 없었고, 현수의 몽유병 증상은 오히려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 수진의 믿음은 다른 쪽으로 번져간다. 미신의 영역까지 퍼져간 수진의 믿음은 현수를 질병을 앓는 환자가 아니라 귀신에 씐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수진과 현수의 믿음은 순식간에 흔들리면서 큰 폭으로 벌어진다.
그때부터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수진과 현수의 말 중에 어떤 것을 더 믿을 것인가? 현수는 꾸준히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좀 더 센 약을 처방받은 이후 몽유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반면 수진은 몽유병이 발현되지 않은 그 짧은 기간 동안 미신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 <잠>은 이 두 사람의 의견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누구 말이 맞는지 끝까지 고민하며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은 다른 의문도 품게 된다. 과연 이 두 사람 간의 믿음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관객에게 어떤 것을 믿을 건지 질문을 던지는 영화
수진은 영화에서 가장 큰 폭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피해자고, 다른 쪽으로 보면 빌런이다. 수진의 믿음은 현수의 몽유병과 엄마가 소개한 무당의 영향을 받아 뜻하지 않는 믿음으로 변화한다. 특히나 완전히 믿음이 변한 후반부, 화면에 비치는 수진의 모습은 무섭다. 수많은 부적들에 가려진 빛이 붉게 보이고, 그 붉은빛이 수진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며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배우로서 맑고 밝은 눈빛을 가진 정유미의 얼굴에서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광기를 느낄 수 있다. 그 광기는 영화 후반부를 완전히 붉게 덮어버린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건 수진이지만 현수 역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기괴한 몽유병을 앓고 있긴 하지만 이성적인 에너지를 꾸준히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수진의 광기 어린 에너지에 완전히 잡아먹히고 만다. 영화 전체의 서사가 광기에 잡아먹히는 이성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도 관객은 선뜻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이성적인 시각이 맞는지, 미신적인 시각이 맞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이성적인 형사와 직감적인 형사가 서로 경쟁하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관객은 답을 찾지 못한다.
영화를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과거 봉준호 감독의 연출팀에서 같이 일했던 경험이 있는 신인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인 <잠>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가까운 두 사람의 믿음이 깨지고 멀어졌을 때 벌어지는 일을 무척 공포스럽고 실감 나게 보여준다. 특히나 다양한 조명과 여러 카메라 각도로 잡히는 인물의 얼굴이 무척 다채롭게 화면에 담겼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 중 가장 흥미롭고 무서운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 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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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화는 씨네랩 측으로부터 초청받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어느 노동자들의 사랑 이야기, 개와 기차, 아트시네마 (짐 자무쉬) Chapter 2 사운드의 영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찰리 채플린 00:00 아키 카우리스마키 01:40 노동자들 03:23 개와 기차 04:52 아트시네마 06:25 사운드의 영화 07:17 러시아, 우크라이나 07:49 찰리 채플린, 결말해석 09:00 별점 및 한 줄 평 09:2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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