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22 10:58:40
영화에서 마주친 연극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봅시다

영화와 가장 비슷하고도 다른 예술,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에디터는 가장 먼저 ‘연극’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연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이곤 합니다.
무대 위를 오르는 배우를, 글을 적어내는 작가를, 극을 완성시키는 연출을 비추기도 하죠.
그럼,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볼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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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침 정도는 고장난 채로
DIRECTOR. 조희영
CAST. 공민정, 정보람, 정회린, 류세일, 유의태, 김희상, 이진하 외
SYNOPSIS.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정호. 정호의 애인 수진. 정호를 짝사랑하는 인주. 정호의 옛 애인 유정. 수진은 정호 모르게 훈성과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고, 인주는 시한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호에게 품은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유정은 정호의 자살 시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애인 우석과의 관계가 위태롭기만 하다. 그런데, 정호는 어디로 갔고 정호를 먼저 만난 건 누구인가? 그 정호는 정호가 맞는 걸까? 보이는 것과 믿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이야기들.
POINT.
✔️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이어지는 땅> 등을 연출한 조희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홍상수 영화 스태프로 활동했다는데, 확실히 조희영 감독의 작품을 보며 홍상수 영화가 떠올랐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자기 색깔을 분명하고 단단하게 찾아가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전작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안정적이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 서울 배경의 사진엽서집을 보는 듯 아름다워요. 이민휘 음악감독의 손길까지 더해,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로 손꼽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반부에서 한적한 서울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그것도 만족스러웠어요.
✔️ 특히나 마포구 일대를 배경으로 예술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같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주소가 마포구로 나와서 조금 웃겼습니다(positive).
✔️ 영화가 길고 등장인물이 많지만, 천천히 젖어 들어 보다 보면 관계도가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잘 그려집니다. 영화에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성 안에서 나 개인의 경험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8월 27일 (문화의 날!)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신 다양한 인물을 펼쳐 보여주고,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작은 퍼즐 조각처럼 이야기를 떠 나른다. 그 세밀한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는 더없이 분절된 영상들처럼 보이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이내 연결되어 가고, 인원이 좀 많긴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도보다 훨씬 덜 복잡하기에.
느긋하게 인물들을 따라가는 전반부는 산책하듯 보았다. 필름 톤으로 보정된 도시의 골목골목, 일상의 공간과 소리와 소품들을 가만히 따라가는 시간이 꼭 휴식 같았다. 게다가 인물들의 공간은 무엇 하나 튀지 않고 일정한 결로 곱게 정돈되어 있다. 커피가 든 잔, 무심하게 쌓인 책 더미, 자잘한 오브제, 그들의 작업 도구들. 생활 노동이라는 느낌보다는 고아한 예술의 느낌이 드는 공간에서, 인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게다가 그 공간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주어진 인물들 외에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텅 빈 공간이다. 길을 몇 번씩 돌아다녀도 앉을자리 하나 찾기 힘든 서순라길도, 연남동 인근의 식당도, 예쁜 카페에도. 다른 손님이 없고, 딱 필요한 인물들과 적당한 일상음만 있는 서울. 나는 마치 서울을 배경으로 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시간 지나 들여다본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인물들은 기억을 끄집어낸 대화를 몇 번 하는데, 예컨대 영호의 친구에게 의자를 주었다는 노인 이야기는 실화와 과연 얼마나 닮아있을까? 영호의 기억에서 얼마나 각색됐을까? 또 어떻게 변형되어 흘러갈까?
꿈결 같기도 지난 기억 같기도 한 영화. 그만큼 현실 서울과 살짝 거리감을 두고 오롯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현실감이 몰려온 건 대화하는 훈성과 수진 뒤로 연신 차가 오갈 때였다. 도시의 소음이 비로소 들어오고, 그들의 대화는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두 사람의 감정선을 의심하게 한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내가 이해한 모양과 같은가? 어쩌면 정반대였을 수도 있다. 꿈과 현실, 사랑과 거짓, 이해와 오해, 본 것과 못 본 것. 분명하게 다르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해일까 오해일까
살다 보면 악다구니와 악다구니가 맞부딪치는 갈등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많은 갈등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과 지극히 상식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입장이나 정보량이나 시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리저리 퉁퉁 튀면서 크고 작은 오해로 변주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자신이 병으로 시한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인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주영에게, 또 선배에게 가 닿으며 오해는 불어난다. 자세히 묻지 않겠다는 주영의 말은 본인 말마따나 배려지만, 어쩌면 무관심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선배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말아요' 한 이야기는, 오해일지 이해일지 몰이해일지 모를 판단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배려하기 위한 거리 두기가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다정하게 굴겠다고 좁힌 거리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훅 다가오기도 하는 것. 결국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 과정을 몇몇 사람들의 관계에서 실험하듯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하루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해와 오해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 것
이 영화에서 이따금 등장했다 사라지는 검은 개를,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다. 누군가는 "넌 못 봤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호기심을 거두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개가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검은 개는 자주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극 중에서 사라지는데, 영화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 또한 어떤 이는 검은 개를 계속 신경 썼을 테고 또 어떤 이는 금방 잊었을 것이다.
검은 개는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 또한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재앙과 불운으로서의 죽음, 또 다른 경우에는 영혼의 안내자, 사후세계의 인도자 같은 느낌의 안전한 죽음이다. 죽음이란 것 자체가 인간에게 재앙으로도 안식으로도 표현되는 것처럼. 꼭 오해와 오독을 거치지 않더라도, 수많은 단어들이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초침이 고장 나도 시계는 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 피어나는 오해는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불륜과 고백과 시한부까지, 단어만 보면 아침드라마 뺨치는 도파민이 완성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엄청난 충격을 안기는 일은 없다. 마치 고장 난 초침처럼 툭, 툭 일상 감각을 두드리지만 그럭저럭 그냥저냥 일상에 녹아들어 엉킨다.
초침의 고장은 눈치채기도 쉽지 않고, 눈치채더라도 이 시계가 대체 언제부터 고장 나 있던 것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실은 우리 사이의 수많은 대화가 그렇다는 걸,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배우고 또 달라지며 나아져 간다.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어느 순간 어느 감정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두 사람의 세계와 여러 사람이 있을 때의 세계는 또 다르고, 근거리에서 보는지 원거리에서 보는지에 따라 또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똑같은 사건도 순서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예술이 도둑질이 될 수도 있고,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며, 사랑이 거짓이 되기도 한다. 본 것이 못 본 것이 되기도 한다.
결국 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경계를 뽀얀 햇볕으로 흩어 본다. 초침 정도는 고장 난 채로, 모든 걸 선명하게 안다는 감각 없이, 조금은 부유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인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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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당이다, 나 신내림 받았다, 왜 말을 못해!
줄거리
광호는 엘리트다. 엘리트지만 건달이다. 그러니까, 엘리트 건달이다. 촉망받는 이인자로서 동생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인 광호는 거침없고 카리스마 넘친다. 그런 광호를 시샘하는 태주는 건수를 낚아채려다가 실패하고, 분노에 못 이겨 칼을 휘두르게 된다.
광호는 '건달답게' 손으로 칼을 잡아 막았고, 칼에 베인 흉터 때문에 광호의 운명선이... 바뀌었다? 그날 이후, 남들에겐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게 된 광호는 무당을 찾아갔다가 신내림을 권유받는다.
"미쳤어?"
큰소리쳤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는 신내림을 받는 방법밖에 없다니. 결국 광호는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다. 하지만 건달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낮에는 무당, 밤에는 건달.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감상 포인트
1. 캐릭터 구성이 잘 어우러져서 몰입도와 흡입력이 좋다.
2. 옛날 작품이라 전개나 반전 요소는 조금은 진부하지만, 코미디로 즐기기엔 충분히 재미있다.
3. 오글거리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조금 힘들 듯하다.
감상평
최근에 소설 구상을 하다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오랜만에 다시 영화 [박수건달]을 보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공포, 귀신, 좀비... 등등. 아무튼 그런 걸 좋아하니 차라리 나도 그런 류의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뭣같이 멸망했기 때문에 쓰진 못했지만.
영화 [박수건달]은 개봉했을 당시 영화관에 가서 직접 관람했던 작품이다. 그때는 내가 약간 거만한 병에 걸려 있어서 뭐든지 깎아내리는 습관이 있었다. 매우 안 좋은 습관이라서 요즘은 그렇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무튼 그때는 내용이 너무 뻔하고 결말도 진부하다는 식으로 평을 했는데, 지금 보니 매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정직한 작품이라 그런 뻔함이 마음에 든다.
코미디니까. 뻔함과 뻔뻔함을 모두 가져야만 코미디가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소재나 전체적인 흐름으로나 영화 [박수건달]은 더할 나위 없는 코미디지만, 사람들 기억에 남을 만큼 웃긴 장면은 바로 쿠키영상에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쿠키 영상을 봐야 이 영화를 다 봤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조진웅 아조씨는 대체 왜 이렇게 등장하는 작품이 많은 건지. 이제는 주연으로 나오는 작품도 많지만, 예전에는 정말 특별출연이나 조연으로 많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뚱뚱한 아조씨로 솔약국집 아들들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유명한 배우가 될 줄은 몰랐지. 하여튼 내 기준 중년 아조씨 중에 가장 매력적인 아조씨.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아쉬운 점부터 말하자면, 결말 부분에서 미숙(정혜영 배우)과 수민(윤송이 배우)이 울고불고 하는 장면은 조금 항마력이 딸린다. 이런 영화에서는 꼭 필요한 역할이지만, 엄마와 딸 간의 연결점을 너무 급하게 주었다고나 할까. 초반부에는 미숙의 딸이 수민이라는 걸 숨기려고 하다 보니 암시조차 줄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영화 중후반부에서 급작스럽게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이문세의 [소녀] 노래를 부르는 거나, 엄마를 세 번 안아달라 거나. 이런 장면들은 초반부터 조금씩 쌓아와야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감정선을 쌓다 보니 그만 신파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 안타깝다. 어차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관계성이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탄탄하게 쌓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이제 진짜 제법인데요?"
"그럼요. 벌써 열다섯 개도 넘게 떴는데."
광호(박신양 배우)의 선택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병실에서 털실로 목도리인지 스웨터인지를 열심히 뜨고 있을 뿐이다. 그런 광호에게 '건달이냐 무당이냐, 무당이냐 건달이냐' 하는 선택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다 필요 없더라. 죽도록 용써봐야 옷 한 벌이다. 나중에 니는 무슨 옷을 입고 갈 낀데?"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예민하다.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스를 것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나머지 한 가지 선택지를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바로 운명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것. 광호는 아직 자신이 어떤 옷을 입을지 모른다. 하지만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 대신 내가 직접 스웨터를 떠서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운명에 부딪히거나 거스르거나 굴복하라거나. 영화 [박수 건달]은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운명을 만들어 가라는 포근한 위로를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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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현실이지? 영화 그런 거 아니고?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개봉일 : 2021.12.08 (극장 선공개 / 넷플릭스 2021.12.24.공개)
감독 : 아담 맥케이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티모시 샬라메,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쿠키 영상 : 2개
이거 현실이지? 영화 그런 거 아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영화의 포스터에 적힌 이 한마디가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작중에 혜성 충돌 상황을 부정하며 “이거 현실이지? 평행 우주 그런 거 아니고?”라고 묻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도 그렇게 묻고 싶다.
“이거 현실이지? 영화 그런 거 아니고?”
미리 만나본 <돈 룩 업>, 화려한 라인업으로 시선을 빼앗다.
넷플릭스 공개 전, 넷플릭스 영화 6편을 미리 극장에서 만나보는 릴레이 개봉의 마지막 타자 <돈 룩 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티모시 샬라메의 촬영 사진 한 장으로 이미 내 마음을 깨부셨던 이 영화. 최근 글을 쓰는 영화마다 ‘소식을 듣고 언제부터 기대했던 영화’라고 언급하다 보니.. 대체 나는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 거지..? 살짝 웃기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도 정말 기대했다. 거기에 이런 기획전을 통해 집이 아닌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다니. 횡재가 따로 없다 생각했다.
위에 언급한 세 배우를 제외하고도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론 펄먼,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등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인물들로 가득 찬 라인업에 넷플릭스 자본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고, 각 인물들의 매력을 잘 살려 어떠한 캐릭터도 1회 성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적절히 배려한 연출자의 균형감에 박수가 나왔다. 거기에 재미까지 챙기다니,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의 캐릭터와 연기가 정말 좋았다. 내가 알던 그녀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잠시 뒤로 미뤄둔 채 영화를 봤을 만큼 말이다. (캐릭터 자체는 호감형이 아니었지만..)
비디오 게임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 또는 우스울 만큼 현실과 너무 닮은 이야기
<돈 룩 업>은 지구로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혜성이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중심 소재를 이용한 사회 비판 블랙코미디다.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과 교수 랜달 민디와 그의 제자 케이트 디비아스키는 여느 날처럼 천체를 관찰하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게 된다. 혜성의 존재는 처음엔 놀라운 발견, 축배를 들어야 할 소식이자 축복이었으나, 혜성의 좌표와 속도, 포물선의 모양 등.. 모든 정보를 모아 계산해 보니 혜성은 축복이 아닌 대재앙 그 자체였다.
랜달과 케이트는 이 소식을 알리고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온갖 아이러니와 코미디적 요소들이 발생한다. 지구 멸망.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혜성이라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로 멸망이라니. 인류 최대의 위기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어디, 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당장 옆에 앉아있는 가족도, 친구도 나와 생각이 다른데.. 이 지구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한곳으로 모일 리가 없다. ‘지구 멸망’의 위기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온갖 우습고도 열이 뻗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디선가 본듯한 상황들
“아무리 그래도 멸망이라는데.. 진짜 이럴까?”싶다가도 너무 사실적이라, 번뜩 “아 이거 현실 아닌가?”싶은 생각도 든다. 지구 멸망은 아니더라도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각자 분열하고 휩쓸리고 또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우스운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돈 룩 업>을 보며 답답하기도, 너무 우스워 웃음이 픽픽 나기도 했다.
멸망 앞에서 손발을 벌벌 떨며 세상에 소리치는 과학자 랜달 민디와 케이트 디비아스키, 오글 소프 박사. 그리고 이들의 말을 듣지 않고 되레 이용하려는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 사업가들까지. 커다란 언론들의 싸움에 사람들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길을 정하고, 그 위에서 힘껏 휩쓸린다.
다가오는 위험을 바라보자는 사람들과 그것 또한 거짓이니 바라보지 말자는 사람들의 대립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인물들이 휙 돌아버리는 순간들에 이 영화 진짜 골 때린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 접한 아담 맥케이 감독의 작품, 나의 입문작
아담 맥케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보는 건 <돈 룩 업>이 처음이었다. <앤트맨>의 각본을 제작했다는 것과 <바이스>, <빅 쇼트>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담 맥케이가 연출한 온전한 ‘그의 작품’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줄줄~ 읊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블랙코미디의 대가라는 타이틀이 찰떡같이 어울린다. 에이 오버다 싶다가도 이 비슷한 장면을, 이런 사람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에 웃음이 절로 난다.
코미디적인 요소와 현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요소들을 잡아 적절하게 버무린 센스가 엄청나다. 또 언젠가는 “이거 이렇게까지 까도 되나?”싶은데 그게 또 유쾌 상쾌 통쾌 그 자체였다. 주변의 반응을 보니 꽤 호불호가 나뉘거나 전작들(특히 빅 쇼트)에 비해 실망했다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아주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돈 룩 업>을 성공적인 아담 맥케이 감독 입문작으로 정의 내렸다. 땅땅- <빅 쇼트>에 비해 이게 실망스러운 작품이라면.. <빅 쇼트>는 얼마나 재밌다는 걸까. 기대된다. 빠른 시일내에 격파하도록 해야겠다.
돈 룩 업 시놉시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구를 파괴할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다가온다는 불편한 소식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인류의 종말을 막아라 vs 설마 진짜 종말이 오겠냐?
공룡들의 멸종 이후 얼마 만인가, 대략 2억 년이 더 지나 지구에 또다시 충돌의 위기가 찾아온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혜성을 발견한 케이트와 민디는 지구방위 합동본부 오글 소프 박사를 통해 대통령 올린을 만나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여유가 넘치고 나쁜 말로 하면 퍽 가벼워 보이는 대통령은 케이트와 민디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반드시 일어나요.” 비장한 표정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말하는 과학자들 앞에서 올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웃음을 흘린다.
지구와 충돌한다면 핵의 몇십 배 아니 그냥 지구 멸망을 일으킬 혜성이 다가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이리 관심이 없는 걸까? 궁금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현실에서도 별별 종말설이 다 돌지 않았던가? 우주적인 요소, 인류들이 만들어낸 요소, 신화적인 요소 등등.. 무슨 달력이 언제까지만 있어서 그 날짜에 맞춰 종말 할 거라느니.. 하는 것들까지 말이다. 나도 그 종말설들을 믿지 않았으니.. <돈 룩 업>의 시민들이 민디의 말을 믿지 않는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알아들을만한 자료도 없고, 지나가는 비디오 게임 이야기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 종말론을, 모두가 후다닥 믿어버리는 것도 웃기긴 하겠다. 거기에 유명하지만 아주 가벼운 토크쇼에서 나오는 이 종말론을 말이다. 사람들은 혜성의 존재보다 케이트가 분노하는 순간, 잘생긴 민디 교수의 얼굴, 그리고 연예인들의 약혼 소식에 더 집중하고 낄낄 웃을 뿐이다. 이거.. 왠지 익숙한 상황이라 어이없이 웃기다.
혜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혜성은 위협인가 이득인가?
혜성의 존재가 알려지고 사람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뉜다. 혜성은 오고있다, 궤도를 바꿔 종말을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룩 업)과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보이는 것 또한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돈 룩 업)
눈에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고, 직접 궤도를 계산해 볼 수 없으니 어딘가 못 미덥게 느껴지는 종말론 앞에서 잠시 힘을 모았던 사람들은 1차 발사 취소 후 더 크게 분열하기 시작한다.
일부 인물들은 혜성의 존재는 믿지 않음에도 정치적 이유, 자신의 이득을 위해 1차 발사에 힘을 모으는데, 혜성이 지구에 안착(?) 하게 됐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이득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마음을 바꾼다. 조금 전까진 함께 ‘인류의 위협이다!’라고 외치더니, 이젠 이게 축복이란다.
140조 달러의 가치? 세상이 멸망하면 무슨 의미겠냐마는 대통령과 사업가들(BASH)은 돈에 눈이 멀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이미 우리의 계획은 성공! 그 외의 결과는 상상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주인공들은 서서히 정상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선동과 격리
케이트는 혜성의 위험성을 외쳤다는 이유로 권력에 의해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민디 박사는 권력과 여성에 현혹되어 잠시 궤도를 벗어난다. 아내를 두고 외도를 하고, BASH의 광고에 출연하고, 혜성 분리에 성공할 시 발생하는 장점들을 줄줄 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언론에 휩쓸리고, 불안해하면서도 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케이트가 숨겨진 진실을 말하는 순간, 불안은 폭동으로 표출된다.
가연성 물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라이터를 탁탁 켜대는 대통령을 앞에 두고 마침내 정신을 차린 민디는 다시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다시 묻혀버리고 만다. 가장 섹시한 과학자로 칭송받던 사람이었지만.. 언론과 권력이 만든 그 타이틀 하나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강한 힘의 일을 방해하면 바로 격리인 거다.
Look Up vs Dont' Look Up
하늘을 바라보라고, 진실을 바라보라고 소리쳐도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정말 지지리도 안 본다. 라일리비나가 콘서트에서 부른 노래 가사처럼 ‘제발 과학자들 말을 쳐들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눈으로도 보이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양 갈래로 찢어져있다. 힘을 모아도 모자란 판에, 마지막 희망이었던 핵이 발사장에서 터져버리고, 차악이었던 분리 계획도 실패하며 인류는 종말을 맞이한다.
현실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 웃기고 불편한 블랙 코미디 그 자체였던 이야기.
혜성 충돌이라는 큰 위협 앞에서 각자의 이득과 주장만을 내세우던 인류는 결국 지구를 지키지 못한다. 애초에 모두가 힘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 단합을 방해하는 인물들이 참 많았다. 혜성을 믿지도 않으며, 격추 or 분리 사이에서 어떤 것이 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인 아들, 회사에서 쓸만한 광물을 구하기 위해 경제적 가치를 운운하며 선동한 피터, 하늘을 보면서도 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섹시함과 위트는 갖고 있지만 지성은 없는 토크쇼의 진행자들. 그리고 이득을 따라 움직이는 언론 등등.. 조금씩 느껴지는 기시감에 씁쓸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들을 시원하게 가격하는 연출에 유쾌,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 <돈 룩 업>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제발, 이 사람들아. 과학자들의 말을 듣자. 위대한 이과의 말을 듣자.”였다.
그리고 그 위에, 민디 같은 교수님이 있다면.. 머리가 타도 좋으니 더 늦기 전에 천문 학도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진한 사심 한 바가지를 끼얹어본다. (물론 나는 본 투 비 문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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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불안함 속을 헤매는 난민의 현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영화제에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삶을 대변하는 불안한 장면들
토리와 로키타는 벨기에로 넘어온 아프리카 난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로 누나 로키타와 동생 토리 두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속에서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아서 벨기에에 가사도우미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이미 체류증을 인정받은 토리와 남매 사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하고 복잡한 규정에 맞춰 많은 함정 질문을 피해가며 본인이 꼭 체류해야 하는 난민임을 입증해야 한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두 남매는 극도로 불안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이 환경은 쉽게 벗어날 수도 없고 점점 더 위태로운 환경으로 이들을 내몬다. 이러한 상황들은 영화 속에서 반복되어서 등장한다.
초반부부터 로키타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면서 약을 먹는데, 체류증을 받기 위한 거짓말을 하다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공황을 겪는 모습에서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후 아프리카에 있는 엄마에게 돈을 보내라는 독촉 전화를 받을 때에도, 동생과 강제로 떨어지게 되었을 때에도 로리타의 불안함과 공황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은 동생 토리이다. 영화는 난민의 불안한 삶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우정을 주요하게 표현하는데, 로키타가 토리를 아끼는만큼 토리도 로키타에게 큰 위안이 되어준다. 영화 속에서 토리가 로키타의 체류증을 거부한 담당자에게 “누나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죠?”라고 말하는데 이 장면에서 이 남매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복선을 통해서 관객이 조마조마 하도록 만드는데, 대표적으로 이들이 불법적인 마약거래를 한다는 것과 밀입국 브로커로부터 주기적인 협박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암시를 꾸준하게 준다. 특히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마약 제조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다. 대마초를 기르는 공장은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구조로 불이 나면 비상 버튼을 누르고 전원을 내리라고 안내받는다. 그러자 로키타가 그러고나서 어떻게 탈출하냐고 물어보니 불이 옮겨 붙지 않는 벽이니 기다리면 열어줄 것이라고만 알려주는데, 이는 마치 언제든 불이 나서 로키타가 잘 못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심어준다. 이후 비슷하게 불안한 복선은 계속 등장하는데 이러한 환경들은 로키타와 토리가 자초했다기 보단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선택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목숨의 위협들이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그럼에도 살아가는 남매의 우정
이런 불안한 환경 속에서 불법적인 현재와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서로의 우정이다. 로키타는 토리를 위해서 더 위험 속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 토리만은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며 잘 때 외롭지 않도록 자장가를 불러준다. 토리 역시 학교에서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그리라는 숙제에 로키타를 그리고 힘들게 일하는 로키타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전해주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서슴없이 위험 속에 뛰어든다. 이 둘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이 언제나 스스로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켜야 상대를 안전한 영역에 남겨둘 수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 속에서 둘은 함께 노래하면서 힘을 얻고 교감하는데, 이들이 함께 노래하는 건 처음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부르는 장면과 이후 불안한 밤에 잠들기 전, 그리고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로 나뉜다. 상황은 점점 안좋아지지만 둘의 노래는 언제나 즐겁다. 그것이 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위험한 외부의 환경을 잊을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준다.
다르덴 형제 감독님 인터뷰
[영화 <토리와 로키타> 감독님 사진 /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를 만드신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님과 뤽 다르덴 감독님께서 이번에 국내에 처음으로 내한하셔서 영화 상영 후 GV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모두 적기엔 너무 긴 관계로 일부 내용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토리와 로키타는 두 감독님들이 15년 전 작성했던 시나리오를 수정하여 만드신 작품으로 최근 3, 4년 전 음지에서 체류증을 받지 못한 난민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해당 시나리오를 떠올려서 각색 후 제작하게 되셨다고 한다.
처음 시나리오는 엄마와 두 아이의 이야기였고, 엄마만 본국으로 송환당하는 이야기였으나 기사 내용과 난민 업무 관계자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실제로는 마약과 관련된 범죄에 연루된 난민들은 해당 범죄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실종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현실적인 방향과 둘 간의 우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비극적인 남매의 이야기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이며 오디션을 통해서 캐스팅 되었고 로키타 역 배우는 오디션 현장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캐스팅 되었고, 토리 배우는 까다로운 기준으로 찾기 힘들었으나 오디션 마감 2일 전에 뛰어난 운동신경과 작고 마른 체구를 가진 토리 역할 배우를 찾게 되어서 캐스팅 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두 배우 모두 뛰어난 노래실력을 가진 것도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 GV 현장 / 출처: 직접 촬영]
재밌었던 일화로 두 감독님은 의견 대립이 없는지 물어본 질문에 의외로 한번도 의견 대립을 겪어본 적 없다고 말씀하셨다. 두분이서 45년간 영화를 함께 만들어 오셨는데 대립이 있었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셨을 거라고…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농담으로 “우리가 머리 둘 달린 괴물은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 GV를 하면서 종종 재치있는 농담을 섞어서 답변해 주셨는데, 바로 답하기 힘든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는 프랑스 속담으로 “제 혀를 고양이에게 주겠습니다”(답변하기 어려울 때 쓰는 속담)라고 대답하셔서 통역하시는 분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셨다.
두 분이 얼마나 오랜 시간 영화를 함께 만드셨는지 체감할 수 있었던 건 어느 날 뤽 다르덴 감독님께서 현장에 나갔는데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아 오늘은 영화 촬영하는 날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두 분이 함께 있지 않은 촬영 현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두 분은 한명이 흰색 영화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이 검은색 영화를 떠올리면 맞춰서 회색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둘다 자연스럽게 같은 색의 영화를 떠올리고 만든다고 말씀하셨는데 두 분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모르겠다고 하실만큼 신기하게 잘 맞는 형제이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업 방식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작업은 뼈대를 함께 작업한 후에 뤽 다르덴 감독님이 주로 진행하신다고 하셨고 영화 속에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한 방향의 편집이나 연출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고 답하셨다.
극중에서 토리와 로키타가 부르는 아프리카 노래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10만 명 정도만 남은 부족민이 쓰는 언어로 된 노래로 엄마가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의 일종이라고 한다. 해당 노래만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위한 장치라고 답하셨다.
끝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응원의 한마디 씩 남기셨는데.
“모험을 즐기고 뛰어드시길 바란다. 스스로를 믿고 직감을 믿고 하고 싶은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셔라. 성공만 너무 신경쓰지 말고 스스로 솔직하게 질문하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토리와 로키타>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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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박물관에서 벌어진 러-우크라 전쟁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크리미아의 유물(The Treasures of Crimea)
Netherlands/2021/84min/우카 후겐데이크 감독 작품
전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많은 데 영향을 끼친다. 영화 〈크리미아의 유물〉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이 초래한 한 사건의 혼란스러운 궤적을 담았다. 사건의 장소는 박물관이다. 크림 반도의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사는 소장품의 일부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보냈다. 박물관끼리 소장품을 교환하여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일상적이기에 전혀 문제될 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전시와 전쟁이 겹치며 소장품을 어디에 보낼 것인지를 두고 대립이 생긴다. 우크라이나는 크림 반도가 원래 자신의 영토였음을 강조하며 소장품이 크림 반도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재가 국가의 소유물이고, 해당 소장품이 ‘국보급 유물’이기에 당연히 자신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박물관은 소장품이 원래 있던 곳, 즉 크림 반도로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를 차지한 것도 수십 년에 불과했다는 점도 상기한다. 무엇보다 문화재는 국가의 소유물이 아닌 지역의 역사를 표상하는 유산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양측의 주장은 합리성과 맹점을 동시에 가진다. 우크라이나의 주장은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문화 자산을 수호한다는 점에서는 타당하지만 문화의 주체를 국가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박물관의 주장은 문화의 경계를 국가 너머로 확장하지만, 정치를 배제하겠다는 태도가 크림 반도를 점유한 러시아의 지배권을 승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문제를 낳는다.
한 출연자의 말마따나 문화재는 문화, 정치, 역사가 뒤엉킨 감정의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장소다. 현재 2심까지 진행된 재판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모두 승소했다. 최근 재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러시아를 대하는 국제 여론이 악화돼 최종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누가 승소하든 ‘크리미아의 유물’을 둘러싼 복잡한 논의 지형에서 ‘완전한’ 정답은 성취되지 못한 채 남을 것이다.* 〈크리미아의 유물〉이 던지는 문화재의 의미와 전쟁의 파급력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는 동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 복잡한 문제에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크리미아의 유물〉의 시도가 다소 공허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는 학문적 열정으로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와 자기 땅에서 유물을 발견한 농부의 순수한 기쁨도 담아낸다. 그러나 ‘순수히 아름다운’ 문화는 없다. 그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인 학예사가 우크라이나 동료들에게는 러시아 편에 선 제국주의자로, 러시아 치하로 들어간 상황에 만족하는 주민들에게는 크림 반도의 유물을 반출한 사람으로 비난받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영화의 암시적 대답은 문제의식에 비해 다소 나이브한 해결책이었던 셈이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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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난 강박증이 있다. 이 덕에 일상생활에서 애먹는 부분이 많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10년 전 고등학생 친구의 이름을 기억한다던가. 친구의 전 근무지를 기억하고있다던가. 주변인들 반려동물 이름 기억하는건 일도 아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무언가를 기억했을때 따라오는 단점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 기억하기 싫은 것들도 강박이 되어 계속해서 생각난다는것이다. 필요할때 무언가에 집중을 못하는건 되게 귀찮은 일이다. 사람들과 말하다가도, 비행기를 타더라도, 맛있는걸 먹을때도 내 시간을 오롯이 못쓴다. 두번째.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 고3때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에 대해 일일이 다 기억했다가 한꺼번에 '선생님은 멋져요'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고 나서 크게 혼났다. 누군가의 자그마한 사실이라도 다 기억하고 있거나 알려고 한다는게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한다는걸 그때야 알았다. 얼핏들으면 사생활의 모든걸 알려고 든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굳이 이런 사람이란 인식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내 머릿속은 내 삶을 바꿔놨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린다거나 했던 적은 없다. 요즘에서야 강박증에 대해 주변에 말한다.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니까.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걸 앓는게 아니잖아?
되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땐 선을 지켜야한다. 생각이 많아질때의 나를 설명하면 이해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행히도 요즘은 그런 편견이 많이 없어져서 강박증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적다. 요즘 공황장애라던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유명인들이 많아져서도 좋은 영향인 것 같다. 내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는 경우가 많이 줄어서인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물론 몇년 전에는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었다. 이 때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럽다. 그래도 나는 이 병 때문에 삶에 엄청나게 지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이 덕에 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어차피 인생사가 맘대로 되는건 아니니까. 나처럼 자기 의지랑은 상관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질때가 사람에게 언젠간 온다. 그럴 때를 알아서인지 가끔 지나가다 인터넷에 뜨는 사연들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내 기억의 어느 순간을 꺼내오는 것 같았다. 저 사람도 저러고 싶지 않았을텐데. 뭐 그런 기분이 먼저 든다.
<더 파더>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안소니 홉킨스가 주인공 '안소니'로, 올리비아 콜먼이 딸 역할로 출연한다. 플롯은 간단하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내는 돌아가신 것으로 보이고, 작은딸은 왠지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안소니는 거의 대부분 혼자다. 아버지로서의 삶을 보냈던 주인공은 딸이 없다면 기댈 곳이 없다. 사람이 외로울 때 말 걸면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한다. 작은 딸 루시의 이야기부터 간호인에 대해 '나는 돌볼 곳이 없다'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또 입어가며 병마와 싸운다. 영화는 타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다른 작품들과 다른 지점이 있다.
영화는 플롯을 비튼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치매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진다. 내 딸이 딸인건 맞나. 딸의 남편이 사별하지 않았나. 이런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영화에 담긴다. 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두명으로 배치한다. 또 있다. 초입부 시계를 잃어버렸다고는 말하지만 뭐 하다 놓쳤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왜? 안소니는 어차피 시계를 잃어버린 기억 자체가 없거든. 안소니가 시계를 잃어버린걸 장면으로 보여주면 '이래서 잃어버린 것 아니냐'를 보여주는 셈이 되어 그에게 책임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안소니가 겪는 일들이 병으로 인한 현상 자체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거다. 이 점에서 내가 뽑은 각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없다'라는 기억을 관객들에게 와닿게 하고 싶어서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안소니에게 없는 기억이 이것만일까? 딸이 누군지. 작은 딸은 어떻게 지내는지. 딸이 이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뭐 그런 것들이 아버지 안소니에겐 중요했을거다.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는 후반부의 이야기다. 초중반부는 무엇이 정답인지를 ?치고 미스터리로 극을 끌고간다. 어차피 감독은 관객에게 무엇이 사실인지를 말해주고 싶은 의도가 없었을거다. 치매 환자들에게 중요한건 '기억하고 싶은건 잊어버리고, 기억하기 싫은건 머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이런 치매의 성격으로 인한 머릿속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연출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플롯이 혼란스러운 이유만큼이나 치매환자들과 주변인들이 왜 더 존중받아야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어쩔 수 없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는 것일테니까.
세상에 존중받지 말아야 할 인간은 없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강박증으로 특이한 행동을 해봤어서 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어느 순간의 내가 생각났다. 또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져야한다는걸 느꼈다. 이런 기분이 든 <더 파더>는 참 좋은 영화다. 주인공 안소니 홉킨스가 '양들의 침묵'보다 더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이유가 있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엔딩신이 주는 묵직함이 어마어마한데, 나는 이 영화를 보려고 기대중인 분들에게 끝부분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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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총과 씨앗 그리고 새
Chapter 2 이만이라는 인간
00:00 칸영화제
01:15 총과 씨앗
04:04 새(Bird)
05:15 이만이라는 인간
08:12 별점 및 한 줄 평
08:30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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