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22 10:58:40
영화에서 마주친 연극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봅시다

영화와 가장 비슷하고도 다른 예술,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에디터는 가장 먼저 ‘연극’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연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이곤 합니다.
무대 위를 오르는 배우를, 글을 적어내는 작가를, 극을 완성시키는 연출을 비추기도 하죠.
그럼,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볼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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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멸당하지 않고 나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사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인데 주인공인 폴라는 안톤과 사랑에 빠져 자신의 전공인 성악마저 포기하며 안톤과 결혼한 이후 고향에 돌아와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서 폴라가 사랑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길이 갔는데 이후 이어지는 안톤의 가스라이팅은 물론이고 사사건건 폴라를 간섭하며 외출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갑갑함을 느끼기도 했고 평등해야 하는 부부관계 특히,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결혼생활이 온전히 건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안톤이 폴라를 가스라이팅 하는 과정에서 폴라를 자꾸만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람, 건망증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폴라가 직접 경험한 사실 조차 상상이라고 의심하게 만든다. 안톤의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은 결국 폴라를 괴롭게 만들었고 특히 이런 과정이 세뇌라고 느껴질만큼 불쾌감이 들었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자각하기 어렵다는 점과 신뢰를 기반으로 이어진 관계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종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거나 걱정한다는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그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특징이라고 할 수 있던 것 같았다. 안톤은 사랑과 걱정이라는 명목 하에 폴라를 사람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의 많은 일상을 보면 쉽게 가스라이팅에 노출 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닐까? 반문하게 되었다.
과거에 나는 가정폭력이라는 것이 폭력, 감금, 구타, 밥을 굶기는 행위 등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노출시키는 행위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해당 영화를 통해 또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을 통해 말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고 이것은 곧 폭언이며 가정폭력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유년시절은 주변의 환경에 물들기 쉽고 이는 곧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말 하나, 단어 하나 신중하게 선택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통해 사랑이라는 명분아래에 이루어지는 폭력 또한 용납될 수 없으며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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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영화 <노 엔드>감독] 나데르 사에이바르
출연] Vahid MOBASSERI, Shahin KAZEM NAJAD, Fahime JAHANI, Narjes DELARAM
시놉시스] 아야즈는 자기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인 평범한 남편이다. 처남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란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처남이 돌아오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염려에 아야즈는 작은 거짓말을 한다. 비밀경찰이 집에 와서 수색을 하고 갔다는 거짓말. 비밀경찰이 아직 감시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처남이 이란으로 돌아오는 걸 포기할 거라 기대한 것이다. 문제는 진짜 비밀경찰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야즈의 거짓말은 진짜 비밀경찰이 처남을 추적하는 빌미가 되고, 아야즈는 이웃과 가족을 고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노 엔드. 노 엔드는 이란의 한 가정을 보여주면서 결국 됨루림되는 가난이라는 사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연기를 처음하는 사람이라니
영화 노 엔드는 아야즈의 심리를 쫓는다. 아야즈의 기쁨, 불안, 해방감, 공포, 절망감 등 행복했던 아야즈의 모습부터 형님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은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집을 사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애를 쓰기 시작한다. 비밀경찰에 끌려와 모든 일을 자백하면서 두려움을 떨며 바지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이제 고백을 다 했으니 비밀경찰에서 해방되는 줄 알고 행복해하던 그의 모습,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경찰에 절망감을 느끼는 그 감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표현을 하고 있어서 이란의 유명한 중년배우인 줄 알았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허함을 담아내는 그 눈빛과 메마른 목소리까지. 이런 감정들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이 배우는 정말 이란에서 인기가 많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독과의 gv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바로 아야즈 역을 맡았던 바히드 모바세리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평범하네 생업을 하던 시민이었다가 나데르 사에이바르 감독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저 끼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을까? 얼굴에 그렇게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처음보는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과장하거나 소극적인 부분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원석 같은 배우를 발견한 감독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고, 첫 연기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야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바히드 모바세리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결국 되물림되다
영화 노 엔드는 한 집안의 가장이 목을 메며 자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목을 메 자살한 것을 본 어린 아야즈는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 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고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아야즈는 자라면서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해서 꼭 자신의 집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아내가 집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사실 그 집은 오빠의 것이고, 오빠가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자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자신의 과오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야즈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목을 메달고 자살하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란 사회가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다른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아야즈가 꾼 꿈은 헛된 꿈이었을까? 집이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집을 갖는 것을 꿈꾸면 안되는 것일까? 각자 꿈꿀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영화 노 엔드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 역시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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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다큐멘터리란 장르와 의도에 적합한 영화.
“모르겠어요 여성국극이 하고 싶어요 그냥.”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재미없는, 지루한, 사회고발적인’ 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즐겨보는 여행 Youtube 마저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한다면 다큐멘터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게 된다.
다큐는 재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김여사’ 라는 말이 있다. 여성 운전자를 낮잡아 비난하는 말로 여성은 운전과 같이 관행적으로 남성이 우월하다고 알려진 환경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아냥이 포함된 말인데, 일반적으로 운전자 수가 남성이 조금 더 많고 사고자 수는 남성이 3.3배나 더 많다.(자료 참조)
그렇다고 ‘김여사’라는 여성혐오 표현을 즐겨쓰는 사람의 입버릇이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전체사고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운전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고는 여성 운전자 수가 현격히 높을 것이라고 굳게 믿을지 모른다.
나는 이게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관행에서 밀려온 사고(思考,事故)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고든 간에 굳이 성별로 갈라처서 비난해야 한다면 남성을 비난하는 것이 맞다고 알려주고 싶다. 이처럼 너무 확정적으로 진리처럼 갖게되는 이미지가 있는데 다큐도 그렇다.
다큐가 재미없다는 선입견 역시 잘못된 사고에서 나온 이미지다. 사고 비율 처럼 이야기 영화와 다큐영화의 포멧을 둘로 나누고 재미있고 와 없고를 나눌 수 있다면 재미있는 비율이 현격히 높은 것은 아마 다큐영화 쪽 일 것이다.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태를 고르기에 흥미롭고 볼거리가 풍부하다.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감독의 강한 주장에서 시작되는 기획이기 때문에 재밌는 비율이 높은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결국 다큐멘터리가 재미있다, 없다가 아니라 이 영화가 재미있냐 없냐로 결국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라는 3월 19일에 개봉하고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보게된 영화는 분명히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재미는 무엇인가?
“모르겠어요 여성국극이 하고 싶어요 그냥.”
영화의 시작장면 중 춘향을 맡아 햇빛과도 같은 목소리라는 평의 주인공 ‘황지영’ 님의 대사이다. 이 영화는 왜 만들어 지고 이토록 어려운 제목으로 개봉을 했는가 라는 궁금증은 이 영화를 만나게 될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사고일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목표를 왜 원하는지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을 서론에서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재밌는 점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왜 여성국극을 지키고 하고 싶고 사랑하는지 굳이 탐색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 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사랑하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퇴색되는 거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의도를 이해해도 공감하지 않는다면 실패라고 했을텐데 영화는 흥미로운 점으로 이것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주인공들은 여성국극을 어떻게 접하고 시작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 한다. 이것이 사랑에 빠지게 된 설명이라고 하면 빈약한데, 그들은 여성국극을 하고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장면으로 보여준다.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작은 무대라도 가창하고 관객이 아무도 없어도 의자를 닦으며 공연을 준비한다. 아무런 억지 의미부여 없이 그들의 삶을 우리는 관객으로 바라보며 공감하게 된다. 그들의 어려움 까지 안타까워 하지만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 형태의 영화로 감독이나 제작사 등 기록되어야 마땅하고 기록하는 형식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영화로 담게 된다. 영화처럼 시각매체는 스펙타클이라고 불리우는 시각적 쾌감을 자극하고 선사해야할 의무가 있는데,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는 뮤지컬을 극장에서 보는 듯 한 요즘의 극장상황에 맞는 스펙타클을 선사한다.
주요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박수빈’과 ‘황지영’님이 모시는 선생님이 그 스펙타클의 예중 하나인데 아흔이 넘은 나이로 허리가 굽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 이시지만 작은 체구에서 곧은 발성이 극장을 울릴 때 쾌감이 엄청나다.
판소리 등 전통예술은 아마도 너무 클래식 하기 때문에 고리타분 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 겪은 여성국극의 장면은 몰입되고 즐거운 창의 소리가 좋지 못한 녹음 환경에서도 깔끔하게 들린다.
이렇기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으면서 스펙타클 까지 충족하며 재밌는 영화가 된다. 영화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저렇게 하는 의도와 연출된 상황이 들어가고 ‘인간극장’ 식 첨언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묵묵하고 담백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일본에 가서 여성극을 보고 아쉬워 하는 장면에서 조차 그 감정에 매몰되고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지 않고 흘러간다. 선생님이 여성국극의 보관된 자료를 보는 장면에서 울음을 터트리지만 영화는 그 장면을 길게 늘어뜨리고 감정이 격해지길 바라는 촌스러운 음악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하고 담담하게 또 한번 장면을 이어나간다.
제목이 너무 어려워 처음 입에 안 붙었지만 이런식으로 이어지기에 이 영화가 좋은 것은 아닐까 하고 러닝타임의 절반쯤 지났을 때, ‘박수빈’ 님은 전세대 여성국극 출연자들을 모아서 공연을 하기로 한다.
얼마나 고된지 안절부절 하는 모습도 역시나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이때쯤에는 조금 더 캐릭터를 대변하고 변호하는 편집으로 애정했어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마저 든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처럼 ‘박수빈’님은 은퇴한 출연자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투자 등 자존심을 내려놓고 읍소하는 과정을 지나 공연을 준비하는 시퀀스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그런 과정과 여성국극의 직업으로서 버티는 과정도 볼 맛이 넘치는 다큐라고 음미하며 몰입중인데, 또 한번 재밌는 이야기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선배님들, 동선을 넣으면 창을 하지 못한다는 작은 갈등, 각색하면 안되고 무조건 원작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들 마저 그냥 흘러가게 두며 두근 거리는 공연의 실제 장면까지 보여준다.
‘혜자롭다’ 라는 말은 편의점 도시락 ‘김혜자 도시락’ 에서 비롯된 말이다. 편의점 도시락의 빈약함 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풍부한 구성으로 배불리 먹기 좋다라는 의미에서 ‘혜자롭다’는 풍부하다는 말처럼 쓰게 된 것이다.
실제 연배가 많으신 배우 ‘김혜자’를 존경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처럼. 캐릭터들이 선생님으로 모시는 무형문화재 이자 선생님인 ‘조영숙’님의 무대 활력을 보면 당연히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는 느낌도 비슷한데 영화의 스펙타클도 담당하시고 공연까지 보여주니 이 영화 굉장히 ‘혜자스럽다’ 라고 느껴진다. (혹은 영숙스럽다.)
공연을 준비하시며 집중하시는 모습과 앉아있다가 일어나 창을 하시는 모습 등 실제 공연 장면에서도 여성국극이라는 예술을 모르는 내가 봐도 존경하고 재밌다라고 느끼게 되며 영화는 막바지로 향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다시 강조하며 장면을 나열하거나 감정적인 몰입을 바라는 후반 강조 부분 하나도 없이 캐릭터들을 따라간다. 보기 편하고 흥미로워 어떻게 끝날까를 궁금하게 될 쯤 좋은 소식으로 그들은 다시한번 무대를 꾸린다.
역사적 상황이 어쩌고 하며 울음을 바라는 피아노 음악을 까는 노잼영화들과는 다르게 흥미롭게 영화는 끝까지 이어진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마저도 여성국극의 주인공들의 노래가 나오며 어깨는 들썩이고 엉덩이는 의자에 그대로 두게 한다.
크레딧과 노래가 끝날 때 즈음에는 제목이 입에 착 붙는다. 이래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고 하는구나. 나마저도 영원하라고 응원하게 된다. 인생에서 겪는 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 저마다 각자의 가치를 빛내며 만나는 현상들.
무엇을 기록하고 어떻게 기억할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수 많은 어려움에도 이어지고 기록된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한번 극장에서 만나라고 권유하고 싶다.
‘재미없는, 지루한, 사회고발적인’ 이라는 편견에서도 벗어나게 해주고 아마 몰랐던 여성국극이라는 스펙터클이 즐겁기 때문에 ‘유수연’ 감독이 영화로 기록되는게 좋겠고 담담하게 기억하는게 관객으로도 좋았기 때문에, 많지 않은 극장수에 상영 시간이지만 충분히 극장에 가볼만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본 후 즐거운 기분에 Youtube에 검색을 하다가 ‘레전드 춘향전’ 공연전체를 보는 놀라움을 만날지 모른다.ㅎㅎ
덧. 참고하면 좋은 감독 인터뷰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11564
더덧. 운전면허 소지자 현황 통계 자료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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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이렇게 재구성하다니
나는 마릴린 먼로를 좋아한다. 세상은 그녀를 백치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녀의 백치 캐릭터는 일종의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자신에 대한 편견에 그녀를 맞춘 영리한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블론드는 좀 심각하게 그녀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의 외면적 모습을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가정사에 대한 소문, 스캔들에 대한 내용들을 버무린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해도 일말의 사실 조차 포함시키지 않고, 수많은 소문들만을 가지고 그녀에 대한 영화를 만든 건 인권유린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스토리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티비 속 모습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대중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걸까. 그녀의 죽음이 미스터리했기에, 진실은 저멀리에 있어 그녀에 대한 소문은 무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헐리우드의 섹스 심볼이라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유린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마치 연예인의 열애 소식을 전하는 파파라치 컷이 국민의 알권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걸까 생각한다.
대중이란 존재는 개인의 작은 몰매함이 모여 당연시되기 쉬운 집단이다. 집단 사회에서 소문이란 위험하고 낯선 요소를 제외시켜 집단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 개인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와 관련된 영화라고 본다.
다만,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고, 그녀와의 싱크로율은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그녀는 영리하기보다는 사랑에 목을 매는 어리버리한 백치 이미지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인가 싶은 장면도 많았다. 분명 자기 주장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남자를 홀리는 섹스 심볼로서의 그녀를 강조하며 남자에 목을 매는 그녀의 모습은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병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고착화된 이미지에 갇혀 캐릭터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짐작도 결국 소문에서 비롯되었기에 이 영화는 한 영화 배우의 인생을 보고싶은대로 보고 멋대로 재단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은 이런 영화의 단점을 어떻게든 가려보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존 인물의 삶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서 내용의 큰 줄기를 제외한 그녀의 삶 속 디테일들을 모두 픽션으로 채워넣은 것부터가 영화의 미흡한 점을 드러낸 것이다. 보통 실존 인물의 영화에서 픽션으로 처리할 때 실제 삶을 사료에 근거해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되, 미스터리로 남은 부분들을 일부 부분들을 픽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대부분이 픽션이고 실제에 가까운 내용은 그녀의 영화 배우로서의 스코어밖에 없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이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는 뜻이겠지만 그 정도의 미스터리라면, 그녀의 얼굴을 앞세워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biography도 아니고 픽션으로만 봐주기에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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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화된 '나'의 죽음
- 비일상의 갈구
6년 전 소설 발간 이후 오랫동안 새 소설을 집필하지 못한 무명의 소설가 제임스(알렉산더 스카스가드). 그는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아내 엠과 함께 휴양지 리톨카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신의 팬인 개비(미아 고스)를 만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자극과 비일상의 경험.
묘한 매력으로 자신을 휘어 잡는 개비에게 맥을 못 추는 한편, 제임스는 불행하게도 밤길에 차로 한 농부를 들이받는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한순간에 끔찍한 악몽으로 변해버린 휴가. 그는 그 순간부터 절망적인 비일상에 진입한다.
엄격하고도 야만적인 법이 지배하는 리톨카에서 죽음은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농부의 아들에게 법에 따라 죽임을 당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경악하는 제임스. 그러나 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신체 대역' 프로그램이 있다. 돈만 지불하면 나 대신 사형을 집행당할 클론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제임스는 외형도 기억도 동일하게 가진 자신이 끔찍하게 죽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보게 된다. 참혹한 자신의 죽음을 목격한 제임스. 그는 충격과 함께 묘한 희열을 느끼며 리톨카에 더 머무르기를 택한다. 그가 바라던 새로운 영감과 자극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 가면을 쓰고 '나'를 내던지는 인간 군상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제임스에게 다시 개비가 접근해온다. 사실 개비가 속한 관광객 무리는 모두 제임스와 동일한 클론 복제를 겪은 사람들, 즉 자신의 대역을 희생해 사형을 면한 사람들이다. 제임스는 그들 무리에 섞이며 점차 더 큰 자극에 휩쓸린다. 무단 침입, 폭력, 살인, 집단 난교, 마약까지. 그들은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자기 자신을 내던지고 휴양지에서의 일탈을 마음껏 누린다.
적법한 대가만 치른다면 이 모든 행위는 용인될 수 있다. 그 대가가 복제된 나의 목숨일뿐. 이 모든 일탈은 돈만 있다면 문제 없다. 엄격한 족쇄인 줄로만 알았던 리톨카의 법은 도리어 들끓는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가면으로 분한다. 자신의 처형식을 지켜보는 일마저도 그들에게는 돈 주고 산 유흥거리에 불과한 것이다.
- 존엄성을 압도하는 자본주의적 공간
신체 대역, 즉 클론의 처벌 대리 집행이 가능한 리톨카는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압도해버린 공간이다.
예를 들자면 수업에 늦은 학생을 대상으로 벌금을 걷는 '지각비'를 한번쯤 겪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각을 줄이게끔 만들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제도였으나, 그 행위에 대한 비용 책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지각비가 처벌이 아니라 지각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에 지각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진 학생들은 되려 당당히 돈을 내고 지각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거센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이 제도는 어떤 불법적인 행위가 돈이라는 물질로 책정되고 대체되는 순간 야기할 수 있는 비극을 짐작케 한다.
리톨카의 신체 대역이 위의 예시를 빌리자면 '지각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살인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그 사형이 유효한 효과를 가져오는 이유는 목숨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각자 고유한 목숨이 있고, 그 목숨은 한 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니까.
그러나 신체 대역이라는 수단의 등장은 '나'라는 개인이 가진 고유성과 유일성을 필연적으로 격하시킨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기발한 수단처럼 보일 수 있으나 복제된 '나'가 가능케 된 순간부터, 그리고 복제된 내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가 가진 존엄성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지각비가 지각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처럼 리톨카에서의 신체 대역은 살인죄를 무마하는 물질적 수단으로 변한다.
- 쾌락의 자기파괴적 성향
끝끝내 (대역인)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살해하고서 처참히 무너지는 제임스. 그의 행보는 결국 그가 이 섬에서 일탈과 자극이라는 이유로 좇은 모든 쾌락이 자기파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앞서 저질렀던 타인에 대한 폭력, 살인, 그리고 난교와 마약 또한 나아가 자기 파괴의 연장선상이다.
이성을 내려놓고 철저히 본능을 따라 행동하는 나의 모습은 그 이전의 일상적인 '나'를 향한 폭력이나 다름없다. 눈앞의 자극만을 쫓아 온갖 쾌락의 유혹에 휩쓸린 그에게 남겨진 업보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버린 그 자신이다.
죽은 것은 과연 '나'일까, '대역인 나'일까? 복제한 목숨을 대가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사형 판결도 모자라 유가족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게끔 돕는 리톨카 법은 야만적이면서도 굳건한 엄정성을 띠고 있다.
'돈을 주고 대역을 통해 사형을 면하는 범죄자'와 '사형을 당하되 돈으로 대역 하나를 만들어 둔 범죄자'. 리톨카는 과연 누구를 벌했을까. 정신과 육체의 연관성을 고려했을 때 살인 행위를 직접적으로 저지른 오리지널이 사형을 당하는 것이 더욱 적법할 테다. 실질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오리지널이고, 기억과 육체를 복제했다고 해도 대역 자체의 정신과 육체는 살인 이후에 재생되어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다. 법의 적용에서나 유가족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나 후자의 경우가 더 납득력을 가지지 않는가? 작중에는 이 여부를 밝히고 있지 않으나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죽은 이들이 각각 오리지널이었다고 믿는다.
즉 그들은 모두 '진짜'로 죽었고 죗값을 치렀다. 살아남은 이들은 누구인가? 정말로 '나'인가?
그 무엇이든 그들은 우매한 쾌락에 중독되어가는 자기파괴의 연장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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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9회 골든글로브 <오징어 게임> 오영수 남우조연상, 한국인 최초 수상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전문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주말은 건강히 잘 보내셨나요?
오늘 월요일! 영화계에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가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드라마 부문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인데요!
한국인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소식은
정말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아쉽게도 TV드라마 부분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정재 배우는 수상은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과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오늘은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화부문의 주요 수상 결과 작품들을
소개드리는 콘텐츠로 시작할까합니다.
그럼 다같이 함께 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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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 부무 남우조연상
먼저 다시 한번, 한국인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TV드라마 부문)을 수상한 오영수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아쉽게도 골든글로브 보이콧으로 인해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작품상(드라마 부문)
작품상 드라마 부문은 바로 <파워 오브 도그>가 수상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가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을 받은 건 최초라고 하는데요.
과연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작품상(뮤지컬/코미디 부문)
스티븐 스필버그의 뮤지컬 신작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입니다.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파워 오브 도그>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과연 어느 작품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다관왕을 차지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감독상
감독상은 바로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입니다. 이전에 <피아노>로 골든글로브 감독상 후보에 오른 후 28년만의 수상이라고 하는데요.
<옌틀>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감독 <노매드 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 이후 3번째 여성 감독상 수상자입니다.
남우주연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입니다. 윌 스미스의 골든글로브 영화부문 첫 남우주연상 수상작이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여우주연상은 <비잉 더 리카르도스>의 니콜 키드먼에게 돌아갔습니다.
<디 아워스> 이후 19년만의 여우주연상 수상이며 니콜 키드먼은 역대 다섯번 째 골든글로브 수상자 배우가 됐습니다.
남여주연상(뮤지컬/코미디 부문)
제79회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여주연상은 각각 앤드류 가필드와 레이첼 지글러 배우에게 돌아갔습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골든글로브 영화부문 첫 남우주연상 수상이 됐고 이전에는 영화 <핵소 고지>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력은 있습니다.
신예 배우 레이첼 지글러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배우이며, 2022년 오스카에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남여조연상
남여조연상은 <파워 오브 도그>의 코디 스밋-맥피 배우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데보스 배우가 차지했습니다.
코디 스밋-맥피 배우는 LA비평가협회와 뉴욕비평가협회에서 모두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요. 오스카에서도 수상이 유력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1961년 작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리나 모레노 배우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수상이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참 우연의 일치일까요? :)
주요 수상작(기타)
배우 겸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가 5번째 도전 끝에 골든글로브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또한 음악상은 <듄>의 한스 짐머에게 돌아갔네요. 이로써 <라이온 킹>, <글래디 에이터>로 음악상을 수상한
한스 짐머의 21년만의 세번째 음악상 수상작품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 각종 미국 비평가협회에서 작품상, 각본상 등을 수상한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는
2022년 오스카의 장편외국영화상의 수상도 한층 더 유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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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의 콘텐츠는 여기까지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한 모든 작품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비록 수상을 하지 못한 작품들도
대단히 우수하고 존중받아야 할 작품이라는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씨네랩은 다음 주 더욱 더 유익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안녕!~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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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과 흥이 살아있는 모아나 2 / 전작보단 별로인듯 / 열정적인 음악과 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모아나 2" 후기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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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장리뷰 | 결말해석 | 사슴, 모자 상징 | 이미지와 사운드, 상류와 하류, 자연과 도시 | 시점쇼트 분석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시선의 주인, 사슴과 모자, 결말해석
Chapter 2 상류와 하류, 사운드와 이미지
00:00 하마구치 류스케
01:26 시점쇼트
03:12 사슴과 모자
05:43 결말해석
08:01 상류와 하류
10:58 사운드와 이미지
12:32 별점 및 한 줄 평
12:50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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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엔드> 티저 예고편
점멸등이 일렁이는 근미래의 도쿄. 음악에 빠진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친구들과 함께 자유로운 나날을 보낸다 동아리방을 찾아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한 그들은 교장 ‘나가이’의 고급 차량에 발칙한 장난을 치고, 분노한 학교는 AI 감시 체제를 도입한다 그날 이후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감독: 네오 소라 -출연: 쿠리하라 하야토, 히다카 유키토, 하야시 유타, 시나 펭, 아라지 -개봉: 2025년 4월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제공: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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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리,13구> 메인 예고편
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운 도시, 파리 13구.
낭만을 잃었다 생각한 그곳에서 불현듯 사랑을 만났다.
사랑을 원하는 에밀리
사랑이 두려운 노라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
사랑을 몰랐던 카미유
흔들리고 불안했던 그 사랑이, 우리는 전부라 생각했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 도시
<파리, 13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