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2025-07-11 00:49:36
설익음의 전제조건은 같은 눈높이
우리들의 교복시절(2025) 리뷰
📽️ 우리들의 교복시절 (2025)
감독: 촹칭션
출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외
청춘을 청춘답게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이미 수많은 매체들에서 다뤄져 이제는 공식이 되어버린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빠져버리면 함부로 청춘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요소들. 이를테면 새끼손가락으로부터 이어진 둘만의 약속이라거나 찬란함 뒤에 오는 극단적인 공허함, 남에게는 보일 수 없는 위태로운 위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내는 성장 같은 것. 어쩌면 우리는 기-승-전에서 결로 이어지는 그 뒷심을 청춘이라고 정의하는지도 모른다. 청춘을 외치는 미디어는 미디어가 미디어로 존재한 이래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비되어 왔는데, 그것들의 공통점을 살펴보자면 모두 지나칠 정도의 강박적인 명과 암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가두어진 채 자라,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가지는 명에 환상을 갖고 있다. 그것이 청춘이란 단어가 가지는 힘이자 소구점이다.
엄마의 강요로 대만 최고의 명문인 제일여고 야간반에 입학한 아이는 자신과 책상을 같이 쓰는 주간반 학생인 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서면을 통해 소통하던 그들은 점점 대면하게 되는 일들이 많아지고, 이내 서로의 교복을 교환하며 함께 어울리기에 이른다. 아이와 민이 친구로서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직접적으로 동일선상에 서게 되는데, 이때 아이가 가진 암이 드러난다. 아이는 민과 보내는 시간이 즐겁지만, 동시에 민과 달리 주간반인 자신이 부끄럽다. 아이에게 주간반은 환상이자, 민의 위치는 서고 싶은 꿈의 자리다.
반면, 아이가 가진 환상 속의 주인공인 민에게도 암은 존재하는데, 그 암이 아이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 영화의 흥미로운 포인트다. 자신이 좋아하는 루커와 아이 사이의 이상 기류를 눈치챈 민은 곧장 아이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서로가 서로의 암이 되어 청춘을 가리는 듯 하다.
여느 극이 그러하듯, <우리들의 교복시절> 역시 절정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전유물이었던 비밀이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각 캐릭터들이 건설적으로 쌓아올린 감정들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제 각자의 캐릭터들은 그동안 애써 무시해왔던 자신의 위치를 직면해야만 한다. 아이는 롤모델에게서 온 줄 알았던 답신이 친한 오빠의 장난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근 100년 중 가장 커다란 규모를 기록한 대지진에서 살아남는다. 다소 어설픈 연결고리지만, 어쨌든 아이는 위 경험을 토대로 한 차례 성장을 겪는다. 랍스터가 성장을 위해 기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덧쓰게 되는 것처럼. 고3을 기점으로 기존과는 조금 다른 태도로 자신의 삶을 직면한다. 여전히 목적은 없지만 목표가 생겼다는 것은 아이에게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아이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아이'를 선택한다. 아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고, 아이가 마주해야 할 암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꽤나 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남에 의해 휩쓸리는 것이 아닌, 직접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드디어 인생의 주연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아이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아이는 니콜 키드먼에게서 온 답신을 제손으로 태운다. 그건 더이상 아이에게 대학이나 야간반 따위가 자신의 열등감이 아니라는 의미임과 동시에 홀로서기를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이 결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모두가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캐릭터들은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청춘은 미성숙해서, 서로를 완벽히 포용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맞춰 서로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눈 뒷면에서 우리가 동류라는 지점을 확인해야만 그제서야 안심한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던 상대가 생각보다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사실은 그들을 새로운 챕터로 인도할 것이다. 새로운 청춘이 열리는 장면을 직접 목도하게 되다니. 그건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