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주2025-07-18 12:30:35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 • <퀴어>
<퀴어>
Chapter 1. How Do You Like Mexico?
Chapter 2. Travelling Companions
Chapter 3. The Botanists in Jungle
'구아다니노스러움'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다. 그의 영화를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7년도의 <콜바넴>과 18년도의 <서스페리아> 후 <본즈 앤 올>을 건너뛰었고 작년에 <챌린저스>를 봤지만 이건 구아다니노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구아다니노스러움'이란 남부 이탈리아의 나른한 환경과 저녁에 추는 정신 놓은 춤, 끈적끈적하지만 끝내 이뤄지진 않는 사랑과 부르주아적인 생활 양식을 가진 인물들을 의미한다. <챌린저스>는 뭐랄까 그런 것들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챌린저스>는 강력하고 똑 떨어지고 도발적이고 경솔하며, 인물들이 힘 자랑을 하고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서 욕을 내뱉으며 속도감이 있어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다. 자극적이고 감칠맛이 있어서 자꾸 생각난다. <챌린저스>가 오스카 레이스에서 무관하자 울부짖었던 팬들의 외침을 기억한다.
<퀴어>는 원작 소설을 가져온 만큼 영화에서도 시적이고 문학적인 시도를 하려고 한 것 같다. 리가 유진에게 뻗는 손 즉 몸이 반투명한 것, 야헤를 먹고 나서는 아예 둘 다 몸이 사라지는 것, 여자(리의 아내?)의 흉상이 나오는 것, 유진의 머리 위 물컵을 리가 총으로 쏘았는데 유진의 몸에 맞은 것 등...
졸다가 깨니 리가 병원에 가고 있었다. 아편 중독으로. 그리고 챕터 3가 시작되고 둘은 정글로 간다. 야헤를 구하기 위해서다. 야헤의 행방을 안다는 코테 박사의 집앞에는 독사가 있다.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
리는 텔레파시,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을 원한다. 그런데 왜 그걸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것인가? 영화의 첫 장면은 "너 퀴어 아니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리가 자기 앞에 앉은 어리숙한 젊은 청년에게 그렇게 묻는 것이다. 그 후에도 이 질의응답은 빈번히 등장한다. "너 퀴어 맞아?", "저는 퀴어가 아니에요"(야헤 도중 유진의 말). 리가 말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의 퀴어성과 직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단정한 남자 유진이 퀴어가 맞는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미스터리는 챕터 1을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다. 추측하는 리의 의구심, 두려움, 안도와 설마 하는 마음, 풀어짐과 조여짐이 있었기에 리와 유진이 마침내 섹스를 할 때 그 환희가 더욱 강력하게 느껴진다. 쉽게 빠지고 사랑에 약한 남자, 리는 그의 감정이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되기에 모든 것이 확실했으면 싶다. 그가 야헤를 원하는 이유는 확실함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해진다고 해서 더 쉬워질까? 사랑 때문에 고뇌하는 과정을 뭣하러 쉽게 만든단 말인가?
몸과 춤
리와 유진이 야헤를 마시고 나서 보여지는 몸의 합일은 전작 <서스페리아>를 연상시킨다. 두 몸의 뼈가 같은 살갗 안으로 들어가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일차적으로는 징그러웠는데 한편으로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전 내내 유진과 하나되고자 하는 리의 욕망을 보았으니까. 반투명한 손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리에게 야헤의 행방을 알려 준 식물원 사람은 야헤에는 마약성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리의 마약 중독과 연관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는 야헤를 처음 봤을 때 그 나뭇가지처럼 생긴 식물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영장류가 돌리는 뼈처럼 돌린다. (똑같이 슬로우모션 된다).
리와 유진이 처음 야헤를 마신 후 다음 날.
코테 박사: "어젯밤 너흰 특별했어. 처음 (야헤를) 접한 사람은 보통 안 그러는데... 너희는 뭔가 달라."
라고 말한다. 퀴어들은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을 원래 잘하는 존재인데 야헤 때문에 더 잘하게 된 건지. 야헤가 어떤 매개체가 되어 억압되어 있던 것을 해방시켜 준 건지.
야헤 전후로 코테 박사도 좀 달라보인다. 야헤 마시기 전의 그녀는 지저분하고 이해 안 가는 타자였는데 야헤 마신 후로는 지혜로워 보인다.
에필로그에 리도 떠돌고 유진도 떠돈다. 퀴어들은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을 알리듯이. 구아다니노는 1971년생이다. <콜바넴>에서는 옛날 배경을 가져와서도 굉장히 세련된 얘기를 했는데(엘리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여서가 아니므로) <퀴어>에서는 옛날 배경을 가져와서 옛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제목이 <퀴어>라 더 멋진 얘기를 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