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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5-09-01 21:21:11

서류 광탈, 면접 참패, 정원 외 전형

영화 <3670> 리뷰

DIRECTOR. 박준호

CAST.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외

SYNOPSIS.

"종로3가, 6번 출구, 7시. 여기서부터 시작이야"

자유를 찾아 북에서 온 ‘철준’에게는 탈북자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외로움을 견디던 ‘철준’은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영준’의 도움으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계와 마주한다. ‘영준’은 ‘철준’의 친구가 되어주고 ‘철준’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하지만 인기남 ‘현택’의 등장과 함께 ‘철준’과 ‘영준’의 마음에 묘한 파장이 일어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는데…

"너를 통해 우리가 될 수 있었던 시간들"

 

POINT.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작품. 전주에서 <3670>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느껴질 만큼, 관객의 호응도와 관심이 높았던 작품입니다. 시사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다양하게 쓸 수 있겠지만, 탈북자/성소수자라는 소수성의 소재를 착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띄었고...

✔️ 사랑은 역시 남의 눈에 더 잘 보이네요. 이런 순애를 담은 영화 오랜만이라 가슴이 뛰었습니다. 제 눈엔 모처럼 만난 잇몸 마르는 하이틴 (아닌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로맨스, 2025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였어요.

✔️ 게다가 사랑스럽고 정직한 인물들의 성장 서사... 안 좋아하는 법 몰라요...

 

 

이 영화는 가장 내밀한 스킨십과 그렇지 않은 관계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쪽 친구 아직 없어요?"라는 문장은 주인공 철준에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다. 성소수자 그리고 탈북자. 한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과 대조했을 때, 철준은 분명 이중의 소수자성을 가진 인물이다.

 

소수자에게는 연결되었다는, 내가 고립되지 않았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성소수자든 아니든, 탈북자든 아니든, '보편적'으로 흔히 소수자라 생각하는 특징을 가졌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어디선가 소수자가 되기도 하기에 이 문장은 사실 인류 보편의 명제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상대적으로 적게 한 사람들은 이 점을 쉽게 잊기에, 더 자주 소수자 위치에 놓여 본 사람들이 그 감각을 기억하고 커뮤니티를 끈끈하게 유지한다.

 

 

소수자+소수자?

탈북자 커뮤니티와 게이 커뮤니티, 바로 그 이유로 끈끈해 보이는 두 커뮤니티 사이에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으로 철준은 외롭다. 탈북자 친구들은 여자와의 만남을 추천하고, 버스 속 사람들이 모두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 귀를 막은 모습을 보며 착잡해하는 얼굴을 보면 철준은 어플로 하는 일회성 만남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게... 단순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찾기가,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애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가, 허심탄회하게 속 털어놓을 품이 되어 주기가, 그게 참 쉽지가 않지.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철준의 마음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시작은 이중의 소수자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철준의 이야기는 그렇게 그냥 한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전달된다.

 

이를 담는 제작진의 시각이 따뜻하고 둥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커뮤니티는 모두 둥근 시선으로 담겨 있다. 게이 커뮤니티와 탈북자 커뮤니티의 공통점이 있다면, 희화화되거나 신파 처리되거나 어떤 방향으로든 선정적으로 소구된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가 두 커뮤니티 중 어디서도 내부자가 아니라 고증 정도를 명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그 지점을 피해, 그저 인간의 모임으로 그려낸다. 심지어 두 커뮤니티 입장에서 밉거나 떨떠름하기 쉬운 교회라는 집단마저, 그저 자기 일 하는 사람과 철준의 말에 인류애적으로 고개를 뜨덕이는 중립적인 인간 군상의 모임으로 표현되어 신기했다.

 

 

보편적인 사람

그리고 이 보편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사랑스러운 연애담과 푸릇푸릇한 성장담으로 뻗어 나간다. 영준은 사는 곳을 밝히고, 자주 보자고 말하는 사람, 다음에 또 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이로 소속감을 주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점을 만들어 주고, 커뮤니티의 생리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단톡방에 초대해 주고,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이든 그냥, 그렇게 무리에 들여주는 다정한 사람이 필요하다. 쩍쩍 갈라진 땅처럼 애정이 메말라 있던 철준의 세상에 비처럼 부어지는 애정은 (극 중 연령대가 하이틴이 아닌데도 어쩐지) 하이틴 로맨스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요즘 세상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풋풋한 로맨스 서사 같다. 그 안에서 철준은 성장한다. 자기의 언어를 가지고, 자기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철준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네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듣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3년 전에 써서 교회마다 돌려 막듯 발표가 가능한 간증문의 서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 서사도 분명 철준의 서사지만, 유일한 서사는 아니다. 무리에 속하고 애정을 받아들이면서, 새싹처럼 그의 서사가 움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 무리 안에서도 누군가는 외로움과 거절감을 느낀다. 소속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고 온전히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자기 문제는 자기 안에 고인다. 철준을 무리에 받아들이고 새로운 서사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영준의 자기소개서가 오히려 텅 비어 있었던 것처럼. 영준과 현택이 서로를 바라보던 마음들처럼.

 

 

서류 탈락, 면접 참패, 정원 외 전형

까놓고 보면 다 제각각의 콤플렉스가 있다. 탈북자, 성소수자, 이런 큼직한 덩어리는 오히려 쉽다. 안으로 들어가면 서류 탈락을 괴로워하는 사람, 면접 참패를 절감하는 사람, 언제나 정원 외 전형으로밖에 분류될 수 없는 사람... 제각각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지극히 보편적인. 그래서 이들이 투닥거리기도 하고 부딪기도 하는 장면들이 더더욱 청춘물로 느껴졌나 보다. 결국에는 내면을 말갛게 드러내고 맞부딪히며 성장하는 이야기여서.

 

각자의 과거, 각자의 상처가 현재의 발목을 붙잡지만... 씩씩하게,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참기도 하면서, 기꺼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상처 주고 사과하며, 회전목마처럼 둥글게 둥글게 성장 서사는 이어질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9월 3일 개봉합니다.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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