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7-28 07:45:15
사랑의 딜레마, 혹은 계급 간 사랑의 불/가능성
영화 〈사랑의 탐구〉
〈사랑의 탐구〉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불화해 고민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사랑의 딜레마 혹은 ‘계급 간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짓궂은 질문을 다루는 영화다. 철학 강사 소피아는 ‘사랑’을 강의한다. 플라톤, 쇼펜하우어, 스피노자, 장켈레비치, 벨 훅스 등의 사랑 이론 등등. 그녀는 10년간 만나온 지식인 파트너 자비에와 안정적인 관계를 누리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섹스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피아는 자비에와 함께 구매한 별장에서 인테리어 업자 실뱅을 만난다. 별장을 둘러본 실뱅이 참 손댈 곳이 많다고 말하자 소피아는 눈물을 흘린다. 이는 소피아가 현학적 담론에는 익숙하지만 삶의 구체적 문제에 대응할 능력은 갖추지 못한,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지식인의 전형임을 암시한다. 당연하게도, 소피아는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갖춘 실뱅에게 빠져들고,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황홀을 경험한다.
핵심은 섹스를 통한 감각의 확장이다. 노동 계급의 강인한 육체를 가진 실뱅은 지식인 자비에가 결코 선사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피아에게 육체적 쾌감을 전해준다. 자비에의 권유로 담배를 멀리하던 소피아는 실뱅의 권유에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왔다는 듯 행동하는데, 그녀가 실뱅의 욕망에 맞춰 기꺼이 육체의 모험을 감행할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결국 소피아는 자비에를 버리고 실뱅에게 간다.
그러나 사랑은 육체의 감각을 ‘초월’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소피아는 주로 하층 계급인 실뱅 가족들과의 첫 저녁 식사에서 불편함, 이질감을 느낀다. ‘세련된’ 문화 자본을 갖춘 소피아의 친구들을 만난 실뱅도 마찬가지다. 소피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이자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실뱅에게 놀라기를 반복하고, 실뱅은 소피아가 자신을 무시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며 분개한다. 그사이, 소피아는 다시금 자비에와 만나기도 하지만 그와의 섹스는 형편없을 만큼 지루하다. 정신과 육체, 지식인과 노동 계급. 두 범주의 중첩 속에서 소피아의 혼란은 깊어만 간다.
흥미로운 건 각각 지식인과 노동 계급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개인’으로서는 사랑하지만 ‘계급’, ‘계층’으로서는 그러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실뱅은 소피아에게 청혼하고, 비혼주의자인 소피아는 이를 수락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가 사랑만으로 돌파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결국 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손가락의 반지를 빼고, 실뱅은 그런 소피아를 두고 홀로 떠난다. 사랑은 개인의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권력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개 사랑 영화는 넘을 수 없는 간극(신분, 계급, 가문, 민족, 가치관 등)을 해소함으로써 사랑의 위대함을 설파하는데, 이 영화는 정 반대, 즉 사랑도 넘지 못하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육체, 계급 간 이분법에 관한 통념을 그대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계급, 계층 간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지금 멜로 영화의 전통을 벗어난 소피아와 실뱅의 혼란은 꽤 그럴듯하다. 진지한 멜로 영화인데도 종종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카메라 연출도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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