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2-04 17:20:21
12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서울의 봄> 흥행열풍 465만 명 돌파
1~3일 동안 <서울의 봄> 주말 관객 수가 무려 17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 500만을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봄>! 한편 북미에서는 디즈니 영화의 몰락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공연 실황이 영화관을 점령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영화관을 즐기는 문화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걸까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듯한 북미 영화관 12월 첫째 주 영화 박스오피스같이 만나보아요.
[국내 박스오피스]
개봉 12일 만에 460만 명을 넘어선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 5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요. 12월 첫째 주 주말 관객 수만 170만 명을 돌파하고 개봉 이후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11월 29일 개봉한 <싱글 인 서울>은 개봉 후 누적 관객 수 22만 명을 기록하며 2위,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3위를 기록하며 누적관객 수 65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팝스타들의 실황 공연 다큐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에 이어 비욘세의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공연에 못 간 이들, 재관람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으면서 공연을 색다른 방법으로 즐기고
있다고 하는데요.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나폴레옹>을 제치고 1위를 한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와 최근 디즈니 영화들의 몰락으로 보아 북미 영화계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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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주지사 여론 조사에서 1위를 달성한 배우?
최근, 할리우드 배우 '드웨인 존슨'이 미국 대선 지지율 1위에 선정된 소감을 개인 SNS를 통해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연예 통신 [The Wrap]에 따르면, 할리우드는 또 한 명의 명배우를 정치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는데요. '달라스 모닝 뉴스'와 '텍사스 대학교'에 의해 발표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현재 텍사스의 주지사인 공화당의 Greg Abbott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텍사스 선거인 중 1,126명을 대상으로 4월 초에 진행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45%가 맥커너히에게 그리고 33%가 애보트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아직 맥커너히가 선거에 나선다는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만약 그가 이를 단행하기로 한다면 중립을 지키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비판을 서슴지 않아왔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오히려 허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텍사스대학의 정치 과학자이자 여론 조사의 책임자였던 Mark Owens는 "매튜 맥커너히는 그 자체의 명성과 더불어 텍사스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것을 인정받음으로써 엄청 힘을 받았다."고 말하며, "대부분의 응답자는 맥커너히에 대한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그가 인생의 새 막을 쓰는 것을 기대 중이다."라고 조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지난달, 맥커너히는 텍사스의 간접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는 "Today"를 통해, 선거 출마를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며 선거 출마는 대단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덧붙여, "나 자신을 위해 내 인생의 다음 장에서 '리더'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잘 쓰일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이 정치계의 한 자리일지 아니면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은 상태일지는 모르겠다. 내가 가장 유용하게 쓰일 리더 위치는 무엇일까? 이것이 내가 요즘 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그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매튜 맥커너히는 1969년 11월 4일, 텍사스 주에서 태어나 텍사스 대학에서 방송과 영화를 전공한 텍사스가 배출한 대스타 중 한 명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제니퍼 로페즈와의 <웨딩 플래너>(2001), 케이트 허드슨과의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2003), 사라 제시카 파커와의 <달콤한 백수 사랑 만들기> (2006) 등 흥행에 실패한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출연하며 잘생긴 플레이보이 이미지가 굳게 박혀있었는데요. 그러던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된 명작 <머드>에서 '머드' 역으로 열연을 펼치며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2관왕을 차지하고, <인터스텔라>로 흥행 대박까지 이뤄낸 그는, 2016년 <골드>로 영화 제작에까지 뛰어들며 할리우드 내 입지를 탄탄히 쌓아왔는데요. 연기 활동 외에도, 2019년 9월 모교인 텍사스 대학교에 교수로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텍사스 주를 연고로 하는 신생 축구 구단 '오스틴 FC'에 투자도 하며 텍사스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총 17개의 자선구호단체에 꾸준히 기부 중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사회에 귀감이 되기도 한 배우입니다.
이렇게 연기 이외에도 꾸준히 다양한 활동을 해오며,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을 내비쳐 왔던 그이기에, 매튜 맥커너히의 내년이 더 기대되는 바입니다. 헐리웃은 명배우를 잃은 것이 아쉬울 수 있겠지만, 영화를 즐기는 관객 입장에선 어떻게 보면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장막극이 탄생할 것 같다는 예감에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게 되는데요.
그의 다음 극이 영화가 될지, 정치가 될지 함께 기다리며,그때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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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갔다. 엊그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이 영화를 다시 언급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낮게 평가된 영화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남...'은 김기영 영화 세계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이 김기영 사단에서 조연출로 오래 일했고, '김복남..'으로 장편 데뷔를 했으니, 장철수 감독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면서, 그가 배운 김기영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복남...'은 여성주의 영화, 여성영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스팔타쿠스'와 같다. 폭력과 억압, 차별에 저항하는 노예의 반란처럼,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의 분노가 마침내 권력자 - 이 영화에서는 남성들, 시고모, 동네 할머니들 - 의 피를 부르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영화의 함의는 다양하다. 주인공 복남은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섬에서 살아 온 여성이다. 반면 해원은 어려서 고향 섬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 성장한다. 두 여성은 어려서 가장 가까운 동무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30년 넘게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해원은 복남의 편지를 무시하고, 고향에 관한 기억도 그리 애틋하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게 되면서 복남의 호소에 응답한다.
해원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지만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해원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는 상황은 한국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여성노동자로서의 해원이 곧바로 사회적 약자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해원이 해고당하는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면, 해원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에게 냉정하고 모질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해원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겸손함,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은 해원과 복남의 어린 시절 모습이 교차 편집되면서 보여주는 장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어려서의 해원은 복남과 사이좋은 친구이고, 서로에게 따뜻한 동무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성인 해원은 쌀쌀하고 냉정한 인물이다. 그는 전세금을 대출받으러 온 할머니 - 폐지 수레를 끌고 온 것으로 보아 혼자 가난하게 사는 할머니다 - 에게 3천만원이 아닌, 2천만원까지만 대출이 된다고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해원의 옆자리에 있던 후배가 할머니가 바라는대로 3천만원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해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에 화장실에서 누군가 문을 잠그고 나가서 해원은 몹시 고생하며 화장실을 탈출하는데, 해원은 후배의 뺨을 때리지만, 정작 범인은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해원이 같은 여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건, 그녀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만, 해원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도시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은 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운전하다 보게 되는데, 사건의 목격자로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지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피해 여성이 남성 폭력배들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해 결국 살해당한 사진을 보면서도 끔찍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목격자로 지목된 것을 귀찮아 하고, 이런 사건에 엮이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경찰의 잘못으로 해원은 범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고, 협박을 받게 되면서 불안은 더욱 커진다. 그런 점에서 해원도 피해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해원은 복남이 바라는대로 고향을 방문한다. 회사에서 사고를 친(?) 것 때문에 강제로 휴직을 하게 되고, 폭력배들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기에, 한동안 서울을 떠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해원의 고향인 '무도'는 작은 섬이다. 하루에 배가 한 번만 들어오는 곳이고, 섬에 사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섬 사람들은 대개 노인들이며 복남의 딸 연희가 유일한 어린이다.
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를 모는 선장도 알고 보니 해원의 어릴 때 친구였다. 해원과 복남의 고향이 '섬'이라는 건 그 자체로 상징이다. '섬'은 육지에서 떨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지리적 조건이며, 심리적, 정신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해원은 어려서 섬을 떠난 뒤, 처음 섬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으로 보면 약 20년 이상이 흐른 뒤로 보인다. 그럼에도 마을에 사는 노인 할머니들은 해원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섬에는 여섯 명 정도의 할머니와 복남, 복남의 딸 연희, 복남의 남편 만종, 시동생 철종, 노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고, 섬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이 섬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복남에게 지옥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남을 괴롭히고, 착취하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긴다. 복남의 남편은 만종이지만, 만종이 외출하면 시동생 철종이 복남을 성폭행하고, 육지에서 성매매 여성을 데려온 만종은 복남 앞에서 성관계를 하는 막장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드러나는 복남의 과거는 더욱 잔혹하다. 복남은 10년 전에 섬의 남자들 몇 명에게 윤간을 당하고, 연희를 낳았다. 따라서 연희가 어떤 남자의 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복남의 남편 만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복남이 매우 필요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만종은 복남을 아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이자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한다. 만종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남을 폭행하고, 욕설과 무시를 드러내놓고 한다. 게다가 딸 연희가 자기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종은 딸까지도 성추행을 하고, 복남은 이걸 알고는 연희와 함께 섬을 탈출할 결심을 굳힌다.
서울에서 온 해원도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된다. 복남의 시동생 철종은 끊임없이 해원을 강간하려 한다. 섬의 남자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여성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동등한 인간이 아닌, 2등 인간, 하인, 노예, 불가촉천민으로 대하며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이자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으로만 상대한다.
복남은 딸 연희를 데리고 섬을 탈출하려 하지만, 배의 주인도 섬의 남자들과 한편이며, 과거 복남을 윤간한 남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복남에게서 돈을 받고도 시간을 끌어 결국 복남이 만종에게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고, 딸 연희는 만종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살해한다. 연희의 죽음을 두고도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도 섬사람들과 친한 사람이고, 만종이 연희가 죽였다고 모함하면서 뇌물을 주고 사건을 수습한다.
복남은 사랑하는 딸 연희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걸 지켜봤고, 남편을 비롯해 섬의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며 복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경찰은 그런 섬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하는 걸 지켜보면서, 거짓과 위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의 행위에 절망하고 치를 떤다.
영화 후반으로 가면서, 복남이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내용이 펼쳐진다. 뜨거운 한여름, 감자를 캐는 시기니까 '하지감자'라고 하면 6월 말에 해당한다. 햇볕이 뜨겁고, 온도도 높아서 그늘 없는 밭에서 일하다보면 탈진해서 쓰러질 지경인데, 마을 할머니들은 그늘에 앉아 쉬는데, 복남이는 혼자 감자를 부지런히 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새하얗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조선낫을 집어들고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다가간다. 복남은 '해를 바라봤는데, 해가 말을 한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낫으로 할머니들을 찍어 살해한다. 복남이는 미친 것일까. 복남은 시고모를 벼랑으로 몰아 스스로 떨어져 죽게 만들고, 시동생 철종의 목을 잘라 나무에 얹어놓고, 육지에서 돌아온 만종과 배의 주인 득수를 차례로 살해한다. 해원은 겨우 육지로 탈출해 경찰을 찾아가는데, 복남이 배를 불러 육지로 해원을 따라온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까지 한 복남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이 멀쩡하다. 복남이 해원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는 것은, 그렇게 믿었던 해원이 복남을 배신하고, 무시했으며, 섬사람들과 같은 입장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즉, 해원은 도시에서는 피해자였지만, 섬에서는 가해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도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복남조차도 이기적인 태도로 외면한 것이다.
복남은 섬에 찾아왔던 경찰을 살해하고, 경찰서에 있던 해원까지 죽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복남은 정신을 차린 경찰이 쏜 총을 맞고, 해원과 몸싸움을 하다 부러진 리코더에 목이 찔려 죽는다. 리코더는 해원과 복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물로, 어렸을 때 해원과 복남은 리코더를 불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해원이 리코더를 더 잘 불었다. 리코더가 부러진 것, 부러진 리코더가 무기가 되어 결국 복남이 죽는 것은, 해원과 복남의 우정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을 상징한다.
해원도 마음 속에 늘 잊지 않고 있는 사건이 있는데, 복남이 여러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죄의식이 있었다. 해원과 복남이 섬에서 생활할 때,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해원을 성추행하고, 복남이 해원을 지키려고 남자아이들과 싸우는 틈에 해원은 혼자 도망한다. 그리고 다시 복남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보게 되는 장면은, 남자아이들이 복남이를 건드리는 장면이었고, 이 사건 이후 해원은 서울로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복남은 결국 그 남자아이들에게 윤간을 당하게 된 것이다.
복남은 단 한번도 해원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이 섬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도 외면하고 무시했던 해원이었지만, 섬을 찾아온 해원을 반갑게 맞이한 복남은, 해원을 여전히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해원은 복남이와의 추억은 있지만, 복남처럼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릴적 친구가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바뀌고, 처절한 몸싸움 끝에 한 친구가 죽는 결말을 보면, 이 영화는 '여성영화'나 '페미니즘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전형적인 스릴러의 서사를 보여주며, 주인공이 여성인 것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면서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도 약하기에 극에서 처절한 설정을 이끌어가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이 학대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단지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 정치적 범위로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그런 면에서 '여성영화'로 봐도 좋다.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지만, 우리 사회에서 '복남'은 어디에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복남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가부장, 남성우월주의, 남성들의 폭력과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성적 대상화로 상처받다가 어느 날,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말을 하는 걸 듣게 되는 순간, 가해자 남성들은 시퍼런 낫에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가까이 있는 '복남'이 고통당하고 있는지,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눈여겨 찾아보고,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가 '복남'을 만들고, 결국 남성들 자신의 목을 따게 만드는 역겨운 제도라는 걸 눈치채고 바꿔야 한다. 이 영화는 젠더의 문제이자 권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내재한 영화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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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벽은 문이다.
이 글은 2023년 11월 1일 개봉 예정인 영화 [앵그리 애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말하기 힘든 것들을 입에 담아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주제가 금기에 가까워 혼잣말하는 것조차 천둥같이 울릴까 봐 움찔할 때가 있다.
영화 [앵그리 애니] 속 여성들의 고개도, 목소리도 한껏 바닥에서만 맴돌게 하는 그 "힘든 것"은 바로 낙태이다. 시행하지 않으면 현재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를 향한 암묵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술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들에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코트까지도 어깨 위에 하사한다.
그들의 굽은 어깨에 손을 얹어준 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MLAC(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단체였다. 뜨개질바늘로 이뤄진 애니의 이전 낙태가 잘못되었으며 안전하게 이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다독여주는 통에. 애니는 걷잡을 수 없이 자신을 휘감던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따스한 손길에 마음을 녹인다.
여전히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두 번째 낙태 수술을 끝낸 애니는 안도감과 후련함을 담은 눈물을 흘리며 그제야 미소 짓는다. 마치 축배를 올리듯 MLAC운동가들이 건넨 물을 마시며.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는. 그리고 그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자신처럼 임신 중절 수술을 받다 사망한 자신의 이웃 때문이라는 것도. 자칫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었던 그녀의 죽음 앞에서, 황망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느꼈던 애니는 좌시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두려워 완전히 쳐다볼 수는 없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저 벽을.
애니, 벽을 바라보다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애니는 고개를 빤히 들어 자신이 마주한 벽을 바라보았다. 등 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온전히 벽을 쳐다보기 까지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한다 했건만. 큰 용기를 가지고 마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은 바람 한 조각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처럼 매정해 보였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혼자서 벽을 부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 문에 잔뜩 끼어 있는 이끼라도 제거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마치 자신이 중절 수술을 받을 때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운동가처럼. 애니는 MLAC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투박한 손을 조용히 얹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임신이란 문제에 있어서 가장 불안한 주체였으며. 죄책감마저도 오롯이 홀로 짊어진 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수많은 자기 검열을 뚫고 MLAC단체의 문턱을 어렵게 넘어섰다 해도, 그녀들은 최후의 순간에 종교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죄악이라 하거나, 그냥 낳겠다며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애니는 그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겁쟁이라며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이 모든 모습은 애니가 여성운동에 참여하기 전의 모습과도 정확하게 일치했고. 수없이 많은 여성들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자신이 마주해야 할 벽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간단하고 별 것 아니었냐는 말과 함께 수술 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여성을 보며. 애니는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을 떨게 했던 것은. 이 벽자체가 아니라 벽보다 더 큰 두려움을 자아내는 덕지덕지 붙은 이끼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끼 따위 제거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으려나.라는 일말의 의심마저도 말끔히 지운채. 애니는 이끼가 사라져 본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문과 눈을 맞추며 되뇔 수 있었을 것이다.
바꿀 수 있다.라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할 때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벽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여 무너져 내린다면. 목표를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일 테니까.
무엇보다 영화 속 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그녀들의 남편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묻지도, 그렇다고 알아채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지레짐작으로 새 모카포트를 선물하는 무심함. 자신의 아내를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눈먼 강경함. 그녀들이 하는 일 따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무시에 더불어 여전히 수술의 주체인 여성들이 조금은 논의에서 빠져있는 듯한 안일함까지.
출산과 더불어 또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수술 앞에 싸우면서도. 애니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양립할 수 없으면서 자신의 옆에 악착같이 붙어 존재하는 것들이 일으키는 마찰을 감당해야 했다.
비록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영화 속 애니의 선택에 대부분 박수를 보낼 수는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으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비유되곤 하는 "외줄 타기"같은 현실에서. 애니는 이 좁고 험난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 떨어뜨려야 할 것이 있다면 기꺼이 손에서 놓아버렸다. 자유낙하하며 자신과 멀어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만을 마음속에 꼭 안은 채. 그녀는 다시 턱을 들어 길을 걸었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그녀는 알게 되었다. 손에 쥐어진 것이 불필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만 이용한다면 자신의 위태로움을 좀 더 잘 들여다보고 자세를 바로 잡을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마치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문이 되어 기꺼이 열고 다음 세계로 입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식사, 다른 마음.
사진출처:씨네랩/다음 영화
영화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의무감에 불타올라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당장 국회로 뛰어들어가 감정으로 호소하며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비장한 음악을 깔며 어떤 이의 희생 앞에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신격화해서 그 사람의 이름이 지구 밖에서도 들릴 것처럼 칭송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내어 남들 앞에서 꺼내 입 밖으로 내뱉는다.
또한 온전히 옳은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극의 중간중간 들어차 있는 토론들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녀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영화와 거리를 두게 되는 장면들도 있다. 옳음이라는 큰 갈래에서는 동의하지만, 소소한 것들에서 부딪치는 장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소위 "극적인"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하고. 현실 속에서 극복해야 하는 진짜 문제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물들에 대한 미움이나 반감이 생기기보다, 완벽하지 않고 흔해 빠진 "애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현 문제에 대해 화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연대를 형성해 힘을 보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임신 중절수술을 마친 후 함께 파스타를 나눠먹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영화 [친절한 금자 씨]에서 거사 후(?) 케이크를 나눠먹는 장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앵그리 애니의 식사 장면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다른 점이라 한다면. 자율성과 음식을 먹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 장면이 제사 후에 음식을 나눠먹는 의식 같은 장면이라고(+그 케이크 혈액으로 만든 거 아님)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사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자율성이 조금은 배제되어 보였다. 약간은 입을 닫게 하기 위한 장치도 있었으며 분노를 쏟아내고 난 뒤에 다가온 식사에서도 살아남은 자 들을 기쁘게 하는 식사는 아니었다.(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님.)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식사 장면은 누군가를 기리는 것이 아닌 앞으로 자신을 위해 든든한 한 끼를 함께 한다는 점. 그리고 자원한 사람들이 모여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희망적이고 든든한 식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파스타 자체는 맛없어 보였다. 제발 뭘 좀 많이 넣어서 먹으라고.)
아주 작고 힘없어 보이는 연대에서 시작된 그들의 웃음이. 조금 더 확대되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길이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마치면서
세이브 박지원 대표님, 씨네 21 김소미 기자님GV에서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 역시 애니가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과연 정규 의료인(으로 추정)이 되는 길을 걷는 것이. 근본적으로 애니가 가지고 있던 불만이나 두려움, 혹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될 가장 확실한 방법일까. 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물론 잘 해낼 것이다.
애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며, 과격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바꿔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은 인물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자전거 페달을 밟던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그녀를 보며 울컥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시작을 앞둔 애니가, 자신을 바꾸고 움직이게 만들었던 계기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은 조금 더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애니들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기를.
또한 애니에게도 그러했듯이.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의 모든 벽들이 다시 한번 문이 되기를 빌어보았다.
[이 글의 TMI]
1. 토마토카레에 꽂혀서 토마토 멸종시키는 중
2. 군고구마도 덩달아 씨가 마르는 중
3. 파프리카, 당근도 코끼리처럼 먹어치우고 있다.
4.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저처럼.(걸렸잖아)
#앵그리애니 #블란딘르누아르 #로르칼라미 #프랑스영화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영화리뷰어 #씨네랩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영화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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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스트레인지2> 재밌는데 아쉬워.. 쿠키영상 해석
지난 5월 4일 개봉한 닥터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멀티버스.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린 작품인 만큼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개봉 당일 바로 극장으로 향했다. 일때문에 오전에는 볼 수 없었고 심야 영화로 예매를 해둬서 혹시라도 스포라도 당할까 영화 보기 전에 SNS를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ㅎ
본격적으로 <닥터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관람 후기 및 쿠키 영상의 의미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다만 스포일러가 굉장히 아주 굉장히 많으니 아직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관람하고 다시 방문해 주시길 적극 권장한다. 이전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이나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만큼의 강력한 스포일러는 솔직히 없지만.. 그래도 모르고 봐야 매력적인 장면은 분명히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 영화인데 간략하게! 깔끔하게! 짧게! 정리해 보았다.
?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1. 최고인 부분
▶ 연출적인 면에서 공포, 호러물에 초점을 둔 최초의 마블 시네마틱 영화다웠다. 개인적으로 아찔하게 연상되는 호러물의 연출 요소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음악이나 효과음을 사용한 공포감 조성은 역시 샘 레이미 감독 다운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완다가 피를 흘리며 수로 터널에서 닥터스트레인지(이하 닥스)와 아메리카 차베즈(이하 차베즈), 크리스틴을 쫓아가는 장면은 마치 <터미네이터>의 후반부 추격씬이 떠오를 정도로(오마쥬한 장면이 맞을 듯 하다) 섬뜻했다. 또 미러디멘션 함정에서 빠져 나오는 완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주온>의 엄마 귀신이 떠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지속적으로 호러물 특유의 연출 장치가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취향 차이일 수 있지만 '히어로 물'이라는 배경 안에서 '호러' 장르의 요소를 맛 보니 그 느낌이 굉장히 색달랐다. 개인적으로 연출은 정말 극찬하고 싶다.
▶ 배우들의 연기력도 훌륭하다. 정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서로 다른 연기를 펼치는 베네딕트 컴버비치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완다 막시모프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올슨 역시 '모성'이라는 만국 공통 키워드를 아주 잘 완다라는 캐릭터에 맞게 연기했다. 개인적으로 베네딕트 컴버비치는 눈 세개 달린 닥스를 연기할 때 오는 비열함과 공허함이, 완다는 마지막에 다른 차원의 자신에게 '평생을 사랑으로 키울게'라는 말을 할 때의 눈 빛이 정말 대단했다. 역시 캐릭터 서사가 쌓이고 배우의 연기력이 뒷 바침되면 엄청난 시너지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차베즈를 연기한 소치틀 고메즈는.. 연기력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은 딱히 없었고 이번 영화에서 애초에 성장 서사를 완다와 닥스의 이야기에서 부과적으로 추가해준 느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 없이 넘어가려 한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자신감 넘치고 당돌한 원작 코믹스와는 조금 모습이 달라 잘 모르겠다. 나중에 바뀌려나?)
2. 아쉬운 부분
▶ 서사가 살짝 애매하다. 사실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나온 만큼 이야기의 개연성은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다. '멀티버스'가 굉장히 좋은 소재인게 서사에서 만큼은 거의 무적의 단어이다. 모든 개연성을 '멀티버스'하나로 설명 가능하다. 이야기가 막히면 "멀티버스 때문이야!", "다른 차원의 존재가..!" 이렇게 넘어가면 되고 "왜 많은 우주 중 이 우주로 넘어온거야?" 라고 '우연성'에 의존한 모습을 비판하면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차원의 순리 앞에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섭리이자 운명이다."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라서 그냥 가불기다. 이번 영화 역시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믿고 굉장히 우연성에 의존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 차베즈가 우리가 원래 알던 닥스를 찾아온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인데 이 부분이 우연 그 자체다. 이를 앞서 말한 '멀티버스' 안에서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 없지만, 서사적으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면 또 그 부분도 할 말이 없다.)
▶ 이런 맥거핀은 오랜만에 본다. '비샨티의 책'이 마치 이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이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면서 등장한지 10초만에 사라지니 살짝 당황스럽긴하다. 맥거핀 활용을 통해 관객에게 극심한 당황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대성공이었다. 이 부분도 사실 개인에 따라 '맥거핀' 이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진심으로 어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캐릭터 소모성이 너무 심하게 크다. 838지구의 어벤저스 '일루미나티'의 캐릭터들이 대표적인데.. 오랜만에 보는 블랙볼트(음파를 사용하는 히어로)가 반갑기도 하고 (마블의 대표적인 망작..ㅎ) 다른 모습들의 히어로들도 좋았고, 역시 가장 반가운 것은 프로페서 X 였는데 이 캐릭터들이 정리되는데 한 15분 정도 걸렸나 싶다. 완다라는 캐릭터가 '다크 홀드'를 사용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주는 혹은, '다크 홀드'와 '멀티버스'라는 개념 앞에 인간들(일루미나티 전원이 인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다만 그래도 예고편으로 기대하게 하고 멋지게 등장시켰으면서 이렇게 죽이면.. 소모성 캐릭터로만 보인다.
? 마블 영화말고 ○○○○ 영화 보고 가시면 더 재밌어요!
1. 영화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고 싶으면 <완다비전> 보세요!
▶ 사실 이렇게 말하기도 어려운게 만약 <닥터스트레인지2>로 마블영화에 입문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외에도 볼 영화가 상당히 많다. 가령 <닥터스트레인지 1편>정도는 보고 오셔야 닥스라는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고, 드라마 <로키> 정도는 보고 오셔야 '멀티버스'를 이해할 수 있으며, 직전 영화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까지도 보고 오셔야 영화의 시간적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을 보려면 직전 <어벤져스>시리즈는 봐야하고.. <어번제스>를 보려면 이전 <아이언맨>시리즈를 또 봐야하고.. 복잡해진다. (그만큼 마블이라는 영화의 서사가 정말 많이 쌓였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 하는 말은 적어도 '마블 시네마틱'이라는 대서사를 어떤 방식으로든(유튜브에 요약본이 워낙 많으니) 알고 있는 사람에게 드리는 말이다.
▶ 디즈니 +의 <완다비전>을 보지 않는 다면 '완다'라는 중심 캐릭터 서사가 부족하고 이는 곧 감정선 공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베스트는 앞서 말했 듯이 지금까지 나온 모든 마블 시리즈를 다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마블 자체가 매니아틱한 영화 만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어 이번 영화도 '멀티버스'라는 개념만 알고 가면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완다'라는 인물이 극도로 악녀(마녀)로 묘사되는 부분에 있어, 단순히 '모성애'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그동안의 서사가 있기 때문에, <완다비전>정도는 반드시 챙겨 보고 관람하시는 것이 좋다. 설혹 안보고 영화를 먼저 보셨더라면 지금 다시 드라마를 보고 2회차 관람을 추천드릴만큼 <완다비전>을 보고 안보고의 차이가 영화 감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완다비전>을 아예 모르면 처음 닥스와 완다가 만나서 하는 대화의 '웨스턴 뷰'가 무엇인지 조차 모를테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2. 영화적 장치, 영화의 연출을 공감하고 싶으면 <이블 데드> 보세요!
▶ 마블 영화를 보는대 왜 전혀 상관도 없는 이상한 옛날 영화를 보고 가면 좋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 데드>를 보고 가면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님의 연출 기법이 현재의 CG를 만나 훨씬 높아진 퀄리티를 자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영화 연출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부분일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영화를 보는 내내 굉장히 B급 스러운 호러 연출이 무언가 어색하다고 느끼셨다면 지금 당장 <이블 데드>를 관람해보시길.
? <영화를 관통하는 '행복(happy)'과 '이성(reasonable)'>
1. "Are you happy?"
▶ 영화 내내 나오는 이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관통한다. 영화는 마법, 마녀, 악마 등의 서구적인 소재를 잔뜩 사용하지만 굉장히 불교스러운 서사 흐름이다. '멀티버스'라는 것을 악용하면 대혼돈인 '인커전'을 만든 다는 것은 불교의 섭리를 거부하면 재앙이 따르는 것과 비슷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 역시 일정 부분 비슷한 감이 있다. 영화는 '완다'라는 캐릭터의 끔찍함을 여러 연출을 통해 보여주지만 종장에는 결국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완다'라는 캐릭터 자체가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영화 내내 계속된 이 질문은 '행복'이라는 요소가 결국 자기 내면에 위치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설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2. "Reasonable"
▶ 영화는 이성적임을 굉장히 강조한다. 애초에 이 '이성적임'이 완다가 타락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어벤져스>에서 닥스가 타임스톤을 타노스에게 넘기는 것은 결국 인류 절반의 종말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다시 구해오기는 하지만) 이 부분이 닥스가 가진 '정의'의 이성적인 행위인데, 어찌보면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리가 '완다'에게는 해당이 안된다는 점은 굉장히 '비이성적'이다. 완다가 타노스 마냥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아이'를 보고싶어 지금까지 알지도 못 하던 '아메리카 차베즈'라는 아이 하나를 희생시킨다는데 마치 너무나 끔찍한 마녀, 괴물로 치부되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비이성' 그 차체이다. '완다'역시 그동안 어벤져스로 활동하며 지구를 지켰고 노력했으며 사실 닥스 보다 더하면 더 열심히 지구를 지켰을 지도 모른다. (퀵실버까지 잃어 가며 열심히 어벤져스로 활동했으니까..) 어찌보면 닥스의 선택이 비전을 죽였고 이는 그녀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허투로 만들었기 때문에..'내로남불'의 기분이 들어 화가 잔뜩 난게 아닐까..
? 쿠키 영상의 의미는?
1. 쿠키 영상 (1) _ 클레아의 등장, 도르마무 재등장 떡밥
▶ 첫 번째 쿠키영상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거리를 걷던 닥스에게 갑자기 등장해서는 "당신 때문에 인커전이 발생했으니 해결해야 한다"며 한 여성이 자줏빛 검으로 차원을 갈라 다크 디멘션을 연다. 이어서 인커젼이 무섭냐고 도발하자 스트레인지는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답하곤 다크 디멘션 안으로 함께 들어간다. 여기서 여성은 바로 '클레아'이다!
▶ 클레아는 자줏빛 에너지로 이루어진 검으로 차원을 가를 수 있다.(아메리카 차베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원작에서는 '닥스'의 연인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닥터스트레인지 1편>의 '도르마무'의 조카이다. 때문에 닥스의 다음 영화나 다음 등장에 '클레아'를 통해 '도르마무'가 다시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쿠키 영상 (2) _ 제 4의 벽을 허문, 샘레이미 다운 쿠키 영상
출처 : https://youtu.be/hV_dgZ7yD-M
▶ 영화 중간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으로 인해 3주간 스스로 얻어맞은 피자볼 노점상인 브루스 켐벨 배우가 등장한다. 드디어 멈춘 주먹을 보고 미친듯이 웃다가 멍든 얼굴로 "다 끝났어!(It's over!)"를 외치며 마무리된다. 이 타이밍에 극장 안 관객들 모두가 제대로 웃었다. 해석하면 말 그대로 닥스의 마법이 다 끝났다는 의미이지만 그가 바라보는 방향이 카메라, 즉 관객들 쪽에 시선을 두고 외치는 거라 말 그대로 영화가 끝났다고 알려주는 제4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데드풀> 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는 이전 샘 레이미 영화 <이블 데드>를 오마주한 영상이다. 지금 영상에 나온 배우가 이번 <닥터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나온 배우와 동일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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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짧지만 깁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혹여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더라도 몇 곡을 듣고 나면 아, 이 곡이 그 사람이 쓴 거였어? 라는 반응을 들을 수 있다. 영화나 음악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엔니오 모리꼬네가 그 유명한 '넬라 판타지아'를 작곡하고도 오스카를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기도 하다. 본인조차 평생 작곡한 곡의 수를 알지 못했을 만큼 수많은 곡을 작곡한 모리꼬네는 그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영화음악계의 대부였으며, 그런 만큼 모리꼬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모리꼬네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모리꼬네의 생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덕분에 관객은 그의 사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임에도 모리꼬네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모리꼬네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도 모리꼬네를 알았던 이들과 모리꼬네에 대해 잘 알았던 주변인 혹은 영화음악 후배들의 인터뷰로 가득 차 있다. 90세가 넘도록 장수했음에도 죽는 순간까지 영화음악을 놓지 않았던 모리꼬네의 음악은 2시간 3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장대했다. 영화는 빠른 속도로 모리꼬네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숨가쁘게 모리꼬네의 인생을 소개한다. 모리꼬네와 동시대를 살아왔던 토르나토레 감독에게는 모리꼬네의 초창기 작품들이 익숙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평균 나이대가 낮을 수밖에 없는 관객에게 영화 초반은 신선한 동시에 지루할 수밖에 없다. 서부영화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와 모리꼬네가 협업을 했다는 사실에(정확히는 그만큼 모리꼬네가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는 관객도 많지만 그만큼 레오네의 이름 자체가 생소한 관객도 분명 존재한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모리꼬네의 인생 초반 업적도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다양한 관객을 배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던 히스 레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이 앰 히스 레저>에는 히스 레저의 인터뷰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았고, 짧았던 생애를 강렬한 불꽃처럼 살아냈던 그를 자세히 소개할 시간이 있었다. 히스 레저가 배우 이외에도 뮤지션으로도 활동했다는 것과 그가 연출했던 뮤직비디오를 소개하고 무엇보다도 사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을 연기했을 때의 히스 레저를 파헤치며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조커 연기가 사인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요절한데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히스 레저의 필모그래피는 모리꼬네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짧기에 영화는 여유를 두고 히스 레저라는 인물 자체에 깊이 다가간다. 반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모리꼬네 자체보다는 모리꼬네가 헌신했던 영화음악에 더 치중하며, 어느 한 곳에 방점을 찍는 대신 수많은 영화음악을 조금씩 맛보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다보니 관객은 모리꼬네의 수많은 음악 가운데 더 친숙한 음악을 한번 더 만나거나 미처 몰랐던 모리꼬네의 일면을 만나보는 경험은 하지 못한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다른 곳도 아닌 돌비관에서 시사회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이 아마도 영화를 통해 '넬라 판타지아'를 위시한 아름다운 모리꼬네의 음악을 다시 한번 웅장한 사운드로 들을 수 있으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영화는 모리꼬네의 기나긴 삶과 수많은 업적을 담아내느라 정작 그의 음악을 한 곡이라도 제대로 다루지는 못한다. 비록 <미션> 속 '넬라 판타지아'가 달성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리꼬네가 오스카를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과 당시 모리꼬네가 느꼈던 심정, 그리고 오스카 회원들이 느꼈던 미안함이 담겼으나 이는 모리꼬네가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다. 모리꼬네가 순수음악 대신 영화음악을 택하는 바람에 음악계에서 인정받는 데 지난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 모리꼬네의 일생에 걸친 업적을 소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을까. 이후 영화는 결국 오스카가 모리꼬네에게 공로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그가 <헤이트풀8>를 통해 늦은 나이에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음을 소개하면서 모리꼬네에게 오스카란 무엇이었을까를 관객에게 의문으로 남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2시간 36분을 꽉 채운 인터뷰와 자료들로 인해 러닝타임은 숨가쁘게 지나간다. 또한 모리꼬네의 초창기 음악에는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평생에 걸쳐 영화음악에 헌신했던 그의 삶에 몰랐던 면이 있었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서부영화에 모리꼬네가 끼친 영향을 영화를 통해 접하고 나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게끔 만든다. 어찌 보면 그가 작곡했던 서부영화 음악들을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현시대의 감독들이 성장할 수 있었고, 결국엔 <미션>이 아닌 서부영화의 계보를 이은 타란티노의 영화를 통해 모리꼬네가 오스카를 수상했다는 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헐리웃뿐만 아니라 본국인 이탈리아 영화계, 때로는 왕가위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포함한 아시아 영화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리꼬네의 종착점이 시작점과도 같은 서부영화였다는 점은 다소 두서없어 보이는 이 영화 속에서 모리꼬네의 삶에 대한 힌트로 작동한다.
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모리꼬네처럼 평생에 걸쳐 한 분야의 업적을 수도 없이 쌓고, 또 장수했던 이는 많지 않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한 발짝 떨어져 모리꼬네의 삶을 관망하기보다는 친구로서 모든 면을 조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관객은 조금은 두서없지만 모리꼬네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찬사를 긴 러닝타임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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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잔인한 인생.
1961년, 뉴욕의 뒷골목에 자리 잡은 어느 라이브 카페. 주인공 ‘르윈(오스카 아이작)’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무대를 마친 후,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얘길 전해들은 그는 밖으로 나간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르윈을 구타한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곳저곳 얻어맞는 르윈. 이것이 바로 <인사이드 르윈>의 첫 시퀀스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영화는 시작된다.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은 무명의 포크가수다. 얇은 코트 하나로 한겨울 칼바람을 버텨야 하는 신세에, 자기가 참여한 노래의 저작권료도 받을 수 없는 무일푼 처지다. 집도 없어서 온갖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잠을 잔다. 여기까지는 처량하게 봐줄 만도 한데, 코엔 형제는 언제나 그랬듯 자신들의 캐릭터에 심술을 부린다. 그는 동료의 여자친구와 애를 만들고는 책임도 못 져서 낙태를 시키는데, 그것도 벌써 두 번째다.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내 이상적인 미래상이야”라며 불편한 농담을 던진다. 모처럼 초대받은 식사자리에서는 옆에서 자기 노래에 화음을 넣었다는 이유로 신경질을 부리며 자리를 뜬다. 아. 정말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르윈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코엔 형제는 전작들에서 주로 인생에 대한 회의를 역설했다. 그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평소 인터뷰에서 무심하고 냉소적인 그들의 말투로 “뭐 어쩌겠어, 인생이 그런걸~”하고 말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들은 앞일에 대해 희망이나 낙관을 갖지 않는다. 그들이 주요 소재로 삼는 것은 범죄나 폭력이며, 이야기는 오해와 엇갈림으로 전개된다. 인물들은 줄곧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구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리곤 한다.
<인사이드 르윈>도 마찬가지다. 60년대 미국, 포크송을 부르는 인디 뮤지션의 이야기라는 점이 꽤나 흥미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망할 대로 망한 한 남자의 초라한 실패담이다. 르윈은 정말 끝까지 잘 ‘안 된다’. 유명 매니저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지만 역시나 결과는 별로고, 심지어 더 이상 음악 못하겠다 싶어 오래전 몸담았던 선원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자격증을 잃어버려 배에 발 한번 붙이지 못한다. 그냥 삶 자체에 발이 꽉 묶여버린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첫 시퀀스와 동일하다. 한번 더 보는 장면이지만 이번에 관객들은 르윈이 누구에게, 왜 맞는지 알 수 있다. 이 수미상관의 구조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자신을 구타한 남자가 차를 타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르윈이 속삭이는, “또 봅시다(Au revoir)”라는 대사다. 마치 잘 안 풀리는 이 삶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전언 같아 섬뜩하게 들린다.
코엔 형제는 인생은 그렇게 안 좋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골목에서 쓰린 몸을 부여잡고 앉은 르윈의 모습과 함께, 카페 안에서 그의 다음 순서로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 내내 르윈이 부르는 노래에 그토록 집중해주던 코엔 형제가 정작 엔딩 크레딧과 함께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건 르윈의 노래가 아닌 밥 딜런의 노래다. 참, 잔인하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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