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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텔로2025-08-03 18:01:09

<헤어질 결심>, 또 다른 복수극

<헤어질 결심> 리뷰

 

 

또 다른 복수극

 

 

 

처음에는 <헤어질 결심>을 멜로 드라마로만 받아들였다. 죽음을 통해 영원을 얻는 미결의 사랑. 그 아이러니가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할수록 이것은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복수극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총 세 명본인의 엄마, 남편, 철썩의 엄마을 살해한 서래는 그녀의 독백처럼 독한년이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표면 아래 슬픔이 계속 침전되어 쌓여가는 중이다. 이때 복기해야 할 것은 해준이 질곡동 사건의 범인 홍산오를 잡기 위해 그의 측근 이지구를 신문할 때, 그러니까 잡혀서 감옥 가느니 경찰 몇 죽이고 자살할걸요?”라고 이지구가 토로할 때 난데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서래의 모습이 삽입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결은 그녀와 홍산오를 연결시키면서 그녀의 내면에 자살 충동이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욕망과 함께 총 세 명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은 그녀가 난폭한 동시에 용감한 인물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호미산에서 해준에게 한 다음의 대사는 어떤 공포영화 대사보다 썸뜩하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돌이켜 보면, 마지막 시퀀스에서 서래와 연락이 끊긴 해준이 다짜고짜 그녀가 위험한 행동을 할 것이라 예단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해준은 그때부터 서래의 자살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은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서사라고 할 수 있는 질곡동 사건에 있다. 형사와 피의자 간의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서사와 질곡동 사건은 은밀히 내통한다기보다 차라리 평행하다. 왜 영화는 이 질곡동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일까. 해준은 이 사건에서 홍산오의 자살을 목격한다. 홍산오는 가인을 죽을 만큼 좋아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현세에 남겨두고 떠난다. 그때 프레임 바깥에서 거의 절규하듯 소리치는 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홍산오, 하지 마!" 해준은 이를 통해 두 가지를 배운다. 상대를 너무 사랑하면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 자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아주 처절하게 괴로워한다는 것. 해준은 질곡동 사건에서의 교훈을 토대로 서래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는 서래를 잃을 수 없고, 그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홍산오와 서래의 자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홍산오는 자살 행위가 경찰에 잡히지 않고 사랑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서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해준과 서래 사이의 어두운 거래가 담긴 핸드폰은 버리면 그만이며, 가장 큰 제약이었던 해준의 아내는 그와 결별하고 집을 떠났다. 이제 둘은 만나서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 거부한다는 건 서래의 마음에 사랑보다 증오심이 더 커졌다는 방증이다. 해준이 그녀의 마음을 충만한 사랑에서 증오와 고독과 체념으로 변화시킨 흔적은 이포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중후반부에 계속 감지된다. 임호신이 살해당한 날 해준은 자신을 보기 위해 이포에 온 서래를 찾아가 "이러려고 이포에 왔어요?"라며 그녀를 범인으로 낙인찍는다. 사랑의 전제 조건이 믿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래에게 이 말은 사실상 '배신'이다. 믿을 수 없다면 사랑은 끝난 것이다. 그러니 해준의 말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심지어 해준은 임호신의 살해범이 왼손잡이라고 직접 말하면서도 오른손잡이 서래를 의심한다. 그의 새로운 파트너 연수가 "저분(서래) 오른손잡인데요?"라고 의문을 표하면, 해준은 서래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마침내 쐐기를 박는다. "그러니까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해서 저 여자가 범인인지." 부산에서 해준이 서래에 의해 붕괴되었다면, 이포에서는 서래가 해준에 의해 붕괴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순수하지 않다. 거기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증오와 혐오의 감정도 포함된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처럼 수시로 모습을 뒤집으며 위험천만하게 곡예를 탄다. 해준을 죽을 만큼 좋아한 서래는 이제 그를 파괴하려 한다. 그녀는 부산에서 그의 붕괴를 목격하면서, 그에게 직업윤리라는 가치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해준은 서래를 만나기 전까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고 모범적인 형사였다. 그는 아내와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사건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게 직업윤리의 붕괴는 곧 삶의 붕괴를 뜻한다. 서래는 미결된 사건, 다시 말해 형사로서의 직업적 결함이 극심한 불면증의 원인이 되어 그를 허약하게 만든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래가 그간 저질렀던 살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수장되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을 다시 사랑하기로 한 해준에게 그것의 불가능성을 선언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해준의 형사로서의 무능력을 지적하는 것이다. 해준은 그녀의 연인으로서, 특히 형사로서 그녀를 찾을 때까지, 어쩌면 죽을 때까지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서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준은 "참 불쌍한" 남자다.

작성자 . 코스텔로

출처 . https://brunch.co.kr/@shadows/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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