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_Rec2025-08-05 12:21:52
다름은 혼자가 되는 이유가 아니라, 함께일 때 더 찬란해지는 이유
영화 <랑데부> 리뷰
[랑데부] (2023)
감독: 박윤주
시놉시스: 누나는 남동생이 외계인에 빠져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신경 쓰인다. 동생의 생일날, 그 이유를 눈치챈 누나가 외계인과 만나겠다는 남동생의 계획을 방해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크고 작은 마음이 드러난다.
출처: 인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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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유독 풍부한 아이들이 있다.
나도 한때 상상 속 친구와 대화하고, 초능력을 믿고, 비밀 요원을 자처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랑데부>의 주인공 역시 그런 기발한 상상과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 자신이 외계인이고, 외계인과 소통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 믿음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다름’에서 비롯된다. 가족 중 유일한 A형 혈액형, 혼자만 쌍꺼풀이 없는 외모, 그런 자신이 어쩐지 남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의문. 아이는 자신의 생일날 외계인들이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 확신하고, 그 신호를 보내기 위해선 ‘돌팔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팔찌는 누나가 가지고 있다. 팔찌를 돌려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생이 외계인이라고 믿는 걸 그저 허무맹랑한 장난이라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동생이 떠나버릴까 두려워서일까. 누나는 처음엔 그저 동생이 엉뚱하고 장난기 많은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복잡해진다.
랑데부 -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순간
그러기에 동생이 더이상 외계인을 찾지 않도록 팔찌를 더 꽁꽁 숨긴다. 동생이 왜 우주로 떠나고 싶은지, 또 왜 자신을 외계인이라 생각하는지, 왜 ‘다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누나가 진짜로 이해해야 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편견을 깨고 동생의 세계와 함께하기를 선택한 누나. 외계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함께 춤을 추며 외계어를 외치는 장면에서 바로 남매의 우주가 하나가 되는 반짝이는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동생이 정말로 우주로 가버릴까 팔찌를 숨기고 걱정하는 누나는 이미 외계인을 믿는 동생의 우주에 한 발짝 들어와 있던 것 아닐까? 영화 제목인 ‘랑데부’(둘 이상의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일)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떠날 용기와 돌아올 이유
동생이 말하던 대로 외계인은 정말 UFO를 타고 남매의 집을 찾아온다. 동생은 그토록 꿈꾸던 우주 여행을 떠나지만, 누나는 동생이 영영 떠나버릴까 걱정된다. 그래도 결국 동생은 ‘가족’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소외감을 안겨줬던 이 지구로 돌아온 동생은, 어떤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다름’이라는 벽, 그럼에도 우리를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게 만드는 그 중력 같은 건,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랑데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을 존중하고 축복할 때 비로소 진짜 유대가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다. 단순히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다름 덕분에 더 찬란한 순간들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영화가 참 따뜻하고 귀엽다.
궤도를 돌며 결국 만나게 될 우리 모두의 우주에게
입양가정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입양아나 입양가족만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소외감이나 이질감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우주를 뚝심 있게 잘 가꿔나가기를.
또, 그만큼 타인의 우주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축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힘든 순간, 자신만의 세계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중력이 어디서 오는지 곰곰이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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