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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2025-08-17 23:45:26

이해는 못 해도 사랑해

<내 말 좀 들어줘> 리뷰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타인을 대할 때 여유를 잃는다. 작은 일에도 쉽게 기분이 상하고 뾰족한 말로 상대를 찌르고 싶어 하는 순간이 생긴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점점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다. 영화 <내 말 좀 들어줘>는 그런 우리의 단면을 집요하게 비춘다.

 

 

 

중년 여성 ‘팬지’는 하루 종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짜증내기 바쁘다. 아침이면 창가에 날아와 잠을 깨우는 비둘기도, 옷을 입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웃도 그녀에겐 모두 거슬린다. 대수롭지 않은 불편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독설을 퍼붓는다. 이런 태도는 가족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묵묵부답인 남편, 책과 노래 속에 갇힌 아들과 함께하는 삶. 세 가족이 함께하는 식탁에는 그녀의 불평과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하다.

 

 

 

 

 

 

이웃이나 가구점 직원조차 지쳐 고개를 젓지만, 팬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는 있다. 바로 여동생 ‘샨텔’이다.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샨텔은 틈틈이 언니를 보듬으려 한다. 팬지네 집과 달리 샨텔의 가족은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언니의 날 선 말투와 무기력한 가족 분위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팬지는 어머니가 자신을 차별했고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한다. 샨텔은 팬지와 다르게 살아왔기에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남들처럼 외면하지 않고 “이해는 못 해도 사랑해”라며 포옹한다. 물론 샨텔의 딸들도 사회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들은 불편과 불만을 집까지 가져오지 않는다. 사소한 짜증 하나하나를 늘어놓는 팬지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다.

 

 

 

 

 

 

샨텔은 ‘어머니의 날’을 맞아 팬지 가족을 초대해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결국 성과는 없다. 묵은 감정을 풀기 위해선 적극적인 제스처와 이해가 필요하지만 팬지 가족은 그러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현실 속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팬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음의 여유와 사랑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쉽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과거의 트라우마, 지친 인간관계, 번아웃 같은 무게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 ‘팬지’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를 힐난하기보다 잠시라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지 모른다.

 

 

 

팬지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다. 영화 제목 <내 말 좀 들어줘>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화려한 극적 화해 대신 소통 부재가 낳는 현실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작품을 보고 나면 현실의 ‘팬지’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본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 SUE

출처 . https://blog.naver.com/cine_soo/223973684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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