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8-24 18:27:33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시간이 필요해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어린아이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보통 한 사람의 생애에서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다. 아이가 부모, 형제, 자매, 조부모, 친인척과 일대일로 직접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게 되는 다른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도 아이의 소우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가족은 아이의 성격, 인격, 인생관, 가치관, 장래희망, 심지어 행동반경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이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라면, 학교 친구를 비롯한 타인이 자신의 가족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주기를 아이는 간절히 바랄 것이다.
영화 <비밀의 언덕>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명은(문승아 배우)'의 삶에서도 엄마, 아빠, 오빠, 할아버지, 삼촌은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이다. 명은은 반에서 누구보다 야무지고 똑똑하지만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거짓말의 성을 쌓기 시작한다. 명은의 거짓말 속 세계에서 아버지는 한량이 아니라 번듯한 종이 회사의 직원이고, 어머니는 현모양처 전업주부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6년 한국 사회에서 회사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은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인) 중산층 가족상이었고 명은도 그런 가족을 꿈꾼 것이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글쓰기를 통해서 명은이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다듬고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정의 화목한 상태를 시종일관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족만큼 애증으로 점철된 복잡한 인간 관계도 없기 때문에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묵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 가족에 관한 거짓말을 할 결심을 했을 때 명은에게 이 말을 들려줬다면 명은도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십 대 소녀의 키처럼 시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를 치르며 명은의 마음도 빠르게 자라서 가족을 포용할 공간을 마련한다.
명은의 엄마와 아빠가 시장에서 운영하는 젓갈 가게의 맛깔스러운 젓갈들을 보며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젓갈을 만들 때 원재료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돋우는 소금이 꼭 필요한 것처럼 가정의 붕괴를 막고 가족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드는 진솔한 소통이 절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짜고, 맵고, 쿰쿰해서 처음엔 먹고 싶지 않지만 그 맛을 깨닫고 나면 매끼 젓갈을 찾게 되는 것처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삭히고 있던 비밀을 가족에게 털어놓고 나면 매일 가족을 더 찾게 되지 않을까?
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 역의 문승아 배우, 명은의 담임 선생님 '애란' 역의 임선우 배우, 엄마 '경희' 역의 장선 배우, 아빠 '성호' 역의 강길우 배우 등 주조연들은 모두 조화롭게 극을 이끌어 간다. 또한 이지은 감독이 단역임에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준 명은의 반 친구들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여 실재했을 것 같은 1996년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힘을 보탠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과 연출도 빼어나고 1996년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해 시대극으로서도 흠잡을 곳이 없는 완성도를 갖췄다. 현재 시나리오 단계에 있다는 이지은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8월 23일 씨네Q 신도림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주최 [경계를 넓히는 영화: 비밀의 언덕 상영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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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마지막에서야 빛을 봤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벤져스, 2012>의 등장은 "슈퍼 히어로"장르를 대세로 올리기도 했지만, "협업" 일명 "크로스오버"를 통한 세계관의 설정은 업계 관계자를 떠나 해당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기획의 중요성을 와닿게 만들었다.
그렇게, "디즈니"와 "마블"의 성공에 "워너"가 "DC"를 인수하며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좋지 않았다.
이번 <플래시>를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작업은 막을 내렸다. - 아니, 내리지도 못할뻔했지만...영화는 온갖 일을 도맡는 "베리, "플래시"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을 구하던 와중에 "베리"는 뜻하지 않게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과거로 날아가 살해당한 어머니를 구하는 데에 성공하나 그 일로 과거와 미래가 바뀌게 되고 마는데...1. 멀티버스마저 늦다니!
앞서 줄거리에서 소개한 "시간 여행".
이는 해당 영화에서 "멀티버스"로 소개되는 소재이나 이 자체만으로도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든다.
이런 이유에는 경쟁사 "마블"에서는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라는 부제로 쓰여있듯이 '먼저'를 빼앗긴 점도 있겠지만, 질리도록 쓰고 있기 때문이다. - 물론, "DCEU"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무엇보다 "멀티버스"를 차용한 작품을 보기 위해선 해당 작품뿐만 아니라 별개의 작품들까지 선행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르이다.그러나, 이런 걱정과 다르게 영화 <플래시>의 진입 장벽은 높지 않다.
이번 <플래시>에서 언급되는 영화들로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1989>, <맨 오브 스틸, 2013>,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2017>가 있지만 해당 캐릭터들의 관계만이 인용된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 자체의 허들이 높지 않아 여느 슈퍼 히어로 영화처럼 즐기는 데에 무리는 없지만, 이런 부분이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결국, 영화 <플래시>도 영웅의 탄생 이야기로 우연한 사고와 실수를 덮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아냈다.그럼에도, 해당 작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에는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있다.
해당 소재부터 "정사(正史)"에서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부여해 약간의 변화를 주는 데에 있다.
밝힐 수 있는 부분만 말해보면, 극 중. "벤 에플렉"이 아닌 "마이클 키튼"이 "브루스 웨인"이 되었으며 "슈퍼맨"이 아닌 "슈퍼걸"이 등장하는 차이는 똑같은 장면임에도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이외에도 영화에서 말하는 <백 투 더 퓨처>와 <풋루스>의 주인공이 다르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모든 게 흥미롭다.2. 그래서, 진짜로?
결론을 짓는다면, 영화 <플래시>는 "멀티버스"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슈퍼 히어로의 탄생담을 가장 "DC"스럽게 끝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 건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멀티버스"는 "정사(正史)"에서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부여한 상상에 불가하다.
실체하지 않는 역사를 실제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패러독스"가 관객들에게 남는 것인데,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슈퍼맨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점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tmi. 1 - 쿠키 영상은 1개로 마지막에 나온다.
· tmi. 2 - 2022년 10월. <플래시 2>의 각본이 완성되었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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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 후 | 야심이 재미를 앞선 좀비 신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물학 무기 연구소에서 '분노 바이러스'가 유출되어 좀비가 생겨난 지 어언 28년. 영국 전역이 봉쇄된 가운데, 일부 생존자들이 모인 섬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12살 소년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처음으로 본토로 나갈 준비를 한다. 아버지 '제이미'(에런 타일러존슨)와 함께 감염자를 사냥하는 일종의 성인식을 치를 자격을 얻었기 때문.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마주하면서도 끝끝내 첫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하지만 스파이크는 사냥 이후 여러 의문에 사로잡힌다. 본토에서 본 불은 무엇인지, 아버지는 의사 '켈슨'(랄프 파인즈)의 존재를 알면서도 왜 병에 걸린 엄마 '아일라'(조디 코머)의 치료를 그에게 안 맡겼는지, 아버지가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지 등. 결국 스파이크는 켈슨에게 엄마를 데려가기 위해 다시 본토로 나서고, 낙오한 스웨덴 군인 '에리크'(에드빈 뤼딩) 등을 만나며 은폐된 진실을 발견한 끝에 자신의 성인식을 끝마친다.
신화적 야심을 받치지 못한 좀비물의 재미
2003년에 개봉한 <28일 후>는 문자 그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좀비 영화 장르를 재창조했기 때문. 기존 좀비 영화 속 좀비는 주술로써 만들어졌고, 느리게 움직였다. 하지만 <28일 후>이 보여준 좀비는 전혀 달랐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탄생했고, 사람보다 빠른 공포의 존재였다. 좀비 영화 중 가장 흥행 기록이 좋은 <월드 워 Z>나 <부산행> 속 좀비만 봐도 <28일 후>의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실감할 수 있다.
<28일 후>가 남긴 발자국 덕분에 <28년 후>에는 엄청난 기대가 쏠렸다. <28일 후>의 속편인 <28주 후> 이후 18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고, <28일 후>의 감독과 작가인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모두 복귀했으며, 심지어 새 트릴로지 중 첫 번째 작품이니까. <28년 후>는 좀비 등장 이후 28년이 지난 시간대를 다룬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다른 국가들이 브리튼 섬을 봉쇄한 가운데, 영국에 남은 생존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안타깝게도 <28년 후>는 감독, 작가, 그리고 전작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확장되고 구체화한 세계관은 매력적이고, 디스토피아 사회를 배경으로 새로운 신화를 보여주려 한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의 기획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신화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재미와 관객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야심 찬 의도와 별개로 <28년 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관객이 외면하는 재미없는 신화는 실전되기 마련이니까.
아버지라는 허상을 깨는 성인식
<28년 후>가 보여주는 미래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천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과거의 세계다. 인간이 자취를 감춘 브리튼 섬 본토에서는 사슴 수백 마리가 무리 지어 뛰어다닌다. 사람들은 마치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작은 마을에서 사냥꾼과 농부 등으로 나뉘어 지낸다. 옷을 입지 않은 채 본능에 충실한 채로 사냥해서 먹고사는 감염자들의 모습은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이처럼 태초의 공간과 원시의 시대로 돌아간 상황에서 <28년 후>는 스파이크의 성인식을 풀어낸다. 본토에서 격리된 섬에서만 자란 소년은 처음으로 집과 가족 너머의 세상을 경험하며 성인으로 거듭난다. 성인식은 보통 다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가족의 품을 떠나서 홀로서기를 할 자질을 지녔음을 증명하고, 그간 몰랐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으며, 결국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성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크의 이야기는 세 가지 의미를 모두 충족한다. 우선 그는 갑작스럽게 공격당하거나 좀비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그는 겁먹고 얼어붙는 대신 훈련받은 대로 화살을 날리면서 사냥꾼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한다. 감염자들을 처음 마주했던 것처럼 가족의 진실도 처음으로 직시한다.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의 변명을 들으면서 스파이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취약성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래서 스파이크는 가족의 품을 떠나서 섬을 떠나서 집을 떠나서 본토로 세상으로 향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자신을 속인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고, 한 명의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먹는다. 처음 사냥할 때만 해도 스파이크에게는 세상의 전부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의 허상이 정작 그의 첫 사냥 성공을 축하하는 성인식 파티를 하는 동안 밝혀지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닌 이유다.
엄마라는 마지막 울타리
하지만 스파이크의 성인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기 때문. 그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스파이크는 아버지의 불륜뿐만 아니라 그가 숨겨 왔던 진실을 하나 더 알아낸다. 사냥을 떠나 하룻밤을 보낼 때 발견한 불의 주인이 의사 켈슨이고, 그가 수백 구의 생존자와 감염자 시체를 태우며 '뼈의 사원'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
이때 스파이크는 아버지가 들려준 사실을 본인이 보고 싶은 방향으로 믿어 버린다. 아버지는 시체를 굳이 모아서 전부 태우는 행위에 의문을 품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켈슨의 행위보다는 그가 의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일부러 켈슨의 존재를 숨겼다고 결론 내린다. 의사에게 데려가는 대신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일부러 방치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홀가분하게 살려는 목적이었다고.
결국 스파이크는 어머니를 데리고 섬을 떠나 켈슨에게 향한다. 아버지에 대한 편견, 의사라면 무조건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매달린 채로.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진실을 취사선택하는 미숙함은 그의 여정 곳곳에서 드러난다. 야간 경계 중 좀비에게 물리기 직전까지 졸고 있는 그를 엄마가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해 엄마를 향한 애착은 그의 성인식을 마지막까지 방해하는 울타리나 다름없다.
성인식을 완성하는 '메멘토 모리'
이 울타리는 켈슨을 만나서야 무너진다. 스파이크의 눈을 가리고, 그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강박과 믿음이 비로소 깨진다. 스파이크의 변화는 그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초반부에 그는 당연히 죽어야 하는 존재와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존재로 세계를 나누어서 바라본다. 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다. 감염자들은 죽여야만 하는 사냥감일 뿐이고, 엄마는 절대 죽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아버지 없는 본토에서 그의 맹신은 서서히 금이 간다. 임신한 감염자의 출산 과정을 목격하고, 태어난 아이가 빨간 눈을 지니지 않은 비감염자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당연히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가르침에 처음으로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또 다른 믿음에도 균열이 생긴다. 가까스로 만난 켈슨에 따르면 어머니는 암에 걸렸고, 이미 전신에 암세포가 퍼졌으며,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
켈슨의 말을 못 믿던 스파이크는 자신이 시한부임을 오래전부터 느꼈다는 아일라의 고백을 들은 후에야 그간 부정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진실을 마침내 수용한다. 더 나아가 '메멘토 아모리스'(Memento Amoris), '사랑을 기억하라'라는 가르침도 실천에 옮긴다. 죽음을 기념하는 방법에 따라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배우면서 그는 비로소 어머니라는 울타리 너머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이는 스파이크가 아버지와 함께 겪은 초반부 성인식과 대조되는 후반부 장면들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랑 동트는 하늘을 봤던 스파이크. 그는 이제 '뼈의 사원'에 안치된 엄마의 유골 옆에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한다. 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섬에 돌아왔던 것과 달리, 엄마의 이름을 붙여준 아기를 아버지에게 맡긴 채 다시 본토로 떠난다. 그렇게 스파이크는 진정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증명해 보인다.
대니 보일이 어레인지한 신화
이렇게 보면 <28년 후>는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수백 년 전으로 되돌아간 잉글랜드를 배경 삼아 새롭게 구성한 신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스파이크의 성인식에서는 원형적인 신화소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일례로 스파이크와 부모님의 관계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나란히 누워있는 스파이크와 엄마 사이로 제이미가 끼어들고, 그 직후에 스파이크와 제이미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파이크가 맞이한 결말도 오이디푸스의 최후와 비슷하다. 그들은 예정된 가족의 비극을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끝내 어머니를 잃은 후에 가족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같다. 그나마 스파이크는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자기 잘못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남은 생을 죄책감 속에 살게 된 제이미 입장에서는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28년 후> 트릴로지를 평범한 장르물이 아니라 신화적 서사시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속편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명확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지미'(잭 오코넬)를 소개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그의 이름을 여러 복선을 통해 암시한다. 예를 들어 스파이크는 첫 사냥 도중 한 허름한 건물에 매달려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살아서 매달린 채로 감염자에게 물리고 까마귀밥이 된 그의 몸에는 지미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지미는 감염자에게 쫓기던 스파이크를 구해주면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때 그의 외관이 흥미롭다. 금색 장발에 금 장신구로 치장한 스타일을 보다 보면 BBC의 간판 MC였으나 아동 성범죄자로 밝혀진 '지미 새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목에 걸린 역십자가 목걸이는 <28년 후> 트릴로지가 가족 신화에서 멈추지 않고 선과 악, 종교와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찰하는 시리즈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신화와 좀비물의 충돌
문제는 <28년 후>가 신화를 들려주는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것.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화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력을 유지며 회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메시지를 담아낸 이야기 그 자체가 흥미롭고 흡입력이 있었기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살아남았기에 그 메시지와 함의도 보존되고 회자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의 신화는 정작 재미가 없다. 각 캐릭터를 그저 신화를 전개하는 도구로만 다룬 나머지 좀비 영화로서의 이야기가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스파이크가 엄마랑 본토로 떠나는 장면은 신화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이다. 반면에 좀비 영화로서는 부자연스럽다. 첫 사냥에서 죽을 고생을 한 뒤 자책하던 주인공이 별다른 고민 없이 다시 본토로 떠나는 전개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신화와 좀비 영화 간의 긴장은 스파이크가 기차 안에서 임신한 감염자를 발견하는 순간 정점에 다다른다. 신화적으로는 가족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하는 계기이지만, 좀비 영화로서는 총부터 들이미는 군인 에리크에게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신생아가 좀비일지도 모르고, 출산 과정에서의 소음 때문에 다른 좀비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그녀의 출산을 도와주는 스파이크 모자의 선택은 좀비 아포칼립스에서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좀비로부터의 생존보다는 신화적 전개에만 필요한 장면이 반복된 결과 뼈의 사원에서 펼쳐지는 후반부 시퀀스는 물음표로 가득해진다. 시한부라 해도 엄마를 즉시 죽이고 화장하는 게 옳은 선택인지, 감염자의 출산을 돕다가 죽은 에리크의 해골을 사원에 안치하는 게 과연 적절한 위로일지 의아한 것. 결국 이처럼 이야기의 재미보다 기괴한 인상이 주목받는 순간, 대니 보일의 새 신화가 의도한 종교적 의미는 자연히 설득력을 잃는다.
기대만큼 실망이 큰 좀비 신화
사실 <28년 후>는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군화'를 활용한 몽타주가 대표적이다. 2차 보어 전쟁 당시 영국군 보병들이 행군에서 영감을 얻은 '군화'는 소름 끼치고 옥죄어드는 심정을 묘사한 시로 유명하다. <28년 후>는 이 시를 낭송하는 내레이션을 삽입하여 처음 사냥에 나서는 스파이크의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영화관을 가득 채운다.
아이폰으로 진행된 촬영과 FPS 게임을 보는 것처럼 화살에 맞는 순간 피가 렌즈에 튀고 정지된 화면 여러 개가 이어지는 연출도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파이크의 혼란스러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해 준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와 특이점은 신화와 좀비물의 갈등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이러한 <28년 후>의 만듦새에서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28일 후>와 비슷한 시기에 <새벽의 저주>로 좀비 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잭 스나이더가 20여 년 만에 제작, 연출한 넷플릭스 좀비 영화 <아미 오브 데드>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 감독 본인의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 신화적 메타포를 적극 활용했다가 오랜만의 복귀로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한 결과물은 그저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신기한 공통점이다.
Poor 형편없음
청중과 독자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신화는 실전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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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 '잿빛 도시를 향해 뿜어진 붉은 복수심과 광기’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개봉일 : 2008.01.17 (한국 기준)
감독 : 팀 버튼
출연 : 조니뎁, 헬레나 본햄카터, 앨런 릭먼, 티모시 스폴, 시챠 바른 코헨, 제인 와이즈너, 제이미 캠베 바우어
‘잿빛 도시를 향해 뿜어진 붉은 복수심과 광기’
잿빛으로 물든 세상에 빛과 구원은 없다. 파랗게 질려버린 하늘만 남아있을 뿐.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탐욕으로 가득 찬 터핀 판사에 의해 모든 걸 빼앗긴다. 따스하게 내리쬐던 햇볕 아래 아름답게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아내와 딸을 잃은 그에게 남은 건 복수와 악에 받친 광기뿐이다.
<스위니 토드>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음울한 색채가 가득 담겨있다. 권력에 의해 인생을 약탈당한 벤자민 바커는 ‘스위니 토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짓고, 재를 뿜어내고 있는 새까만 도시로 돌아온다. 무채색에 가까운 낮과 밤. 스위니 토드가 바라보는 무채색의 도시엔 고유한 아름다움과 색을 뽐내고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갇혀있는 듯 정적이고 새까맣다. 하지만 그중, 유독 강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색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빨간색이다. 복수, 광기라는 단어와 빨간색이 합쳐지면, 이 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략 감이 오지 않는가.
이 이야기는 마치 언젠가 유행했던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같다. 선혈이 낭자하고, 단단할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의 신체가 한순간에 뭉개진다. 모자람 없이 기괴하다. 다소 잔인하기도 하며 허망하다. 소중한 사람을 되찾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으로 돌아온, 복수심만 남은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에 희망 따윈 존재할 수 없었던 걸까.
스위니 토드 시놉시스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한 남자 벤자민 바커(조니 뎁). 그러나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악랄한 터핀 판사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그 후로 15년. 아내와 딸을 되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복수를 위해 스위니 토드로 거듭나 이발소를 연다. 그날 이후 수 많은 신사들이 이발하러 간 후엔 바람같이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이발소 아래층 러빗 부인(헬레나 봄햄 카터)의 파이 가게는 갑자기 황홀해진 파이 맛 덕분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데. 그런데 스위니 토드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난 바커가 아냐. 그는 죽었어.”
아름답고 다정한 아내, 작은 숨을 내쉬고 있는 딸을 품에 안았던 벤자민 바커는 이제 없다. 벤자민 바커 가족이 떠나고, 그의 면도 칼이 2층 마루 밑에 묻힌 날. 벤자민 바커라는 인물은 사라진다. 터핀 판사에 의해 끌려간 감옥에서 지옥 같은 15년을 보낸 그에게 남은 건 스위니 토드라는 새 이름과 분노뿐이다. 다시 돌아온 런던은 15년 전 그날에 비해 더 진한 잿빛이 되어있었다. 어둠 속에 갇혀있던 면도칼과 이발 도구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간 날 밤. 스위니 토드는 면도칼을 들고 이제 곧 루비처럼 새빨간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 말한다.
러빗 부인은 아내 루시가 독약을 먹었다며 스위니 토드가 떠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 준다. 자신의 수모로도 모자라 사랑하는 아내를 농락하고, 거기에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어린 딸을 데려간 파렴치한이라니. 스위니 토드의 분노는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아직 살아있는 딸을 만나기 위해, 저 위층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터핀 판사를 한 번에 잡기 위해서.
스위니 토드는 때를 기다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긋는다. 서서히 광기에 말려들고 있던 그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 위기에 처하자 폭발해버린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물을 끓이고 있던 주전자로 피렐리의 머리를 내리친 순간, 15년간 쌓아왔던 분노와 원망, 광기가 터져 나온다. 한 번에 터져 나온 그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러빗 부인은 스위니 토드의 옆에 딱 붙어 그가 살해한 사람들로 파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육즙이 줄줄 흐르는,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세상이다.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 그리고 어린 토비는 아래 계층에 있는 사람, 러핀 판사와 그의 수족인 비들은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러핀 판사는 피고인보다 높은 판사석에 앉아 무심하게 교수형을 선고한다. 피고인은 어린아이였고, 진짜 범인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범인인지 확실치 않아도 어차피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 할 뿐.
러핀 판사는 높은 곳에 앉아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가진 거라곤 사랑하는 가족뿐인 벤자민 바커의 가정을 파탄 내고, 그의 아내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홀로 남겨진 딸, 조안나를 자신의 집에 가둬둔다. 그리고 악을 구원하겠다며 어린 조안나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은 어차피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니, 아랫놈이 윗놈을 잡아먹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면도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 남자들은 목이 그어진 채 건물의 지하로 떨어져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랫놈을 잡아먹는 윗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시작된 잔혹한 일이었다.
근데 이 복수가 참 아이러니한 게, 결국 스위니 토드의 손에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스위니 토드에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연고가 없는 남자들이다. 우아한 옷을 차려입고, 부채를 펄럭이는 아내와 함께 온 남자는 연고가 있다는 이유로 무사히 살아돌아가고,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스위니 토드의 손에 죽게 된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함은 스위니 토드가 딸 조안나와 마주치는 순간과 루시의 목을 긋는 순간 절정에 이른다. 복수에 성공한 직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딸의 얼굴을 마주한 스위니 토드는 딸에게 내 얼굴을 잊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아는 사이지 않냐고 물어오던 아내의 목을 긋는다.
그토록 궁금하고 그리웠던 딸에게 건넨 유일한 한마디는 나를 잊으라는 명령이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건 러핀 판사가 아닌 광기로 가득한 자기 자신이었다.
스위니 토드는 뒤늦게 사실을 알고 러빗부인을 오븐에 가둬 태워버린다. 복수는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나의 면도칼에 목을 베인 아내와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딸의 존재뿐이다. 스위니 토드가 토해낸 피는 루시의 얼굴을 타고 흘러 바닥에 닿는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끈적하게 더러워진 바닥 틈새를 파고든다.
이 복수 계획은 무엇을 위해 존재했던 걸까. 라고 묻는다면 명확히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고귀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자의 피는 벽과 바닥을 타고 톱니바퀴 위에 떨어진다. 피는 톱니바퀴 사이를 파고들고, 톱니바퀴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피는 흐르고 흘러 결국 지하보다 더 깊은 지하. 하수구를 타고 흐른다. 그들의 피는 사회라는 커다란 기계를 돌리는 톱니바퀴 사이에서 사정없이 짓이겨지고 있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윗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피는 점점 더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흘러내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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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 제목이다. 주인공 이구치가 하급 사무라이로 창고지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황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구치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황혼'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로 살았던 이구치가 관군의 총탄에 죽음으로써 계급으로의 사무라이는 '황혼'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의 막내딸, 다섯 살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토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회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토는 다섯 살에 등장해 나중에 일흔 살의 노인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을 중심으로 나이를 살펴보면, 이토는 1860년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70년을 더 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30년대가 된다.
이토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가 매우 빠르게 군국주의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데,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수십 개 막부가 사라지고,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을 침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런 일본의 침략은 유럽과 미국 강대국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은 뒤, 선진문물을 수입해 빠르게 개화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빠르게 최신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지방에 남아 있던 막부의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식민지에서 얻는 이익을 일정부분 공유하며, 일본 내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막부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으로 막부는 사라졌지만, 지방의 토호세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메이지 천황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부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어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된다. 이들 지방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천황제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한 메이지 천황제에서 과거 막부의 전통, 사무라이의 신성화 등이 군대, 군인을 우상화하고, 군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1860년대 초, 우나사카 막부 휘하에서 하급 사무라이로 살아가는 이구치는 막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 성의 곡식창고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한달에 50석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궁핍해 퇴근하고 저녁에 새장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폐병을 앓던 아내가 사망했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매우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두 딸은 이제 열 살, 다섯 살이어서 그가 오로지 돌봐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새장을 만들어야 하니 그는 조금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는 영주가 곡식창고 시찰을 나왔는데, 이구치가 직접 보고를 하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영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영주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영주의 부하인 관료들이 더 난리를 부리고, 이구치의 집안 어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구치의 삼촌이 그날 저녁 집으로 달려와 영주 앞에서 망신 당한 사실에 대해 노발대발 하고, 자기가 점지한 지인의 딸이 있으니 재혼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이구치는 어린 두 딸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에 어떤 여자가 올 것이며, 설령 온다해도 고생만 할 뿐이니 자기는 재혼할 의사가 없노라고 말한다.
이구치는 성정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을 싫어한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 자신 어려서 무술을 배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먼저 칼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더구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가장 아끼는 보검은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일찌기 팔아버렸다. 그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구치는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무라이보다는 농부나 학자가 되는 것이 본성에 어울리게 보이는데, 사무라이에서도 하급에 머무른 것은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는 따뜻한 날, 이구치는 두 딸과 함께 들판으로 나와 나물을 뜯는다. 그때 개울에 떠내려오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보게 되고,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구치의 가족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구치는 친구 이누마를 만난다. 이누마는 한 달 정도 오사카 막부와 쿄토의 황성을 다녀왔는데, 막부의 움직임과 황성과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결혼했던 여동생 토모에가 이혼하고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 역시 사무라이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아내를 때리며, 학대해서 오빠 이누마가 막부에게 직접 부탁해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토모에가 와 있었다. 이구치는 몹시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모에 처지를 위로한다. 토모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토모에 집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소란스러웠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코다는 토모에보다 그의 오빠 이누마가 더 괘씸하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누마에게 행패를 부리고 싸우자고 덤벼드는데, 이때 이구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코다를 힘으로 제압한다. 코다는 화가 나서 이구치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누마는 자기 때문에 코다와 싸우게 되었으니,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구치는 이누마의 실력으로는 코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므로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코다와 맞선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적 폭력이나 개인적 결투는 막부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대 일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코다는 이구치가 목검을 들고 서자 자기를 얕잡아 본다며 진검으로 달려든다. 이구치는 가볍게 코다를 제압하고, 이누마와 함께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구치가 코다와 싸울 때, 이때는 목검을 들었지만 사무라이의 검술이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하는 동작이 나온다. 목검이 아니고 진검이었다면, 코다는 두세합 만에 목숨을 잃게 된다.
또 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구치와 요고 젠에몬의 결투인데, 전혀 과장하지 않은 사실주의 형식으로 사무라이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무라이의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의 환상을 깨뜨리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구치가 집에 돌아오니 토모에가 보낸 편지가 있었고, 이구치는 토모에의 마음을 읽는다. 이후 토모에는 이구치의 두 딸 키야노와 이토의 '엄마'가 되어 생활의 중심이 된다. 어린 키야노에게 살림살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나들이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는데, 이구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이누마는 이구치에게 토모에의 재혼을 거론한다. 이누마도 이구치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동생이었으니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벗이었다. 이누마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가난한 이구치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어울렸고, 나이 든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누마의 인성도 훌륭하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이구치를 좋아했었다.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건 이구치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이 너무 기울어져 토모에가 자기와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이구치는 혼인을 거절한다.
이누마는 한달 전, 에도(교토)에서 영주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 문제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구치에게 알려준다. 이구치는 최하급 말단 사무라이여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와는 직접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관리 사무장인 쿠사카가 이구치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우나사카 가문의 고위 관료인 호리 댁으로 찾아가 명령을 하달받는다. 요고 젠에몬이 할복하지 않아 죽이러 간 무사들이 오히려 요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이구치가 가서 요고 젠에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구치는 애써 변명하며 거절하지만, 호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무사 계급을 박탈하고 번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승락하고 돌아온 이구치는 죽음을 의식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구치는 몸종 나오타에게 심부름을 보내, 토모에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타의 전언을 들은 토모에는 급하게 달려오고, 전투를 앞두고 몸치장을 해야 하는 이구치의 부탁을 듣고 그의 몸단장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구치는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토모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고, 결혼하고 싶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토모에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지금 결투를 하러 떠나지만, 살아 돌아오면 토모에에게 청혼하겠노라고. 지난번 오빠를 통해 재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과 혼인하면 평생 고생만 할텐데, 그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고백하노라고.
이 장면에서 이구치와 토모에의 모습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구치와 부잣집 딸 토모에의 신분,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 체면과 권위로 살아야 하는 사무라이와 사회 제도로 억눌린 여성의 지위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수많은 제약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온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읽게 되면서, 시대와 역사를 떠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실체를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토모에는 이미 혼담이 들어왔고, 자기도 그 혼담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구치는 자기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몹시 당황하면서 마침 도착한 길잡이를 따라 집을 나선다.
요고 젠에몬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사무라이다. 그를 죽이러 간 다른 사무라이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이구치는 내심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고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는 먼저 들어갔던 사무라이의 주검이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요고는 이구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고는 이구치에게 싸우지 않겠노라고, 자기는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도록 길을 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고는 자기가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역시 사무라이로 쇼군을 모셨으나, 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지면서 가산이 몰수당하고, 자기 가족도 쫓겨나 낭인으로 7년을 떠돌다 어렵게 하세가와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세가와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7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고, 이구치 역시 자기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한다.
이구치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명검을 팔고, 싸구려 검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요고가 화를 내며, 싸구려 칼로 자기를 베러 왔느냐고 소리친다. 요고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투를 하고, 이미 지쳐 있던 요고는 이구치의 칼을 맞고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처지를 드러내는 의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존재가 이제 시대의 막바지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구치를 맞이하는 건 토모에였다. 토모에는 이미 집안에서 재혼 혼담이 오가고 있고, 상대도 정해졌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구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이구치와 결혼하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살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토모에와 이구치의 사연은, 이구치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토모에는 두 딸을 데리고 도쿄로 이주해 그곳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토모에가 나이 들어 숨지자, 카야노와 이토는 아버지 이구치와 어머니 토모에를 한 무덤에 모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체제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마지막 사무라이였던 이구치와 토모에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과 저물어가는 사무라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이구치의 삶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담론으로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담겨 있고, 한 평생이 들어 있고,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역사를 덩어리로만 볼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거울이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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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라서 아쉽지만 화려한 SF 애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선의 추락으로 인해 지구로부터 4.2백만 광년 거리 떨어진 외딴 행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버즈(크리스 에반스)', 그의 동료 '엘리샤 호손(우조 아두바)', 그리고 천 명이 넘는 일행들. 행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장 난 우주선의 광속 비행 장치를 개발해야 했고, 추락 당시 조종간을 잡고 있던 버즈는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시험 비행의 파일럿으로 나선다. 그러나 시험 비행은 실패로 돌아가고, 설상가상으로 광속의 비행으로 인한 시간 지연을 발생하면서 단 몇 분간 비행한 버즈는 수십 년의 지난 행성에 도착한다. 그가 떠난 사이 행성은 '저그 황제(제임스 브롤린)'의 공격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버즈는 저그 황제에게 대항하는 동료 엘리샤의 손녀 '이지(키키 파머)'와 그녀의 팀원들을 만나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앤거스 맥클레인 감독의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버즈 라이트이어의 모험을 그린 SF 애니메이션이자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격 영화다. 다만 <토이 스토리>에 등장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는 본 작의 주인공인 우주 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를 모델로 만들어졌고, <토이 스토리> 1편 당시 앤디가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를 본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개봉 전 아이맥스 버전 상영을 강조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 분위기가 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버즈 라이트이어>에게 이전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더라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 영화의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직관적인 재미로 무장한 오락성과 대중성은 확실하나, 기존 픽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감동과 메시지가 설 자리는 줄어든 까닭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버즈 라이트이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명백히 SF, 스페이스 오페라의 장르적 쾌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연히 <토이 스토리>의 극중극이라고 밝힌 것이나, 버즈의 성우를 본래 담당이었던 팀 앨런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본체인 크리스 에반스로 변경한 것은 그 방증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버즈 라이트이어>는 매 장면마다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의 오마주로 빼곡히 채워 넣고 있다. 우선 냉동 수면 상태로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는 장면은 <프로메테우스>나 <아바타>처럼 행성 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과 유사하다. 외계 행성에 착륙하여 식민지를 만드는 것도 <아바타> 시리즈와 닮았다. 광년(光年)이라는 의미의 제목인 '라이트이어(Lightyear)'가 암시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 지연이라는 소재는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한다.
이에 더해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스타트렉>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낯선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착륙하거나 사고로 인해 외계 행성에 불시착하는 것은 <스타트렉> 시리즈를 닮았다. 한편 <토이 스토리> 2편에서 버즈와 대결한 바 있는 저그 황제의 존재나 거대한 우주선의 디자인, 그에 맞서 저항하는 세력의 존재, 그리고 안드로이드 로봇들의 등장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오마주의 조합은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등 80년대 초 다양한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담고, 또 일부 SF 장르를 오마주했다는 맥클레인 감독의 인터뷰가 전한 그대로다.
그렇다고 해서 <버즈 라이트이어>가 그저 오마주의 집합체인 것은 아니다. 러닝타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액션 시퀀스들은 버즈의 매력으로 가득하고, 그 덕분에 영화는 고유의 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포기를 모르는 캐릭터인 버즈는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종류의 액션을 선보인다. 손을 쥐게 만드는 광속 비행 시퀀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 및 로봇들과의 사투, 그리고 버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비행 팩을 이용한 활공까지 활극에 어울리는 시원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또 이러한 장면은 영화 프로모션에서 줄곧 강조된 아이맥스의 역할도 강조해준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가 최초로 개발한 3D 애니메이션 IMAX 카메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액션 시퀀스의 역동성을 강조해주며 빛을 발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또한 버즈와 버즈의 팀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드라마에서는 픽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도 느껴진다. 비록 배경은 우주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실수와 협력이 있다. 우주 특공대 대위인 버즈는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크고,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인 캐릭터다. 거추장스럽다면서 신입 장교의 존재를 마뜩잖아하는 그는 모든 위기 상황을 혼자 돌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독선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불시착한 행성에서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은 버즈는 급하게 우주선을 이륙시키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천 명이 넘는 일행을 고립시키고 만다. 이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몇 번이고 탈출을 위한 광속 비행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비행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그렇게 완벽주의자이자 영웅인 그는 세상을 구하는 데 실패한다. 수십 년이 지난 낯선 행성에서 그의 곁에는 로봇 고양이 '식스(피터 손)'만이 남는다.
우주 특공대의 영웅에서 외톨이가 되고,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버즈.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그는 앞으로의 삶을 바꿀 경험을 한다. 다 함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외계 행성에 침공한 저그 황제의 로봇 군대와 싸워야 하는 버즈. 그는 뛰어난 실력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던 이지의 팀이 훈련조차 받아보지 않은 오합지졸이었음을 알게 된 후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숱한 고비를 넘기고, 로봇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버즈는 조금씩 팀원들의 진가를 깨닫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렇게 하나의 팀으로 거듭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모든 부담을 혼자 떠맡을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협력이야말로 정말로 큰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처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만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개인주의적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픽사다운 교훈을 전하는 듯 보인다.
픽사이기에 아쉬운 <버즈 라이트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는 끝끝내 한끗이 아쉽다는 인상을 지우지는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와 감동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2%가 부족하다. 메시지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열정과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버즈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 버즈와 버즈의 동료들이 원팀으로 거듭나는 과정도 뿌듯하다. 그러나 그 임팩트가 강렬하지는 않다. 과거 픽사 애니메이션이 선사했던,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깨달음이나 배움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버즈와 그의 동료들이 진정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매몰되기보다는 삶의 매 순간을 즐기는 게 우선이라고 노래하던 <소울>과 같은 특별함을 <버즈 라이트이어>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작중 버즈는 자신의 실패 덕분에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실패가 아니다. 그보다는 완벽주의자이자 엘리트인 버즈가 실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주 특공대원으로서 버즈는 철저한 능력주의자로 묘사된다. 그의 자부심과 명예는 그가 사관학교에서 고난을 겪으며 쌓아 올린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난 팀원들을 계속해서 시험하고 또 불신한다. 그들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팀으로서 움직이기를 거절한다. 과거 상관이자 동료였던 엘리샤의 손녀인 이지마저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다른 팀원들이 특공대원 옷을 입는 것조차 불만스러워하며, 엘리샤와 공유하던 시그니처 대사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를 그들과 나누지도 않는다. 또 그는 다른 팀원들의 상처도 보지 못한다. '모(타이카 와이티티)'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했다고 자책할 때, 그를 위로하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버즈는 그의 책임을 재확인하는 말을 내뱉고 만다.
이러한 버즈의 모습은 현대 사회 속 엘리트의 부정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엘리트들은 서로를 존중하지만 그들의 범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연대 의식을 갖지 못하며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수준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기에 동등한 대우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작중 버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정적 면모 덕분에, 버즈의 변화에서는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느껴진다. 버즈의 실패는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들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변화는 단순히 팀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움과 부담감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문을 여는 버즈의 변화는 한계를 노출한 능력주의 사회를 개선할 방법인 협력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최정예 요원들 대신 이지와 다른 팀원들을 우주 특공대로 받아들이는 버즈의 마지막 선택이 인상적인 이유이고, 픽사다운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처럼 한 차원 깊고 넓은 메시지는 러닝타임 내내 잘 전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이야기 밑에 숨어 있는 메시지와 감동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는 특정한 모멘텀이 필요한데, 전반적으로 평탄하게 전개되는 영화에는 그런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즈 라이트이어>는 미션에 실패한 영웅이 원인을 깨닫고, 능력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한 단계 성숙해진 다음 기어코 임무를 다해낸다는 왕도적인 스토리라인을 착실히 따른다.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예상을 빗겨나가는 반전도 없다. 그나마 저그 황제의 목적과 정체가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주요 소재인 광속 여행, 상대성 이론, 시간 지연의 개념을 토대로 이를 유추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기에 그 충격은 반감된다. 시선을 강탈하는 고양이 로봇 삭스의 활약도 혼자서 변수를 만들어내는 수준은 아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이야기를 뛰어넘는 픽사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끝내 빛을 보지는 못한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1995년에 개봉한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는 픽사의 성공 신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었고, 그 중심에는 투톱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가 있었다. 이처럼 픽사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캐릭터를 화려하고도 도전적인 영상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버즈 라이트이어>에게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다만 버즈와 함께 30여 년 간 발전해 온 픽사의 스토리텔링 역량을 고려하면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는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세 개의 쿠키 영상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실마리가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A(Acceptable, 무난함)
버즈의 다음 비행을 기대케 하는, 화려하거나 평범할 픽사의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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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7월 1주 개봉영화!
토르: 러브앤썬더 Thor: Love and Thunder , 2022
토르! 네 번째 솔로 무비!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천둥의 신 '토르'가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마이티 토르'로 거듭난
전 여자친구 '제인'과 팀을 이뤄, 신 도살자 '고르'의 우주적 위협에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함께 우주로 떠나며 그 이후 행보에 궁금증을 자아냈던
토르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의 이야기가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드디어 공개됩니다.
천둥의 신 '토르'를 비롯해 강력한 NEW 히어로 '마이티 토르', 뉴 아스가르드의 왕 '킹 발키리', 우정과 의리의 검투사 '코르그',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총출동하죠
마블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주목 받고 있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에 맞서
'팀 토르'로 뭉친 MCU 대표 히어로들의 역대급 액션 스펙터클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강력한 NEW 히어로 '마이티 토르'에 나탈리 포트만,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높이는 크리스찬 베일은 신 도살자 '고르' 역,
러셀 크로우가 올림푸스의 왕 제우스 역으로 활약하고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처음 등장해 유쾌한 매력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코르그' 역의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극 배우 로키' 역으로 깜짝 등장해 놀라움을 선사했던 맷 데이먼까지 출연해
다채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스크린을 풍성하게 채울 예정입니다.
전 우주를 누비는 역대급 스케일 속에서 짜릿한 액션은 물론 다채로운 세계관까지 담아낸
"토르: 러브앤썬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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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8] 아동학대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
영화 고백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동학대를 다루도 있는 영화여서 어둡고 슬픈 영화인데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사회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면서
주변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긎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박하선 배우의 연기와 하윤경 배우의 연기가 좋아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영화여서 많은 분들이 불편하겠지만 꼭 보면 좋을 것 같아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 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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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1]직쏘가 생각나게 하는 쏘우의 스핀오프 스파이럴 개봉!! 재밌다!
쏘우의 스핀오프 영화 스파이럴이 개봉했습니다.
배우 크리스락이 기획아이디어와 각본에도 참여했는데요.
주연 배우로도 활약하고 있죠.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크게 어색하지 않게 연기하고 있어요.
영화도 쏘우 시리즈의 초기 영화들 처럼 너무 급하지 않게 서서히 발동을 걸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너무 쏘우 시리즈와 동일한 구성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보는 재미는 있네요.
기존의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영화에요.
감독은 대런 린 보우즈만 인데, 쏘우 2,3,4편의 감독이었죠. 다시 원래 잘하던 시리즈로 돌아왔네요.
그동안 공포영화들을 찍어왔지만 사실 거의 B급공포에 머물러 있었거든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 전체를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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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공식 티저 예고편
남다른 소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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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쿨 아웃 포에버> 메인 예고편
최악의 팬데믹 발생!
전 세계 인구 95% 사망
오직 Rh-O형만 면역력 보유
세상이 진짜로 망해버렸다!
전염병과 난폭해진 사람들을 피해 학교에 모인 키건과 친구들
현실 생존에선 그동안 배운 것은 모두 무쓸모!
지금부턴 실전이다! 본능대로 살아남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