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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샤2025-08-24 18:27:33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시간이 필요해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어린아이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보통 한 사람의 생애에서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다. 아이가 부모, 형제, 자매, 조부모, 친인척과 일대일로 직접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게 되는 다른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도 아이의 소우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가족은 아이의 성격, 인격, 인생관, 가치관, 장래희망, 심지어 행동반경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이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라면, 학교 친구를 비롯한 타인이 자신의 가족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주기를 아이는 간절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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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의 언덕>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명은(문승아 배우)'의 삶에서도 엄마, 아빠, 오빠, 할아버지, 삼촌은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이다. 명은은 반에서 누구보다 야무지고 똑똑하지만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거짓말의 성을 쌓기 시작한다. 명은의 거짓말 속 세계에서 아버지는 한량이 아니라 번듯한 종이 회사의 직원이고, 어머니는 현모양처 전업주부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6년 한국 사회에서 회사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은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인) 중산층 가족상이었고 명은도 그런 가족을 꿈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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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의 언덕>은 글쓰기를 통해서 명은이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다듬고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정의 화목한 상태를 시종일관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족만큼 애증으로 점철된 복잡한 인간 관계도 없기 때문에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묵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 가족에 관한 거짓말을 할 결심을 했을 때 명은에게 이 말을 들려줬다면 명은도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십 대 소녀의 키처럼 시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를 치르며 명은의 마음도 빠르게 자라서 가족을 포용할 공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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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의 엄마와 아빠가 시장에서 운영하는 젓갈 가게의 맛깔스러운 젓갈들을 보며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젓갈을 만들 때 원재료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돋우는 소금이 꼭 필요한 것처럼 가정의 붕괴를 막고 가족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드는 진솔한 소통이 절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짜고, 맵고, 쿰쿰해서 처음엔 먹고 싶지 않지만 그 맛을 깨닫고 나면 매끼 젓갈을 찾게 되는 것처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삭히고 있던 비밀을 가족에게 털어놓고 나면 매일 가족을 더 찾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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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 역의 문승아 배우, 명은의 담임 선생님 '애란' 역의 임선우 배우, 엄마 '경희' 역의 장선 배우, 아빠 '성호' 역의 강길우 배우 등 주조연들은 모두 조화롭게 극을 이끌어 간다. 또한 이지은 감독이 단역임에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준 명은의 반 친구들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여 실재했을 것 같은 1996년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힘을 보탠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과 연출도 빼어나고 1996년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해 시대극으로서도 흠잡을 곳이 없는 완성도를 갖췄다. 현재 시나리오 단계에 있다는 이지은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8월 23일 씨네Q 신도림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주최 [경계를 넓히는 영화: 비밀의 언덕 상영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 스샤

출처 . https://brunch.co.kr/@starshines/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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