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8-25 21:56:00
초침 정도는 고장난 채로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리뷰
DIRECTOR. 조희영
CAST. 공민정, 정보람, 정회린, 류세일, 유의태, 김희상, 이진하 외
SYNOPSIS.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정호. 정호의 애인 수진. 정호를 짝사랑하는 인주. 정호의 옛 애인 유정. 수진은 정호 모르게 훈성과 비밀스런 만남을 이어가고, 인주는 시한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호에게 품은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유정은 정호의 자살 시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애인 우석과의 관계가 위태롭기만 하다. 그런데, 정호는 어디로 갔고 정호를 먼저 만난 건 누구인가? 그 정호는 정호가 맞는 걸까? 보이는 것과 믿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이야기들.
POINT.
✔️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이어지는 땅> 등을 연출한 조희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홍상수 영화 스태프로 활동했다는데, 확실히 조희영 감독의 작품을 보며 홍상수 영화가 떠올랐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자기 색깔을 분명하고 단단하게 찾아가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전작에 참여했던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안정적이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 서울 배경의 사진엽서집을 보는 듯 아름다워요. 이민휘 음악감독의 손길까지 더해,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로 손꼽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반부에서 한적한 서울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어 그것도 만족스러웠어요.
✔️ 특히나 마포구 일대를 배경으로 예술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같네... 하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주소가 마포구로 나와서 조금 웃겼습니다(positive).
✔️ 영화가 길고 등장인물이 많지만, 천천히 젖어 들어 보다 보면 관계도가 머릿속에 어렵지 않게 잘 그려집니다. 영화에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성 안에서 나 개인의 경험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영화는 8월 27일 (문화의 날!)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신 다양한 인물을 펼쳐 보여주고,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작은 퍼즐 조각처럼 이야기를 떠 나른다. 그 세밀한 그림 퍼즐을 맞추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는 더없이 분절된 영상들처럼 보이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이내 연결되어 가고, 인원이 좀 많긴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도보다 훨씬 덜 복잡하기에.
느긋하게 인물들을 따라가는 전반부는 산책하듯 보았다. 필름 톤으로 보정된 도시의 골목골목, 일상의 공간과 소리와 소품들을 가만히 따라가는 시간이 꼭 휴식 같았다. 게다가 인물들의 공간은 무엇 하나 튀지 않고 일정한 결로 곱게 정돈되어 있다. 커피가 든 잔, 무심하게 쌓인 책 더미, 자잘한 오브제, 그들의 작업 도구들. 생활 노동이라는 느낌보다는 고아한 예술의 느낌이 드는 공간에서, 인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게다가 그 공간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주어진 인물들 외에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텅 빈 공간이다. 길을 몇 번씩 돌아다녀도 앉을자리 하나 찾기 힘든 서순라길도, 연남동 인근의 식당도, 예쁜 카페에도. 다른 손님이 없고, 딱 필요한 인물들과 적당한 일상음만 있는 서울. 나는 마치 서울을 배경으로 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시간 지나 들여다본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인물들은 기억을 끄집어낸 대화를 몇 번 하는데, 예컨대 영호의 친구에게 의자를 주었다는 노인 이야기는 실화와 과연 얼마나 닮아있을까? 영호의 기억에서 얼마나 각색됐을까? 또 어떻게 변형되어 흘러갈까?
꿈결 같기도 지난 기억 같기도 한 영화. 그만큼 현실 서울과 살짝 거리감을 두고 오롯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현실감이 몰려온 건 대화하는 훈성과 수진 뒤로 연신 차가 오갈 때였다. 도시의 소음이 비로소 들어오고, 그들의 대화는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두 사람의 감정선을 의심하게 한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내가 이해한 모양과 같은가? 어쩌면 정반대였을 수도 있다. 꿈과 현실, 사랑과 거짓, 이해와 오해, 본 것과 못 본 것. 분명하게 다르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해일까 오해일까
살다 보면 악다구니와 악다구니가 맞부딪치는 갈등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많은 갈등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과 지극히 상식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입장이나 정보량이나 시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리저리 퉁퉁 튀면서 크고 작은 오해로 변주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자신이 병으로 시한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인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주영에게, 또 선배에게 가 닿으며 오해는 불어난다. 자세히 묻지 않겠다는 주영의 말은 본인 말마따나 배려지만, 어쩌면 무관심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선배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며 '제가 말했다고 하지 말아요' 한 이야기는, 오해일지 이해일지 몰이해일지 모를 판단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배려하기 위한 거리 두기가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다정하게 굴겠다고 좁힌 거리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훅 다가오기도 하는 것. 결국 우리는 각자의 렌즈로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 과정을 몇몇 사람들의 관계에서 실험하듯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하루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해와 오해가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 것
이 영화에서 이따금 등장했다 사라지는 검은 개를,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본다. 누군가는 "넌 못 봤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호기심을 거두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개가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검은 개는 자주 등장하다가 어느 순간 극 중에서 사라지는데, 영화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 또한 어떤 이는 검은 개를 계속 신경 썼을 테고 또 어떤 이는 금방 잊었을 것이다.
검은 개는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 또한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재앙과 불운으로서의 죽음, 또 다른 경우에는 영혼의 안내자, 사후세계의 인도자 같은 느낌의 안전한 죽음이다. 죽음이란 것 자체가 인간에게 재앙으로도 안식으로도 표현되는 것처럼. 꼭 오해와 오독을 거치지 않더라도, 수많은 단어들이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초침이 고장 나도 시계는 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 피어나는 오해는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 불륜과 고백과 시한부까지, 단어만 보면 아침드라마 뺨치는 도파민이 완성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엄청난 충격을 안기는 일은 없다. 마치 고장 난 초침처럼 툭, 툭 일상 감각을 두드리지만 그럭저럭 그냥저냥 일상에 녹아들어 엉킨다.
초침의 고장은 눈치채기도 쉽지 않고, 눈치채더라도 이 시계가 대체 언제부터 고장 나 있던 것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실은 우리 사이의 수많은 대화가 그렇다는 걸,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배우고 또 달라지며 나아져 간다.

모든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어느 순간 어느 감정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두 사람의 세계와 여러 사람이 있을 때의 세계는 또 다르고, 근거리에서 보는지 원거리에서 보는지에 따라 또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똑같은 사건도 순서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예술이 도둑질이 될 수도 있고,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며, 사랑이 거짓이 되기도 한다. 본 것이 못 본 것이 되기도 한다.

결국 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경계를 뽀얀 햇볕으로 흩어 본다. 초침 정도는 고장 난 채로, 모든 걸 선명하게 안다는 감각 없이, 조금은 부유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인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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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just gonna wait and see.
<라라랜드>
" 음악이 흐르는 LA의 별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빛나는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개봉일자에 맞춰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보고 온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City of stars'를 흥얼거리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썬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뒤에 재개봉 한 극장에서 우연하게 마주치게 된 영화였는데 이렇게 외톨이로 살 순 없겠다 싶어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표를 끊고 봤었다. 옛날에 같이 살았던 외국인 친구가 'LALA LAND'만큼 멋진 영화가 없다고, 자기가 살았던 동네라고 영화 제목 자체가 우습지 않냐고 'LALA LAND(LA를 의미함과 동시에 꿈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 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를 몰랐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영화관이라는 게 아쉬울 만큼 환상적인 작품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외국인들에게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소재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재즈 뮤지선, 그리고 배우 지망생의 꿈을 위한 도시 LA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로맨스 영화! 낭만적인 꿈을 찾아 헤메이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우습게 붙여놓은 촌스러운 타이틀 만으로도 이미 눈길을 끄는데 오프닝 시퀀스 부터 환상적인 연출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막힌 도로 위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Another Day of Sun'으로 연결되는 순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결정되는 듯 하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 음색이 돋보이는 음악과 색감으로 무장한 오프닝 시퀀스라니 '이걸 어떻게 원테이크로 찍었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시작부터 뮤지컬 영화임을 입증하듯 '음악에 집중하세요'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여담으로, 아침 출근길에 자주 이 노래를 듣는다.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 마냥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색을 참 잘 활용하지 않았나' 였다. 인물들의 드레스나 배경, 흘러가는 장치 등에 색깔을 눈에 띄게 사용함으로써 영화 속 스크린이 아닌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또한 인물들에게 특성 색깔을 부여함으로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을 쉽게 표현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주지만 답답한 느낌을 만드는 초록색,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열정과 정열 욕구 그 자체를 표현하는 빨간색, 동시에 세바스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어 원색적인 미아와의 대조되는 베이지 톤. 미아(엠마 스톤 분)의 우울감과 맞닥뜨린 현실감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침과 저녁의 경계선에 주인공 둘을 섞어놓은 듯한 보라색 등 원색적인 색깔을 활용함으로써 인물의 상황과 개성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좋은 미장센의 요소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눈에 띄도록 사용된 색깔들을 상황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도 큰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라라랜드>가 인기있었던 가장 큰 이유 바로, 'City of Stars', 'mia & sebastian’s theme', 'Start A Fire'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OST들이 그 주인공이겠다.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의 말처럼, 음악이 영상이나 대본만큼 스토리텔링을 하는 아주 큰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덕분에 감정적으로 솔직하고도 다채로운 표현력을 가진 음악들이 영화 내내 폭죽처럼 터진다. 뮤지컬 영화의 생명을 결정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삽입된다는 것 또한 <라라랜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다. 여타 뮤지컬 영화가 그렇듯 뜬금없는 전개로 시작되는 음악이 낯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의 인위적인 연출과 개연성 없는 음악은 도리어 거부감을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하나, <라라랜드>는 인물간의 대화에서 그리고 주요 장면에서 배경음악처럼 뮤지컬 요소를 활용한다. 메인 스토리의 구축 지점에서 주인공들이 직접 연출하는 배경음악은 뮤지컬 영화 특유의 몰입감을 한층 더하는 듯 하다. 만나게 되는 지점부터 이별을 맞는 지점, 그리고 후의 우연한 만남의 지점까지 현실감과 더불어 가슴 아프지 않은 이별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연출력이란 ...
겨울을 시작으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계절을 따라 진행되는 내러티브 또한 탄탄하고도 감미롭다. 오프닝의 계절, 진정한 재즈 음악을 찾는 세바스찬과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는 미아의 시련이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 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봄으로 넘어온 둘은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야경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우연의 연속으로 손을 잡고 키스를 나눈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정적인 둘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나 그들의 현실은 사랑보다 냉정하다. 현실과 타협할수록 꿈과 멀어지게 되는 세바스찬을 보며 미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윽고 가을 되고, 꿈에 대한 논쟁으로 둘은 갈등을 맞게 되고 둘의 관계도 흔들리게 된다. 이윽고 마찰이 잦아진 그들은 사랑도 꿈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이별을 마주한다. 이윽고 5년이 지난 겨울, 둘은 그토록 원했던 꿈의 위치에 서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을 마추고 이윽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계절은 지나 다시 돌아오긴 하되,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서로를 추억하며 '만약'이라는 화법으로 연출한 엔딩까지 ... 익숙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꿈과 사랑을 계절에 비유해 전개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낭만'으로 정의해두고 싶다. LA에 대한 이상을 갖게 만들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낭만.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동안 눈가 귀가 즐겁다 못해 발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를 높히는 작품성이 좋았던 만큼 대중성도 굉장히 잘 잡아낸 듯 하다.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들을 요구하는지 감독이 그대로 알아내 화면 속에 담아낸 것 처럼 보였다. 또한 라이런 고슬링과 엠마 스톤 두 배우 모두 이 영화에 찰떡같이 어울렸는데, 두 배우 모두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이 아마 세바스찬과 미아 두 인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본과 음악 외에도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부의 지루함이 있긴 하나, 극 설명을 위한 초반부를 넘어서면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영화 메인 OST 'City of Stars'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리피스 천문대의 화려한 별들의 향연과, 로스앤젤레스 야경 속 보랏빛의 풍경,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재즈바와 할리우드 배경까지 ... 주인공 둘의 스탭을 따라가며 영화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스토리 외적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영화보다 한편의 무대처럼 보이는데, 이는 조명의 영향도 큰 듯하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는 핀 조명을 극 중 전개에 자연스럽게 활용함으로써, 영화 속 연출임은 분명하나 마치 실제로 무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끔 시각화했다. <라라랜드>는 촬영도구나 연출적 요소 속에 디테일을 많이 숨겨놓은 영화인데 일일히 하나하나 설명이 어려울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영화를 빠르게 전개시키면서 이런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니 그저 신기할 다름이다.
낭만적인 LA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로맨스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동시에 LA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꿈'에 대한 좌절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 또한 좋은 메시지 중 하나였다. 사랑과 꿈 사이의 경계선에서 버거워하는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라라랜드> 제목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 사랑이라는 초점이 메인인 것 만큼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남녀가 서로 만나 끌리는 동안 그들의 가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조언하고 위로하는 과정은, 스스로 정립할 수 없던 꿈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인물 모두 꿈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감과 그 꿈의 정체성에 관한 깊은 고뇌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는 양상은 차이를 보인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기를 여러번,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진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는 순간은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환상적인 OST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몽환적인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색감이 될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 이유일수도 있다. <라라랜드>가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힐 만큼 그 요소들이 밸런스 있게 적절히 잘 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의 기본 단계들을 잘 지켜냈으며,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또한 신선하고 뭉클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도록 화려한 화면과 색감을 적절히 잘 사용했으며 주인공의 연기가 섬세했던 덕분에 관객의 감성을 잘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지도 모르는 2시간의 타임라인 속에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들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결말까지 '환상적인'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사람의 감정을 분출해내고 터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전작인 <위플래시>와 최근 작품인 <퍼스트맨>만 보아도, 인물 개개인의 가진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극찬하고 '황홀하다'라고 표현하는 영화 <라라랜드>, 최근까지도 여러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는 추세이니 혹여 보지 못했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길 추천한다.
사진 출처 : <LALA LAND>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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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보디가드 2> 전 세계 박스오피스 접수하러 등장!
2017년 개봉한 액션 코미디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의 후속작인 <킬러의 보디가드 2>가 북미 박스오피스 차트 1위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가 이번 주 북미에서 개봉하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박스오피스 1위 달성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국내 2021년 6월 23일에 개봉 예정인데, 조우진 주연의 영화 <발신제한>을 제외한다면 딱히 경쟁작이 없는 상황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그리고 셀마 헤이엑이 주연을 맡은 <킬러의 보디가드 2>는 16일에 개봉하여 오는 23일까지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몇 안 되는 극장 개봉작 중 하나로서, 이 영화는 영화 사업이 코로나 침체기에서 회복됨에 따라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대형 스크린에서 공개된 첫 코미디 작품인데요. 이는, 슈퍼 히어로와 서스펜스 스릴러의 인기로 인해 많은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기에, 이번에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이끌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 후속작은 1편보다 더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의 제작비는 5천만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고, 1편은 6천9백만 달러의 예산이 소요됐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가 북미 박스오피스 티켓 판매 2,100만 달러로 시작하여, 북미 박스오피스 최종 7,500만 달러, 그리고 전 세계 1억 7,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다소 부족한 흥행 성과와 함께 극장 개봉을 마친 이력이 있기에, 줄어든 예산에 대한 문제점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2>는 마이클(라이언 레이놀즈)과 다리우스(사무엘 L. 잭슨)가 유럽 전역을 위기로 몰아넣는 미치광이들의 사악한 음모를 없애기 위해 다시 뭉치게 된다는 줄거리로, 다리우스의 아내 소니아(셀마 헤이엑)까지 합세한다는 차별점을 담고 있습니다.
개봉 예정작인 <킬러의 보디가드 2>를 제외하고,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은 <인 더 하이츠>와 <피터 래빗 2>가 이끌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영화 모두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HBO Max에서도 관람 가능한 <인 더 하이츠>는 총 1,14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피터 래빗 2>는 1,01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극장 시장과 액션 코미디 장르의 귀한! 과연 <킬러의 보디가드 2>는 <인 더 하이츠>와 <피터 래빗 2>를 넘어서 북미 박스오피스 시장 1위에 안착할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도 6월 23일 개봉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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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오브 더 월드
뉴스 오브 더 월드
남북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870년, 키드 대위는 텍사스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키드 대위는 남군 출신이어서 전쟁에 진 남부를 통제하고 있는 북군의 검문에 공손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군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북군은 점령군으로 남부에 진출했고, 전쟁에 참여했다 패한 남부의 여러 주를 '미합중국'의 연방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남부의 인민들은 북부가 주도하는 연방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키드 대위가 남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읽어주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당시 인민 대부분이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문을 매번 사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민은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의 변화를 뉴스를 통해 알고 싶은데,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신문을 읽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해 키드 대위는 '신문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남부를 떠돌고 있었다.
키드 대위가 길을 가다 우연히 부서진 마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던 소녀를 보게 된다. 이 소녀는 영어를 하지 못했고, 마차에서 찾은 문서에서 소녀가 가야하는 목적지를 알게 된다. 키드 대위는 북군 기지를 찾아가 소녀가 사고를 당해 지금 혼자이며, 가족이 먼 곳에 있으니 찾아달라고 말하지만, 북군은 담당자가 없고, 최소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가족에게 데려다주기로 마음 먹는다. 소녀는 독일어를 하지만 마치 야생에서 들개처럼 자란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는 소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소녀가 백인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 이동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무리를 보며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는 걸 보면서, 이 소녀가 어릴 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가족에게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녀를 딸처럼 생각하게 된다. 키드 대위의 가족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그의 아내가 젊은 나이에 콜레라로 죽었다는 장면이 짧게 나온다. 고향을 찾았을 때, 친구에게 전해들은 아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키드 대위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 때문에 저주가 내렸고, 그로 인해 아내가 죽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키드 대위의 개인적 독백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미국의 역사에서 백인들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압축한 상징적인 독백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처음부터 학살의 역사였으며, 백인에 의한 다른 인종의 학살, 전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음을 의미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딸처럼 여기며 보살피고, 소녀를 가족들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는 과정에서 소녀를 해치려는 백인들과 맞서 싸우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렵게 목적지에 도달한다. 소녀를 가족에게 안전하게 데려다 준 것에 만족하고 돌아서지만, 키드 대위는 다시 소녀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발에 밧줄이 묶인 소녀를 발견하고, 다시 소녀를 데리고 나온다. 소녀를 받아들인 부부는 친부모가 아니었고, 단지 노동력이 필요해서 소녀를 받아들인 것이었고, 들개처럼 행동하는 소녀를 길들일 수 없음을 고백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를 데리고 나와 함께 남부를 떠돌며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계속한다. 키드 대위는 소녀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소녀는 들개처럼 떠돌던 삶에서 문명사회로 들어오게 된다. 두 사람은 가족을 이루게 되고, 이것은 백인이 저지른 범죄의 반성과 야생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색인종의 화해를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영화를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백인 군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으로 들어가 백인 문명-학살과 침략의 역사-을 거부하고, 스스로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흥행에도 성공한 예가 있었다.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백인들의 범죄를 반성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이야기는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백인 주류 사회는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이후, 백인이 저지른 온갖 만행에 관해서 은폐하려는 시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런 백인 주류 사회의 역사 은폐를 정면으로 비판한 학자가 '하워드 진'이다. 그는 '미국민중사'를 통해 미국의 역사라고 말하는 백인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미화되었으며, 진실이 은폐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헐리우드가 아주 드물게 백인이 저지른 역사에서의 범죄를 자백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범죄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비는 행동과 실천은 당연히 꾸준해야 하고, 사죄와 반성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지금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차별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심각한 사회 문제인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한편 나왔다고 호평을 얻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보다는 좋지만, 가해자가 어설프게 화해를 말하는 건, 오히려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행위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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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차별과 아픔을 공감해 주길 바라며...
1. 여름의 아이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 피난처를 찾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전쟁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푸틴은 살인을 중단하라는 도보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띄는데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이 단편 영화는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2. 내 방
지안은 삼 남매 중에 장녀인데도 자신의 방이 없다. 동생들과 방을 같이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안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학교 스터디 그룹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친구들은 혼자 방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하는 영상을 찍어 공유하지만 정작 지안에게는 동생들이 어질러놓은 방을 치우느라 바쁘고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런 지안은 소외감을 느껴 짜증 나기만 하는데...
자신의 방이 없다는 건 어쩌면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지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지안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의 친구들처럼 과외도 받고 싶고 집도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3. 오늘만 재워줘
정훈은 누나와 함께 빨래방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현아를 발견한다. 현아는 정훈에게 한 번 만이라도 재워달라고 부탁하지만
정훈은 거절한다. 그런데도 현아는 계속 부탁을 하면서 따라와 정훈의 방 장롱에 몰래 들어간다.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정훈이 현아를 보고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현아는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현아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현아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출소해 현아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현아는 자신의 어미니에게 폭력을 대물림 당했다. 그래서 정훈에게 한 번만 방에 재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훈은 자신과 일면식이 있는 남자도 데려와 잠을 재워준다.
그렇게 자신도 누나에게 너무 착하면 사람들이 얕본다고 말을 듣는다. 그렇지만 정훈도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자신도 좋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현아가 자신에게 그러한 말로 상처를 줬고 희망도 꿈도 없는 공시생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나버린다.
이 단편 영화는 감독이 말하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는 지인이 부모에게 가정 폭력을 당했는데 그걸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배경이 서울 강동구인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방황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 잘 표현한 단편 영화가 아닌가 싶다.
4. 가을바람 불르면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종수는 한국말이 서툴다. 그런 종수를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인 지희는 종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시 쓰는 법도 가르쳐 준다. 지희는 시를 잘 쓰는 덕분에 상도 받았지만 종수는 시 한 편도 서툴게 쓰는 아이이다.
그래서 지희의 시 쓰기 수업에 참가한다. 지희는 일단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보고 사물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종수에게 알려준다.
종수는 애들에게 놀림받고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어머니가 연애할 때 받았던 아버지가 쓴 러브레터를 보고 서울로 이사를 가는 지희에게 시 한 편을 주려고 밤새 시를 쓴다.
다문화가정에 태어난 아이의 외로움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어김없이 보여준다.
2023.09-19 (화) 14:3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7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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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되새기고 현재로 나아가는 탑건 그리고 매버릭.
영화표 값이 많이 오른 터라 영화관에 가는 것이 망설여지는 요즘, 티켓값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화를 보려고 하다 보니 내가 끌렸던 것을 다 보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았거나 나의 예상 별점이 높은 것을 위주로 하게 되는 ‘신중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호평에 영화관에서 <탑건: 매버릭>을 보기로 했다. 망설여 왔던 것이 무색하게 <탑건: 매버릭>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될 정도의 굉장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이야기와 액션을 잘 버무려 추억이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정말 놀라웠다. 12세 관람가임에도 유치하지 않고 매번 주인공 버프를 받으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옴에도 재미가 있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향수를 일으키며 26년 만에 찾아온 이 영화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에서 굳건히 서 있는 사람, 매버릭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 영광의 중심에 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매버릭은 언제나 그 모습으로 남아있고 싶었던 것인지 홀로 그 자리에 남아 26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영화 안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놓아줄 때야.”라는 말이 들려오기 전까지 그는 비행기 안에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주변도 변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고픈 그에게 찾아온 현재라는 이름은 잔인하기만 했다. 철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조직 생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응원하게 된다. 진심으로 비행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화면 밖으로도 새어 나와 내 마음을 욱하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로 인해 말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수많은 꿈이 소리 내 외치는 것 같다. 비행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사 귀환’이라는 말을 통해 더 짙어진다. 잊을 수 없는 동료 ‘구스’라는 이름이 그의 마음에 깊게 새겨져 쉬이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이 ‘루스터’의 이름으로 덧씌워지며 믿음과 변화가 동시에 찾아온다. 그가 다져온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더한 성숙함으로 매버릭을 장식한다. 그가 방치한 자신도, 사랑도, 사람도 이제는 모두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그의 귀환을 모두가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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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리쉬 피자> 사랑의 탈을 쓴 힘과 위치의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어느 날 그는 학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등장한 연상의 여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청하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개리. 그러나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그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엮이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더욱더 험난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상식에서 받은 상의 숫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겉보기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듯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간 앤더슨은 설령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며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화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며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미국 10대, 20대 청춘의 로맨스를 다룬 <리코리쉬 피자>는 필연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앤더슨이 그려내는 로맨스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리코리쉬 피자>의 시작을 보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십 대 소년 개리 앞에 알라나가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로맨틱한 음악은 그녀의 등장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사진 찍는 일을 돕는 알라나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개리는 대화를 이어가고, 그 대화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 알라나의 등장부터 개리의 퇴장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 어떤 하이틴 로맨스와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간질거림과 살랑거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롱테이크의 말미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나이가 더 많다는 무기를 내세워서 개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알라나. 그러나 개리 앞에서는 여유 넘치던 그녀도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촬영 기사 앞에서는 불쾌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하고 만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에 그 리듬과 분위기를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자 본 작의 테마를 날카롭게 소개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에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환경에 따라 그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2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알라나와 개리의 로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만지는 개리를 부러워한다. 반면에 개리는 미성년자라는 한계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이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되어준다. 또 개리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개리와 알라나에게 서로 다른 남녀가 번갈아가며 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우선 앤더슨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의 교류, 추억의 공유, 뜨거운 육체적 교감이 아니라 위계의 형성을 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리코리쉬 피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사이에서 더 우월한 지위와 주도권을 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을 걷어냄으로써 <리코리쉬 피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며 깊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단순히 남녀와 사랑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대신, 그 관계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역학관계의 전복과 치열한 재전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의 섹스와 산업 사이의 역학관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본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불균질 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리와 알라나 사이에 비즈니스가 끼어들고, 그로 인해 알라나의 성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물침대 사업을 시작한 개리는 박람회에서 한 여성에게 섹시한 의상만 입힌 채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며 알라나는 그 여성에게 관심을 표한다. 바로 그 찰나에 개리는 용의자로 잘못 지목되어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이 대목에서의 장면 전환은 굉장히 사나운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경찰이 개리를 거칠게 다루며 그의 사업을 일시적으로 막는 모습에서는 마치 여성의 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도 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물침대 상점 오픈식에서 비키니를 입고 홍보를 하던 알라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개리를 본 후 좌절한다. 개리가 물침대를 사려는 고객에게 섹시하게 응대하라고 요구하자 알라나는 개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이전트와 오디션을 보던 중 개리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작품 내에서 노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개리와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려는 찰나마다 섹스를 매개로 빛에서 어둠으로, 환희에서 절망으로 급격하게 분위기를 전환한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의 로맨스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을 활용하는 세태에 대한 일차원적인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알라나의 이야기 속 성역할과 성위계를 고정되지 않은 시선으로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알라나가 성을 이용하는 사회와 산업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위치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그녀에게 성적 매력은 유용한 도구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를 유혹하고, 자신의 매니저가 된 개리가 불평하자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 후보인 조엘이 밤에 호출하자 곧장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알라나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설령 기존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알라나의 주도적인 선택과 참여가 없다면 그 질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즉, 그녀에게는 개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듯이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다.
이는 알라나가 기름이 떨어진 트럭을 끌고 내려가는 후진 장면이 러닝타임 중 가장 시원하며 황홀한 순간인 이유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다르게 활용한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했던 알라나. 그랬던 그녀는 이제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처럼 마초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개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남성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운전대를 잡고서 스스로를 구해낸다.
또한 이 장면은 작중 한국 전쟁의 영웅을 연기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숀 펜)'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에서 뒤로 추락했던 장면과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잭 홀든에게 알라나는 과거 파트너였던 그레이스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잭 홀든이라는 마초적인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오토바이 뒤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뒤로 추락했던 그녀가, 이제 오히려 후진을 통해 존 피터스와 잭 홀든이 상징하며 그녀가 편입되고자 했던 기존의 남성적 질서를 전복한다. 그러니 이 장면 직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시장 후보 조엘의 선거캠프에 알리나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앤더슨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리코리쉬 피자>의 메시지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알라나가 보여주는 주도성과 저항력은 개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리는 성공을 갈망하는 알라나만큼이나 사회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는 설령 알라나와의 관계가 뒤틀린다 해도 배우로서 성공을 꿈꾸고, 또 물침대 상점에 이어 핀볼 게임장을 오픈하면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주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개리의 열망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위치의 우위를 점하는 남성인 존 피터스에게 조롱당하자 분노하고 또 복수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그는 막 오픈한 게임장을 뒤로한 채 알라나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알라나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동성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조엘과 달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개리에게 달려가듯이. 이렇게 개리도 주류 질서로 편입되고자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힘과 권위를 주도적으로 뒤집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낸다. 영화는 이러한 커플의 탄생과 변화를 세 번의 달리기를 통해 보여준다. 알라나는 경찰서에 갇힌 개리를 꺼내 주기 위해, 개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린다. 이는 두 주인공의 달리기가 스크린 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위계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둘은 그들의 역학관계에서 마침내 평형점을 찾았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면서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렇게 역학 관계의 변화로 사랑과 연애를 정의하면서 앤더슨은 사랑을 매개로 보다 넓은 사회상까지도 통찰해낸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 유독 대중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재 자체가 많은 이들을 시간 여행에 빠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소재이자 장르인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렇다. 비록 스토리라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 보이나, 공간과 음악을 활용해 석유 파동을 비롯한 히피 문화, 반전 운동 등으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정취를 스크린에 가득 풀어놓은 것도 큰 몫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익숙하고 친숙한 사랑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칠 때 비로소 앤더슨의 로맨스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을 힘과 관계로 이해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전복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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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결말까지 진짜 개지림 ㄷㄷㄷㄷㄷㄷ[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오픈 그레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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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신이 아닌 신념을 가지고 불속에 뛰어느는 사내들 [영화리뷰/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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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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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한마 바키> 공식 예고편
지상 최강의 격투가, 아니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는 한마 유지로.
하지만 한마 바키에겐 아버지란 이름의 벽일 뿐.
지금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한 바키의 특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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