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요일의 오후 햇살. 한껏 아픈 다음 느끼는 안온함과 미열. 이제는 폭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질주해야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위안이 된다는 걸. 멈춰 서려고 할 때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문득 보일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이곳에도 국제 영화제가 있었다. 작년에는 개최하지 못했을 영화제가 올해는 열렸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32회 차나 되는 줄은 몰랐고,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가’ 초청되었다는 소식은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모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지만,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에 무척 유명했다. 필자는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서 감히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못하겠지만, 뭐랄까. ‘오! 수정’에서 보여준 흑백의 강렬함, 원색적인 소재를 놓고 양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절묘했다. 고 이은주 배우의 쇳소리 나는 신음소리를 스크린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그 후에 봤던 ‘극장전’의 엄지원 배우의 애드리브 ‘이제 그만 뚝!’, 그리고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 배우의 능청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들.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처연히 서 있던 남주인공의 그 눈빛이 선한 영화였다. 그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가까이에서 렌즈를 들이대고는, ‘저것 봐, 당신 인생이 이거랑 조금은 다른 거 같아? 한 번 봐’라는 자세로 관객의 눈과 귀를 희롱했던. 사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은채 배우는 연기력 논란이 늘 있어온 것도 같은데, 그 영화 속 해원이랑은 잘 어울렸다. 그 해에 나는 여기에 건너왔다. 그렇게 자주 위안삼아 찾아가던 종로 시네 코아와, 흥국 생명 건물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와, 아트선재 센터를 뒤로 하고. 그곳들이 밀집한 곳에 있던 직장에 다닌 게 신의 한 수였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다행히 이 곳에도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코로나로 어려웠겠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위의 영화관들이 아쉽지 않게, 이곳에서도 자주 한국 영화랑 외국 영화들을 본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언제부터 영화들에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2021년에 발표된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는, 그전의 감독에게서 보지 못했던 시각들을 볼 수 있다. 관객도 감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상옥’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상옥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상옥은 과거 한 때 연기를 한 적 있는 영화배우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주류 소매점을 운영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이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있는 동생 집에 묶으며 한국을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독백으로 시작된다. 초반에 그녀의 대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독백은 기도가 된다. 오늘 하루도 평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잠든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녀가 깨서 함께 간 브런치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냥 상황만 있고 대본은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셈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자매의 감정이 격해지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감독은 아주 명확히 카메라 렌즈를 줌인한다. 살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선을 읽으라는 듯, 아주 친절한 교과서처럼, 알려준다.
바다 대신 산과, 고층 아파트와, 공원이 등장한다. 예전 같지 않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이 현실에 밝아졌고, 집값 시세도 너무 잘 안다. 상옥은 조카도 만나고, 그녀가 오래전에 살던 집에도 가 본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다가 만난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멈춰있는 그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친절하고, 감독과의 대화는 길고 재미있다. 한껏 취기가 올라 영화 이야기를 하든 그들. 뭐 이제는 자타공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권해효 배우는 상옥에게, 그녀의 과거 영화들에서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참 망설인 상옥은 자신에겐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다. 감독은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다음 날 자신이 상옥을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약속한다. 상옥이 그제야 감독에게 묻는다.
‘결혼했어요?’
‘아들이 벌써 다 컸죠’
몇 병의 연태고량주와, 담배와, 기타 연주가 오가고 둘은 빗속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의 상옥은 감독의 음성 문자 메시지에 눈이 떠진다. 거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백하는 듯한, 감독의 대사가 있다. 이전에는 미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하룻밤을 계획했던 수치스러움과 후회를, 감독은 권해효 배우를 통해 말한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들 속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진실’ 하나를 가늘고 긴 냉면처럼 뽑아내던 그의 날카로움은, 등이 가냘픈 여배우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숙취 뒤의 사과문으로 뭉뚝하고 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쎄, 우리네 삶 속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술, 마시고 하는 의미 없는 듯한 대화들. 하지만 그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면 그런 ‘낭비’되는 시간 또한 곧 행복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상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의 평안함에 감사하며, 모두의 얼굴 앞에 놓인,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뒤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상옥처럼 내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시네코아에서 극장전을 보던 대학생인 나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던 하이퍼텍 나다에서의 나와,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마주 보고 있는 지금의 나.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진실, 혹은 수치심,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고, 어쩌면 아주 오래 그 안에서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지 않을 때는 또 영화 속 상옥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은 아닐 홍상수 감독도,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대사들로 인해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제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분과 참 많이 웃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안에서 살자고 내게 속삭이던 영화였다.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서 비치는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짧고도 길고, 처연하기도, 강렬하기도 한 소설 (short story. 단편영화. 영화 속 감독과 상옥이 이야기를 나누던 인사동의 카페 이름이 ‘소설’이다) 같기도 하다 싶었다. 나중에 40년쯤 더 지나서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축약하면 단편 영화나 소설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찬란한 개개인의 역사가 다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선물 (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일이 버거워 자주 몸이 안 좋았는데,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코로나인줄 알고 덜컥 겁이 났었다. 하지만 고열이 미열로 바뀔 즈음 또 영화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속 상옥을 깨우던 햇살과 깨달음처럼, 오늘의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참 다행이다.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가 초청되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