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2-24 10:33:16
<리코리쉬 피자> 사랑의 탈을 쓴 힘과 위치의 변화
<리코리쉬 피자>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어느 날 그는 학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등장한 연상의 여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청하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개리. 그러나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그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엮이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더욱더 험난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상식에서 받은 상의 숫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겉보기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듯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간 앤더슨은 설령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며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화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며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미국 10대, 20대 청춘의 로맨스를 다룬 <리코리쉬 피자>는 필연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앤더슨이 그려내는 로맨스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리코리쉬 피자>의 시작을 보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십 대 소년 개리 앞에 알라나가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로맨틱한 음악은 그녀의 등장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사진 찍는 일을 돕는 알라나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개리는 대화를 이어가고, 그 대화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 알라나의 등장부터 개리의 퇴장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 어떤 하이틴 로맨스와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간질거림과 살랑거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롱테이크의 말미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나이가 더 많다는 무기를 내세워서 개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알라나. 그러나 개리 앞에서는 여유 넘치던 그녀도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촬영 기사 앞에서는 불쾌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하고 만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에 그 리듬과 분위기를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자 본 작의 테마를 날카롭게 소개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에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환경에 따라 그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2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알라나와 개리의 로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만지는 개리를 부러워한다. 반면에 개리는 미성년자라는 한계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이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되어준다. 또 개리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개리와 알라나에게 서로 다른 남녀가 번갈아가며 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우선 앤더슨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의 교류, 추억의 공유, 뜨거운 육체적 교감이 아니라 위계의 형성을 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리코리쉬 피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사이에서 더 우월한 지위와 주도권을 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을 걷어냄으로써 <리코리쉬 피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며 깊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단순히 남녀와 사랑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대신, 그 관계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역학관계의 전복과 치열한 재전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의 섹스와 산업 사이의 역학관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본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불균질 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리와 알라나 사이에 비즈니스가 끼어들고, 그로 인해 알라나의 성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물침대 사업을 시작한 개리는 박람회에서 한 여성에게 섹시한 의상만 입힌 채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며 알라나는 그 여성에게 관심을 표한다. 바로 그 찰나에 개리는 용의자로 잘못 지목되어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이 대목에서의 장면 전환은 굉장히 사나운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경찰이 개리를 거칠게 다루며 그의 사업을 일시적으로 막는 모습에서는 마치 여성의 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도 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물침대 상점 오픈식에서 비키니를 입고 홍보를 하던 알라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개리를 본 후 좌절한다. 개리가 물침대를 사려는 고객에게 섹시하게 응대하라고 요구하자 알라나는 개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이전트와 오디션을 보던 중 개리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작품 내에서 노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개리와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려는 찰나마다 섹스를 매개로 빛에서 어둠으로, 환희에서 절망으로 급격하게 분위기를 전환한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의 로맨스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을 활용하는 세태에 대한 일차원적인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알라나의 이야기 속 성역할과 성위계를 고정되지 않은 시선으로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알라나가 성을 이용하는 사회와 산업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위치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그녀에게 성적 매력은 유용한 도구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를 유혹하고, 자신의 매니저가 된 개리가 불평하자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 후보인 조엘이 밤에 호출하자 곧장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알라나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설령 기존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알라나의 주도적인 선택과 참여가 없다면 그 질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즉, 그녀에게는 개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듯이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다.
이는 알라나가 기름이 떨어진 트럭을 끌고 내려가는 후진 장면이 러닝타임 중 가장 시원하며 황홀한 순간인 이유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다르게 활용한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했던 알라나. 그랬던 그녀는 이제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처럼 마초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개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남성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운전대를 잡고서 스스로를 구해낸다.
또한 이 장면은 작중 한국 전쟁의 영웅을 연기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숀 펜)'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에서 뒤로 추락했던 장면과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잭 홀든에게 알라나는 과거 파트너였던 그레이스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잭 홀든이라는 마초적인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오토바이 뒤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뒤로 추락했던 그녀가, 이제 오히려 후진을 통해 존 피터스와 잭 홀든이 상징하며 그녀가 편입되고자 했던 기존의 남성적 질서를 전복한다. 그러니 이 장면 직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시장 후보 조엘의 선거캠프에 알리나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앤더슨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리코리쉬 피자>의 메시지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알라나가 보여주는 주도성과 저항력은 개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리는 성공을 갈망하는 알라나만큼이나 사회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는 설령 알라나와의 관계가 뒤틀린다 해도 배우로서 성공을 꿈꾸고, 또 물침대 상점에 이어 핀볼 게임장을 오픈하면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주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개리의 열망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위치의 우위를 점하는 남성인 존 피터스에게 조롱당하자 분노하고 또 복수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그는 막 오픈한 게임장을 뒤로한 채 알라나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알라나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동성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조엘과 달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개리에게 달려가듯이. 이렇게 개리도 주류 질서로 편입되고자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힘과 권위를 주도적으로 뒤집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낸다. 영화는 이러한 커플의 탄생과 변화를 세 번의 달리기를 통해 보여준다. 알라나는 경찰서에 갇힌 개리를 꺼내 주기 위해, 개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린다. 이는 두 주인공의 달리기가 스크린 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위계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둘은 그들의 역학관계에서 마침내 평형점을 찾았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면서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렇게 역학 관계의 변화로 사랑과 연애를 정의하면서 앤더슨은 사랑을 매개로 보다 넓은 사회상까지도 통찰해낸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 유독 대중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재 자체가 많은 이들을 시간 여행에 빠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소재이자 장르인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렇다. 비록 스토리라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 보이나, 공간과 음악을 활용해 석유 파동을 비롯한 히피 문화, 반전 운동 등으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정취를 스크린에 가득 풀어놓은 것도 큰 몫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익숙하고 친숙한 사랑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칠 때 비로소 앤더슨의 로맨스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을 힘과 관계로 이해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전복의 짜릿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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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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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파업, 업계 최대 규모의 동반 파업으로진화
미국 작가조합은 임금인상과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 미국 배우조합은 스트리밍 대기업을 향해 더 공정한 수익 분배와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 인공지능과 컴퓨터로 만든 얼굴과 음성으로 배우를 대체하지 않도록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이 여파로 인해 많은 영화,드라마들이 제작이 대부분 중단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바람 잘 날 없는 영화계 여러분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관객수 40만 명 기록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을 찾는다고 합니다.
영화 <괴물>이 예술영화로는 드물게 누적 관객 수 40만 명을 돌파하면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내한한다고 하는데요. 고레에다 일본 영화 중 국내 최고 흥행작은 2013년에 나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는데 이를
제치고 <괴물>이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습니다.
<비프> 고른글로브 3관왕
한국계 제작진과 배우가 뭉쳐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비프>가 올해 골든글로브 3관왕에 올랐습니다.
TV 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 작품상에 호명된것은 물론 스티븐 연, 앨리 웡이 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스티븐 연은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이번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향후 에미상 수상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외계+인 2부 박스오피스 1위
<외계 +인 2부>가 예매 관객수 10만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전작 1부에서는
154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는데요. 1부에서 다소 복잡했던 서사의 타래가 2부에서
정리되면서 매듭을 잘 맺었다는 만족으러운 호평이 대체로 많은것과 1부가 OOT를 통해 재평가를 받으며
유입된 관객층을 기대하며 흥행을 기대해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티모시 샬라메 <웡카>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총 세 차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웡카>.
티모시 샬라메는 <웡카>를 통해 자체 최고 흥행작을 경신하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올랐습니다. 전 세계 달콤한 흥행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웡카>는 오는 31일 전국 극장으로
찾아온다고 합니다.
봉준호 신작 미키 17 개봉 연기
<외계 +인 2부>가 예매 관객수 10만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전작 1부에서는 154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는데요. 1부에서 다소 복잡했던 서사의 타래가 2부에서 정리되면서 매듭을 잘 맺었다는 만족으러운 호평이 대체로 많은것과 1부가 OOT를 통해 재평가를 받으며 유입된 관객층을 기대하며 흥행을 기대해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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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구찌가 될 상인가.
이 글은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수선화"와 "나르시시즘"이란 단어 사이에는 매우 큰 간격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이야기로 엮이게 되면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알게 된다.
알쓸 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말씀하셨듯, 이야기는 그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고, 잘 전달하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무작위로 뽑은 단어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살을 붙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구찌"와 "살인"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 둘 사이의 거리도 좁혀질 수 있을 만큼의 접점이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니, 믿고 시간과 우리의 마음을 맡겨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그 애매함을 넘어서기.;두 주연이 이뤄내는 반란.
사진 출처:다음 영화숫자 2는 참 이상하다.
소수(Prime number, 참고 1) 중 유일한 짝수인 점도 그러하지만. 성공적인 영화의 2편(혹은 후속편)의 제작은 가장 많은 욕을 먹을 각오로 제작해야 하는 리스크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만 들어봐도 이 2라는 숫자가 가진 위치와 애매함은 불완전함, 혹은 사족을 뜻하기도 한다.
두 주연 배우에게도 이 2라는 숫자는 여러모로 많은 부담을 안게 하는 숫자였을 것이다.
한 번 일한 배우와는 일을 안 한다는 말이 돌 만큼 캐스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리들리 스콧과 전작인 [라스트 듀얼]에 이어 두 편의 영화를 찍는 영광 아닌 영광을 가진 아담 드라이버에게도.
[스타 이즈 본]에서 성공적인 연기를 보였지만, 소포모어 신드롬(Sophomore syndrome, 참고 2)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두 번째 작품으로 이 영화에 참여한 레이디 가가에게도 말이다.
두 번째.
하지만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줘야만 하는 단 한 번의 기회.
이 상황에서 두 배우는 서로의 손을 잡아 불안한 하나 보다 온전한 둘이 되는 것을 택했다. 숫자 2에 숨은 또 다른 의미를 슬며시 끌어온 것이다.
덕분에 영화는 걱정했던 불완전함이 묻어나 껄끄럽거나 삐걱거리지 않는다. 안정적이고 세련된 연기로 영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오롯이 구찌 가문의 안위만을 걱정하는데 쏟게 한다.
껍데기의 싸움.;결국 껍데기는 알맹이를 이길 수 없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화투.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정마담이 영화 타짜 1편의 시초가 된 화투를 그렇게 정의했다면, 구찌 가문의 또 다른 축이었던 알도 구찌(알 파치노)는 이 모든 가족 싸움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구찌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껍데기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브랜드 구찌가 만들어낸 상품들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기도 했겠지만, 실제로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이 원하고 탐하다 못해 선택해서는 안 되는 방법까지 기꺼이 행하게 하는 "Gucci"라는 껍데기를 차지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혹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혹자는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은 이름을 결혼을 통해서라도 갖기 위해.
또 누군가는 아들에게 이름을 물려주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독을 바른 손톱을 잔뜩 세워 희생양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를 몸을 낮춰 기다리며 상대를 찔러보는 싸움을 하고 있지만.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 만큼은 이 껍데기가 죽도록 싫어 벗어나려고 애쓰는, 혹은 사업을 위해 매진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자신은 이런 싸움은 관심이 없는 듯한 독야 청청한 자세로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서. 나는 "당신들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몸으로 소리치듯이.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구찌라는 이름을 버린 적이 없었다. 소극적인 태도, 정면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뉘앙스로 구찌를 원하지 않는 척했을 뿐. 그는 항상 그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것"이라는 껍데기를 찾아 익숙한 것에서 도망치려 했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늘 가지려 애썼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그 역시도 같은 인물일 뿐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결말이 그러하듯.
아무리 화려한 껍데기라도 알맹이를 이길 순 없었다.
구찌는 가짜들의 싸움이 아닌, 진정으로 구찌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만 했던 "껍데기"구찌와 알맹이 구찌가 모두 같은 고귀한 모습을 지니기를 바란 사람들이 이긴 셈이다.
명감독은 명감독이다.;이걸 누가 이기니.
사진출처:다음 영화가끔 캐릭터가 가진 모든 이야기의 끝까지 다 박박 긁어 쓰는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애석하게도 그런 캐릭터는 배우의 연기에 상관없이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영화가 나눠 가져야 할 처절함이나 진중함을 캐릭터 하나 몽땅 갈아 넣는 것으로 됐지?라며 선심 썼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가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아마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전작들도, 그리고 이번 영화에도 처절한 인물들은 늘 등장하지만, 어쩐지 그가 만들어낸(혹은 실존한) 인물들은 소모된다는 인상보다는 함께 숨 쉬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영화에 참여하다 보면,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에는 그 어떤 캐릭터도 소모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인물들의 몸짓과 말 하나하나에 마치 폐부를 찔린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영화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레이디 가가, 아니 파트리치아 구찌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을 때,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지저분한 가족사를 관음증 환자처럼 끝까지 들여다본 관객은 어떤 껍데기에 집착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참고 1
소수는 1을 제외하고 자신만이 약수가 되는 수를 말함. 즉 3은 1과 3. 5는 1과 5. 이런 식의 숫자를 말함. 2는 유일한 짝수인 소수임.
참고 2
소포모어 신드롬(Sophomore syndrome), 혹은 슈퍼 루키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첫해에 정말 엄청난 활약을 보인 선수가 두 번째 해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쪽으로 해석한다는 사람도 있으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뭐 어떻게 매년 잘하냐.
[이 글의 TMI]
아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2022의 새해 스케줄의 소용돌이에서 정신을 놓기 직전에 마치 휴식처럼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빨리 입장한 영화관에서 내 자리를 찾던 도중, 어둑어둑한 상영관 안에서 작은 노트를 펼쳐놓고 글(이라고 추정함)을 쓰시는 분을 발견했다.
순간 아주 많은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보통 기억력이 좋지 않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서 대충 잊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도 계속 잔상처럼 그분의 글 쓰시던 자세나 분위기가 마음에 남아 맴돌았다.
마치 알게 모르게 계속 글이 쓰고 싶었는데 그런 내 마음의 응어리가 모여 현실로 쨘 하고 나타난 것처럼.
결국 나는 글 쓸 시간을 짜내기 위해 앞으로 회사에서 대충 샐러드를 저녁으로 퍼먹고 집으로 오기로 했고, 덕분에 이번 주말에나 겨우 쓸 수 있을까 말까 점쳐야 했을지도 모를 영화 리뷰글을 쓰고 있다.
혹시라도 뭐 그럴 리 없겠지만.
그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그것도 여기까지 읽으시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롯데월드타워 금요일(1/14) 19시에 하우스 오브 구찌를 보시던 그분. 덕분에 약간 정신 차릴 수 있었습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리들리스콧 #하우스오브구찌 #레이디가가 #아담드라이버 #자레드레토 #구찌는커녕팔찌도없음 #영화인플루언서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브런치작가 #영화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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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구역 빌런이다.
이 글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좀비물의 특성상 첨부된 사진이 거북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괴생명체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뱀파이어였다.
그들은 영원불멸에 가까운 삶을 피를 통해 연명해야 했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인간에 섞여 존재하기를 택했다. 무의미할 정도로 무한정한 시간은 뱀파이어들에게는 부질없는 부를 축적하게 했고, 인간은 둘 중 하나도 얻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삶을 가엾게 지켜보는 그들의 눈에는 언제나 가을바람 같은 쓸쓸함이 가득했다. 이 모든 생활이 진절머리 난 뱀파이어들에게 끝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들을 타들어가게 할 햇빛뿐이었다.
이들이 가진 고고함과 불사의 몸은 영화를 철학적으로도, 때론 스타일 있는 액션물로도 만들 수 있었지만. 영화는 조금 더 원초적이며 복잡하지 않은 크리처를 원했다. 이성이 있는 뱀파이어들은 넘어갈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해 제작자들의 도덕적 부담을 조금은 덜어줄 법 한.
그렇게 좀비가 등장했다.
피에 대한 본능과 소리에 대한 감각만 남았을 뿐 그 어떤 생각도,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앞뒤 재는 것 없이 뜀박질만 할 수 있는 괴력의 존재. 이렇게 단순하고 파괴적인 "좀비"는 생물과 무생물의 특성을 지닌 바이러스 마냥 빠르게 뱀파이어들을 쓰러뜨리고 영화계에서 무자비한 지배종의 자리를 틀어쥐게 되었다.
마치 오랫동안 일본과 중국에 가려져 저평가 받고, 때로는 주류의 문화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던 한국 문화가 넷플릭스의 노른자위 땅에 당당히 깃발을 꽂은 것처럼.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은 넷플릭스에서의 지배종 자리를 노리는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시험하는 자리에 다시 한번 올라있다. [지옥], [오징어 게임]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이어 구독자들의 목덜미에 치명적인 이빨 자국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인가.
신선함 반 식상함 반;그리고 빌런의 중요성
사진출처:YTN STAR[지우학]에 나오는 좀비들도 "좀비물"이라 불리는 영화에서 약속한 암묵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빛에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는 점과 감염이 전파되는 속도가 한국인의 성질머리만큼이나 빠르다는 것이 조금 도드라질 뿐이다.
널리 알려진 좀비의 특성상, 영화의 구성이 새로울 리가 없다. 전반부에 휘몰아치듯 벌어지는 추격전을 빙자한 살육전과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Minor)의 생존자들이 한자리로 모이는 과정. 본능 외엔 껍데기뿐인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작은 탈출을 감행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필수 요소처럼 녹아있는 크고 작은 분열과 드러나는 비열한 인간의 본성들.
이미 한국 영화에서도 다섯 손가락을 넘길 만큼의 좀비물이 존재하고 있는 시점에, [지우학]이 레퍼런스로 참고한 작품은 놀랍게도 좀비물보다는 같은 넷플릭스 식구인 [지옥]이나 [돈 룩업]에 에 가깝다는 지점이 조금은 새롭다.
도륙에 가깝다시피 한 시각적 영화에서 머물기보다 최근의 트렌드인 사회적 풍자와 근원적인 고민에 대한 뉘앙스를 가미하는 것으로 비슷비슷한 좀비 영화"류"에서 벗어나고자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지우학]이 다른 좀비물과 가장 차별화되는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트렌드를 따르지 않은데 있다. 바로 치가 떨리도록 무섭고 집요한 빌런 윤귀남(유인수)의 등장.
여태 봐 온 좀비 영화의 전형적인 빌런은 나연(이유미)에 가까운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가뜩이나 급박한 상황에 짜증을 잔뜩 끌어올려 살아남은 자들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대다 잔인하게 죽고 만다. 보는 순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안에서는 일회용품에 지나지 않을법하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채기 쉽지만, 그러려니 하며 용인하고 넘어갈 만큼의 역할. 딱 그만큼에 머무르기 쉽다. 단지 그 악랄함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
그러나 귀남의 경우는 다르다.
좀비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이성도 잃지 않는다. 또한 시즌제를 관통하게 될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의 변이나 면역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 또한 이 최종 빌런의 중요도를 높여준다.
시리즈 자체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우학이 가진 매력을 배가 시키는 데는 귀남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시리즈를 살리는데 일조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 하필 학교인가?;그리고 왜 학생인가.
사진 출처:서울 경제영화에는 안정적으로 보이는 공간인 학교 안에 있는 불안정한 존재인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우학]에서 보여주는 학교는 학생을 전혀 보호해 주지 않는 곳임을 아이러니하게 드러낸다.
단지 좀비의 근원지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학교 폭력에서도. 빈부 격차에서 오는 차별에서도, 그 어떤 것에서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가장 지옥 같은 곳이 된 것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그들은 교복이라는 갑옷 단 하나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한숨 한 번 쉬며 교문 문턱을 넘어야만 했다.
작품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들이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려준다.
수많은 학생들이 등장하지만. 그 누구도 처음부터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명찰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로 대체되거나 누구누구의 친구 정도의 언급이나 존재감에 머무른다. 극중 남라(조이현)역시 자신이 맡은 반장이라는 역할에 가려져 이름이 무엇인지 친구들의 입에서조차 몇 번 듣지 못한다.
또한 목숨이 빛의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이들은 한때 선생님들이었던 어른들의 호통에 움찔할 수밖에 없다. 단지 자신보다 어린 학생이라는 존재의 정체성 만으로. 그들은 핍박받고 어리다고 무시당해야 한다.
가장 씁쓸한 부분은.
그 아무리 허울뿐인 학교라 해도, 학교의 담벼락을 넘는 순간 보호받아야 할 학생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전락해버린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학교 밖으로 나갔을 때의 그들은 이 나라의 희망도 아니요, 보호해야 할 미성년자도 아니다. 그저 나보다 먼저 넘어져 나 대신 좀비의 밥이 될 수도 있는 후보군 들 중 한 명이거나 대충 소리치고 윽박질러 자신이 유리한 대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존자들은 학교에 갇혀 있는 시간을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희한한 존재가 가진 본질적인 두려움 때문에.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른 학생들은 사복을 입지만, 남라는 여전히 교복 차림이라는 것에서도 이 차이를 잘 느낄 수 있다.
이 복잡한 존재들이 겪어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도, 학생이라는 불완전한 생명체는 웃고 장난을 치며 무려 내일을 기약한다. 이 혼돈 속에서도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변하지 않은 정체성에 괜히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과연 좀비만이 무서울까.;방관자들이 큰소리치는 현실
영화는 많은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가깝고 생생한 "지금"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점점 영화와 현실의 구분이 되어가지 않는 지금을 살고 있음이 이 작품을 통해서도 느껴진다.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헛소리를 침착하고 밝게 내뱉는 안내방송이나, 현재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만 급급한 높으신 분들, 왕따 피해자 학생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들.
사실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방관자에 가깝고, 이 방관자들의 헛소리 덕에 좀비 사태는 좀 더 빠르고 심각하게 퍼져나간다. 그 와중에 방관자들이 예측한 이 일의 심각성마저도 과소평가된 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마치 좀비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모든 사회적인 문제들이 심각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좀비는 폭탄으로 끝낼 수 라도 있는 존재였겠지만. 방관자들의 의식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이런 태도들은 효성시를 다 날려 버리는 것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마치 영화 [돈 룩업]이 보여준 것처럼, 최후의 1인마저 모두 좀비가 되어야만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문제일 것이다. 죽은 자와 좀비 모두 그때가 되면 모두 말이 없을 것이기에.
마치면서
사실 [지우학]은 거슬리는 점 또한 꽤나 많은 영화이다.
선정성(을 암시하는 장면의 삽입)이나 폭력성 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시즌제를 염두에 둔 결말도 아쉽다. 6화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형사 역을 맡은 이규형 배우의 뜬금없는 인류애도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이 [지우학]의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단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점을 더욱 잘 살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뭐니 뭐니 해도 다시 한번 박사 학위 있는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 글의 TMI]
언제부터인가 식상하고 기본적이며 때론 인사치레처럼 여겨지던 모든 문장들을 달리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는 진심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건강하라.
돈 아껴 써라.
자기를 먼저 챙겨라.
등등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는 말은 그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많이 생기는 삶의 터전 속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나이가 다르고 현재 상황이 다르겠지만. 내가 말하는 이 문장들의 단 하나의 단어 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에 있는 저울에 좀 더 진중한 무게를 올릴 수 있기를.
2022년 올해는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은 더 순조롭게 완료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 안에서 더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지금우리학교는 #넷플릭스 #지우학 #영화추천 #넷플릭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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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영적 세계를 표현한 픽사의 엄청난 상상력과 표현력은 놀랍다. 이래서 픽사 영화는 믿고 봐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단순히 쉽게 흘러가는 줄거리 속 숨어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에서 가끔 등장하는 한국어와 한글은 한국인이 봤을 때 친근함과 소소한 웃음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불꽃을 만들어준 영화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화 서두에 적었다시피 한글과 한국어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우리들처럼 흑인들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도 <소울>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거대한 뉴욕 도시 풍경과 분위기는 물론,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의 인종에 맞춰 소울 가득한 재즈 음악과 흑인 바버샵, 흑인 특유의 억양과 발음 등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인 문화들을 살펴볼 수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라라 랜드>의 세바스찬(라리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과 비슷하여 그를 떠올렸지만, 피아노 연주로 전해져 오는 분위기와 소울이 달랐다. 역시 재즈는 흑인 문화인만큼 그 소울을 따라갈 순 없나 보다. 표현 같은 픽사 작품인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창의적이게 표현한 영화라면 <소울>은 인간의 영적인 세계 즉, 죽음과 창조에 대해 창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인간이 죽고 난 후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의견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소울>은 우주처럼 보이는 배경에 거대하고 환한 빛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환한 빛을 향하니 긍정적인 세계로 향하는 듯 보인다. 반면, 창조는 생물학적인 탄생 이전으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성격이나 성향을 미리 만든 상태로 성장해간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자아를 미리 만들어놓고 성장하면서 그 자아를 발현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영적 세계는 신기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인간의 자아 형성은 어떻게 되고, 죽음 이후에 다가오는 과정은 이러한지 그리고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순간 <소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상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라고 느낀 영화다. 이 주제는 너무 단순해서 금방 망각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소울>은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다. 일상의 즐거운 순간,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제와 더불어 '목적'이라는 키워드도 언급하고 싶다. 조 가드너는 '하프 노트'라는 재즈 클럽 멤버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막상 꿈에 그리던 재즈 멤버가 되니 그는 마냥 기뻐하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꽃이 약해진 것이다. 목적, 목표를 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긍정적인 성과나 변화를 얻길 원하고, 실제로 얻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한 없이 높아지고 과장되어 간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했을 때, 과장되었던 기대감에 김이 빠지기 시작하며,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대감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무계획을 실현할 수도 있다. <소울>은 한편으로 목적 있는 삶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정확히는 무조건 목적이 있어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꽃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묻지만, 단순하고 일반적인 순간에도 마음속 불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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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 없이 귀신처럼 떠돌다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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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퇴마사
이 영화의 주인공은 퇴마사 천박사다. 큰 차를 끌고 천박사와 강도령이 이동하고 있다. 차의 뒷부분에 짐들이 바리바리 쌓여있다. 강도령, 그러니까 인배는 이게 맞나? 싶다. 몇 번 따라다녀 보니 이 퇴마가 나름 고객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면 다행인 셈이다. 이번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배와 천박사. 기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번 고객은 중학생이다. 점점 부모에게 투덜대는 딸. 얼핏 보면 이 집안에 되는 일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한 강도령과 천박사. 두 사람이 차에서 주섬주섬 짐을 꺼낸다. 근데 이거 차 견인 안 되겠지? 어차피 조금 하고 나올 건데 고객 부부의 딸은 대놓고 ‘주작이지?’ 의심한다. 원래 처맞기 전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마 용한 퇴마사를 만나지 않으니까 이런 소리를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 같다.
퇴마가 진행된다. 안 믿었던 부부의 딸. 딸의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한 기운이 왠지 모르게 집안 전체에 흐르는 것 같다. 확실히 진짜인 것 같다. 부정적인 기운이 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 같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도령과 천박사가 무엇인가를 꾹꾹 누르고 있다는 건 부부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리도 깨지고 붉은색 액체도 흘리고 별의 별것이 보이는데 리스펙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이 퇴마의 뒷면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천박사와 강도령은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가짜 퇴마사인지, 진짜 의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천박사. 천박사에게 특별한 고객이 찾아왔다. 진짜 귀신을 다루는 고객이 온 것이다. 과연 천박사는 고객 유경을 둘러싼 저주를 없앨 수 있을까?
만화 같은 이야기
이 영화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줄거리로 삼고 있다. 실제로 김용태, 후렛샤가 연기한 <빙의>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잘 활용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만화란 매력적인 세계관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만화 시리즈인 마블 코믹스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만화에서 다루는 에피소드가 타노스와의 일전이라고 가정한다. 그럼 우선 타노스가 어떤 욕망이 있어 빌런으로서의 목표를 이루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준다. 욕망만 있으면 안 된다. 그만큼의 무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의 아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탄생한다. 무작정 싸우기만 하면 또 안된다. 인피니티 스톤들을 모으기도 하고, 외계 행성에 있는 슈퍼히어로도 새롭게 등장시킨다. 슈퍼히어로들이 연대를 통해 빌런 타노스를 무찌른다. 전우주적인 존재를 이기는 힘이 캐릭터들의 매력과 연대라는 감정이 된 것이다.
본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은 만화가 가진 매력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관을 이끌어야 할 천박사(강동원)는 개성이 빛나는 캐릭터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 안에서의 천박사는 허상인 퇴마능력을 뛰어난 추리능력으로 둔갑시킬 만큼 능글맞다. 이 능력 묘사는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 능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부 유경과 천박사가 대면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영화의 사실상 진정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관객은 유경이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이야기 안에서 천박사의 수가 너무 대놓고 드러나면(사기행각이 들킨다면)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 현실성을 부여해서 초반부의 설득력을 만들었다. 이 초반부 이후 전개는 장르가 급변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코미디/액션에서 호러/오컬트로 급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스타트를 잘 끊어 후반부까지의 토대를 세운 것이다.
눈요기 칭찬해
영화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 하나는 액션이다. 영화에서 액션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두 명이다. 주인공 강동원, 허준호 배우가 맡은 역할이다. 우선 허준호 배우의 액션연기는 훌륭했다. 허준호 배우가 맡은 범천은. 영화의 기본 설정 상 인물 서사에 곡선을 만들면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영화가 이를 의식해서인지 초반부와 후반부의 활동 범위 차이를 일부러 대조한 감이 있다. 실제로 영화의 편집이 범천이 실내에 있을 때에는 다각도로 인물을 보여주지만 밖에 있을 땐 테이크가 짧다고 보긴 어렵다. 전반부, 후반부 모두 허준호 배우의 경험치가 빛난 셈인데, 글쓴이는 후반부의 연기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중후반부에 늘어지는 이야기 흐름을 확 휘어잡는 좋은 연기였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cg 시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에도 당연히 좋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극 중 중반부에 핵심 조연(특별출연)으로 누군가가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영화가 이 장면에서 관객에게 준 힌트가 이후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두 배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 이전에, 이 이야기를 설득시키기 위해 시각자료를 첨부한 성의가 좋았다. 어떤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적인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한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산만한 연출
이 영화의 플롯 구조가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면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긴박감을 조성하는 연출이다. 중반부부터 악당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 악당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를 것 같은 건 당연한 이야기이다. 대표적으로 <다크 나이트>의 조커, <더 배트맨>의 리들러가 그랬듯이 말이다. 앞 두 영화가 악랄한 빌런이 잡힐 듯 말 듯 긴장감을 유지했던 것과는 별개로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설경의 비밀>은 단조롭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클로즈업이다. 영화에서 그럴듯한 위기가 벌어질 때 인물들은 인상 찌푸리기만 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영화에 빼곡히 있어 다양한 리액션이 나와야 할 판에, 같은 리액션만 반복하니 단조로워진다.
또한 이야기에 한 번에 몰입하지 못하게 등장인물 중 몇 명은 영화를 방해하고 있다. 인배 캐릭터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체적으로 방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인물의 억지 유머가 전체적으로 고르게 있지만 특히 이야기 중반부 즈음 빌런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신에서 강하다. 이 장면에서 영화가 가진 과제는 빌런(허준호)이 이런 인물이라고 관객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인배의 캐릭터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인배가 이 장면에서 정확히 이런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애매모호해
이 영화는 애매모호하다. 코미디라고 보기에도 그렇게 웃음 타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호러/오컬트라고 보기엔 주요 장면에서 cg티가 나고, 오컬트물로 볼 수 있을 만큼 퇴마라는 것에 중점을 두지도 않았다. 이 영화가 이렇게 모호한 육각형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등장인물 천박사의 퇴마의식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천박사가 딱히 퇴마사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없다. 그렇다고 무슨 심리치료사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도 아니다. 영화가 천박사를 퇴마사도 아니고 심리치료사도 아닌 무언가로 설정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천박사가 사용하는 도구가 이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도구를 가지고 퇴마의식을 했다던가 유령과 관련된 어떤 것이 나왔던가 하면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쉽게 수긍했을 것이다. 정작 주인공 천박사가 칼 휘두르는 모습만 기억에 남으니 액션물도 아니고 오컬트물도 아닌 모호한 무언가로 기억되기 쉬울 듯하다. 이러다 보니 영화의 연결고리들이 매끈하지 못하다는 단점도 두드러진다. 확실한 장점이 없으니 불확실한 단점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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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비루함
지금이야 드라마들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갔지만, 내가 어렸을 때 가족들과 모여 보던 드라마들은 내용이 거의 다 비슷비슷했다. 능력 있지만 어딘가 결함이 있는 남자와, 불우하지만 이상적인 성격을 가진 여자가 만나 갈등을 사랑으로 극복하며 끝맺는 이야기들. 모두 보고 나면 역시 재밌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딘가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사랑들은 모두 물리학적 사랑이었다. 물리학 실험처럼 완벽히 통제된 상황에서만 변수 없이 작동하는 그런 완전무결한 사랑. 그런 사랑은 현실의 사랑과 무척이나 닮아있지만, 결정적인 지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현실적인 사랑에서는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갈등도 있고, 해결되지 않는 갈등도 있고,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지저분하고 추한 모습도 언제나 동반하고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드라마에는 그런 사랑의 비루함이 빠져있곤 했다.
<우리도 사랑일까> 같은 영화를 보면 안타깝다. 주인공 마고에게는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남편이 있는데(요리까지 잘한다) 우연히 옆집으로 이사 온 남자 대니얼에게 흔들린다.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그 여자의 흔들리는 감정이 위험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마고는 대니얼을 택한다. '루 같은 남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분명 후회한다 너.' 혼자서 중얼거리게 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내가 언젠가 느꼈던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미와, 설레는 감정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아노말리사>는 어떤가. 권태로운 일상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는 마이클 스톤이 수줍은 여자 ‘리사’에게 홀딱 반하고 같이 밤을 보내는데, 아침이 돼서 밥을 먹을 때가 되어서는 그녀의 쩝쩝대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구제할 수 없는 그의 한심함에 비참해질 정도가 되는데, 한 편으로는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흠뻑 빠졌다가 단점을 발견해나가는 사람일 때가 많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단란하고 평범한 부부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낭만적인 약속으로 시작해서 파멸로 끝이 난다. 둘은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이민 가자는 목표를 세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랭크는 승진을 제의받고, 에이프릴은 임신을 한다. '하필이면'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생에서 시시때때로 나타나 발을 거는 법이다. 현실과 이상 앞에서 안전한 현실을 택할 것인가, 불안한 이상을 택할 것인가. 안타깝지만 대체로 우리는 안전한 현실을 택하는 사람들이고, 영화 속 두 인물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하필이면'이라는 단어를 만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면서 망가지는 꿈은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사랑에 관한 비극일 때,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서로에게 실망하게 되었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안타까워진다.
이처럼 나는 사랑의 비루함을 다루는 영화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막 찌질하고, 하찮고, 사소하고, 한심하고, 추잡하고, 이기적이고, 골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보면 세상의 단면을 그대로 회로 떠서 접시에 올려놓은 것 같은 싱싱함이 느껴진다. 내가 겪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감정이, 레고 블록을 틈새 없이 끼우듯 맞추어지는 것 같다. 세련되고 깔끔하게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는 나는 앞으로도 사랑의 비루함을 껴안고 우당탕탕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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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그맨> 메인 예고편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GOD)은 개(DOG)를 보낸다” 거장 뤽 베송의 새로운 마스터피스! [도그맨]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한 남자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2024년 1월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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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명탐정 코난 : 범인 한자와 씨> 공식 예고편
여기는 범죄 도시, 베이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율로 악명 높은 이곳에 누군가가 칠흑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남자(혹은 여자?)의 목적은 ‘어떤 사람’을 살해하는 것. 그렇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 없어선 안 될 그 녀석이 이번엔 주인공이다! 온몸을 감싼 검은 타이츠, 순백의 두뇌를 소유한 그(녀)의 이름은 바로... 범인 한자와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