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2-24 10:33:16
<리코리쉬 피자> 사랑의 탈을 쓴 힘과 위치의 변화
<리코리쉬 피자>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어느 날 그는 학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등장한 연상의 여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청하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개리. 그러나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그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엮이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더욱더 험난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상식에서 받은 상의 숫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겉보기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듯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간 앤더슨은 설령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며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화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며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미국 10대, 20대 청춘의 로맨스를 다룬 <리코리쉬 피자>는 필연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앤더슨이 그려내는 로맨스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리코리쉬 피자>의 시작을 보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십 대 소년 개리 앞에 알라나가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로맨틱한 음악은 그녀의 등장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사진 찍는 일을 돕는 알라나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개리는 대화를 이어가고, 그 대화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 알라나의 등장부터 개리의 퇴장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 어떤 하이틴 로맨스와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간질거림과 살랑거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롱테이크의 말미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나이가 더 많다는 무기를 내세워서 개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알라나. 그러나 개리 앞에서는 여유 넘치던 그녀도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촬영 기사 앞에서는 불쾌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하고 만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에 그 리듬과 분위기를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자 본 작의 테마를 날카롭게 소개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에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환경에 따라 그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2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알라나와 개리의 로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만지는 개리를 부러워한다. 반면에 개리는 미성년자라는 한계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이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되어준다. 또 개리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개리와 알라나에게 서로 다른 남녀가 번갈아가며 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우선 앤더슨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의 교류, 추억의 공유, 뜨거운 육체적 교감이 아니라 위계의 형성을 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리코리쉬 피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사이에서 더 우월한 지위와 주도권을 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을 걷어냄으로써 <리코리쉬 피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며 깊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단순히 남녀와 사랑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대신, 그 관계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역학관계의 전복과 치열한 재전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의 섹스와 산업 사이의 역학관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본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불균질 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리와 알라나 사이에 비즈니스가 끼어들고, 그로 인해 알라나의 성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물침대 사업을 시작한 개리는 박람회에서 한 여성에게 섹시한 의상만 입힌 채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며 알라나는 그 여성에게 관심을 표한다. 바로 그 찰나에 개리는 용의자로 잘못 지목되어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이 대목에서의 장면 전환은 굉장히 사나운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경찰이 개리를 거칠게 다루며 그의 사업을 일시적으로 막는 모습에서는 마치 여성의 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도 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물침대 상점 오픈식에서 비키니를 입고 홍보를 하던 알라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개리를 본 후 좌절한다. 개리가 물침대를 사려는 고객에게 섹시하게 응대하라고 요구하자 알라나는 개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이전트와 오디션을 보던 중 개리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작품 내에서 노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개리와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려는 찰나마다 섹스를 매개로 빛에서 어둠으로, 환희에서 절망으로 급격하게 분위기를 전환한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의 로맨스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을 활용하는 세태에 대한 일차원적인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알라나의 이야기 속 성역할과 성위계를 고정되지 않은 시선으로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알라나가 성을 이용하는 사회와 산업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위치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그녀에게 성적 매력은 유용한 도구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를 유혹하고, 자신의 매니저가 된 개리가 불평하자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 후보인 조엘이 밤에 호출하자 곧장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알라나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설령 기존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알라나의 주도적인 선택과 참여가 없다면 그 질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즉, 그녀에게는 개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듯이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다.
이는 알라나가 기름이 떨어진 트럭을 끌고 내려가는 후진 장면이 러닝타임 중 가장 시원하며 황홀한 순간인 이유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다르게 활용한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했던 알라나. 그랬던 그녀는 이제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처럼 마초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개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남성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운전대를 잡고서 스스로를 구해낸다.
또한 이 장면은 작중 한국 전쟁의 영웅을 연기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숀 펜)'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에서 뒤로 추락했던 장면과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잭 홀든에게 알라나는 과거 파트너였던 그레이스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잭 홀든이라는 마초적인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오토바이 뒤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뒤로 추락했던 그녀가, 이제 오히려 후진을 통해 존 피터스와 잭 홀든이 상징하며 그녀가 편입되고자 했던 기존의 남성적 질서를 전복한다. 그러니 이 장면 직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시장 후보 조엘의 선거캠프에 알리나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앤더슨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리코리쉬 피자>의 메시지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알라나가 보여주는 주도성과 저항력은 개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리는 성공을 갈망하는 알라나만큼이나 사회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는 설령 알라나와의 관계가 뒤틀린다 해도 배우로서 성공을 꿈꾸고, 또 물침대 상점에 이어 핀볼 게임장을 오픈하면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주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개리의 열망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위치의 우위를 점하는 남성인 존 피터스에게 조롱당하자 분노하고 또 복수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그는 막 오픈한 게임장을 뒤로한 채 알라나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알라나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동성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조엘과 달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개리에게 달려가듯이. 이렇게 개리도 주류 질서로 편입되고자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힘과 권위를 주도적으로 뒤집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낸다. 영화는 이러한 커플의 탄생과 변화를 세 번의 달리기를 통해 보여준다. 알라나는 경찰서에 갇힌 개리를 꺼내 주기 위해, 개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린다. 이는 두 주인공의 달리기가 스크린 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위계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둘은 그들의 역학관계에서 마침내 평형점을 찾았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면서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렇게 역학 관계의 변화로 사랑과 연애를 정의하면서 앤더슨은 사랑을 매개로 보다 넓은 사회상까지도 통찰해낸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 유독 대중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재 자체가 많은 이들을 시간 여행에 빠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소재이자 장르인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렇다. 비록 스토리라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 보이나, 공간과 음악을 활용해 석유 파동을 비롯한 히피 문화, 반전 운동 등으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정취를 스크린에 가득 풀어놓은 것도 큰 몫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익숙하고 친숙한 사랑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칠 때 비로소 앤더슨의 로맨스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을 힘과 관계로 이해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전복의 짜릿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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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끝날 일들에 대한 작은 낙관, <해피엔드>
그래서 음악 연구 동아리 친구들은 졸업 이후에도 만났을까, 아니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아타(하야시 유타)와 밍(시나 펭)에게는 “우리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에게는 애써 그 문장을 내뱉지 않았던 이유는 무얼까.
우리는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알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친구 사이에서도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변화하는 미묘함을 우리는 분명히 느낀다. 그 감각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이제 이 관계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라는 어렴풋한 감각은 우리가 그 관계를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도 한다.
코우가 노란 보도블럭을 사이에 두고 유타에게 마지막 손길을 내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소모됐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그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는 상대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조차도 접어두게 된다. 친구가 언제든지 내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다시 잡을 것이라는 희망을 묻어두게 된다.
우리는 그 일종의 ‘포기’와도 같은 감정을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해피엔드>는 관계의 끝에서 생기는 감정에 관해 그다지 부정적인 평가를 시도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풀리기 시작한 관계의 실타래를 강제로 다시 엮으려는, 애써 추스르려는 마음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 ‘해피엔드’인 이유도 어쩌면 그 마음에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끝맺음이 ‘새드엔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해피엔드’일 것이라고.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이런 이유에서 ‘작별에 관한 낙관’을 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는 결국 헤어질 인연이기에, 다시 볼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에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고 대해도 문제 될 일 없다는 사고를 경계한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절 인연’이래도, 서로에게 연대를 남기고 좋은 추억을 남기자는 인식을 보인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삶에 활기를 주고, 미래를 긍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끝나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 만나게 될 우리를, 그 막연한 미래를 축복하는 일과 같을 테다. 그래서 후미(이노리 카라라)가 앞장서서 학교의 통제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이다. 후미가 선봉장이 돼 교장실 점거 농성을 벌일 때, 교장은 후미에게 묻는다. “어차피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희의 일이 아니’게 되는데 왜 힘들여 이런 일을 벌이느냐”고. 결국, 그 저항의 이유는 ‘해피엔드’에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 부조리한 규율과 통제를 끝내지 않으면 ‘행복하게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찜찜한 마음은 현세대에 남고, 해결되지 않은 통제는 다음 세대가 해결할 몫이 된다. 이 마음은 앞서 말한 ‘포기와도 같은 감정’에 보이는 낙관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다음 세대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포기하는 것일 테니까.
‘해피엔드’는 두 가지 방식의 형태와 의미가 있다.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을 빌미로 한, 사실상 ‘비상계엄 조치’인 긴급사태 조항 발령과 교내의 ‘판옵티’ 시스템 도입에 대한 저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저항하는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해 저항할 의지는 어떤 마음에서 발현되는가. 나는 어쩌면 그 마음이 ‘저항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온다고 본다. 올곧은 저항은 언젠가 그 부조리한 규율을 성공적으로 밀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일종의 미래를 향한 낙관이다.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 저항이 왜 효용을 가져야 하는가. 그 본질에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 다른 이들이 저항하지 않더라도, 나만이 그 저항과 운동에 참여한다더라도 그 행위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억압받을 이들의 훗날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끝으로부터 올 행복에 관한 낙관, 넘어서 타인을 위한 낙관이다. 투쟁하고 쟁취함으로써 찾아올 그 모두의 효용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연대한다. 그렇기에 코우, 후미와 함께 자습실로 이동하던 학급 친구들이, 학생 투표에서 교장의 차를 세운 사람이 자신임을 밝히는 유타가 해낸 일종의 연대의 행위들은 ‘나’를 넘어선 ‘모두’를 위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두 의미를 모두 갖는 이야기들이 결국 우정으로 수렴되며 마무리된다. 한때는 함께 음악을 향한 꿈을 꾸면서 우정을 쌓아왔던 코우와 유타가, 졸업 이후에도 계속 함께하자고 했던 음악 연구 동아리 멤버들이 서서히 우정보다 자신의 삶과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 나간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들의 관계도 끝날 것이다. 연극의 한 챕터가 막을 내리듯, 학창시절에서의 우정은 한동안 휴지기를 보내게 된다. 당연히 이 우정이 끝을 향해 간다는 데에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늘 그래왔듯 지지한다. 어느 순간부터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 우리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과정이 우리를 위한 길이니까. 저항하고 투쟁하는 친구의 곁에 서서 항상 도울 수는 없어도, 중요한 순간에 손을 포개어주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니까.
끝난 우정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가끔 생각날 것이고, “언제 한번 보자”라는 연락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추억과 그리움, 그 저변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한때의 연대를 위해 <해피엔드>의 인물들은 서로를 그 자체로 위해준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의 유타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우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며 관심을 끌었겠지만, 영화 종반부에서는 각자의 방향을 굳이 미련 가지지 않은 채로 간다. 그게 정녕 우리의 끝이더라도, 완전히 끝나 돌아오지 않을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해피엔드’이니까. 아타와 밍, 톰(아라지)에게도 애달픈 미련을 던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우리의 해피엔드와 다시 만나게 될 훗날의 순간이 있을 것을 믿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피엔드>는 일말의 낙관을 초점화하는 영화다. 미래를 바라보는 낙관과 우리를 바라보는 낙관이 합쳐진다. 우리 국가가 결국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학교가 학생을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리 관계가 서로를 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 낙관 덕에 살아가고, 그 희망 덕에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형태는 작아도 그 의미는 국가적 규모를 넘어서 세계적 규모로까지 퍼질 희망의 메시지가 <해피엔드>에 있다. 네오 소라의 <해피엔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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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타 | 마지막 기회의 땅에 자욱이 낀 허무함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7년 IMF의 후폭풍을 직격으로 맞고서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한 '국희'(송중기)와 국희 아버지 '근태'(김종수). 국희는 아버지의 전우이자 보고타 한인 상인회의 권력을 쥔 '박 병장'(권해효) 밑에서 일을 시작하고, 국희의 성실함이 마음에 든 박 병장은 그를 의류 밀수 현장에 시험 삼아 투입시킨다.
콜롬비아 세관에 걸릴 위기에서도 목숨 걸고 박 병장의 물건을 지켜내며 거래를 성사시킨 국희. 이에 박 병장뿐만 아니라 통관 브로커 '수영'(이희준)도 그의 과감함에 주목하고, 그들은 국희를 각자 사업에 끌어들이려 애쓴다. 한편, 국희 역시 자기가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 보고타 한인 사회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눈치채고, 더 과감하고 큰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해외 로케이션 프로젝트의 끝
코로나 직전 한국 영화계는 해외 로케이션 열풍이 불었다. 해외에서 테러나 범죄에 휩싸인 한국인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작품들이 연달아 기획되고 제작됐다. <모가디슈>, <수리남>, <협상>, <비공식작전>에 이르기까지 결이 다 같은 작품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색적인 해외 풍경을 배경으로 제약 없이 총기 액션을 보여줄 수 있으니 블록버스터 영화에 최적화된 소재다.
<혈의 누>의 각본가이자 <소수의견>으로 데뷔한 김성제 감독의 신작,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하 <보고타>)도 마찬가지다. 남미라는 배경, 범죄조직 내에서의 사투라는 공통점 덕분에 <수리남>과 묘하게 맞닿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차이점도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선배들과 달리 <보고타>는 픽션이다. 명확한 모티브를 중심으로 일관된 분위기와 정서 안에서 콤팩트한 서사를 자유롭게 펼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보고타>가 견지하는 허무함의 정서가 애당초 상업영화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 잘 살려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심지어 <보고타>는 그 특색도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장르도, 배우도 연상할 수 있는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 그렇게 <보고타>는 모나지도 않지만, 기억에 남지도 않는 범작으로 귀결된다.
목적을 잃은 이들의 앙상블
<보고타>는 새롭지 않다. 익숙한 한국형 범죄 드라마 외피를 콜롬비아로 바꿨다. 한 가족이 콜롬비아 보고타로 이민을 갔다. 그중 아들 국희가 한인 밀수 조직 말단에서 한인회 우두머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위로 올라가려고 여러 무리수를 둔다. 무리수는 복수를 꿈꾸는 적을 낳기 마련이고, 국희는 친구와 적을 쉽사리 구분할 수 없는 난전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듯 뻔한 이야기이지만, <보고타>는 의외로 흡입력이 좋다. 각 캐릭터의 서사를 관통하는 구심점 덕분이다. 핵심 키워드는 '목적'이다. <보고타>에는 삶의 목적을 잃고 현상 유지만 하다가 침전되는 이들로 가득하다. 근태가 대표적이다. 그는 콜롬비아를 거쳐서 미국으로 건너가자는 꿈을 가지고 이민을 선택했다. 그러나 보고타에서 적응에 실패한 나머지 그는 목표를 잃고 술에 취해 살며, 국희 집을 강도질하던 중에 사망한다.
수영도 처음에는 원대한 그림이 있었다. 대기업 주재원이었다가 IMF 때문에 밀수업자가 된 그는 보고타 최대의 쇼핑몰을 지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패딩 사업이 적중한 뒤 그의 꿈은 물거품 속으로 사라진다. 국희와 함께 다짐했던 쇼핑몰 프로젝트는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현상을 유지하면서 밀수가 가져다 줄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니까. 그는 밀수금지법 제정과 같은 변화에 발맞출 힘도, 의지도 없다.
박 병장도 다르지 않다. 보따리장수였던 그는 보고타의 여섯 구역 중 가장 부촌인 6구역에서 사는 게 인생 목표였다. 바퀴벌레라는 멸시를 들으며 일한 끝에 보고타 상인들 중 가장 부자가 되었고 6구역에 저택도 마련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박 병장은 다른 사람이 됐다. 다음 목표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 그는 보고타 한인회를 통제하면서 권력을 유지만 할 뿐, 수영처럼 남미에서 패딩을 팔겠다는 새 비전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그들은 꿈꾸는 사람이 밉다
국희는 다르다. 그에게는 언제나 목표가 있다. 보고타에 도착한 직후에는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금의환향하겠다고 다짐한다. 보고타에 적응한 후에는 박 병장을 보고 배우면서 6구역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꿈을 갖는다. 6 구역에 들어선 후에도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 수영과 같이 막연하게만 계획했던 쇼핑몰을 올릴 계획을 실제적으로 짜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설령 손에 피를 묻힐 일이 생겨도, 그는 마다하지 않는다.
밀수금지법에 대한 갈등 국면에서 그들의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국희에게 콜롬비아 정부의 새로운 밀수 금지 정책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회다. 그는 밀수금지법을 계기로 한인회 상가를 쇼핑몰로 탈바꿈시키고자 한다. 반면에 꿈을 꾸지 않고 목적도 잃은 없는 이들에게 밀수방지법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밀수를 통한 차익 없이는 사업을 지탱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차이는 단순한 노선 갈등을 넘어서서 인간적인 감정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국희는 자기처럼, 또 자기와 함께 꿈을 꾸지 않는 수영과 박 병장에게 실망한다. 반대로 그들은 꿈을 향해 직진하는 국희가 자신들을 경멸한다고 느낀다. 수영은 국희에게 도리어 자기 꿈을 빼앗긴 것 같다고 믿는다. 박 병장은 국희가 먹여주고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고 아니꼽게 생각한다. 실망감과 자격지심이 뒤섞인 끝에 그들은 서로를 총구로 겨눈다.
그 결과 <보고타>는 허무함의 정서로 가득하다. 국희는 친아버지보다 더 가족 같은 형, 삼촌과 함께 성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배신했고, 국희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 그들을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죽은 순간, 국희에게 남은 꿈과 목표는 앙꼬 없는 찐빵일 뿐이다. 설령 쇼핑몰을 올려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성공을 같이 나눌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허무함을 설명하지 못하는 허무함
그런데 허무한 분위기는 정작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장치는 여럿 있다. 송중기의 내레이션이 대표적이다. 힘이 빠진 목소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하다 못해 체념한 듯하다.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는 부제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다. 결말을 보고 나면 어조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내레이션이 허무함의 정서를 처음부터 암시하나 게 아닌가 싶다. 노을 지는 하늘, 안개 낀 폭포와 같은 콜롬비아의 풍광을 담은 촬영도 마찬가지다.
정교하지 않은 화법은 이 장치들을 무력화한다. 일례로 국희가 박 병장, 수영과 대립하는 계기는 일차원적으로 묘사된다. 본래 그들의 대립은 두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한 국희를 향한 감정의 표출이다. <보고타>는 제한된 분량 내에서 이야기를 풀려고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국희, 수영, 박 병장의 반목은 단순히 시기, 질투로 인한 분란처럼 보인다.
문제는 시기와 질투를 부각되는 후반부 전개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 갑자기 시간대를 3년 후로 넘기다 보니 흐름이 한 차례 끊어진다. 자연히 국희의 서열이 수영과 박 병장보다 높아지고, 그들이 변화에 분노하는 상황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클라이맥스도 긴장감이 덜하다. 사소한 이유로 서로 목숨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피를 볼 일인가?'라는 의문이 남기 마련이다.
외골수인 국희의 선택도 작위적이다. 그는 자기 계획과 비전을 설득하는 대신,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 이는 세 사람이 서로를 배신하는 광경을 연출하기 위한 억지 같다. 그 결과 종국에 국희를 사로잡은 씁쓸함, 고독함, 허무함을 관객 입장에서는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보고타>라는 작품 본연의 매력이 아예 지워진 꼴이다.
설명도, 포장도 못한다
허무함이 부각되지 않다 보니 영화의 끝에서는 여러 단점도 미처 숨겨지지 않는다. 우선 기획 방향부터 어긋난 듯하다. 드라마에 더 적합해 보일 정도로 긴 서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고타>는 <수리남>을 연상시킨다. 남미라는 배경, 범죄 조직이라는 소재가 같을 뿐만 아니라, 전개 구조를 비롯해 등장인물까지도 대부분 대응되기 때문이다.
국희는 '강인구'(하정우)와, 박 병장은 '전요환'(황정민)과 같은 역할이다. 수영과 '작은 박사장'(박지환)은 '최창호'(박해수)와 '데이빗'(유연석)과 같은 기능을 한다. '박응수'(현봉식) 역시 근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각성시킨다. 그런데 정작 영화 전체 분량은 <수리남>의 1/3밖에 안된다. 자연히 전개가 급하고 부실할 수밖에 없다. 각 인물이 변심하게 되는 동기나 계기를 관객에게 명확히 인지시킬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이에 더해 기시감마저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색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배우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간 배우가 맡은 캐릭터의 집합체 같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으니까. 거칠게 말하자면 <보고타>는 <화란> 속 치건이 보고타로 이민을 와서, <로기완>의 주인공처럼 고생하다가,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처럼 눈부신 성공 끝에 인생무상을 느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평면적이고 새롭지 않은 국희의 캐릭터성은 일종의 도화지 같다. 이희준, 권해효, 박지환, 조현철 등 여러 배우들이 각자 개성을 보여주면서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배경인 셈이다. 하지만 결코 장점은 아니다. 상술했듯이, 조연들의 서사를 급하게 건너뛴 대가로 전반적인 짜임새를 잃었기 때문. 결국 <보고타>는 장점도 무색하게 만드는 익숙함 속에 갇힌 채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Poor 형편없음
국희와 달리 모나지 않았지만, 국희처럼 미움받을 용기도 없었던 1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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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애콜라이트>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유튜브 좋아요수와 싫어요수가 비례한 가운데,
이정재가 비중 높은 역할로 보여져 팬들의 기대가 높아지고있습니다.
<파묘> 베트남서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
천만 등극을 앞둔 영화 <파묘>가 아시아에서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해 20일 만에 약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현지 개봉 한국 영화 1위에 올랐습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아시아권에서도 흥행 순풍을 맞고 있습니다.
이정재 주연 스타워즈 <애콜라이트> 6월 4일 공개
배우 이정재가 주연을 맡은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가 오는 6월 4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제다이 ‘마스터 솔’역을 맡았으며 스타워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혜롭고 큰 존경을 받는 강력한 제다이 마스터 솔은 포스를 다루는 법에 능합니다. 그는 곧 감정적인 갈등을 겪게 됩니다’ 라고 설명되있으며 위험한 인물과 대결하며 광선검 액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마고로비 게임 <심즈> 영화화
영화 배우 겸 제작자 마고 로비가 <바비>에 이어 게임 ‘심즈’를 영화화 한다고 합니다. ‘심즈’ 게임을 만든 제작사인 EA와 마블 시리즈 <로키>의 시즌 1 감독으로 알려진 케이트 헤론이 합류하여 같이 제작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게임 ‘심즈’는 인류의 일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으로 성격, 특성, 관계가 변하는 아바타로 플레이하는 ‘생활’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입니다.
메가박스 ‘장국영 기획전’ 영화 5편 재개봉
메가박스에서 배우 장국영을 추모하며 ‘R.I.P 장국영’ 기획전을 연다고 밝혔습니다. <영웅본색> <영웅본색2> <천녀유혼> <아비정전> <패왕별희> 총 5편을 만나볼 수 있으며, 특별관을 제외하고 전 작품을 9900원에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기획전 전용 관람권 1매와 장국영 엽서북을 메가굿즈샵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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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억 허투루 날린 무개성 크리처들
이것저것 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가득차 보였다. 제작비도 어마어마했으니 충분히 욕심 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결과물은 안하느니만 못한 꼴이 되어버렸다. 10부작을 완주하거나 중도하차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투입된 막대한 제작비(700억 원)을 언급하며 혹평세례를 퍼붓고 있다. 2023년 넷플릭스의 마지막 카드로 기대모았던 '경성크리처'의 현주소다.
'경성크리처'는 1945년 봄 경성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장태상(박서준)은 토두꾼(실종자를 찾는 사람) 윤채옥(한소희)와 실종된 사람을 찾으러 다니다 일본군이 운영하는 옹성병원에 들어가게 됐고, 그 곳에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격동의 시기인 일제강점기를 담은 시대극, 일본군의 야욕이 만들어낸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물, 여기에 두 주인공의 로맨스까지 더해진 복합장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작비 700억 대작임에도 '경성크리처'는 '돈 쓴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 복합 장르 성격을 띠나, 어느 하나 자기 개성과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제목부터 '크리처'를 붙이며 크리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작 존재감이 들쭉날쭉했다. 전반부까지는 촉수를 드러낸 것 이외 거의 보이지 않았고, 5회부터 본격 활약하긴 했으나 '모성애' 코드가 추가되면서 매력이 반감됐다.
그래도 '경성크리처'의 크리처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드라마의 핵심 뼈대인 스토리라인이 10부작을 받쳐주기엔 너무나 빈약하고, 진부하기만 한 설정과 에피소드들이 겹겹이 쌓여있어 지루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특히 전반부가 가장 심각하다. 흡입력 있게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할 오프닝에서 호기심과 기대감, 쾌감 어느 하나 충족시키지 못한다.
중반부로 이어지면서 '과연 괴물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경계’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나라를 빼앗아간 일본, 이들이 만들어낸 잔혹한 괴물, 혹은 혼란의 시대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는 데 급급한 조선인 등을 조명한다. 하지만 이 또한 평면적으로 그려내 생각할 만큼의 깊이를 전하지 못한다. 여기에 이기적이고 무능해 보이는 독립군 활용 방식은 불호 반응만 일으킨다. tvN '미스터 션샤인'이 소환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장태상과 윤채옥 두 캐릭터의 로맨스 또한 극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집어넣어서인지 '뜬금없다'.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던 장태상이 목숨을 던져가면서까지 윤채옥에게 빠져드는 건지,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를 찾아다니던 윤채옥이 장태상을 연모하게 된 계기 등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두 캐릭터 간 케미에 설렘을 1도 느끼질 못한다. 이들의 로맨스보다 연대를 강조했더라면, 몰입도는 나아졌을 것이다.
주인공 롤을 맡은 박서준, 한소희의 연기력도 걸림돌이다. 자신들이 맡은 캐릭터와 시대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는지 시대극에 걸맞지 않게 수시로 현대극 톤과 어투가 튀어나온다. 이어 감정선 깊이는 없고 인위적인 유머만 소화하니 불협화음 케미로만 느껴진다. 두 배우가 중심을 못잡으니, 다른 배우들의 연기 또한 기계적으로 다가온다.
공개 이후 '경성크리처'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월드와이드 TOP 10 안에 안착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긴 하나, 작품성은 이에 못 미친다. 혹평 속에서 시즌 1을 마감했는데, 올해 공개 예정인 시즌 2가 얼마나 반전할 지 기대보단 회의적인 반응이 더 많다. 700억을 허투루 날린 무개성 크리처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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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영화 9선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디터는 가족도 인간관계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
피를 나누었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반대로 타인에게서 가족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들은 가족의 의미와 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탐구한 작품들입니다.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한 <어느 가족>과 <가족의 탄생>부터,
가족 내의 다양한 문제를 다룬 <로얄 테넌바움>과 <결혼 피로연>까지
‘가족’에 대한 고민이 깊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영화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감사합니다.
가족의 탄생
미라와 형철은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다정한 남매로, 5년간 소식 없던 형철이 나이 많은 연인 무신과 함께 미라를 찾아온다. 미라는 동생과 그의 연인 무신과의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고, 한편, 선경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 때문에 연애와 일상이 항상 시끄럽다.
경석과 채현 커플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의 차이로 갈등을 겪으며 관계에 위기를 맞는다. 사랑과 스캔들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복잡한 이야기에 예상치 못한 비밀이 드러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과연 이들의 복잡한 사랑과 갈등 속에서 행복이 탄생할 수 있을까?
결혼 피로연
대만 출신의 웨이퉁은 뉴욕에서 애인 사이먼과 동거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부모님은 결혼과 손주를 바라며 압박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웨이퉁은 세입자 웨이웨이와 영주권을 위한 위장결혼을 계획하고, 그녀는 제안을 수락한다. 부모님은 뉴욕까지 찾아와 전통 혼례식과 피로연을 제안하고,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완벽해 보였던 위장결혼은 피로연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로 인해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지고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 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로얄 테넌바움
로얄 테넌바움과 그의 아내 에슬린은 세 명의 천재적인 자녀를 두었지만, 별거로 인해 자녀들은 각기 흩어져 살게 된다. 채스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마고는 극작가이며, 리치는 주니어 테니스 챔피언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의 충격과 비극으로 인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든 실패를 아버지 로얄의 탓으로 여긴다. 가족은 로얄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20년 만에 한 집에서 다시 모여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 캔 카운트 온 미
여덟 살 아들 루디를 혼자 키우며 뉴욕 근처 스코츠빌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새미는 지역 은행에서 일하고 교회 활동도 한다. 새미의 남동생 테리는 방랑 생활을 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어느 날, 테리가 돈을 빌리러 스코츠빌을 찾아오면서 새미의 평온한 생활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새미는 테리가 아들 루디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랐지만, 테리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가족의 기대를 저버린다. 결국, 테리는 루디를 친아버지에게 데려가게 되고, 이로 인해 루디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토니 에드만
“가족이란 누가 안 본다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아버지는 더 그렇다!” 농담에 장난은 기본, 때론 분장까지 서슴지 않는 괴짜 아버지가 인생의 재미를 잃어버린 커리어우먼 딸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드라마.
다즐링 주식회사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전하기 위해 인도에 있는 엄마를 찾아 1년 만에 뭉친 3형제. 맏형 프랜시스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서먹한 형제 사이가 돈독해지길 바란다.
항상 이혼생각에 잠겨있던 찰라 아내가 임신하자 구체적으로 이혼을 계획하는 둘째 피터, 헤어진 애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막내 잭. 선로가 있어도 길을 잃어버리는 대책 없는 인도기차 ‘다즐링 주식회사’를 탄 채 세 형제의 사고만발 인도여행이 시작되는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광고 회사에 다니는 남편 테드와 일곱살난 아들 빌리를 뒷바라지하며 살던 조안나는 어느날 새 인생을 찾겠다고 부자를 남겨둔 채 집을 나간다. 가정일이라곤 해 본적도 없는 테드는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애키우랴,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18개월이 지난 어느날 테드와 빌리가 나름대로 적응하며 잘 지내고 있을때 조안나는 빌리를 데려가겠다고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분노한 테드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그동안 빌리를 키우느라 회사 생활이 소홀해 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회사측에 의해 해고를 당하는데..
어느 가족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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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가신 존재들의, <보호자>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온라인 및 오프라인 상영작)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호자 Brother's Keeper(2021)
터키 외, 드라마, 85분
감독: 페리트 카라한
성가진 존재들의, <보호자>
조각난 비누를 하나씩 든 아이들이 속옷만 입은 채 줄을 지어 좁은 복도를 걸어간다.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리지만, 누구도 줄에서 벗어나지 않고,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고 공용 샤워실로 들어간다. 한 부스에 세 명이 짝을 이뤄 한 바가지를 번갈아 사용해 샤워하는 아이들. 빠르게 머리에 비누를 문지르고 물을 끼얹으며 씻는 유수프. 잡담은 필요 없다. 15분 안에 씻지 않으면 다음 조를 위해 무조건 나가야 한다. 이들을 긴 막대기를 들고 감시 중인 감독관. 그는 보일러실이 있는 벽 맞은편에 서서 큰 소리로 뜨거운 물을 틀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날카로운 목소리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감독관, 그는 유수프와 같은 또래다.
정신없이 물을 머리에 끼얹던 유수프는 맞은편 부스에서 씻고 있는 절친 메모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메모가 실수로 비누를 물을 받는 통에 떨어트리면서 함께 씻던 두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구가 훨씬 작은 메모와 말다툼이 일어나면서 샤워실이 소란스러워지자, 도끼눈을 한 채 등장하는 함자 선생님. 그는 감독관을 먼저 혼내고, 샤워시간에 싸움을 한 세 명에게 강제로 찬물로 샤워할 것을 명한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앞에 서 있는 감독관 때문에 뜨거운 물을 틀 수가 없던 그들은 결국 영하 35도에 15분간 얼음장 같은 물로 목욕을 마친다. 이를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던 유수프.
다음날 아침, 유수프는 메모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걸 발견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린다며 서 있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는 친구를 부축하는 유수프. 유수프는 메모를 보건실로 힘겹게 데려간다. 전쟁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고자 필사적으로 그를 끌고 가는 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영화 <보호자>는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 산맥에 위치한 남자 공립 기숙학교를 다니는 유수프에게 일어난 일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아낸다. 감독은 터키 기숙학교에 얼마나 폭력과 억압이 만연해 있는지를 고발하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자신이 누굴 책임져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선택사항이란 착각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굳이 도덕적, 윤리적 측면으로 생각을 바꿔 이해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의무'니까.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보호자>엔 너무나 당연하듯, 우리가 기대한 '보호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유수프의 성장을 위해 그의 정감 있고 따뜻한 멘토 역시 없다. 대신 눈도 뜨지 못한 채 색색거리며 누워있는 메모를 '성가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다. 열한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공립학교의 선생님들이다, 학생을 책임질 '의무'를 가진.
"공립학교를 다니는 덕분에 여기서 자고, 배불리 먹는 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하고 매달 용돈도 받는데 왜 불평불만이 많아!
용모는 청결하게 복장은 단정하게 자세는 바르게!
100m 밖에서 너희를 봐도 '우리 학교 학생이다' 할 수 있게, 밖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국가의 자산이자 건실한 시민이 되어라!!"매일 아침 운동장 강단 위에 서서 대놓고 자기 얼굴에 침 뱉지 말라고 학생들을 협박하는 교장선생님. 그는 유수프가 메모를 보건실로 데려가 준 날에도 학교 교칙을 어긴 학생의 목덜미를 잡고 이발기로 그의 머리 반을 밀어버렸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이 이발기를 드는 일이 교장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 이를 보는 유수프의 눈빛엔 깊은지 짐작할 수도 없는 두려움과 터트릴 수 없는 울분이 가득했다.
점심시간, 배식 줄 앞에 서서 아이들의 식판을 검사하는 셀림 선생님은 유수프의 앞에 가던 학생을 불러 세운다. 그가 유수프와 같이 빵 두 개를 챙겼기 때문이다. 급식실이 떠나가듯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선생님. 빵 하나론 부족했다는 학생의 말에, 다른 친구의 식량을 훔쳤으니 오늘 점심을 굶으라 명령한다. 예외는 없다. 유수프는 재빨리 메모를 위해 집은 빵 하나를 놓고 셀림 선생님을 지나 자리에 가서 앉는다. 모든 학생이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야만 기도를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유수프는 선생님 몰래 자신의 빵을 반 잘라 주머니에 숨긴다. 메모를 주겠다고 식판 위에 빵을 올려놓고 나가는 순간, 또 뺨이 날아가고 말 테니까.
그러나 메모는 빵을 먹지 못한다. 유수프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다시 셀림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선생님은 이미 약을 먹었고 열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는 듯 짜증을 낸다. "그럼 됐지. 더 할 거 없잖아." 그는 늘 바쁘다. 교육자로 가르치는 것만 하면 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다른 선생들과 순번을 돌아가며 기숙사 당직을 서야 하고, 고집 센 교장선생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아이들에게 폭력을 써서라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셀림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환장 쇼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밥도 먹지 못하고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메모의 상태를 세 번째 보고 받은 셀림은 그제야 보건실로 향한다. 직접 메모의 상태를 보고 나니 심각해지는 그.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엄청난 눈과 산맥 안에 고립된 학교에서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사람도 방법도 없다. 더구나 핸드폰 신호로 제대로 잡히지 않는 상황. 보건실 안에 나뒹구는 빈 약통을 보던 셀림은 유수프에게 '목욕시간에 있었던 벌' 이야기를 듣자마자 함자 선생님을 찾는다.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에, 메모와 유수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책임전가 현장은 영화 내내 놀라울 만큼 계속된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함자 선생님은 찬물로 목욕을 시킨 걸 인정하지만, 늘 그렇듯 말썽꾸러기들의 탓을 한다. 감독관을 불러 싸대기를 날리며 "너 때문에 친구가 아파서 누워있잖아!"라고 윽박지르는 건 서비스랄까. 교장은 학생이 알려준 핸드폰 신호 찾는 방법을 이용해 119와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물론 중간중간 함께 샤워했던 두 친구를 불러 "쓸모없는 것!" 책임 전가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어젯밤 기숙사 당직을 섰던 케냔 선생님이 합류하면서, 아파 보였던 메모를 그냥 자게 한 사실이 알려진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은 교사지 경비원이 아니라 못 박고, 다른 선생님들 역시 유일하게 차가 있는 직원을 도시로 치즈를 사 오라 시킨 교장의 얘길 꺼내며, 교장에게까지 책임이 있음을 피력한다. 유수프는 이 난리부르스를 눈도 뜨지 못한 메모를 보며 듣고만 있을 뿐이다.
마침내 교장은 가끔 보일러 실에서 몰래 샤워하는 학생들이 있단 말에, 보일러 담당자인 '아카프'를 호출한다. 그가 맘 놓고 비난하고 힐난할 수 있는 대상은 학생들 말고 더 있었다. 자신의 권력 아래 있는 모든 이 중 가장 하찮다고 여기는 보일러 담당자. 비로소 아카프의 입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메모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엔 분명한 사건이 또 있었다.
차가운 물로 목욕해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친구를 위해, 아카프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보일러실에 들어가 함께 목욕한 절친 유수프. 유수프는 자신을 둘러싼 선생님들에게 어젯밤 저녁에 있었던 이야기를 울며 털어놓는다. 메모와 장난치다 실수로 쇠로 된 파이프를 샤워기로 건들었고, 그 파이프가 메모의 머리에 떨어졌다는 것.
파이프가 빠지는 바람에 그날 아침부터 보일러가 고장이 났던 거였고, 메모는 쓰러져버렸으며, 그렇게 자부했던 공립학교의 시스템이 사실 탈이 날 수밖에 없던 휴짓조각이었음이 밝혀졌다.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병풍 신세로 전락하고, 선생님들의 불만과 교장의 불편함과 귀찮음이 뒤섞여 있던 보건실 안에서 마침내 어른들은 책임자를 선정한다. 유수프 역시 더 이상 눈발을 해치며 선생님과 학생들을 호출하지 않아도 된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사건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았나.
오직 이 아이만이 '골치 아픈 사건'을 '철없는 애들의 실수'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출처: 영화 <보호자> 스틸컷 (다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일주일에 딱 한 번 샤워를 하는데, 15분 동안 세 명이서 한 바가지로 물을 써야 하고, 급식은 반드시 정해진 자리에서 모두 같은 양의 밥을 먹어야 한다. 짓궂은 호기심 따위로 학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순간 일렬로 서서 뺨을 맞거나 이발기에 머리를 맡겨야 한다. 자, 우린 이미 다 알고 있다. 보일러실에서 몰래 샤워를 하는 아이들이 메모와 유수프가 처음이 아니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쓰러지는 메모와 같은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다. 그럴 때마다 책임질 자는 사건 당사자나 주변 아이가 될 것이고, 가해자와 피해자 역시 전부 학생들로 판명될 것이다. 보건실을 담당하는 감독생은 아픈 아이들에게 평생 해열제만 처방할 거다.
그것에 이 학교에 사는 아이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보건실 창문에 달린 안전 창살이 감옥의 창살로 변해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삶은 결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거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공부하고 밥 먹고 잠을 자면서 위대한 시민으로 크겠다는 우렁찬 학생들의 목소리만 담 넘어 들려오겠지.
<보호자>에서 유일하게 창살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유수프뿐이었다. 미끄러운 보건실 문 앞에서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바로 유수프였다. 보건소 바닥이 눈이 녹아 미끄러워 매번 들어올 때마다 중심을 잃고 마는 선생님들과 아이는 달랐다. 그들은 유수프와 메모의 이름을 수없이 까먹어 다시 물어보는 것과 같이, 너무나 간단한 보건실 바닥 문제조차 해결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직접 해결하지 않으려는 책임 없는 어른으로 인해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곧 나를 살리기 위한 열망이었음에도, 아이는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와 창백한 입술, 짙은 다크서클과 폭 들어간 두 눈, 그리고 불안한 검은 눈동자. 유수프는 눈을 힘겹게 뚫고 온 구급차에 실려가는 메모를 홀로 보건실 안에서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시 돌아온 샤워실 안, 물을 머리에 뿌리는 유수프의 옆모습, 그의 머리 한가운데가 쭉 길이 나있다. 이발기로 유수프의 목덜미를 잡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그를 '메모를 죽인 장본인'으로 선포했을 교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소름 끼치는 상상을 길게 할 수 없다. 엄마에게 매몰차게 '버텨라'란 말을 들으며 숨죽여 울던 유수프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더는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이나 원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면을 넘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유수프의 텅 빈 눈. 사랑도, 우정도, 희망도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아이가 자신의 영혼마저 버린 것 같은 공포, 이 공포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더 섬뜩한 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이 전부 아이들에게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샤워실 통로를 돌아다니며 윽박을 지르는 감독관과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건실 선생님 노릇을 하는 감독생을 봐라.
그래, 유수프가 사는 세상은 원래 이랬다. 다른 세상은 없다.
<보호자>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고통은 아이들의 몫이겠지.
누굴 탓할 수조차 없게 만든 강압적인 통제와 억압,
<보호자>는 보여줬을 뿐이고, 난 순식간에 끌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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