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2025-08-28 15:18:39
에둘러 말하는 것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리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이 영화는 정호라는 말 없는 남자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작품에 풀칠을 하는 그의 모습과 애인 수진, 그를 짝사랑하는 인주, 그의 전 애인 유정의 애로사항이 교차된다.
바람을 피고 있는 수진과 마음을 숨기는 인주, 정호의 자살시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유정은 모두 조심스럽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14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에둘러 드러나는 이들의 사연이 흥미진진하다.
'검은 개'라는 마지막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검은 개는 '마지막'을 은유하는 듯하다.
자신이 시한부인줄 알았던 인주와 연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앓는 유정, 그리고 관계의 끝을 목도하는 수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개'와 함께한다.
죽음을 예감하자 계획하게 된 고백, 전 연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 바람으로 인해 모든 관계를 끝내는 상황들... 이렇듯 마지막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깨짐으로 퍼져나가듯.
하나의 조각이 깨짐으로써 멀리 퍼져나가듯.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실수, 말장난 등 사소한 일들이 미치는 파장을 목격한다.
그것이 뚜렷한 결말을 맺지 않을지라도 은근하게 번지는 후회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 8/20(수) 오후 7시 30분 시사회 메가박스 코엑스
* 위 기사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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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너저분했던 책상 위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편한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기자의 꿈을 꾸던 앤디(앤 헤서웨이)가 면접을 보러 와서 목격한 광경이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일명 '또각이'들이라고 하며 남자친구에게 그들의 옷차림을 비판하던 앤디는 어쩌다가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잡지사인 이 곳에서, 그것도 미란다의 직속비서로 1년만 버티면 어떤 회사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에 앤디는 또각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문난 '얼음공주', '워커홀릭' 미란다의 취향과 세세한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앤디의 전화벨 소리만큼 앤디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미란다의 심부름으로 점점 지쳐가고 10번 잘하다가 1번의 실수로 듣는 쓴소리에 앤디는 그나마 해낸 9번의 보람마저 없어진다.
'할머니 치마'와 편하고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온 앤디의 첫 출근날, 그녀에게 구두를 던져준 디자이너 나이젤에게 하소연하던 앤디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패션잡지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하고 지냈지 자신은 정작 어떠한 관심도, 애정도 없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업무에 대한 꼼꼼함과 버티기는 잘해왔었던 앤디의 새로운 노력에 미란다는 점점 눈길을 준다. 쉴 새 없이 울렸던 앤디의 전화벨은 두배, 세배로 더해지고 앤디는 에밀리만 할 수 있었던 미란다의 집에까지 드나드는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란다에게 인정받게 된다. 앤디는 기존 비서인 에밀리의 자리가 밀려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면 개인사가 삐걱대지-'라는 나이젤의 이야기가 앤디에게도 일어날까?
영화를 처음 봤던 5년도 더 지난 그때는 메릴 스트립의 존재감과 앤 헤서웨이의 변화된 모습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앤디의 열정 속에 느끼는 갈등과 갈증에 대한 그녀의 고민들.
자신이 가진 커리어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미란다의 모습은 그녀의 외적인 포스뿐만 아니라 영화의 플로우에서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앤디가 런웨이에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란다가 앤디를 합격시켰던 이유와 당시 앤디에 대한 미란다의 어떤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앤디가 단번에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도 앤디의 다양한 변화를 한 쇼트로 이어서 담아 이야기의 다음 파트를 밀고 나가는데 힘을 싣는다. 그렇게 앤디는 런웨이에서의 경력을 쌓게 되면서 영화도 앤디 개인의 꿈과 직업에 대해 선택하는 과정들을 같이 쌓아간다.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까지 캐릭터에 설정한 신념을 끌고 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엔딩씬의 매력이 더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봐도 좋은 영화, 좋은배우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영화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영화를 오랜만에 관람하니 이 영화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힘을 싣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명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콘텐츠도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도 안다. 그저 영화의 체험적인 면모가 커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해봤다. 그저 이야기의 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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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구에서 외치는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3년 전만 해도 듄친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듄친자의 운명을 거부했다. <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듄: 파트2>를 본 이후 이젠 듄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늪에 두 다리가 빠져 탈출하지 못할지언정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이 고전 원작을 자신만의 운명 사슬로 엮어낸 드니 빌뇌브의 연출력을 보아하니 더 이상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수순은 그의 모든 계획이었으리니~ 폴을 위해, 그와 함께 대서사시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드니 빌니브를 위해 외쳐본다. 리산 알 가입!
|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 인간이니!
폴(티모시 살라메)은 살아남았다.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의 모략으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없어졌지만, 가문 유일의 후계자인 그는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사막 부족인 프레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폴과 레이디 제시카는 각자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반란군, 부족 대모가 된다. 레이디 제시카는 더 나아가 폴을 프레멘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으로 만들려 한다. 폴은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하고, 동료인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사랑을 키워 가려 한다. 한편, 반란군의 기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황제는 하코넨 가문의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아라키스로 보낸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겠지만) 드니 빌뇌브 영화의 단골 주제는 ‘운명’이다. 극 중 인물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을린 사랑>의 쌍둥이 남매는 태생의 비밀, <컨택트>의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미래의 모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 또한 정체성의 비밀을 확인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마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족관 속 활어처럼, 이들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목도하고, 그제야 자신이 처한 처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거스르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 희생과 감내를 해야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값진 것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가 <듄>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했을 때, 감독의 작품 속 관통된 ‘운명론’이 다뤄질 것이라 예상했다.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자리에 섰을 때 우주의 재앙이 몰려온다는 걸 알고 이를 벗어나려는 주인공 폴은 드니 빌뇌브가 군침을 흘릴 캐릭터라 생각했기 때문. 운명을 알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후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독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듄>은 폴에게 닥칠 운명의 소용돌이 여파를 크고 깊고 넓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가장 컸다. 감독의 운명론을 보여주기 위한 디딤판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 영화는 아스트레더스 가문의 몰락, 하코넨 가문과의 악연, 프레멘과의 인연,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 등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듄: 파트2>에서의 폴은 자신에게 놓인 운명과 대립한다. 전반부 스스로의 힘으로 모레 벌레를 타며 프레멘에게 인정받고, 무앗딥, 우슬 이란 이름을 얻는 그는 운명을 거스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챠니와의 운명적인 사랑 또한 그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정해진(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과 환경에 무릎 꿇게 되는 폴은 메시아가 되어 황제군과 대립하고 많은 이들이 바라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바라지 않는 그 역할의 무게를 감내한다.|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운명 앞에 놓인 폴의 선택과 향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대서사시를 마주하는 듯한 거센 후폭풍처럼 그려진다. 가문의 비밀 무기를 등에 업고 프레멘들과 함께 황제와 하코넨 가문 군대를 공습하며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르는 폴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성장한 어른으로서 적 앞에 당당히 선다. 폴의 성장담만으로 <듄: 파트2>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아니 어쩌면 폴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누구의 선택인가? 폴의 선택이라 장담할 수 없다. 레베카는 자신과 배 속의 아기, 폴을 모두 살리기 위해 아들을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의 길로 인도한다. 이후 메시아를 통해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프레멘들의 공통된 마음을 이용, 그들의 대모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그녀는 마치 프레맨은 물론, 폴을 체스판의 말처럼 운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영화에서 체스판이 나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레베카는 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베네 게세리트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집단인데,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막대한 권력을 갖는다. 황제보다 더 위에 있는 이가 바로 베네 게세리트의 수장격인 가이우스(샬롯 램플링)다. 그녀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폴의 아버지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자기 아들을 쿼사츠 헤더락으로 만들려는 레베카는 가이우스에게 눈엣가시다. (이는 1편에도 잘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가이우스는 레베카와 향후 권력에 치명타를 날릴 폴을 없애기 위해 황제를 이용, 장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목숨을 건 레바카의 체스판 놀이는 가이우스에게 던지는 복수의 체크 메이트처럼 보인다.
레베카보다 한술 더 뜨는 이가 있으니 프레멘의 수장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다. 사막 환경 속에서 프레멘을 한데 묶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방법은 메시아다. 곧 메시아가 당도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이 믿음으로 민족을 대동단결시키고, 군대를 조직화해 행성을 지키고 운용해 나간다. 스틸가가 레베카 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 보이지 않는다. 대신 메시아의 당도를 순수하게 믿는 쪽이다. 맹목적인 믿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원작에서도 종교의 허위성, 우상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드니 빌뇌브 또한 이를 오롯이 가져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우상은 운명이자 선택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충분히 감언이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과정은 영화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색의 방점은 챠니!
<듄: 파트2>가 좋던 싫던 간에 모두 다 인정하는 건 각색 부분이다.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166분으로 압축한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의견. 원작을 읽은 이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비판 어린 눈초리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바로 챠니를 통해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의 챠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폴의 연인이자, 민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운명론에 휩싸인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철저한 객관화가 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 폴이 쿼사츠 헤더락의 길을 걷고 끝내 자신 앞에 황제를 무릎 꿇게 하는 상황을 지켜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반기를 든다. 폴을 향해 머리 숙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홀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이내 그곳을 탈출하는 챠니에게 있어 이 상황은 마뜩잖은 것에 모자라 잘못된 길을 기어이 가는 이들을 향해 눈으로 질타를 날리는 듯하다.
이번 영화가 감독의 전작과 다른 부분 있다면 운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이들을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화된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챠니는 곧 감독의 분신처럼 보인다. 종교의 허위성과 우상화에 비판적인 원작자의 의도는 각색을 통해 챠니로 옮겨진다. 영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감독은 책이 출간된 1965년보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특징과 현시대의 관점을 챠니에게 입힌 후, 이 기막힌 운명을 지켜보게 한다. 감독은 마치 차니로 하여금 관객이 이 바보 같은 운명론자들의 행태가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목도하게 한다. 드니 빌뇌브의 각색은 압축만큼 차니의 활용도도 빛나 보인다.| 극강의 수직 액션,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은 말해 뭐해!
다루고자 하는 비범한 이야기를 더 강하고 흡입력 있게 만드는 건 영상이다. 모레 벌레를 타고 이를 이용해 공격하는 액션, 프레멘과 하코넨, 황제군의 대결 등은 전편의 액션이 맛보기였음을 말하듯 극강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특히 100%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의 특성상 공들인 수직 액션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데, 극초반 모래 언덕 라인을 기준으로 언제 올지 모를 적의 공격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장면이나, 하늘에 떠 있는 하코낸 우주선과 프레맨 지상군의 대결, 원형 경기장 안에서 펼쳐지는 페이드 로타의 액션, 황제군을 향한 모레 벌레의 공격 등은 양옆이 아닌 위아래가 긴 아이맥스 고유 화면비 1.43:1에 안착, 최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액션만큼 열일하는 이가 있으니 티모시 샬라메다.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놓인 폴의 다양한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표출되는데, 종교, 정치적 권력을 얻으면 그 즉시 종말로 치닫는 다는 걸 아는 것처럼 티모시 샬라메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 불안과 고뇌를 표출한다. 마치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것 같은 그의 불안한 초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서 티모시 티모시 하는가 봅니다.) 여기에 메시아 선택 후 나오는 리더의 위용과 카리스마 연기가 방점을 찍으며 관객은 넉다운된다.
이제 남은 건 재앙과 추락이다. 폴의 예지대로 파트3에서는 고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모양새다. 반대로 이 방대한 유니버스의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이 시리즈는 현시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프렌차이즈 제작 시스템의 고점을 찍을 듯하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도. 그리고 극장가에 거세게 부는 모래바람도.
사진= 워너브라더스 제공
평점: 4.0 / 5.0
한줄평: 사구에서 피어난 전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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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시선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캐롤"
날 부정하며 산다면 무슨 엄마 자격이 있겠어?
캐롤의 말 중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누구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우연한 어떤 계기로 점차 스며들 듯이 어느 순간 빠져들게 되죠.
자신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 대상은 한정되어 있지 않고 무한히 열려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남자와 남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과 눈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게 진정 나의 모습인가 할 정도로 나조차도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저절로 눈길이 가면서 쫓느라 바쁘고,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랑'의 면모를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캐롤'입니다.
때로는 사랑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다가도, 또 때로는 그런 자신을 부정하기도 하며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영화 '캐롤'은 사랑은 시선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 메시지를 더욱 강렬히 전달해주죠.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자 매력은 바로 '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보는 여러분도 등장인물의 시선에 집중하며 같이 따라가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더욱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캐롤'은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애절하고 강한 인상을 안겨 주는 영화입니다.
그럼 어떤 영화인지 간단히 살펴볼까요?
첫 번째 사진의 갈색머리 여성의 이름은 '테레즈'이고, 두 번째 사진의 금발머리 여성의 이름은 '캐롤'입니다.
영화는 테레즈의 지인인 '잭'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음식과 바가 어우러진 어느 장소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테레즈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죠.
테레즈와 캐롤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하디 평범하게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잭이 인사를 걸어오는 바람에 캐롤은 어쩐지 미련이 가득한 얼굴로 황급히 떠나게 됩니다.
잭을 따라 차를 타고 가게 된 테레즈 역시 얼굴에는 미련이 가득한 모습입니다.
창밖에 비춰지는 캐롤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테레즈의 시선이 캐롤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이 장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테레즈와 캐롤의 첫만남입니다.
테레즈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캐롤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딸에게 줄 선물을 사러 온 손님이었습니다.
테레즈는 우연히 캐롤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어 넋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테레즈의 시선이 캐롤에게 집중되어 있죠.
이 이후부터 테레즈는 알게 모르게 캐롤을 신경쓰게 되는데요.
캐롤이 두고 간 장갑을 캐롤에게 전달해준다든지, 캐롤이 산 기차 장남감 세트가 잘 도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재차 확인하는 등 은근히 캐롤을 생각하게 됩니다.
캐롤 또한 테레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점심 약속을 잡게 되죠.
점심시간에 만나게 된 둘은 서로에 대해 차차 알아가며 또 다른 약속을 잡게 됩니다.
21일 일요일 오후 2시, 캐롤은 테레즈로부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게 되죠.
이렇게 테레즈와 캐롤은 이를 계기로 만남을 가지게 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게 됩니다.
테레즈와 캐롤에게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개인 사정이 숨겨져 있었는데요.
캐롤은 위협과 혐박을 가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혼 소송 준비중이었습니다.
테레즈 또한 잘 챙겨주는 남자친구가 있긴 했으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테레즈는 사진을 좋아하긴 했으나 사람을 제외한 사진만 찍었죠. 사람을 찍는 건 사생활을 침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있어서도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캐롤은 테레즈에게 같이 떠나줄 수 있겠냐며 제안하는데요.
Would you?
영화 속에서 캐롤이 테레즈에게 이렇게 두 번 질문합니다. 캐롤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서 강렬한 문장 중 하나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행 중에 이 둘은 점차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테레즈는 사람 사진을 찍지 않다가 캐롤을 계기로 사람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테레즈가 찍은 캐롤의 사진이랍니다.
여행이 깊어져가면 갈수록 테레즈와 캐롤의 관계도 점점 깊어져만 가는데요.
테레즈는 캐롤과의 여행을 통해 남자친구에게는 줄 수 없었던 확신을 캐롤에게는 확신할 수 있게 되면서 줄곧 자신을 의심해왔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캐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캐롤 역시 테레즈와 같이 지내게 되면서 테레즈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첫 만남부터 이 둘은 강한 이끌림으로 인해 서로에게 확신했을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캐롤에게는 4살이 된 어린 딸이 있습니다.
이혼 소송 중에 자신이 동성인 테레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면 양육권을 가져올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캐롤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캐롤에게는 딸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존재이기에, 캐롤은 테레즈로부터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테레즈도 나의 상황을 이해할 것이라면서요.
마음은 테레즈에게 가 있지만,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헤어져 있는 사이, 테레즈는 '뉴욕타임스'라는 직장을 얻게 됩니다.
캐롤은 우연히 차 안에서 길을 걷고 있는 테레즈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캐롤의 시선은 한동안 테레즈에게로 가 있었고, 테레즈의 움직임을 따라 눈을 떼지 못하는 캐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되게 마음이 찡했는데요.
앞선 영화의 첫 부분에서 테레즈가 차 안에서 캐롤을 따라 시선을 쫓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이번에는 테레즈가 아닌, 캐롤이 테레즈를 따라 시선을 쫓는 장면이 나타나니 잠시 뭉클했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요?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걸까요?
서로를 향한 이끌림은 어느 방해물이 있어도 막아낼 수 없나 봅니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이별을 고한 것을 계속해서 후회하기 시작했고, 뒤늦게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테레즈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전에 캐롤은 양육권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하죠.
캐롤은 남편을 만나 힘겹게 울음을 삼키고 딸 양육권을 포기합니다.
대신 자주 만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요.
그러면서 캐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날 부정하며 산다면 무슨 엄마 자격이 있겠어?
캐롤은 테레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이렇듯 나에게 솔직해져야 딸에게도 부끄럼 없이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날 부정하며 사는 건 딸에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지 못할 거라는 것이겠죠.
저는 이 대사가 순간 저의 마음을 훅 덮쳐 왔달까요?
영화 캐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였어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아를 되찾은 느낌이라서요.
그리고 장면은 다시 처음 장면으로 되돌아옵니다.
이렇게 끝까지 보니 처음 봤던 장면하고 이해 정도가 달라져 느낌이 이상하고 새롭더라고요..
'아, 이게 이런 장면이었구나.'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테레즈는 캐롤을 향한 약간의 원망이 있었던 것인지 약간의 냉정함이 보였고,
캐롤은 테레즈를 다시 잡고자 하는 절실함이 돋보였습니다.
아까 위에서 혹시 캐롤이 테레즈에게 한 말, 기억나시나요?
Would you?
캐롤은 또 한번 테레즈에게 제안합니다.
넓은 집에서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지만 캐롤은 안 되겠다며 거절합니다.
그럼에도 캐롤은 자신이 오크룸에서 9시에 사람들을 만난다며 저녁을 먹을 예정이니 혹시 마음 바뀌면 이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테레즈가 말이 없는 사이 처음에 등장했던 '잭'이 테레즈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이렇게 알고 보니까 잭.. 너무 눈치 없는 거 아니니..?
이 타이밍에 나타나는 거, 너무했다는 생각 저만 한 것일까요? ㅎㅎ
처음에는 놓쳤던 테레즈와 캐롤의 감정과 표정이 이제서야 자세하고 섬세하게 보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캐롤은 테레즈를 아쉽게 뒤로 한 채 떠납니다.
테레즈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테레즈는 잭을 따라 파티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잠시, 테레즈의 마음 또한 알게 모르게 캐롤에게 향해 있기에 결국에는 그 파티에서 빠져나와 캐롤이 알려준 장소로 급히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테레즈는 캐롤을 발견했고, 캐롤 또한 테레즈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 둘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채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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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란 통제할 수 없는 무언의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캐롤과 테레즈 사이에는 끊어져야 끊어질 수 없는 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죠.
자신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숨길 수 없는 게 시선이라는 사실도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 시선에 따른 인물의 감정을 세세하게 나타내어 줍니다.
이 부분에 얼마나 신경을 써 가며 만들었을까 영화 관계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기도 했죠.
그만큼 인물의 감정선이 돋보였던 영화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여성과 여성 간의 사랑도 이렇게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편견을 한 차례 깨 주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관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에 맞는 영화라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따뜻한 연말이 되어줄 것 같네요!
이상 영화 '캐롤'의 관람 후기였습니다.
가장 눈여겨 봤던 점!
테레즈와 캐롤 간의 시선.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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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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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진 운명과 자유의지의 싸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꽤 많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주변의 여러 상황들, 성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많은 것에 대해 다른 어른들에게 듣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방향성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진짜 맞는지, 선택을 했다면 그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그것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알 수 있고 마지막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어른들은 삶에서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엔 자신의 경험으로 확고한 삶의 길이 있는 부모들과 의견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신의 자녀가 좀 더 안전하고 쉬운 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딱 맞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얻고 싶은 결과는 다르다. 아이는 최대한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그 길은 때론 올바르지 않아 보이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사춘기 시절 부모와 자녀 간에 의견충돌이 있기도 하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의 성장기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2018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후속 편이다.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가 아니라 마일스 모랄레스(목소리: 샤메익 무어)다.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에서 마일스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가 살던 세계의 피터 파커는 죽었고, 대신 거미에 물린 마일스가 스파이더맨 역할을 하게 되지만 그에게는 영웅을 해야 할 책임이 원래 피터에 비해 적다.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과 다르게 마일스의 부모는 살아있고 대신 삼촌이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가 영웅 역할을 해야 할 거라는 당위를 주진 않는다.
1편에서의 마일스는 우연히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가 해결하지 못했던 악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맨인 피터 B.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와 스파이더 우먼 그웬(목소리: 헤일리 스테인필드)과 힘을 합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왜 스파이더맨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1편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주요 인물들이 좀 더 궁극적인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여전히 마일스이지만 그웬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이번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그웬인 것은 그가 이번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린다. 그웬은 그의 세계에서 스파이더 우먼으로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 서장인 자신의 아빠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그의 절친이었던 피터 파커는 잘못된 실험으로 죽었다. 그 과정에서 피터의 살인범으로 몰린 스파이더 우먼은 자신의 아빠에게 쫓기게 된다.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 영웅, 스파이더 우먼과 스파이더맨
그웬은 아빠에게 자신이 스파이더 우먼이라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다. 그가 가진 두려움은 모든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모가 알았을 때, 부모가 보일 반응.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진짜 모습에 실망하는 부모의 얼굴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결국 아빠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그웬은 경찰인 아빠가 당황스러워하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절망한다. 이건 마일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마일스도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다. 몇 번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부모의 앞에 서지만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마일스와 그웬이 겪는 절망감은 이내 고독감으로 옮겨간다.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립된 느낌을 받고 그나마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우주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이건 마일스와 그웬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처럼 무수히 많은 다중 우주에 스파이더맨이나 스파이더우먼이 존재한다면 그 모두가 겪게 되는 감정이다.
영화에는 모든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총괄 관리하는 흡혈귀 스파이더맨인 미겔(목소리: 오스카 아이작)이 등장한다. 그는 모든 스파이더맨이 겪는 좌절과 고통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소 겪었던 당사자다. 그러니까 그는 일어나야 할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어떤 불행이 오는지를 경험한 인물로, 이후 그런 일이 벌아지지 않도록 전체 다중우주를 관리하고 있는 인물이다. 일종의 운명론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꽤 생각할만한 문제를 관객에게 던진다는 것이다. 미겔을 비롯한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 세상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스파이더맨이 그런 운명론을 따르고 있을 때, 마일스는 그 운명론에 반기를 든다. "너의 삶은 이래야 된다" 라든가 "이게 너의 한계야"라는 식의 말이 마일스에게 전달되었을 때, 마일스는 그 수많은 운명론자들 앞에서 아니라고 외친다. 자신의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운명론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마일스는 자유의지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운명론과 자유의지론 사이를 훌륭하게 파고드는 서사
마일스의 선택은 다른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다. 스파이더맨들 중 정해져 있는 운명을 바꿨을 때 세상이 파괴되거나 혼란이 생기는 것을 목격한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들이 바꾼 일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마일스의 의견에 관객들이 따라가게 된다. 그건 불행을 보지 않으려는 감정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관객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 관객은 어떤 것이 진짜 옳은 일인지 한참을 고민하며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의견대립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영화 속 마일스와 그웬의 부모들은 정해진 길이 있고 옳은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일스와 그웬의 입장에선 자신이 선택한 길도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확고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길을 보고 있는 부모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녀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자유와 선택을 부모에게 주장하기는 힘든 일이다. 마치 미겔과 마일스의 의견대립처럼 부모와 자녀의 의견대립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각 인물들의 선택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마일스의 선택이 불러올 파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다음 편에서 확인해야 한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야기에서 던지는 질문은 꽤나 묵직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중 우주나 시간여행의 서사에선 가능하면 알고 있는 미래나 과거를 바꾸지 않아야 현재가 혼란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주인공 마일스는 다른 선택을 했고 다르게 보면 안정적인 시스템에 맞서 변화를 시도하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작화나 화면 전환 그리고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배경음악도 무척 훌륭하다. 마치 만화책을 움직이는 화면으로 보는 듯한 작화는 다양한 상황에서 변주되며 몰입감을 더해준다. 경쾌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도 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의 서사와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무척 훌륭하기 때문에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나는 운명론자일까, 아니면 자유의지론자일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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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잔상으로 남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장면 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해서 보여줍니다.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수많은 시각 요소들은 그 장면의 여운을 만들죠. 이렇게 장면에 등장인물과 다양한 시각 요소를 배치하는 것을 미장센(Mise-en-Scène)이라고 부릅니다. 대학 시절, 영화 <캐롤>의 미장센을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시각 요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영화의 메시지가 더 깊게 와닿았고, 과제였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캐롤>은 시리면서도 포근한 겨울의 향을 온전히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겨울 영화입니다. 종일 완연한 겨울이 왔다는 듯이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에 영화 <캐롤>을 다시 감상했습니다. 더불어 지난 몇 년간 묵혀두었던 글도 꺼내 봤습니다. 오랜만에 먼지 쌓인 글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사실 이 글은 어떤 리뷰보다도 제게 소중합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영화 리뷰의 세계에 발을 들였거든요. 이왕 꺼내 든 참에 이곳에도 기록해볼까 합니다. (지금의 형식에 맞춰 어쩔 수 없이 조금 뜯어고쳤지만, 과제로 제출했던 글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미소를 머금고 너그러이 읽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캐롤
Carol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캐롤>은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인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랑'을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제게 잔상으로 남은 장면은 이혼 소송 중인 '캐롤'의 남편 '하지'의 협박으로 '캐롤'과 '테레즈'가 급히 뉴욕으로 돌아가는 차 안 장면입니다. 하필 두 사람이 여행지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직후에 벌어진 사건이었죠.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캐롤'의 양육권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기에 '테레즈'는 자기의 사랑을 자책합니다. '캐롤'은 차를 멈춰 세우고, 슬퍼하는 '테레즈'를 꼭 안아줍니다.
이 장면 속의 시각 요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프레임을 가득 채운 자동차와 두 인물이죠. 마치 그들만의 세상을 형상화하듯, 자동차의 외부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소수자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성 지향성에 혼란을 겪는 인물의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캐롤>은 그러한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유별나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그러나 자동차 안에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도록 배치한 시각 요소는 그들의 사랑이 아무리 유별나지 않은 것일지라도, 사회적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외로운 사랑임을 표현합니다. 영화의 배경인 1950년대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낮은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끼리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회에서 쉽게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죠. 따라서 이러한 장면 구성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한 정교한 프레임 디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 ◉
위 장면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지배 요소는 마치 창틀처럼 보이는 자동차의 전면 유리입니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동차의 유리창 프레임은 화면을 반으로 분할하는 구도를 형성하죠. 인물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오로지 자동차 안으로 한정된 상황에서도 '캐롤'은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테레즈'가 앉은 조수석의 프레임으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분할 구도와 인물의 이동은 두 인물의 성격 변화를 드러냅니다. 극의 초반, '테레즈'는 '캐롤'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솔직하게 행동하죠. 반면 '캐롤'은 그녀만큼 사랑에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양육권 분쟁 중인 남편 '하지'와 연인으로 오해받을 만큼 돈독한 친구 사이인 '애비'의 존재 등으로 인해 '테레즈'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죠. 하지만 이 장면을 기점으로 두 인물의 특성은 뒤바뀝니다. '테레즈'는 '캐롤'이 자신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는 생각에 더는 적극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을 넘어 '테레즈'에게로 넘어간 '캐롤'은 안타까운 이별 이후에도 그녀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며 사랑의 시련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죠.
조명도 눈여겨 볼만한 요소입니다. 자동차 내부에는 특별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 흐릿한 유리창이 인물과 관객 사이를 갈라 두기까지 하죠. 우리는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것만 볼 수 있을 뿐, 그들의 표정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사랑의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어둡고 흐리게 묘사된 그들의 공간은 '테레즈'와 '캐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비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 원색을 사용하여 다채롭게 표현한 다른 장면들과 달리 이 장면에서만 유독 색상이 거의 빠져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흑백에 가까운 화면 역시 그들의 사랑이 컬러에서 흑백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별을 암시하죠.
하지만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근접도는 긍정적인 기대를 유발합니다.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근접성은 이별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두 사람이 결국 용기를 가지고 그것을 극복해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 ◉
극이 위기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위치한 이 장면은 다양한 미장센을 통해 두 인물의 특성 변화, 관계에 대한 복선, 그리고 사회적 배경과 현실의 한계를 암시합니다.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 작품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격정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의 과정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의 희로애락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끌되, 시각 요소들의 배치와 표현으로 성소수자가 겪는 외롭고 고독한 상황을 은연중에 드러냈습니다.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스무 살 언저리에 썼던 글인 만큼 다소 어설프고 미흡하지만, 꼭 한 번은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는 이처럼 섬세한 시각 요소의 배치를 통해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면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영화 전체를 기억하도록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의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은 <캐롤>의 장면들, 또는 사랑해 마지않는 다른 영화들의 장면들이 떠오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Summary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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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 가정방문 스릴러 '더 게스트'
피해라 이 영화
더 게스트
-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남은 집 낯선 여자가 나를 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데...일순간에 게스트 하우스로 변해버린 우리 집... 불편한 가정방문이 낳은 비극 이 영화 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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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상> 메인 예고편
끊임없이 착취가 벌어진 성희와 수영의 '삶'과 '몸'.
자본이 숨기려고 했던 노동과 지우려고 했던 존재들.
그들을 품고 있는 ‘사상’.
자본이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풍경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