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9-15 21:09:39
깨진 도형을 넘어 선
영화 <이사> 리뷰
DIRECTOR. 소마이 신지
CAST. 타바타 토모코, 사쿠라다 준코, 나카이 키이치 외
SYNOPSIS.
화목한 가정을 자부하던 6학년 소녀 렌
어느 날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이혼을 선언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싸워도 참았어 근데 왜 엄마 아빠는 못 참는 거야?”
엄마가 만든 ‘둘을 위한 계약서’도 싫고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아챌까 두렵다
“엄마, 부탁이 있어 이번 주 토요일 비와 호수에 가자”
몰래 꾸민 세 가족 여행 엄마 아빠와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POINT.
✔️ <태풍클럽>으로 뒤늦게 국내 시네필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작품. 아마 이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고른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 공간이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그려진 영화
✔️ 1993년 당시 46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선정되었고, 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복원영화로 상을 받았습니다.
✔️ 주인공 렌의 똑똑하고 주체적인 모습이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밀의 언덕> 명은이와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둘 다 보통 어린이가 아니니 언니동생으로 잘 지내보거라...
✔️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 글입니다.

도형을 이루는 최소 선의 개수는?
정답은 세 개다. 점 또한 자체의 도형이기는 하지만, 선을 여러 개 연결해 닫힌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이 최소 세 개가 필요하다. 이 중 선이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더 이상 도형이 아니다. 남은 두 선은 그저 어떤 지점에서 만난 두 개의 선이 된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고, 아빠가 집을 나가고, 엄마가 나름대로 애쓴다고 작성한 '둘을 위한 계약서'가 도무지 가족적이라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렌의 상황처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고군분투하는 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지만 이등변삼각형의 두 면은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소스 병에 손 닿는 것조차 꺼린다. 두 사람의 꼭짓점은 날카로운 예각을 그리고, 그 맞은편 선에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렌의 말들은 도무지 그 예각에 닿을 수가 없다.
렌은 계속해서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강조하고, 심지어 아빠의 이사 당일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고도 소리치는데, 정작 아빠에게 하는 인사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코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다. 아빠에게도 재차 엄마가 보고 싶은지, 집에 가고 싶은지 묻는 렌의 말은 사실 '답정너'에 가까운 질문이다. 렌의 언어는 자신이 배워 온 (정상가족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소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때에는 렌의 선택권이 반영되지 않았는데, 이루어진 가족이 해체될 때조차 렌의 선택권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렌의 소망을 들어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렌은 무능한 어른들을 대신해 달리고 또 달린다. 러닝타임의 상당분을 소요해, 영화는 달리는 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어쩐지 미덥다. 어른들은 그저 빈자리를 침묵으로 응시하고, 술잔으로 회피할 뿐이다. <태풍클럽>에서도 그랬듯, 소마이 신지의 영화에서 어른들은 또다시, 보호자로 기능하지 못하고 부재중이다.

부재중인 어른들과 주체적인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세계는 반대로 다채롭다. 비록 어른들에게 학습된 '정상가족'의 세계를 답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아이들에게 가득하지만, 그래서 이혼이나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있는 가정과 어떻게든 선을 그으려고 하지만, 선을 그으려는 감각 자체가 이미 그들이 내심 알고 있다는 증거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상가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하다 못해 엄마 아빠의 싸움에 가슴 덜컥해 본 경험이라도 있을 테니까.
아이들의 생명력은 슬쩍 지나가는 교실 장면에서도 빛난다. 교사가 잠시 잠들어 있는, 그래서 또다시 어른이 '부재중'이고 아이들만이 주체적인 생명력으로 와글와글 움직이는 교실에서. 어떤 아이는 대범하게 교사 얼굴에 장난을 치고, 어떤 아이는 그 시끄러운 교실에서 꼿꼿하게 코로 오카리나를 분다.
교실에서 렌은 (코로 오카리나를 부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단독자다. 가족 이야기도 스스로의 힘으로 서술하고, "내가 뭐라고 하든 내 맘"이라고 한다. 스스로 렌의 편이라고 하는 미노루의 존재도 렌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에는 거울 속에 위치하고 있다. 마침내 렌이 단독자처럼 느껴지지 않는 장면은, 부모님의 불륜과 이혼을 거쳐 여기까지 전학 온 학생, 교실에서는 척을 졌던 다치바나와 장을 보고 자전거를 끄는 장면이다.

두 아이는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가족 걱정이 가득한 대화를 하며 자전거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 모습을 흔히 '가장의 무게' 혹은 '가족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표현되는, 부모 세대가 겪을 법한 감정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리는 폭우처럼, 현실은 아이들의 세계에 쏟아온다. 부모의 변화는 아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있는 힘껏 생을 끌고 가려 애써도, 폭우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몸보다 마음이 웃자라 버린 아이들은 더딘 성장이 서럽다. 까치발도 모자라서 점프를 하면서 빨래를 널고, 엄마가 쓴 '둘을 위한 계약'을 찢어버리는 이상으로 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렌이 그동안 해왔던 말을 하나도 듣지 않은 듯한 부모는 뒤늦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며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한다. 렌의 행동으로 부모의 침묵은 마침내 깨지고, 싸움이 시각화되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냐"는 렌의 외침은 또다시 응답받지 못한다.

이것은 삼각형이 아니다
삼각형 테이블부터 해서 렌의 집안 풍경은 가족들의 관계와 사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여러 모로 대단히 흥미로운데, 이 '욕실 사건' 전후로 가족들이 집안에서 빙빙 원을 그리는 것 또한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다. 삼각형과 원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중심점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접점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지점을 짚으면 그 자리에서 도형으로 뻗어나가는 선의 길이가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 모든 특징이 렌의 집안에서는 산산이 깨져 있는 것이 보인다. 더 이상 이 도형은 삼각형이 아니다.
한 번에 깨지는 것도 아니고 마치 깨진 유리를 자근자근 밟듯이, 계속해서 깨지고 또 깨진다. 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내민 손길들이 모두 다 거절당했다는 의미다. 낡은 기린 인형도, 심지어 렌이 야심차게 준비한 호수 여행에서 엄마와 아빠가 하는 말들도.

결국 함께 하려던 여행은 각자 제각각의 여행이 된다. 렌은 여행 기간 동안 엄마와도 아빠와도 짧은 대화를 나누지만, 같은 높이에 서지도 못하는 (아빠와는 제방의 위아래에, 엄마와는 다리의 위아래에) 상황에서 나눈 대화는 그동안 이미 이 도형이 깨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대화로 끝날 뿐이다.
결국 렌은 꿈꿨던 것처럼 엄마아빠와 불꽃놀이를 보며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데에 실패한다. 대신 아들이 죽었다는 노인의 가족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고, 그 끝에 늘 뛰어다니던 운동화 대신 낯선 게다를 꿰어 신고 뒤뚱뒤뚱 걸으며 혼자 밤을 보내게 된다. 다소 주술적인 냄새마저 풍기는 렌의 그 밤은 어쩌면 일종의 성인식, 마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수준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붙은 짚을 돌리느라 안전모를 쓰고 물을 끼얹어 가며 버티는 사람들을 거쳐, 혼자만의 호숫가이자 불가인 곳에 다다른다.

깨진 도형을 두고, 혼자만의 선으로
성장의 필수 조건은 상실이다. 성장의 교과서 같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만 봐도 라일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빙봉을 잊고, 유니콘 장난감에 대한 애정도 여러 감정 안에서 퇴색된다. 렌의 경우에는 라일리를 비롯해 '정상가족' 안에 있는 경우에 비해 더 큰 것을 잃었지만. 밟고 선 세계의 면이 깨지고 흩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그 균열을 피하려 부지런히 달렸지만, 끝내 이미 깨진 도형의 면이 상실되었음만 깨닫고 만다.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온전한 홀로 됨을 축하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와 렌의 구도는 호수로 향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렌은 아주 다른 인물이 되어 있다. 렌은 더 이상 깨진 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도형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뻗어 나가는 선이다. 수많은 선들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수직의 각으로 만나기로 할 것이며, 어떤 선과는 평행을 감지하며 뻗어갈 선. 웃자라야만 했던 렌의 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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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다
자칫하면 정치적인 색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소재였지만 그 때의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그대로 잘 녹여낸 영화 <남산의 부장들>. 굉장히 다크한 정치물 영화이지만 그 속에 감각적인 대사들과 연출을 통해 한없이 무겁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시놉시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흔들린 충성, 그 날의 총성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한다. 이 사건의 40일전, 미국에서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이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를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 나서고,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들이 뒤섞이기 시작한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
무슨 내용인줄도 모르고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의 조합만으로 저 영화는 흥행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미 연기를 잘한다는 걸 알고서 봤지만 또 이렇게나 잘했던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와 일체감이 굉장했다. 박대통령 역을 맡은 이성민과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장 역을 맡은 곽도원 그리고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맡은 이희준은 정말 그 캐릭터에 맞게 살을 빼기도 하고, 살을 찌우기도 하면서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박정희, 김형욱, 차지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각적으로 그 모습이 일치하다보니 극인 걸 알면서도 굉장히 사실적으로 내용이 다가왔다. 물론 예외적으로 이병헌의 겉모습은 김재규와 크게 닮지 않았지만 이병헌에게 내가 굉장히 감동했던 부분은 영어를 굉장히 잘 구사함에도 현재는 쓰지 않는 그 시대의 한국영어를 구사하는 연기를 볼 때 눈이 정말 동그래졌다. 그리고 차갑고 이성적이던 김규평이 점점 박대통령의 비밀을 알아가면서 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을 해서 보는 내내 감탄을 하면서 봤다.
김진명의 1026 소설이 떠올랐달까
사실적인 연기들과 시각적인 부분을 볼 때마다 조금 걸렸던 것이 이것 잘못하다가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있지 않으면 영화 속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을만큼 영화가 풍기는 부위기는 굉장히 사실적이었다. 그 사실적인 묘사에 감동하면서도 불편한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진명 작가의 1026 작품이 떠올랐다. 책 <1026>은 박정희 암살사건에 대한 배후를 캐면서 현재도 일어날 수 있는 또다른 대통령 암살 사건을 함께 진행하는 내용이다.
책 <1026>에서 가장 주된 의문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김재규가 왜 남산이 아닌 육본으로 향했나?다. 그 앞선 과정에 대한 김재규의 심리를 영화에서 세밀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이 영화를 보고 책 <1026>을 읽는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카메라 무빙과 감각적인 대사
내부자들을 제작한 우민호 감독의 특기라하면 카메라 무빙과 대사들이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현실 웃음이 나왔던 로비스트의 대사다. “박씨가 청와대 터랑 안맞는다나~” 이 대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쌍으로 한 번에 보내버린다. 순간적으로 현실이 투영되면서 속으로 혼자 낄낄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김규평이 남산으로 갈지 육본으로 갈지 고민을 하면서 어디로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차량을 도로에서 돌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장면에서 차량을 돌림으로써 자신이 계획한 일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어서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 자체에서 정치적인 색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자 설명이 조금 많긴 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 그리고 찰진 대사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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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한 죽음일까, 강요된 죽음일까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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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에서 안락사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이다. '안락사' 자체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토론 주제로 도마에 올라 왔다. 안락사의 역사가 오래된 스위스를 필두로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고 있다. 이 보편적 흐름에서 특이하게도 아시아만 동떨어져 있는데, 아마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인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플랜75>는 집단주의 그 자체인 일본 감독의 영화이다. 북미나 유럽에서 제작되었다면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시아 국가에서 안락사를 주제로 하니 디스토피아적 판타지처럼 다가온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 때야 내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지만, 이제는 거울을 보면서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희한하다. 내 마음과 정신상태는 20대 초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육체가 늙고 사회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나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 궤도의 삶을 살지도 않는데 이따금 나이를 생각해 보면 당황스러워지곤 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20대도, 30대도, 40대, 50대…. 90대인 우리 할머니도 그럴 것이다.
안락사 허용에 대한 관점은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죽을 권리'가 있다는 찬성과 윤리적인 측면의 반대다.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건 너무 추상적이라, 나는 그보다 '죽음을 강요'하므로 반대한다는 쪽에 힘을 싣는다. 안락사가 허용되면 아마도 죽고 싶지 않은데 죽어야 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노인복지가 개판인 우리나라에서, 왜 안 죽느냐는 핍박이 없을 리 없다. 나는 살고 싶은데 누가 죽으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까.
그럼에도 죽을 때 죽더라도 곱게 죽고 싶다. 겨우 연명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 치매에 걸린다거나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끔찍하다. 적당히 살고 죽을래, 라는 말을 죽어가면서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75살에 고통없이 죽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오케이 하고 죽을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플랜75>는 초고령사회에 접어 들면서,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국가정책사업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몇 분간의 장면은 후에 이어지는 장면들과 매우 이질적인데, 한 청년이 집단주의적 선언을 하며 자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일본인들의 정서를 살짝 내비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가미가제식 자결을 보여 주는 건 감독이 일본인이어서일까? 썩 좋지 않았다.
아무튼 이후로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는 '미치'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이다. 미치는 78세의 노인이지만 아직 경제활동을 한다. 젊은이들보다야 손이 느리기는 해도 아주 못할 만큼 늙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플랜75 정책이 발표되고 나서 시청 직원인 '히로무'는 정신없이 바쁘다. 노인들에게 플랜75가 얼마나 좋은 정책인지 설명하고 신청을 받느라 여념없다. 일시금으로 지원금도 받고, 고통없이 죽을 수도 있으니 천국 아닌가.
그저 공무원으로서 나라에서 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던 히로무는 삼촌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 친척이 안락사를 신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삼촌은 히로무의 부친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였다. 몇 년 만에 만난 삼촌은 늙고 비루하기만 하다.
각종 교량이나 도로 공사에 참여하며 지역에서 수도 없이 헌혈을 했던 헌혈증을 발견하면서, 삼촌에게도 젊고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음을 안다. 그 삼촌과 지금의 비루한 삼촌이 동일 인물일까. 개인의 연속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치도 마찬가지, 젊은 시절의 미치와 지금의 미치는 동일한 인물일까. 플랜75에 관심이 없었으나 아파트 퇴거 명령이 떨어지고, 직장을 잃으면서 미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오직 안락사뿐이다. 문자 그대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떠밀리듯 플랜75를 신청하고, 미치는 전담 콜센터 직원인 '요코'와 정기적으로 통화를 한다. 통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지금의 감정에 대하여 털어 놓는다. 미치에게 결국 요코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요코도 회사 몰래 미치를 만나기로 한다.
같이 볼링을 치는 순간들, 크림소다의 맛, 친구들과 모여 앉아 사과를 깎아 먹는 것, 해가 지는 노을이나 비가 오는 풍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사람을 살게 만든다. <플랜75>에서는 일상적인 풍경들을 천천히 카메라에 담는다. 미치가 빨래를 걷고, 친구의 집에 놀러 가고, 삼촌이 조카에게 요리를 해 주고, 조카가 삼촌을 모시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어쩌면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의 풍경.
플랜75에 참가하는 노인들에게는 지원금이 지급되는데, 초반의 히로무는 그들에게 그 돈으로 여행이라도 다녀 오라고 권한다. 그러나 삼촌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히로무의 감정이 서서히 변한다. 미치를 만난 이후 요코의 감정도 요동친다. 그들이 낡으면 폐기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기가 막히도록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미치가 플랜75에 사인한 것은 자발적 선택일까, 강요된 선택일까. 바꿔 말해 죽기로 선택했을까, 죽으라고 강요받았을까. 미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옆 침대에서 약물을 투입받으며 죽어가는 남자를 보며 두려워했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죽어야 할 만큼 삶이 더 두렵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에게 안락사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 예컨대 영원히 맑은 하늘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는 일몰을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영원히 못 듣는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하루만 더, 한 번만 더, 이런 미련이 질질 샐 것만 같다.
그런데 또 늙을 만큼 늙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이 되었을 때 나에게 곱게 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놓칠까 싶기도 하다.
영화 <미 비포 유>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설정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미 비포 유>에서 촉망받았던 젊은 사업가 윌에 대한 마음과, <플랜75>의 미치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달랐다. 어이없게도 나는 무엇을 응원했나 싶다. 내가 좀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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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75(Plan 75)
감독: 하야카와 치에
출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러닝타임: 113분
개봉: 2024.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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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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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죽음과 퀴어의 정치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Thailand, Germany/2021/89min/툰스카 빤시티보라꿀, 파사라윈 꿀솜분 감독 작품
영화는 태국의 왕실과 군부, 이름 없는 시민들을 번갈아 비춘다. 뉴스, 동영상 등 여러 푸티지로 이어지는 둘 사이에는 커다란 권력 격차가 있다. 왕과 왕실, 번갈아 집권하는 군부에게는 이름과 서사가 있다. 하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은 시민들은 죽음의 이미지로만 나열된다. 권력의 중심에서 수많은 정치적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변방’의 존재들은 피와 뼈, 사체로만 자신을 증언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GV에서 감독은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태국의 이미지, 태국인이 원하는 국가의 이미지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로 포개진다며 비판했다. ‘아름다운 태국’에는 죽은 자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의 무도〉는 바로 그 ‘아름다운 장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해명되지 못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태국의 역사와 지도에 기입하기 위한 시도다.
영화가 퀴어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영화에는 시위에서 공연할 에로틱한 춤을 연습하는 두 남성 댄서, 누군가를 유혹하는 게이 남성의 성애적 몸짓, 여러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두 남성의 섹스 장면 등이 문득문득 등장한다.
태국에는 왕실과 국왕을 모욕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이 있고, 군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폭력으로 억압당한다. 에로틱하게 나열되는 남성 퀴어 이미지가 국가 권력이 시민에게 강제하는 ‘도덕’을 거스르는 저항의 이미지가 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퀴어는 존재 자체로 ‘건전한’ 시민의 도덕, 즉 인구 재생산의 ‘의무’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위반은 애도로 이어진다. 인구를 재생산하지 ‘못하는’ 남성 퀴어들이 펼치는 에로틱한 몸짓은 국가에 생명을 빼앗긴 자들의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생명과는 관계없는’ 성애적 행위가 국가 폭력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한 자들의 이미지와 포개져 그들의 죽음이 저항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모든 억울한 죽음은 애도되어야 한다. 국가의 도덕을 거스르는 몸짓, 즉 퀴어적 몸짓은 이를 위한 최선의 수단이 된다. 수많은 희생자의 죽음과 퀴어한 몸짓의 이질적 포개짐이 태국의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장소, ‘아름다운 태국’의 이미지에 균열을 내는 정치적 가능성의 장소로 표상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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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에 끌리지만, 안정으로 돌아오고 마는 강렬한 여진
실제가 될 줄 몰랐던 서툰 사랑이 영화와 대조되며 펼쳐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와 실제 인물들이 묘하게 마주치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영화에서도 실제로도 신뢰를 주지 않는 관계 진행이 아사코라는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 돌아온 아사코의 모습에도 보는 사람조차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숨김으로써 되돌아보지 않는 일본의 현재와 달리 이 감독은 계속해서 드러내 일본을 되돌아보려 하는 모습과 감정에 개입하지 않아 그의 작품을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것 같다. <스파이의 아내>, <드라이브 마이 카>, <아사코>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인간의 감정들을 그의 작품에서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상영관이 없어 헤매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의 지난 작품들로 아쉬움을 달래려 한다.
겹치는 외면, 다른 외면은 혼란스러움을 가중한다. 같은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성정을 가지고 있는 바쿠와 료헤이. 그들은 서로를 모르지만 아사코는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른다. 혼란스러운 감정 사이에서 당연하게도 다정함에 내려앉은 아사코는 자유에 끌리더라도 사소한 어떤 방법으로 자리를 찾게 된다.첫사랑이었던 바쿠는 자유롭고 충동적이며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를 사람이다. 한편, 료헤이는 안정적이고 다정하며 감정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회피하지 않으며 힘든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키스와 운전 장면을 통해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흔들릴 것이다. 그것이 자연현상이든, 자신이 일으키는 마음의 요동이든.
첫사랑이었던 바쿠는 자유롭고 충동적이며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를 사람이다. 한편, 료헤이는 안정적이고 다정하며 감정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회피하지 않으며 힘든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키스와 운전 장면을 통해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흔들릴 것이다. 그것이 자연현상이든, 자신이 일으키는 마음의 요동이든. 모든 것을 바꾸는 한순간의 선택이 충동적인 태풍을 일으켜 상처를 입힌다. 그렇게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장마처럼 늘 그 자리에 당연하던 다정함이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그를 스쳐 지나가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모든 신뢰는 무너지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긴 시간에서 새로 시작한 긴 시간이 불안감으로 번지겠지만 변치 않는 다정함이 금방 눈을 돌리려는 불안정을 그러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한순간의 선택이 충동적인 태풍을 일으켜 상처를 입힌다. 그렇게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장마처럼 늘 그 자리에 당연하던 다정함이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그를 스쳐 지나가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모든 신뢰는 무너지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긴 시간에서 새로 시작한 긴 시간이 불안감으로 번지겠지만 변치 않는 다정함이 금방 눈을 돌리려는 불안정을 그러안을 것 같다. 료헤이에게서 바쿠를, 바쿠에게서 료헤이를 바라봤던 그는 다시 그와 그의 사이를 맴돌게 될까. 같은 공간에서 다름을 느끼는 순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다정함에서 배려와 희생을 발견하고 허황한 것에서 벗어난다. 그의 사랑이 그저 불은 강물처럼 투명한지 더러운 부유물이 떠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흔들린다. 신뢰에서 흔들리는 사랑, 그 끝엔 무엇이 서 있을까.
어쩌면 지독하게 사랑을 좇는 건 불안정하게 여러 궤도를 도는 아사코가 아닌 그런 행동에도 문을 열어두는 료헤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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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함이라는 감정과 허무함을 딛고 일어나는 인간에 대한 영화 《나를 찾아줘》
이영애의 복귀작이었던 영화 《나를 찾아줘》. 기대를 하면 항상 실망이 따라오곤 했었는데 이 작품만큼은 예외였던 그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도 인간 본질에 대한 탐색적인 주제를 잘 담아낸 작품이었다.
영화 《나를 찾아줘》 시놉시스
6년 전 실종된 아들을 봤다는 연락을 받은 정연. 숱하게 반복되던 거짓 제보와 달리 생김새부터 흉터까지 똑같은 아이를 봤다는 낯선 이의 이야기에 정연은 지체 없이 홀로 낯선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자신의 등장을 경계하는 듯한 경찰 홍경장과 비슷한 아이를 본 적도 없다는 마을 사람들.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 정연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6년 전 사라진 아이, 그리고 낯선 사람들. 모두가 숨기고 있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영화 《나를 찾아줘》를 보면서 가장 처음으로 띠용~~했던 장면은 정연의 남동생이 정연을 이용하는 장면이었다. 윤수를 찾으러 다니다가 교통사고 당해 죽은 남편을 보내고 폐인이 된 정연에게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은 남동생은 윤수가 살아있다는 제보전화가 왔음을 정연에게 알리지 않는다.
설마,, 에이,, 알려주겠지 했는데 돈이 필요했던 정연의 남동생은 정연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정연에게 공중전화에서 윤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며 돈을 요구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혈연관계라고 해도 돈 앞에서는 언제나 자신이 먼저구나 싶었다.
무너져가는 누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절박함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갈취하는 모습을 통해서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도 저러는데 완벽힌 남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굉장히 인간관계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었다.
허무함에 대해 다루다
영화 《나를 찾아줘》를 다 보고 느꼈던 감정은 ‘허무하다, 허탈하다’였다. 윤수를 찾으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찾다가 윤수가 죽고, 알고보니 정말 윤수가 아니었던,, 정말 허무했다. 평소 같았으면 ‘와,, 이 영화는 도대체 뭘까?, 주인공은 내내 뻘짓을 한걸까?’하고 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뭐,,’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써 노력해도 막상 그 결과를 보고 나면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했나 현타가 오고,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거기서 또 좌절하기 보다는 또 다른 목표점을 찾아내서 노력하고 성취해가는 것이 인생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는 그 모습을 ‘실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잘 풀어내고 있었다. 인생에서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는 정도를 실종된 아이를 과정에서 느끼는 부모의 심정과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 《나를 찾아줘》는 ‘실종’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잘 풀어내면서 감정의 경험을 확장시켜준 것 같다.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 캐릭터들
영화 《나를 찾아줘》를 높이 평가하는 이쥬 중 하나는 필자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영화의 시각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어른들을 선악의 모습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윤수를 잃어버린 정연 마저도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사람에게 독극물을 쓰기도 하고, 윤수의 위치를 몰래 알려준 경찰 역시 집단 속에서는 똑같이 악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아이들은 몰라도 사회화가 된 어른들은 이런 선악의 구조를 모두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시선에 맞춰 상황에 따라 선의 모습을 드러낼지, 악의 모습을 드러낼지 사람들은 결정한다. 집단 속에 있을 때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취득하기 위해 선과 악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 영화 《나를 찾아줘》의 캐릭터들이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이 됐다.
굉장히 부정적이고 암울한 감정에 대해 섬세하게 풀어낸 영화 《나를 찾아줘》. 인간의 선악에 대해 그리고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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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었다
베테랑을 본 날, 그날은 문화의 날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두 편을 봤다. 그 중에 하나가 암살이다. 암살과 베테랑은 오랫동안 걸려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독과점 같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사실 이 영화들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특히 암살은 여운이 남는다.
여기도 믿고보는 배우들이 나온다. 베테랑에서도 만난 믿고보는 오달수, 또 믿고보는 하정우. 사실 씬 자체는 몇 컷 안 되지만 두 영화의 신스틸러.. 언제나 중요한 역할 믿고보는 진경.
암살은 쉽게 말하면 독립운동을 그리는 영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알고 있는 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이 영화가 나오자 마자 표절시비가 붙었다. 100억 소송이었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나 소설의 표절시비라 의아했다.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플롯이 얼마나 비슷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식으로 소송을 하면, 세상에 많은 사극들은 조선왕조실록의 표절이 아닌가. 뭐 이런 얘기다. 저런 표절시비가 붙고 나서 작가는 책을 재출간했고, 아마 '암살이 표절한 책'으로 홍보를 해서 꽤 돈을 벌었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영화 측에서 표절시비 책 전량회수를 요구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야지. 그런 악의적인 소송이라니.
여튼 독립운동을 하는, 특히 적극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고, 깨달음이 있다.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과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과하게 밝게 행동하고, 자신이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모든 상황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속사포는 마음을 짠하게 했다. 돌아와줘서 좋았으나 그 이후의 상황이 예상이 되어서 돌아오지 말지 그랬니..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배우의 구멍이 없었다. 다들 연기를 잘했다. 연기를 못한다고 까이는 전지현이지만, 사실 나는 전지현이 그렇게 연기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베를린에서의 그 절제된 연기는 썩 마음에 들었었다. 이번에 연기도 마찬가지 였다. 딱 그 사람. 딱 이 사람. 같았다.
암살도 임무를 마친 그들의 모습을 보여 통쾌한 마음이 들었으면 했지만, 되려 무거워졌다. 베테랑에서 느끼던 통쾌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이는 아마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마지막의 이정재의 죽음은 그들의 마지막 임무완수가 아니라 이정재의 죄책감에서 나온 상상이 아닐까 싶다. 늙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던 안오균과 이정재의 죄책감의 하나인 그... 후배.
그리고 이정재가 쓰러진 그 마당은 이미 발전한 서울에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보이는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너른 들에 흩날리는 천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정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게 이정재가 혹시 자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하정우가 죽지 않았다면? 이경영이 자살을 했다면? 이라는 의문을 남겼다. 하정우가 죽지 않았다면 너무 뻔한 사랑이야기가 되어 버렸을 것 같고, 이경영이 자살을 했다면 그들의 임무가 찜찜하게 되었을 것 같다. 그 임무를 위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쩐지 내 마음도 찜찜했을 것 같다.
이경영의 자살은 어쩐지 '에잇 ㅅㅂ, 나는 잘못이 없어. 딸 손에 죽느니 그냥 내가 죽고 말지' 이런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았달까? 결국 딸 손에는 죽지 않았지만... 이경영의 자살은 어쩐지 좀 분하다.
사실 하정우의 죽음은 안타깝기 마련이다. 미란다호텔에서 두 사람의 조합은 정말 환상이었는데! 조금씩 엇갈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이정재는 관상에 이어서 악역인데, 의외로 악역이 잘 어울리면서 맛갈나게 소화를 한다. 특히 관상에서 부터 들려줬던 그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살살 긁는다. 짜증이 나게? 어쨌든 잘 소화해 냈다. 악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배우들과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 하정우와 전지현의 멜로. 벌써 몇 번이나 만났지만 제대로 된 멜로를 연기하지 못한 두 사람에게 정통멜로 하나를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어서 물어보세요, 멜로의 떡밥을(정통멜로가 아니어도 좋아오 로멘틱코미디도 좋으니 물어주세요, 떡밥을).
아,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었다. 라는 건 씁쓸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승리자는 친일파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인물들이 묻히고, 지금에서는 국정교과서까지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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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데드 다루는 법 - 죽음을 거스른 내 사랑, 그대는 구원인가
살아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손자이자 아들 '엘리아스'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말러'와 엄마 '안나', 아내 '에바'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오열하는 남편 '데이빗', 반려자 '엘리자베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온 노부인 '토라'. 원인불명의 정전이 오슬로 전역을 덮친 이후, 죽은 이들이 다시 깨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덤에 묻혔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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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당? 미리 본 소대원들? 라떼극장 EP.0死 R?
영화 흥신소 -(아이스)라떼극장 EP.04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공포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날려버리자
정체불명의 무전을 받고 실종자 수색에 나선 소대원들
점점 불길한 일들이 발생하는데...
시공을 초월한 택배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는 영화 '알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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