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2025-09-20 19:35:11

시선이라는 권력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를 보고

로버트 카파는 말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다루는 분야에서 이 말은 끊임없이 인용된다. 물리적인 교감 없는 사진은 공허하다. 그러나 모두에게 피사체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리 밀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쟁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투쟁으로 볼 권리를 쟁취하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든다.

 

 

 

이 작품은 분명 리 밀러라는 실존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전장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의 이야기. 그러나 이 작품은 리 밀러라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쟁의 형국에서 만난 수많은 여자들의 삶은 리 밀러의 삶에 중첩된다. 전쟁의 참상을 담아내고 싶다는 리 밀러를 막는 이유는 단순하다. 분명 그곳은 여자의 공간이 아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아마 남자들은 생각할테다. 여자는 총칼이 오가는 전장이 아닌 안전한 공간에 있어야 된다고.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여자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끔찍하게 전쟁을 체험한다. 무기도 없이 하나의 재산과 물건이 되어 성폭력을 당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리 밀러는 자신만이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가, 자신만이 포착할 수 있는 순간들을 찍어낸다.

 

 

 

리 밀러는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었다. 결국 ‘승전’의 날이 다가왔을 때, 마치 세상은 축제가 열린 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사라졌다. 그 슬픔에 고통 받는 산 자들이 있다. 리 밀러는 이를 알리고자 끝없이 노력했고 결국 보그지에 사진을 싣기에 이른다. 온 힘을 다해 피사체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 그녀는 자신의 책무를 져버리지 않는다. 보았다면, 남겼다면, 알려야 한다.

 

사진이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음에도 왜 리 밀러를 몰랐을까. 아마 그녀의 아들조차 어머니의 삶을 뒤늦게서야 제대로 알았다니, 나의 무지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기시감이 들었다. 알리스 기 블라쉐의 이름이 떠오른다. 세계 최초의 서사 영화감독임에도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름에 가려진 이름. 리 밀러의 이름도 그렇게 잊혀졌을까. 여성은 쉽게 기회를 얻지 못하며, 기회를 얻더라도 그 이름은 쉽게 잊혀진다.

 

 

이제는 리 밀러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히틀러의 욕조에서 나체로 자신의 몸을 씻어내는 순간을 기록한 그녀의 이름. 실제의 사진은 케이트 윈슬렛의 신체를 빌려 재현 되었다. 나아가 최근작 <시빌 워>에서 리 밀러의 이름을 딴 인물 리(커스틴 던스트)의 몸을 빌려 다시금 나타났다. ‘시선의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를 넘어 이제 여성들은 카메라를 쥐고 자신만의 시선을 담은 작품으로 세상과 만난다. 나아갈 길은 멀지만, 그녀들의 피땀을 딛고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작품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작성자 . 숨

출처 .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