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까2025-09-23 13:43:43
[30th BIFF 데일리] 죽은 사람이 AI로 다시 태어난다면
영화
인공지능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요즘입니다. 제 삶도 예외는 아닙니다. 언제부터 인공지능과 함께했다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없으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인공지능에게 고민도 자주 털어놓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오히려 인공지능에게는 속 편히 건넬 때가 많죠. 인공지능이 바꿔놓은 이러한 시대적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작품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올랐습니다. 죽은 엄마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한 소년의 이야기, <AI엄마>입니다.
AI엄마
Mothernet
Summary
가까운 미래, 대도시 외곽의 단란한 가정. 사춘기 소년 '라마'는 돌봄과 이해의 전부였던 어머니가 예고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해커 친구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온라인 흔적을 학습한 AI를 만들어낸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호위딩
출연: 알리 피크리, 링고 아구스 라흐만, 디안 사스트로와르도요
엄마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AI엄마'
<AI엄마>의 배경은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홈이 일상이 된 세상입니다. 어느 날, 무뚝뚝한 아빠와 사춘기 아들에게 대화의 시간을 주고자 자리를 비켜준 엄마가 길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됩니다. 그러고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지요. 하루아침에 다정한 이부(Ibu, 인도네시아에서 엄마를 부르는 말)를 잃고 슬픔에 빠진 아들 '라마'는 해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엄마의 데이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 엄마, '아이부(I-BU)'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을 뭐라고 부를지 정해달라는 '아이부'의 요청에, '라마'는 생전 엄마에게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애칭 '시못'을 내어줍니다.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지만 아들과 대화하는 법을 잘 몰랐던 아빠는 그저 AI엄마에게 의존하지 말라며 윽박지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들은 '아이부'와의 교류가 자신만의 떠나보내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는 인간 엄마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함으로써 그저 엄마의 죽음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죠. 누군가의 빈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는 것은 상실을 이겨내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아빠는, '아이부'가 설치된 아들의 기기를 빼앗아 버립니다.
⊙ ⊙ ⊙
불완전하지만 깊은 인간의 '느낌'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부재를 온전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결국 아들은 '아이부'를 삭제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부재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상실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너무 아프고 괴롭더라도, 감정을 직면하는 것만이 언제나 회복의 시작점이 되지요.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가족 드라마와 SF적 요소를 엮어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의 부정적 측면을 악마화하여 그리는 작품은 아니지만, AI의 한계도 분명하게 짚어냅니다. 엄마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 ‘아이부’가 생전에 엄마가 아들을 데려가려 했던 장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서 말이죠.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만 할 수 있을 뿐, 경험으로 쌓인 맥락과 미묘한 정서까지 생성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반드시 직접 겪지 않아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건넨 사랑의 방식 같은 것들은 서로 간의 말과 행동으로 전해져 마음에 남지요. 이러한 공유는 데이터 축적과는 다른 종류의 기억이 되어, 직접 경험한 것만큼이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아직 인공지능은 이 불완전하지만 깊은 인간의 '느낌’을 완전히 닮지는 못한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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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에 SF적 상상을 더한 작품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더 이상 현실 너머의 것으로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이미 인간과 인공지능은 영화에 등장한 수준 그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이미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움에 사무칠 때 잠시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죽음 이후의 삶이 곧바로 인공지능에게 대체되는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실을 극복하고 제대로 애도하는 법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나날이 꼬여만 갈 테니까요.
Schedule in BIFF
2025.09.22(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2:30
2025.09.23(화) 시청자미디어센터 12:00
2025.09.24(수) CGV센텀시티 5관 15:00
2025.09.25(목) CGV센텀시티 1관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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