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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2025-09-23 13:51:40

영화 <리 밀러>, 관찰자의 시선에서 렌즈 너머로

2025.09.24. 개봉 예정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리뷰

2차 세계 대전. 그 잔혹하고 참담했던 현장을 카메라로 기록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한때 패션모델로 활동했던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서던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 렌즈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기로 한다. 여성 종군기자로서 활동한 그녀의 사진은 전쟁 당시 보그 Vogue에 실리기는 했으나, 이는 극히 일부였다. 그녀가 필름에 담았던 전쟁의 참혹한 현실은 끝내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의 아들이 옷장 한구석에 있던 필름 상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그녀가 사진에 담았던 이야기는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가 되어 우리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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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 밀러> 한국 포스터와 주인공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 (C) 한국 배급 영화사 진진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앞서 말했듯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여성 종군기자로서 활동했던 실존 인물, 리 밀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사진이라는 기록물을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다. 영화는 그녀가 종군기자로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시점에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전쟁 영화임에도 불구, 그 이야기의 서술이 꽤 담담한 편이다. 이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서술한 것이 아니라 제삼자가 그녀의 기록물을 바탕으로 상상을 더 해 각색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 오히려 그러한 엔딩 연출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현실감을 다소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감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세계 대전과 여성 종군기자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루고자 한 면모 또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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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실제 인물인 리 밀러의 사진 (C) Lee Miller Archives 2025 / 한국 배급 영화사 진진

 

이처럼 담담한 서술은 영화가 관찰자의 시선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서술의 주체가 되는 주인공이 전쟁 군인이 아닌 기자라는 점도, 이야기를 구성한 이가 사실 주인공이 아닌 그의 아들이라는 점도, 영화의 서술 시점이 전쟁 당시가 아닌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본다.

 

영화의 이야기 속 리 밀러가 종군기자로서 마주한 전쟁의 참상 또한 그러하다. 그녀는 관찰자, 즉 경계에 서서 한 발을 걸친 상태인 제삼자로서 전쟁을 바라본다. 그녀는 전쟁의 참혹함을 필름에 담고자 했으나,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부상당한 병사들을 마주한다. 그렇게 그녀는 지속해서 간접적인 형태로 전쟁에 노출된다. 전투가 한창인 현장에 투입되나 그녀는 총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있으며, 전쟁의 중심에 있던 친구의 넋이 나간 눈동자는 그곳에 없던 이로서는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삼자로서의 위치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점차 당사자성을 띠게 된다. 리 밀러는 천천히 전쟁이 마냥 타인의 위치에서 관망하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되며,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분노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그들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 속 독일이 잠시 물러났으니 그곳은 파티 분위기가 아니냐 물으며 낙관하는 영국의 동료에게 분노하고, 전쟁의 아픔과 참상이 과거가 아닌 현재임을 망각한 이들에게 분노한다. 그렇게 1930-40년대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에도 굴함 없이 당당했던 그녀는 관찰자에서 당사자가 되어 분노를 표출한다. 이는 그녀의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처음에는 패션지 느낌의 연출된 사진을 기록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순간을 포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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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덮친 일 아래 외부자로서 관망할 수 있는 제삼자라는 존재는 없었다.(C) 한국 배급 영화사 진진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성>에서 가장 오래 인상에 남을 장면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유대인 소녀의 눈빛이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보다도, 영화가 재현해낸 전쟁의 참상보다도, 수많은 대작들에서 신스틸러로 등장한 마리옹 꼬띠아르의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고 넋이 나간 표정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은근하지만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 장면은 카메라를 바라보는 두려움이 가득한 소녀의 눈빛이다. 떨리는 아이의 눈은 무엇을 보았을까. 영화의 주인공이, 영화 관객이, 그리고 사진을 마주한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로서 소녀가 겪었을 일에 대한 상상뿐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연출이 돋보이는 히틀러의 집 에피소드다. 히틀러가 물러난 히틀러의 집에 들어선 연합군과 리 밀러를 배경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음악이 흐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끊이지 않게 하는 연출은 해당 장면의 시간 배경이 히틀러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모른 채 히틀러의 집에 주인공 일행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이는 히틀러의 욕조에서 목욕하는 어머니, 리 밀러의 사진을 발견한 아들이 어머니가 이러한 사진을 촬영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서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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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영화 속 재현 장면과 우측은 실제 리 밀러가 히틀러의 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C) 한국 배급 영화사 진진 / Lee Miller Archives 2025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성>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그려진 영화다. 리 밀러는 오롯이 관찰자의 시선에서 시작하여 이내 당사자성을 띠게 되었으나, 이러한 변화 또한 사진의 관찰자인 아들과 영화를 준비한 제작진이 관찰자로서 그려낸 이야기다. 관객 또한 영화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당시 여성 종군기자가 겪었을 일들에 대한 재현과 상상을 관찰한다.

 

그렇다면 영화 스크린 앞의 관객으로서, 동시에 휴대폰 스크린 너머로 2025년 세계의 관찰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엇을 낙관하고 관망하고 있을까. 리 밀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세계 대전과 여성 종군기자의 이야기를 넘어 현재를 관찰하고 분노해야 하지는 않을까.

 

 

 

 

* 본 게시글은 씨네랩(cinelab)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영화 시사회 후기입니다.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성 Lee> (2025)

감독 엘렌 쿠라스

주연 케이트 윈슬렛

작성자 . Cho

출처 . https://brunch.co.kr/@collectormemo/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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