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9-24 16:36:54
거짓 위에 뿌리내린 분재
영화 [어쩔 수가 없다] 리뷰
이 글은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작 살리기 위원회 상무로서 비교를 위해 원작 소설 [액스]의 내용도 함께 담았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원작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거대하고 무겁다. 사람이 부품으로 여겨지는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성토한다. 후반부에 피해자(?)가 될 인물들에 대한 스펙에 대해 설명하기보다 그들의 인간성에 매료되어 점차 마음이 약해지는 주인공의 고뇌도 그려낸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 근심의 무게와 비례하게 버크의 살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버크는 점점 살인을 성큼 넘어갈 수 있는 돌멩이 정도로만 여기는 잔인한 그 무언가로 변모해 간다. 그 과정 속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일 들은 버크를 더 초라하게 만듦과 동시에 그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과한다.
원작이 이렇다 보니, 두 가지 큰 의문(혹은 걱정)이 영화관으로 가는 내 발걸음에 매달려 질척거렸다. 복수 전문(?) 시리즈의 감독답게,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잔인하기만 할까 봐. 그리고 이 정서를 관객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어쩌면 조금은 허무하기까지 했던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덜컥 팝콘까지 시켜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원작을 연상하게 하면서도 박찬욱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 관객이 되어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수많은 말들을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탁월하다라고 생각했던 포인트는 원작의 제지공장이라는 설정과 온실(분재 작업 공간)의 연결이다. 가장 자연적인 것을 가져다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야만 만수(이병헌)의 가치도, 나무의 가치도 올라간다. 그 시선으로 보면 만수만큼, 인공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는 영화 속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단 한 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사회에서 자신이 작아짐을 느낄 때마다 분재에 굵은 철사를 감는 것으로 화풀이 겸 한탄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단점에 대한 생각조차 스스로 해내지 못해 몇 번이고 조언을 받아 만들어낸 모습으로 면접에 응한다. 그러나 이런 만수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자신의 본모습을, 혹은 제자리를 찾고 싶어 하는 갈망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갈증은 집에 대한 애착으로 번진다. 그는 집에 대한, 더 넓게는 그 집 안에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 가면 없이는 한없이 허술한 한낱 아저씨의 모습으로 벌벌 떨며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총을 겨눈다.
만수가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 덕에, 나 같은 사람이 갖고 있었을 이 영화의 악명 높음(?)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이 덜떨어진 연쇄 살인범(?)의 우스꽝스러운 행보를 영원히 응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저 보고 있는 내내 촌극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관객을 실소하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원작에서의 결말은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뭔가 께름칙했다. 버크의 출근길은 앞으로도 보장되겠지만.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살 것이고. 특히 부인은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 바람을 피웠다는 죄책감을 영원히 갖고 살게 될 터였다. 이런 결말은 이제 평생 뱀은 쳐다도 못 보게 될 만수에게는 더욱더 어울리지 않았고. 과연 이 숙제를 박찬욱 감독이 어떻게 풀어낼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은 미리(손예진)가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리는 중간자에 속한다. 아니, 속했다. 특히 조각난 형태의 가족을 이어 붙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반부까지는. 그러나 후반부에 남편의 살인과 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만수와 같이 거짓 위에 행복을 심기로 한다. 이제 경력직(?)이 되어버린 남편과 다르게 그녀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아들이 탈탈 털어 온 친구네 부모님 가게의 핸드폰들을 묻을 때처럼. 남편에 대한 묘한 동질감을 이번에도 느끼며, 슬며시 그녀의 불안함을 땅 속 깊이 묻는다. 이 썩어가는 것들이 자신들이 심은 아름다움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딸의 첼로 소리가 구슬픈 이유도 아마 이것이리라. 영원히 껍데기를 쓴 채 살아야 하는 가족의 모습에 막막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에 아주 잠시 한숨을 몰아쉬는 순간이 되었을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거짓 위에 세워진 신기루 앞에서. 자신의 딸만이 이제야 마음을 연 순간이 미리에게는 더욱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 글의 TMI]
이번 영화에서 다른 배우들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도 충분했지만. 특히 차승원 배우의 모습은 감히 원작은 비비지도 못할 만큼 최고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가 지닌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애잔함은. 원작의 정서로는 절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아빠의 그것이었다. 그의 목소리, 그의 행동, 그의 걸음걸이 모두. 아주 잠깐의 등장이었지만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암투병을 앞둔 아빠도 그 얇디얇은 지갑에서 전부를 꺼내 내게 쥐어주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시절 아빠의 어깨가 이토록 굽고 축 쳐져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이 엉망진창 만수의 취업기가 그저 웃기지만은 않았다. 멀리서 보니 코미디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비극이었다는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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