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20 23:46:16
불행을 뱉어냈으니, 이제 행복을 삼킬 차례.
영화 <스왈로우> 리뷰
모든 것을 통제당하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궁지에 몰린 채 살아온 헌터는 마리오네트처럼 표정도 머리도 생활도 정해진 대로 남에게 맞춰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생활 반경에서 수동적이며 불안한 상태를 지속하는 헌터, 그에게도 자그마한 꿈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헌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다.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임신’을 선택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주변의 모습은 헌터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헌터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이 행동은 가족의 문제가 되어 상담받게 되지만 그 상담조차도 헌터의 마음이 아닌 집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절차가 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헌터는 침대 밑에 숨어 자신의 불안함을 외부로부터 숨긴다.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는 헌터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도망친다.
상처의 완전체라고 볼 수 있는 헌터는 끊임없이 자신의 안을 상처입히다가 그 상처를 직면하게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한마디가 “매일 예상치 못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라” 라는 말로 억지로 잡으려 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한다. 보이는 것이 다른데, 이해하려 하지 않는 주변에 의해 끊임없는 불행을 삼켜내야 했던 헌터가 ’자신의 의지’로 불행을 배출해 내는 모습이 너무나도 홀가분해 보였다. 또한 헌터는 이제부터 수많은 사람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행할 것이다. 보는 내내 헌터가 무언가를 삼키는 모습이 남편과 시가 식구들이 가스 라이팅으로 헌터를 압박하는 순간보다 덜 갑갑한 느낌을 받았다. 불완전함은 완전하기 위해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그려낸 '스왈로우는 내적 트라우마가 내면으로 스며드는 순간을 정면으로, 또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특히 헤일리 베넷의 표정과 연기가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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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자의 오지랖
이 글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맥스무비
분명 처음에는 괜찮았다.
한국의 조커 탄생이라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딱지맨(공유)의 탄생을 지켜보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는 팔을 쓸어내릴 때까지는. 비장하면서도 패배감에 물들어 어딘가 입꼬리가 축 내려간 채 죽지 못해 사는 것만 같은 기훈(이정재)을 볼 때까지만 해도.
사실 시즌1에서 그다지 이 시리즈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 시청자였기에. 이번 시즌에선 오히려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 글로벌 오징어의(?) 오프닝은 장대하면서도 짜릿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시즌 2는 가장 큰 패착을 오프닝부터 모조리 보여주고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주인공인 기훈의 존재 자체라는 것과. 그가 아예 시즌 1과는 완전히 다른, 철이 든 데다 돈까지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는데 있다.
사진출처:한겨레
오징어 게임의 본질(?)은 몸뚱이 밖에는 담보 잡을 것이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것을 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성과 상품성의 대립. 드러나는 인간들의 욕망과 도덕사이에서의 혼돈. 그리고 과연 누가 진짜 나쁜 놈일까. 나는 저 상황에서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훈의 환골탈태(?)로 인해 이 모든 갈등은, 혹은 갈등에서 오는 재미는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기훈이 아무리 봐도 주인공 버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첫 게임(지가 제일 많이 움직임. 차라리 뒤돌아 있었으면 이 정도의 짜증은 안 났을 것.)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생존케 함으로 인해. 주최 측은 다음단계로 갈수록 좀 더 어렵거나. 팀으로 사살이 가능한 게임을 고안해 내야만 한다.
이제 시즌제 드라마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듣자마자 지긋지긋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세계관 확장에 따라. 이번 시리즈에서는 당연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기 바쁘다. 이로 인해 갈등이 쌓이기보다 각자의 말을 들어주느라 혼돈의 시간들을 보내느라 회차를 낭비한다.
등장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미 갈등 자체가 줄어들어버린 데다 갈등 자체가 크게 두 팀으로 나뉘어 버린다는 데 있다.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살아 나갈 것이냐.라는 이분법적인 투표가 매 라운드마다 존재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그저 일확천금 외엔 별 목적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더 가벼워져 보인다. 그러니 매번 투표마다 다들 내뱉는 이번 라운드 뒤에 나가자.라는 말이 밥 한번 먹자는 말보다 더 비어보일 수밖에.
사진출처:조선일보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두 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경력직의 활약으로 인해 시즌1에서 느꼈던 종잡을 수 없는 충격들을 느끼기 힘들어진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킹함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투입한 빌런인 타로.. 아.. 아니 아니 타노스의 존재를 견뎌야만 한다는 점이다.
오춘기가 지나버린 기훈덕에 기울어져버린 운동장 위에서(?) 타노스는 말 그대로 정의로움이 어색해 보이는 기훈 마냥 한껏 high 한 상태로 방방 뛰어다닌다. 완벽하게 악한 캐릭터냐 묻는다면 이런 류의 작품에선 언제나 눈만 맑은 광인이 한 다발로 등장하기에 그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건방지냐고 묻는다면 차라리 타노스를 믿고 깝죽거리는 남규(노재원)에도 못 미치며, 또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 자체가 가진 매력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요"인데 뭘 물어.
타노스는 미쳤다기보다 그냥 동네에 하나쯤은 있다는 덜떨어진 사람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고. 그 역할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자기에게 딱 맞는 어수선한 최후를 맞이하며 다행히 퇴장한다.
사진출처:경향신문
타노스의 경우 개인 연기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더 크게 보았을 때 황동혁 감독의 캐릭터 고용이 좀 납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캐릭터가 1편에서의 파생이며. 아예 극에서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특히 용식(양동근) 모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눈물을 뽑겠다는 작정을 하고 투입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더 최악인 것은 시즌1에서부터 지적된 여성 캐릭터의 쓰임이다.
애초에 목적이 너무 뚜렷한 데다 심지어 외모적인 특징마저도 아예 빼다 박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이다 못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조차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히 시즌2에서 새로 등장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낯섦은커녕 어디선가 시즌1 때 사망한 새벽이가 등장한다 해도 그러려니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하던 대로 비슷하게 하면 본전은 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최선을 다해 생각해 낸 캐릭터의 결과였을지. 나 같은 인간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고뇌의 방향이 어쨌든 간에. 감독의 선택은 얄팍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치면서
2024년의 끝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기 때문에 다들 "호상"이라며 격려 같은 말을 조용히 말을 건넸지만.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온기라는 게 참으로 힘이 세서 나는 그 온기가 날아갈까 두려워 애써 품에 안고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꼭 쥔 채 새해를 맞이했다.
나는 할머니의 맏아들의 장녀였고. 딸이 귀했던 집안(6남 1녀)의 특성 덕에 며느리는 자신의 딸을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다며 너스레를 떨 만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서 컸던 큰 손녀였다. 나의 식성도. 나의 취향도. 나의 생김새마저도. 할머니를 닮은 모습에 농담처럼 마을 사람들은 나를 할머니의 숨겨놓은 막내딸이라 부르기도 했었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큰손녀의 이름만 부르면 눈동자가 다시 사람의 것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말에. 내 마음속 상실의 구멍에 또다시 세차게 찬 바람이 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바람이 이제는 내가 약해져 있을 때는 더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상실을 겪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아픔은. 내가 온전히 사라져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것만 같다가도. 그 경험들 뒤에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지나가겠지.라는 체념 같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네는 날들인 것 같다.
무뎌진 기억을 더듬으며 더 이상의 눈물을 삼키지 않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이 글의 TMI]
1. 너무 아파서 병원 갔는데 독감이 아니라니. 병가 쓰게 해 줘요(?)
2. 인간적으로 영하 10도 이하면 재택근무 하자 진짜.
3. 오늘 감자탕 먹을 거다 캬캬햐햐햐햐햐햐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OTT #영화리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이정재 #황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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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K-드라마 5스푼 + 반전 3스푼 + 스릴러 2스푼
악의 기원 /The Origin of Evil
세바스티앙 마르니에 Sébastien MARNIER
France, Canada/2022/123min/불면의 밤
생선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스테판.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던 그녀가 드디어 아버지 세르주를 만난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라고는 평생 그를 원망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푸념뿐이지만, 어쨌든 세르주는 이제 세상에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의 혈육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 세르주를 찾아간 스테판. 당연하게도 세르주의 현 가족은 스테판을 반기지 않는다. 부인 루이즈, 딸 조르주뿐 아니라 집에서 가사노동자 아녜스까지도 대놓고 스테판을 적대한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는 재산만 노리는 현 가족에게 강한 불만을 표하고 스테판은 그런 아버지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나 스테판이라고 마냥 순진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다. 그녀는 세르주와 그의 가족들에게 자신을 생선 통조림 공장의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라 소개한다. 단순히 주눅 들기 싫은 마음 때문은 아니다. 세르주와 조르주 부녀가 회사 경영권과 재산 분할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스테판은 이 거짓말로 아버지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자신에게도 ‘경영 능력’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말이다. 여기까지가 〈악의 기원〉의 전반부다. 어딘가 익숙하다. 돈 많은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의 유산 다툼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과 반목. 우리가 익히 봐온 K-드라마의 전개다.
그러나 영화의 이야기 얼개를 파악한 후, 적당히 즐겁게 영화를 감상하려던 찰나,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관객이 한 시간 동안 쌓아온 인물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를 완전히 뒤집는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고 주요 인물의 정체성이 뒤집힌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기존의 연대는 깨지고 새로운 이익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축에 여성들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스테판, 루이즈, 조르주, 아녜스 그리고 스테판의 동성 연인까지. 이들이 관계의 연결망을 복잡다단하게 해체하고 재연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과정이 거짓말, 폭력, 위선, 범죄, 연대, 욕망을 통해 어떻게 부풀려지고 쪼그라드는지를 스릴러 형식으로 다루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결국 영화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거짓으로 차지하려 하는 행위가 ‘악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영화의 주요 행위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뒤집어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스테판과 아녜스/루이즈와 조르주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 격차를 함께 고려했을 때, 영화의 메시지는 또 한 번 성급한 결론을 유보시킨다. 여성과 노동계급이 모두 우리 사회의 비주류라는 점에서 여기에 속한 자들의 ‘나쁜’ 욕망의 의미가 두터워지는 것이다. K-드라마, 반전‧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고루 갖춘 데다 메시지까지 흥미로워 전반부의 적당한 느슨함을 훌륭히 갈무리해낸다. ‘불면의 밤’ 섹션에 어울리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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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의 복수는 수백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침술사 ‘천경수(류준열)’는 어의 ‘이형익(최무성)’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후 궁에 들어간다. 빛이 있을 때는 눈이 안 보이고 빛이 없으면 살짝 눈이 보이는 주맹증을 앓던 경수는 자신만의 비밀을 영리하게 활용해 조금씩 궁중 생활에 적응해나간다. 그 무렵,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던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 만에 귀국하고, 경수는 소현세자의 치료를 맡아 그와 친분을 쌓는다. 어느 날 밤, 경수는 우연히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후 그 진실을 알릴지 말지 고민에 빠진다. 한편, 마치 청 황제의 대리인 같은 아들을 보며 불안감에 휩싸였던 ‘인조(유해진)’는 세자의 죽음 이후 광기에 빠지고, 경수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을 하나둘 보기 시작한다.
역사적 사건을 영상화한 한국의 많은 사극 영화에서는 한 가지 공통적인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 백성이지만 특출 난 재주를 가진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궁중 생활에 엮이게 되고, 왕과 같은 실존 인물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을 목격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며 실존 인물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재해석을 유도한다. 혹은 이제는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관해 판단 혹은 평가한다.
<광해>가 대표적이다. 광해군을 똑 닮은 광대가 잠시나마 왕을 대리한다는 내용의 이 사극은 조선 최대 굴욕인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담긴 작품이다. 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시도는 아니지만, 폭군으로 여겨진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관상>도 마찬가지다. 관상가의 눈을 통해 계유정난으로 인해 부당하게 폐위당하고 죽은 단종을 복권하고 권력욕에 가득 차 있던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안태진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올빼미>도 다르지 않다. 감독이 직접 “역사적 개연성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한 <올빼미>는 소현세자의 의문사 미스터리를 스크린 위로 옮겼다. 인조실록 23년 6월 27일의 기록을 보면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대목은 소현세자가 죽은 후 소현세자의 가족을 모두 숙청한 인조의 행적과 맞물려 의구심을 자아낸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개혁을 이루고자 한 소현세자와 인조는 청에 대한 입장 등 정치적 지향점이 전혀 달랐다. 그러니 그가 아들을 독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는 것도 자연스럽다.
물론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병사라는 주장과 독살이라는 주장 모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이 조선 후기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시각이 존재하기에 그의 의문사는 언제나 흥미를 유발한다. 기록상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는 동안 청에 끌려간 조선 백성을 구하기도 했고, 천주교 신부를 만나 역법을 배우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이 실제 역사와는 달리 근대 국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이 자연히 자극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올빼미>는 조선의 늦은 근대화에 대한 안타까움, 소현세자에 대한 동정심,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초래한 뒤 변화의 가능성마저 끊어버린 인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된 영화인 셈이다. 즉, 수백 년이 지나서야 후대의 상상력과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 일종의 복수극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올빼미>는 단지 안타까움과 책망으로만 가득한 영화가 아니기에 더 흥미롭다. 사실 특정 역사적 사건을 팩션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나갈 때는 필연적으로 감독이나 작가의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건을 재현하기 위해 활용된 허구의 소재에 주목하면 감독과 작가가 어떤 가치나 메시지를 역사에 투영하고자 했는지가 쉽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극을 비롯한 역사적 재현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테마 모리스 스즈키도 역사적 사건의 재현에는 "한순간도 빠짐없이 해석과 동일화 사이에 내재한 밀접한 긴장관계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주인공 경수가 완전한 장님이 아니라 하루의 절반은 볼 줄 아는 주맹증 환자인 점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주로 백내장 초기 증상인 주맹증은 각막과 함께 빛을 굴절시켜 사물을 보게 하는 안구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면서 나타나며, 주맹증 환자는 시야가 뿌옇게 보이면서 빛이 충분해도 주변을 잘 볼 수 없다. <올빼미>는 이러한 주맹증 증상을 단순한 신체적 질환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일례로 영화에서는 '본 것도 못 본 척하며 살고, 들은 것도 못 들은 척하며 살아라'와 같은 뉘앙스의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모르는 척하고 사는 게 이로울 거라는 말이다. 설령 경수가 어의인 이형익이 비밀리에 지령받아 누군가를 독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경수는 맹인이라는 거짓 이유를 내세워 자신이 본 모든 진실을 외면한다. 하루의 반절은 진실을 볼 줄 알았음에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소시민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스스로 눈을 감는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는 숨겨왔던 진실을 목놓아 외치지만, 경수는 끝내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소현세자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 자신과 남다른 친분을 쌓은 원손도 지키지 못한다. 반면에 작중 폐위될 위기였던 인조와 자칫하면 역적이 될 뻔했던 '최대감(조성하)'은 눈을 감아버린 경수의 선택 덕분에 진실을 은폐하고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 보니 작중 반복되는 대사들은 단순히 경수를 향한 말 그 이상의 의미처럼 들린다. 역사를 통해 현실적인,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장님이 될지, 아니면 서슬 퍼런 권력의 감시에도 굴하지 않고 밤중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 것인지 묻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주맹증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듯이, 시민들이 눈을 뜨고 권력자와 기득권을 견제하지 않으면 눈을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경고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희망의 끈도 놓지 않는다. 인조의 처형 명령에도 불구하고 경수가 살아남는 것, 죽기 직전의 인조와 재회하여 복수에 성공하는 장면을 통해 눈을 감지 않는 삶의 태도가 갖는 힘을 보여준다. 영화적 상상력 덕분에 가능한, 수백 년이 지난 복수가 특히 뜻깊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주맹증이라는 소재를 밀고 나가는 힘이 굉장히 좋아서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일단 밤에만 눈이 보이는 주맹증이라는 증상을 제목이기도 한 '올빼미'로 연결한 착상 자체가 갖는 흡입력이 인상적이다. 경수와 인조를 올빼미에 비유한 결과 자세한 설명 없이도 영화 전체의 구도나 이야기의 구조가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영화 자체의 몰입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단 밤에 시력이 더 좋아지기는 경수가 올빼미에 비유되는 건 자연스럽다. 올빼미는 야간 시력이 가장 좋고 야행성이라는 점 때문에 '밤샘'을 의미하는 비유적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영어 표현 중에도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night owl"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올빼미라는 점을 장르적으로 영리하게 활용해 긴장감을 높이고 색다른 재미를 준다.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상황을 경수가 예상치 못하게 목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유쾌한 분위기였던 초반부에서 본격적인 스릴러가 펼쳐지는 중후반부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활용되기에 더욱더 인상적이다. 또 올빼미인 경수가 진짜 맹인인지 아닌지를 의심하는 이형익과의 대화 장면도 손 떨릴 정도로 박진감 넘친다. 해가 뜨거나 실내의 촛불이 켜지거나 꺼지는 등 광원의 등장과 퇴장을 기점으로 극의 분위기를 갑작스레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며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아버지처럼 독살당할 위기였던 원손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가는 경수는 창덕궁 인정전의 문턱을 넘는 순간 갑자기 뜬 해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갈 길도 알지 못한다. 장애가 있는 경수와 원손이 부모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친밀해진 것을 생각하면, 원손을 구하지 못하는 비극의 슬픔과 절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올빼미는 인조를 뜻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올빼미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기피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어미를 잡아먹는 새로 알려졌다. 또 밤에 올빼미가 자주 울면 마을이나 집에 전염병이 돌거나 사람이 죽거나 전쟁이나 흉년이 든다는 미신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올빼미가 암살자나 살인자를 상징하기까지 했다. 이는 올빼미 효(梟)가 붙은 단어가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국지의 조조처럼 능력은 있어도 인성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을 효웅(梟雄)이라고 불렀던 게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들인 소현세자를 암살하고, 며느리인 강빈과 손자인 원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숙청하며, 밤마다 음모를 꾸미기에 바쁜 인조를 올빼미에 비유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이처럼 올빼미에 담긴 상이한 정체성 덕분에 경수와 인조가 독대하거나 대면하는 장면들은 상당히 강렬하다. 같은 올빼미이지만 둘이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 그 대비가 매우 명백하게 드러나는 까닭이다. 또 창덕궁 정전에서 두 주인공이 마주하는 클라이맥스가 아침인 이유이기도 하다. 경수는 야행성이라서 아침이 오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 인조는 충과 효를 숭상하는 성리학의 나라에서 효를 무시해 정당성을 잃어버린 군주다. 두 올빼미는 자신이 가장 약해지고 모든 치부가 드러나는 아침이 되자 마침내 서로의 모든 속내를 털어놓고 마주한다.
다만 <올빼미>의 완성도에는 몇몇 단점이 있다. 주맹증에 걸린 침술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치는 디테일은 좋지만, 전반적인 구성이 앞서 언급했던 <광해>나 <관상>과 유사하다는 문제가 있다. 좋게 말하면 영화가 익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또 소현세자와 원손 부자가 경수와 친밀해지는 과정이 다소 짧게 묘사되다 보니 경수가 사실상 역모에 가담하는 전개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영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스릴러 쪽으로 나아가다 보니 기대와 다른 전개 때문에 어색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올빼미>의 특출 난 장점 덕분에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건을 풀어내는 방식과 사용한 소재, 그리고 해당 사건을 통해 어떤 현실을 비출지 영리하게 선택한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단지 현재 극장가에 워낙 관객이 적은 관계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수백 년 만에 스크린 위로 펼쳐진 군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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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 브레이킹 아이스 (The Breaking Ice, 2025)부유하는 청춘을 어루만지는 온기
개봉일 : 2025.06.04.
관람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장르 : 청춘, 멜로, 로맨스
러닝타임 : 100분
감독 : 안소니 첸
출연 : 주동우, 류호연, 굴초소
물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출렁이고 흘러넘치며 특정 온도를 지나면 얼음이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청춘도 이와 비슷하다. 항상 출렁이며 작은 충격에도 큰 영향을 받고 어느 한계점을 지나면 특유의 생동감을 잃어버린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의 단어 ‘안정’. 그의 반하는 단어 ‘불안정’. 사전적 의미로 봤을 때 불안정함은 다소 연약하고 부정적인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는 불안정함을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불안정한 물질과 청춘의 가변성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펼쳐내기에 이른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주인공 나나는 여행 가이드다. 그는 다른 이들의 여정을 이끄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찾지 못한다.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 그 안에서마저도 신발을 벗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다.
나나의 오래된 친구인 샤오는 이렇다 할 목표도 아쉬움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있다. 이리저리 밀리다 연길에 정착하게 된 그는 나나와 함께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헤맨다.
여행객 하오펑은 금융계에 종사하는 청년이다. 친구들은 그의 직업과 경제적 능력을 부러워하며 ‘성공한 사람’이라는 왕관을 씌워주지만 하오펑은 자신의 인생이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몸을 끼워 넣어 보지만 곧바로 대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상처 입은 세 청년. 나나, 하오펑, 샤오의 이야기다. 세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물처럼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과 아픔을 겪으며 꿈을 포기하고 연길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현실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꽁꽁 얼어붙는다. 그렇게 한 번도 끓어오르지 못하고 불투명한 얼음이 되어버린 세 사람은 이제 스스로 얼음을 녹여낼 힘이 없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인연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나나, 하오펑, 샤오의 세상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공간적 배경은 연길이다. 연길은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로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공존하고 중국어와 한국어 간판이 한데 뒤섞여 있는 곳이다.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한국 같기도 중국 같기도 한 도시. 이곳에 정착한 이방인 나나와 샤오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서로를 붙든 채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나는 자신과 비슷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말하는 여행객 하오펑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손을 내민다.
세 사람은 그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 한자리에 뭉친다. 그리고 술과 저녁 함께 먹기, 오토바이 타기, 길거리에서 라면 먹기, 서점에서 도둑질하기 등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세 사람은 그렇게 옆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두꺼운 얼음을 녹여낸다. 그리고 마침내 얼음 아래 갇혀있던 찰랑이는 물을 만난다.
나나는 하오펑, 샤오와 함께 얼음 위에 발을 올려놓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덕분에 과거를 가까이 마주하며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용기를 얻는다. 샤오는 나나, 하오펑과 내기를 하며 구매하게 된 책 속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찾고 하오펑은 나나와 온기를 나누며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의미하는 손목시계를 풀어 내려놓는다. 혼자였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온기와 안정감은 세 사람을 성장시키고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여러 인부들이 호수의 얼음을 깨고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비를 들고 얼음을 자르는 인부 한 명과 그의 허리에 감긴 로프를 잡고 있는 또 다른 인부. 두 명의 인부는 한 팀이 되어 얼음을 자르고 기계로 옮긴다.
호수를 뒤덮은 얼음을 깨는 일을 안전히 해내려면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인생의 전반을 뒤덮은 얼음을 거둬내는 일도 그렇다. 하지만 고립과 각자도생이 기본 옵션이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는 청년들을 각각의 얼음 속에 가둬버린다. 청년들은 그 안에서 홀로 벌벌 떨거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스러지고 있다.
안소니 첸 감독은 이런 차가운 사회에 떨어진 청년들을 위해 <브레이킹 아이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은 낮은 온도에서 얼음이 되지만 얼음을 꺼내 수면 위에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놓기 시작하고 다시 물로 돌아간다. 이 원리를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라고 언급한 그는 단단한 얼음 상태를 벗어나 물처럼 유연하게 뒤섞이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과 관계의 소중함을 전한다.
<브레이킹 아이스> 속 자연 풍경들은 이러한 안소니 첸 감독의 마음을 투영하듯 굉장히 아름답고 무해하게 표현된다. 연길의 겨울바람은 꽤 차갑지만 세 사람이 마음껏 누빌 수 있는 눈밭과 얼음 연못을 만들어주고 백두산에서 마주친 거대한 곰은 조용히 나나의 발목 흉터를 킁킁대다 사라진다. 자연은 나나, 하오펑, 샤오를 해하지 않는다. 그 덕에 세 사람은 마음껏 자연을 누비며 울고 웃고 회복한다.
우리 사회도 이 영화 속 자연처럼 청년들에게 조금 더 무해하고 아름다웠으면 한다. 목적지가 없어도 마음껏 헤맬 수 있는 긴 도로를 주고, 안전히 구를 수 있는 폭신한 눈밭을 주고, 타인의 흉터에 눈길을 건네는. 그런 사회 말이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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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자를 제자로 둔 스승의 감정
가끔 인생에서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인연이 길든 짧든, 이 만남이 서로의 삶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론 이 관계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수도 있고, 그 경쟁의 자리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를 밀고 끌어주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느덧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둘 사이에 어떤 갈등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라이벌’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승부>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 이창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신동이라 불릴 만큼 번득이는 실력을 지닌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이 가득했고, 프로 기사들과 맞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바둑 1인자를 굳건히 지키던 조훈현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점차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와 승부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결에서 만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영화는 단순히 ‘바둑 경기’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서의 사활만큼이나 치열하게 움직이는 스승과 제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둘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 경쟁 구도가 되면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첫번째 감정] 제자 이창호의 미안함
어린 이창호는 무척 대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와 겨뤄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바둑계 최강자였던 조훈현에게 거듭 도전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발랄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집중력을 보여줘 관객에게 신동이라는 설정을 쉽게 납득시킨다.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이창호는 바둑의 이론과 전통을 배우면서도 특유의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스승은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을 선호하지만, 이창호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바둑판 위에서는 정답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의 대립은 ‘누가 옳다’라기보다 ‘누구의 방식이 더 강한가’로 귀결된다. 한 편으로 이창호는 이렇게 스승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옳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처음 맞붙은 공식 대결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승리를 거두고, 이후 대회에서도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순간부터 이창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승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이라는 존재에게 패배를 안긴다는 점이 이창호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승리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 그러나 동시에 승부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묘한 내면 충돌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번째 감정] 스승 조훈현의 실망
조훈현은 처음에 이창호를 데려왔을 때, 분명 특출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적수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은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영민한 제자였기에, 누군가가 성장하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창호만큼 빠르게 스승의 자리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정작 자신의 삶과 바둑 철학을 전수해 주었는데, 제자는 아예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거듭나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여러 차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둬야 한다'며 짜증을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스승의 성향은, 유연하고 변칙적인 제자의 기보와 부딪힌다. 그런데도 막상 성적이 좋으니, 단순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결국 조훈현은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쉽사리 '내가 틀렸다'고 내뱉지 못한다. 제자를 100% 수용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경쟁자로서는 매번 패배를 맛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제자가 강해지는 만큼 자신이 약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잇따른 패배 후에야 조훈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무너진다. 한때 최강이라 불렸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 느끼는 허망함,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을 제자에게 가르쳤나?' 하는 후회가 그를 짓누른다. 이 영화는 그 실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한때 최고의 선수였던 이의 내면에 깃드는 그림자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세번째 감정] 스승과 제자의 존중감
승부의 세계에선 언젠가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지만 치열한 승부 뒤에 누가 이겼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실력을 존중한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처음엔 불만과 실망을 표출하지만, 결국 이창호가 걸어온 독창적 길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이창호 역시 스승의 옛 기록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너무 빠르게 승리를 좇은 건 아닌지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 앉아 손가락 하나로 돌을 놓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서로가 아니면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지점이 어느 순간 찾아옴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의 성취감과 뭉클함은 대단히 크다.
끝내 조훈현과 이창호는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로서의 자각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도 진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실화를 훌륭하게 각색해낸 영화
<승부>는 실제 있었던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역사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가 경쟁자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려낸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주는 긴장과 성장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둘은 한 판의 바둑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는 지금까지도 좋은 경쟁자로 서로를 인정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덕분에 한국 바둑계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그런 실제 감정을 최대한 살려내, 경쟁의 긴장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출은 차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어진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치열함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바둑알이 놓이는 소리, 팽팽하게 얽힌 표정 등 작은 요소들도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련한 기사 조훈현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유아인은 이창호 특유의 무표정 속에 내재된 열정과 부담감을 표현해낸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유아인의 연기를 당분간 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제자 역할은 참 매력적이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이라는 소재 덕분에,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쟁 세계를 보여준다. 바둑이든 어떤 게임이든, 인생을 관통하는 ‘승부’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마치 한 수 한 수 내딛는 모든 순간에, 인물들의 감정이 묻어나고, 결국엔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끝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다. 바둑을 사랑하는 장년층 관객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며, “스승-제자” 관계가 빚어내는 미묘한 심리전과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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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방에서 전근 온 경감 스테판은 크리스, 그와다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증오와 불신이 난무하는 몽페르메유에서 스테판은 경찰들의 폭력에 충격을 받고
서커스단 아기 사자 도난사건을 해결하려다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발생하는데…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끝나지 않은 분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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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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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격태격 유쾌한 가족 드라마 [말임씨를 부탁해]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