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선이정2025-09-24 23:58:29

[30th BIFF 데일리] 영화와 현실이 같은 속도로 흐를 때

영화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 리뷰

DIRECTOR. 세피데 파르시(Sepideh Farsi)

CAST. 파티마 하수나(Fatem Hassona)

PROGRAM NOTE.

칸영화제 ACID 섹션에서 상영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유배자 신분인 이란 감독이 10월 7일 전쟁 이후 가자 지구에 머물고 있는 사진작가와 연결된다. 2024년 4월부터 1년에 걸쳐 진행된 화상 통화와 포토 에세이를 결합한 형식을 취했는데, 영화 속 몇 가지 미디어는 절박한 소통과 열악한 상황을 반영한다. 어려서부터 전쟁적 상황을 겪었던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매번 기적과 같은 만남을 지속한다. 기근에 가까운 삶을 배겨 내는 하수나의 희망은 평화와 일상의 회복이다. 파르시의 탄식과 하수나의 미소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하지만, 영화를 본 뒤엔 차마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란 명제를 내뱉을 수 없다. 영화제에 초대하는 통화 이후 벌어진 상황은 영혼의 생채기를 부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언젠가 만나자는 약속’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의 슬픔이 맴돈다. (이용철)

 

 

 

나는 이 영화 소식을 기사로 처음 접했다. 칸영화제 즈음에 나온 칸영화제 소식이었지만 기사는 국제 면에 실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올해 30주년을 맞아 더욱 화려하고 풍성한 부산의 라인업 사이, 보고 싶어 기다려지는 영화들 사이, 결말을 알기에 사실은 보고 싶지 않은 영화 하나가 끼어 있었다. 파티마 하수나라는 사람을 이런 영화로 알게 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딘가 멀리 평범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의 이름, 내가 평생 알 일이 없는 이름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파티마 하수나는 가자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 또한 필연적으로 현실 위에서, 현실을 비추며 자라난다. 그러나 현실과 영화가 같은 속도로 걸어가는 현상은 비극이다. 현실에서 겪은 일들이 영화적인 언어로 스며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도 곧장 세상에 외쳐야만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은, 그토록 절박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은, 절박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는 영화와 현실이 실시간으로 공명하는 기이한 경험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파티마가 파르시 감독에게 건넨 말은, 이 영화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You are going to suffer with me now." 이제 나와 함께 고통을 견뎌야 할 거예요.

 

 

이 영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60대에 접어드는 이란 출신의 세피데 파르시 감독과, 가자지구에 사는 20대 사진작가 파티마 하수나가 영상통화로 연결되어 서로 알아가고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단순한 구조에 화면도 단조로울 것 같지만, 그 제한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흥미로운 연결점들이 담겼다. 가자지구에 사는 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렇게 감독과, 나아가 우리와 연결된다. 

 

 

거울의 속성: 정반대 같지만 본질은 같다

파티마를 만나고 세피데 파르시 감독은 "거울을 보는 듯했다"고 말하는데, 여러 의미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파르시 감독 본인도 어린 나이에 나라의 뒤틀림을 경험한 사람이다. 13세에 이란 혁명을 겪었고, 불과 2년 후에 '비이슬람적인' 요소들을 제거한다고 벌어진 대학살 당시 지인을 집에 숨겨준 일을 계기로 '반체제 인사'가 되어 투옥되었던 사람이니까. 이후 프랑스에서 향했고, 수학을 공부하러 간 여정은 이내 영화 작업으로 그를 이끌었다. 이 영화들 또한 '반정부 활동'으로 분류되어 파르시 감독은 본인이 나고 자란 이란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반대로 파티마는 본인이 나고 자란 가자지구를 떠날 수 없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파르시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빛내는, 꿈 많은 이십대지만... 가자지구를 벗어나는 것은 고사하고, 가는 곳마다 스나이퍼들이 있어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집안에 있어도 안전하지는 않다. 폭격을 당한 주변인들의 일가족 사망 소식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해 온라인 메시지로 고인을 소개하고 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들어갈 수 없는 자와 나올 수 없는 자, 정반대 같지만 본질은 같다.

 

두 사람의 반응 또한 거울 같다. 파티마는 씩씩하고 밝다. 최선을 다해 "괜찮다", "정상이다"라고 말하며 견디기 힘든 상황을 강인하게 버티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은 "괜찮지 않다", "비정상이다"라고 말한다. 견디기 위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외부에서 괜찮지 않다고 적시하는 사람, 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상황에 둘 다 필요하다는 점에서 거울 같이 느껴진다. 비정상적 상황과 거기 맞서는 정상적 사람들이 거울을 맞댄 것처럼 양쪽에서 아른거린다.

 

두 사람의 영상통화 장면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이따금 드러나는 다른 장면들을 보면 이 영화가 세상의 현실 또한 거울처럼 비춘다고 느껴진다. 감독은 세계 곳곳을 다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거의 담기지 않았다. 감독의 세상에서 담아낸 건 대부분 가자지구를 보도하는 텔레비전과 유튜브 화면 클로즈업 샷 뿐이다. 파티마와의 영상통화만큼이나 화질이 좋아 보이지 않는 세상.

 

반대로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은 가자지구의 모습은, 열린 거리거리를 담아내 보인다. 파티마의 사진을 통해 선명한 화질로 전달되는 세상이다. 현실에서는 열려 있는 세계와 닫힌 가자지구지만, 그조차 영화에서는 거울로 비추어 반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를 통해 가자지구의 이야기는 좀더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려진다.

 

 

 

녹색 눈동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불안불안하게 끊기는 인터넷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영상통화는 중간중간 뚝뚝 끊기고, 연결이 되기까지 감독 못지않게 관객도 초조해진다. 화질은 좋지 않아서, 파티마 스스로 "녹색"이라고 하는 눈동자 색은 끝까지 갈색으로만 보인다. 실제로는 더욱 오묘할 파티마의 눈 색깔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불완전한 연결로 인해, 가자지구의 얼굴은 세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보지 못한 게 과연 파티마의 녹색 눈동자 뿐일까?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미워하다가 홀로코스트로 정점을 찍은 서구사회의 마음, 돈과 정치와 관계로 유착된 사람들의 마음, 팔레스타인을 "성경 속 이방 민족"이니 말살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의 마음... 이들은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와 눈 마주칠 수 있는, 서로의 눈동자 색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인데, 팔레스타인을 "인간 짐승human animal"으로 표현하는 발언이 이스라엘에서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오래 전 비슷한 발언을 한 사람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심히 유감스럽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이기에.)

 

하지만 불완전한 연결 속에서도 우리는 들었다. 그의 삶과 꿈을, 그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를,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보았다. 파티마를 통해 우리는 가자지구 사람들이 스스로 현실을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욕심을 내거나 침략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싶을 뿐임을.

 

 

 

예술가의 움직임

이 영화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체적으로 기록하고 축작하는 두 예술가의 대화이기도 하다. 이란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온 (그래서 이란 정부에게 반정부 활동으로 인정(?)받은) 파르시 감독과, 머릿속에 사진을 찍으라는 목소리가 있다는 파티마 둘 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단순하게 보고만 있지 않고 기록했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비참하고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힘이 있고 아름답다.

 

그러나 세상의 광풍은 예술가들의 움직임을 가만 두지 않는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노 아더 랜드> 감독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려 자택에서) 집단폭행을 당했고, 자국 영화제에서 팔레스타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상하자 이스라엘 측은 단박에 영화제 예산 지원 삭감을 카드로 꺼냈다.

 

 

 

그와중에 은퇴를 선언했던 배우 아델 에넬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더 견딜 수 없다”며 그레타 툰베리가 타고 있는 구호선에 올랐다. 이스라엘은 배가 영해에 들어서는 순간 나포와 구금을 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간밤에 14번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9월 24일 한국 시간으로 9시쯤 아델 에넬의 SNS 계정에 우리를 지켜봐 달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습된 함대를 위해 호위함을 파견했다. 영화는 끝났지만 현실은 여전히 흐르고 있어, 영화의 여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다.

 

지난 8월 가자지구에는 이미 기근(Famine)이 선포되었다. 영화 속에서 초콜릿 한 조각만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는 파티마의 표정 이후에도 사태는 시시각각 악화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 속 문장들과 겹쳐 보인다.) 배고픔이 한 사람의 배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이자 구조적인 병폐의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소리다.

 

이 선포는 IPC, 즉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각종 구호단체들이 공조해서 세계 식량 위기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기구의 보고서에서 이루어졌다. 식량 위기 심각성이 재앙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발표하면서 이들은 "이 상태가 가자에서 지속될 것이며 더 확산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기아 상태는 "전적으로 인위적"이며 "중단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논쟁할 시간도, 망설일 시간도 지났"고, "즉각적인 대규모 인도주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그러나 "인도주의적 접근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사실도 보고서는 언급하고 있다.

 

식량 위기에 있어 가장 공신력 있는 보고서와 예술가들이 똑같은 소리를 내야 하는 환경을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할까. "영혼을 손에 붙이고 걷"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먼 곳에서 평화를 빌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델 에넬처럼 나 또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서, 이 영화를 앞세워 본다. 목소리를 듣고, 기록을 열람하고, 기억하고 해석하는 자리에 서는 것 또한 유의미함을 믿기에.

 

 

파티마 하수나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2025.09.18-26) 상영시간표]

2025.09.21 20:00 CGV센텀시티 1관

2025.09.24 20:00 영화의전당 소극장

2025.09.25 16:0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94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