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2-02-20 18:39:31
마음에 담아놨던 말 쓰기에 광고판 3장은 너무 좁아
<쓰리 빌보드>, 스포일러 없이 추천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김추자의 노래 가사 중 하나다. 옛 과거부터 그리움과 회한이라는 소재는 문학에서 흔히 쓰여왔다. 내 경험상 역시 사람에게 가혹한 아픔 중 하나는 역시 이별에 의한 것이었다. 이걸 보면 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소재가 많이 쓰였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이 뿐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가슴속에 이별한 이들을 그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이별한 것도 역시 가슴 아플 수 있겠지만 그중 마음 아픈 것은 많이 사랑했거나, 받았던 사람이 떠나는 것일 테지. 하지 못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는 것은 사람을 참 아프게도 만든다. 당연히 그만큼 사랑해줄 사람도 없고 줄 만한 누군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그 떠나갔다는 공허함을 채우려고 사람에게 동기부여가 생기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고, 내 주위의 친구들도 그랬다. 이게 없으면 나에게 지장이 생긴다는 걸 깨닫는 거지. 사실 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간단하다. 있을 때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중요한 줄 모른다. 나를 사랑하고 존경해도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쩐지 마음이 안 가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럼 누군가는 또 그 간극에 상처받겠지. 또 사람들은 이런 사랑의 이동에 민감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결과로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점점 쌓이기 시작한다. 왜 그가 떠났는가.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마음속의 잔여물은 사람을 참 괴롭게도 만든다.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내 모든 걸 다 갖다 바쳐도 결국 없다는 건 나를 더 강하게 압박하니 삶은 참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다. 내가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참 어렵다. 그게 이성(내지는 동성) 간의 연애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있을 때 잘하면 되는데 그때를 허무하게 놓치는 것이다. 또 같은 걸 반복하기 싫어서 많이 주면 외로워진다. 이런 삶의 괴로움이 그게 단적인 에피소드로 쨘하고 그나마 홀가분할 텐데, 사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다. 내가 친구가 진짜 없는 걸까. 아니면 있는데도 내가 다들 갖고 있는 고독함에 빠지는 것인가. 이 난제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대화하고 싶어 진다. 이 세상과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영화가 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2월 신작으로 어마 무시한 작품을 가져왔다.

1. 어떤 것에 대한 작품인가요?
딸이 죽었다. 원인은 강도살해다.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말에 다퉜는데, 그때 홧김에 '오다가 강도라도 당해버려라'라고 했던 것이 정말 현실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잃었다. 아직도 주인공에겐 가족과 직장, 그리고 집과 아들이 있지만 사실 모든 걸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게시한다. 범인을 왜 잡지 못했냐고 경찰서장 윌러비에게 항의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당 소관 경찰서는 뒤집힌다. 경찰서장 윌러비는 불같이 화를 낸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밀드레드에게 항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자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이어지는 밀드레드는 확실히 과격하고 거친 사람이다. 그녀가 품은 분노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과연 그녀의 방식이 옳았는지는 따지고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동네방네 망신을 준 대상은 앞에서도 썼듯 윌러비다. 윌러비에게는 마음속에 품은 비밀이 있다. 윌러비는 이 비밀 때문에 매일을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근데 그에겐 가족까지 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에게 좋은 가장인 윌러비. 말 못할 사정이 있지만 누구보다 좋은 사람인 그에게, 밀드레드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책임을 묻는다. 선하게 삶을 살아온 그가 경찰으로서의 본업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좋은 사람이고 경찰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의 무엇 때문에 그냥 소시민이었던 한 여자에게 창피를 당한다라는 것이다. 좋은 아이러니 아닌가. 영화는 제목 <쓰리 빌보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광고판으로 생긴 아이러니를 소재로 다뤘다. 선함이 분노로 이아지고.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만들고. 어떻게든 해결된다 믿었는데 또 다른 무언가를 야기하고. 영화는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이 역설이 이뤄지는 과정을 다룬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역설만 보여주고 끝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주는 따뜻한 순간이 있는데, 이 순간에 대해 염두하고 보시라. 그럼 감상이 깊을 듯.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랑과 용서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밀드레드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밀드레드는 후회와 미련을 다른 방식으로 푼다. 안타까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서러움을 타인에게 해결하는 것이다. 영화 내내 그녀가 따뜻해지는 순간이란 몇 없다. 물론 영화 내에서 제시되는 한 사건으로 인해 흑화 한 것도 맞다. 단순히 이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입장에 서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나는 주인공 밀드레드가 원래 온정을 베푸는데 능하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인물이 그런 끔찍한 사고까지 겪었으니 더더욱 어두워지는 것이다. 영화는 플롯을 끌고 가며 이 사람이 어디까지 흑화 했는지를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 없는 따뜻한 순간이 더더욱 도드라진다. 영화는 이 순간(온정)을 주요 사건으로 설정하며 '분노가 결국 인간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도와준다. 난 좋은 영화와 책의 조건 중 하나가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기능을 충실히 한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비범함이 눈에 뜨이는 것처럼 용서와 사랑이 한 인물의 행동을 통해 두드러지는 것이다. 뭐 사실 주인공 밀드레드에게만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경찰 딕슨에게도, 레디 월비에게도 사랑이 인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각본이다. 이야기 구성이 정말 촘촘하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인물 설정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딸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엄마다. 당연히 세상에게 분노를 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딸의 가해자를 찾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서장의 이름을 걸고 광고판을 내세웠다. 여기부터가 굉장히 특별한 방식의 전개라고 생각한다. 경찰이 부패하거나 무능력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영화는 자주 봤었던 것 아닌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경찰은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가 극 내부에 계속해서 깔리고 있으며 윌러비는 더도 없는 좋은 사람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윌러비는 모든 것을 걸고 노력했지만 광고판에게 비난을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또 윌러비에겐 그가 겪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런 인물 간의 설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제까지 봤던 범죄/스릴러물과는 다른 방식의 비틀기로 '과연 이 행동에 끝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건네준다. 사실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이 질문의 답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 다르다. 무작정 '분노를 용서해야 큰 사람이 된다' 식의 말이 아니다. 보다 객관적인 견지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또한 코미디로서도 탁월하다. 극의 소재는 굉장히 무겁다. 그런데 그렇게 극이 무작정 무겁게만 전개되지는 않는다. 소소한 유머와 블랙코미디도 있으니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철학적 물음이 관객에게 좋게 작용한다. 다음은 여주인공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샘 록웰의 퍼포먼스인데 5번으로 넘어가면 될 듯.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아니오! 무난하게 볼 수 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2021년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홈리스의 세계에서 재회를 고대하는 주인공 역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2018년에 이 <쓰리 빌보드>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난 이 두 번의 수상 중 후자 쪽이 더 난이도가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시얼샤 로넌이나 마고 로비, 메릴 스트립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의 대진도 나름이었지만 연기할 때 붙는 조건이 많다는 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밀드레드는 겉으로는 센 척 하지만 내면은 약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딸과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서툴렀다는 것도 역시 특이점이다. 이 인물의 성격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딜레마를 전해줘야 한다. 분노가 납득이야 되지만 이런 방식이 이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퍼포먼스는 아주 훌륭했다. 거친 어머니에 맞는 코디와 비주얼, 또 섬세하고 여린 내면에 맞는 애처로운 눈빛까지 대배우의 카리스마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다음은 샘 록웰이 맡은 딕슨 역이다. 샘 록웰 역시 이 역할로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딕슨은 뭔가 나사가 빠져있다. 경찰 근무하다가도 갑자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화나면 사람을 주먹부터 나가는 둥 좋은 경찰이라 보긴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변곡점을 지나 갑자기 성장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이 묘사가 좋다. 완전 싹 바뀌지 않는다. 사람 성격이 다음날 바로 바뀌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당연히 서서히 바뀐다. 이 바뀌고 나서 '인물의 내면이 성장함+기존의 성격이 이어짐'을 표현하는 디테일이 좋았다. 이 외에도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우디 해럴슨의 세상 좋은 아재 연기나 사미라 위빙의 눈치 없는 연기도 좋았다.
6.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무난하게 볼 수 있다. 아, 현재(2022년 2월) 디즈니 플러스와 네이버, 티빙,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간단하다. 잘 만든 영화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지루하지도 않고 코미디도 있으며 철학적인 물음까지 있으니 완전 일거양득이다. 다음은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분들이다. 여러분에게 무작정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하지 않겠다. 나 역시 큰 구멍이 있으니 그게 얼마나 해선 안 되는 말인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걔보다 승자가 되어야만 한다. 분노에 의한 동기부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지지한다. 그런데 그런 쪽으로 무작정 결론이 나는 게 우리에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우리는 행복한 쪽으로 귀결을 내야 할 것 같다. 그게 그렇지 못할때의 우리 모습을 여러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다음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손예진이나 현빈 배우같이 잘생기고 예쁜 얼굴 구경하는 게 작품의 재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맥도먼드의 연기를 보는 것도 꽤 큰 감상 포인트(?)다. 또 디즈니플러스 유저들 중 MCU 작품들이나 토이 스토리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고 난 다음 '뭐 보지?'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웨이브나 네이버, 티빙에서 5천 원 주고 볼 바에 이럴 때 보는 게 좋지 않겠어? 당당히 디즈니플러스 추천작으로 강조하고 싶은 영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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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이면서 자살이자 동시에 사고인 것은?
빌어먹을 인연
독일인 작가 부부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이다. 어느 독일의 외딴곳에 사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아들 다니엘(밀로 다차도 그리너), 강아지 스눕과 함께 살고 있다. 귀여운 다니엘과 대학교수인 사뮈엘, 또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산드라를 보면 이 가족은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자주 다투는 산드라와 사뮈엘. 이 감정싸움은 산드라가 대학생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역시 이어졌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산드라와 조에의 대화를 방해하는 남편 사뮈엘. 산드라는 이제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없다. 대학생에게 ‘다음에 만나자’라고 약속하고 그녀를 보낸다. 각자의 시간을 갖는 두 사람. 아들 다니엘은 이런 부모의 관계가 익숙하기라도 한 듯 스눕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눈 밭을 몇 분 돌아다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강아지 스눕이 이상한 행동을 보여준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달려가는 스눕. 다니엘 역시 스눕에게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듯 강아지를 쫓아간다. 강아지가 이끈 곳에는 아버지 사뮈엘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로 발견된 사뮈엘. 그리고 유력한 피의자가 된 산드라. 산드라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 뱅상(스완 아를로드). 이 세 사람과 강아지 스눕은 길고 긴 법정싸움을 맞이한다. 과연 이 추락의 전말에는 어떤 이면이 깔려 있을까?
우리가 아는 법정영화는 아니야
이 영화를 두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기생충>과의 공통점이다. 글쓴이가 <기생충>을 예시로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특징은 <추락의 해부>가 전형적인 범죄/스릴러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생충>이 전형적인 장르물을 표방했다면 문광 부부의 존재가 그렇게 입체적이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은 문광 부부를 통해 계층 구분을 박살 내며 이 사회에 도사린 문제를 탐구한다. 이 점에서 <기생충>은 목표를 충실하게 이룬 성실한 영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본작 <추락의 해부>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한 남자의 살인사건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과 변호사를 보여주면서 포문을 연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피의자로 재판대에 선다. 여기까지 보면 그냥 일반적인 범죄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강화시킨 토대를 바탕으로 어떤 것을 탐구한다. 이 떡밥은 첫 장면부터 읽을 수 있다. 주인공 산드라가 대학생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 대화는 원활하지 못한데,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이를 중심으로 플롯을 받아들이면 영화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이 것’이 <추락의 해부>에서 유달리 방해받는 느낌이 강한데 이는 감독 쥐스틴 트리에가 형식을 플롯에 녹였다고 볼 수 있다.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 자연스럽게 인간 그 이면에 깔려있는 무언가를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전형적인 장르물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를 다방면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떤 관점에서 읽어도 합리적이다. 살인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고, 사고일 수도 있다. 이 <추락의 해부>의 각본은 이 세 죽음의 구분선을 흐려놓는 연출법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법정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이 이 사뮈엘의 죽음을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빠르게 전개하고 싶었으면 전형적인 법정물처럼 더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재판 장면은 실제 법정을 보는 것처럼 느릿느릿하다. 왜? 재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물의 감정선을 폭넓게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듦과 동시에 산드라와 사뮈엘의 관계를 비춘다. 이 유별난 관계는 사실상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불완전한 관계를 통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여러 소재가 빛을 발한다.
<결혼의 풍경>과 <살인의 해부>
사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은 노아 바움벡의 <결혼 이야기>다. 이 <결혼 이야기>의 감독이 1973년 잉베르 베리만이 만든 <결혼의 풍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이 <추락의 해부>는 <결혼의 풍경>과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결혼의 풍경>과 <결혼 이야기>는 협력과는 저 멀리 떨어진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 <추락의 해부> 역시 함께 같이 살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 부부가 등장한다. 이 부부를 둘로 가르는 소재가 흥미롭다. 이 두 사람이 갈리는 계기도 앞에서 쓴 <결혼의 풍경> 같은 영화를 인용한 흔적이 난다. 하지만 원작의 여부와는 별개로 이를 표현하는 방식도 고전적인 향을 풍기고 있다. 인물의 내면을 깊숙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글쓴이는 두 주인공의 직업과 관련된 부분에서 ‘고전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가 편집이나 음향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나지만 인물을 그리는 방식에서 섬세하다고 느낀 것이 이 지점이다.
또 이 영화에 느껴지는 고전적인 향기는 <살인의 해부>라는 영화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살인의 해부>는 1959년에 발표된 영화다. <12명의 성난 사람들>과 유사하게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법정극을 통해 <살인의 해부>는 말 그대로 살인(자)과 관련된 일들을 나노단위로 분해하면서 인간의 한계와 사법제도의 단점을 폭로한다. <추락의 해부>는 <살인의 해부>가 사법제도를 비판한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해 역설한다. 논리가 뭘까? 주장은 또 뭘까? 논증은 뭘까? 이 많은 것들을 통해 어떤 것이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한계가 있지 않을까? 안다는 건 뭘까? <추락의 해부>는 이 부분에 대해 인간의 인지단계를 해부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각본 능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영화를 담기 위해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역시 감독 쥐스틴 트리에가 선택한 좋은 수였다. 만약 살인사건이 아니라면 이 영화가 다루다 못해 병치시킨 두 가지 소재가 구현되지 않았을 것 같다.
쫓아가는 카메라
이 영화에서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촬영이다. 이 영화에서 앞/뒤/좌/우로 마치 틀이 있는 것처럼 오고 가는 카메라는 마치 관객을 법정으로 초대한 것처럼 움직인다. 이는 이 영화의 법정에서 산드라가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 적절한 촬영방식이었다. 이 부분은 법정 밖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카메라가 관객과 다니엘을 일치시킨다고 느꼈다. 다니엘은 극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모르는 것을 새롭게 아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걸 안다'는 건 본디 불안정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듯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획 돌려서 시체가 발견된다거나 어머니 산드라의 얼굴이 어두컴컴 해진다던가 하는 장면이 몇 보인다. 이런 것들은 영화의 핵심인 인식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보다 용이하게 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른 맥락으로 읽을 수 있어
글쓴이는 이 영화에 있어 '스눕'이라는 개가 의미심장했다. 이 스눕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적는다면 굉장히 큰 스포일러가 되니 다 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써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인간의 인식론을 떠나 여성영화로서의 측면도 있다고 글쓴이가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단 스눕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건 구도만 봐도 이 영화가 가진 여성서사로서의 측면을 읽을 수 있다. 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을 주의 깊게 본다면 이 작품이 가진 풍부한 함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추락의 해부>가 그냥 1차원적인 여성영화인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로 읽을 수 있는 측면을 인물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깔아놓고 있다. 주인공 산드라의 행적을 주의 깊게 본다면 이 영화가 가진 입체적인 특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여성영화로서의 맥락은 이 작품의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의문점이 많을 것 같다. 이렇게 쭉 달려와서 도착한 결론이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괴물>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는 엔딩을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이 <추락의 해부>가 끌고 가는 핵심 사건을 비유한다는 점에서 원형처럼 돌고 돈다. 산드라를 둘러싼 환경을 구도로 비유한 것이다. 이것을 한 여성 캐릭터가 당당히 주체적으로 서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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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이 온기와 구원이 되기까지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하루종일 석탄과 장작을 나르며 일하고 집에 돌아온 빌 펄롱(킬리언 머피)의 손은 까만 얼룩이 져있다. 빌은 모자와 외투를 벗어두고,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에 묻은 검댕을 꼼꼼히 닦아낸 후에야 아내와 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간다. 펄롱은 비누와 솔만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낸 후 세면대에 받아 놓은 물이 까맣게 변하고 자신의 손은 깨끗해질 때까지 비누 거품을 내고 솔로 문지른다. 펄롱이 손을 씻는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다섯 딸에게 한 점의 더러움도 묻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좁은 현관 통로는 따뜻하고 깨끗한 거실로 들어가기 전 더러움을 닦아내는 중간 지대의 역할을 한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이어지는 좁은 문은 닫혀 있지 않지만 집의 공간을 분리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문틀 너머에 펄롱을 위치시키며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어린 시절, 새벽에 수녀원의 석탄 창고를 들어갔을 때, 수녀원에서 겁먹은 소녀들을 볼 때 문틀 안의 펄롱이 느끼는 감정은 고독함과 고뇌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클레어 키건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라는 문장으로 펄롱의 고뇌를 표현한다.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이어진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조금이라도 타락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삶의 자유를 빼앗았다. 미혼모, 성매매 여성, 고아,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까지 대상은 불명확하며 넓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의 여성들이 가는 감옥이었다. 아일린은 우리의 딸과 그 아이들은 다르다며 차갑게 선을 긋는다. 마을 사람들이 짐짓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수녀원의 영향력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펄롱의 딸이 다니는 세인트마거릿 학교는 수녀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수녀원은 펄롱의 야적장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돈을 주고 있다. 감금된 여성들의 노역으로 쌓아 올려진 풍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이 있는 법이다.
선의는 언제나 옳다고 배워왔지만, 현실에서 선의를 베푸는 것은 복잡한 용기다. 누구나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미는 일은 무언가를 무릅쓴 사람의 행동이다. 까맣고 차가운 석탄은 스스로를 태워 밝고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울 용기와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 펄롱에게 그 부싯돌 역할이 된 인물은 수녀원에 의해 석탄 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 세라다. 어깨에 무거운 석탄을 둘러업고 석탄 창고 안으로 들어간 펄롱은 어둠 속에서 세라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미혼모였던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출산을 5개월 앞둔 채 수녀원에 의해 석탄창고에 갇혀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수녀원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되고 만다.
펄롱은 자주 어릴 적 기억에 휩싸인다. 주로 창과 거울을 통해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펄롱의 과거와 현재를 묶어준다. 아버지가 없었던 어린 자신과 자식을 키우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괜찮은 걸까?” 펄롱은 아일린에게 묻는다. 아일린은 경제 사정을 묻는 것인지, 부부의 안위를 묻는 질문인지, 자녀들의 미래를 묻는 질문인지 의아해하며 적금을 넣고 있으니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에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가족,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안위를 포함하고 있다. 펄롱은 어린 세라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 모두가 자신의 딸이자 어머니다.
펄롱은 세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어린 자신 역시 구원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달리 어린 세라의 아이를 엄마와 헤어지게 두지 않는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그랬던 것처럼 세라와 그의 아이를 보호하며 한 가족을 지키게 된다. 펄롱은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좁은 현관 통로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은 펄롱은 아직 얼룩이 가득한 세라의 손을 잡고 거실로 함께 들어간다. 언제나 고독함과 고뇌와 고단함의 프레임이었던 문틀 너머로 희망과 확신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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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한국 작품 포스터 모음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영화 포스터, 예고편, 클립등을 제작하는
영국 회사로 감각적이고도 강렬한 포스터를 제작합니다.
해외 작품으로는 <007 노 타임 투 다이> <서부전선 이상없다> <스펜서> <가여운것들>등의
대표작들이 있는데요. 등장인물을 살린 한국 영화 포스터와 달리 엠파이어 디자인 스튜디오는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려 표현해 내는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2024 천만영화 <파묘>의 캐릭터의 표정을 가득 담은 포스터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엠파이어에서 제작한 한국 영화, 시리즈 포스터들 같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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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 月老, 2021
2012년에 개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018년 <몬몬몬 몬스터>까지 작품들의 텀은 길어도, 완성도를 생각하면 납득하게 만드는 "구파도"감독이 신작을 가지고 왔습니다.
앞서 6년이었던 텀을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사이에 "각본"에 참여한 작품들도 있어 마냥 작업을 안한 건 아닙니다.
그저, 연출까지 도맡는 그의 온전한 작품을 기다려온 팬으로서 이번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 거는 기대감은 컸습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에 앞서 '대만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하는 등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요.
그렇게, 보게 된 이번 작품은 어떠했는지? -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잠시, 비를 피하려던 남자는 벼락을 맞고 그만 죽고 맙니다.
이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알고서, 저승사자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면 "인간"으로 환생을 약속하는데요.
그렇게,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한 남자는 사람들의 인연을 맺어주는 "월하노인"의 일을 하던 가운데 한 여자를 보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잊고 있던 생전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만년이 지나도 재밌을 영화가...?
1. 성공적인 큰 그림 스케치
앞서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 기대치는 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품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구파도"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진동"과 함께 했으니 그만한 "로맨스"도 나올 거라는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줄거리에서도 보듯이 저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의 기대치에 부합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초반 전개는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정신없는 건 여전하네?
줄거리에서 "지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듯이 '사후세계"라는 판타지를 적용한 작품이라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설명이 중요한 작품입니다. - 추후 이야기의 개연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문제는 설명만 한다면,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에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신나는 음악, 그리고 교차편집까지 속도감 있게 보여줘 이를 타개하는데요.
정신이 없다면, 한없이 어지럽지만 늘어지거나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소기의 목적은 해냈다고 생각합니다.2. 이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고
이렇게, 세계관을 소개하는데 마친 해당 작품은 저를 비롯한 관객들이 기대했고 간절히 원했던 "로맨스"를 꺼내듭니다.
그렇게, 캐릭터들은 울지만 정작 관객들은 덤덤한데요.
이런 이유에는 앞서, 번잡하게 뻗혀진 이야기와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전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만 보더라도, 이들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쌓아가는 이야기의 설명 순서도 있었거든요.보여줄게 많구나?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사후세계"를 살펴보면, 남자 "샤오륜"과 그의 파트너 "핑키"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맡는 "월하노인"외에도 "염라"와 그를 보좌하는 부하, 그리고 "악귀"와 같은 여러 군상들을 보여줘 이야기의 스케일을 가늠케 합니다.
그렇기에 해당 작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샤오륜"과 연인 "샤오미"의 이야기는 설명은커녕 꺼내보기도 힘든데요.
결국, 기억이 떠오르고 나서야 뒤늦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마저도 이들에게 몰입하기는 어려웠습니다.3. 벌려두기만 하면 뭐 하나?
영화는 "샤오륜"과 "샤오미"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말하지만, 이게 몰입하기가 어렵습니다.
똑같은 시점과 시간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몰라도,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이 방식은 뭔가 그때마다 넣어주는 "땜질"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애절함"보다는 "없는 게 없네"와 같은 만물상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자유 갈래로 뻗어나간 이야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느낌도 강합니다.앞서 설정은 뭣 때문에 말씀하셨나요?
이야기에서 "샤오륜"과 그의 파트너 "핑키"가 착용한 팔찌는 인연을 맺어주는 실을 만드는 능력이 주로 나오지만, 이는 환생을 결정짓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남아있는 하얀 구슬로 "환생 대상"을 정하기도 하지만, 전부 까매진다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져 환생의 기회조차 박탈됩니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후반부를 쫀득쫀득하게 만들 장치로 예상되나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악귀"의 행패를 "윤회"를 통해서 진정시키는 이야기로 바꿔 후반부를 보여줍니다.4. 신령님, 진정하세요.
전생애에 걸쳐 쌓인 업보, 그리고 은혜 등으로 이야기를 선보이는데 이마저도 앞서 언급한 "샤오륜"과 "샤오미"처럼 "플래시백"으로 말합니다.
지적되는 문제가 새로운 이야기에도 동어반복적으로 되감아지니 128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임에도 그 부족함을 지울 수가 없으며, 피곤하기까지 하네요.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는 그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저희가 보고 싶었던 건 절절한 로맨스뿐인 나무꾼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쿠키 영상 1개가 있습니다.
본 원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첨받아 참석해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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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건 럭키 - 스티븐 소더버그
로건 럭키 - 스티븐 소더버그
제목이 조금 특이하다 싶었고, 애덤 드라이버 얼굴이 보여서 재미있을 것 같아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왠걸.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보니 감독이 스티븐 소더버그였네. 어쩐지, 연출 솜씨가 대단히 훌륭했는데, 혹시 코언 형제의 손길이 닿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 이렇게 말하면 소더버그 감독이 기분 나쁘겠구나.
스티븐 소더버그라면, '오션스'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부터 봤고, 최근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사이드 이펙트'였다. '사이드 이펙트'는 몇 번을 봤는데, 볼 때마다 흥미진진한 영화다.
그런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영화였으니, 모르고 봤지만 '로스트 인 더스트'와 '친절한 금자씨'의 착한 버전을 결합한 듯한 기분 좋은 영화다. 등장하는 배우만 해도 알고보면 어마어마한데, 의외로 단역으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007' 주인공 다니엘 크레이그와 영화 끝부분에 엄청 멋지게 나오는 힐러리 스웽크가 그렇다. 배우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시나리오가 뛰어나다. 시나리오는 레베카 블런트인데, 이 이름은 가명이고 '줄스 애스너'가 본명이다. 특이하게도 시나리오는 이 영화 한 편 뿐이고, 영화감독이자 배우가 본업이다. 주로 TV시리즈 쪽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사는 주인공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은 성실하게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그가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의자에 앉아 기계를 조작하는 일이라 다리를 저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의 상관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해고 사유가 된다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보험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미는 아내와 이혼하고 따로 살고 있지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엄마와 함께 사는 딸 세이디를 만나는 시간이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지미의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지만, 양육권과 공동소유의 주택 문제가 남아 있고, 딸이 중간에 있어 딸을 데리러 갈 때마다 얼굴을 본다.
지미는 학생 때 잘 나가던 미식축구 선수였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졸업하고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해고당한 것이다. 지미는 동네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동생 클라이드를 찾아간다. 클라이드는 왼쪽 팔꿈치 아래가 없다. 중동에 파병나갔을 때 부상당했고, 지금은 한쪽 팔로 바텐더 노릇을 하고 있다.
클라이드의 부상에 관해서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는데, 원래 클라이드는 뛰어난 투수였다. 그의 실력이면 내셔널리그에서도 가장 유망한 선수가 분명했는데, 형인 지미가 풋볼을 포기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클라이드가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자원해서 군인이 되어 중동에 나갔다가 부상당한 것이다.
로건 집안은 징크스가 있는데, 뭔가 하는 일마다 잘 안되고, 악운이 겹친다는 것이다. 1983년 매기 이모가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복권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바람에 그 엄청난 행운을 날려버린 것이다. 할아버지 다이아몬드 사건, 삼촌 감전 사고,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보험금을 받았는데, 그 직후 엄마는 병이 나서 앓아 누웠다. 지미는 다리를 다쳤고, 클라이드는 팔목을 날려버렸다. 유일하게 아무 일도 없이 건강한 사람은 막내 멜리 뿐이다.
클라이드가 일하는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던 지미는 동생을 놀리는 사내들과 한바탕 싸움을 하고, 클라이드에게 '콜리플라워'라고 외치고 떠난다. 다음날 클라이드는 형이 만들어주는 아침을 먹으면서 '콜리플라워'에 대해 말한다.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던 지미는 클라이드와 함께 레이싱 경기장의 금고를 털자고 말한다.
이 경기장은 매립지 위에 지은 거라서 씽크홀이 발생하는데, 지미는 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할 때, 지하 통로를 통해 현금이 오가는 파이프를 보았고, 그때부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지미와 클라이드는 감옥에 있는 조 뱅을 만나러 간다.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은 폭파전문가로, 지미 형제와 안면이 있다. 지미는 조 뱅을 설득해 함께 일하기로 한다. 조 뱅은 함께 일하되, 자기의 두 동생도 팀원으로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클라이드는 편의점을 자동차로 밀고 들어가 체포되고, 징역 90일의 비교적 가벼운 판결을 받고 '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여기에는 앞서 면회한 '조 뱅'이 있었다.
지미는 딸 세이디를 데리고 막내 멜린이 일하는 미용실에 왔다가 바깥에서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나는데,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실비아는 같은 학교 후배라고 밝힌다. 하지만 지미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해고 당한 회사에 짐을 가지러 간 지미는 공사가 일찍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옥에 있는 동생 클라이드에게 계획을 일주일 앞당기자고 말한다.
레이싱 경기장의 대형 금고에서 일하는 글리마는 택배로 생일케이크를 받는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글리마는 고맙게 생각하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글리마에게 케이크를 보낸 사람은 미용실에서 일하는 멜리인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들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는다. 어떤 경로든 멜리는 글리마가 레이싱 경기장의 대형 금고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 뱅의 두 동생은 늦은 밤, 씽크홀 공사장으로 들어가 노출되어 있는 현금수송 파이프를 통해 바퀴벌레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이 계획은 낮에 글리마에게 케이크를 보낸 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직원들은 대형 금고 안에서 어제 먹었던 케이크에 바퀴벌레가 잔뜩 붙어 있는 걸 보고 기겁하고, 해충 관리회사 직원을 불러 소독한다. 이때 소독하는 직원이 조 뱅의 두 동생이다. 이들은 작업을 마치고 지미에게 전화해서 '코드 핑크'가 떴다고 말한다. 지미는 멜리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조 뱅은 감옥 동료 네이먼에게 제안을 한다.
연중 가장 큰 레이스가 펼쳐지는 날, 지미는 계획을 실행한다. 먼저, 감옥에서는 교도소장이 식당 점검을 하러 나오고, 모두 문제 없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조 뱅이 갑자기 토하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교도소 병원에서 조 뱅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클라이드와 만나 탈옥한다. 이들은 교도소를 드나드는 수송트럭 아래쪽에 나무관을 짜서 붙이고, 그 속에 들어가 숨는다.
감옥에서는 네이먼이 동료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킨다. 교도소장은 '코드 레드'를 선언하고, 교도소를 외부로부터 차단한다.
식당에서 간수 몇 명을 포로로 잡고 농성하는 네이먼과 동료들은 요구조건을 내건다. 폭동의 이유가 웃기는데, 교도소 도서관에 '왕좌의 게임' 5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도소장은 죄수들이 원하는 책을 곧 구입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네이먼은 6권과 7권도 가져오라고 말한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을 달라는 것인데, 교도소장이 아무리 설득해도 이들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식당의 폐쇄회로를 차단하고, 창문까지 모두 막은 다음 불을 지른다.
지미는 조 뱅의 두 동생을 깨워 레이싱 경기장으로 가라고 독촉한다. 경기장 바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통신망이 있는 외부 건물에 폭탄을 제조해 터뜨리고, 경기장 상가의 통신망이 차단된다. 카드결제가 안 되면서 현금만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현금은 곧바로 파이프를 타고 대형금고로 모인다.
조카 세이디를 학교에 데려다 준 멜리는 이혼한 새언니의 남편 차를 훔쳐 어느 주유소 앞에서 기다린다. 이 주유소는 교도소를 드나드는 수송트럭이 항상 멈추는 장소를 멜리가 미리 확인해 둔 곳이다. 조 뱅과 클라이드는 수송트럭 바닥에서 내려와 멜리의 차로 옮겨탄다. 알고 보니 멜리는 스피드광이었다. 영화 초반에 이미 멜리가 과속했다는 말이 지미의 이혼한 아내의 말로 나왔지만, 멜리는 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조 뱅과 클라이드는 지하 공사장으로 내려가고, 미리 와 있던 지미와 합류한다. 조 뱅은 젤리, 소금, 펜 같은 평범한 물건들을 조합해 폭탄을 만들어 내는데, 이 장면은 '브레이킹 배드'에서 마약을 만들어내는 화학교사 월터 화이트를 뛰어 넘는, 대단한 화학 지식을 보여준다. 조 뱅은 화학식을 벽에 써가며 이 물질들이 결합해서 어떻게 폭발 효과를 내는지 지미와 클라이드에게 설명한다. 그렇게 튜브를 타고 들어간 폭탄이 터지고, 이들은 다시 튜브를 통해 돈을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대형금고에 있는 돈을 빼내기 시작한다.
돈은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밖으로 빼내는데, 조 뱅의 두 형제가 맡는다. 이들이 쓰레기차에 돈봉투를 싣고 나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잠깐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출입문이 열리지 않도록 만든 것도 지미였다.
돈을 다 밖으로 빼낸 이들은 조 뱅과 클라이드가 다시 멜리의 차에 타고 먼로 교도소 근처 소방서에 대기한다. 교도소에서는 네이먼이 식당에 불을 지르고, 화재 신고를 하자 소방차가 출동하고, 조 뱅과 클라이드는 소방차에 숨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간다.
멜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조카 세이디의 머리를 만져주고, 조 뱅은 교도소 병원 침대에 여전히 누워 있으며, 지미는 세이디의 학교 발표회에 참석한다. 세이디는 원래 부를 노래 대신, 존 댄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를 부른다. 이 노래는 영화 전편에 흐르며, 특히 지미가 즐겨 듣는 노래여서 세이디에게도 의미가 있다.
방송에서 경기장 강도 뉴스가 나오고, 경찰과 FBI가 투입된다. FBI 요원 세라(힐러리 스웽크)는 영화 뒷부분에만 나오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멋진 역할을 보여준다. 세라 요원은 교도소장을 만나 감옥에 있던 조 뱅을 면회한 사람이 지미와 그 동생 클라이드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들은 조 뱅을 두 번 면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이드가 편의점을 차로 들이박고 감옥에 들어온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교도소장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세라 요원은 지미의 핸드폰과 자동차를 추적하지만, 핸드폰은 요금을 내지 않아 정지 상태였고, 자동차는 구형이라 GPS 수신기가 달려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90일이 지나면 클라이드가 출옥한다-교도소에서 나오는 클라이드를 멜리가 마중한다. 클라이드는 '국가보훈처'가 찍힌 큰 가방을 하나 받는데, 관객은 내용물을 볼 수 없지만, 그게 돈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강도 당한 돈은 트럭에 담겨 발견되었고, 뉴스에서는 이들이 '촌뜨기 강도단'이라고 이름 붙인다. 즉, 갖지도 못한 돈을 털었다는 것이다.
조 뱅도 형기가 만료되어 교도소에서 나오고, 클라이드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간다. 조 뱅은 지미의 소식을 캐묻지만 클라이드는 지미가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조 뱅도 뉴스에 나오는 소식을 듣고, 빼돌린 돈이 전부 트럭에 실려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조 뱅의 집에 누군가 삽을 놓고 가는데, 조 뱅은 잠시 생각하더니 마당의 큰나무 밑을 파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지미와 클라이드가 교도소로 조 뱅을 만나러 갔을 때 나온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 사이 FBI의 수사는 종결되는데, 돈을 도난당한 '스피드웨이'에서는 보험금을 받아서 만족한다고,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결국 피해자가 없는 셈이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돈이 어떻게 빼돌려지는가를 보여준다. 단역에 불과했던 멜리가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모든 계획은 지미에서 시작해 클라이드, 멜리 세 남매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것이다.
지미는 자신의 계획에 도움을 준 네이먼, 실비아, 글리마에게 선물을 보낸다. 지미는 엄청난 돈을 숨겨 놓고도 평상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지미는 실비아를 만나고, 멜리는 조 뱅과 데이트를 하며, 클라이드는 술집에 처음 온 세라-바로 그 FBI 요원-를 만난다.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지미가 왜 '스피드웨이' 회사의 대형 금고를 털 생각을 한 것일까였다. 그가 갑자기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이혼한 아내와의 법정 싸움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려고? 술집에서 싸운 건방진 레이싱 회사 사장 때문에?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서?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나 공식적으로는 사건이 종결되었지만, 세라 요원은 이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라 요원이 술집에 나타난 것은, 앞으로도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 것이며, 지미를 비롯한 동료들이 조금만 실수하면 체포당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세라 요원을 보여줌으로써, 결말을 열어 둔 것이다.
지미는 대기업이 번 돈을 훔치고, 대기업은 잃어버린 돈을 보험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된다. 세라 요원이 스피드웨이 사장에게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잃어버린 돈의 총액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험금을 산정할 수 있는가. 이들은 막대한 자본이 움직이는데 서로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그 돈 역시 자기 돈이 아니며, 거액의 보험금이라 해도, 전체로 보면 푼돈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는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않아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능력 있는 감독의 연출이 결합하면,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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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가 세상을 지배하다. 가타카 (1977)
<13층> 이후로 '어떻게 저런 생각을 저 시대에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지금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맞춤형 아기'에 대한 생각을 몇십 년이나 앞서 중심에 둔다. 유전자 조작은 윤리적으로 아주 민감한 문제이며, 특히 그 대상이 인간일 때 더욱더 조심해야 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가타카에서는, 아주 빈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로 인해 만들어진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들만 우주 비행사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 유전자의 우월함이 계급이 되는 세상, 그곳이 곧 미래이자 현실이다.
빈센트는 자연분만으로 인해 열성에 가까운 유전자를 타고난 채 태어난다. 심장질환이 있어 조금만 뛰어도 금세 숨이 차고, 그다지 큰 키도 아니지만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몸 안에 내재해 있는 유전자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지울 수 없는 표식이므로, 우성인자를 가졌지만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제롬의 몸을 빌리기로 한다. 만약 빈센트가 자신의 타고난 천성에 만족하고 살아갔다면 청소부 일을 하면서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전부이겠지만, 이에 일종의 반항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항상 동생과의 수영 내기에서 졌던 그가 마침내 그를 이기고 지친 동생을 오히려 끌고 나오면서부터 저력은 발휘된다. '다시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아서 너를 이길 수 있었던 거야.'라고 말을 하는 그는 흔치 않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끈기와 인내', 이것이 빈센트만이 가진 일종의 특장점이자 우월한 유전자인 셈이다.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타고난 능력만을 믿고 더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항상 남들보다 많은 시도를 한 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그 사람의 잠재력과 가능성보다 주어진 환경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이게 과연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목표 달성에 다다르는 시점에서, 또 하나의 윤리적 문제가 생긴다. 사회의 기대와는 반대로, 우성인자인 제롬은 자신의 꿈 없이 그저 빈센트에게 필요한 DNA를 주는 일종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스러움이 배제되고, 일종의 기계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그는 실제로 곧 시행될지도 모르는 유전자 선택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있는 그 자체를 존중하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결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을 대하는 최선의 방식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물론 미래에는 유전학적으로 더 발달한 사회가 되겠지만,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인간 또한 통제불능인 상황이 올까 두려워진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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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노동자의 2주
Chapter 2 이반과 이고르, 빨간색과 하얀색
00:00 황금종려상
00:37 귀여운 여인, 대부
01:51 노동자의 2주
03:46 편견, 자본가
06:34 이반과 이고르
08:01 빨간색 하얀색
09:10 별점 및 한 줄 평
09:28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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