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1-05-02 22:16:05
원작보다 발전하지 못한 리메이크
<모탈컴뱃>(2021)
영화 <모탈컴뱃>은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꽤 폭력적인 격투 게임이었던 모탈컴뱃은 게임 캐릭터의 여러 동작들을 실제로 촬영하여 게임 속으로 넣어 구현했다. 때리고 피가 튀는 모습을 꽤 잔인하게 묘사했던 게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많이 플레이했던 게임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것보다는 좀 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마니아층이 만들어져 게임을 즐기고 나온 영화도 즐겼다.
과거에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이 있다. 좀 괴상해 보이는 CG가 이질감이 들어 조금 해보고는 이내 그만둬 버렸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영화를 본 기억은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여러 CG들과 효과들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얼굴과 함께 기억된다. 온갖 폼을 잡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1편 이후 기대감에 2편을 보고 나서 더욱 떨어져 버린 완성도에 실망했던 기억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신기했지만 실망스러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세력이 지구의 운명을 두고 싸운다는, 그것도 토너먼트를 해 우승자가 나온 세력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매우 이상한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걸 그냥 그 내용대로 받아들이고 영화를 봤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모탈컴뱃>은 과거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서 구사한다. 게임 영상 연출에 재능이 있는 신인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출연하는 배우도 모두 신인급으로 뽑아 배역을 맡긴다.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CG와 액션으로 나머지를 채운다.
사실 이번 리메이크에서도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은 영화 내내 이어져 볼거리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 자체가 90년대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올드하게 느껴진다. 영상이 잘 구현되어서 게임의 실사화가 잘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세력 간의 싸움과 캐릭터들이 각성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나는 과거의 영화가 가졌던 한계를 조금은 극복하고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길 기대했기 때문에 더욱 실망감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OTT 플랫폼 등에서 공개가 되었는데 꽤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숫자가 꽤 되는 것으로 봐서 추후 후속 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완성도라면 굳이 더 챙겨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과거 격투 게임을 여러 번 영화화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것들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안 좋았다. 아무래도 격투 게임을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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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탈컴뱃 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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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셋째 주 OTT신작 추천작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주말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매 주 월요일,
한 주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OTT 플랫폼의 신작 소개를 하는 시간!
2월 셋째 주의 씨네랩의 추천 신작은 무엇이 있을지 다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텍사스 전기톱 학살, 넷플릭스
영화 | 넷플릭스 오리지널 | 81분
감독 : 데이빗 블루 가르시아 | 출연 : 세라 야킨, 엘시 피셔, 마크 버넘 등
넷플릭스 공개일 : 2022년 2월 18일 (금요일)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년작) 1편의 사건 이후 50년이 지난 현재를 시점으로 텍사스의 한 유령도시를 찾은 인플루언서들이 조용히 있던 '래더페이스'를 깨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관전 포인트* : 상징적인 공포영화의 귀환입니다. '래더페이스'라는 기념비적인 슬래셔 살인마 캐릭터를 탄생시킨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인데요.
'텍사스 전기톱'이라는 제목의 공포 영화는 국내에서 다양하게 불리고 있습니다.<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등이 그 예인데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오리지널 1편의 제목과 같습니다. 시리즈 상으로는 9번째 영화이지만 그 전작들과는 무관한 오리지널의 직접적인 후속편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1편이 개봉한 지 50년이 지난 현재 개봉하는 엄청 도전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희대의 살인마 '래더페이스'의 등장과 오리지널 캐릭터 중의 한 명이 출연을 예정하고 있으니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어떤 하녀의 일기, 왓챠
영화 | 프랑스, 벨기에 | 96분
감독 : 브누와 쟉꼬 | 출연 : 레아 세이두, 뱅상 랭동 등
영화 개봉일 : 2015년 8월 6일 개봉
왓챠 공개일 :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뛰어난 미모, 파리 출신의 세련된 패션감각, 도도한 성격, 주인을 비웃는 자신감까지.
모든 남자들의 추파와 모든 여자들의 질투를 받는 그녀. 세상 가장 발칙한 하녀 ‘셀레스틴’의 등장은 조용한 마을을 뒤흔드는데… "
*관전 포인트* : 최신작인 <프랑스>의 레아 세이두를 보면서 배우의 연기력과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으로 다양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에서도 존재감있는 캐릭터를 보이고 있는데요.
배우 '레아 세이두'의 매력이 넘치는 영화로 <어떤 하녀의 일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어떤 하녀의 일기>는 프랑스 영화만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도 추천드립니다.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들의 매력, 그리고 배우들의 뿜어내는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인만큼 '레아 세이두'는 물론 프랑스의 대표 연기파 배우인 '뱅상 랭동'의 빛나는 연기력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
3. 휴가 , 왓챠
영화 | 한국
감독 : 이란희 | 출연 : 이봉하, 김아석, 신운섭, 김정연, 이승주 등
영화 개봉일 : 2021년 10월 21일
왓챠 공개일 :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해고 5년차, 천막농성 1882일째 재복은 노조가 정리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열흘 간 집으로 휴가를 떠나온다. 오랜만에 가족들도 챙기고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며 잊고 있던 워킹&쿠킹 홀리데이로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휴가의 끝이 보일 즈음 재복의 두 딸은, 아빠가 농성장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데... "
*관전 포인트* :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3관왕 수상작
제64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특별언급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과 극찬을 받은 한국의 독립영화입니다.배우 출신 이란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이란희 감독이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노동의 가치'에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2021년 국내의 영화평론가들 대상으로 한 '2021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도 여러번 선정된 웰메이드 작품인데요.
이란희 감독의 오래된 취재와 연대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인권영화로 평가받고 있으며, 관객 모두에게 진하고 짠한 진짜 위로를 선사합니다.
극장 관람을 놓치신 분들은 꼭 왓챠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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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제주에서 볼 수 있다고?
제18회 제주국제영화제가 8월 27일부터 9월 24일까지 롯데시네마 제주연동점에서 열린다.
권범 제주영화제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코비드-19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며 영화제를 전회차보다 일찍 앞당긴 이유를 전했다. 올해 개막작은 지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콤 베리어드 감독의 <말 없는 소녀>다. 권 이사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유년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친척집살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인간사회의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응원하기 위해 개막작에 선정했다”라고 말했다.
세계 섬 영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에 주목하는 섹션 ‘아일랜드 시네마’에서는 얼마 전 배우와 감독이 내한일정을 소화해 호평을 받았던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홍상수 감독의 <물안에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칠중주 : 홍콩 이야기>를 상영한다.
매 해 제작되는 한국 영화 중 주목할만한 작품을 초청하는 ‘한국영화 초이스’ 섹션에서는 작년 개봉작으로 이미 명작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황윤 감독의 <수라>,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상영한다.
영화 상영 전 스크린 이미지.
올해 500만 관객을 동원한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굳건한 인기를 과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필모그래피 <날씨의 아이>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프랑스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를 기리는 ‘자크 타티 특별전’도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 하에 열린다.
제주의 고유성과 독창성에 주목한 영화인들을 응원하는 섹션 ‘제주트멍경쟁’에서는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상목 감독의 <우도 해녀의 노래>, 우광훈 감독의 <인어춘몽>, <제주 떡 우주를 빚다>가 9일 관객을 만난다.
<물안에서> 상영 전 모습.
나의 pick
홍상수, <물안에서>
미야케 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보통 홍상수의 영화들이 제주에서 상영되는 법이 거의 없다. 메가박스가 제주에서 철수한 이후로 홍상수의 ㅎ자도 볼 수 없는 게 제주 영화관의 현실이다. 이런저런 현상을 이유로 제주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상영된다는 점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제주영화제가 기존의 관습을 벗어나 다양한 영화들을 초청한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이 영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고 갔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듯하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자면 이 작품은 걸작보다 괴작에 가깝다고 본다. 익히 알려진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러닝타임은 포커싱이 나가있어 정말 '물 안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 실험이 무의미하진 않다. 홍상수는 <극장전>부터 시작해 영화의 안과 밖을 해체시키는 실험을 해왔다. 바로 전작인 <소설가의 영화>에선 구조를 해체시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했고, <탑>에서는 '알고 있다'라는 인식론에 대해 논한다. 이 <물안에서> 역시 영화와 삶의 구분선에 포커싱을 흐려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다. 이런 실험은 전 세계에서 홍상수만 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 시도가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실험이 과연 신선한가?' 혹은 '이 실험을 통해 얻은 것이 가치가 있던 것이었나?' 질문하게 만든다. 하지만 홍상수가 젊은 세대를 관찰하며 세상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이해한다면 거장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가지가 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복서 케이코가 주인공인 영화다. 쉬고 싶은 케이코. 하지만 마음대로 모진 말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세상이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복싱장이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은 케이코. 케이코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영화가 보편성을 얻는 과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인물의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 우리 상황에 대입된다. 그 상황을 이해한 관객들은 '그래.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어'라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무너져가는 현실에 스스로 올곧게 바로 선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의 구로사와 기요시,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츠의 문법에서 벗어나 감독 자신이 갖고 있던 올곧은 영화언어가 돋보인다. 제주에 상영관이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작품인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라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9월 16일 저녁 7시 30분 롯데시네마 제주 연동점에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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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 이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우리 모두에게 큰 보호막이 되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엄마일 것이다. 출산 전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내며 생명을 지원받고, 태어나서는 먹고 마시고 잠에 드는 그 모든 과정의 보살핌을 받는다. 태어난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부모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그때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전까지 엄마라는 큰 울타리가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 전보다는 영향력이 줄어들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해주는 모든 보살핌은 일종의 봉사라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특별한 대가 없이 자신이 사랑으로 키운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은 그것의 대가가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지속된다.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또 다른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어떤 경우에는 그 마음이 강해져 아이를 향한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 집착이 지속되면 아이와 대립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그 대립은 커지고 서로에 대한 애증은 심화된다.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
영화 <런>은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 클로이(키에라 엘런)와 함께 살고 있다. 당뇨병, 천식, 하반식 장애 등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딸을 돕기 위해 다이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클로이는 극 중에서 내년이면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된 상황이고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클로이에게 다이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의지하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클로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래서 집 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설과 계단을 편하게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영화 초반 집안에서 클로이와 다이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로 장애가 있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어떤 모습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영화 초반 클로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목적도 있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집의 구성과 배치, 그리고 클로이의 생활 동선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더욱 긴장하게 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엄마 다이앤의 출산 장면을 보여준다. 사산이 될 뻔한 아이를 겨우 살려내 인큐베이터에 넣었으나 그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스릴러 영화 장르를 많이 본 관객들이라면 그 아이의 생존 여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런>은 다이앤이 의료진들에게 아이가 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장면이나, 현재 다이앤이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딸에 대한 의견을 낼 때 건조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 등을 통해 후반부 다이앤의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암시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딸
클로이가 엄마가 장을 봐 사 온 물건들을 뒤적거릴 때 처방받은 약통을 발견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긴장을 유발하기 시작한다. 그 약은 클로이가 아플 때 먹던 약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약통의 겉에는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초록색 알약이 야기한 마음의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로이가 계속 그것에 대해 추적하게 만든다. 엄마의 활동 일정과 동선을 알고 있는 그는 영리하게 엄마가 추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 약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쓴다.
사실 많은 관객들은 다이앤에게 동정과 위로를 주고 싶을 것이다. 장애아를 키웠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해할 정도로 그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들이 드러난 이후, 심지어 딸을 방안에 가두었을 때 관객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실제로는 흔히 생각하는 선한 존재가 아니었을 때, 집이라는 공간은 지옥이 된다.
장애를 가진 클로이가 집안에서 최선을 다해 엄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은 꽤 긴장감이 있다. 그가 창문을 기어서 넘어가고 또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른 방으로 탈출하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실 클로이 입장에서 엄마를 벗어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간 받았던 모든 지원들을 포기해야 하며, 혼자 세상 밖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 존재로부터 탈출을 결심한다.
독립 직전의 딸과 엄마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긴장감으로 표현한 영화
영화 <런>은 독립하기 직전의 딸과 엄마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20년간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가 아이의 독립을 바라보며 기대감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끼고, 아이는 그저 독립된 생활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사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을 볼 때 그런 복잡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런 복잡해진 엄마를 보는 아이는 그렇게 변한 엄마가 무섭고 두려워질 수도 있다. 자신의 자유로운 독립을 막는 존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엄마와 딸 간의 애증의 시기를 아주 단순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 장르에 대입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이앤 역할을 맡은 사라 폴슨은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나 넷플릭스 <래치드> 같은 시리즈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다. 그는 차갑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또 반면에 여리고 지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데, 특히 차가운 악역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차가운 엄마 연기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딸 클로이 역을 맡은 키에라 엘런은 독립을 원하는 딸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동하는 모든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스릴러 영화로 약간의 반전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abbitgumi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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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다양한 별들이 섞여 아름다운 은하가 되는 것처럼
요새 유튜브에서 우주 관련 영상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서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선정한 우주에 관련된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선택한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우주라 하면 과학의 첨단이라고 생각을 해서 크게 감동을 받거나 감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햇었는데, 엄청난 문학적 비유에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시놉시스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러 슬로베니아에 온다. 그러나 토비는 아빠 그리고 친구들과 떨어져 보내는 여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이 토비를 괴롭히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그때, 토비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녀 티아샤를 만난다. 티아샤는 토비를 은퇴한 장님 천문학자 헤르만에게 데려간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우주로 풀어내다
Space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와 우주라는 의미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첩해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주의 별을 매개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굉장히 잘 풀어내고 있어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별과 은하에 관심이 많은 토비는 엄마와 함께 여름휴가를 엄마의 고향 슬로베니아로 오게 되고 그곳에서 시력을 잃은 천문학자 헤르만을 만나게 된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괴팍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토비는 그와 함께 별을 관측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 헤르만과 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별과 비유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굉장히 문학적이어서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캐나다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냐고 물어보자 토비는 자신 자신의 빛이 그 아이에게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토비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지만 아직 그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피부색이 달라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던 토비를 향해 헤르만은 별은 절대 혼자 있을 수 없다면서 큰 은하 속에 위치한 별의 태생을 알려주면서 토비 역시 혼자라고 생각할지라도 결국에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처럼 굉장히 문학적으로 우주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어서, 과학 그 자체로 생각했던 우주에 대해서 이렇게나 감성적일 수가 있구나 깨달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섞임에 대하여
영화 <우리 사이의우주>의 주인공 토비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이다. 인종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전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은연 중에 그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차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슬로베니아에서 드물었던 흑인은 토비가 오자 친구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굴뚝청소부라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꼭 흑인과 백인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한 집단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확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토비의 엄마는 인종적으로 보자면 백인이었지만 그녀의 예술적인 감성으로 인해 고향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렇게 예술을 한다고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지만 그곳에서도 낯선 느낌은 지울 수 없었고, 휴가차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느낌을 계속 받는다.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엄마와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는 토비의 모습을 보면서 ‘블렌딩(섞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영화 속에서는 펜케익을 만드는 토비가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의 반죽을 이용하는 것과 달리 토비는 흰색 반죽과 갈색 반죽을 따로 만들고 후라이팬 위에서 섞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요리사로 성공한 아빠의 레시피라고 소개한다. 백인과 흑인 혼혈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블랜딩을 통해 성공한 레시피로 인정받았듯이 자신 역시 그 존재를 인정받길 바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더불어 마크라메 공예가인 토비의 엄마 역시 다양한 실을 엮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블렌딩(섞임)이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만큼 사람들 사이에서도 중요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우주가 감성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럽게 봤던 영화 <우리 사이의 우주>.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있었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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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2부 | 발버둥칠수록 더 빠져드는 총체적 난국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간 몸속에 가둬진 외계인 죄수 설계자의 탈옥을 막으려다 고려시대에 갇혀버린 ‘이안’(김태리). 우여곡절 끝에 시간의 문을 여는 '신검'을 되찾은 그녀는 '썬더'(김우빈)을 찾아 미래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미래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과거 이안을 구해준 은인 '무륵'(류준열)은 자기 몸속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존재에 관해 묻기 위해 그녀를 찾는다. 삼각산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은 무륵 몸속에 요괴가 깃들었다고 의심한다. 신검을 찾아 눈을 고치려는 맹인 도사 ‘능파’(진선규)와 설계자와 함께 미래로 돌아가려는 ‘자장’(김의성)도 이안을 뒤쫓는다.
그 사이 2023년 서울은 '설계자'가 터뜨린 외계물질 '하바' 때문에 혼란에 빠지고, 우연히 외계인의 정체를 확인한 '민개인'(이하늬)은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한다. 모든 하바가 터지기 48분 전, 드디어 과거로부터 시간의 문이 열리고 세계의 운명은 이안의 손에 떨어진다.
<외계+인 2부>, 뒷심도 부족했다
2022년 여름에 개봉한 <외계+인 1부>는 관객 150만 명을 겨우 넘기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이 730만 명이었고, 흥행에 실패한 적 없는 최동훈 감독 작품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인 성적표였다. 비평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장르, 다른 하나는 이야기였다.
<외계+인 1부>는 무협 판타지와 SF라는 장르를 섞어내려 했다. 하지만 두 장르의 근본적인 특성과 차이를 무시한 채 익숙한 CG로 도배해 버렸다. 결국 낯선 세계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도 못했고, 화려한 볼거리도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도 혼란스러웠다. 두 시간대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 자연히 최동훈만의 개성도 좀처럼 자리를 못 찾았다.
이는 1년 반 만에 돌아온 <외계+인 2부>의 과제이기도 했다. 두 문제를 해결하면 반등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일부 단점은 해결된 듯 보인다. 전편에서 시작된 서사는 설득력 있게 끝맺었다. CG와 액션도 규모에 걸맞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러나 전편의 평가를 반전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개선점은 예상 못한 문제를 유발했고, <외계+인 2부>만의 새로운 문제점도 튀어나왔기 때문.
터널 끝 빛은 찾았다
가장 눈에 띄는 개선점은 편집이다. 전편과 달리 과거와 현재가 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인공이 현재로 넘어가거나 새 캐릭터를 소개하는 대목처럼 이유가 확실할 때만 화면이 전환되기 때문. 그 덕분에 마지막에야 전체 윤곽을 간신히 볼 수 있었던 1부와는 달리, 2부의 전체 내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부 줄거리를 요약한 대목도 영리한 선택이다. 전편 내용을 환기하고, 새 관객의 진입 장벽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최동훈 감독의 스타일이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외계+인 2부>는 전편에서 미스터리로 남겨둔 이안과 무륵의 인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때 두 주인공 몸 외계인의 정체를 활용해 나름의 반전을 선사하고, 긴장감을 고조하는 전개가 꽤 효과적이다. '안옥윤'(전지현)과 미츠코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살려 이야기를 비틀었던 전작 <암살>을 연상시킨다.
1부에서 호평받은 액션은 한 층 더 발전했다. 특히 날아다니는 칼을 활용하는 능파 캐릭터 덕분에 액션이 더 육체적이고 과격해졌다. 능력이 확연히 구분되는 캐릭터들이 합을 맞추는 클라이맥스도 과장 보태 <어벤져스>를 보는 듯한 인상을 순간적으로 준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기대에 비해 액션 스케일이 크지 않고, 괴물과 도사들이 싸우는 모습도 <전우치>에서 본 액션과 유사해서 새롭지는 않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도 짙다
그런데 편집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대목도 있다. 전체 스토리를 직관적으로 편하게 이해하도록 얼개를 짜는 과정에서 여러 장면이 잘려나간 듯 보인다. 이처럼 설득력을 더할 분량이 곳곳에서 사라진 결과, 흐름은 급하고 세밀함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특정 상황에 처하거나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객이 그 여파를 음미할 시간도 충분치 않다.
이안이 무륵의 정체를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무륵이 자기를 구해준 소년이었음을 깨달은 이안은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녀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무륵의 몸속에 외계인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 이에 이안은 무륵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다. 이 일련의 과정에는 5분가량의 분량만 배정된다. 생명의 은인과 십수 년 만에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치고는 지나치게 빠른 전개다.
새 캐릭터인 능파의 묘사도 비슷하다. 자장에게 눈을 잃고 밀본에서 쫓겨난 그는 신검을 찾아 헤맨다. 신검으로 눈을 고친 후 자장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런데 영화는 그의 과거사를 자장의 수발을 들던 한 노파의 말과 능파의 대사로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데서 그친다. 결국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도 등장인물들의 내적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연히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여전히 부족한 일관성
이에 더해 <외계+인 2부>는 전체적으로 톤이 불안정하다. 이는 1부와 공유하는 단점이다. 다만 원인은 다르다. 1부는 무협 판타지와 SF라는 장르 간의 부조화가 문제였다. 고려시대를 주 배경으로 삼았고, 가드와 썬더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판타지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극 중 비중은 가드와 썬더에게 집중됐다. 그렇다고 그들의 SF 이야기가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1부는 판타지와 SF 사이에서 부유했다.
2부에서는 다행히도 판타지와 SF의 간극이 작다. 과거와 현재의 연계가 확실해지고, 관객이 세계관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번에는 유머 때문에 전반적인 톤이 흔들린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전우치>와의 차이점이다. <전우치>는 유쾌하나 가볍지 않았다. 자유분방한 '전우치(강동원)'의 반대편에서 '화담(김윤식)'과 '천관대사(백윤식)'가 무게를 잡아줬으니까. 덕분에 후반부에 분위기가 무거워져도 어색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외계+인 2부>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하다. 무륵, 민개인, 썬더 모두 관객을 어떻게든 웃기려 한다. 물론 두 신선이 현대에 온 장면처럼 웃음이 터질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머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잃는 게 더 많다. 당장 톤이 불안정하니 몰입도가 떨어진다. 이는 시작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주막에서 이안은 자기를 쫓는 도사 둘과 싸운다. 이때 상황에 비해 도사 둘이 너무 가볍다. 다른 영화 캐릭터라 해도 안 놀랄 정도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균형을 못 찾는다. 빌런도 무게감을 잡지는 못한다. 자장은 설계자의 부하일 뿐이라 존재감이 약하다. 설계자 역이었던 소지섭도 회상씬에만 등장한다. 그렇다고 CG로 만든, 말 못 하는 외계인에게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다. 자연히 클라이맥스에서는 전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결연함, 비장미가 거의 안 느껴진다. 결국 <외계+인 2부>에는 더 화려해진 <전우치>를 보는 즐거움만 있을 뿐, 큰 감흥이 없다.
캐릭터 교통정리에 실패하다
캐릭터 교통정리에 또 한 번 실패하면서 영화는 더 꼬인다. 원래도 등장인물이 많은데, 여기에 새 캐릭터가 추가된다. 능파와 민개인처럼 1부에서 얼굴만 비췄거나, 등장하지 않은 인물들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기존 캐릭터의 이야기도 미처 끝맺지 못한 상황이니 영화는 자연히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외계+인 2부> 곳곳에서는 우연과 억지가 등장한다. 민개인이 경찰 대책 본부에 불쑥 쳐들어가서 억지를 부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완성도만 깎아 먹은 불필요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장면이 없더라도 그녀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 비록 1부만큼은 아니어도, 중반부까지는 정신없는 지점이 적지 않은 이유다.
이번에도 최동훈 감독 작품 답지 않은 대사 역시 문제를 키운다. 최동훈은 본래 명대사 제조기로 유명했다. 극 중 인물이 바로 옆에서 말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 맛을 살릴 줄 알았다. "묻고 더블로 가!"나 "내 몸속에 일본 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 있습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같은 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외계+인 2부>에서는 외려 대사 때문에 몰입이 깨진다. 대사가 상황을 설명하는 도구에 그치기 때문이다. " ~~로 갑시다", "~~를 합시다/해야 돼", "저게 뭐지?"처럼 상황을 설명하기 바쁜 작위적인 대사가 쏟아진다. 자연히 캐릭터는 설명 기계에 불과해지고, 안 그래도 등장인물이 많은 가운데 제각기 매력이나 존재감을 뽐낼 기회도 잡지 못한다.
<외계+인>이라는 늪
애초에 <외계+인> 시리즈는 기획부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판타지 액션과 SF를 합치고, 10명 넘는 캐릭터가 한 데 등장하는 최동훈 스타일을 더했다. <신과 함께> 시리즈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도 아닌데 한 번에 촬영을 마친 후 1부와 2부로 나눠서 개봉했고, 막대한 제작비까지 쏟아부었다. 성공만 하면 기념비적일 수 있었던 블록버스터였다. 단지 1부에서는 도박수가 통하지 않았고, 2부에서 실패가 확정됐을 따름이다.
어찌 보면 <외계+인 2부>는 늪이나 다름없다. 가능한 범주 내에서 1부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 노력이 또 다른 문제를 키우고, 2부 만의 문제도 더해진 이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벗어나려 노력할수록 수습하기 어려워지는 늪이자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어떻게든 결말에 도달한 최동훈 감독의 뚝심만이 그의 차기작을 기대케 할 뿐이다.
Poor 형편없음
우여곡절 끝에 겨우 다다른 우당탕탕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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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랑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뻔해진다
어떤 이야기를 단지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지.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는 대만계 미국인 감독 앨리스 우(Alice Wu)의 작품이다. 동양인 여성 감독인 그는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세이빙 페이스>(2004)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감독으로 전업하나 싶었는데, 지금 소개할 <반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앨리스 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감독의 트위터에는 어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다는 “Drawing is my favorite enem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감독은 이 말이 영화 만드는 일에 관해 자신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즐겁지 않은 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할 수밖에 없는 일.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사이의 16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겠지.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엘리’(리아 루이스)가 같은 학교 남학생 ‘폴’(대니얼 디머)로부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하이틴 로맨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감독의 전기적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과 전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이런 종류의 10대들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다.
‘폴’이 부탁한 연애편지라는 건, ‘폴’이 좋아하는 동급 여학생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쓰는 것이다. ‘엘리’는 평소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학우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고는 했다. 대필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는 “세 페이지 이하는 10달러, 열 페이지까지는 20달러, 그 이상은 안 해.”라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견적을 말한다.
‘엘리’는 저 말을 다른 학우들이 숱하게 부탁했을 과제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낸 건데 ‘폴’이 원하는 게 학교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는 걸 알게 되자 그걸 단호하게 거절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편지의 명목상의 발신인과 그 수신인을 아주 잘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꾸며낸다는 건 아주 천재적인 작가에게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그녀>(2013)에서 ‘테오도르’(와킨 피닉스)가 쓰는 종류의 조금 간단한 대필 편지 정도면 모르겠지만. ‘엘리’가 편지 대필을 해주기로 하는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장 50달러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폴’이 그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직접 써도 그게 전해질까 말까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편지.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폴’이 자기가 일단 써봤다며 내민 편지를 읽더니 ‘엘리’는 거의 다 고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흔하디 흔하지만 ‘진심’이 되었다. 사랑 이야기에 진심이라니.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지순한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해지고 둘의 관계가 ‘결실’을 맺는 정도의 구조일까.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은 이미 <반쪽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장르의 흔한 공식을 따르기를 애초부터 거부하는 이 영화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발단은 따로 있다. ‘폴’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엘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스터’로부터 답장이 오면서 계속 이어지는 편지 속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애스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기왕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 ‘폴’과 계속해서 ‘애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애스터’의 일상을 몰래 관찰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지만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흔한' 퀴어 영화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랑 영화도 아니고 퀴어 영화도 아닌데 하이틴 로맨스 영화이고 흔한 이야기는 아니라니. 정말 제목처럼 이야기의 반만 꺼낸 셈인데, 글 제목의 뜻에 대해서도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은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게 사랑이라면서.
“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그러니까, ‘엘리’는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폴’이 편지 대필을 부탁했을 때 처음 써준 편지에 의도치 않게 ‘애스터’의 답장이 오고 나서, ‘폴’과 ‘엘리’는 이제 정말 작정을 해야만 했다. ‘폴’은 이제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엘리’는 “다른 남자애들과 똑같아지고 싶냐”라며 편지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엘리’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애스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애스터’는 ‘엘리’가 들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자기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서 그의 이야길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핑계로 빔 벤더스 영화 속 대사 언급을 했더니 ‘애스터’가 자신 역시 빔 벤더스를 좋아한다고 답장을 한다든가... 이제 ‘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편지를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 이상 그건 자연스럽게 떠안아야만 했을 문제일지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엘리’와 ‘폴’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스터’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데이트 약속을 잡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애는 구상화보다 추상화를 더 좋아해. ‘남아있는 나날’ 얘길 꺼내면 영화가 나치 얘기를 줄이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 말해.” ‘엘리’가 ‘폴’에게 해주는 조언은 대략 이런 것이었는데, 이런 건 ‘애스터’의 취향에 대해 ‘폴’이 학습하도록 하는 정보들이었다.
당연히 첫 데이트는 ‘엘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폴’은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아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며 밀크셰이크에 든 빨대를 쪽쪽거리는 ‘폴’이 ‘애스터’에게는 나름대로 귀여워 보였던 모양. 실제로 ‘애스터’는 “넌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귀여워”라고 언급한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은 이런 것에 있다. 이 일련의 데이트는 ‘폴’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고 ‘엘리’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는다. 가령 ‘엘리’는 ‘폴’ 대신 직접 ‘애스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이런저런 조력을 하지만 이건 마치 ‘글로만 배운 연애’ 같아서 가끔은 그것보다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폴’의 것이 통하기도 한다.
일단 제목의 의미 하나가 여기 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그리고 많이 영향 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반쪽’이라는 건 ‘폴’과 ‘애스터’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애스터’와 ‘엘리’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폴’과 ‘엘리’ 아빠 ‘에드윈’(예성)의 관계도, ‘엘리’와 ‘에드윈’의 관계도 모두 포함한다. 반쪽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것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앞에서 ‘사랑이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것’이라는 인용을 했는데 ‘엘리’의 말이다. 관찰하고 계산한 대로, 정해진 공식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과 의외성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가 만나 각자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관계를 다져가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 <반쪽의 이야기>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주 똑똑한 영화다.
‘애스터’는 원래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포기한 인물이다. 그래서 ‘폴’의 이름으로 ‘엘리’는 ‘애스터’와 그림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화 내용에는 어쩌면 <반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애스터’는 미술 시간에 들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길 꺼내고 그림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선을 그려 넣는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사랑으로 한정해 볼까.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은 본래 서로가 만나기 전부터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것이다. 굳이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을 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러나 한 사람은 용기를 낸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한 사람이 거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어떤 흐름을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 그건 훗날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으리라 믿을 만큼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운명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하자면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건 ‘괜찮은 그림’에 대담하게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선 하나를 그려 넣는 행위일 거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억지로 읽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폴’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누가 정해놓거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치 대단히 중요한 내용처럼 플라톤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같은 이야기. 보통 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이런 식으로 뭔가가 적혀 있으면 그건 거의 반드시 중요하거나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에선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영리하게 그걸 비트는 영화라고 해야할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는 조용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뻔한 하이틴 로맨스처럼 인물 관계를 구성해놓고 <반쪽의 이야기>는 ‘애스터’를 중심으로 ‘엘리’와 ‘폴’ 각자의 내면을 꽤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0대니까, 이들은 얼마든지 삶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다. ‘엘리’는 ‘폴’이 불쑥 내뱉는 “그게 사랑 아냐? 상대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쏟는 거.” 같은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걸 예상치 못한 채 쉽사리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일 말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10대 중반쯤 되면 보통 사랑에 관해 나름의 기준 내지는 목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령 ‘폴’에게 사랑은 “치즈프라이를 하나 더 시키는 것”이다. ‘애스터’와 무슨 대화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지부터 쓰는 것이고, 편지에 대뜸 “맛있는 곳 아는 데 같이 먹으러 가자”거나 “나 트럭도 있고 풋볼 선수야” 같은 이야기나 꺼내보는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읽는 것도 물론이고.
50달러를 받기 위해 편지를 정성들여 써주긴 했지만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서로 전혀 공통점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엘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엘리’의 생각과 달리 ‘폴’과 ‘애스터’의 두 번째 데이트가 성사되고 둘은 키스까지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 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둘이 하나여서 머리도 몸통도 둘 팔 다리도 넷이었는데 신이 하나된 둘의 완전함을 시기하여 둘을 갈라놓았고 평생 동안 서로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영화 제목도 사실 거기서 따온 것인데, 아주 진지한 이야기인 양 플라톤도 인용되고 사르트르도 인용되는데, 아무리 이 영화의 ‘엘리’라는 캐릭터가 다른 학우들의 과제를 대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사랑에 관한 각종 문학적 인용에 통달한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거나 그가 깨달음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로 서사를 맺을 생각이 없다.
영하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그 근거 중 하나는 저 인용들의 대상이 후반에 가면 ‘엘리 추’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엘리’에게 어떤 좌절의 상황이 찾아오자 영화가 띄우는 인용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며,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던 ‘엘리’의 어떤 진심이 발언되는 장면 직후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가 자막으로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해서 고쳐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반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이며, 그 점은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반쪽의 이야기>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 모두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뭉클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갈등이나 오해는 대체로 해소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현으로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엘리’는 물론이고 ‘폴’에게도 ‘애스터’에게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 상처들이 분명 찾아오고 어떤 것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앞에서 제목에 관하여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내레이션까지 하며 ‘폴’의 행동을 이끌고 자신도 움직이지만 전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전기 요금을 3개월 체납한 것에 대해 ‘엘리’는 아빠에게 전력 회사에 전화해봤는지 묻고 아빠는 동양인인 자기 억양을 못 알아들을 거라며 (통화) 안 해봤다고 한다. 이에 ‘엘리’는 시도는 해보았는지 되묻지만 다음날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할 뿐 아빠를 나무라지 않는다.
‘폴’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를 통해 ‘엘리’는 ‘애스터’와 꽤 여러 주제에 걸쳐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을 보면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무엇보다 ‘애스터’에게는 사실 이미 공인된 (약혼 직전의) 남자친구쯤 되는 ‘트리그’(볼프강 노보그라츠)가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는 당연히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로 쓰였겠지만 여기선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빚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애스터’와 ‘폴/엘리’의 관계를 모르기까지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갈등 요소로 쓰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스쿼하미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보수적인 동네지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일이 살짝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당사자만의 문제일 뿐 공동체의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동양인 여성 캐릭터,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백인 남성 캐릭터, 무엇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기 많고 예쁘기까지 한 또 다른 여성 캐릭터라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전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가지고도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활용과 변주, 시도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영화라고 <반쪽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라는 ‘폴’의 말처럼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은 특정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평등하고도 특별하게 보여준다.
괜찮기만 한 그림과 훌륭한 그림 사이에는 아름다운 실패가 있다. 어떤 그림은 잊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 번 그린 그림의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 그림을 또 그릴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 번 더 되풀이해서 보는 며칠 동안 사랑에 관한 시나 산문을 여럿 읽었다.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 선을 그려 넣는 일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끌어안으면서, 낙관하지 않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떠오른 대목이 있어 여기에 덧붙일까 한다.
“두근거리다가 터지는 풍선이 되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해요.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 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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