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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5-09-30 08:26:45

자본주의 통치 논리의 ‘환상적인’ 순간들

영화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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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계속 제지 업계를 고민하냐는 아내의 성화에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내세우며 자기는 제지 업계에서밖에 일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베테랑 실직자도, 회사에 자동 시스템을 도입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측도, 경쟁자를 죽여 재취업에 성공하려는 주인공 만수도.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이들 사이에는 권력의 위계가 있다. 사측은 넉넉히 기다리면 그뿐이지만, 실직한 구직자들은 문자 그대로 ‘피 터지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25년을 다닌 회사에서 해고당한 만수의 재취업 분투기를 담은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극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만수가 다른 실직자들과 함께 ‘심리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선생님은 참석자들이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가족을 위해, 난 할 수 있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게 한다. 만수는 이 구호에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종내에는 그 움직임과 외침에 동참한다. 신임 외국계 사장에게 동료의 해고를 항의하기 위해 멋들어진 연설을 준비하던 그가 투쟁 대신 복종으로 방향을 트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자본주의가 양산한 생존 본능이 체제 저항의 목소리를 가장 절박한 순종의 목소리로 변환하는 첫 번째 마법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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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급인 만수는 부하 직원 해고를 거부했고, 그래서 본인이 해고당했다. 그런 그가 최종적으로는 경쟁자를 제치고(죽이고) 모든 게 자동화되어 혼자만 있어도 되는 거대한 공장에 재취업한다. 자신이 해고된 이유를 스스로 배반하여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가 경쟁자를 죽이는 과정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만수는 살인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 상대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살해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상대가 놓인 현실적인 애환을 깊이 마주한다. 추락한 가장의 권위, 남성성의 상실, 일상의 권태에서 오는 자괴감……. 만수가 제거하려는 경쟁자는 모두 만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는 중이다. 만수는 그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그들을 죽인다. 저들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곧 저렇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통치 논리는 깊이 있는 공감을 연대가 아닌 적대의 언어와 감정으로 변환하는 놀라운 마법을 또 한 번 부린다.

 

 

 

어쩌면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의 리더가 되었을 수도 있는 만수는 결국 비밀리에 살인을 저지르고 재취업에 성공해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남는 데 만족한다. 혁명가, 투사, 저항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끝내 도달한 곳치고는 영 태가 나지 않는다. 아내는 만수의 범죄를 알고도 묵인하여 그의 범죄에 동조한다. 아내 역시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량한 누군가를 조금씩 미끄러뜨려 끝내 살인마저 정당화하게끔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아찔한 하락 공포.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아름다운 (부르주아적) 미감과 그것이 빚어낸 미장센 위에서 사회파 주제를 멋들어지게 선보였다. 심지어 절망의 유머를 더해(자칫 어긋난 유머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배우들의 공로다). 나는 사람들이 박찬욱 영화의 미감과 구도보다도 영화의 주제를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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