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9-30 08:26:45
자본주의 통치 논리의 ‘환상적인’ 순간들
영화 〈어쩔수가없다〉
모두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계속 제지 업계를 고민하냐는 아내의 성화에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내세우며 자기는 제지 업계에서밖에 일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베테랑 실직자도, 회사에 자동 시스템을 도입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사측도, 경쟁자를 죽여 재취업에 성공하려는 주인공 만수도. 그러나 어쩔 수가 없는 이들 사이에는 권력의 위계가 있다. 사측은 넉넉히 기다리면 그뿐이지만, 실직한 구직자들은 문자 그대로 ‘피 터지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25년을 다닌 회사에서 해고당한 만수의 재취업 분투기를 담은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극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만수가 다른 실직자들과 함께 ‘심리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선생님은 참석자들이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가족을 위해, 난 할 수 있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게 한다. 만수는 이 구호에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종내에는 그 움직임과 외침에 동참한다. 신임 외국계 사장에게 동료의 해고를 항의하기 위해 멋들어진 연설을 준비하던 그가 투쟁 대신 복종으로 방향을 트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자본주의가 양산한 생존 본능이 체제 저항의 목소리를 가장 절박한 순종의 목소리로 변환하는 첫 번째 마법의 순간이다.
관리자급인 만수는 부하 직원 해고를 거부했고, 그래서 본인이 해고당했다. 그런 그가 최종적으로는 경쟁자를 제치고(죽이고) 모든 게 자동화되어 혼자만 있어도 되는 거대한 공장에 재취업한다. 자신이 해고된 이유를 스스로 배반하여 재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가 경쟁자를 죽이는 과정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만수는 살인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 상대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살해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상대가 놓인 현실적인 애환을 깊이 마주한다. 추락한 가장의 권위, 남성성의 상실, 일상의 권태에서 오는 자괴감……. 만수가 제거하려는 경쟁자는 모두 만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는 중이다. 만수는 그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그들을 죽인다. 저들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곧 저렇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통치 논리는 깊이 있는 공감을 연대가 아닌 적대의 언어와 감정으로 변환하는 놀라운 마법을 또 한 번 부린다.
어쩌면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의 리더가 되었을 수도 있는 만수는 결국 비밀리에 살인을 저지르고 재취업에 성공해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남는 데 만족한다. 혁명가, 투사, 저항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끝내 도달한 곳치고는 영 태가 나지 않는다. 아내는 만수의 범죄를 알고도 묵인하여 그의 범죄에 동조한다. 아내 역시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량한 누군가를 조금씩 미끄러뜨려 끝내 살인마저 정당화하게끔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아찔한 하락 공포.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아름다운 (부르주아적) 미감과 그것이 빚어낸 미장센 위에서 사회파 주제를 멋들어지게 선보였다. 심지어 절망의 유머를 더해(자칫 어긋난 유머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배우들의 공로다). 나는 사람들이 박찬욱 영화의 미감과 구도보다도 영화의 주제를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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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난한 이야기에 영화의 개성을 부여하는 윤여정의 마법
우연히 만난 선물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 조민서(윤여정)이다. 강연 중인 민서.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다. 비단 최고의 위치라는 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화려한 삶을 즐기고 있다. 존경받는 민서.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호텔의 관리자가 민서에게 “뷔페 드시고 가실래요?”라고 묻는다. 거절하는 민서.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넓은 집 적적한 민서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민서의 반려견 완다다. 아들에게 전화해 보는 민서. 어머니의 근황이 단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그냥 전화를 끊어버린다. 밥 하기도 귀찮다.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민서. 이 민서의 라이더로 진우(탕준상)가 배정된다. 특별한 만남이 시작됐다. 안면이 트인 진우와 민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반려견 완다와 함께 시작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싱글남 민상(유해진)이다. 혼자 사는 민상. 민상은 깔끔한 타입이다. 깔끔한 타입이라는 점은 자기 소유의 건물에 세 들어있는 진영(김서형)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미다. 진영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온갖 반려동물들이 모여드는 진영의 동물병원. 건물 여기저기에 동물들의 흔적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다 받고 있다. 그러나 민상에게 어마어마한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한국 최고의 건축가 조민서다. 공간 설계를 기획하는 일을 하는 민상에게 민서는 굴러들어 온 호박과도 같다. 좋아! 나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러려면 수의자인 진영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민상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도그보다 '데이즈'
이 영화가 제목이 ‘도그데이즈’인것과 다르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 군상이다. 물론 반려동물들을 다룬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들이 이끈다는 점에서 휴먼드라마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강아지와 등장’인’ 물을 투 트랙으로 끌고 가는 각본 역량과 연출이 좋았다. 글쓴이가 이에 근거를 대고 싶은 것은 김서형 배우가 맡은 진영 캐릭터와 윤채나 배우가 맡은 지유 캐릭터다. 진영은 수의사다. 이 수의사라는 직업이 동물들을 다룬 영화에서 중요한지는 두 말하면 손 아프다. 하지만 핵심은 이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점인데, 이 인물에게 장르적인 재미 하나를 붙이면서 그 설정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주제와 맞물린다는 점은 좋은 선택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또 지유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켜볼 만하다. 이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이 영화에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진 장점 중 하나다. 또 이 캐릭터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이런 입장에 놓여본 관객의 입장에선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글쓴이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의 속성을 손쉽게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관계를 반려동물과 사람의 사이로 치환시킨 것이다.
하지만 반대측면에서 이 영화가 반려동물들의 세계를 깊숙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 중 어떤 것들은 윤리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논의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라면 좀 더 탄탄하게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표적으로 영화 중반부에 진영과 민상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한데, 이 부분에서 드러나는 한 쟁점이 갑자기 확 들어온다. 근데 이 두 사람 중 하나 민상이 반려동물과는 영 친하지 않았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 것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이 문제를 암시하는 것은 다른 캐릭터다. 그러니까 영화 자체가 이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가 파편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소재들이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은 윤여정 배우가 맡은 조민서 캐릭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앞서 쓴 바 그대로 이 영화는 강아지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잡고 있다. 이게 핵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핵심이다 하더라도 강아지들에 대한 내용이 어느 정도는 더 들어가야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다. 민서와 강아지가 어떤 사이고 무슨 관계인지를 더 비추는 것이다. 이는 민서의 서사가 과연 영화에서 어떤 것을 차지하는가? 와도 이어진다. 민서가 이야기의 핵심이 되어 극을 이끄는 것 치고는 윤여정 배우의 개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이 부분에 있어 약간 모순적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윤여정 배우의 캐릭터가 한 대사라고 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현우, 다니엘 혜니 배우가 끌고 가는 이야기에서 장르를 바꾸는 선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장면들은 큰 이질감이 되어 JK필름의 전작 <영웅>이 생각나 진부하게 느껴졌다.
생명을 따스하게
이 영화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생명에 대해 따뜻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구성할 때 인물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화법을 선택했다. 이 화법은 이 영화에서 특정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 한 줄에서도 느껴진다. 그리고 정아(김윤진), 선용(정성화) 캐릭터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설정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도그데이즈>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큰 줄기를 차지하는 두 요소를 중심으로 강아지들을 함부로 대하는 조금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JK필름의 영화들이 억지 감동을 위해 캐릭터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던가 희생시킨다던가 하던 단점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윤리적인 거리감을 잘 지켰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극후반부 엔딩으로 이뤄지는 귀결이 납득 가능하다는 장점으로도 이어진다. 무슨 말이냐? 이 영화의 엔딩은 덜컹거리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다. 만약 이 인물들 중 누군가가 강아지를 괴팍하게 다뤘다면 이 인물들이 이런 동선으로 구성될 거라고 생각이 잘 안 든다. 연출과 플롯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냥 작곡가도 K-POP 작곡가입니다만
물론 약간 작위적으로도 느껴지는 부분이 없진 않다. 바로 이 영화를 소개할 때 나타나는 문구 두 줄이 있다 ‘K-POP 작곡가’라는 문장과 ‘MZ 라이더’다. 뭐 이 두 단어를 쓰지 말라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이 두 개가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라이더’와 ‘작곡가’여도 충분한데, 이 부분을 굳이 지적하는 이유는 이야기에 별 상관없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1차원적인 접근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홍보 카피가 아닌 영화 내적으로 들어간다. 정아가 가진 모성이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모성을 이런 관계에서 가지는 것이 당연히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인물에 이입하기 쉽진 않다. 이 장면 앞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만으로 이 인물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파악하긴 어렵다. 이 감정이입의 어려움은 정아라는 왠지 모르게 ‘K-POP’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1차원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다룬 ‘모성’과 K-POP’은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작곡가라는 직업적 특성(그것도 K-POP)과 부모라는 설정이 이야기에서 중요했다면 이 두 소재에 더 힘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갔다는 점 역시 아쉽다. 왜 이 세계관엔 강아지만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영화에선 앵무새도 등장하는데, 고양이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명에 대해 다룬 영화치고 강아지만 등장하는 건 좀 의아했다. 이렇게 일부 소재를 힘 없게 다루는 방식 역시 JK필름의 수많은 전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적당히 문화생활하는 40-50대를 타깃 삼고 기획한 영화의 느낌이 강하다.
또 이 영화를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민상이라는 인물은 의문부호가 있다. 물론 이 사람이 따라가고 있는 영화 내의 흐름이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이런 사람 많다(심지어 글쓴이도 이래 본 적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인물이 이런 캐릭터였다면 전반부에서 이에 대한 묘사를 더 던져주고 주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아니 오히려 이 인물의 이런 성격을 굳이 이렇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글쓴이는 그런 연출 방식과 장면이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 장면이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진 것이다.
성장형 제작자?
이 영화는 JK필름의 향이 묽은 작품이기도 하다. 글쓴이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팬이라면 ‘JK필름’이라는 단어를 잘 알고 있다. 신파라는 요소를 한국영화계에 유행시킨 공이 큰 윤제균 감독의 제작사 JK필름. <해운대>부터 <공조 : 인터내셔날>까지 인위적인 전개로 영화팬들과 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20/30대의 관객들 중 JK필름의 영화를 싫어하는 경우가 몇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JK필름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봐도 그의 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있지만 무난하게 따스하고 재미있고 강아지가 귀여운 영화가 된 것이다. 글쓴이는 윤제균 감독을 위시한 JK필름의 관계자 분들이 많은 비판을 숙고해서 시나리오를 받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 생각 외의 전개가 어느 정도는 있고 이는 분명한 강점이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무난하게 볼 만하다. 특히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은 오열할 만한 장면이 몇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다. 우리 모두 윤여정 배우가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족적을 남겼던 영화 <미나리>보다 이 <도그데이즈>에서의 연기가 훨-씬 훌륭했다. 이 인물은 카리스마가 있고, 카리스마 이면에 깔려있는 어떤 정서가 있다. 그 정서는 진우를 대할 때 진정성이 되어 행동의 근거가 된다. 이 서사 아래 이야기를 이끌거나 영화의 제작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지점에서도 윤여정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좀 상충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는데, 이 인물이 중심으로 플롯을 끌고 가다 보니 이입하는 데 있어 큰 무리가 없다. 배우가 영화에 강력한 탄력을 만든 것이다. 윤여정 배우가 연기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낀 장면도 몇 있는데 글쓴이만 체감할 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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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안소니 첸 감독 인터뷰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씨네랩 | 특히, 전작 <일로 일로>는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는데요. 감독님의 작품들은 언제나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그 안에 보편성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역시 본인의 청춘과 닮아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더불어, 개인적인 기억을 영화로 확장시킬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솔직히 말해서 <브레이킹 아이스>가 제 청춘을 많이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담아내려고 했고, 그 세대가 제 세대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80년대에 태어났지만, 90년대나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 70~80년대 세대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세대였어요. 그냥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세대였죠. 그래서 저는 요즘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누워서 산다)' 현상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궁금했어요. 왜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꿈을 멈추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걸까? 제 세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갔으니까요.
제가 기억하기론,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사실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예전에는, 예를 들어 상사에게 혼이 나더라도 그냥 참아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내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해요”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돼요. 실제로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에서 회의 중에 어떤 젊은 친구가 갑자기 회의실을 나가더니 우는 걸 보기도 했죠.
이런 차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기도 했고, 특히 영화를 팬데믹 기간 중에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팬데믹 동안 저도 꽤 우울했거든요. 그 불안감, 우울감, 그리고 환멸감을 저 또한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 세대의 청년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 청춘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생일 때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모험을 즐긴다거나 삶을 허비하는 식의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죠. 그래서 이 영화는 저에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다시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또 작품에는 두 개의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이 재미있게 연기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 뒤에서 저와 배우들이 매일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시간이죠. 마치 제가 이 젊은 세대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팬데믹 동안 우울했던 제가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씨네랩 | 특히, 영화 속 세 인물의 청춘은 모두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데요. (꿈에 좌절한 청춘(나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버겁게 달리다 탈이 난 청춘(하이펑), 주어진 삶만 살아내다 의미를 잃은 인물(샤오)를 통해 ‘청춘의 불안’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던 것 같은데, 세 인물 중 가장 공감가는 인물과, 그리기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저는 '하오펑'을 담아내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신 질환을 다루는 게 정말 어렵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영화에 담아내는 건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촬영하면서 점점 더 그(하오펑)와 연결되어 갔어요. 우울과 그의 싸움이 제 싸움처럼 느껴졌거든요. 팬데믹 기간에 제가 느끼던 바로 그 감정들과 씨름하고 있었던 거죠.
아시다시피, 저는 정말 그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떤 지점에서 그와 연결된 거죠. 사실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삶이 저를 절대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야, 계속 갈 거야'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를 촬영하면서, 이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그게 팬데믹 기간 동안 저 자신, 즉 영화감독으로서 겪었던 위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어요. 영화관이 문을 닫았을 때, 정말 너무 막막했거든요. 언제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너무 혼란스러웠죠. 아시다시피 저는 잔잔하고 절제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장르 영화나 공포 영화, 대작 같은 걸 만드는 감독이 아니거든요. 흥행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고요. 저는 정말 조용하고 섬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별다른 사건이 없는 작고 조용한 영화를 보러 극장을 다시 찾게 될 때, 과연 제가 영화감독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약간의 위기나 우울증 같은 것에 빠졌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새로운 출구를 찾는 거잖아요. 이 영화가 저에게는 새로운 출구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말했어요. 제 첫 두 편의 영화는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는데, 이제 제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고향으로 돌아가, 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저 스스로 다짐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땅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에서 영화를 만들도록 스스로 다그쳤습니다. 같이 일해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고요. 익숙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통은 늘 같은 조감독이나 같은 배우들 한두 명이 있었고,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사람들이 있기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그냥 저 자신을 그 밖으로 끌어냈고,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영화를 만들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씨네랩 | 저희는 특히, 단군신화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는데요. 영화가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인 만큼, 100일의 인고 끝에 갈망하던 사람이 된 곰의 서사가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타국의 신화의 어떤 지점이 흥미로웠는지, 극으로 발전시키는데 고민은 없으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음, 중국엔 ‘장백산’이 있고,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백두산’이 있잖아요. 산을 처음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요. 저와 제 프로듀서가 함께 그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나는데, ‘천지’라고 불리는 호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더라고요. 정말 감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꼭 영상으로 담고 싶었고, 이곳을 배경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산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해봤는데, ‘곰’에 관한 이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유명한 한국 노래 ‘아리랑’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그 신화에 대해 더 자세히 읽어봤을 때, 사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모든 세부 사항은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곰이 인내하고 견뎌내서 결국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동했어요.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걸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본을 쓸 때, ‘우리는 그냥 전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직접 곰을 보여줄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저는 ‘나나’라는 인물의 캐릭터와 이 ‘곰’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나가 자신의 실패를 마주해야 하는데, 그 서사에서 위안을 얻거든요. 저는 그 경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감동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네, 저는 그 신화가 지닌 문화적, 정치적 의미나 부담 같은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그 신화 자체, 그 전설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곰’을 영화 속에 데려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씨네랩 | 그리고 영화에 아리랑이 등장하죠. 아리랑을 듣는 세 청춘의 모습을 보면서, ‘승화’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승화’는 에너지를 전환하는 개념인 만큼, 물리적, 심리적인 측면에서 모두 활용되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감독님이 영화를 비유할 때 사용하신 얼음이 가지는 물리적인 성질과 세 인물들이 여러 경험을 통해 얻는 심리적인 변화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을 담고 있는 아리랑이 정말 알맞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한’과 ‘아리랑’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어떤 의미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네, 백두산에 관한 글을 읽어보다가, 그 민요(아리랑)가 백두산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리랑은 여러 버전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주 초기 버전에 ‘가장 추운 겨울에도 백두산에는 꽃이 피어난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그 구절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영화에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캐스팅팀에게 이 곡에 맞는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죠. 그들이 그 가수를 찾아주었고, 그녀를 캐스팅하고 녹음을 진행했어요. 저는 노래가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좀 애절하고, 씁쓸한 느낌이 들게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당신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를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제가 항상 믿어왔던 것이기도 하고, 영화 학교 시절, 파벨 파블리코프스키라는 정말 훌륭한 폴란드 감독님께 배웠죠. 그는 영화 <이다>로 오스카를 받았고, 칸에서도 상영된 <콜드 워>라는 영화를 만들었죠. 그분이 영화 학교에서 저에게 늘 말씀하셨어요.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영화는 정점에 도달할 수 있죠. 제가 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거였습니다. 저는 항상 시와 모호함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 모호함은 '이건가? 아니면 저건가?' 같은 질문에서 오는 거죠. 흑백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영화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회색 지대'에 있을 때 나타나죠. 뭔가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완벽히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지대요.
그게 파벨 감독님이 학교에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거고, 아, 사실 저는 최종 편집본을 확정하기 전에 항상 감독님께, “감독님, 바쁘신 거 알지만, 편집을 마쳤어요. 2일 안에 봐주실 수 있나요? 제가 최종 편집본을 확정해야 해서요.”라고 말하며 편집본을 보내드려요. 그리고 감독님은 항상 저를 위해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씨네랩 | 감독님께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셨는데, 이 부분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 질문 드린 이유는, 감독님께서는 작품 간 텀이 긴 편인데, 작품 구상이나 시나리오 작업 등을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걸 선호하시는 걸까요?
(*안소니 첸 감독은 2013년 영화 <일로 일로>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안소니 첸 | 예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곤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정말 특별한데,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충동이 확 일어났거든요. 팬데믹 동안 2년 내내 집에만 앉아 있는 게 너무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영화감독으로 존재해야 해. 내가 아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중국에 있는 제 프로듀서 파트너에게 연락해서 "영화 만들 겁니다!" 했더니, 그가 "무슨 영화요? 대본 있어요?" 묻더라고요. "아니요" 했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정말 미친 일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한겨울인 12월에 촬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8월이었습니다!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는 8월에 떠올렸고, 10월 4일에 중국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 21일 동안 격리까지 해야 했죠. 그 이후에 백두산을 직접 오르고, 연길의 모든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을 제가 직접 전화로 캐스팅했어요. 중국에서 정말유명한 배우들이라 보통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그런데 팬데믹 기간 중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한가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일이 줄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 그대로 전화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12월에 시간 되세요?" 했더니 그들이 "네" 하더라고요. 아마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답사까지 마친 다음에도 완전한 대본이 없었어요. 조금 더 확장된 스토리와 트리트먼트 정도만 있었죠. 그리고 상하이로 돌아갔는데, 배우들이 다 저를 만나러 날아왔던 게 기억나요. 다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세 명 모두요. 중국에는 개별 룸이 많은데,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주동우 배우를 비롯해서 세 배우가 앉아 있었죠. 그들 뒤편에는 매니저들이 있었고요. 점심을 먹는데 그들이 묻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은 있나요?" 그때는 이미 10월 말이었죠.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 그럼 스토리가 뭐예요?' 이런 분위기였죠. 그래서 제가 스토리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피겨 스케이터가 있는데,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그리고 누구랑 같이 산에 올라가는데, 그러고 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곰을 만나고... 그리고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 있고...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이런 식으로 장면들을 묘사해줬어요. 어떤 장면은 대본이고, 어떤 장면은 그냥 제 머릿속에 있는 거였죠.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이 저를 보더니 '와,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으로 들리네요. 그런데 대본이 없잖아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들에게 물었죠. "그래도 이 영화 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다들 "네"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매니저들은 다들 "아아아아..."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망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설득한 거죠.
결국, 촬영 10일 전까지 아무도 대본을 읽지 못했어요. 제가 촬영 10일 전에 최종 대본을 완성했거든요. 그때 연길에 있었는데,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11월 한 달 내내 연길에 있었던 거죠.정말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11월 20일 오전 9시에 대본을 끝냈습니다. 잠을 안 잤죠.
낮에는 장소 답사를 하고 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쓰고 또 썼죠. 그 사이에 배우들이 베이징에서 연길로 출발했고, 매니저들이 '지금 출발하는데, 대본을 볼 수 있을까요?' 묻는 겁니다. 프로듀서는 '아, 아직 대본이 준비가 안 됐어요. 10시에 드릴게요'라고말했고, 배우들이 탄 비행기가 오후 3시에 도착했죠. 마침내 제 대본이 완성되었을 때, 팀 전체가 복사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무도 대본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복사하고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그리고 저녁 7시가 됐죠.
호텔 방에 배우들, 촬영 감독, 프로듀서, 각 부서 팀장들, 미술 감독까지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처음으로 읽었죠. 특히 배우들이 대본을 읽고, 또 읽고, 많이 읽더라고요. 많이 다른 캐릭터들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촬영 감독님이 "와, 이거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답네요"라 말했고, 저는 "좋아요, 그럼 이제 촬영합시다!" 외쳤습니다. 네, 촬영 시작 10일 전에 대본이 완성되었던 거였죠.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진행하며 안소니 첸 감독님의 MBTI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요. 확신의 E(외향형)일 것 같았지만, 역시나 E(외향형)이었던 감독님. 관련한 일화도 들어봤습니다.
안소니 첸 | (MBTI 아시나요?) 네, E랑 I 같은 거요. 압니다. 제가 고등학교 16살 때 MBTI 테스트를 해봤어요. 기억은 나는데, 제가 완전 외향형(E)이라는 건 확실히 기억나거든요.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외향형인 건 분명해요.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미친 영화였어요. 상하이 격리 호텔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첫 주가 지난 후에, 어느 시점에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어요. "나 정말 큰일에 휘말린 것 같아. 이 배우들을 다 영화에 참여하게 했는데, 대본이 안 나오고, 완성된 대본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 그냥 '프로젝트 취소한다고 하고,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해버릴까?' 싶었죠. 코로나 걸렸다고 하는 게 최고 변명이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친구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 네가 이 미친 영화를 만들겠다고 도전을 시작했으니, 그냥 끝내야지."라고요. 그래서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정말 미친 모험이었죠. 제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요. 매일 심장마비 올 것 같았거든요. 아시다시피, 너무 불확실하니까요. 보통은 대본 하나 쓰는 데 2년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정말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나의 아파트를 찾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러 부동산 중개인들과 약속을 잡고 다른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던 게 기억나요. 중간중간에 시간이 빌 때, 공원을 하나 봤어요. 공원에 들어가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고 했죠. 그런데 사람 대신 동물들을 발견했어요. 원숭이랑 사슴 같은 게 있더라고요.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이곳에 들어가는 장면을 썼습니다. 거기는 동물원이 아니에요. 실제로는 공원인데,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공공 공원이에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라고 상상해보세요. 동물들이 정말 많았죠. 그래서 밤에 그곳을 배경으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정말 비현실적이었고, 제가 본 모든 것이 영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즉흥적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좀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고 싶다면, 아직 젊을 때 지금 해야 해." 왜냐하면 제가 40대, 50대가 되면서는 이런 종류의 위험을 감수할지 모르겠거든요. 위험을 덜 감수하게 되고, 훨씬 안전하게 가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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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게임을 영화에 그대로 옮긴 액션 영화
좀비 게임인 <레지던트 이블>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중학교 때 <새벽의 저주> 원작을 처음 접했고 꽤 공포스러웠던 그 느낌 때문에 이후 좀비 장르를 종종 챙겨봤다. 19금이었지만 비디오 사장님과의 친분 덕에 그 당시 어렵게 볼 수 있었지만 매번 내가 보고 싶었던 공포영화를 다 볼 수는 없었다. 그런 나의 욕구를 채워주는 게임이 바로 <레지던트 이블>이었고, 시리즈의 3편이었다. 3편의 주인공은 질 밸런타인인데, 실제 영화화된 <레지던트 이블 2>에 처음 등장한다.
즐겨하던 게임이 영화로 나왔을 때 그 기대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2002년 <레지던트 이블> 1편이 개봉했을 때 바로 극장의 표를 예매하고 관람했다. 비록 원작 게인에 등장하지 않던 앨리스(밀라 요보비치)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극의 중심이 되었지만 게임의 분위기만큼은 그대로 옮겨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와 변이 된 괴물들이 멋진 액션과 함께 연출되어 굉장히 만족스럽게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이후 DVD 가 출시되었을 때 구입을 하였고 여전히 지금 집의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
폴 WS 앤더슨 감독이 잘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게임 원작을 경험해본 플레이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의 데뷔작은 <모탈컴뱃>(1995)이다. 이 영화도 아케이드 액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그리고 그때부터 CG를 활용한 액션 연출에 흥미가 있던 감독이고 그건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자신이 6편까지 연출함으로써 마무리하고 원작이 없는 영화들을 찍어왔지만 사실 그중에서 성공한 영화가 거의 없다. <데스 레이스>는 그나마 좋은 반응이 있었지만 <삼총사 3D>, <폼페이:최후의 날> 등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지워진 지 오래다.
그래서 그가 다시 게임을 원작으로 한 <몬스터 헌터>를 연출한 것도 그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장르를 하려고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스토리 라인을 거의 없애버렸다. 주인공이 특수한 세계에 빠져 몬스터를 피해 탈출하려고 싸운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액션으로 채웠다. 대사도 거의 없다. 마치 게임 인트로를 보는 듯하고 보는 재미는 있지만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없다. 이야기가 없으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 리 없다. 아마도 예전처럼 원작 게임을 했다면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서사 자체가 없는 영화에 감흥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실제 부부인 배우 밀라 요보비치와 폴 앤더슨은 계속 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같이 찍은 영화들은 제목만 바뀌었을 뿐,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다른 버전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이 이들을 부부 사기단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 그만큼 영화가 사람들의 기대에서 많이 빗겨 나 있는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챙겨보던 감독의 영화들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앤더슨 감독이 <몬스터 헌터>의 속편을 연출한다고 해도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몬스터 헌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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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첫 주 50만 명을 돌파한 <시민 덕희>! 한편 북미에서는 제이슨 스타뎀 주연 영화 <더 비키퍼>가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1월 4주차 박스오피스 같이 만나보아요!
[국내 박스오피스]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시민 덕희> 손익 분기점 160만 전후로 예상되며 개봉 첫 주 주말에 5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개봉 2주차의 <웡카>, 3주차에 개봉하는 다수의 작품들로 입지가 줄어들 것으로 예견되며 장기흥행엔 어려움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제이슨 스타템 주연의 <더 비키퍼>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영화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각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 연출의 데이비드 에어이가 연출한 액션영화로 <민 걸스>의 관객 수가 대폭 감소하면서 1위로 수월하게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웡카>는 1억9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3위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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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결말을 찾기 위한 정글 어드벤처
로스트 시티 (The Lost City, 2022)
“이야기의 결말을 찾기 위한 정글 어드벤처”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코미디, 멜로/로맨스, 모험
러닝타임 : 111분
감독 : 애덤 니, 아론 니
출연 :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래드클리프, 브래드 피트
개인적인 평점 : 3/5
쿠키영상 : 1개 (엔딩 크레딧 초반)
로스트 시티 줄거리
전설의 트레저를 차지하기 위해 재벌 페어팩스(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유일한 단서를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산드라 블록)를 납치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비지니스 관계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만 하는 책 커버모델 앨런(채닝 테이텀)은 의문의 파트너(브래드 피트)와 함께 위험한 섬에서 그녀를 구하고 무사히 탈출해야만 하는데… 적과 자연의 위험이 도사리는 일촉즉발 화산섬 대환장 케미의 그들이 생존하여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의자에 묶인 반짝이 우주복을 입은 산드라 블록과 열심히 수레를 미는 채닝 테이텀, 이들 뒤로 터지는 불꽃과 광기 어린 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 그 옆으로 보이는 브래드 피트. 이 포스터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아 이건 재밌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 영화 <로스트 시티>
남편의 부재 후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와 책의 커버모델 ‘앨런’은 억지로 마무리 지은 모험 소설을 홍보하기 위해 북투어를 시작한다. 전설의 보물을 찾기 위해 눈이 돌아있던 재벌 ‘페어팩스’는 새로 나온 로레타의 소설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보물의 단서를 발견하고 로레타를 납치해 섬으로 데려간다. 앨런은 로레타를 구하기 위해 의문의 파트너와 함께 섬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페어팩스와 부하들의 손을 피해 섬을 탈출하기 위한 여정을 벌인다.
잃어버린 보물과 결말을 찾아서
<로스트 시티>의 주인공 로레타와 앨런은 목표를 찾아 달리다 나도 모르는 새 옆길로 빠져버린다. 그나마 앨런은 고민을 거쳐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도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열심히 커버 모델 일을 하지만, 로레타는 의무감에 밀려 억지로 소설을 마무리짓는다. 소설에 대한 작은 애정도 남지 않은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설은 당연하게도 매가리가 없다. 무기력증에 빠진 로레타는 페어팩스의 손에 끌려온 섬에서 자신의 소설과 똑같은 전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고, 새로운 결말을 찾기 위해 페어팩스의 단서에 손을 댄다.
이 모험은 페어팩스가 말한 고대의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로레타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모험 소설의 진짜 결말과 잃어버린 열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모험인 온갖 위험과 고난이 도사리고 있지만 두 사람은 함께 고난을 거치며 달달한 결말을 찾아간다.
아쉬웠던 정글 어드벤처
정글 어드벤처, 보물 찾기라는 컨셉을 보면 최근에 개봉했던 <언차티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작년에 개봉했던 <정글 크루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보물 찾기는 <언차티드>와 모험 중에 피어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정글 크루즈>와 닮았다. 두 작품을 적절하게 섞은 듯,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로스트 시티>는 소재가 보장하는 기본 재미는 챙겼으나, 훌륭한 배우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운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제일 기대했던 캐릭터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악역 페어팩스와 브래드 피트의 파트너 역할이었는데 페어팩스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의문의 파트너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그가 빠지는 순간 분위기가 팍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달까.
주연을 맡은 산드라 블록은 여전히 아름답고, 채닝 테이텀은 푼수 같은 커버 모델 앨런을 귀엽게 소화했지만 이 캐릭터들만으론 채울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영화의 자막이다. 물론 번역이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가끔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애매한 줄임말 같은것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단어들 때문에 당장 웃음이 나야 할 장면에 웃음이 아닌 “이게 뭐야?”하는 말이 먼저 나왔다.
가볍게 보긴 좋지만, 꼭 극장에서 볼 이유는…
매력이 넘치는 배우들과 그들의 환장하는 케미를 중점으로 밀고 나가는 이 영화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ㅎㅎ..ㅎ” 이상의 큰 웃음을 유발하기엔 모자란 느낌이 있다. 그래도 초중반부까지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재미가 있는데 중반부 이상을 넘어가면 어느 순간 결말이 그려지게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본건 오로지 배우들과 분위기 덕분이었다. 가볍고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라서 정말 머리를 비우고,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으면서 관람했다.
비중이 많진 않았지만 영롱한 눈에 광기를 가득 담은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느끼한 캐릭터지만 묘하게 매력적이고 너무 잘생겨서 계속 쳐다보게되는 브래드 피트의 캐릭터만 봐도 한 번쯤은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할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다만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일까? 묻는다면 섣불리 답하기 어렵다. 잠시 등장하는 잃어버린 도시 외엔 큰 볼거리가 없기도 하고, 압도적인 음향/음악…이라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관객들의 눈도 높아지고,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져서… 이벤트나 할인 가격이 아닌 이상 정가 15,000원을 전부 다 내고 본다면, 관람료가 아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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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틴이 되고 싶었던 동은이
이 글은 영화 [검은 수녀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 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경고했다.
예전에 영화 파묘에 대해 리뷰를 썼다가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개소리 중 하나는 살다 살다 오컬트 장르를 분석하는 인간을 다 본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욕이었다.(보통 그런 사람은 브런치 계정만 있지 글이 없는 경우가 99.9%라서 그런 악플은 남겨둘 가치도 없어서 그냥 지움) 물론 그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도 욕이 하찮아서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 오컬트 영화를 리뷰하는 날엔 그 사람이 반드시 내 리뷰를 보고 아 오컬트에 이런 매력이 있구나. 혹은 아 모든 장르마다 공식이 있다더니 오컬트도 예외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반드시 좋은 영화여야만 했다. 덜컥 상이라도 하나 받게 되는 영화라면 어쨌거나 작품성 면에서는 무시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알량한 생각도 있었다. 대중적이라면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몰랐다. 천만명이 봤다고 반드시 괜찮은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그래도 그 악플러에겐 대중적이라는 말로 밀어붙이기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 ”다음 리뷰“가 하필 이 영화일 거라고는 나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순수하게(?) 영화에 대한 투덜거림만 늘어놓을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누가 악플러인지 나조차도 구분을 못 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가 글러먹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애초에 잘못된 것은 의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감독은 10년 전 영화인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따르는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구마자가 되고 그런 사람을 퇴마 하는 신도들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엑소시스트] 때부터 고유하게 내려온 오컬트 장르의 특성일 뿐. 세계관을 따른다는 말은 과하다 못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아마도 영화의 말미에 최부제(강동원)가 등장하기 때문에 검은 사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혹은 앞으로 그가 미카엘라(전여빈)와 함께 다음 편에서 고스트 버스터(?)를 할 거라는 예상을 하게 해서 스핀오프라는 말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모든 시도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또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반대인 등장인물들의 성별도 나를 화나게 한다. PC적인 의도는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서사 어쩌고를 언급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표절”을 피하려는 의도였어야만 그래도 화가 덜 날 것이기 때문이다.
첫 등장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유니아(송혜교)를 본 순간 깨달았다. 감독은 이 캐릭터의 설정을 앞 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영화 [콘스탄틴]에서 따왔다는 것을. 이 한 장면으로 감독은 매우 많은 면을 설명하려 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많은 시간을 절약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얄팍한 의도를 숨기려면 표절을 피하기 위해 성별을 남자가 아닌 여자 캐릭터로 반드시 바꾸어야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우 대차게 실패해 버렸다.
송혜교라는 배우가 전작인 글로리를 통해서 어느 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았음에는 이견이 없지만. 감독이 원했던 비딱하면서 종교와 교리, 그리고 이단의 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역할에는 완벽하게 스며들 만큼의 내공은 아직 없었다. 특히 욕설을 내뱉는 연기는 마치 영화 [아수라]에서 세상 어색하게 욕을 하던 정우성이 생각날 만큼 너무도 경건하고 타격이 하나도 없어서. 저걸 진짜 오케이를 준 컷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캐릭터 기용에 있어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영화 자체를 통틀어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은 허준호 배우이다. 성직자의 몸에 깃든 악령이라니!! 그러나 영화는 구마자가 된 이후의 허준호를 그 어떤 설명이나 쓰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서사에서 아웃시켜버린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진욱의 출연이다. 그다지 역할이 크지도 않고. 이성적인 역할, 혹은 여주인공들에게 반대하는 역할로서의 설득도 크게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장면까지도 야무지게 출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구마(퇴마)라는 것을 진행하고 실행하기 위해 일어나는 수많은 반대들과 위험성에 대해 말하려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문제는 이 모든 캐릭터들을 데리고 그 어떤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와리가리만 하다 시간만 채우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초반부뿐만 아니라 후반부로 치닫는 이 모든 시간들에서 위험성은커녕 지금 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구마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컬트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도 있는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한 문제가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영화가 나를 가장 화나게 한 부분도 그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두 주인공이 가진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이어야만 한다 진짜)인 의심을 할 수 밖엔 없지만. 타로카드 세 장 믿고 진행하는 템빨 크로스오버 굿판이라니. 그것도 수녀가.
진정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이런 방법은 피했어야만 한다. 차라리 구마 의식 자체에 대해 반감이 있었던 미카엘라에 대해 좀 더 많이 설명했더라면 이런 이질감은 많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시도와 의도들이 어긋나서 보는 내내 불쾌함을 감출 수 없는 영화였다.
[마치면서]
보통 좋은 영화든 안 좋은 영화든.
영화라는 것을 보고 나면 나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또 줄여서 리뷰를 쓰는 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는 쓸 말조차 없어서 한참이고 빈 페이지를 띄운 채 다리를 달달 떨며 문장을 잡아내야 했다. 한동안은 오컬트 영화에 첫 출연하는 주연배우들의 덕을 보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유쾌한 결과로 기억되지는 않을 영화라는 예상을 해본다.
[이 글의 TMI]
1.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표를 못 구해 강제로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 1인
2. 그릭요거트 이제 지겹다. 아침으로 뭐 먹지.
3. 백오십 년 만에 우동 먹었는데 정제 탄수 최고!!!
4. 장갑 잃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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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저링3 - 악마?가 시켰다'보기 전 확인할 공포?의 연대기 - 컨저링 유니버스 정주행?
영화 흥신소 - 알고보면 쓸데없이 재밌는 영화리뷰
워렌부부의 퇴마기인 '컨저링'으로부터 시작된 공포의 세계관을 재미있게 알아보자
컨저링 유니버스
개봉순
컨저링(2013) - 애나벨(2014) - 컨저링2(2016) - 애나벨 인형의 주인(2017) - 더 넌(2018) - 요로나의 저주(2019) - 애나벨 집으로(2019)시대순
더 넌(1952) - 애나벨 인형의 주인(1955) - 애나벨(1967) - 컨저링(1971) - 애나벨 집으로(1972) - 요로나의 저주(1973) - 컨저링2(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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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디즈니 플러스 티비시리즈 총정리 (feat. 마블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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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인트로
00:52 완다비전
02:20 팔콘앤더윈터솔져
04:34 로키
06:48 왓 이프...?
08:40 호크아이
09:41 미즈마블
10:42 문나이트
11:44 쉬헐크
12:27 NordVPN
14:20 디즈니플러스의 의미"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0. 11. 2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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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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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마법, 변신, 팀플레이까지..!!! 바쁘다 바빠 도적생활..; 일단 한 잔 하고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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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칸영화제 감독주간 수상작 카이에 뒤 시네마 올해의 영화 TOP 10 “로맨스의 경이로움과 변증법, '애니홀'에 비견되는 작품” '어거스트 버진'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 작품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25년 4월 23일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