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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2025-09-30 22:43:27

그 때의 감성을 담고있는 무해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후기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감독: 허진호

 

출연: 한석규, 심은하

 

 

 

 

 

190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2000년대 초반의 영화들은 가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시기이다. 현재까지 명작이라고 일컫어지는 영화들은 거의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이며 개인적으로 나는 그 시기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스마트폰 대신 전화를 사용하고 카톡대신 편지를 사용하던 그 시절은, 분명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와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온통 자극적이고 뻔한 스토리들이 점철된 요즈음의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이렇게 옛날 영화들을 꺼내보고 싶어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자극적인 영화들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순수하고도 무해한 영화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한석규와 심은하가 연기한 정원과 다림을 보고있자면 마음 한 구석에 아릿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주차단속 요원인 다림(심은하)은 변두리 사진관에서 사진사로 일하고 있는 정원(한석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주변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정원의 인생에 다림의 등장은 아주 큰 변수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정원의 상황과, 그런 그를 기다리기만 하는 다림의 상황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되어 쉬이 가시질 않게 된다.

 

 

 

 이 영화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영화이다. 감독은 상황설명이나 표현에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절제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다림과 정원이 서로를 생각하며 쓴 편지의 내용 역시 관객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편지가 아니었을까 상상만 할 뿐이다. 때문에 스토리는 분명 신파이지만 영화는 결코 신파였다는 느낌을 남기지 않는다. 감독은 눈물을 남기기보단 여운을 남기는 쪽이 더 영화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이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신파가 빠지니 다림과 정원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에서는 20년 전의 한석규가 등장한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그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연기력은 지금이나 그 때나 정말 좋았다. 죽음을 덤덤히 준비하면서도 무너지는 마음을 너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면서도 장난인척 곧 죽는다는 말을 꺼내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파출소에서 남들과 싸우는 척 무너지는 한석규의 연기는 정원의 신정이 어떨지 십분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또한 다림에게 편지를 전해주고자 뛰어다녀놓고서도 다림이 멀리서 웃고있는 모습을 보자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석규만큼이나 다림을 마치 자신인 것 처럼 연기한 심은하도 대단했다. 사랑에 있어 당당하게 먼저 다가가는 스무살 여자의 마음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달라질 것이라는 정원의 말처럼 다림은 정원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놀이공원에 다녀오고 사귈 것 같을 때쯤 정원이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추자 기다리다 못한 다림이 사진관으로 돌을 던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애타고 속상한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림과 정원의 감정선은 아쉬움이 남는다. 정원의 첫사랑으로 나오는 지원은 사실 등장하지 않고 언급만 되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사진관에 걸려있던 지원의 사진을 내리고 다림의 사진을 거는 것으로 정원이 이제는 다림을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원의 등장이 필요했던 것은 알겠으나, 굳이 지원을 등장시켜 정원과 마주하는 장면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정원은 지원에게 미련이나 감정이 없는 상태였던 것 같으니까. 차라리 그 분량에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표현했다면 서사가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극 마지막에 정원이 나레이션으로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다림도 정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다림은 정원과의 사랑을 계속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8월의 크리스마스> 인 것일테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어도 그들이 처음 만난 한여름, 8월에 계속 추억이 멈춰있기 때문에.

 

 

작성자 . 이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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