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10-03 19:51:36
사마귀 | 칼이 있어도 쓸 줄 모르는 어설픈 킬러
넷플릭스 <사마귀>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변성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핀오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까지. 변성현 감독의 작품은 명확한 특징이 있다. 바로 관계성이다. 그의 영화는 유달리 두 주인공 간의 양가적 감정을 쫄깃하게 그려낸다. <불한당>만 해도 그렇다. 겉보기에는 누아르지만, 그 내용은 명백히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의 사랑 이야기였다. 특히 서로 끌리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긋나서 유달리 더 슬프고 안타까운 로맨스였다.
<킹메이커>도 마찬가지다. 외면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비서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룬 정치물, 시대극이었다. 실상은 두 주인공의 애증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드라마였다. 이상적인 정치를 꿈꾼 '김운범'(설경구)과 현실적인 구도로 정치 판세를 읽어냈던 '서창대'(이선균). 서로서로 누구보다도 필요로 하지만, 정치와 현실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동행할 수 없었던 빛과 그림자의 감정선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길복순>도 다르지 않았다. '복순'(전도연)의 아버지를 죽이러 간 자리에서 첫눈에 복순에게 반한 '민규'(설경구). 애써 그 애정을 내색하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 복순에게 살해당하면서 그 애정을 드러낸다. 이 은근한 로맨스 덕분에 <길복순>은 복순과 딸의 관계가 회복되는 가족 드라마와 킬러 간의 살벌한 액션 영화의 틀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었다.
변성현 감독이 제작과 각본 작업에 참여하고, <길복순>에서 조감독이었던 이태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스핀오프 영화 <사마귀>에서도 변성현만의 개성은 유효하다. '이한울'(임시완)과 '신재이'(박규영)의 관계가 친구 이상으로 결코 진전될 수 없는 이유를 파고드는 애증의 드라마가 액션보다도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재이는 자신을 이성으로 좋아하는 한울의 마음을 결코 받아줄 수 없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열등감 때문이다.
1%와 99%를 가르는 벽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이다. 이 말의 핵심은 '1%의 영감'에 있다. 99%의 노력은 의지로서 해낼 수 있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원했던 성과를 이룰 수 없다. 1%의 영감이 타고난 사람에게만 주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감을 못 받는 99%의 사람은 1%의 사람을 부러워하고, 더 많이 노력해도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어서 좌절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한울과 재이의 관계가 정확히 그러하다. MK Ent. 훈련생으로 인연을 맺은 둘. 훈련생 시절 재이는 대련에서 한울을 꺾었지만, 정작 재이가 회사에서 방출됐다. 민규도, '독고'(조우진)도 재이가 노력하더라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재능을 한울이한테서 목격했기 때문. 그 이후 중소 기획사 소속이 된 재이는 자격지심을 품고 산다. A급 킬러 '사마귀'가 된 한울이와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그를 이겼던 기억은 괴로운 미련일 뿐이니까.
한울이는 다르다. 차민규와 동급의 킬러로 거듭난 그. 잠시 휴가를 떠난 일주일 사이에 복순이 민규를 죽이고 MK Ent.가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해도 사마귀에게는 별일이 아니다. 그를 스카우트하려는 회사는 차고 넘치니까. 이때 한울이는 겸사겸사 재이와의 창업을 선택한다. 독립하여 업계에서의 입지도 다질 겸, 사정이 어려운 후배 킬러들도 도울 겸, 그리고 재이와의 관계도 진전시킬 겸.
문제는 그의 태도다. 그는 '작업' 의뢰 중 대부분을 본인이 맡거나, 재이에게 넘긴다. 다른 직원들의 실력은 대놓고 무시한다. 재이가 그런 태도를 지적하면서 결투를 신청했을 때도, 그는 일부러 재이에게 져준다. 얼른 갈등을 매듭짓기 위해서.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관계는 멀어진다. 악의 없이, 호감에 기반한 한울이의 행동이 재이 입장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동정, 더 나아가서는 능욕과 경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정과 배려라는 굴욕과 모욕
흥미롭게도 악화일로인 한울이와 재이의 관계는 현실의 단면이기도 하다. 현대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이룬 엘리트와 일반 대중 간의 거리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엘리트들은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아 '성공'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재능이 때마침 필요했던 사회적 환경의 역할을 때때로 간과한다. 그들은 자기 노력과 그 대가만을 강조하면서 오만해지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자를 멸시하며, 성과를 독점한다.
이러한 승자의 오만은 패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자존심에 상처가 난 패자는 반발한다. 여기서 핵심은 반발이 아니다. 자존심이다. 패자는 승자들의 노력이나 재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패배를 냉정하게 인정한다. 노력을 기울일수록 1%의 영감이 만드는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사마귀를 이겼다고 홍보하는 재이도 속으로는 그의 실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가 일부러 져줬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패자는 한울이가 베푼 배려나 동정 대신, 존중을 원한다. 끝내 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승부로써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것. 한울이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재이는 그를 떠나 게임 회사 CEO '벤자민'(최현욱)의 손을 잡고 새 회사를 차렸다. 재이의 과거 사장인 '남배수'(전배수)도 살려줄 테니 조용히 지내라는 한울이의 제안을 거부한다. 실력이 부족하다며 인격적으로 굴욕감을 준 한울이의 오만함이 문제였다.
최선을 다한 패배와 존중
독고가 선택한 최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MK Ent.의 개국공신이었으나, 민규에게 품은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결투를 신청했다가 패배한 뒤 은퇴한 베테랑 킬러 독고. 민규의 사후 MK Ent.를 장악한 그는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려 한다.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난 사마귀와 벤자민의 후원을 받아 새 기획사를 차린 재이를 모두 죽이려는 것. 이에 세 주인공은 한데 얽혀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때도 한울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독고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핑계 삼아 적당히 힘을 빼고 결투에 임한다. 재이가 위기에 처한 결투 중반부터는 아껴둔 힘을 꺼내지만,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 독고가 무력해질 수준까지만 그를 제압한 뒤, 일전에 민규가 독고에게 제안했듯이 다시 한번 은퇴를 권유한다. 독고가 은퇴 제안을 거부하자 그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넌더리를 내기도 한다.
재이는 다르다. 그녀는 거침없이 독고의 배에 칼을 꽂는다. 목숨을 건 결투에서 킬러답게, 명예롭게 죽을 기회를 준다. 독고는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재이가 준 기회를 떳떳하게, 의연하게, 또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생을 마감한다. 승자의 여유와 어설픈 배려가 오히려 인격적인 굴욕과 모욕이라는 사실을 독고와 재이는 알았기에 가능한 최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핀오프 작품으로서 <사마귀>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제2의 차민규, 길복순, 사마귀를 꿈꾸지만, 그들처럼 되지 못한 킬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세계관에 폭을 넓혔으니까. 이에 더해 필연적으로 패자일 수밖에 없는 킬러들을 통해 1%의 천재가 아닌 99%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다. 특정 능력의 유무에 따른 양극화가 극심한 현대 사회의 현황을 짚어내며 시리즈에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왜 칼이 있는데 쓰지를 못하니
문제는 <사마귀>의 구조다. 확실한 특장점이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작이 회사에 소속된 샐러리맨으로서 킬러의 비애를 다뤘다면, 스핀오프는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취업이나 창업도 어렵고,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막 사회에 발 내딛는 이들이 방황하고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울과 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구조를 짜야 한다. 그런데 <사마귀>의 구조는 정반대다. 주인공들의 처지를 파악하거나 공감하기도 전에 그들이 취업과 창업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를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한울과 재이의 서사는 중요성에 비해 밋밋하다. 시의적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캐릭터 설정만 보더라도 칼이 있어도 쓰지를 못하는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다. 애초에 사마귀는 주인공 감이 아니다. 타고난 천재이자 업계 1위 킬러로 설정된 이상, 그가 아무리 어려움을 겪고 고뇌에 빠졌다 해도 일반적인 청년의 고통을 공유하는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열등감에 발버둥 치는 재이가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더 쉽다. 이처럼 주인공을 잘못 선정했으니, 한울이와 재이의 관계에도 재미가 붙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마귀를 보여주는 방식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 차를 끌고 다니며, 파란 조명의 클럽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물. 이러한 묘사는 킬러들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들에서 보이는 묘한 기시감만 짙게 만들 뿐이다. 결국 가장 쿨하고 트렌디하게 사마귀라는 인물을 소개하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사마귀>는 가장 뻔한 방식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만다.
선배의 아성은 넘지 못하다
이에 더해 악역인 벤자민을 횔용하는 방식도 어설프다. 그는 능력주의 사회의 승자가 지닌 오만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능의 유무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그들을 사업 확장의 도구로만 대하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느낄 모욕감은 고려하지 않는다. 재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고에게 목숨을 건 승부를 청하거나, 자기 회사 소속 킬러를 재이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식이다.
그런데 정작 <사마귀>는 벤자민의 오만함과 무신경함이 아닌 잔인함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성공한 IT 회사 CEO가 알고 보니 사이코패스 범죄자라는 클리셰에 갇혀 버린다. 더 나아가 그가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이는 한울과 재이의 감정선도 약화한다. 벤자민이라는 악역의 의미가 모호해지니, 그에게 놀아나는 주인공의 서사도 덩달아 의미를 잃는 것. 그 결과 <사마귀>의 의도와 메시지 또한 초점을 잃고 흐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액션의 만족도도 낮으니 <사마귀> 단점은 더 눈에 잘 띈다. 전작인 <길복순>은 호불호가 갈려도 화려한 액션 시퀀스만큼은 호평받았다. 특히 차민규와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길복이 온갖 수를 계산하는 과정을 파노라마로 보여준 연출만큼은 신선했다. 비록 자세히 뜯어보면 가이 리치나 매튜 본 감독의 연출에 비해 미흡한 장면도 있었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설정과 연출이었기에 더 인상적이었다.
반면에 <사마귀>의 액션 연출은 특색이 없다. 사마귀와 독고가 각각 낫과 톤파를 사용하는 콘셉트는 독특하지만, 이를 유달리 강조한 연출은 보기 어렵다. 또 액션의 분량 자체가 적다 보니 역동적인 구도나 준수한 타격감도 빛을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사마귀>는 <길복순> 선배의 아성을 넘지 못한 스핀오프로 막을 내린다. 이야기의 재미가 제대로 안 전해지는 가운데, 의도도 모호해지고, 눈도 딱히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구현을 못 하면 무의미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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