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10-06 20:37:05
블랙 코미디로 그린 어느 가장의 헛소동
<어쩔수가없다> 리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다가가기 어렵다. 취향 차이도 아니고 작가주의에 입각한 감독만의 예술의 벽이 높아서도 아니다. 그의 영화는 인간은 물론 사회의 심연까지 깊게 비추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 거울이 허구를 통해 왜곡되거나 또는 너무나 직접적으로 비춰 시선을 피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보고 싶어진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내가 외면한 것을 이 감독은 어떻게든 끄집어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시기에 본 <어쩔수가없다>는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작품이었고,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작품이었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깊게 판 만수(이병헌)는 오랜 노력 끝에 사랑하는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아이,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과거 자신이 살던 집을 리모델링해 살고 있다. 올해의 펄프맨 상을 받을 정도로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모든 걸 ‘다 이루었다’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터인 태양 제지가 외국계 기업에 넘어가고 그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이후 만수는 마트에서 일하며 면접은 보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제지 회사 중 그나마 튼튼한 문 제지에 찾아가 인사 담당자에게 읍소하는 만수.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작업반장 선출(박희순)에게 굴욕만 당한다. 이후 만수는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위험한 작전을 세운다.
| 박찬욱 스타일의 <모던 타임즈>
<어쩔수가없다>는 블랙 코미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이 작품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떠오르게 한다. 감독 자신도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망가지는 개인과 노동자의 이야기라서 찰리 채플린과 그의 영화가 생각 안 날 수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자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급변하는 사회 시스템에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그 자체로 웃프다. 만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종이밥만 먹었던 그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해 낙오자가 되고, 어떻게든 과거처럼 되돌아가고 싶어 아등바등거리는 소동극은 웃음과 눈물을 함께 데려온다.
이런 만수는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문 제지 작업반장 선출을 죽이기보다는 자신의 경쟁자인 범모(이성민), 시조(차승원)을 죽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을 자른 윗 선에게 총구를 겨눌 용기조차 없는 이 남자가 고작 하는 거라곤 자신과 동일 선상에 놓인 경쟁자를 죽이러 다니는 것뿐. 모두의 예상처럼 어설픈 그의 행동은 안 들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을 노출하고 흘리고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과 변수가 합쳐지며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 자체로의 묘한 쾌감이 있다.
특히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크게 들리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만수와 범모, 그리고 범모의 아내인 아라(염혜란)의 육탄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큰 노랫소리에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오해와 진심이 오가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 행각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전한다.
| 앓던 이를 빼는 순간 인간성 상실?
앞서 소개했듯이 만수는 고용주가 아닌 경쟁자이자 같은 노동자들을 죽이러 다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어지는 경쟁 체제를 빗댄 이 관계는 우리 가족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자기합리화에 가닿는다. 제목인 어쩔수가없다는 이 자기합리화의 주문과도 같다.
매번 손가락으로 머리를 치며 합리화의 늪에 빠지는 만수는 어떻게든 경쟁자들을 하나둘씩 제거하는데, 흥미로운 건 이 경쟁자들이 처한 상황이 만수의 상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범모가 술에 의존한다는 점과 아라의 불륜은 만수에게 남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시조 또한 만수와 자동차 기종도 같고 딸을 향한 부성애가 남다르다. 이런 점에서 만수의 살인은 자기 분신을 하나씩 제거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제지에 들어가기 위해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한 노력처럼 그의 유일한 취미인 분재와 동일한 방법으로 자르고, 고정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만수가 얻는 건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자 실직 후 상실된 남성성이다. 가장, 남편 구실을 못 하는 상황에서 만수는 점점 자신의 지위가 낮아진다. 아내의 일터인 치과 의사를 견제하는 그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대로 그가 잃는 건 인간성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은 하나둘씩 제거하면서 취업의 문턱에 가까워지지만, 그로 인해 그가 가진 인간적인 면모, 즉 윤리와 도덕성은 말살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건 그를 괴롭혔던 앓던 이다. 극중 치통은 그를 계속해서 괴롭히는데, 인간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윤리적 선을 넘어 보내는 위험 신호처럼 활용된다. 선출과의 술자리를 통해 결국 앓던 이를 뽑게 되는데, 이후 벌어지는 그의 범행은 과거의 만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원하는 직장을 얻지만, 딸이 말하는 것처럼 벌레가 배나무잎을 갉아 먹는지도 모르는 형국에 다다른다.
| 가을에서 겨울, 태양에서 달로 가는 여정
영화는 처음과 끝에 극단적인 분위기로 대구를 이룬다. 가을에서 겨울로, 태양(태양제지)에서 달(문 제지)로, 빛에서 어둠으로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이 형식은 그 일을 겪은 후 더 이상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만수 가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만수의 살해 행각을 알게 된 미리는 가족을 위해 진실을 함구한다. 만수가 남성성을 잃고 싶지 않은 것처럼, 미라 또한 힘들었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데, 그 또한 중산층으로 머물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진다. 진실을 덮고 아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미라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를 땅에 묻고 그곳에 나무를 심어 어떻게든 열매를 맺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영화는 이 가족에서 그 영역을 확장해 AI 자동화가 이뤄지는 산업 현장까지 이어진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했던 일을 AI가 대체되는 상황에서 만수의 어쩔 수 없었던 행동들은 모두 다 헛수고처럼 보인다. 곧 AI가 산업 전반을 잠식할 예정인 상황에서 취업에 성공했지만,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기계들만이 즐비한 공장에서 홀로 있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고 애처롭다. 그 모습마저도 어쩔 수가 없는 일처럼.
덧붙이는 말
유독 이번 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있다. 근데, 이런 반응은 크게 놀랍지 않다. 언제부터 우리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태평양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나? <공동경비구역 JSA> <헤어질 결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불편하고, 껄끄럽고, 보기 힘들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가지치기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의미가 곳곳에 내포되어 있어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이고,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현하지만, 그 강도가 세지는 않다. 극장 상영이 끝난 후 왼쪽에 있던 관객은 “이게 뭐야!”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오른쪽에 앉아 있던 관객은 엔딩크레딧까지 곱씹으며 가장 마지막에 일어섰다. 이번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변함없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감독의 영화는 변함없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영화는 흥행과 거리가 살짝 멀어 보인다. 아쉽긴 하지만 예상했던 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건 국내 영화로서 관객 스스로 사유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간에 영화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이다. 그게 <어쩔수가없다>의 큰 미덕이지 않을까. 물론, 감독의 독특한 미장센을 보는 맛과 배우들의 호연도 미덕이다. 특히 염혜란의 연기는 오래 기억될 듯싶다.
사진출처: CJ ENM
평점: 4.0 / 5.0
한줄평: 현 노동자들의 현실을 탐색한 깐느박의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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