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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14:31:27

너는 나의 신이었다

영화 <3670>을 보고

 

만물을 보듬어준다는 신은 말한다.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사실 이같은 언사는 인간이 만들어낸 말이다. 신이 지금의 세상을 보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누군가의 사랑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세상. 신은 사랑을 차별하는 이들을 탓했을 것이라 믿는다.

 

 

 

철준과 영준, 두 사람은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다. 신을 믿고, 신을 믿지 않는 두 사람은 교회 앞에서 둘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간증의 시간, 철준은 신의 도움으로 지뢰밭에서 살아남았다 말한다. 지금은 나를 부정하는 신일지라도 철준은 그 순간만큼은 신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말한다. 인생의 분기점에 놓인 영준은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의존할 곳이 필요하다.

 

 

 

영화의 말미, 서로의 추억이 스쳐간다. 철준은 영준을 사랑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영준은 철준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쩌면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자신보다 다른 이에게 마음을 먼저 주었던 철준을 갓 태어나 처음 본 존재에게 의존하는 아기 오리 같은 존재라 칭하며 밀어낸다. 철준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음에도, 자신은 미워하는 영준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얄팍하게 요약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철준은 단순히 영준이 자신과 수많은 시간을 보내주었기에 영준에게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다. 탈북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단 한 사람이 영준이었다. 과거 지뢰밭을 헤매던 순간엔 하늘에 있는 신의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면, 남한 땅에서 철준은 영준의 마음을 받아 살아갈 수 있었다. 신은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아픔을 덜어주고, 나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존재. 어쩌면 영준은 철준의, 너는 나의 신이었다.

작성자 .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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