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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청춘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인 문장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또는 대체 우리는 누구일까. 약 6분 내외의 단편영화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의미들이 영상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단편영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는 단 두 명의 인물로만 흐름을 전개한다. 단편영화의 특성이나 한계가 명확하기에 적은 인원을 사용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평론을 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편영화가 가지는 그 한계점을 '적은 인원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히 소구 가능한' 이야기로 타파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와 식물들의 관계에는 무엇이 있는가
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다. 그것도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랑의 과거가 있다. 청춘에 사랑이 빠질 수 있으랴. 우리는 한 아파트의 야외에서 우산을 펼치고 비를 맞으며 쪼그려 앉아 있는다. 첫 카메라 앵글에서 우리는 정말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이내 미래가 뿌리는 '가짜 비'라는 것을 관객은 알게 된다. 우리는 왜 비를 맞고 있나.
러닝타임 내내 영화 곳곳에서 식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류는 다양하다. 토마토, 딸기 모종, 몬스테라. 미래는 우리에게 토마토를 준 적이 있고, 우리는 토마토를 기른 적이 있다. 토마토는 햇빛과 물만 있으면 쉽게 자란다. 우리도 그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한다. 그 토마토 화분을 버린 적도, 그렇다고 기르지 않은 적도 없지만 열매가 맺는 것은 우리와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아직 비를 맞고 싹을 틔우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슬픈 사랑의 과거가 자기 자신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싹도, 햇빛도 들지 못한 마음에 열매를 맺은 토마토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까.
미래는 그런 우리에게 희망을 심는다. 지금 마음이 어떨지 몰라도 심고 기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우리의 마음에 볕을 들게 하라는 듯이 말을 건넨다. 미래의 할머니가 미래에게 전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간보다 곱절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할머니의 말을 잘못됐다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래가 기르는 몬스테라는 방 안에서 길러지고 있다. 인공조명의 도움으로 빛을 받고 자란다.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는 스스로 물을 받아내지 못해 위층에서 미래가 물을 뿌려주어야만 하고, 스스로 마음에 빛을 들이지 못해 미래에게서 위로되는 말들과 조언을 들어야만 한다. '답답하지 않을까'. 우리가 몬스테라를 보고 처음으로 꺼낸 말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우리와 미래는 몬스테라 화분을 방에서 끄집어내고, 계단을 통해 내려보내고, 끌차로 끌어 햇빛을 보게 하려 한다.
급한 마음에 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그 과정에서 몬스테라가 심어져 있는 화분이 떨어져 깨지고 만다. 깨진 화분을 들고 갈 수는 없다. 끌차에 올려 끌고 갈 수도 없다. 몬스테라를 심었던 그 흙들은 이미 모두 깨진 화분의 틈새로 새어 나와 주워 담을 수 없게 된다. 우리와 미래는 결단해야 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결국 몬스테라를 봉지에 담아 바깥에 아주 심기로 택한다. 인공조명과 미래가 주는 물로 애써 생명을 이어가던 몬스테라는 이제 자유로이 빛을 받고 물을 머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우리가 있다. 우리가 몬스테라에게 그 기회를 주었고, 직접 몬스테라를 이고 가 심어준다.
우리에게도 그럴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직접 빛을 받아야 할 것이고, 직접 물을 머금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 누구도 인공적으로 도움을 준대도, 직접 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온전히 자기 자신의 양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미래에게 의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자유롭게 방향과 양분을 찾아야 한다.
과거는 오래 간직해도 좋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위에도 결국 다시 싹이 튼다고 한다. 어떤 과거에도 새로 싹은 트고, 삶은 다시 한번 새롭게 트여 계속해서 돋아날 것이다.
단순히 작 중의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 즉 '우리'에게도 통하는 말이다. 사랑과 이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시도에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고 좌절이 있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와 조언들이 많겠지만 언제까지나 그 인공적인 것들에 의존하며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이 우리만의 것이듯, '우리'의 삶도 '우리'의 것이니까.
많은 좌절과 실패 끝에는 자기혐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또한 필연적인 것이다. 불행한 운명이라면 운명이라 하겠지만, 현시대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그 틀을 깨고 부숴 나아가야 한다. 어떤 형태의 과거이든 간에 그 위에 새로이 싹을 틔우고 돋아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나아간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재미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바로 우리가 카메라에 직접 물을 뿌려 주는 것. 우리는 몬스테라에게 물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왜 그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감정을 느끼는 몬스테라에 물을 뿌려주는 것처럼, 결국 '우리'도 '우리'에게, 정말 '우리' 스스로가 아니더라도 동일시할 수 있는 것들에 힘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안에 있다면 바깥으로 가야 하는가. 바깥에 있다면 안으로 가야 하는가. 그 어느 곳에도 정답은 없지만, 안에 있다가 보면 바깥으로 나가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 바깥에 있다 보면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마치 작 중에 등장하는 몬스테라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몬스테라이고, 몬스테라는 우리다. 몬스테라는 바깥에 없다. 바깥에 없다는 것은 직접 무언가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마음도 바깥에 없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그 속에서 변화할 기회를 모두 놓친다. 우리 또한 몬스테라처럼 그렇게 야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 메시지는 영화의 끝에서 몬스테라가 심어지게 되는 그곳, 자유롭게 햇빛을 쬐고 물을 머금을 수 있는 그곳이지 않을까. 실내에서만 지내던 몬스테라가 야외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화에서조차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몬스테라에게 물을 준다. 우리 자기 자신도 미래도 서로를 그렇게 믿고 방치해야만 한다. 사랑이 오면 떠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대도, 모든 시도에 실패와 좌절이 따를 수밖에 없대도 직접 뿌리내리고 고개를 치켜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진정한 삶이고, '우리'를 향한 애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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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학생들의 단편영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는 유튜브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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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하지만 아름다운 꿈, 영화를 사랑한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 무성 영화의 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의 저택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벌어진다. 파티는 난잡하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영화에 출연하거나, 영화를 찍고 싶거나,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멕시코에서 막 LA에 입성한 '매니(디에고 칼바)'와 스타가 될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찬 '넬리(마고 로비)'도 다르지 않다. 우연히 만나 영화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촬영의 세계에 발을 딛는다. 그렇게 꿈을 이루고 스타가 되는 것도 잠시. 유성 영화가 등장하면서 세 주인공은 각자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꿈을 버리고 살아가거나, 꿈을 이룬 채 퇴장하거나.
<바빌론>으로 돌아온 꿈과 현실의 마술사, 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 <라라랜드>, <퍼스트맨>으로 연이은 성공을 거둔 데이미언 셔젤 감독. 사실 그의 특징을 콕 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의 작품은 매번 장르도, 분위기도, 소재도, 연출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 영화 전문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기 영화를 찍었다. 빠른 편집과 몰아치는 연출이 장점인 줄 알았더니 담담하고 느릿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도 증명해 보였다.
그렇지만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그의 특징을 하나 찾을 수 있다. 데이미언 셔젤은 언제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의 주인공은 가족, 사랑, 일상, 주변인의 관계를 포기한 채 꿈을 좇거나, 반대로 꿈을 포기해야 한다. 둘 모두를 갖는 해피엔딩은 없다. 인상적인 엔딩 장면들 이면에 늘 냉혹함이 깃들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꿈과 현실의 매개체는 늘 매혹적이다. 현실을 잊게 하고, 찰나의 순간이라도 꿈을 이루어주기에. 꿈을 잊고 현실을 살더라도 단 한 순간 동안은 아름다웠던 꿈속으로 되돌아갈 문을 열어 주기에. 그래서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했던 그 열정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 재즈와 뮤지컬, 그리고 달이 아름다운 것처럼.
1920년대 후반과 30년대 초반의 할리우드, 무성 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유성 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바빌론>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꿈'을 쟁취하기 위해 할리우드에 모인 사람들이 벌이는 이 역동적인 이야기는 셔젤 감독의 이전 작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제를 담은 매개체가 영화이고, 무대가 할리우드일 뿐이다. 하지만 바로 '영화'라는 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바빌론>은 더욱 특별하다.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가득하기에 셔젤의 작품 중 가장 야심 차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전 필모그래피에 비해 길고 거칠며 덜 정돈된 인상이 가득하더라도.
할리우드, 추하고 난잡한 꿈의 공장
<바빌론>의 오프닝만 봐도 셔젤의 야심이 느껴진다. 잭 콘래드의 파티는 마치 배즈 루어먼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파티를 보는 듯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재즈 연주만큼 화려하고 정신없고 난잡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술을 들이켜고, 마약을 빤다. 소파 위, 테이블 위, 계단 아래에서 정신없이 섹스한다. 누군가는 어이없이 죽고, 또 누군가는 다음 영화에 캐스팅되기 위해 영화 제작자에게 추파를 던진다. 언제 터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넘쳐 나는 자극 속에서 사람들은 마비되어 간다.
30여 분간 이어진 오프닝 다음에 등장한 영화 촬영 현장도 파티 못지않은 아수라장이다. 파티에서 갑작스럽게 캐스팅된 넬리의 촬영장은 무슨 영화를 찍는지 알기 어렵다. 서부 시대 선술집 옆에는 아무런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시대와 공간을 재현한 세트장이 즐비하다. 아무 준비 없이 촬영에 투입된 넬리가 기대 이상의 눈물 연기를 선보이자 영화감독은 즉석에서 시나리오와 콘티를 수정해 가며 촬영하기 바쁘다. 바로 뒤 촬영장에서 불이 나 모두가 대피하는 와중에도.
한편, 에픽 영화를 촬영하는 잭의 촬영장은 유혈이 낭자하다. 대규모 전투 시퀀스에 참여한 엑스트라는 창에 찔리고, 마차나 말굽에 짓밟힌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는 해당 장면에 맞는 곡을 연주하고 감독은 필요한 카메라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대기실에서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잭은 지루함에 지쳐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한다. 마침내 잭의 순서가 찾아왔을 때, 술에 취한 주연 배우는 촬영장까지 걸어가지도 못한다. 한편 영화감독의 수중에는 카메라가 없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매니가 카메라를 대여해 오자 간신히 그날 촬영을 끝마친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촬영장에서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술과 마약과 섹스에 빠져든다. 또 아침 해가 뜨면 또다시 새벽부터 촬영하러 나선다. 얼핏 보기에 1920년대의 할리우드는 추잡하고 흉하다.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빠져나올 수 없는 영화의 아름다움
하지만 정신을 쏙 빼놓는 <바빌론>의 오프닝과 초반부는 마냥 저속하지 않다. 파티와 촬영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꿈'이다. 매니는 영화계에서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넬리는 기회만 준다면 스타가 될 수 있다며 파티장을 자기 무대로 만든다. 잭 역시 할리우드의 톱스타로서 지금처럼 화려한 삶을 계속해서 누리고자 한다. 파티 음악을 담당하는 색소폰 연주자 '시드니(조반 아데포)' 역시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꿈들이 모여 열망을 분출하기에 더럽고 추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파티는 사랑스럽다.
촬영장도 다르지 않다. 촬영 장비는 항상 망가지고, 사람은 죽어 나간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날 사건 사고가 쏟아지는데도 사람들은 매일매일 영화를 찍기 위해 모인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코끼리 똥을 맞으면서도 기어코 코끼리를 잭의 파티장에 데려가기 위해 애쓰는 매니처럼, 그들은 영화 촬영장을 떠나지 않는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여배우의 춤과 눈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만취한 할리우드의 스타가 하루의 마지막 태양 빛을 배경으로 운명적인 서사시를 완성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 혼돈의 끝에서 마주한 한순간의 절정을 찍을 때 찾아오는 황홀경을 붙잡기 위해서. 그렇기에 모든 영화 촬영장도 파티만큼이나 아름답다.
실제로 꿈이 없는 파티와 촬영장은 추하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또 한 번의 파티 장면만 봐도 오프닝 파티와는 묘하게 다르다. 여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이 피티에는 꿈이 없다. 무성 영화의 스타로 등극한 넬리와 잭, 그리고 잭의 매니저로 영화계에 입성한 매니에게는 꿈이 없다. 유성 영화가 등장하자 그들은 촬영장 안팎에서 불안에 떤다. 과연 자기가 여전히 스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 영화계에서 종사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녹음 스튜디오가 갖춰진 새로운 촬영장의 모습도 아름답지 않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다르지 않으나, 배우와 스태프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촬영할 만한 매력이나 보람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파티는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한 공간이자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꿈을 잃은 이들은 코앞의 자극에만 심취한다. 이제 그들의 놀이는 아름답지 않다.
추잡함까지 사랑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사랑, 영화
이처럼 <바빌론>은 1920년대 영화 산업의 명암을 가리지 않은 채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치부를 알면서도 계속해서 사랑한다. 달리 말해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고백한다. 사막에서 시작한 할리우드를 건물 가득한 도시로 키워낸 열정은 물론, 그 열정이 선을 넘어버린 광기도 함께 사랑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바빌론>은 신선하다. 할리우드는 가끔 자기 역사를 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지름길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닌 애증의 편지라서 특별하다.
영화는 이 맹목적인 사랑을 매니의 눈빛에 담아낸다. 카메라는 그가 영화와 눈이 맞는 순간을 포착한다. 첫 번째 순간은 잭의 파티 장면이다. 막 LA에 온 매니는 온갖 잡일을 한다. 파티에 서프라이즈로 등장시킬 코끼리를 데려오고, 술과 마약을 배달하며, 대리운전을 한다. 그러던 중 매니는 넬리를 본다. 입장을 거부당하던 그녀를 몰래 파티장에 넣어주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둘 다 열렬히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넬리가 파티의 무대를 휘어잡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곧장 캐스팅 제의를 받는 걸 본다. 그렇게 그는 넬리와 사랑에 빠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화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두 번째 순간은 멕시코로 탈출하기 전 우연히 들린 파티 장면이다. 영화 제작자가 된 매니는 여러 문제로 꼬여 버린 넬리의 커리어를 되살리려 한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넬리는 이미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가 이끄는 LA 지역 갱들과 문제를 겪고 있다. 넬리를 도와주던 매니 역시 자연히 그들과 갈등을 겪고, 끝내 그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갱을 피해 도망치던 매니와 넬리는 이동 중 작은 마을에서 열린 파티에 우연히 참석하고, 파티를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서 함께 춤을 춘다. 바로 이때 그는 다시 영화의 매력에 빠진다. 영화의 추잡함을 온몸으로 체감했고 넬리와 영화가 인생에서 피해야 할 골칫거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는 이번에도 영화에게 함락당한다. 이 두 장면만 보더라도 영화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온몸을 던져 사랑해서 진정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셔젤 감독의 작품답게 <바빌론> 속 사랑도 현실 앞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무성 영화의 사람들인 세 주인공 앞에 유성 영화가 등장하고,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새로운 시대에 발굴된 신흥 스타를 비춘다면, <바빌론>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이들을 그려낸 셈이다. 톱스타였던 잭은 미숙한 목소리 연기 때문에 이제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와 몇십 년간 같이 일해온 에이전시는 그에게 더 이상 흥행 작품의 배역을 맡기지 않는다. 라이징 스타였던 넬리의 커리어도 순식간에 꺾인다. 허스키하고 거친 게 매력인 그녀의 목소리가 유성 영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체계가 잡혀간 것도 그녀에게는 독이다. 거칠고 야생적인 넬리의 성격은 사교 파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음악 영화 제작자로 이름을 알린 매니도 끝내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그는 넬리의 커리어를 살리려다가 본인 경력도 끝날 위기에 처한다.
그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자기 꿈을 지킨 채 찬란히 부서지든가, 현실을 인정하고 꿈을 내려놓든가. 세 주인공은 제각기 달리 선택한다. 잭은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고 판단한다. 더 추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시간을 끝낸다. 넬리는 잭과 비슷한, 한편으로는 그녀다운 선택을 한다. 함께 도망치자는 매니의 제안을 거부한다. 처음 등장할 때처럼 춤을 추면서 거리 저편으로 사라진다. 매니는 도망치기 직전 갱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다. 그러더니 영화라는 꿈을 포기한다. 할리우드를 떠나 평범히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또 위로한다. 온몸을 던져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라는 꿈을 꾼 이들의 마지막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잭에게 그의 시대가 끝난다고 알려준 기자 '엘리노어(진 스마트)'의 대사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그녀는 잭이 "천사와 유령들과 함께 영원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온몸을 던져 영화를 만든 넬리와 매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상과 이름으로 살아남은 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새로운 관객과 친구가 될 것이므로.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다시 한번 매니의 눈에 주목한다. 시간이 흘러 LA로 돌아온 매니는 극장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본다. 작중 등장인물인 리나 라몬트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유성 영화 시대에 전성기가 끝나버린 여배우를 보며 넬리와 무성 영화의 전성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내 경탄에 가득 찬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동시에 영화를 보면서 자기가 사랑했던 대상이 넬리라는 인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넬리를 담아낸, 꿈과도 같았던 영화의 한 장면에 매료됐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동시에 자기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처럼 한순간의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고생했고, 고생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영화를 보며 배운다.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부터 이크란을 타고 제이크 설리가 하늘을 나는 순간까지. 자기가 몸담았던 할리우드는 달라졌어도, 할리우드는 계속된다는 걸 직감한다. 멸망한 후에도 시대에 따라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와 도시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어 살아남았던 바빌론처럼.
영화를 사랑하게 만들다
이 모든 사랑 고백은 데이미안 셔젤이 직접 실천했기에 더 인상적이다. 사실 <바빌론>은 <위플래쉬>나 <라라랜드>, 심지어 <퍼스트맨>에 비해서도 대중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단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지나치게 길다. 파티 장면이나 몇몇 에피소드는 단축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몇몇 캐릭터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나 셔젤은 그러지 않았다. 자기 비전을 전부 스크린으로 옮겼다. 애초에 이 영화를 제작하자고 배급사를 설득할 만한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전작들을 만들었다고 했던 만큼, 타협하지 않았다. 모든 영화와 영화계 종사자들을 향한 찬가를 온전히 들려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빌론>의 메시지는 강력하다. 영화를 향한 애정, 심지어 할리우드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설령 이전 필모그래피에 비해 길고 거칠며 덜 정돈된 인상이 가득하더라도.
감독의 장점과 배우들의 조화는 화룡점정이다.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은 여전하다. 넬리와 매니의 주제곡이나 잭의 주제곡은 미세하게 변주되면서 반복된다. 그때마다 필요한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자아낸다. <라라랜드>에서 'City of stars'가 반복되지만, 들을 때마다 인상이 다른 것과 유사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더 말할 게 없다. 특히 마고 로비가 눈에 띈다. 마치 할리우드의 얼굴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그랬지만, 그 시대의 할리우드를 또 한 번 생생하게 표현한다. 관객과 함께 광란의 20년대를 헤쳐 나가는 디에고 칼바의 신선한 페이스도, 작품 전반적으로 중후함과 위트를 불어넣는 브래드 피트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달리 말해 <바빌론>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영화다. 설령 팬데믹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와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인생과 꿈 사이에서 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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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4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3월 4주 개봉영화!
뜨거운피 Hot Blooded , 2020
정우와 느와르의 만남!
영화 "뜨거운 피"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입니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건달들의 표적이 된 부산의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치열한 생존 싸움을 다룬 스토리인데요
정우를 비롯해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등 인생 캐릭터로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를 기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 "뜨거운 피"는 베스트셀러 작가 천명관 감독의 연출 데뷔작으로,
한국형 스릴러의 대가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이 갖고 있는 강렬한 스토리와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에 천명관 감독의 섬세한 표현력과 특유의 통찰이 더해져
근래 본 적 없는 웰메이드 작품을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2022년 가장 치열한 액션 느와르!
첫번째 추천영화 "뜨거운피" 입니다.
예고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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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밍 러브 Redeeming Love , 2022
로맨스 소설의 대가 프랜신 리버스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 "리디밍 러브"는 로맨스 소설의 대가 프랜신 리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15년간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라 3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돼 화제가 됐었죠
프랜신 리버스는 미국 최고 로맨스 소설 작가에게 수여 되는 리타상 3회 연속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번 영화에 직접 각본 작업에 참여한 것은 물론 캐스팅 과정까지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1850년대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를 배경으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엔젤이 한 남자를 만나며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는 완성형 감성 로맨스 영화!
두번째 추천영화 "리디밍러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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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 Eiffel , 2021
타이타닉, 노트북, 이프 온리, 이터널 션샤인을 이을 또 한편의 영화
영화 "에펠"은 전세계가 몰랐던 에펠의 또 다른 이야기로 천재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운명적인 사랑과 에펠탑의 완성을 그린 멜로 드라마 입니다.
첫사랑이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서로에게 전부가 되어버린 두 사람 그리고 애절함까지,
자유의 여신상, 에펠다리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을 설계한 실제 인물, 구스타브 에펠의 사랑이야기!
'무드 인디고', '사랑은 타이핑 중!'의 로망 뒤리스와 '나일강의 죽음',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에마 매키가 세기의 멜로 로맨스 펼치는데요
실화를 바탕으로 가슴 아픈 로맨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에펠탑이 완공된 1889년 당시의 프랑스 사회, 파리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세번째 추천영화 "에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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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리차드 King Richard , 2022
세계 최강 테니스 제왕 윌리엄스 자매 실화
영화 '킹 리차드'는 무려 20여년간 세계 최강의 테니스 제왕으로 군림한 비너스,
세레나 월리엄스 자매와 딸들을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그리고 기꺼이 한 팀이 되어준 가족들의 감동적인 여정을 그린 실화 가족 드라마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를 비롯해 윌리엄스 가족들이 제작에 참여해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며 완성도를 높였는데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2년 전 78페이지 가량의 챔피언 육성계획을 짠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
백인 스포츠로 불렸던 테니스 를 빈민가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이야기
네번째 추천영화 "킹리차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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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스트 Belfast , 2021
전 세계가 응답한 가장 사랑스러운 가족 영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벨파스트"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집 앞 골목과 짝사랑하는 소녀,
사랑하는 가족이 전부였던 소년과 사랑스런 가족의 이야기를 흑백 화면 위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고, 마침내 삶의 일부이자 하나였던 벨파스트를 떠나야 할 것인지
그 기로에 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사랑과 유대, 그리고 시대의 낭만과 변화의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습니다.
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음향상까지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가장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주목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75회 영국 아카데미에서 영국 작품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2022년 가장 사랑스런 영화의 탄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담긴 가족영화!
다섯번째 추천영화 "벨파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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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손’,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9★/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다가올 명절, 어쩌면 당신 앞에 펼쳐질 장면이 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아, 물론 여자만이다. 임신한 손녀가 더워 죽겠으니 제발 에어컨 좀 틀자고 하소연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전이나 똑바로 부치라고 구박하던 할머니는 마치 오늘의 주인공이 자신인 양 느지막이 장손이 행차하자 에어컨을 켜라고 소리를 지른다. 한편 할아버지는 제사 시간을 당기자는 손아랫사람들의 간청이 못마땅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새로 나온 족보의 가치를 장손에게 설명하는 데만 마음이 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점잖다가도 술만 마시면 난리를 피우는 아버지, 어른이 없을 때면 험담을 하다가도 누구보다 열심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남모를 사정으로 종교에 깊이 빠져 있는 첫째 고모, 비싼 차에 비싼 술을 싣고 밤늦게 도착하는 둘째 고모……. 당신의 성별과 세대에 따라 누군가는 PTSD를, 누군가는 안온함을 느낄 광경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래도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는 리얼한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과정에서 애환이든 공감이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동일시할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고, 영화는 이 일상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가족 중 누구도 악마화하지 않은 채 놀라운 짜임새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미화美化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곪아 터진 현실에도 웃고 있을 뿐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영화에서, 웃음은 가족의 일상 이면에 자리한 상처로 우리를 인도한다. 시신도 없이 부모의 산소를 꾸릴 수밖에 없던 할아버지, ‘빨갱이질’로 신세를 망친 아버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지극히 돌보는 첫째 고모, 그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손, 그리고 엄격하고 근엄한 할아버지와 그 아랫사람들을 아우르며 확립된 가족의 질서를 조율하며 유지해나가는 할머니 등등. 서로를 원망하고 때로는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슬그머니 이불을 깔아주고 선풍기를 돌려주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일상적 평온함과 봉합 불가능한 상처로 얽힌 복잡한 관계망을 동시에 마주한다.
할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영화의 분위기는 변모한다. 웃음보다 혼란이 중요한 정서다. 가족을 지탱하던 온갖 질서가 무너지고 뒤엉키면서 할머니가 가족 내에서 얼마나 많은 걸 떠받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서로가 감춰두었던 비밀과 속상함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쏟아지며 갈등이 고조된다. 장손인 성진의 달라진 표정이 이를 대변한다. 배우를 한다며 돈만 까먹는,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능청스레 넘어가던 장난기 많은 철부지 성진의 얼굴은 할머니 사후 가족 내 분란의 한가운데에서 넋이 나간 듯 황망해진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게 되는 사건의 연속이다.
갈등의 핵심은 돈이다. 할머니가 자신으로 통하던 가족 내 ‘돈의 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그 미로를 각자가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들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리고 성진은 이 혼란 끝에 그 모든 미로의 끝에 자신이 있음을 안다. 할머니가 떠난 후 치매 증세를 보이던 할아버지는 멀끔한 정신으로 검은 비닐봉지를 성진에게 건넨다. 그 안에는 이 모든 혼란을 정합적으로 설명할 무언가가 들어 있다.
그러나 성진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다. 이제 성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지난 세대 어른들이 완고하게 고집하던 ‘장손’에 대한 가치 부여를 모른 척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대의 ‘장손’에게 요구되는 관계의 윤리를 실천할 것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서 장손의 권위를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배제한 채 가족을 연결하고 지탱하는 돌봄의 윤리만을 계승할 것인가. 성진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고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뒤돌아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외롭지만 의연해 보이고, 심지어는 후련한 듯도 보인다. 자신은 자기 세대의 윤리에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는 장손인 성진이 그 세대의 윤리에 맞추어 장손의 역할과 가족의 일을 꾸려나갈 때다. 족보, 제사 타령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성진에게 건넨 것은 책임감의 무게다.
영화는 성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알려주지 않으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핵심은 성진의 성별과 가족 내 지위(독자獨子)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족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책임감이다. ‘장손’의 의미를 ‘한집안에서 맏이인 남자 후손’의 영역 너머로, 즉 가족이라는 해명 불가능한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는/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에게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성진의 표정을 지어야 한다. 영화 속 세 계절인 여름과 가을,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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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는 내가 직접 만들어주지
여기.
잠들지 못하고, 밤마다 뺏벌을 걸어다니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박인순.
뺏벌이라 불리는 미군 기지촌에서 양공주로 살았으며, 그 이후에도 죽은 동료들과 함께 기지촌에 남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보았으며, 늘 죽음 가까이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튼튼한 두 다리로 이 세상에 굳건히 서 있다.
밤새 뺏뻘을 돌아다니는 인순을 보며, 저승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어야 잠들 수 있겠군”
그러나 평생을 비가시적(서류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이중으로 은폐된) 존재로 살아온 인순에게는 저승으로 가는 길도 그리 간단치 못하다. 이승에서의 호적은 거짓으로 꾸며진 것이기에 저승 명부에도 그녀의 이름이 없으며, 저승길에 필요한 ‘그녀만의 이야기’ 또한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 여러 차례 문서와 미디어를 통해 기록되고 재현되어왔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오래된 편견으로 만들어진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고자 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메인 포스터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큐멘터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김동령 감독과 박경태 감독이 기지촌 여성인 박인순과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두 감독은 이미 각자 작업한 <나의 부엉이(2003, 박경태)>, <아메리칸 엘리(2008, 김동령)>와 공동연출한 <거미의 땅>(2016)을 통해 박인순의 이야기를 담아온 바 있으며, 이 같은 작업을 통해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또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들의 앞선 작업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지니는데, 그것은 바로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다. 감독들이 이전까지는 ‘기지촌이란 무엇이며 기지촌 여성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탐구하였다면,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는 왜 살아남지 못했는가?’를 탐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령 감독은 이 영화가 “기지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기지촌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고 그러나 어떻게 사라지는가에 관해 탐구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가상 캐릭터와 실존 인물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재현되는 이미지들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판명하는 일은 무의미한 행위일 것이다(심지어 이러한 판단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와해되고 중첩된 영화적 공간 속에서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밤마다 뺏벌을 돌아다니는 '인순'(논픽션/실제인물)과 뺏벌의 유령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사자들'(픽션/허구의 캐릭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박인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녀가 재현하는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오히려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시작부터 영화는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되는 나레이션이 삽입된다. 그리고 구술 채록을 위해 인순을 찾아온 교수와 뺏벌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사용하고자 하는 대학원생이 등장하여,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타인에 의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살해된 기지촌 여성의 기사 사진과 인순의 과거 인터뷰 장면을 통해 그녀들의 삶을 기술하는 미디어의 방식을 폭로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감독 자신이 (아마도 과거에) 핸디 카메라로 촬영하였던 다큐 영상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재현들은 모두 4:3의 답답한 화면비로 삽입되어, 인순을 비롯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떠한 프레임 속에 가두고 있음을 은유한다.
필자는 태어나서부터 출가를 선언한 27살 이전까지 의정부에서 살아왔다. 그 때문에 뺏벌이라는 공간의 지리적 위치 정보가 등장하기 전부터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저곳이 의정부임을 금새 알아차렸다. 남들보다 먼저 알아보았음을 자랑하기 위해 나의 출신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고, 나 또한 영화 속 대학원생과 같은 마음, 즉 그녀들의 이야기를 이용해보려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어났음을 고백하려 함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 속 대학원생 아해는 인순을 인터뷰하러 온 교수를 따라 뺏벌에 오게 되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인순과 뺏벌에 흥미를 갖게 된 아해는 홀로 인순을 찾아왔다가 인순이 집에 없자 폐허가 된 기지촌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작품 소재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기지촌의 여러 공간을 카메라로 담아내기도 하고, 기지촌 내 클럽에서 술잔과 벽에 붙은 기지촌 여성들의 사진을 몇 장 챙겨가기도 한다. 이러한 수집행위와 더불어 아해는 “이번 전시는 기억과 공간에 관한 작품으로 기획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작가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에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덧붙인다.
기지촌에서 작품의 소재를 물색하는 '아해'와 클럽 안에 산재한 '그녀들의 흔적'
여기서 필자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니, 나는 의정부에 30여년간 살면서 왜 저곳을 직접 들어가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가... 내가 먼저 발견했으면 나는 지금쯤 엄청난 작가가 되어있었을 텐데...’라고. (참고로 필자는 의정부에 살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의 삶을 산 바 있다. 지금은 아님.)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깨달았을 때, 잠시 저런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넘어, 나 또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만들고, 변형시키고, 제거하는 행위에 동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부끄러움과 성찰의 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박인순이 우리에게 보내는, 그리고 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대었던 세상을 향한 통쾌한 복수극일테니.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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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벚꽃이 만개하고 하늘엔 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어엿한 봄이다. 다만 그 봄이 조금 과하게 느껴진다. 한낮의 온도는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꽃잎은 쉴 새 없이 흩날리다가 떨어진다. 바닥에 물든 분홍과 빨강들. 이제 실감한다. 계절 또한 순간이다. 금세 지나갈 것을 알기에 그리 구경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봄이면서도 초여름. 애매한 중첩을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떠오른다. 춘희. 기쁠 희, 좋을 희, 즐거울 희. 온갖 의미 중에서도 그의 이름 말은 봄 춘春, 계집 희姬. 봄의 계집이다. 출생등록을 할 때 잘못 입력한 한자. 동시에 탓하기 좋은 변명거리다. 일이 꼬이고 꼬여 문제만 생길 때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원래 이렇게 되었으리라고.
자기 자신을 운명이란 이름에 가둬둠으로써 탄식하고, 연민하고, 모순적이게도 위로받는다. 춘희의 삶도 엇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여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던, 누구에게나 있을 처연한 시기. 다만 춘희에게는 그 시간이 꽤, 길었을 뿐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춘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중학생 춘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사촌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동갑내기 여자애는 쌀쌀 맞고, 그의 보호자들은 교묘하게 차갑다. 마치 떠안기 싫은 짐을 어쩔 수 없이 진 것처럼.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자그마한 다락방. 여러 이불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게 최선인 독방. 춘희에게 허용된 크기와 위치는 딱, 그 정도다.
지금의 춘희는 어떨까. 여전히 같은 방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전구도 놓고, 창가와 벽에 사진도 붙이고, 나름 아늑한 공간이다. 춘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갖지 못했을 테지. 특별히 안타깝다거나 불쌍하다는 둥 가치판단을 멋대로 내리고 싶진 않다. 단지 그 공간에 대한 춘희의 애착이 느껴졌을 뿐이다.
춘희의 일과는 퍽 단순했다. 일어나서 수경을 끼고, 마늘을 한 알씩 까고, 2kg는 족히 되는 것 같은 양을 어깨에 이고 식당을 찾아간다. 사촌 오빠가 운영하는 식당. 노동의 대가는 3만 원. 이런 일 말고 홀서빙을 하라는 제안에도 춘희는 고개를 젓는다.
춘희는 하루 3만 원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이 같은 성실함은 간절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한증 수술. 땀이 많아 금세 손이며 발이며 축축해지는 것이 춘희에겐 오래된 스트레스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모든 공간엔 자신의 흔적이 남았다. 사람들은 그 흔적을 불쾌하게 여겼고, 춘희는 찌푸린 얼굴이나 날 선 목소리 따위를 빼곡히 기억했다. 어릴 때야 무덤덤한 표정에 가려 잘 드러나진 않았겠지만.
벼락과 천둥이 치던 날, 춘희는 평소처럼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벼락을 맞는다. 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집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웬걸. 제 몸 위로 이불이 덮였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없는 집인데 말이다. 의아한 상황은 곧 믿을 수 없는 일로 이어진다. 어린 춘희, 그러니까 중학생 춘희가 지금의 춘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같이 마늘을 까고, 라면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춘희의 기억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의 자신에게 있는 손의 흉터가 중학생 춘희에겐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다한증인 자신이 싫고 미워서 소각장 앞에 불씨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는데 말이다.
춘희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건 또 다른 일상의 변화 때문이겠다. 얼결에 참여한 모임에서 주황을 만났다. 말을 더듬는 주황과 땀이 흥건한 춘희. 자기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관계. 솔직해서인가,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춘희는 술김에 말도 안 되는 일을 들려주겠다며 중학생 춘희 이야기를 스리슬쩍 꺼낸다.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무얼 하겠느냐고.
주황은 아버지의 폭력에 매번 맞기만 하지 말고 한 번은 덤비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반면 춘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던가. 그 애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모든 것이 나름 순조롭게 흘러갈 무렵 사건은 하나둘씩 생겨난다. 하나, 중학생 춘희가 사라졌다. 둘, 사촌오빠가 춘희에게 새로운 집을 구하라고 통보한다. 그 집을 매물로 올려놨다고. 셋, 모임 세미나에서 거금을 사기당했다. 다한증을 치료하려고 모아두었던 돈이 몽땅 사라진 셈이다. 모든 것을 잃기만 한다.
그러나 춘희는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 집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목소리를 낸다. 물론 사촌에겐 얼토당토않는 얘기다. 집에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임대인 자격을 얻고 잃는 건 아니니까. 사실을 바꿀 만한 힘은 없었다. 애초에 그건 춘희의 목적이 아니기도 했다.
그저 중학생 춘희가 꾹꾹 눌러 두었을 진심을, 집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보호자들을 향한 그리움을 발화하고 싶었을 테다. 수수깡으로 정성스레 만든 집이 제 허락도 없이 망가져 버려진데도 오히려 사과를 건네야 하는 시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처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춘희로.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아이는 그때로부터 자라나지 못한다고. 10년이든 20년이든 시간만 흐를 뿐이라고. 몸만 커져서 어른처럼 보이지, 여전히 아이라고. 춘희는 자라지 못한 자신을 알아주기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싫어하고, 미워하고, 불쾌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며 오롯이 견뎌온 상처들 또한 끌어안는다. 자신에게 남은 손바닥의 화상을 어린 춘희에게 되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지켜내기 위하여.
영화에서도 내내 보였다. 춘희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자 기이한 지점. 춘희를 진심 어린 눈으로 걱정했다가 날카로운 말씨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여기서 카메라의 담긴 시선이 달랐다. 부드러운 상황을 보여줄 땐 상대방의 모습을, 춘희를 비난할 땐 춘희의 상처받은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춘희가 기억하는 타인의 모습은 일부일 뿐이라고. 모두 춘희를 미워하고 싫어한 게 아니라, 아끼는 마음도 존재했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준 후에야 춘희는 새 집으로 새 출발을 한다. 이제는 사촌 집의 다락방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갈 춘희. 자신의 점액질로 흔적을 남기는 민달팽이처럼 꿋꿋이 제 길을 걸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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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에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참석 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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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4> 공식 예고편
때가 왔다. 모두 기묘한 세계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1부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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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투나잇 15초 예고편
“예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뉴욕 변두리를 장악한 제트파의 일원 ‘토니’(안셀 엘고트)는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나도 멋지게 내 인생 살아보고 싶어”
제트파의 라이벌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의 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는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를 떠나 정착한 뉴욕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풀고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찾고자 한다.
“널 본 순간 다른 건 무의미해졌어”
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아와 토니.
하지만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를 차지하기 위한 샤크파와 제트파의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마리아’와 ‘토니’는 자신들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