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I am your bunny2021-05-08 23:55:37

<고령화가족>, 초라하고 찌질해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

조금은 미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우리 가족, <고령화가족>

 

 

 

 

 

 한 가족이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가지각색이다.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어도 천차만별인 게 가족이다.

 

아웅다웅하다가도 금세 돈독해지는 것이 가족이다.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않은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고, 보여주는 것도 가족이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어쩌면 우리 근처에 있을 것만 같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고령화가족>이다.

 

 

 

'고령화가족'.

 

항상 무조건적인 사랑과 다정한 말을 건네는 가족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 시간이 꽤 되어 돌아서면 생각나고, 아파보이면 은근 거슬리고, 괜히 투박하게 표현하게 되는 가족은 맞다.

 

 

 

 

 

 

 

 

 



 

 자살시도를 하려고 하는 순간 인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엄마'.

 

밥은 잘 먹고 사냐는 엄마의 걱정어린 질문에 당연히 밥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인모의 대답이 이어진다.

 

 

 

나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보니 엄마가 자주 전화로 아픈 덴 없냐, 밥은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있냐, 등의 질문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당연히 잘 먹고 다닌다, 몸 건강하다, 라는 대답이 나간다. 걱정 끼쳐드리기 싫은 마음에 이런 대답을 한다.

 

나 이외에도 아마 많은 아들, 딸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타지에서 지내는 자식들이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 누가 모를까.

 

 

 

 

 

 



 



 

 우리 엄마는 종종 꽃 사진을 보내신다. 가끔은 엄마의 셀카도 함께.

 

이 장면 속 인모의 엄마처럼 담벼락에 꽃이 너무 예쁘게 폈다고, 엄마처럼 예쁘다고,

 

벌써 봄이 왔다고, 예쁜 꽃 보고나서 마저 할 일 하라고.

 

 

 

엄마의 시선을 통해 보는 꽃은 더 예쁜 것 같다.

 

 

 

 

 

 



 

 



 

 이 장면은 대사 하나하나, 엄마의 말과 인모의 반응 하나하나가 나와 엄마 같아서 놀라면서 봤다.

 

 

 

- 사람은 잘 먹어야 힘을 써.

 

- 속이 든든하면 없던 힘도 생기고 그러는 법이야.

 

- 올 거지?

 

- 너, 닭죽 좋아하잖아.

 

 

 

그리고 조금은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인모의 "좋아하긴 하지."라는 대답.

 

 

 

내가 스쳐지나가듯이 '어떤 음식 먹고 싶다~'라는 말을 해도 엄마는 그걸 또 기억하셨다가 나중에 해주신다.

 

너가 좋아하는 음식 했다고, 저번에 먹고 싶었다고 했지 않냐고, 먹고서 힘내라고.

 

나는 또 매우 좋으면서 괜히 '그냥 한 말인데 뭐하러 또 했냐'고 툴툴거린다.

 

우리네 일상을 잘 표현한 영화같다.

 

 

 

 

 

 

 

 

 

 

 TV를 보고 있는 조카에게 너가 미연이(인모의 여동생) 딸이냐며, 자기 엄마(미연)랑 똑 닮았다고 말을 건네는 삼촌 인모.

 

퉁명스럽게 "저기요, 아저씨"라고 대답하는 조카에게 "왜요, 아가씨?"라고 받아치는 삼촌 인모의 모습이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어릴 때 낯 가리던 나에게 어떤 삼촌이 아가씨, 아가씨 하면서 장난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는 왠 아저씨가 누가봐도 어린이인 나한테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장난치는 게 괜히 싫었었다.

 

 

 

이 영화는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장면을 보고, 이와 비슷한 내 기억을 마음껏 떠올릴 수 있다는 점.

 

영화의 어느 장면을 보면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는 점.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서 옛 추억 회상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바쁘게 지내던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 은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

 



 

 

 

 

 



 

 

 

 

 



 

 투닥투닥 말싸움하는 우리의 '고령화가족'에게 즐겁게 마시자고 한 마디 한 다른 테이블의 손님에게 바로 신경 끄고 처먹던 거나 먹으라는 딸 미연,

 

쪽팔려서 이 자리에 못 있겠다는 미연의 딸 민경,

 

미연이와 다른 테이블 손님 사이에 싸움이 나자 어디서 남의 귀한 동생을 괴롭히냐고 말한 뒤 적진(?)에 뛰어드는 두 아들 한모와 인모,

 

이미 자주 겪은 익숙한 일인듯 조용히 술 마시는 엄마.

 

진짜 우당탕탕 엉망진창 대환장 파티이다.

 

 

 

 

 

 

 



 

그래도 이 모습이 밉지가 않다.

 

엄마도 웃는다.

 

무슨 일 생기면 그렇게 형제끼리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 도우라고, 단결력 하나만은 최고라고.

 

 

 

사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형제랑 같이 있으면 계속 투닥거려도, 다른 사람들과 의견충돌이 일어날 것 같으면 바로 똘똘 뭉친다.

 

나는 내 형제에게 뭐라고 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내 형제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용납 못한다.

 

 

 

자주 투닥거리면 뭐 어때, 위급상황에 힘을 모아 서로를 도와주면 되는거지.

 



 

 

 

 

 

 

 

 

 

 

 



 

 내게 큰 울림을 준 대사이다.

 

 

 

한모가 전 부인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미연은 엄마가 바람피워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세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미연이 새로운 남자를 데려와서 결혼하고, 한모는 가족들에게 쪽팔린 일을 겪고,

 

이 가족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민경이는 가출도 하고, 전직 조폭인 한모가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도우려다 인모도 다치고.

 

이렇게 다사다난하고 왁자지껄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인모의 독백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찌질하면 찌질한 대로, 자기한테 허용된 삶을 살면 그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진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역사이다."

 

 

 

'소탈하게' 살아가는 영화 속 '고령화가족'의 모습과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낸 대사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일들이 가득하진 않다.

 

우리의 삶은 대개 소박하거나 소탈하고, 가끔 혹은 자주 찌질하다. 쿨하지 못하다.

 

 

 

 

 

이 대사를 읽고 여러번 곱씹어보며 '남들에게 꼭 기억되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뭐 어때,

 

현실에 충실해서 내 삶, 내 역사를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가족도 마찬가지다.

 

꼭 매일매일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우당탕탕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근차근 만들어가면 되는거지.

 

 

 

꼭 행복한 기록과 기억들만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쁨, 아픔, 칭찬, 실수 등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만들어진 것이 역사이다.

 



 

 

 

 

 


 

 

 

 

 

 

 

 

 

 



 

우리는 '가족'을 마주하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가 끝난 후에 내가 느낀 것은 감동, 씁쓸함, 행복함, 무거움 등의 복잡한 감정이었다.

 

개인적으로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만 간직하지는 않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과정이 다소 위태롭고, 이를 겪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

 

초라하고 찌질해도 묵묵히 살아가는 것.

 

조금은 미련하게 들릴지라도, 이게 바로 '가족'인 것 같다.

 



작성자 . I am your bunny

출처 . https://blog.naver.com/meyou_saline/222342051406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