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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자축하는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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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지상낙원을 찾는 어리석은 인간의 기대에 대하여
한 인도인 커플이 지상 낙원 스리랑카를 여행한다. 그러던 중 숙소에 들이닥친 도둑에 의해 핸드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린다. 그 길로 커플은 스리랑카 경찰을 찾아가는데 스리랑카 경찰은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다. 기름이 모자라서 못간다는둥 이 경찰 생각보다 강적이다. 이에 케사브는 위력을 행사하며 소위 갑질을 시전한다. 그의 갑질에 겁먹은 경찰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데, 어째 억울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것 같다. 이들의 여행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1. 지상낙원에서 지옥을 맛본 커플
케사브의 행동은 여러모로 분노를 유발한다. 여행을 와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워커홀릭인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리자 절망하고 예민해지며 소위 진상이 된다. 경찰이 사건을 적당히 뭉개는 걸 보자, 인도 정부에 그를 고발할 것이라는 둥 고압적으로 나가기도 하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예민함은 경찰로 하여금 보여주기식 수사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억울한 사망자를 만들어내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스리랑카인들의 폭동을 만들어낸다.
그와 대조되는 아내, 암리사는 특히 사슴에 꽂히기도 하며 스리랑카의 전설과 자연에 관심이 많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케사브의 예민함이 억울한 사람들을 향하는데도 뻔뻔한 케사브의 이기적인 행보를 보며 여러번 정떨어져하는 모습을 보인다.
케사브에게 스리랑카라는 지상낙원은 성공을 날려버린 곳으로, 암리사에게는 남편의 이기심을 확인하며 각기 다른 이유의 지옥이 되었다.
2. 지상낙원과는 너무 먼 스리랑카의 현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스리랑카인들이 기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기름도 부족하니 전기도 부족하고 뭐 하나 있는 게 없다. 경찰도 보면 시민들을 지키기보다는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폭동들이 난무하고 테러가 난무한다.
한 관광객의 위력 행사로 공권력이 시민들의 편이 되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사회의 참상은 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나온 역사에도 비슷한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물품조차도 제대로 수급되지 않는 사회에서의 국민들의 고통이 그저 즐기려고 온 관광객의 모습과 대비되며 시타와 라마 전설이 어쩌고저쩌고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와중에 자연풍경은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그들의 참상과 비교되어 더욱 안타끼움을 자아낸다.
3. 전설은 각자만의 버전이 있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지점이 있다면 영화에 주요한 소재로 쓰인 라마야나 전설의 해석이다. 스리랑카 안에서도 전설에 대한 해석이 다 다르게 퍼져있다. 한 전설을 두고, 어떤 사람은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묘사하고, 한 사랑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린 작품으로 묘사한다. 다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것이다. 혹은 가장 잘 팔릴 버전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다 각자만의 관점대로 해석하고 퍼트린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는 결국 없는 것 같다. 종교인들의 숨과도 같은 성경조차도 이리 다양한 해석본이 있으니 진리라는 것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신만의 진리만 있을 뿐.
총평
영화를 보고있자면, 그리고 지상낙원에는 선인들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상낙원에 살던 아담과 이브 사이에도 뱀이 등장했던 것처럼 어디에나 케사브나 경찰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있다. 그러니 완벽한 선인들만 사는 천국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공존하면서 살 수 있다. 공존은 나와 다른 사람까지 사랑하지 않아도 그저 그런 인간도 있다고 인정하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그리고 지상 낙원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완벽한 지상낙원은 없기에, 그래서 전설 속에서나 그런 곳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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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9> 기대만큼 액션이 특출나지 않은 이유
첩보 임무에서 은퇴하고 아내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도미닉(빈 디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집에 찾아온 '테즈(루다크리스)', '로만(타이레스 깁슨)', '램지(나탈리 엠마뉴엘)'로부터 든든한 조력자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 사건에 의절한 동생 '제이콥(존 시나)'과 과거의 적이었던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동생을 막지 않으면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져들 상황에서 도미닉은 자신처럼 은퇴했던 여동생 '미아(조다나 브류스터)'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한(성 강)'을 포함해 모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지상은 물론 공중에서도 제이콥을 저지하기 위한 미션에 나선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정체성은 흔히 한계를 모르는 자동차 액션에 국한된다. 실제로 그간 도미닉 토레토와 그의 동료들, 곧 '도미닉 패밀리'는 차를 탄 채 탱크, 비행기 및 잠수함과 전투를 벌이는 액션을 펼쳤다. 이는 시리즈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현실과 상상의 기준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킴으로써 큰 인기를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사실 실망스럽다. <분노의 질주>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방탄 트레일러와의 추격전이 비행기, 미사일 드론, 잠수함 순으로 상대할 적이 점점 강해지던 흐름에 발맞춰 덩달아 부픈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은 무리다. 이에 더해 비록 개연성과 현실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는 하나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 지뢰가 터지지 않는다거나 거대한 전자석이 만능 치트키로 기능하는 것, 심지어 차를 개조해 우주로 나가는 등 물리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액션 구성은 그 매력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를 액션 영화 이전에 토레토 '식구'의 드라마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경우 그 실망감은 줄어든다. 5,6 편에서 도미닉 패밀리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묘사하는 데 공들였던 저스틴 린 감독이 복귀하면서 영화의 포커스가 다시 한번 토레토 가족의 드라마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옛날 버전 로고가 암시하듯 영화의 중심에는 시리즈의 버팀목 도미닉과 새롭게 등장한 그의 동생 제이콥의 과거사가 위치한다. 카 레이싱 선수였던 아버지를 도와 차량 정비를 맡았던 도미닉과 제이콥. 그러나 레이싱 도중 차량이 폭발해 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돔은 제이콥이 가장 마지막으로 엔진을 손봤다는 이유로 그가 가족을 배신했다고 단정지은 후,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쫓는다.
특히 영화는 성경 속에 등장한 여러 형제들의 이야기를 빌려와 십자가 목걸이를 나누어 끼는 토레토 형제의 서사에 깊이와 개연성을 더한다. 우선 제이콥의 서사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야곱의 이야기의 변형과 다름없다. 야곱은 형 에사오가 아버지 이사악으로부터 받아야 할 축복을 속임수로 훔친 후 형의 보복을 피해 가족을 떠난다.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자립한 그는 긴 시간이 지난 후 건실한 가정을 일군 형과 재회한 자리에서 선물과 축복을 건네며 화해하고, 이내 헤어져 자신의 삶을 개척하러 떠난다.
이때 제이콥의 서사는 야곱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아버지에 대한 진실로 바꾼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미닉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제이콥은 형을 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빚을 승부조작으로 갚기 위해 엔진을 몰래 고장 내라던 아버지의 부탁대로 움직인 그는 아버지의 사망이 단지 사고였다는 진실을 끝내 밝히지 않으며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다. 대신 그는 형과의 레이싱에서 패한 뒤 곧장 가족을 떠나고, 긴 시간이 흘러 재회했을 때는 그간 감추었던 아버지와의 진실을 형에게 알려주면서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던 가족을 되찾기 위한 물꼬를 튼다.
한편 형제 중 형인 도미닉의 서사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 속 첫째 아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비유를 보면 형은 자신 몫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을 비난한다. 또한 그는 동생을 다시 찾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 곁에 끝까지 남아 첫째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그는 다시 얻게 된 동생을 반기는 대신 그가 돌아와 자신의 재산만 축낸다는 불만과 무자비함을 표할 뿐이다.
도미닉도 마찬가지다. 그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카 레이싱 출발선에서 재회했을 때도, 파티에서 제이콥을 만났을 때도, 그를 붙잡아서 자신들의 기지로 데려온 후에도 그의 태도는 항상 같다. 도미닉은 자신이 토레토의 이름과 명예를 지켜왔고, 제이콥은 절대 용서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는 독단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제이콥이 가족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죄를 지었다고 확신할 뿐, 자신이 바로 그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이콥이 형에게 진실을 알려 줄 용기가 있는 야곱이었던 것처럼, 도미닉도 끝까지 탕자의 형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치 세례를 받듯이 물속에 들어가서 잘못을 마주하고, 이를 씻어낸다. 그는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 물에 뛰어든 과거의 기억을 마주한다. 자신이 몰랐던, 혹은 제이콥이 알려 주었는데도 애써 무시하려 했던 그, 동생, 그리고 아버지 사이의 진실을 모두 깨닫고 토레토 가족을 망가뜨린 것은 자신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물 밖으로 나온 그는 뒤늦게나마 제이콥에게 아버지의 차 열쇠를 건네고 시리즈 내내 지켜온 가족이 아닌, 한 차례 잃었던 본래 가족을 회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토레토 가족의 과거사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돔의 크루들, '도미닉 패밀리'의 서사로도 확장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가족의 회복, 재회라는 키워드 안에서 과거에 끊어졌던 인연들을 어떻게든 복구하고, 집합시킨다. 7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한은 살아 돌아와 다시 돔의 크루에 합류하고, 3편인 <도쿄 드리프트> 크루들도 로켓 엔진을 들고 시리즈에 복귀하며, 5편에서 리우의 은행 금고를 함께 훔쳤던 레오와 산토스도 돔과의 과거 인연을 통해 모습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브라이언(폴 워커)'의 등장은 여전히 큰 감동을 준다.
물론 돔의 이야기에 더해 그들의 사연을 녹여내야 하다 보니 시리즈 팬이 아니라면 과거 회상 장면이 지나치게 많아서 영화가 늘어진다고 여길 여지는 있다. 그러나 돔의 진한 가족애가 본래 가족을 지키지 못한 과거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었기에, 모든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운 듯 보이면서도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자동차처럼 가족도 꾸준히 가꾸고 관리하면 결코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대사가 영화 내외적으로 실현된 셈이다.
이는 영화가 액션씬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시리즈의 상징이었지만 점점 비중이 줄고, 심지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 카 레이싱은 다시 영화 전면에 나선다. 이때 레이싱 장면은 전부 과거 시점에서 토레토 가족이 분열하게 된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등장한다. 그간 브라이언과 도미닉 토레토, 그리고 도미닉 패밀리가 카 레이싱을 통해 점점 늘어났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카 레이싱 장면은 가족의 해체와 만남이라는 대조를 통해 액션과 가족애라는 시리즈의 두 정체성을 한 데 담아내는 인상적인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분노의 질주 9>가 본래 제시하려던 이야기와 메시지를 세련되게 스크린에 녹여내지 못한 점은 액션의 의미와 별개로 양질의 액션이 부족한 것만큼이나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당장 영화의 포커스가 돔과 제이콥, 한 등 몇몇 인물들에게만 맞춰져 있는데도 제이콥이 돔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상황 설명만 나올 정도로 스토리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미 몸집이 거대한 시리즈다 보니 나머지 캐릭터들의 서사가 지나치게 간소화되는 문제도 피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두 형제의 또 다른 가족인 미아는 그들의 과거사에 끼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두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의 서사가 메인인데도 그녀의 과거사를 그저 독백 몇 마디로 해결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전편에 이어 흑막으로 등장한 사이퍼는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 특유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제이콥의 조력자인 오토가 그를 배신하는 과정도 묘사가 매우 적다. 미스터 노바디가 모든 설정 구멍을 메워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되는 것이나 로만과 테즈 등이 단순한 개그 캐릭터로 전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토레토 가족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과거사를 통해 돔의 크루를 한 자리에 모두 집합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리즈의 난맥상을 정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여러 감독이 오가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통일성을 잃고, 첫 시작으로부터 정체성도 크게 변한 상태였다. 브라이언과 한이라는 큰 인기를 모은 주조연 캐릭터가 각각 퇴장해 이야기의 풍부함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저스틴 린 감독과 오래된 캐릭터들의 복귀를 통해 액션보다는 가족 드라마를 강조한 선택은 이 난관을 정리하고 두 편이 더 개봉할 예정인 프랜차이즈를 안정적으로 끝맺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승부수인 것이다.
사실 이 시도를 온전히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양질의 액션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드라마도 의도와는 별개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쿠키 영상에서 예고된 속편을 끝끝내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최소한의 성과를 챙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과거를 통해 출발선으로 되돌아간 시리즈.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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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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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 블라썸> 사랑이 피어나고, 소녀는 성인이 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이 난 '수잔(수잔 랭동)'. 맘껏 재잘거리는 친구들 사이에 있음에도 그녀의 세상은 조용하고 무료하다. 어느 날 그런 그녀에게 우연한 만남이 찾아오고, 수잔은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을 만난다. 수잔은 라파엘도 자신 못지 않게 권태로운 삶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라파엘 역시 수잔의 고요한 일상에 깃든 공허함을 눈치 챈다. 서로를 엮어주는 공통점은 동질감으로, 더 나아가 호감과 사랑으로 이어지며 수잔과 라파엘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왔던 사랑은 이내 위기를 맞이하며 강한 애착으로 엮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험대에 오른다.
수잔 랭동 감독의 데뷔작인 <스프링 블라썸>은 16살의 수잔이 35살의 라파엘을 만나 사랑의 싹을 틔우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16살의 봄’이라는 뜻의 원제인 ‘Seize Printemps’에 충실한 작품이다. 사실 작중 수잔과 라파엘의 관계처럼 나이 차이가 큰 연애와 사랑은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연인 중 한 명은 성인이고 다른 한 명이 미성년자라면, 순수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 이면에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흑심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스프링 블라썸> 속 사랑이 관객에게 소구력이 있으려면 영화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장애물을 영리하게 피해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수잔 랭동은 사랑의 시작과 그 감정선을 영리한 기교로 풀어내며 미션을 훌륭히 완수해낸다.
우선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공통점을 부각하며 그들의 관계를 철저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데 성공한다. 수잔과 라파엘은 권태에 빠진 이들이다. 수잔은 여자 친구들, 남자 친구들, 선생님, 자기 자신에게도 어떠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지쳐있고, 무료하고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같은 연극을 반복해서 하고 있고, 나무 역할을 연기해야 되는 날도 있는 그도 일상에 지쳐 있다. 당장 연극이 행복한지, 연극을 즐기고 있는지 묻는 수잔에게 연기하는 법을 잊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또한 수잔과 라파엘은 신이 속해있는 곳에서 소속감에 들려고 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수잔은 남자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파티에서 춤추자고 권유하는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뿌리치기 일수이며,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속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연극 후 회식 자리에서 도망치기 바쁘고,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대화에 쉽게 끼지 못한 채 묘하게 겉을 맴돈다. 무대가 끝난 뒤 커튼콜을 할 때도, 인사를 하거나 퇴장하는 타이밍을 한 박자씩 맞추지 못한 채 따로 행동한다. 이렇게 라파엘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잎을 피우지 못한다.
이처럼 수잔과 라파엘이 각자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사람이나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순수한 감정의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스무 살가량 차이 나는 이들의 로맨스에서 현실적인 맥락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두 인물의 공통으로 갖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부각하면서 그들을 여성과 남성, 미성년자와 성인 이전에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공허함은 빨간 석류 에이드를 함께 나눠 마시고, 아침을 같이 먹으며,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연대감으로 나아가고, 두 개인 사이에서 피어난 연대감은 마침내 사랑이라는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오직 '나' 같은 '너'와 '너' 같은 '나'가 만나는 그 순간에만 주목하도록 유도하고, 뿌리내릴 곳 없던 두 사람이 함께 뿌리내리고 사랑의 꽃잎을 피우는 과정만 스크린 위에 띄우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영화는 공감과 동질감이 낳은 연대가 사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들을 둘러싼 여러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지 않는다. 사랑이 위험에 빠지고 두 사람이 이별하더라도 그 이유나 사연을 설명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저 그 사랑의 궤적을 쫓으며 그 순간순간마다 두 연인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러한 의도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에서 엿보인다. 음악과 댄스가 대표적이다. <스프링 블라썸>은 두 연인이 춤추는 장면을 거듭 보여준다. 이때 평범한 서사에서 춤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어색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교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려는 찰나에 직접적인 스킨십이나 대사 대신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춤을 춘다. 그래서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연극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춤은 서로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상상 속 교감에 가까워 보인다. 또 그렇기에 이 댄스신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합을 잘 맞춘 몸짓은 아니지만, 그 약간의 빗겨나감에서는 역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있는지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수잔 랭동이 무용에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한 ‘탄츠 테아트르’(Tanztheater, Dance Theatre) 형식의 퍼포먼스를 주로 선보이는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h)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이 새감 실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스프링 블라썸>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제 거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가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작중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빈자리는 종이 책과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대신하며, 이는 영화 전반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달리 말하자면 시대를 막론하고 10대 시절을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77분의 러닝타임 안에 가득한 것이며, 수잔을 보다 보면 <라붐>(1980)과 <귀여운 반항아>가 떠오르는 이유다. 이 역시 두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 대신 그들의 감정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사랑의 판타지 속으로 마냥 젖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차이점, 성인과 그렇지 않은 이의 간극도 분명하게 또 반복해서 잡아주고 있다. 두 사람이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는 장면만 보더라도, 라파엘은 자신의 담배를 사면서 동시에 수잔에게는 사탕을 선물해준다. 10대와 30대의 사랑과 그 간극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인 것이다. 사탕과 담배 외에도 10대와 30대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석류 에이드와 맥주다. 맥주는 아직 수잔이 먹기에는 어린 나이에 해당되고 보통 어른들이 주로 마시므로 성인에 해당되고, 석류 에이드는 그에 반대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아 10대와 30대 간의 간극이 잘 보이는 순간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스쿠터를 타고 수잔 집 앞에 간 라파엘과 그런 그에게 스쿠터가 무섭다며 타지 않겠다고 말하는 수잔의 모습에서도 석류 에이드와 맥주의 차이점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 간극 덕분에 <스프링 블라썸>은 단순히 사랑이 시작되는 간질거림을 간직하는 데서 그치는 대신, 10대가 바라본 사랑의 경험과 그로부터의 성장, 곧 성인으로의 발돋움을 그려내는 듯 보인다. 식음료의 차이는 수잔과 라파엘의 권태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속사정이 꽤 다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수잔이 겪는 일상의 무료함은 평균적인 또래 집단과 수잔 본인의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여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 중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큰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반면에 라파엘이 겪는 권태로움은 보다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같은 배역이 반복됨으로써 작품을 계속하고픈 열정이 희미해진 시간만이 지속되고 있다. 그는 약간의 번아웃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오페라 아리아 곡과 같은 작은 요소에 기대어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면, 수잔과 라파엘의 동질감에 주목할 때 보였던 로맨스는 수잔의 성장영화로 바뀌어 보인다. 후반부에 들어서 수잔은 라파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그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이별을 고한다. 사실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은 이 대목의 전개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하며,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수잔의 권태로움이 라파엘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래들이 시시해 어른스러운 고뇌에 가득 찬 남자에 끌리는 수잔이 그려낸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템포 더 어른이 된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스프링 블라썸>은 한 편의 성인식 같기도 하다. 오프닝 장면에서 친구들의 수다가 지겨운 수잔은 자신이 마시던 빨간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휴지에 뱉으며 하얀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는데, 이 장면이 마치 여성들의 초경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 내내 빨간색의 색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수잔이 늘 가지고 다니는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소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표지, ‘라파엘’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와 카페에 가면 늘 먹는 딸기잼이 발라진 빵 등 <스프링 블라썸>에는 빨간색이 포인트 색상으로 꾸준히 등장한다. 이는 사랑을 통해 성인이 되는 한 소녀의 성인식을 시각적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사실 <스프링 블라썸>은 앞서 보았듯이 초점이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시작 지점부터 빠져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 또 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두 남녀의 일상과 그 일상의 찰나가 어떻게 특별해질 수 있는지를 따라가야 하므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지닌 힘에 기대 지적될 수 있는 난점들을 가리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혹은 그 반대인 사랑을 꽃피우고,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 그 사랑의 끝이 어찌 되든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잔 랭동의 초대를 받아 넘실거리는 감정선에 한 껏 빠지는 경험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A(Acceptable, 무난함)
막 시작되는 사랑의 순간순간을 담아낸 장면들의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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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태어나도 풀 수 없었던 '나'라는 숙제와 원죄
두 번의 결혼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야자키 현에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리에와 그의 손님 타니구치다. 리에의 옆은 허전하다. 남편은 리에의 곁을 떠났고 사랑하는 아들은 이제 이 이 세상에 없다. 텅 비어버린 삶. 혼자 정리하는 문방구에는 빈 공간이 많다. 지인들이 리에의 문방구에 도착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리에와 사람들. 그럼에도 리에의 일상이 바뀌기엔 시간이 좀 필요한 듯하다. 그녀의 문방구를 들락날락하던 손님 타니구치는 주인 리에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알고 있다. 사실 타니구치는 리에를 마음에 두고 있다. 어딘가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던 타니구치. 문방구점에서 미술도구를 사는 일로 리에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있었다.
잔잔한 로맨스물처럼 보이던 영화는 갑자기 장르적인 긴장감을 덧붙인다. 리에와 타니구치는 오래 걸리지 않아 마음이 통하게 된다. 용기를 내는 타니구치. 리에 역시 마음을 열게 된다. 리에의 상처를 위로할 줄 알았던 타니구치. 리에는 이런 타니구치와 사랑에 빠진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미래. 둘은 결혼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두 사람. 큰 상처가 있던 리에에게 타니구치는 선물 같은 존재다. 어느 날. 남편 타니구치가 일 하러 나갔다. 벌목업을 하던 타니구치. 안전장비를 단단히 챙겼다. 나무를 베는 타니구치. 혼자서 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갑자기 사고가 벌어진다. 벤 나무가 잘못 떨어져 타니구치에게 향했다. 나무에 깔려 사망한 타니구치. 타니구치가 세상에 떠났다. 장례식 당일. 타니구치의 친형이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는 리에와 타니구치의 형. 그런데 타니구치의 형은 뭔가 이상한 말을 한다. “잠깐, 이 얼굴 제 동생 아닌데요?”
들끓는 내면
영화가 다루고자 했던 핵심은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는 한 남자의 인생을 톺아보며 ‘어떤 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영화 제목으로 설정한 ‘한 남자’는 작품의 이야기에 대한 은유다. 이 다방면으로 등장하는 남자들은 각기 다른 인물임과 동시에 후반부의 무언가를 암시한다. 일본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영화의 이면에 전적으로 깔려있는 것과 동시에 단지 제대로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비명이 각기 다른 인물들에게 투영되어 있다. 이 여러 인물의 내면을 한 사람으로 수렴하는 연출은 후반부까지 집중하지 않는다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 주인공 키도의 시점에서 이어진다는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인물(키도)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다른 캐릭터는 과거에 큰 상처가 있으며 정반대로 규정지을만한 무언가 역시 키도와 이어진다는 점이 이야기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영화는 조용하다. 감정적으로 대놓고 폭발하는 장면이 없다. 하지만 진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품 내적으로 품고 있는 고요함 때문이다. 이 고요함이라는 정서는 영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의 속성이다. 우리가 서로를 마음속으로 평가할 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한다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생 이면에 가려져 있는 것을 전부 다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며 살아감과 동시에 ‘지엽적인 접근’으로 행복해진다. 영화는 냉정할 정도로 인간이 가진 이 아이러니를 묘사한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 직접적인 화법보다 더 설득력이 붙는다.
따가운 피부
이 영화는 시선에 관한 영화다.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이다. 영화는 이 그림을 초반부에 중요하게 등장시켰다. 사실상 이 그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그림은 본질적으로 모순이다.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근데 거울이 비추는 것은 뒷모습이다. 당시 유행처럼 불었던 초현실주의 화풍과 프로이트의 연구결과가 이 그림에 큰 영향이 갔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꿈, 욕망, 우연성 등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키포인트라고 봤다. 르네는 인간의 뒷모습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표현하는 단초가 된다라고 생각하고 그렸다고 볼 수 있다. 앞(표면)이 아니라 뒷(이면)을 보겠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영화의 핵심으로도 이어진다. 그 사람에 대해 정보를 얻는다. 근데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다. 단지 뒷모습을 보고 키도가 어떤 인간인가 생각할 뿐이다. 영화 내적으로 일본 사회가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행위가 단지 앞만 봤기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작품의 형식이 이 그림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름이라는 소재를 영화가 이야기를 함축하는 데 사용됐다는 점이 그렇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영화가 ‘정말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핵심으로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물의 내레이션을 위시로 한 직접적인 감정 묘사 없이 ‘뒷모습을 보는 행위’와 같은 방식으로 관객을 인물들과 거리 두고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서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영화 중반부 즈음에 주인공 키도가 유리를 앞에 두고 누군가와 만나는 신에서 극대화된다. 사실상 이 두 인물은 거의 유사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인물 간의 거리 두기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 두 사람이 어떤 히스토리를 가진 인물인지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등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부분은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 영화가 러닝타임이 끝날 때 자연스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의 답을 ‘금지된 재현’이라는 그림으로 한 듯하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건 사회가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영화가 어떻게 사회적인 문제를 ‘잘’ 다룰 수 있을까? 이번주에 개봉했던 <타겟>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중고거래라는 설정보다 ‘여성이 혼자 사는 것의 위험함’이 훨씬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과한 표현도 몇 보인다. <한 남자>는 감정적으로 들끓는 순간에 물음표를 친다. 그리고 인물이 처해있는 입장 역시 거리를 두면서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근거를 둔다. 그 이면에 일본 사회에 만연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알려져 있는 범죄 묘사가 그대로 영화에서 중요하게 삽입된다. 이 역시 영화에서 반복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소모적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닌 이야기를 작동하는 원리가 됐다.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이 영화를 격렬한 스릴러/미스터리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대사가 후반부에 제시되기도 한다. 영화의 편집과 음향은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다. 장면은 그림을 그린 것처럼 통제되어 있다. 이런 연출이 영화를 문학적으로 읽히게 만드는 요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르적으로 쫀쫀한 긴장감을 기대하고 가는 관객들이라면 영화를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리를 둬 관객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몰입감을 유발하기 충분하다. 안도 벚꽃을 위시로 한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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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쫄보기자들과 바이럴에 낚였습니다...ㅣ랑종 후기ㅣ
? "랑종" 리뷰(*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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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리뷰:원작의 중요한 설정을 모두 갖다버린 리메이크작. 남는 건 배우의 얼굴 뿐(원작분석)ㅣ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해석
#조제#한지만#남주혁
원작보세요 여러분!음악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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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u - Wind's Wreck
Free Download / Stream:https: https://www.youtube.com/watch?v=Dgw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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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Naoya Sakamata – Di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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