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5:04
홀리모터스
살아낸 그 삶 마저 연기였을까?
내 삶은 어디에..
실제의 삶과 연기하는 삶 사이의 간극은 그 안에서도 소모되는 오스카만이 남겨져있었다.
“20분안에 지난 20년을 다 돌아봐야해”
극장에서 자는 관객들, 리무진의 대화를 통한 시대변화
그럼에도 잊지 않겠다는 중간중간의 영화장면들이 인상적이게 다가온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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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전생'에서 깨진 인연을 지금 다시 붙이고 싶다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셀린 송
출연진 :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울보 나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나영이다. 외로운 삶. 어린 나영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영에게 기댈 수 있는 그늘이 있다. 같은 학교 친구 해성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해성과 함께했다. 사실 왜 둘이 집을 같이 갈까 3자가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쉽다. 다만 서로가 각자의 마음을 알기엔 너무 어릴 뿐이다. 시간은 둘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나영 가족. 이미 나영의 부모는 나영에게 ‘노라’라는 영어 이름을 붙여줬다. 이별이 다가오는 둘. 나영은 해성에게 ‘나 이민 가. 한국에선 노벨상 못 받으니까’라고 전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해성이다.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못했다. 분명히 노라는 날 좋아했었다는 미련을 가진 채로 살아간다. 떠나기 며칠 전에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페이스북으로 사람을 찾는다. 이름은 문나영.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실만 알았지 이름이 ‘노라’가 됐다는 건 아예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연락이 오겠지? 기다리고 있는 해성. 그날은 해성의 친구가 연인과 헤어진 날이었다. 펑펑 우는 친구 옆에서 해성은 어쩔 줄 모르고 있다. DM 알림이 온다. “안녕. 나 나영이야.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나영이, 아니 노라에게 연락이 왔다. 미국과 한국, 뉴욕과 서울이라는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넘버 3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셀린 송이다. 영화가 흥미로웠던 점은 이야기 곳곳에 이 셀린 송이라는 인물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셀린 송의 부친은 송능한 감독이다. 송능한 감독은 연출로 데뷔하기 이전에 임권택의 <태백산백>을 비롯한 몇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했다. 충무로에서 나름의 명성을 쌓은 송능한 감독. <넘버 3>를 발표하며 금세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올라선다(최근의 한국영화를 바탕으로 하면 아마 엄태화 감독쯤 됐을 것이다). 차기작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세기말>을 발표하는 송능한 감독. 하지만 영화 외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흥행에 실패한다. 이민을 결심한 송능한 감독. 미국으로 떠난다.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극 중에서 나영의 아버지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왜 아버지가 이민을 결심했는가’에 대해선 ‘설명하기 복잡하다’로 끝난다. 부친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가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영화가 주인공 나영이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직업을 ‘시나리오 작가’라고 설정했다. 실제로 셀린 송 감독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극작가(Playwriter)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중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에게 여동생이 있다. 실제 셀린 송 감독에게도 여동생이 있다. 감독의 남편 역시 실제 배우의 외모와 닮았다. 작중에서 노라의 남편 역을 맡은 배우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다. 실제 셀린 송 감독의 남편 사진을 찾아보면 이와 유사하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있어 많은 부분을 어디에서 착안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백을 비추는 카메라
이 영화의 강점은 감정전달에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앞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자기가 잘 아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덕에 장면마다 정보를 더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이 안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노라와 해성이 성인이 되고 나서 대면하는 신이 그 예다. 두 사람은 거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그걸 온갖 대사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딱 한 문장으로 끝내되 대신 다른 장면에서 인물들과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대표적으로 나영이가 울보라는 설정이 그렇다. 나영이는 잘 울었다. 하지만 봐줄 사람이 없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감정을 표현해도 울보라는 것을 알아봐 줄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울 일도 줄어들었다. 받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라의 성격이 변한 것이다. 반대로 해성이의 경우는 인물의 성격이 10대/20대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까지 본다면 20대의 해성과 어린 시절의 해성이 둘 다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중간에 군 생활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의 시간이 12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체감하기 어렵다. 특히 가족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그런데, 둘을 비추는 방식은 별 차이가 없다. 시각적으로 이들이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연출해 실질적으로 변한 건 드물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또 영화에서 흥미롭게 리듬을 변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차다. 두 사람의 시차는 영화에서 첫 대면신에만 설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시차가 영화에서 내포하는 바는 의사소통의 균열이다. 이 균열이 일어나는 장면이 인물들의 관계마다 다 묘사되어 있다. 아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술집의 장면은 주인공 해성-노라 / 노라의 남편으로 대화 구조가 짜여있다. 둘/하나로 나뉘는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노라의 남편은 한국어를 못한다. 그래서 둘은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언어로 시차를 둔 것이다. 이 시차는 두 주인공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12개월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한 번 끊는다. 여기에서 해성과 노라가 연애를 시작한다. 해성이는 사랑을 끝내는데 반면 노라는 남편을 만나는 장면도 두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신에서는 노라가 직접('네가 원하는 나영이는 이제 없어')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해성이가 원하는 현재와 노라가 이해하는 과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해성이는 노라가 나영이의 모습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기 바라기 때문에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영화는 시차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드러내고 있고, 이를 두 인물이 가진 고유의 리듬을 비틀면서 전개한다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 영화를 만든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글쓴이에게 있어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의미는 시차와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시차를 두는 일과 유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쉽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래 가슴에 품는 이도 있다. 이 후회는 과거의 내가 보지 못했던 걸 현재의 자신이 알고 있다는, 일종에 시차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영화는 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내가 알지 못했던 걸 지금 고치기 위해 노라에게 간 해성. 하지만 과거의 내가 알든 현재의 내가 알든 그건 노라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해성이 잘 알고 있다. 영화는 이 과정을 깨닫는 해성의 내적 성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또 사실상 노라의 현재를 상징하는 남편 캐릭터를 진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당신에게 현재는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다. ‘전생’에 있었던 그 모든 사건보다 현생의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태오 배우는 열연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중심 부분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회전목마 신에서는 이 인물이 그동안 품어왔던 그리움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네가 그리워라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 없이, 단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응축한다. 아마 유태오 배우가 이 감정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유태오 배우가 참석했다. 유태오 배우는 “이 시나리오를 받고 울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술집에서 대화하는 신이다. 여기서 해성을 보면 영어에 서투른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영어를 못해서 대충 눈치로 넘기는 장면을 보면 '정말 영어 못하나 보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인 유태오 배우는 영국과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기로 이 부분을 돌파한 셈인데, 유태오 배우가 연기에 얼마나 이 장면을 잘 이해하고 있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국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10월 9일 오후 12시 30분에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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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한정된 공간에서 액션을 능숙하게 연출한 점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후반에 등장하는 에이리언 최종 보스를 충격적이고 기괴한 새로운 형태로 그려내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국내에서는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누적 관객 수 120만 명을 넘기며 1위에 올랐고, <파일럿>은 425만 명을 넘기며 2위를, <늘봄가든>은 20만 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밀어내고 다시 1위에 올라섰습니다. 국내에서 196만 명을 기록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에서만 5억 8,88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데드풀과 울버린>은 <조커>를 누르고 역대 R등급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에 뒤이어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2위, <잇 엔드 위드 어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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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면을 알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가족’
주인공처럼 공부와 연애가 전부이던 10대 시절, 따로 사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학교가 끝나면 유치원에 있는 동생을 데리러 가야 했다. 다행히인지 공부에는 별 욕심이 없었지만 친구들이랑 놀 때면 집에 혼자 있는 동생이 마음에 걸려 뭔지 모를 죄책감을 가진 채 핸드폰의 진동모드를 벨소리로 바꾸고 손이 닿는 곳에 둬야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다. 가족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상황이었기에 반자발적으로 동생을 돌보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만 힘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굳이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급하게 연락을 받고 조금 늦게 동생을 데리러 가는 날엔, 텅 빈 놀이방에서 혼자 색종이를 오리고 있던 동생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다. 10대면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연애에도 관심을 가지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했다. 실상은 매일 가족과, 나의 미래와, 나의 오늘과 균형을 맞추며 고군분투해야 했다. 한 감독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어쩐지 마음이 좀 놓였다.’ 가끔은 명확하고 현실적인 대안보다도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잊고 있었던, 잊으려 노력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위로가 되었던 영화 <코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영화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작은 어선에서 시작한다. 농인 아빠 프랭크 로시(트로이 코처)와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 그리고 청인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무도 없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바다는, 육지로 돌아와 루시를 통해 청인들과 소통하는 프랭크와 레오에게는 육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바다로 가는 가족을 두고 노래 연습을 하러 가는 루비의 내적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농인 가족의 사이에서 자라고, 수어를 가장 먼저 배웠을 루비는 새로운 언어이자 가족과 소통이 불가한 ‘노래'를 하게 된다. 영화의 기본 로그라인이 되는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오던 패턴을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주제가 ‘CODA(Children Of Deaf Adult)’인 만큼 영화에서 ‘언어'란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이자 중요한 요소이다. ‘가족과 소통해오던 언어를 바꾼다(새로 설정한다)’는 말은 가족과의 갈등을 통한 루비의 성장기임을 보여준다. 노래는 수화와 음성어를 쓰던 루비의 새로운 언어이다.
여기에는 음악 선생님 ‘미스터 V’의 역할이 크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스터 V의 주된 교육 방식은, 음악적 기교들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 내고 호흡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발성을 찾는 것이었다. 미스터 V는 ‘새로운’ 언어가 아닌 루비가 익힌, 사용하던 언어를 통해 루비만의 언어를 확장시켜준 셈이다. 따라서 노래는 루비에게 단순히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온 과거의 언어인 수어와 소리의 혼합형 언어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는 루비와 가족을 분리시키는 수단이기에 루비의 자아를 찾는 양면적인 도구가 된다. 덕분에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구사하고 가족 외의 사회와 소통하는 음성어,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며 루비의 성장기를 마친다.
‘구름의 양면을 봤지만 구름의 실체를 모르겠어.’ 루비가 영화 후반부, 시험장에서 부르는 노래 <Both Sides Now>의 가사다. 노래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구름을 보며 아이스크림 성, 계곡을 상상했지만 어느새 구름은 태양을 가리고 비를 내려 앞길을 막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모두 구름의 환상일뿐, 여전히 구름을 모르겠다. 동일한 패턴으로 사랑과 인생까지 이어진다. 노래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가족'도 넣어볼 수 있겠다. 노래를 듣고 나면 이 영화 한 편을 압축한 것 같았다. 루비 로시의 시선을 통해 가족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가족이란 실체는 모르겠다. 성장 중인 루비에게 가족의 존재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계속해서 ‘그래도 우린 하나 된 가족'의 뉘앙스만 풍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갈등들을 아낌없이 보여줬기에, 그저 그 과정에서 루비의 성장을 보여주었기에 단순한 우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가지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과 나의 삶의 저울 위에 서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췄던 것 같다. 어느 쪽도 답은 없었고 그 균형을 맞추는 자체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성장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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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웨일(2022)> 리뷰
※ 스포일러 주의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무척이나 따르는 8살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난다. 그가 매정한 선택을 한 이유는 바로 단 하나, 연인이다. 자신이 가르쳤던 독실한 남학생.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살 소녀는 장래 문제가 코앞에 닥친 청년이 되었고, 연인을 잃은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느리게 자살을 시도해 온 남자는 자문한다. 내가 이 삶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
영화 <더 웨일(2022)>은 <블랙 스완(2010)>, <재키(2016)> 등으로 이름을 알린 대런 애로노프스키 신작이다. 감독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의 마지막 일주일을 조망하며 한 인간의 지극히 다면적인 면모를 스크린에 담아내며, 주인공이 역시나 입체적인 주변 인물과 맞물리고 부딪히는 장면을 통해, 끝끝내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약 120분에 걸쳐 풀어낸다.
연극을 원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메라는 주인공 찰리의 집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간이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배경이 찰리의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찰리는 멈춰있는 사람이다. 연인이 죽은 이후로 그의 시공간과 감정, 기억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찰리는 감히 죽은 연인 앨런 그랜트의 방을 정리하지 못하고 보존하며, 온라인 강사로 근무하고 배달음식을 시키면서까지 집을 떠나지 못하고, 폭식을 통해 스스로를 학대한다. 심지어 딸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그가 기억하는 딸 엘리(세이디 싱크)의 집은 이미 몇 년 전에 이사를 간 과거의 장소이다. 게다가 그는 울혈성심부전으로 어려움을 겪는 초고도비만환자로 설정되어, 혼자서 이동하는 것조차 어렵고, 큰 웃음을 내는 것조차 힘들어 능동적인 변화를 자아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하니 그는 늘 실내에 머문다.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다. 가장 내밀한 심장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이 면면히 이어져 오던 어느 월요일 찰리는 선교사 토마스(타이 심킨스)를 만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밖에서 찾아온 손님은 그의 기억을 들쑤시고, 고통을 나눈 친구이자 전담 간호사이기도 한 리즈(홍 차우)는 찰리에게 허락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는 고통스럽다. 낙담에 빠져 긴긴 세월을 보낸 탓에 그의 시야는 오로지 절망만 포착할 줄 안다. 찰리는 이혼 후 받아들였던 접근 금지 제약을 어기고 엘리에게 연락한다. 언뜻 보면 마지막 순간을 앞둔 아버지의 부성애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은 아니다. 그는 세계로부터 확인받고 싶었다. 자신이 이번 생에서 잘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엘리를 만났을 때 찰리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딸의 근황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찰리는 엘리가 세계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만난 이후에 간신히 알게 되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는 상호 관계의 회복을 추구하고자 자신을 먼저 내려놓는 시도를 하기보단 거래를 선택한다. 찰리는 이렇게 제안한다. 자신과 함께 있어 달라고, 그렇게 하면 돈을 주거나, 과제를 대신해주겠다고. 전 부인이었던 메리(서맨사 모턴)가 찰리의 장점 중 하나가 낙관주의였다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찰리가 지나치게 큰 희망을 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딸 엘리가, 어릴 적 쓴 모비딕 독후감에서 보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은 어쩌면 딸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야속하지 않던가. 찰리가 8여 년 간 변했듯, 엘리 역시 변했다.
물론 찰리의 시간을 아는 관객에겐 그의 선택이 어색하게 보이진 않는다. 찰리는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엔 시간이 없다. 얼어붙은 현재를 사는 자에겐 과거로 귀환하는 것도, 미래로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죽음을 앞두어 평소보다 거동이 어려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딸 엘리는 그러한 속사정을 모른다. 예전엔 아버지를 따랐던 딸은 이미 크게 상처 입었다. 오랜 기간 연락 한 번 없던 아비의 요청은 뻔뻔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엘리는 찰리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 엘리가 최초에 내밀었던 패는 과제물이 아니었다. 찰리가 옛 추억에 젖어 당장의 거래를 요구했다면, 엘리는 찰리에게 외부 세계로의 물리적 확장을 요구한다. 자신의 두 발로 세계를 버텨낼 것을, 그리하여 끝내 자신에게 걸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엘리는 찰리에게 분노하면서도 거듭 아버지의 집에 온다. 그를 잠재우고 집의 구석구석을 탐독하며 멈춰있는 찰리의 시간을 본다. 그의 세계에 토마스를 끌어들이기도 하며,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찰리와 토마스를 폭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엘리는 차츰 알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으로 절망에 빠질 수 있음을, 끊어진 애정은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음을, 그저 단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해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이 모든 과정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상당히 파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엘리는 결국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애정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 일조했음을 배운다. 언젠가, 세상을 미워하기보단 모비딕의 인물을 향해 연민을 품었던 소녀가 되돌아온다.
엘리의 변화에 찰리는 화답한다. 그는 두 발로 세상에 선다. 모비딕 에세이를 읽는 딸의 목소리를 듣는다. 변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찰리는 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 확신을 얻으며 스스로를 긍정했다. 원망이나 절망의 시간은 끔찍했더라도 결국은 오늘의 삶, 찬란한 마지막을 위한 삶의 여정 중 일부였다. 그것이 과정의 처절함을 모두 중화시켜주진 않겠으나 영화 말미 쏟아지는 빛처럼 작게나마 위로가 되는 듯하다.
<더 웨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너무도 쉽고 편리하게 타인에 대해 말을 늘어놓지만, 실은 타인을 그리 쉽게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너무도 복잡다단하며 그 삶이 촘촘히 쌓이고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회는 더더욱 복잡하고 다양하여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세계를 그 누가 감히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영화의 짧은 몇 장면이 더없이 빛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의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차마 모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앨런을 도운 메리나,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탕아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에 성공한 엘리에게서. 영화 속에서 실현되는 찰나의 완전함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일궈낸 기적적인 한 순간이었다.
찰리는 살아있으라는 생명의 본원적 명령을 거부하고, 삶이라는 운명을 수행하지 않는다. 악명 높은 미국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저축조차 딸을 위한 것이었다며 사용하지 않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딸 앞에서 죽는다. 이것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가를 떠올리다 보면 찰리의 선택은 낭만적 비극의 전형임과 동시에 너무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소망의 실현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허나 영화는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지속적인 낙담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한 인간이 삶의 의지를 잃은 모습부터 최후의 구원까지 훌륭하게 연기한 연기자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박수를.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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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쓸 필요가 없었던 단어 비상선언
헐. 눈 뜨니 8월이다. '그래도 올해는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런 건 좀 너무하다. 영화 몇 편 보니까 전반기가 끝났다. 팬데믹 초반부, 기대작들의 보도자료를 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미 개봉됐다. 물론 현재 사회복무요원인 나. 올해가 최대한 빠르게 후다닥 가는 것은 나를 위해 무조건 일어나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니까 시간이 야속해진다. 나 진짜 20대 후반이 되는 거야? 20대 후반은 싫은데 다음 즐거운 일은 빨리 오면 좋겠다. 비단 이런 내가 나한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근데 시간은 앞으로만 달려간다.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뭐 방법이 있어? 그냥 맞이하는 수밖에!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좇는 게 현명하게 나이를 드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간 끝에 어느새 2022년 8월이다. 여름 빅 4 영화 중 세 번째 차례가 왔다. 주인공은 <비상선언>이다. 작년 12월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연기가 되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그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 전도연, 송강호, 이병헌이라는 큰 이름에 많은 분들이 기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2년을 돌아 개봉한 만큼 영화가 숙성되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앞으로의 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륙할지 비틀거리다 불시착할지는 봐야 알 것 같다. 2020년의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서 이 비행기에 탑승해보자.
물러설 곳 없는
사람 많은 바글바글한 공항.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몇 명은 여행 준비에 들떴고 누구는 이별하느라 슬플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을 공항이지만 비행기 부기장 현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본 것 같다. 아닐 거야. 다시 비행기로 가는 현수. 현수를 비춰주던 카메라는 의문의 승객 진석에게로 옮겨간다. 진석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인천 국제공항 항공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진석. 금세 직원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여기, 사람이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뭐예요?"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답을 거부하는 항공사 직원. "이야기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냐"라고 말했지만 답을 끝끝내 거부한다. 진석은 언짢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다 못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요. 걸레 같은 게" 진석은 하와이행 티켓을 끊고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서 진석은 무언가 하고 있다. 겨드랑이를 살짝 열어서 무슨 통을 넣고 있는 진석. 사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수민이었다. 진석은 탑승수속 대기줄에서 수민이를 발견한다. 말을 거는 진석. 수민이 옆에는 수민의 아버지 재혁이 있었다. 이혼했어요? 왜 엄마는 없어요? 불필요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진석에게 '이상한 사람이네’ 대응하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탑승한 지 머지않아 화장실로 들어가는 진석. 진석은 화장실의 천장에 어떤 가루를 뿌려놓고 혼자 나온다. 이륙한 비행기. 비행기 안, 다들 즐거워 보인다. 교복을 입고 비행기를 탄 학생들도 보인다. 휴가를 앞둔 경찰 인호의 아내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피를 뿜으며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이때 이 아저씨는 비행기 내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게 전부였다. 끔찍한 살인 수법에 경악하는 승객들. 금세 이 범인의 진범인 진석이 승객들 앞으로 나서며 '이 비행기에 탄 모든 이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도망칠 곳 없다.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한다. 이 전대미문한 전염병과 함께 비행기를 탄 승객들. 이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땅에선 경찰 인호가, 하늘에선 승격 재혁이 최선을 다한다.
압도적인 첫 시퀀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초반부라고 말할 수 있다. 진석이 항공사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전반부. 이때 카메라 잡는 구도는 뭔가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다. 이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진석은 우연히 만난 악 같은 존재다. 이 사람의 범죄 동기는 초반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석적으로 빌런이 누구인지 딱 보여주기엔 뭔가 엇나간 진석. 진석의 첫 등장부터 시작해 관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잘생기고 선한 만큼 뒤틀려있는 진석의 성격을 효율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한 대비를 위해 항공사 직원과 진석의 표정이 나란히 제시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촬영은 이를 위해 일거양득의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시퀀스의 촬영 구도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로 임시완 배우의 연기력은 이 장면에서 임팩트를 쾅 주고 시작한다. 이 인물의 대사들을 살리는 이 연기뿐만 아니라 대사들도 잘 썼다. ‘걸레 같은 게’라는 단어도 잘 골랐다. 또 욕 하기 전에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여직원에게 말하는데 이 마저도 진상 손님의 한 부분을 잘 구현한 좋은 작문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소한 장면에서 진석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니 영화가 좋은 시작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다음 시퀀스가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테러 모의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 없이 '이 놈은 이러고도 남을 놈'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 구성과 연출이었다. 또 이렇게 빌런이 누구인지 바로 보여주는 건 과감하게 미스터리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된다. 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중후반부가 넘어가서 이야기의 전환이 이뤄지는데 그 하이라이트 신을 위한 준비 자체로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초중반부 진석 캐릭터가 왜 이렇게 하나? 의 이유를 경제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연출이었다.
제작진 칭찬해
이 첫 시퀀스에서 이 영화가 쏘아 올린 시발점은 중반부까지 내내 힘차게 작동한다. 일단 비행기 이륙 장면이 사실적으로 잘 찍혔다. 아마 비행기 이륙 자체는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비행기 출발할 때의 연출은 사실적으로 잘 뽑혔다. 또 이 도입부 외적으로 비행기 안에 빛이 들어오는 구도를 잘 잡았다. 또 비행기 내부의 공간감 역시 탁월하다. 비행기 안이라는, 폐쇄라는 속성이 이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일단 갑갑해야 빠져나올 구멍 없는 진석의 잔혹함이 극대화가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답답한 것이 시각적으로도 강조되는 역할인 것이다. 또한 전염병의 위험함을 묘사할 때 공간이 좁아야 '저 사람 저렇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비행기 연출을 보여줬다. 또 비행기 운행 동안 빛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하와이까지의 비행이 1시간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비행기 안에서 들어오는 햇빛의 색이나 발현 구도 등등 때마다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또 비행기 세트장을 잘 만들었다. 적당히 비좁은 비행기라 결함이 없이 무난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행기 내부 구조도 그렇지만 비행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화면들도 깔끔했다. 조종석에서 바라보는 하늘, 관객들 쪽 창가에서 보이는 모습까지 CG를 썼다고는 믿기 살짝 어려울 정도다.
이 탁월한 비행기 구현에서 시작해 영화는 초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를 압도적으로 유지한다. 일단 중반부까지 사운드를 활용한 강약 조절은 아주 뛰어나다. 인호가 아내와 통화하는 신의 사운드, 진석에게 깔리는 배경음악, 현수와 재혁의 관계까지 나름 빠른 탬포의 정박으로 이어지는데 가사가 없이도 인물을 설명하는 좋은 연출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일단 흑막 진석이 자기를 드러낼 때 가운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비행기 내부의 길이 가운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부여된 설정일 것이다. 이때 진석에게 집중되는 촬영은 제작진의 열일이 빛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첫 번째 희생자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 굉장히 끔찍한 방식으로 죽는다. 이제까지 본 재난영화 중 아예 본 적 없던 느낌? 그 신체부위가 터지는 건 실제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돋보였던 부분이다. 또한 진석이 흑막임을 직감하고 누군가가 그의 집에 방문하는 시퀀스가 있다. 거기서 나온 시체 역시 미술팀이 디자인을 잘 구현했다. 비닐로 칭칭 쌓여있음에도 피가 범벅인 시체를 보면 이 병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이렇게 소소한 요소들을 살려 1차적인 목표는 잘 충족하는 이 영화. 이야기가 한번 변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 이 터닝포인트까지의 이야기 구성이 적절하게 잘 분배되어 있다. 인물 간의 사정 이런 거 필요 없다. 땅에서 경찰 인호의 범죄/미스터리 영화가, 비행기에선 악역 진석의 재난영화가 벌어지는데 이 두 이야기가 각자의 장르적 특색을 잘 살리며 극을 이끈다. 일단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드러나는 영화가 이 작품이다. 이는 후반부의 메시지 전달과 비행기에서의 상황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범인은 이미 위에 있으니까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럼 뭐를 쫓을까? 당연히 백신이다. 이 백신을 쫓아가는 과정을 나름의 뚝심을 활용해서 이끈다. 반대로 비행기 안은 무섭다. 테러 때문에 내가 걸렸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의 막연함을 드러내기 위해 진석의 특성 중 하나가 괄호 처리된다. 이 괄호 처리가 무엇인지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의도된 것이며 비행기에서의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소재다. 이 외에 항체군이 있는 인물들 팔에 기포가 생기는데 이런 섬세한 부분도 영화의 초중반부를 이끄는 아주 좋은 원동력이 된다. 잘 만든 두 편의 스릴러를 보는 느낌?
고래 사이에 있는 새우
사실 이것을 선회하는 압도적인 장점은 임시완 배우의 캐스팅이다. <변호인>과 <미생>에서 시작한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아마 이 영화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기했던 첫 시퀀스에서 임시완 배우의 모든 것이 전부 완벽했다. 눈빛, 말투, 목소리 톤, 발음, 대사 내용까지 초반부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훌륭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이 전부 죽었으면 좋겠어요" 장면에서 역시 이 인물의 광기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같은 영화에 나온 전도연, 이병헌, 송강호 배우가 좀 전형적인 역을 맡아서 두드러지는 것도 있다. 엄청난 차이점이 있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임시완식 사이코패스'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극을 이해하는 배우의 이해도가 빛난 지점이다. 초중반부 서스펜스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한 50%이 임시완 배우의 눈빛 연기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령 극 중에서 자기가 흑막인걸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일종의 소동이 있다. 이때 영어를 뭐라 하다가 몸싸움이 벌어진다. 분명 이 임시완 배우는 연기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짧은 2~3분짜리 유사 액션신에서도 인물의 악랄함이 벌어진다. 신기한 일이다. 좀 몇 번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 드러난다니. 극을 보다 보면 이 장면이 주는 광기에 많은 분들이 감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두 영화를 붙였다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최종 흑막으로 충분한 연기였다. 아마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할 수가 없는데?
미술도 좋고, 음향도 좋고. 핵심 조연 임시완 배우의 연기도 좋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대배우 3명이 나오는 만큼 주연진들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송강호-이병헌-전도연 세 배우는 연기 잘한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또 박해준-김소진-김남길 세 배우는 든든하게 자기 몫을 해낸다. 이 세 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하면 뭐랄까 극이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김소진 배우 엄청 좋은 배우인 것 같다. 어? 이 영화 잘 안될 리가 없는데? 비경쟁이지만 칸에도 초청되고. 배우들도 대단하고. 소재도 신선하고. 악당 캐릭터 설정도 정말 색다른데? 완성도도 깔끔해서 이 영화에는 결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러닝타임의 반환점을 돌아 중후반부가 된다.
너무 많은 걸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빠른 템포에 섹시한 몰입감까지 영화는 단점이 없다. 그나마 찾자면 박해준 배우 대사가 잘 안 들리고 전도연 배우 비중이 별로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굉장히 많은 양의 비판을 들어야 했던 건 후반부에 나온다. 일단 이 영화의 장르는 사회에 대한 풍자극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테러에 대응하는 재난영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스릴러 영화 두 축은 결국 가장 중요한 러닝타임 1시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케이. 이건 그럴 수 있다. <부산행>부터 시작해서 여러 영화에서 이런 시도를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를 위해 너무 소재가 막 소비된다. 일단 이 영화에서 외국 국가 두 나라가 등장한다. 지금 2022년이다. 이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엄청 잘 나가는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이 그 선택을 거부한다? 이거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이는 단지 선진국이라서만 그럴까? 그 외에 분류되는 나라들도 굳이 이걸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어떤 나라는 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를 거부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기까지 한다. 이거 이럴 필요가 없다. 뭐 나라 간의 외교 이런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셈이다. 그냥 이 나라 수장한테 좀 연락하고 그냥 끝난다. 단순히 주인공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 허술하게 이야기를 짠 셈이다.
또 예고에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영화 전반적으로 확인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소재는 희생된다. 일단 전도연 배우가 맡은 역할 숙희는 국토부 장관이다. 숙희는 경찰인 인호와 함께 TF팀을 구성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근데 장관이라는 이름값이 있음에도 인간들이 말을 안 듣는다. 뭐 영장 없으면 말 안 듣는 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지만 나라 여론이라는 것이 있다. 저렇게 전면에 나서는 부처 수장을 무시할 수 있는 집단과 조직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역시 마찬가지로 극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납작하게만 극에서 사용한 셈이다.
그리고 몇몇 소재는 좀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초반부에 인호와 동료 경찰이 진석이 사는 곳으로 조사를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아이가 인호에게 "이 아저씨 영어 못해서 못 알아먹는 것 아냐?"라고 한다. 이 대사가 엔딩까지 아~무 영향도 없다. 또 첫 번째 희생자가 화장실에서 감염될 때 "이코노미 석 화장실 수준 참"이라고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역시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계급적인 코드를 섞에서 우리나라의 한 단면을 비꼰다? 근데 그게 뚝심 없이 대사 몇 줄로 소비되니까 실없는 소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어떤 여학생들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교복 입고 나온다. 무슨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친구들끼리 여행 가는데 교복 입고 여권 써서 비행기 타고 간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등하교 시간 외에 교복을 입고 싶은 마음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그냥 어린 배우를 써도 될 텐데 교복을 굳이 입힐 이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재혁의 딸 수민은 여자임에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 설정도 굳이 필요하나? 싶다. 그냥 애초에 수민이 남자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 엇갈림을 꼭 넣어야 함'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만약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건 아닌데' 싶다. 단지 그 장면을 위해서 여자애가 남자 화장실에 몰래 가는 꼴이 좋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상기한 이런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큰 단점이 있다.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이 되는 지점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겪었던 몇몇 사건들이 생각난다.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진일보했나?'라고 묻는 게 아닐까 싶었다. 또 전염병이 사람들을 떠다니면서 병세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묘사도 뭐 갈라 치기를 소재로 삼고 싶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들을 전부 뒤집는다. 이야기의 맥락상으로서 아예 불필요하면서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구체적으로 인물들은 후반부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이 영화의 초반부와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극 내내 암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100여 명의 승객이 모두 동의한다(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냥 단지 엔딩부에 힘을 주려고 그 많은 인과관계와 핍진성, 개연성을 전부 깔아뭉개버렸다. 그리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 광경을 바람직한 덕목으로까지 연출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에 힘입어 작위적인 신파극도 있어 이 선택이 감동적이라는 메시지까지 영화에 내포했다. 난 이 감동적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연출이 굉장히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가 어느 땐데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선택지를 고를까? 그리고 그게 이뤄진다 한들 어느 철학자가 그걸 정의롭다고 말할까? 각본가의 마음에는 이 선택이 자유로운 것이 되는 걸까? 다수만큼이나 소수가 중요해졌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이 개인 소셜 미디어로서 탁월하게 기능하는 시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제시된 것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굉장히 안타깝고 아쉬우며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앉은자리 옆자리에선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할 말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2022년이다. 물론 다수 중요하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지점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혹평이 사실 납득이 간다. 이 혹평이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지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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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난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은 사실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조건이 좋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움의 삶을 천천히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나은 일을 찾고 가족들과 삶을 이어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 힘든 이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어떤 나라에서든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에 이사 가게 되어 살게 되거나 다른 환경으로 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때, 그 쉽지 않은 현실을 앞에 두고 가족들은 때론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바로 옆에 있는 가족뿐이다.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다시 새로운 지역 알칸소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하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뿌리내려 사는데 도움이 된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것은 생활의 불편함 뿐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도 포함된다. 그들이 목이 타는 것과 같이 마음속도 타들어가고 부부는 의견 대립으로 충돌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이콥은 농장의 성공이 가족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매달린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리는 안정적인 상황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농장의 성공이 바로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모니카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바로 지금 안정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당장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농장일에 매달리는 제이콥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은연중에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올 음식이 되어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하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놀이가 가진 재미를 알려준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해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 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금방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에 산책을 나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모든 가족의 마음속에 익숙함이 자리해나갈 때 비로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운이 만들어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티격태격 장난치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도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순자는 데이빗이 눈에 보이는 위험을 보이는 곳에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심장병이 있어 늘 뛰기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그 위험을 직면하며 관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빗은 마음도 몸도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면 외할머니와 손주가 만들어낸 이런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족에게 물만 있으면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큰 문제없이 정착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 명의 가족이 결코 떨어질 수는 없고 앞으로도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타오르는 농장에 뛰어든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싸운 직후였고, 이별의 결심까지 한 후였다. 하지만 남편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 타오르자 그것의 일부라도 구하고자 이리저리 물건을 불 밖으로 빼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남편의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그들이 결국 같이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친해지려 다가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악의 없이 이 가족이 그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잘할 수 있었고, 집안에 나쁜 일들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폴이 이민자인 그들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도 폴을 하나의 이웃으로 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어 널리 공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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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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