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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을 추적하던 앵커, 과거의 문제와 만나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심리 스릴러
?Rabbitgumi입니다!!
천우희 주연의 영화 앵커가 개봉했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고 한 모녀가 죽은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앵커의 이야기인데요.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의 문제점과 연결되는 영화입니다.
특히나 직장 여성으로서 겪거나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영화입니다.
장르적인 힘이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던지는 메시지 만큼은 묵직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구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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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정재헌 성우님의 타키 연기 드디어 공개!! 너의 이름은 명장면 황혼의 시간을 재연해봤습니다(feat. 황보, 라이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ine_massage/
EP.28
정재헌 성우님의 비공식(?) 타키 연기를 감상해봐요!!
*열악한 녹음 환경에서도 열연을 해주신 정재헌 성우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더빙 음성과 영상이 원본 감성 그대로 깔끔하게 살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빙 영상에 깔린 배경음악으로 Firefly Piano님께서 커버 음악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 감사합니다^^
Firefly Piano 유튜브 채널 : ? http://bit.ly/SubscribeFireflyPiano
해당 커버곡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75Lxu...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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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시드 드림> 예고편
제작자에게 잔소리를 듣던 감독은 조명사고로 인해 쓰러지게 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여러 장르의 꿈을 꾸게 된다.
기쁜 날을 빙자해서 돈을 사기 치려는 세계, 분노로 직장 상사를 죽이는 범지진, 사랑으로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엄마, 기사가 실종되는 노선을 운행하게 된 아총의 공포가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꿈.
감독은 이 네 가지의 꿈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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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로잘린> 공식 예고편
셰익스피어의 고전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어디 한 번 제대로 비틀어 보겠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로미오의 전여친이자 줄리엣의 사촌인 로잘린의 커플 브레이커되기 대작전?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 [로잘린] 10월 14일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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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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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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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만 같았던 9월의 아름다운 추억
*스포주의*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로봇 드림>은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그와 로봇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굳이 '개'가 아니라 '도그'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실 도그가 사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들은 사람을 동물로 표현한 것뿐이다. 거대한 도시, 뉴욕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물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TV를 보며 맥 앤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도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생기 없는 눈동자와 축 처진 입꼬리. 얼마나 돌려먹었을지 모르는 냉동 맥 앤치즈와 혼자서 하는 2인용 게임. 풍요 속의 빈곤이랬던가.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도 도그는 혼자다.
도그의 일상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외로움에 익숙해진, 현대인들.
그런 도그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단짝이 바로 로봇이다. 감상 포인트에서 언급한 'september'라는 노래는 둘이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가서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 처음으로 흘러나온다. 둘은 흥겹게 춤을 추며 주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노래 가사처럼 즐겁고 행복한 9월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수욕장에 갔다가 일어난다. 로봇의 배터리가 다 되어버린 것. 사람이 텅 빌 때까지 잠들었던 둘은, 도움을 청할 길이 없다. 도그 혼자 끌어보려고 해도 로봇이 너무 무거워 데려갈 수 없는 상황. 하는 수없이 홀로 집에 갔다가 다음 날 찾아가 보지만, 해수욕장은 문을 닫는다. 다음 시즌에나 열린다는 말에도 도그는 포기하지 않고 로봇을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경찰서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집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제목인 <로봇 드림>의 의미를 알게 된다. 로봇은 혼자 해수욕장에 누워 있으면서 끊임없이 도그에게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도와준다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도그에게 걸어가는 꿈을 꾸는 로봇의 표정은 늘 밝다.
로봇은 도그가 알려준 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현실에는 도그가 보여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누워있는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물상에 팔아넘기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집어던진다.
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던 로봇의 꿈은 점차 도그에게 버려지는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편, 도그는 로봇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컸는지 실감한다. 노래처럼 '구름 한 점 없던' 9월의 추억만으로 도그는 겨울을 난다. 마치 자신이 모았던 햇빛을 쥐에게 나눠주는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로봇은 도그에게 외로운 겨울을 보내게 해줄 추억의 힘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 친구의 온기를 느꼈던 도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고물상에 버려져 산산조각 났던 로봇은 너구리 아저씨로 인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미 망가져버린 부품 대신 너구리는 거대한 붐박스(카세트 플레이어)를 몸으로 개조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사람과 만난 로봇. 이 생활에 적응하면서 점차 너구리와 친근해지며, 여름이 찾아온다.
해수욕장이 문을 열자마자 입장한 도그. 땅을 아무리 파헤쳐 봐도 나오는 건 로봇이 잃어버린 다리 한 쪽뿐이다. 로봇을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도그가 찾은 곳은 로봇 가게다. 다리로 하소연해 보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결국 방법은 새로운 로봇을 사는 것뿐이다.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던 너구리와 로봇. 로봇은 냉장고에 케첩을 가지러 갔다가 창밖으로 도그와 새로운 친구, 로봇을 보게 된다. 충격에 빠진 로봇은 그대로 길가에 뛰쳐나가 도그를 붙잡는다. 도그와 로봇의 뜨거운 포옹. 하지만 그건 로봇의 또 다른 상상이었을 뿐이다. 로봇은 이대로 자신이 도그를 만난다 하더라도 너무나 바뀌어버린 몸과 이제는 자신의 친구가 된 너구리, 도그의 새 친구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망설인다.
결국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붐박스의 볼륨을 올려 도그와 자주 듣던 'september'를 트는 것뿐.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에 도그는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탄다. 로봇과 도그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을 때의 춤을 추며 하나가 되고. 둘이 함께 쌓았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둘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한때의 추억, 지금의 나를 만든 상대방. 지난 9월이 눈부시게 찬란했음을 기억하며 지금 옆에 있는 새로운 친구의 손을 잡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앞으로는 또 다른, 새로운 9월이 펼쳐질 것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 한 번 더 붙잡지 않았을까, 로봇과 도그가 다시 만날 순 없었을까? 하지만 곱씹다 보면 이해가 된다. 지나가버린 상대와 다시 시작하기엔, 지금 내 곁에 너무 많은 것이 있기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기에.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어른의 씁쓸함이 먼저 찾아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옛 친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찾아가는 로봇의 상상을 말한다. 그러면 제목이 내포하는 것이 '로봇 드림 어 도그'로도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로봇은 도그를 찾아가는 꿈을 꾼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그러니까,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일어날 리 없는 꿈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르게 보자면 '한때의 행복한 꿈'이라고도 보인다. 이건 도그와 로봇 모두에게 해당된다.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9월의 하늘 아래에서 흥겹게 추던 춤처럼, 함께한 시간들이 꿈처럼 아름다웠다는 의미인 것이다. 첫 번째 의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라, 나는 이쪽의 의미가 더 좋다.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꿈이라는 건 너무 슬프니까. 우리 모두 꿈처럼 아름다웠던 추억이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
인간은, 그 아름다웠던 한때의 조각으로 살아가니까.
*이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은 시사회를 보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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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사탄 숭배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오컬트 요소가 짙다고 해서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엑소시즘을 하는 등 주인공이 명확하게 악한 존재와 대립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맞서려는 시도가 있는 영화는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주인공에게 나를 대입해서 보는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오컬트 요소의 영화들은 보통 악마와 같은 존재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경우다. 사건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이 흐릿한 탓에 내가 그런 사건사고를 겪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때 나도 같이 띠용해버리는 바람에... 엥, 이게 나였다고? 나도 이런 일을 겪었다고? 뭐 주로 이런 식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영화 설명에도 그렇고 초반부에 꽤나 수사물인 '척'하는 경향이 있다. 척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시키는 과정 탓이다. 주인공인 '하커 리'는 FBI 수사원인데 첫날부터 감으로 때려맞히는 쾌거를 보여준다. 나름 선배처럼 보이는 짝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탐문 레츠고' 하는데 'ㄴㄴ저 집에 범인 있음' 하는 식이다.
관객으로서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수사물'은 아니라는 것을 나름대로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이 돗자리 깔고 감으로 때려 맞추는 게 수사물일 리가 없으니까? 근데 영화에서는 계속 FBI인 걸 강조하면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사물이라고 하면 진실에 접근해가며 전개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수사 진척이 전혀 없다. 오히려 주인공에게 계속 진실이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달까. 어차피 주인공은 감으로 때려 맞출 것이고, 범인이 주인공 근처에 배회하고 있는데 좀 빨리 알려주면 안 되나, 하는... 질질 끌어서 답답한데, 결국 나중에 보면 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지롱! 하는 게 너무나 킹 받는 모먼트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못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이런 식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열받는 건 수사물인 줄 알고 신났는데 결국 아니었다는 사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런 것일지도? 수사물 호빵인 줄 알았는데 반으로 갈라보니 오컬트 앙꼬를 숨겨놓은...
내 입장에서는 '악마'라는 존재가 그다지 엄청난 공포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애당초 종교도 없을뿐더러, 그런 경험도 없는 데다가, 동양권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더 크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을 나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찝찝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서양권에서는 꽤나 무서울지 몰라도 나처럼 그저 동양권 공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약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였다.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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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초앞 1초뒤]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더라도
작년 여름? 한창 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을 때, 30분 단위로 시간이 빠른 남자와 반대로 시간이 느린 여자가 어떤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구상해보려 한 적이 있다. 시간이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과제여서 그냥 아이디어로만 남겨두었는데,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오래된 편지처럼 이 영화가 찾아왔다. 일본 공상과학 영화 특유의 개구쟁이 같음과 독특한 상상력이 가미된 ‘참 일본스럽네에~’ 영화였다. 내가 리뷰를 남기지 않는다면, 아마 많은 분이 이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 법한 그런 영화였다. ‘썸머는 필름을 타고’, ‘리틀 포레스트(일본판)’같은 느낌도 아주 살짝 묻어 있는 것이 꽤나 귀여웠다. 특히나 니콘 카메라부터 계속해서 울리는 셔터의 찰칵! 소리까지, 평소 필름 카메라나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즐겁게 관람할 영화다. 아쉬움이라면, 내가 교토를 여행해 보지 못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화적으로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로맨스를 희망하면 실망하실 영화다. 이건 영화사나 배급사에 좀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맥주 한잔하면서 보면 안성맞춤일 영화다. 맥주가 아니라면, 머나먼 교토를 느낄 수 있는 교토 특산 사케나 하이볼도 괜찮을 것 같다. 배경 자체는 불꽃놀이, 푸르른 나무, 따사로운 바닷가, 수박과 아이스크림 등 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여름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영화 곳곳에 작지만 강렬한 암시를 배치해, 나도 모르게 여름이란 계절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 여름 영화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와 비운의 여주인공에게 불어닥치는 뻔한 운명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지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쓴맛이 아닐까? 상영 내내 달콤한 솜사탕을 먹는 기분이지만, 체하지 않게 미지근한 할머니표 보리차 한 잔을 마시는 것 같았다.
이건 나만의 편견일지 모른다. 유독 최근 일본 영화는 시점에 대한 자유분방함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괴물’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일부의 시선을 갖고 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슬픔을 내비치며 말해준다. 전국제에서 관람한 ‘새벽의 모든’은 방향이나 전혀 다른 두 혜성이 마주치는 시선을 따숩게 담았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우리는 알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 경험은 누구나 겪어 본 적 있는 익숙한 감각이자 추억이다. 왜 그런 적 있지 않나?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 저녁이었다든가, 하루가 사라진 듯 다시 아침인 경험을 말이다. 나는 분명히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겨우 3-4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체험 말이다. 마치 온 세상이 멈춰버리고, 나의 시간만이 하염없이 흘러간 몽롱한 느낌 말이다. 영화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추억이나 기억을 부드럽게 긁어준다.
평소 너무 빠르게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너무 느긋하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은 사실 마주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령 만난다하더라도 속도가 붙은 남자는 더 빨리 미래로 갈 것이고, 상대성 이론에 따라 여자의 시간은 더 느려질 것이다. 마치 당신을 찍기 위해 셔터 버튼을 누른 순간, 필름을 통과해 버린 빛처럼 말이다. 숫자로 셀 수 없이 무한한 빛은 이미 우리 존재가 태어나기 이전에 만들어진 과거의 유산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태양도 사실상 옛날의 태양인 것처럼 말이다. 종종 영화 ‘인터스텔라’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너무 빨라서, 너무 늦어서 어긋나버린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것은 몇 장의 사진이다. 사진 안에 담긴 우주의 메시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둘을 동시에 통과한다. 과학 이야기를 더 하자면, 최근에 유튜브에서 ‘관계론’으로 세상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과 내가 일말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존재한다. 반대로 내가 만나지 못한, 예를 들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어떤 누군가에게는 서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도 관계론에 적용할 수 있다. 옷깃을 스치는 순간, 그 전에 내가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 나를 마주 보는 상황에서 우린 또 다른 차원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영화는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은 시공간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처음부터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일본의 전설처럼 두 사람은 이미 붉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지만 아직 셔터 속도나 조리개 조정값은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정말 조금, 머리카락 사이즈를 움직여도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이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을 좋아한다. 이미 지나가 버려서 다시 탈 수 없는 버스나 머릿속 지우개가 지워버린 사랑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진들 모두 우연의 일치로, 여러 번의 우연이 만든 아름다운 운명이자 인연의 작품이다.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확인한 것과 달리, 전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던 남녀가 몸이 바뀌는 것과 달리, 영화는 사진에 담긴 사랑을 통해 운명을 이어 붙인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행동이나 표정, 개그 방식이 꽤나 귀여웠다. 역시 여름에는 오펜하이머처럼 묵직한 삼계탕이나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는 달큰한 하이볼 같은 영화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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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해한대도 곱씹게 되는 프렌치 영화 첫 경험
난 그저 영화티켓이 생겨서 들어갔을 뿐이었다. 시놉을 보아하니, 로맨스인 것 같았다. 하지만 크레딧이 내려갈 때쯤 내머릿속은 혼돈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영화는 프랑스영화라는 것을. 프랑스 영화하면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뭘본건가 싶은 느낌. 하지만 곱씹어보니, 뭔가 영화 속에 담긴 은밀한 상징이 있었던 듯하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그저 헛소리일 수도 있다. 영화가 하도 난해했던 바람에 생각을 거듭하다 결론낸 내 주관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1. 우연을 의도한 만남의 의미
학교도 지루하고, 또래들이 그저 한심할 뿐인 수잔, 평소와 다를 바없이 별일없이 지나가던 하교길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남자를 보게 된다. 왜인지 모르게 계속 시선이 그에게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계속 그를 알게모르게 미행한다. 그의 공연장을 맴돌고, 그의 시선이 교묘하게 빗나가는 곳에서 항상 서있다. 그녀에게는 우연이 아니지만 그녀가 꽂힌 남자, 라파엘에게는 그녀가 우연히 마주친 사랑으로 보이게끔 말이다.
그녀의 당돌한 미행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운명이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중 하나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연출해서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항상 내 부모님께 농담조로 던지는 말이 있다.
"이 중에서 누군가는 연애할 때, 사기 수준으로 거짓말을 한 거야. 둘 중 누구야, 엄마야, 아빠야?"
사랑이 발전하는 양상과 그 결과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사랑의 첫 시작은 생각보다 우연보단 연출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호감을 연출한다는 것은 둘 중 한 명은 우연을 가장할만큼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는 방증이니까.
2. 빨간 레모네이드의 의미
영화의 첫 시작은 수잔이 친구들에 둘러싸여 음료나 마시며 딴짓하고 있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수잔은 친구들의 소소한 수다가 재미없다.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는지 자신이 마시고 있던 빨간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물고있다가 휴지에 뱉으며
하얀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며 놀고 있다.
계속 이 장면이 머리에 맴돌았는데, 이 장면을 곱씹다가 여자아이들의 초경이 생각이 났다. 수잔은 16세이기에 초경을 할 법한 나이이긴 하지 않은가. 초경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면, 이성에 눈을 뜰 나이라는 것이기에 이 첫 장면에서 감독은 수잔이 소녀에서 여자로 발돋움 중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라파엘이 수잔이 좋아하는 빨간 레모네이드를 먹어보는 장면은 그녀의 여성성을 받아들였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취향을 이해해보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여성성을 강조해 섹슈얼하게 생각해본다면, 라파엘의 몸에 그녀가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3. 영화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가 끝나기 직전, 수잔은 극장을 흘낏 보고 웃는다. 그걸 본 나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특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왜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면 울게 되고. 뒤이어 그 남자에 대한 관심이 식어보이는지에 대해서 그 과정의 인과관계가 매끄러워보이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시간을 두고 곱씹어보니, 이 영화는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또래들이 시시해 어른스러운 남자에 끌리는 수잔이 그려낸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템포 더 어른이 된 그녀를 마지막 장면의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이 영화는 로맨스를 가장한 성장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시작은 소녀였지만 영화의 끝에서의 수잔은 여인으로 보였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던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한낮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녀의 아빠가 그녀에게 한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끝나면, 그녀의 한낮의 시간은 그저 아득한 꿈이었음을 깨닫고, 왈칵 울음이 터지는 것이다. 그와 함께한 춤, 합치의 순간들 모두 아득한 꿈이었음을 깨달았기에.
총평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울었던 이유가 이별말고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건 나에게 사랑의 경험이 없어서일까. 사랑은 내가 관심이 없어 그렇지 참 심오한 세계인가보다. 여주인공이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엔딩곡은 꽤나 무디하다. 그 곡을 들어본다면, 영화가 좀 더 이해될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해석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두 팔 벌려 환영이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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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을 추적하던 앵커, 과거의 문제와 만나다!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심리 스릴러
?Rabbitgumi입니다!!
천우희 주연의 영화 앵커가 개봉했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고 한 모녀가 죽은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앵커의 이야기인데요.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의 문제점과 연결되는 영화입니다.
특히나 직장 여성으로서 겪거나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영화입니다.
장르적인 힘이 생각보다는 강하지 않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던지는 메시지 만큼은 묵직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구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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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정재헌 성우님의 타키 연기 드디어 공개!! 너의 이름은 명장면 황혼의 시간을 재연해봤습니다(feat. 황보, 라이언)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마사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ine_massage/
EP.28
정재헌 성우님의 비공식(?) 타키 연기를 감상해봐요!!
*열악한 녹음 환경에서도 열연을 해주신 정재헌 성우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더빙 음성과 영상이 원본 감성 그대로 깔끔하게 살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빙 영상에 깔린 배경음악으로 Firefly Piano님께서 커버 음악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 감사합니다^^
Firefly Piano 유튜브 채널 : ? http://bit.ly/SubscribeFireflyPiano
해당 커버곡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75Lxu...
출연
황보 라이언 정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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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루시드 드림> 예고편
제작자에게 잔소리를 듣던 감독은 조명사고로 인해 쓰러지게 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여러 장르의 꿈을 꾸게 된다.
기쁜 날을 빙자해서 돈을 사기 치려는 세계, 분노로 직장 상사를 죽이는 범지진, 사랑으로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엄마, 기사가 실종되는 노선을 운행하게 된 아총의 공포가 즐거움으로 뒤바뀌는 꿈.
감독은 이 네 가지의 꿈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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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로잘린> 공식 예고편
셰익스피어의 고전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어디 한 번 제대로 비틀어 보겠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로미오의 전여친이자 줄리엣의 사촌인 로잘린의 커플 브레이커되기 대작전?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 [로잘린] 10월 14일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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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둘리가 돌아왔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마음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서 둘리를 만난 순간, 마음속 문장을 수정했다. 컴백이 아냐 떠난 적 없으니까! 하는 블랙핑크의 노래 가사로.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둘리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는 거. 그리고 둘리는 어른 되어 보면 더 재미있다는 거.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1996년 개봉 작이다. 시골 마을의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1996년 이후의 그 어느 날, 노란색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질리도록 돌려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둘리도 보고, 비디오도 보고, 딱히 둘리를 되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는 둘리가 가득했다. 12색 둘리 물감이나 24색 둘리 크레파스, 필통 같은 데에.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둘리는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레파스도 필통도. 사실 내 그림 실력에는 딱 참했던 12색 둘리 물감 대신, 나도 뭔가 좀 더 멋지게 생긴 전문가용 튜브 물감 쓸래. 둘리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 더 청소년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게 한동안 둘리를 잊었다. 귀여운 비눗방울 노래도. 좋아했던 색감의 그림도. 특히 볼 때마다 '작화를 간단히 했는데 색감만으로 저렇게 맛있어 보일 수 있나?' 신기해서 유난히 좋아했던 둘리 특유의 라면 그림까지.
1억 년 전 빙하는 다시 녹고, 둘리는 더 선명한 색채를 덧입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나도, 나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졌다.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싫어했던 크레파스는 다시 비슷한 느낌의 오일 파스텔로 유행하고, 지금의 나는 둘리 굿즈 내준다면 냉큼 사러 갈 기세. 그래 우리에겐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전에 둘리가 있었지. 이거 잘 돼서 둘리도 시즌제로 뽑아줘요. 짱구나 코난처럼 영영 다 해먹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둘리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첫 번째,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매력적인 둘리의 모험
둘리의 모험은 당시 어린 눈에 너무 참신했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타임코스모스도 신기하지만 그걸 타고 간 우주에서 버스 정류장이나 공중전화를 보는 것이 더 신기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뒤섞여 더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달까. 우주해충이나 가시고기도 임팩트 있는 캐릭터라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1996년 작품인데 지금 어른이 되어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고 다정하다.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 취급하는 글이 많았는데, 막상 보니 둘리와 친구들은 그런 말을 듣기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진 어린이들이었다. 둘리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애였구나... 둘리와 친구들은 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가졌으면서도 묘하게 쌍문동에 거주하는 현대 서울 사람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번 재개봉은 8090 서울을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채색한 배경 위로 몽글몽글 떠오를 추억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둘리는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역시...
두 번째, 별사탕처럼 통통 튀는 캐릭터 케미스트리
고길동 아저씨도 이제 희대의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은 것 같지만, 둘리 등장인물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진상인지 아닌지' 평가받는 것 같다. 그만큼 둘리가 오래 사랑받고 모두가 아는 콘텐츠라는 뜻도 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지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둘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짧은 대사에서도 각자 성격이 확실하게 묻어나는 캐릭터들이 서로 톡톡 튀면서 펼치는 케미스트리가 그저 유쾌하기만 했다. 한때 얄미워 보였던 캐릭터조차 왜 이리 귀엽기만 한지. 고길동 아저씨는 '불쌍한 사람' 그 이상으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는 놀랍게도 둘리와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를 맺는 어른이며, 툴툴대면서도 자식조카 밥 야무지게 챙기는 남성이었다. 게다가 왕년에 홍콩 영화 좀 본 K-소드마스터였고요.
다른 캐릭터들도 21세기의 시선으로 보니 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를 꿈꿨던 마이콜은... 21세기에 활동했으면 혁오와 잔나비를 이어 인디씬의 독보적 존재감을 담당했을 텐데. 유퀴즈는 못 나와도 라디오스타에서 소소한 입담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발굴해 줄 필요가 있다.
묘하게 세파에 지친 어른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볼 때마다 아동노동 근절을 외치게 만드는 또치의 '어른식' 현명함도. 성깔 있지만 의리도 있는 도우너도.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둘리의 MBTI는 아마도... ENFJ... 아닐까?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구역 최강자였던 희동이도. 피지컬 공격력과 상황 판단력, 어떤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을 갖춘 장군감이지 민폐 빌런이 아니다. (종종 회자되는, 희동이가 둘리와 엄마의 재회를 방해하는 장면은 이 극장판 내용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보시길.)
세 번째, 그 시절 사랑했던 면과 오늘 새로 사랑하게 된 면
그 시절 사랑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일도 즐거웠다. 박영남 성우는 짱구 이전에 둘리였고, 이선 성우는 뽀로로이기 이전에 또치였지. 성우 정미숙(희동이), 최덕희(도우너), 이인성(고길동), 홍시호(텔레비전 아나운서/간수) 등 익숙한 이름들의 노련한 연기 또한 반가웠다. 캐릭터도, 연기도, 그 둘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스트리도 모두-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더 좋다.
엔딩 크레딧 영상도 아기자기 예쁜 데다가, 옆에 일러스트로 나름의 쿠키라고 할 수 있는 후일담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익숙한 주제가의 2절까지 듣게 되었는데, “고향은 다르지만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가사에... 어른은 울컥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고향이 다 다르네... 둘리도 기후 난민이었네... 그런데 이 우정 너무 아름답잖아... 고길동 씨를 포함하여 둘리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것, 배척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둘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고 싶어 씩씩거리던 아이들이 우주로 향했듯, 아이였단 우리들도 자라 둘리에서 새로운 것들을 본다. 둘리는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컴백할 필요도 없다. 컴백은 내 몫이었다. 어른이 되어 둘리 앞자리를 떠났던 나의 몫.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전히 어른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 줄 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둘리와 친구들을 만나러 가 보자.
*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5월 24일 재개봉합니다. 배경 하나까지 사랑스러운 추억 속 둘리를 극장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 보세요!
**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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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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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만 같았던 9월의 아름다운 추억
*스포주의*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로봇 드림>은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그와 로봇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굳이 '개'가 아니라 '도그'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실 도그가 사람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들은 사람을 동물로 표현한 것뿐이다. 거대한 도시, 뉴욕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물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TV를 보며 맥 앤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도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생기 없는 눈동자와 축 처진 입꼬리. 얼마나 돌려먹었을지 모르는 냉동 맥 앤치즈와 혼자서 하는 2인용 게임. 풍요 속의 빈곤이랬던가. 이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도 도그는 혼자다.
도그의 일상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외로움에 익숙해진, 현대인들.
그런 도그에게 찾아온 운명 같은 단짝이 바로 로봇이다. 감상 포인트에서 언급한 'september'라는 노래는 둘이 함께 센트럴 파크에 가서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 처음으로 흘러나온다. 둘은 흥겹게 춤을 추며 주변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노래 가사처럼 즐겁고 행복한 9월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수욕장에 갔다가 일어난다. 로봇의 배터리가 다 되어버린 것. 사람이 텅 빌 때까지 잠들었던 둘은, 도움을 청할 길이 없다. 도그 혼자 끌어보려고 해도 로봇이 너무 무거워 데려갈 수 없는 상황. 하는 수없이 홀로 집에 갔다가 다음 날 찾아가 보지만, 해수욕장은 문을 닫는다. 다음 시즌에나 열린다는 말에도 도그는 포기하지 않고 로봇을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경찰서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집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제목인 <로봇 드림>의 의미를 알게 된다. 로봇은 혼자 해수욕장에 누워 있으면서 끊임없이 도그에게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해 도와준다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도그에게 걸어가는 꿈을 꾸는 로봇의 표정은 늘 밝다.
로봇은 도그가 알려준 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현실에는 도그가 보여준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누워있는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고물상에 팔아넘기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집어던진다.
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던 로봇의 꿈은 점차 도그에게 버려지는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한편, 도그는 로봇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컸는지 실감한다. 노래처럼 '구름 한 점 없던' 9월의 추억만으로 도그는 겨울을 난다. 마치 자신이 모았던 햇빛을 쥐에게 나눠주는 '프레드릭'처럼 말이다. 로봇은 도그에게 외로운 겨울을 보내게 해줄 추억의 힘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 친구의 온기를 느꼈던 도그는 더욱 외로워진다.
고물상에 버려져 산산조각 났던 로봇은 너구리 아저씨로 인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미 망가져버린 부품 대신 너구리는 거대한 붐박스(카세트 플레이어)를 몸으로 개조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사람과 만난 로봇. 이 생활에 적응하면서 점차 너구리와 친근해지며, 여름이 찾아온다.
해수욕장이 문을 열자마자 입장한 도그. 땅을 아무리 파헤쳐 봐도 나오는 건 로봇이 잃어버린 다리 한 쪽뿐이다. 로봇을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도그가 찾은 곳은 로봇 가게다. 다리로 하소연해 보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결국 방법은 새로운 로봇을 사는 것뿐이다.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던 너구리와 로봇. 로봇은 냉장고에 케첩을 가지러 갔다가 창밖으로 도그와 새로운 친구, 로봇을 보게 된다. 충격에 빠진 로봇은 그대로 길가에 뛰쳐나가 도그를 붙잡는다. 도그와 로봇의 뜨거운 포옹. 하지만 그건 로봇의 또 다른 상상이었을 뿐이다. 로봇은 이대로 자신이 도그를 만난다 하더라도 너무나 바뀌어버린 몸과 이제는 자신의 친구가 된 너구리, 도그의 새 친구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망설인다.
결국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붐박스의 볼륨을 올려 도그와 자주 듣던 'september'를 트는 것뿐.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에 도그는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탄다. 로봇과 도그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을 때의 춤을 추며 하나가 되고. 둘이 함께 쌓았던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둘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한때의 추억, 지금의 나를 만든 상대방. 지난 9월이 눈부시게 찬란했음을 기억하며 지금 옆에 있는 새로운 친구의 손을 잡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앞으로는 또 다른, 새로운 9월이 펼쳐질 것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직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 한 번 더 붙잡지 않았을까, 로봇과 도그가 다시 만날 순 없었을까? 하지만 곱씹다 보면 이해가 된다. 지나가버린 상대와 다시 시작하기엔, 지금 내 곁에 너무 많은 것이 있기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기에.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어른의 씁쓸함이 먼저 찾아온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옛 친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찾아가는 로봇의 상상을 말한다. 그러면 제목이 내포하는 것이 '로봇 드림 어 도그'로도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로봇은 도그를 찾아가는 꿈을 꾼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그러니까,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일어날 리 없는 꿈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다르게 보자면 '한때의 행복한 꿈'이라고도 보인다. 이건 도그와 로봇 모두에게 해당된다.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9월의 하늘 아래에서 흥겹게 추던 춤처럼, 함께한 시간들이 꿈처럼 아름다웠다는 의미인 것이다. 첫 번째 의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라, 나는 이쪽의 의미가 더 좋다.
영원히 일어날 수 없는 꿈이라는 건 너무 슬프니까. 우리 모두 꿈처럼 아름다웠던 추억이 하나쯤은 다 있으니까.
인간은, 그 아름다웠던 한때의 조각으로 살아가니까.
*이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은 시사회를 보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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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사탄 숭배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오컬트 요소가 짙다고 해서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엑소시즘을 하는 등 주인공이 명확하게 악한 존재와 대립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맞서려는 시도가 있는 영화는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주인공에게 나를 대입해서 보는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오컬트 요소의 영화들은 보통 악마와 같은 존재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경우다. 사건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이 흐릿한 탓에 내가 그런 사건사고를 겪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때 나도 같이 띠용해버리는 바람에... 엥, 이게 나였다고? 나도 이런 일을 겪었다고? 뭐 주로 이런 식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영화 설명에도 그렇고 초반부에 꽤나 수사물인 '척'하는 경향이 있다. 척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시키는 과정 탓이다. 주인공인 '하커 리'는 FBI 수사원인데 첫날부터 감으로 때려맞히는 쾌거를 보여준다. 나름 선배처럼 보이는 짝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탐문 레츠고' 하는데 'ㄴㄴ저 집에 범인 있음' 하는 식이다.
관객으로서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수사물'은 아니라는 것을 나름대로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이 돗자리 깔고 감으로 때려 맞추는 게 수사물일 리가 없으니까? 근데 영화에서는 계속 FBI인 걸 강조하면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사물이라고 하면 진실에 접근해가며 전개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수사 진척이 전혀 없다. 오히려 주인공에게 계속 진실이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달까. 어차피 주인공은 감으로 때려 맞출 것이고, 범인이 주인공 근처에 배회하고 있는데 좀 빨리 알려주면 안 되나, 하는... 질질 끌어서 답답한데, 결국 나중에 보면 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지롱! 하는 게 너무나 킹 받는 모먼트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못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이런 식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열받는 건 수사물인 줄 알고 신났는데 결국 아니었다는 사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런 것일지도? 수사물 호빵인 줄 알았는데 반으로 갈라보니 오컬트 앙꼬를 숨겨놓은...
내 입장에서는 '악마'라는 존재가 그다지 엄청난 공포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애당초 종교도 없을뿐더러, 그런 경험도 없는 데다가, 동양권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더 크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을 나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찝찝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서양권에서는 꽤나 무서울지 몰라도 나처럼 그저 동양권 공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약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였다.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