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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훈 감독이 잘하는 캐릭터 빛내기
영화 <타짜>를 장면 장면은 한 번씩 봤던 것 같은데 연이어서 하나의 작품으로는 본 기억이 없어서 조승우 필모 깨기를 하는 김에 풀로 봐보기로 했다. 타짜를 찍을 때 조승우 배우의 나이가 27살 이었다는데, 어떻게 20대가 저런 연기를 할까 굉장히 신기했다.
영화 <타짜> 시놉시스
인생을 건 한판 승부 큰거 한판에 인생은 예술이 된다!
목숨을 걸 수 없다면, 배팅하지 마라! 꽃들의 전쟁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남루한 삶을 사는 고니는 대학보다 가난을 벗어나게 해줄 돈이 우선인 열혈 천방지축 청년! 어느 날 고니는, 가구공장 한 켠에서 박무석 일행이 벌이는 화투판에 끼게 된다. 스무장의 화투로 벌이는 '섯다' 한 판! 하지만 고니는 그 판에서 삼년 동안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날리고 만다. 그것이 전문도박꾼 타짜들이 짜고 친 판이었단 사실을 뒤늦게 안 고니는 박무석 일행을 찾아 나서고, 도박으로 시비가 붙은 한 창고에서 우연인 듯 필연처럼 전설의 타짜 평경장을 만난다. 그리고 잃었던 돈의 다섯 배를 따면 화투를 그만두겠단 약속을 하고, 그와 함께 본격적인 꽃싸움에 몸을 던지기 위한 동행길에 오른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타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어쩜 이렇게 화면이 꽉찰 수가 있을까?
영화 <타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굉장히 많은 정보가 화면에 꾹꾹 눌러 담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화려했다. 고니가 머무르는 장소, 이동하는 과정에서 정말 배경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 많은 정보들을 다 보다보면 정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쓴 작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개봉하는 작품들은 약간 여백을 많이 주고 인물들의 심리나 대사, 표정에 집중을 많이 하는데 영화 <타짜>는 시각적으로 정말 꽉꽉 채워줘서 색다른 화려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인물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러한 화려함에 취해서 영화를 휘리릭 보고 물개박수를 치긴 햇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래서 고니는 감정이 뭘까? 였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꽃힌다.” 그래서...? 꽃혀서 뭐 아프다는건지 당황스럽다는건지,, 솔직히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힘든 영화였다.
이 인물들이 딱히 위인들은 아니지만 느낌이 꼭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적을 쫓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 캐릭터가 이 긴장된 상황 속에서 얼마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그걸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기 보다는 약간 허세? 이런 느낌으로만 다가와서 안타까웠다. 다들 명작이라고 하는데 인물의 심리과 그 변화의 과정은 약간 배제되어 있어서 인물의 감정서을 중요시하는 나로써는 그렇게까지 명작은 아니었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최동훈 감독의 특징을 엿보다
암살, 도둑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공통점은 주연 한, 두 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 나가기 보다는 5~6명의 배우들의 합을 이뤄 극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남녀주인공 아니면 원톱으로 내세운 타이틀롤 작품들이 많이 나오던 영화계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만들었다는 점은 정말 박수를 칠만 하다.
어떤 한 캐릭터에만 그 이야기를 몰지 않고 물론 주캐릭터는 존재하지만 조연도 함께 빛날 수 있는 캐릭터의 그 반짝임을 잘 연출하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처음 보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다른 사람이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했던 영화 <타짜>. 인물의 심리를 조금 더 밀도감있게 풀어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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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향유한다는 것은
※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제작사 더액티비스트
배급사 (주)시네마달
감독 유수연
출연 조영숙, 박수빈, 황지영
개봉 2025년 03월 19일
"낯설고도 새로운 역사를 만나다"
산마이, 니마이, 가다끼… 한국의 역사 속에 존재했지만 어쩐지 낯설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처음 듣는 단어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다. 사실 필자는 공연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 1년에 한두 번쯤 좋아하는 밴드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정도랄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공연 예술을 꾸준히 찾아다니는 마니아들도 있다. 특히 K-POP 산업이 성장하면서 아이돌 콘서트는 대중문화의 중심축이 되었다. 무대 위 반짝이는 스타, 객석을 가득 채운 함성. 서로가 주고받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그 생생한 현장감은 사람들을 다시 공연장으로 이끈다. 그리고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아이돌처럼 강렬한 팬덤과 무대 위 마력으로 공연 예술계를 호령했던 이들이 있었다.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별하나>(1958) 김경수와 김진진,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54326, 2025-03-20.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와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해방 이후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연 예술이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여성국극이다. 여성국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녀 모든 배역을 여성 배우들이 도맡았으며, 남자 주인공을 니마이(二枚), 희극적인 감초 조연을 산마이(三枚, さんまい), 악역을 가다끼(敵, がたき)라 불렀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도 국극 용어는 한글로 정제되지 못한 채 일본어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준수한 외모에 노래와 춤은 물론이요 뛰어난 연기력까지. 여성국극단은 당대 최고의 올라운더들이 모인 집합소였다. 그중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연 니마이(二枚)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연 예술이 대중성을 확보하려면 여성 팬층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여성국극은 니마이(二枚) 배우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당대 공연 예술로서의 대중성과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러나 니마이 배우들의 인기는 단순한 외적 매력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가부장적 남성상과는 결이 다른, 다정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며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성인 남성의 강직하고 무거운 이미지 대신, 섬세하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로 무대 위에 존재했다. 특히, 검무와 격투 장면에서 보여 주는 신체적 퍼포먼스는 강인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부각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요소가 결합되면서 니마이 배우들은 단순한 스타를 넘어, 여성국극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젠더적 판타지와 서사의 중심이 되었다.
여성국극과 티켓 파워: 과거와 현재
여성국극의 1세대 레전드로 불리는 조영숙 배우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빠지면 공연장 바닥에는 팬들이 두고 간 선물들로 가득했다. 특히 스타킹 같은 생필품을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이는 오늘날의 조공 문화와 유사하다. 무대 위 빛나는 스타를 위해 아낌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팬들, 그리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여성국극이 한때 현재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문화 예술계에서 여성 관객의 강력한 티켓 파워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1년 인터파크 데이터에 따르면, 공연 예매자의 75%가 여성이었으며, 20~30대 여성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여성 관객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공연 예술을 지탱하고 있었다.
여성 관객들이 공연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은 단순히 볼거리를 넘어서, 작품과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들은 감동적인 서사와 캐릭터에 몰입하며, 예술을 통해 감정을 확장하는 경험을 중시한다. 또한 작품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단순한 오락보다는 의미 있는 작품에 강한 지지를 보낸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더 폴(The Fall): 디렉터스컷>의 흥행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 관객의 감수성은 문화적 유산처럼 계승된다고 볼 수도 있다. 여성국극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통과 예술을 지키는 사람들
여성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먹고 자란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불꽃같았다. 1~2세대를 거치며 배우들의 헌신으로 찬란하게 타올랐지만, 그 불길은 너무나도 빠르게 꺼져버렸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국극이 급격히 쇠락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지만, 급변하는 사회 풍속과 보수적인 정책 기조 속에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로 인해 명맥은 단절의 위기를 맞았고, 한때 문전성시를 이뤘던 여성국극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국극을 되살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계보를 잇는 이들이 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 속에서, 여성국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여성국극을 해야 하지 않겠어?"
여성국극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회고하는 것만큼, 그 현재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다큐는 과거와 대조되는 여성국극이 직면한 현실을 조명한다. 소규모 지역 축제에서 공연을 올리는 배우들. 그러나 관객들은 흥미를 보이다가도 금세 등을 돌린다. 한때 여심을 뒤흔들었던 1~2세대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여성국극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는 여성국극을 해야 하지 않겠어. 3년만 해보자.”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들. 예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라서, 작금의 배우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담보하여 고군분투한다. 생계와 예술 사이의 고민, 변하는 시대 속에서 여성국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그러나 이들이 그 시련을 견뎌내는 원동력 역시 ‘여성국극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신념과 사랑이다. 그 절박함은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를 잇는 ‘레전드 춘향전’을 탄생시켰고, “현재 여성국극제작소가 안산에 뿌리를 내리며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을 기반을 마련했다.” 다큐 제작 기간 동안 3세대 배우 박수빈과 황지영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성과이기도 하다. 여성국극은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새로운 2막을 위한 그 시작점에 다시 섰다.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처럼, 한국의 여성국극도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아 새로운 전성기를 써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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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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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날까. 울 때는 엄마, 하고 울게 될까. 어쩌다 엄마라는 단어에 온갖가지의 감정이 붙어버렸을까.
우리 엄마는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부모님이 편지를 써 오라는 이상한 숙제를 내주곤 했었는데,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엄마가 작가이시냐, 시인이시냐 하고 물었다. 정작 나는 "녹음이 짙은 계절이구나."로 시작하는 그 편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초딩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일본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있는 집 귀한 딸이었다. 자수를 끝내주게 놓아서 온 마을 사람들이 엄마의 엄마에게 옷을 지어달라고 했다.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추는, 요즘 말로 예체능으로는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글재주를 타고났나 보다.
나는 엄마의 비밀상자에서 엄마의 자매들과 나눈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자녀가 있다면 비밀상자를 꼭꼭 숨겨두길 바란다). 한 이모가 엄마에게 "언니.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야."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 엄마는 뭐라고 답장을 썼을까. 또 다른 누군가는 "바보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엄마한테 보냈다. 연애편지인 듯했다. 엄마는 뭐라고 답장을 썼을까.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열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겨 피아노는 물 건너갔다.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나와 동생이 중고등학생 때 보던 영단어장을 항상 거실에 두었는데, 몇 단어나 외웠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나는 엄마가 엄마라는 것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한 인간의 삶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빼고 모든 것이 지워졌으므로, 나는 엄마에 대해 알지 못한다. 엄마가 아닌 그 사람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엄마한테 남은 것이 자식뿐이라 화가 난다. 일생동안 손가락이 다 휘어지도록 일했는데 엄마한테는 아무런 지위도, 성취도 없다. 그냥 엄마다.
엄마로서의 삶과 주체로서의 삶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러나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 레다는 그러고 싶지 않다. 레다는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연구가 더 중요하고 자신의 욕망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여름 휴가 역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게 아니라 혼자서 떠난다. 휴가에서도 할일이 많다. 논문도 읽어야 하고 수영도 해야 하고 선탠도 해야 한다.
그런 레다의 고요는 한 대가족에 의해 박살이 난다. 이들은 이모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아이까지 섞인 대가족이다. 레다는 어린 여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 니나에게 자꾸만 시선이 간다. 대가족, 특히 여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는 레다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니나의 모습과 니나 또래쯤 되었을 레다의 과거 회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레다는 엄마로서의 삶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하지만 집에는 남편이 있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두 딸이 있었다. 레다는 남편과 육아를 분담하면서, 자기의 몫이 아닐 때는 아이들이 울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 사랑스러움만으로 자기 삶을 내팽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교문학 학자로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겠나. 그걸 이제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버릴 수 있을까. 지금도 수도 없는 여자들이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취업하여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고, 또 열심히 살았나. 그런데 단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 다시 돌아갈 자리는 없다.
대가족은 물놀이를 즐기느라 아이가 사라진 것도 모른다. 뒤늦게 아이를 잃어버린 걸 알아채고는 온 해변을 뒤지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레다는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숲속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이를 발견하고는 니나에게 데려다 준다. 니나는 레다에게 묻는다. 너무 힘들지만, 곧 지나가지 않겠냐고. 그러나 레다는 대답한다. 지나가지 않는다고.
결코 지나가지 않는 괴로움들
갈등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 사라지고부터 시작된다. 레다는 아이의 인형을 훔쳐가는데, 눈앞에서 아이가 울고불고, 어른들이 아무리 아이를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레다는 별장으로 돌아가 훔친 인형을 꼭 안고 잔다. 인형 옷도 새로 사서 입힌다.
평화롭던 대가족은 사라진 인형 하나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정말 이 가족은 평화로웠을까? 삼대가 모여 즐겁게 휴가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니나의 괴로움이 있다. 니나에게는 평화가 없다. 늘 자기를 따라다니는 어린 딸,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지고마는 딸,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남편, 그리고 내연남.
니나의 내연남은 해변에서 일을 하는 대학생 윌이다. 윌은 누구에게나 다정하다. 그게 윌의 일이기도 하다. 레다와도 한번 저녁을 같이 먹는데, 레다는 윌에게 쉽사리 마음을 터놓는다. 레다가 인형을 돌려주기로 결심하고 니나의 집을 찾아갔을 때, 니나와 윌이 내연관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다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학회에서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몇 번의 그런 생활이 반복된 후,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는 집을 나가버린다. 여기서 혹자는 엄마의 책임감을 운운하겠고, 혹자는 바람난 유부녀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겠으나 분명한 건 레다가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두 딸이 너무 버거워서, 아이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다 뒤처질 것 같아서, 또는 그밖의 여러 이유로 레다는 우울해한다. 학회에 나가 혼자 있는 것(또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 레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가만 보면 엄마들에게는 탈출구가 많지 않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 잠가버렸지만, 엄마는 쾅 닫고 들어가 잠글 방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방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레다는 3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3년이 지나고, 아이들이 보고싶어져(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마도 레다의 우울이 가시고 난 후가 아닐까)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쯤은 아마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테고 엄마보다 친구를 찾았을 것이다.
레다는 인형을 돌려주지 않고, 마치 자식을 돌보듯이 인형을 돌본다. 아이는 어떤 인형을 사주어도 그 인형을 잊지 못한다. 니나 가정에는 작은 틈이 생겼고, 레다는 그 틈을 지켜본다. 니나는 괴로워한다.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는 엄마를 자꾸만 괴롭게 한다. 엄마가 괴롭지 않으려면 아이가 인형을 찾아야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레다는 인형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저녁, 윌이 레다를 찾아와 방을 빌려달라고 한다. 무슨 그런 부탁이 다 있는지 모를 일이다. 윌은 예전의 저녁식사에서 레다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레다는 거절하지만 얼마 뒤 니나가 레다를 찾아온다. 레다는 기꺼이 방을 내어주겠다고 말하며, 인형을 돌려준다.
니나는 도대체 왜 그랬냐며 분노하지만, 레다는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그저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레다가 인형을 훔친 건 행복해 보이는 니나에게 '너도 한번 괴로워봐라' 하는 마음이었을까, 딸들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레다는 시장에서 니나를 마주친 적이 있다. 니나가 쓴 커다란 모자가 자꾸 바람에 날리자, 모자에 뾰족한 핀을 꽂아 고정시켜준다. 이렇게 하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다고. 그 말은 팁 같으면서도 모종의 조언이나 충고 같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레다가 사는 집에 놀러가겠다고 했던 니나는 레다가 준 건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며 핀을 돌려준다. 핀은 마치 자식을 품을 자격도 없다는 듯이, 레다의 아랫배에 깊이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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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엄마의 사랑은 당연하다고 너무도 쉽게 오해하게 된다. 이 당연한 사랑을 받지 못해 병들고, 당연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병든다.
엄마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거실이나 주방이 아닌, 엄마만의 방. 너무 힘들고 괴로울 때, 또는 엄마 역할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엄마의 방이 없다는 것은 엄마의 사랑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레다는 니나와 아이를 보면서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반추한다. 자식을 등지기로 결심했던 레다에게 그 시절은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니나는 그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느 쪽으로나 썩 편치만은 않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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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2021.
감독 : 메기 질렌할
주연 : 올리비아 콜맨, 다코타 존슨, 제시 버클리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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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여 안녕>
시놉시스 : 2001년 11월, 위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반도네온 연주자 훌리오 파베르는 경제적 어려움과 싸우고 있다. 탱고 밴드를 이끌고 있지만 공연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가족이 운영하는 신발 가게도 위기에 처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날지 고민하던 중 정부가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화끈한 성격의 택시 운전사 마리엘라와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운명을 바꿔 버린다.
폼페이의 이웃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한다.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근로자 탱고 밴드 '폼페이의 이웃들'이라 불리는 그룹(?)이 연주하는 밴드다. 영화의 주인공, 훌리오 파베르는 반도네온 연주자이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밴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 마주한다. 심지어 그들의 문제는 하나. '보컬'의 부재. 그들은 병원에 있던 '마에스트로'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답변에 단호하게 거절하는 '마에스트로'. 모두가 포기하던 찰나, '마에스트로'가 리허설 장소로 등장한다.
역경과 고난 -1
하지만 이야기는 그저 탱고 밴드 이야기로 흘러가진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 그리고 그의 밴드들에겐 여러가지 문제들이 닥쳐온다. 훌리오 파베르에게 닥쳐온 첫 번째 시련. 택시 기사와의 사고. '독일' 이민을 계획하며 독일어 라디오를 들으며 가던 훌리오. 그런 훌리오의 차를 택시기사, 마리엘라가 빨간 불 확인을 하지못하고 결국 사고가 난다. 화가 난 훌리오는 마리엘라에게 가 보험증서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남성우월주의라며 욕을하고 도망간다.
훌리오는 택시회사로 가, 택시회사 사장에게 사고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마리엘라. 마리엘라 역시 경제적 어려움의 주인공이다. (게다가, 보험증서도 위조 문서) 결국, 수리비는 할부로 갚기로하고 훌리오가 필요할 때마다 기사 역할을 하기로 합의를 본다.
역경과 고난 -2.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정부의 경제 위기로 '은행 계좌'가 동결된 상황. 독일로의 이민을 준비하던 훌리오에겐 청천벽력이다. 그는 집과 아버지의 가게를 팔아 현금으로 마련하여 은행에 다 넣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춘기 딸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이민을 거부하기까지. 그러던 그에게 밴드의 공연 기회가 생긴다.
바로 정부에서 일하는 사촌의 부탁으로 국회의원 아내의 생일파티 공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그들에겐 새로운 기회다. 그렇지만 다른 위기가 또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탱고의 매력
사실 탱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그저 아 이런 느낌이 탱고구나! 만 아는 정도. 근데 이 영화를 통해서 탱고의 매력에 푹 빠졌다. 노래 가사가 오른쪽 자막을 통하여 나오지만, 자막은 보지 않는다. 밴드 연주자들의 표정만 봐도 행복하다. 귀는 탱고를 듣고 눈은 그들을 본다. 그럼 그 순간 스크린에 현혹된다. 내가 음악 영화를 좋아했었나?
영화를 보고 나서 한 생각은 '폼페이의 이웃들'의 연주 장면을 실제로 보고 싶다. 물론 이뤄질 수 없는 꿈이겠지만.
영화는 탱고를 통해서 그들의 연대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까지 선사한다. 앞으로 탱고 연주를 찾아 보게 해준 좋은 영화.
EDITOR_RIA
상영스케줄
2024.05.04(토) 14:00 CGV전주고사 2관
2024.05.07(화) 13:30 CGV전주고사 7관
2024.05.09(목) 14:40 CGV전주고사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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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성공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레오 카락스의 독창적 뮤지컬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2년 만에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등장해 심사위원들은 물론, 해외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에게서 “2021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감독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 〈아네트〉 리뷰입니다. 그 시작점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것에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미 다수의 마니아 층을 확보한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첫 음악 장르에 그것도 대사 없이 전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오로지 영어만 사용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르적 규칙과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자신의 틀 조차 바꾼 파격적 형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시사회라는 좋은 기회를 맞아 먼저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및 기본 정보
관객의 환호 속 사랑과 기쁨, 그 어두운 이면
신의 유인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인기 절정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안과 LA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며 귀여운 딸 Annette를 낳게 됩니다. 이후 점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안과 달리 육아에 전념하면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헨리, 그의 좌절은 두 사람 사이를 삐걱대게 만들죠. 그리고 관계 회복을 위해 떠난 보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기는데...
영제 : ANNETTE│감독 : 레오 카락스│각본 : 론 마엘, 러셀 마엘│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몬 헬버그 외 多│장르 : 뮤지컬,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 141분│개봉일 : 2021년 10월 27일│국가 : 프랑스, 벨기에, 독일, 미국, 일본, 멕시코, 스위스│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17, 왓챠피디아 예상 4.1, 로톤 토마토 신선도 71% 팝콘 76%, IMDB 6.4, 메타 스코어 67점
We love each other so much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두 주연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노래입니다. 특히, '모든 것은 현장에서!'라는 원칙을 내세운 감독의 고집에 따라 오페라 아리아 장면에서의 전문 가수 목소리를 얹거나 사전 녹음을 한 노래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브로 소화하며 연기를 펼쳐냅니다. 두 인물 모두 공연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에서 미디어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모양새는 또 다른 그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죠. 유명인이 만나, 파국을 맞고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불행은 그저 볼거리로 변질되며 밑바닥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불행의 이유, 매일 밤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한 여자의 행복,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내막은 뒤로 한 채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비춥니다. 그 얄팍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그저 돈의 가치에 움직이는 오락적인 소재로 치부되는 두 인물의 불안은 어쩌면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노래와 연기로 보여준 두 배우의 깊이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더불어 두 주연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두 인물의 딸을 일반 배우가 아닌 목각 인형 마리오네트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목각 인형의 등장은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인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인 쓸쓸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작품 특유의 기괴함을 배가 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나오는 마리오네트는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은 딸이 아빠의 강압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인 채 입을 벙긋거리며 아빠와 딸의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주죠. 초반 놀라움과 이질감을 주었던 요소에서 어느새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로 전환돼 동정과 연민을 자극시킴으로서 마지막 엔딩에 힘을 실어줍니다.
So, may we start?
관객들이 마주하는 첫 장면부터 사뭇 다르게 '노래하고 웃고 박수치고 우는 일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쇼가 벌어지는 동안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며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연주가 흘러나오고, 주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해 '그럼, 시작할까요?'(So, may we start?)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모든 이들이 모여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롱테이크로 마무리되고 두 주연이 자신의 역할로 떠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감독이 꿈꾸는 가상 세계에 대한 설정을 스팍스의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을 받게 해 극의 시작을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특이점들이 현재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극장가에서 그 기초가 되는 음향과 시각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에 더욱 집중해달라는 그의 부탁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전에 보여준 작품에서의 나쁜 남자의 모습,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극적 제스처, 무대 위의 화려함과 그 어두운 이면의 음울함을 오가는 색채, 전체적으로 흐르는 환희와 비극이 어우러지는 오페라 같은 느낌은 분명 호불호를 일으키기에 분명하지만, 그 기괴함이 묘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시작부터 기쁨, 결실, 그리고 적대감으로 변화해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 관객들은 141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스팍스의 몽환적 노래와 함께 그만의 기이하고 독특한 뮤지컬 판타지로 빠져들게 됩니다. 언뜻 사랑스럽고 따뜻한 스토리를 생각했겠지만, 전개는 성공의 격차로 점차 폭력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치닫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폭력적 충동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까지 파멸로 이끄는 비극, 그 상황 속 헨리의 어두운 심연을 이미지화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녹여 아리아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죠.
스크린을 통해 사랑이 주는 기쁨부터 그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까지 잔잔한 파도가 풍랑으로 변해 몰아치는 광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꼭두각시였던 마리오네트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인격화됨으로써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나쁜 아빠는 만감이 교차하며 한 남자로서 자신의 속죄를 하게 됩니다. 결국 감독이 인터뷰에도 밝혔듯 함께 출연한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사랑과 가족, 죄와 벌 등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기존에 생각한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스타일의 뮤지컬과는 다르고 상업적으로만 접근을 한다면 실망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 무성영화와 같은 고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측면에서 강렬한 배우의 연기나 감독에서 대한 애정으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s. We love each other so much 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겁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사랑과 예술이 빚어낸 성공의 이면, 파국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 속 레오 카락스의 기이한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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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 버스터즈> 1984년도 작과 2015년도 작 비교하기
1984년도에 나온 아이번 라이트만 감독의 <고스트 버스터즈>와 그를 리메이크한 작품인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 버스터즈>의 가장 큰 차이점인 주인공들의 성별반전이다. 원작에서 주요한 임무를 맡은 이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반면에 리메이크 작에선 그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다. 리메이크 작의 감독인 폴 페이그는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들이 중심에 있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1984년도에 나온 이 영화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뉴욕 한복판에서 귀신을 퇴치하는 과학자들’이라는 아이디어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고스트’들의 나름 귀엽게 캐릭터화된 모습일 것이다. 또한 결말에 등장하는 생각치도 못했던 악당의 등장은 신선하다. 그렇기에 생소한 이야기와 만화적인 캐릭터의 영화적 구현은 관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또 다른 요소인 코미디의 측면에서는 그 명성에 비해 이렇다 할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코미디가 가진 시대적 한계와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4명 중 중심을 맡고 있는 벤크멘(빌 머레이)은 첫 장면부터 나타내길, 자신의 직무보단 여성에게 더 관심있는 전형적 ‘카사노바’적 캐릭터이다. 따라 그가 지닌 여성편력은 그대로 그의 농담에 적용되고 그가 내뱉는 농담들은 즐거움보단 불쾌함을 선사한다. 또한 다른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개성있는 캐릭터의 모습보다는 ‘귀신을 퇴치하는 과학자들’이라는 타이틀에 소모되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딱히 호감이 가거나 눈길을 끄는 캐릭터가 없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적어도 그 주인공 4명이 느끼는 위기감을 한 관객으로서 함께 느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원작에서 아쉬웠던 점은 악마 ‘고저’에 의해 악령에 씌었던 다나 바렛(시고니 위버)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4명의 주인공이 모두 남자인 이 영화에서 비중있는 캐릭터를 맡은 여성은 다나가 유일하다. 영화 속 여성들은 거의 벤크맨에게 관심있는 여성과 관심없는 여성으로 나뉜다. 다나는 벤크멘이 관심있는 여성에 속했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비중있는 여성마저 여럿 영화에서 반복했던 단지 ‘섹슈얼한 이미지’의 여성으로 소비됨을 문지기가 된 다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다나는 문지기가 된 후 악마의 형상을 하고 공포심을 자아내기 보다는 남성에게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벤크멘에게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데 치중한다. 다나의 역할은 그에 그친다. (극 중 열쇠지기가 되는 루이스(릭 머래니스)와 비교해본다면 ‘굳이, 왜’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습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인 <에일리언(1979)>에서 강인함과 냉철함으로 무장하여 남근으로부터 파생되는 권력을 상징하는 에일리언과 맞서 싸우는 시고니 위버의 모습을 아는 관객에게 (별개의 작품이지만) 되려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리메이크작인 <고스트 버스터즈(2016)>는 원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그대로 전복하려는 듯이 주연들을 모두 여성을 바꾸면서 큰 변화를 주었다. 원작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지만 분명한 개별영화로서 원작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주인공마다의 캐릭터가 확실 해졌고 그로 인해 그들이 주고받는 합에서 오는 개그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령의 모습들 또한 시대의 발전으로 더욱 화려해지고 볼만해졌다. 무엇보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점은 영화에서 줄 곧 여성의 역할이라 여겨졌던 ‘비서’의 자리에 남성(크리스 헴스워스)을 배치했으며 이를 계속 활용하여 해학의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숱한 남성 중심의 코미디 영화들은 여성을 ‘멍청한 금발미녀’의 스테레오타입에 가두고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게 했으며 능력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강조함으로 여성을 눈요기감으로 전락시켰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자리에 최근 할리우드에서 남성미로 대표되는 배우를 대입시켜 영화사의 전적들을 비꼬는 장치로 영화에 활용한다. 이 탁월한 미러링은 영화를 보는 내내 통쾌함으로 이어진다.
원작의 팬층이 두터웠던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영화 속 캐릭터인 고스트 버스터즈를 흉내내고 꿈꿀 수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남성으로 한정됐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만난 영화 속 캐릭터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이는 원작이 가진 분명한 한계점이다. 리메이크 작은 단순히 남성판이 있기에 만들어진 여성판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닌 듯하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이 히어로들은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여되었던 클리셰들을 반복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고 ‘엄마’나 ‘아내’의 역할에 구애받지 않은 채 오롯이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실행한다. 외적인 모습 또한 많은 대중들의 머리에 각인된 ‘여성미’ 따위를 충족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보여 진다. 이는 여성에게 더 자유롭고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내면화할 기회를 준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부당하게 그려졌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자라나기도 이전인 무려 5년 전에 이 영화가 코미디 장르를 등에 업고 관객에게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는 것은 놀라웠다. 이는 영화에 대한 완성도와는 별개로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이 영화를 ‘즐기고’ 싶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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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도저에 탄 소녀 리뷰 - 무엇이 그녀를 불도저에 태웠는가 (스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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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현실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는 갑작스런 아빠의 사고와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살의 혜영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는 현실 폭주 드라마다.
드라마 ‘SKY캐슬’,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강단과 순수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혜윤이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아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하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한다. 실제로 김혜윤은 직접 불도저를 다루며 혜영 역할을 위해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인물의 들끓는 내면을 온몸으로 표출해 열정을 불태웠다.
개성파 연기자 배우 박혁권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드라마 ‘경찰수업’, ‘쌍갑포차’ 등의 오만석 배우, 또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예성이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박이웅 감독의 데뷔작으로 사회를 향한 관점과 인물에 대한 시선으로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썼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현실성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기반으로 현재를 가리키는 시의성을 더해 공감을 이끈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여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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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4주 최신 개봉영화(해피뉴이어, 노웨어 스페셜, 램, 메모리 조작살인, 긴 하루)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해피뉴이어 #노웨어스페셜 #램 #메모리조작살인 #긴하루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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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탑> 메인 예고편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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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대한 시> 예고편
현금 수송 일을 하는 두 남자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서 군인으로 함께 생활했던 빅터와 로하.
둘은 일도 함께 하지만 업무가 끝나면 함께 시를 가르치는 수업도 듣는다.
항상 붙어다니지만 둘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투계장에 가서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로하는 늘 빚에 쪼들리며 불안해하는 반면
빅터는 위험 앞에서도 침착하고 돈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인다.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빅터를 향한다.
우크라이나에 파병됐을 때 사람들을 죽인 경험을 가진 그는 평소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로 보인다.
엉뚱하게 시를 발표해서 유명해진 빅터는 한 순간 억눌렸던 폭력성을 폭발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