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6-08 17:09:07
안보면 후회 할 영화들로 가득! 넷플릭스 6월 종료작
여러분! 하나씩 공개되는 6월 넷플릭스 영화, 잘 보고 계신가요?
저번 콘텐츠에서 소개해드린 <새콤달콤>이 현재 넷플릭스 영화 한 국 순위 TOP10 순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6월 종료작 또한 같이 찾아왔습니다. :(
이번 종료작에는 명작들이 너무 많아 뽑을 수 없어 다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터미널>,<타이타닉>이 제 최애 영화입니다.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있다면 관람을, 여러분의 최애 영화가 있다면 n차 관람을 놓치지 마세요!
넷플릭스 6월 종료작,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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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종료
▶ 장고 : 분노의 추적자 (2012) - 쿠엔틴 타란티노
6월 30일 종료
▶ 포레스트 검프 (1994) - 로버트 저메키스
▶ 투모로우 (2004) - 롤랜드 에머리히
▶ 터미널 (2004) - 스티븐 스필버그
▶ 타이타닉 (1997) - 제임스 카메론
▶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2015) - 매튜 본
▶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2) - 스티븐 스필버그
▶ 이지 A (2010) - 윌 글럭
▶ 아메리칸 뷰티 (1999) - 샘 멘데스
▶ 빅 피쉬 (2003) - 팀 버튼
▶ 블랙 스완 (2010) - 대런 아로노프스키
▶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 이안
▶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2015) - 크리스토퍼 맥쿼리
▶ 인 디 에어 (2009) - 제이슨 라이트먼
▶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 (2013) - 루이스 리터리어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 웨스 앤더슨
▶ 블레이드 러너 (1982) - 리들리 스콧
▶ 다이 하드 4.0 (2007) - 렌 와이즈먼
▶ 제이슨 본 (2016) - 폴 그린그래스
▶ 루시 (2014) - 뤽 베송
▶ 사랑에 대한 모든 것 (2014) - 제임스 마쉬
▶ 그린 존 (2010) - 폴 그린그래스
▶ 언브로큰 (2014) - 안젤리나 졸리
▶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1) - 샤론 맥과이어
▶ 러블리 본즈 (2009) - 피터 잭슨
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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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
프란시스와 레이디 버드
처음으로 <프란시스 하>를 본 건 입시 준비를 하던 여름이었다. 계속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프란시스를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같은 해, <레이디 버드>를 본 후에는 영화 말미에 대학에 들어가는 크리스틴이 참 부러웠다. 수능 성적이 좋은 것도, 방과 후에 연극을 하고, 줄리와 대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전부 대단해 보였다. 스물 한 살이 되어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과 긴장감에서 한 발짝 물러나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 후 두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듯, 프란시스가 방황하던 시간을 지나 ‘자기만의 방’을 찾듯 그레타 거윅이 그린 성장은 단순히 귀감이 되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We were in one parking lot and we went to another parking lot."
레이디 버드’는 고등학생인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직접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크리스틴이라고 부르면 반드시 고쳐 부르게 하고, 명단에 쓰인 이름은 새로 쓴 후 밑줄까지 그어 둔다. 반듯하게 인쇄된 글자 아래 적힌 손글씨는 어디서든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를 소개하는 듯하다. <레이디 버드>는 수십 벌의 예쁜 의상과 함께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하이틴’ 영화에서 벗어나 그 이미지를 보고 자란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깊이가 각기 다른 수많은 고민,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결정들, <레이디 버드>가 주인공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모녀의 이야기라는 점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관객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그레타 거윅이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는 꼭 <레이디 버드>의 다음 이야기처럼 보인다. 프란시스는 여러 모로 불안정하다. 현대무용가가 되고 싶어하고, 뉴욕에 살며, 함께 살던 친구가 떠나며 갈 곳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진다. 영화는 색조차 빼앗아 가며 복잡한 감정과 걱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레이디 버드처럼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원동력을 절실히 원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름을 줄여 쓰지 않고 반 접어 우편함에 끼워 넣은 것처럼, <프란시스 하>는 때때로 한 발자국 물러나거나 타협하는 것이 결코 최악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화려한 스토리와 미장센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하>는 불완전한 삶과 끝나지 않은 성장으로 위로를 준다.
레이디 버드는 “우리 주차장에서 출발했는데 또 다른 주차장에 왔네.”라고 말한다. 주차장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출발해야 하는 장소이다. 스치듯 읊조린 대사지만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의 정서를 모두 설명하는 것만 같다. 두 작품은 떠난 후에야 사랑하게 되는 것들, 다시 말해 과거의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성장을 담았기에 특별하다.
그레타 거윅이 그린 여성의 성장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 하>가 유독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두 이야기를 충분히 내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와는 공통점보다 다른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고 무대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태어난 연도와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서 위로를 받거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나를 위한 영화다’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레타 거윅의 캐릭터들이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정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와 프란시스는 섹슈얼한 관계를 쟁취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스러운 욕망과 꼬이고 풀어지는 관계들, 보편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녀 관계와 친구 관계 또한 위와 같은 감상에 큰 영향을 준다.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길버트 그레이프>, <바스켓볼 다이어리> 등은 모두 다양한 감상과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영화와 소통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자라면서 수도 없이 돌려 본 <금발이 너무해>, <클루리스>, <하이 스쿨 뮤지컬> 같은 작품들은 여성 제작자의 손을 거치거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임에도 아름다우면서 유능한 캐릭터를 모델로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수없이 본 경험 이후에 그레타 거윅이 참여한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 여성 제작자로서 그레타 거윅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이야기와 연출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나 다른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내면화하고,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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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익명의 목격자 되기
감독] The Myanmar Film Collective 미얀마 영화 집단
프로그램 노트] 2021년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또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안전과 자유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집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시민들이 무려 20만 명에 달한다. <미얀마 다이어리>는 정부의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행동들을 작은 카메라로 담은 작품이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인권 침해, 거리로 나선 용감한 시민들의 모습 등 카메라가 기록한 내용만큼이나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끝까지 익명으로 남아야 했던 감독과 스탭들의 존재로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기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이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미얀마 다이어리>의 엔딩크레딧이 다시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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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벽에 균열이 있어서, 그 틈에 대고 바깥을 향해 연신 진실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여인이 있었다. 그 속삭임이 온 나라에 퍼져 마침내 백성들이 힘을 모았고, 억압된 나라가 해방을 맞았다는 미얀마의 옛이야기가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어린 자식을 무릎에 앉히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희망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깊이 각인해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에서 발췌)
2012년에 나온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을 2022년에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다. 책이 출간되던 즈음 아웅 산 수 치는 가택 연금에서 벗어나 국회 보궐선거에 당선되고, 강산이 두 번쯤 바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지금, 군부는 쿠데타 이후로 그의 구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그에게 형량을 추가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얀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몇 년 전 홍콩에서 있었던 일처럼,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끌려가는 것이 두려웠다. 안전모를 쓰고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용기를 카메라 너머로 보면서, 안전한 관객석에 앉아서도 조마조마한 불안을 가득 느꼈다. 왜 그들의 모습은 늘 닮아있을까. 안전모와 마스크 뒤에 가려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남은 핏자국, 그를 둘러싼 꽃 몇 송이도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1980년의 광주를 비롯한 언젠가의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이었을 것이다.
카메라, 무기가 되다
얼굴과 이름을 가린 거리 위의 시민들처럼, 영화인들 또한 익명성 안에서 작업을 했다. 이 영화는 쿠데타 이후 영화인들이 목도하고 사유한 것들의 조각 모음이다. 핸드폰으로 찍은 급박한 순간의 풋티지 영상부터, 짧은 이야기, 은유적인 장면까지 다양하게 들어 있다.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색채로 담긴 여러 사람의 작업물이지만, 동일한 제작 의도가 모든 영상을 뚜렷하게 관통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의 상황을 유혈 사태나 내전으로 부르기보다 혁명과 투쟁으로 부르고자 하고, 이 영상을 찍을 때보다도 더욱 어려워진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이 점차 닿지 않는) 상황에 국제적인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자 한다.
중간중간 은유적으로 극화된 장면들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다큐멘터리임을 생각할수록 정신이 아득해진다. 영상 속 시민들은 거리에서 누군가 총에 맞는 순간을 목격하거나,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경찰이 총을 쏘는 소리를 듣거나, 가족을 붙잡으러 온 경찰을 맞닥뜨린다. 어린아이조차 분명하게 알고 있다. 체포의 사유도 밝히지 않고,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으며, 미란다의 원칙을 말해주는 법도 없는 이 경찰들이 온 이상 가족을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이들은 말하고 외치고 기록한다. 아이들은 엉엉 울면서도 엄마를 끌고 가지 말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총소리를 듣는 시민은 내 발로 나갈 테니까 제발 쏘지 말라고, 지금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다고 외치고, 눈물을 참는 딸들이 아버지의 체포 사유를 밝히라고 요청하면서도 핸드폰 카메라를 꼭 쥐고 있다.
영상 속 군경들이 촬영을 꺼리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카메라는 무기가 되었다. 돌과 총에 맞서는 무기가. 귀신을 쫓는다는 관습의 발현이자 시위의 상징과도 같았던 냄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시위의 도구가 되었다. 경고 알림음인 동시에, 총소리에 맞서는 소리다.
너희는 모두 박제되었다
카메라를 쥔 이들은 여전히 익명성 안에 있지만, 카메라에 담긴 이들은 모두 이렇게 영구히 박제되었다. 무장 군경이 아무리 철모를 눌러쓰고 촬영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더라도, 사복으로 자기를 감추고 쇠막대로 시위대를 마구 때려도, 순간들은 모두 카메라로 영구히 남아 이렇게 멀리 다른 나라 극장에서까지 상영된다.
그러나 카메라가 무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목격자의 존재가 보장될 때다. 카메라로 담은 결과물을 보는 이들의 눈이 있을 때. 그들의 눈이 눈총으로 기능할 수 있을 때. 여기서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이 영상물이 관객의 망막에 맺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상 속 너희는 모두 박제되었으며 이 기록물은 언젠가 역사가 될 것이다, 생각하며 목격하는 자들의 존재가 카메라를 무기로 만든다.
이를 알기에 미얀마 영화 집단은 엔딩 크레딧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톺아보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시민들의 이름과 함께 제작자의 이름도 익명성 안에 담아 결을 같이 했다. 그 점이 마음 한 구석을 착잡하게 하면서도, 관객 각자의 존재를 호명하는 듯한 울림을 주었다. 이 영상에 박제된 모든 것들을 함께 목격한 사람들. 그렇게 시민과 제작자, 관객까지 모두 '익명의 목격자'라는 카테고리로 하나로 묶인다. 만석에 가까운 관객석의 존재가 위로가 되었다.
위험해지는 희망
더 이상 '왜'를 묻거나 대의를 외치기에는 너무 잔혹한 폭력에 감싸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희망과 절망이 랜턴처럼 손쉽게 따각따각 켜지고 꺼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어서 영화 속에는 다양한 희망과 절망의 은유가 등장한다. 빛과 벽 사이 그림자로 새를 날려 보기도 하고, 차마 새기지 못한 나비 무늬 문신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반지 낀 두 사람의 손만으로 관계와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냄비를 두드리고 치마를 걸어놓던 초기에 비하면, 시민들의 저항은 확실히 '위험'해졌다. 이들은 더 이상 시위로만 맞설 수 없어 정글에 들어가 총탄을 쏘는 훈련을 하기도 하고, 망명하기도 하고, 그 모든 순간이 이 영화에도 담겨 있다.
시민이 무기를 들게 한 것은, '위험'한 존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적으로 돌리는 건 얼마나 미련한 행위이며, 그 결과는 얼마나 처절한가.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피를 흘리고 끌려가고, 무너지는 삶의 자리들을 염려하고 갈등을 빚는 것. 누구도 서로의 머릿속을 지배할 수 없는, 단지 영향만 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하기에는 너무 너절한 행위가 아닌가?
70분의 짧은 영상물 속에서도 시시각각 변해온, 그리고 지금은 더 나빠졌다는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뿐이다. 이들의 같이 있음. 누군가의 부재(不在)에서 맡아지는 서늘한 폭력의 냄새에 맞서, 나란히 함께 존재하는 것.
지금 여기, 우리가 하필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이유는 변한다. 세밀해지고 증식된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희망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아니었다. 달리다 보면 희망이 실리기 때문에 희망버스였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에서 발췌)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나온 문장이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움직임이었으며, 김소연 시인의 글 또한 해당 주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 닿았다. 인간의 희망과 절망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순간, 상황은 매우 다를 수 있어도 그 상황에 맞서는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 결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랜턴처럼 손쉽게 끄고 켤 수 없는 희망과 절망 앞에서, 이유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마음도 뭉그러지는 앞에서, 하필 같이 앉아버린 관객석에서 빌어 본다. 익명 안에 가려진 모두의 안전과 무운을. 언젠가 다시 들려올 소식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미얀마 다이어리> 상영 일정표]
10월 08일 11:30 CGV센텀시티 7관
10월 11일 18:30 CGV센텀시티 1관
10월 12일 10:30 영화의전당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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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맛만 보여준, 그래서 다음이 기대되는 영웅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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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e, 모래 사막이라는 뜻이다. 푸릇푸릇한 생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듄, 아라키스는 그 곳의 원주민인 프레멘들에게는 생존해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른 민족들에게서 지켜내야만 하는 생활 터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라키스는 다른 민족들의 정복 전쟁의 중심에 서있는데, 그 이유는 아라키스에 우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가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라키스의 새로운 주인, 아트레이디스의 후계자인 폴은 자신이 보는 것이 그저 꿈인지 아님 미래인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자신의 예지 능력으로 인해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이른바 선택된 자, 메시야라는 예언을 듣는다. 과연, 혼란 속에서도 그는 가문의 후계자로서, 아라키스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아트레이더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1. sf영화에 투영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이 10191년이고, 공간적인 배경은 범우주인 만큼 외계의 존재들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주인공인 폴도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외계인이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간 관계에서 비롯된 여러 사건들은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막을 두고 정복 전쟁을 하면서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는 모습, 전쟁을 치르느라 자연의 섭리는 그저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탐욕, 큰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집단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집단과 동맹을 맺는 모습, 이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이 영화의 거시적 메시지를 담은 대사가 있다면, 어찌할 수 없는 모래바람을 컨트롤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자연을 컨트롤해 인간의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들의 욕심을 꼬집은 듯한 대사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협조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기술의 발전으로 밀어붙여 무시하는 현생의 인간들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로 보여진다. 결국, 배경만 sf일 뿐이지, 이 영화는 인간의 세력 다툼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적인 모습, 그 과정에서 무시되는 자연에 대해 수려한 비주얼적 배경으로 자연은 결코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설명하는, 생태주의적 관점도 엿보이는 영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 두려움을 극복하는 폴에게서 나의 두려움을 보다
폴은 아트레이디스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선택받은 자로 자신이꾸는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예언이라는 말을 듣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선택받은 자로서 미래에 있을 정복 전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를 보고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게된다. 그가 두려움에 빠질 때마다 나오는 대사,
두려워하지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이 대사가 이 대서사시의 파트 1을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선택받은 자로 태어나고, 알게 모르게 트레이닝 받아왔지만 그는 아직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모르고, 실전에 내던져진 경험이 없었기에 나약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나약함은 곧 자신이 짊어질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하는데, 이 두려움을 극복해내어 생존 전사로 성장을 하는 것이 이 파트 1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모습에서 난 내 자신이 계속 투영되는 걸까. 시간적배경, 공간적 배경 모두 낯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사를 들으면, 누군가 나에게 힘내라고 외쳐주는 것 같아서 묘하게 위로가 되고, 나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폴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인물이 생존 퀘스트를 하나씩 깨어갈때마다 내 자신감까지 올라가게 되어, 이 인물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3. 총평
영화는 우선 스케일이 크고, 내용도 미완성 상태의 주인공의 각성을 담은 대서사시의 극히 일부만 본 것이라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영화의 집중도가 올라가 지루하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폴이 꿈인지 예지인지 모를 이미지를 볼때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슬로우가 걸린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음악이 주는 사운드 임팩트가 영화를 집중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막에 내던져졌을 때에는 더이상 첨단 기술로 무장한 외계인이 아닌, 그저 생존에 목마른 피난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막벌레에게 쫓기고, 하코넨 일당에게서 쫓기는 장면 등에서 충분히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의 속도감이 느려졌다 빨라졌다가 반복되니, 2시간반의 러닝타임이 걱정한 것 보단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폴이 나약함에 벗어나 위대한 자가 되는 과정에서 프레멘과 어떤 관계를 구축할지 파트2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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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로 표현한 무한한 가능성
우리는 일상을 지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한다. 과거의 행동이나 모습, 현재의 행동이나 모습, 미래의 모습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때론 후회도 하고 또 잘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이 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다. 특히나 나 자신의 과거와 미래 상황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그것을 선택한 나의 모습과 선택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선택 이후 바로 그 순간의 모습이 결정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그런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면서 지나간다.
그런 생각과 상상의 중심에는 현재가 있다. 우리가 결정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난 이후,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어떤 결과를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는 각자의 마음속에 아쉬움이나 뿌듯함 같은 감정을 심어놓는다. 만약 현재가 초라하다면 그동안 겪었던 많은 실패의 순간들을 후회하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현재가 성공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결정을 하고 좋은 현재를 살고 있어도 그것에 다 만족하기는 어렵다. 현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들, 감내해야 할 쓰디쓴 일들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 주변에 자리한다. 아마도 인생은 그런 쓴 삶의 모습도 감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기발하게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양자경)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변변치 않게 보이는 남편(키 호이 콴)과 딸(스테파니 수)을 책임지고 있다. 화면에 첫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지쳐있고 웃음기가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고, 딸과의 관계도 나빠 보인다. 남편은 아내 몰래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있고, 레즈비언인 딸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연인관계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에블린 주변의 상황은 쓰디쓴 현재인 것 같아 보인다.
에블린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위태로운 상황이고, 가족인 남편과 딸과도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에블린은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는 상태다. 여기에 몸이 불편한 자신의 아버지까지 에블린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에블린이 짊어진 짐은 그가 느끼는 현재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든다. 세무조사 때문에 세무서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기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무척 이상하지만 모든 것이 에블린 자신과 관련이 있다.
세무서에 같이 방문한 남편에게 다른 차원의 우주에 속한 남편이 들어가고 그의 몸을 이용해 에블린에게 말을 건다. 그는 다양한 우주에는 수많은 에블린이 있고, 완전한 악의 존재가 각 우주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에블린도 그런 차원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도 활용하고 쿵후도 배워 이상한 존재들과 대결해 나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에블린은 수많은 다른 에블린과 접속하고 그 삶을 본다. 지금의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 쿵후를 배운 에블린, 가수가 된 에블린 등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 자신의 삶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이어폰과 간단한 시각효과로 차원을 넘나드는 에블린의 모습을 무척 실감 나게 보여준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표현한 멀티버스
영화에서는 에블린이 보는 다른 우주의 다양한 자신의 모습과 각각의 일생을 멀티버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모습 같이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건 나 자신이 가졌던 수많은 가능성들이고, 현재 이후의 미래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과 다른 나의 모습은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에블린이 보는 수많은 자신들의 모습은 다양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가능성들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잠깐잠깐 보이는 다른 우주의 모습은 에블린의 일이나 가족의 위치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의 모습은 근사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회한의 감정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탁소 주인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을 보면서 자기 자신 그리고 남편과 딸의 다양한 모습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그런 에블린이 될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현실로 끌어와 액션과 코미디로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멀티버스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절대악의 존재를 막아내려는 에블린의 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여기에 아주 철학적인 문제도 같이 던진다. 인생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 같은 무척 심오한 이야기까지 끌어오면서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영화에서 에블린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그리고 딸의 관계도 무척 중요하다. 영화는 중반까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후반부에는 딸과의 관계로 이야기를 전환한다. 이 영화의 빌런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한 딸은 모든 우주에서 엄마 에블린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딸은 엄마에게 도망치길 원하고 더 나아가 모든 자신과 엄마를 파괴하길 원한다. 마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영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이야기에서 결국 주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하는 건 바로 에블린이다.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 한가운데서 현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꿰뚫는다. 영화는 분명 액션 장르의 껍질을 가지고 있지만 무척 섬세한 드라마가 속을 꽉 채우고 있다.
양자경의 훌륭한 연기와 따뜻한 드라마
에블린 역할을 맡은 배우 양자경은 그가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얼굴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 쿵후를 잘하는 에블린부터 노래를 잘하는 에블린,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의 얼굴을 모두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에너지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고 관객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면서 완벽하게 이 영화를 에블린과 양자경의 영화로 만들고 있다.
영화는 다양한 가능성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의 선택들과 미래에 해야 할 선택들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현재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미래에 어떤 일이 있든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과 곁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나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 접속하느라 멍하니 상상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는 깨어나서 지금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무척 기발하면서 완성도도 높고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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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어른이 된 내 모습은 상상이 안 돼
<숨겨진 편지, 그리고 사랑>
Ultraviolette and the Blood-Spitters Gang
감독: 로뱅 훈징어 Robin Hunzinger
시놉시스:
1920년대 중반, 엠마와 마르셀은 학교에서 만나 은밀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르셀이 결핵에 걸리면서 두 소녀는 오랜 이별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100여 년, 로뱅 훈징어 감독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조용히 간직해 온 편지들을 발견한다. 요양원에 들어간 마르셀이 엠마에게 보낸 편지들. 영화는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과 아방가르드 영화, 음악을 합쳐 그 속에 가득한 소녀들의 들끓는 열정과 생명력을 되살린다. (출처: 제14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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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 때때로 일탈을 꿈꾼다. 일상이 나를 짓누를 때, 사회가 내 앞길을 가로막거나, 내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느낄 때, 나의 생이 정체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사회와 일상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고, 우리가 몸 담은 우물 밖으로 도약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물론, 거기까지 가게 되는 여정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 여정을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설령 일상의 길을 이탈했다고 한들 우리가 꿈꾸어 온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보장할 수 없다. 인생이란 언제나 예측불허한 것이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불확실의 세계로 기꺼이 발을 내딛곤 한다. 그 일탈이 안겨주는 치열함과 싱그러움을 그리워 마지 않으므로, 그것으로 하여금 비로소 자유를 얻고 싶기 때문에, 혹은 제 몸을 모두 불사를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영화 <숨겨진 편지, 그리고 사랑>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수천 통의 편지를 써내려 가며 그 자신의 대담한 일탈을 기록으로 남긴 마르셀과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 옛사랑을 그리워한 젊은이
1925년, 여름. 서로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던 엠마와 마르셀은 각자 다른 진로를 택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삶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학업을 이어간 엠마와는 달리, 마르셀은 생계 유지를 위해 교사가 되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기는 했으나, 본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마르셀은 그 생활이 갑갑했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편지에는 자신의 사랑과 우울과 두려움, 이상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상아탑이 그립다.”
“넌 공부를 하지만 난 진짜 삶을 살아.”
“어른인 내 모습이 상상이 안 돼.”
마르셀이 보낸 아주 많은 편지에서는 어쩌면 엠마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그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안에는 갓 사회로 나와 좀처럼 갈피잡지 못하는 20대 초반 젊은이가 자리하고 있다. 열정적이고, 미숙하고 불안정한 그 어느 시절, 마르셀은 힘겨워했던 것이다. 특히나 그처럼 꿈 많고 창조적인 영혼을 가진 이에게는 그에게 주어진 현실이 갑갑하기 그지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대단한 답장이 오지 않는 연애 편지를 써 보내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런 마르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교사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다시금 그에게 시련을 떠안긴다. 소위 ‘낭만적인 젊은이를 괴롭히는 병’, 결핵에 걸리고 만 것이다.
3. 자외선과 피를 통하는 소녀들
엠마는 마르셀의 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결핵 환자들을 수용해 놓은 요양원으로 보낸다. 지금이야 결핵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지만, 1950년대 전까지만 해도 뾰족한 치료법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무척 치명적인 병이었다. 도스토옙스키나 이상, 김유정 같은 유명한 작가들 역시 모두 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폐가 굳어가는 병은 잠재적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창백한 낯으로 병상에 누워 죽음 혹은 회복을 기다리는 바로 그곳에서, 마르셀은 우울하던 것도 잠시, 그는 그 갑갑한 수도원 같은 곳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생생해진다. 1928년 여름, 요양원 사람들과의 여름 휴가에서 만난 마르그리트, 비주, 엘렌을 조우하고, 그들과 발랄하고 기상천외한 일탈을 일삼은 것이다! 그들은 병실을 뛰쳐나갔다. 혹은 함께 병실에 모여서 파티를 벌이기도 했고, 그 중 몇과 연애하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피를 토하는 소녀들’로 불렀다. 그리고 그를 주도했던 마르셀의 별명은, 빛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살뜰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자외선’이었다.
자외선과 소녀들은 이후 요양원에서 쫒겨나 저희들끼리 브리앙송의 어느 저택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들은 생사를 가르는 시련-결핵-을 통해 조우했고, 우정을 쌓았고, 사회가 규정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았다. 그 당시 사람들의 삶, 특히나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봤을 때, 그것은 기적 같은 자유였다. 죽음이 눈 앞에 바짝 다가와서야 비로소 얻어진. 혹자가 보기에 그것은 무질서하고 무모한 열정의 결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세상이 그들을 긍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도 어김없이 삶은 있었고, ‘자외선과 피를 토하는 소녀들’은 그들의 생의 끝자락에서, 끝없이 닥쳐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밀어내고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4. 자, 이제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
마르셀이 ‘피를 토하는 소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는 그가 사랑하던 옛 연인, 엠마와 2차례 조우했다. 한번은 다른 소녀들 모두가 함께하던 때였으며, 다른 한번은 다른 이들은 모두 떠나고 오직 마르셀 한 사람만이 남아있을 때였는데, 그 두 번의 만남 모두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의 종식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 마지 않던 연인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아직은 같은 길을 걷고 비슷한 생각을 나누던 바로 그 시절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서일지도 모른다. 오랜 단절의 시간은 한때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생각을 나누던 연인을 변하게 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으레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변화무쌍하기 그지 없어서, 서로 비슷하다가도 상이해지고, 이질적이다가도 동질적인 성질의 것으로 변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자는 이것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마르셀이 엠마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 ‘우리 사랑은 재가 되었다’고 말하며 절필 선언을 하게 된 것은, 오히려 그가 오래도록 차마 놓지 못했던 낡은 낭만과 열정을 드디어 떠나 보내고 새롭게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은 비단 나만의 착각일까? 사람마다 감상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므로 그것은 다른 감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 후 마르셀은 동성 배우자를 만나 딸을 입양하였고, ‘낙원’이라는 젊은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엠마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마르셀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의 일탈을 추억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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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포인트>
1. 이 영화는 수천 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 당시에 따로 찍어놓은 영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아방가르드 영화 및 영상을 적절하게 끼워 맞추어 감각적인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2.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의 단편을 그리는 다큐멘터리이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20년대의 전반적인 역사적 상황을 간단하게 알아보고 검색하거나,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개인들의 삶이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관람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2.09.23(금) 11:00 메가박스 백석점 3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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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괴의 미학으로 비틀어 끝내 내리꽂는 욕망의 여정
화녀 火女 | 1971 | 김기영 | 98분
※당시 영화의 시대상에 통용되었던 단어를 일부 사용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하녀〉로 한국 영화계의 강렬한 인장을 남긴 김기영 감독은 10년이 지난 뒤 1970년대라는 시대상과 여전히 유효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자신의 이전 영화를 리메이크한다. 기존 시나리오에 많은 수정을 가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1971년 작 〈화녀〉의 흥행에는 단연코 당시 신인으로 첫 영화에 도전한 스물다섯의 윤여정 배우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녀〉와 〈화녀〉, 〈충녀〉로 대표되는 김기영의 ‘여(女) 시리즈’는 물론 당대에도 흥행하였지만 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의 천재성과 영화적 의미를 정리 발굴하며 한국 영화사의 한 지류를 형성한 감독의 대표적인 문제작으로 꼽힌다. 그는 산업화와 근대화, 독재와 억압의 현실적 맥락에서 영화를 통해 자본과 계급으로 얽힌 대립과 파국, 성적 욕망으로 뒤틀린 인물, 특히 이상하고 기괴한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워 가학성 짙은 자신만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화녀〉는 시골에서 올라온 명자가 중산층 가정의 '식모'로 들어가며 욕망을 분출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내용이다. 감독은 흑백의 〈하녀〉를 지나 원색적인 컬러의 〈화녀〉에 붉은 빛을 비춘다. 그는 세 중심인물인 명자와 동식, 정숙을 욕망의 끈적한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지독한 파멸의 순간까지 몰아세운다.
서울의 한 중산층 이층 집에서 식모 명자(윤여정)와 주인집 남편 동식(남궁원)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 범인은 곧 경찰서에 잡혀 들어왔고 간밤에 절도를 시도하다 칼을 찔러 죽이게 되었다는 자백을 받아내며 수사는 마무리되는가 했다. 그러나 안주인 정숙(전계현)의 태도를 의심쩍게 본 형사(최무룡)는 그에게 정황을 추궁했고 곧 엄청난 사실을 털어놓는다. 1960년 작 〈하녀〉에서는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남성 주인공의 꿈이었다는 미완의 결말을 제시했지만 〈화녀〉는 이미 벌어진 파국의 서사를 정공법으로 직시하며 현실의 기이한 모순이 고스란히 담긴 세계의 광경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미스터리 서사의 얼개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한 뒤 본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은 모호한 표현주의적 서사로부터 조금은 친절한 방식을 선택한다. 내화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과감하고 독창적인 작법은 김기영 특유의 뒤틀린 상황과 심리 묘사, 강렬한 색감의 대립으로 관객의 예측을 한참 벗어난다. 거기에 중간중간 플래시백에서 외화로 돌아오는 영화의 완급 조절은 간단치 않은 서사에 관객의 한숨을 돌리게 만든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고향에서 도망친 후 상경한 명자와 경희(김주미혜)는 서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까마득한 31빌딩을 바라보며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야기한다. 경희는 빠의 여급으로, 명자는 양계장을 운영하는 정숙과 작곡가 동식 가족의 식모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명자가 당돌하며 순수한 특유의 성정으로 고된 식모살이를 이겨내던 중 동식에게 겁탈을 당한다. 성적 순결을 잃었다는 죄책감과 절망도 잠시, 동식은 아내 정숙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명자는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다.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에 피폐해진 정신적 트라우마는 그릇된 욕망으로 자라났다. 동식과 아이, 나아가 집 전체를 차지하겠다는 그의 의지에 동식과 정숙 역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거기에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후 분노와 욕망으로 질주하는 세 사람의 세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김기영은 당대 한국 영화계의 틀을 벗어나 특유의 인장과 세계관으로 그로테스크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다. 당시 〈화녀〉와 결이 비슷한 멜로드라마의 중심 관념이란 가부장 전통의 속박과 여성의 정절, 정상가정의 유지와 남성성의 건재였다. 그 안에서 여성의 통속이란 남성이 지어놓은 화목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평범한 부녀자로 살아오다 남성의 불륜이나 다른 남성의 등장, 근대화의 혼란 등 특정한 계기로 기존의 삶을 도전받는다. 변화의 시대에 전통 가정의 해체만큼은 단호히 거부하던 사회에서는 아내의 도리에 맞게 갈등과 고난에도 결국 모성애의 ‘정상성’을 회복하는 교훈적 결말이 있는가 하면 유혹을 견디지 못한 불순한 여자가 타락하는 호스티스 영화나 청춘남녀의 애절하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틈바구니 안에서 김기영의 멜로드라마는 변화하는 시대 달라지는 여성상을 날카롭고도 파격적으로 보여준다.
끊임없는 비유와 변주, 분절된 이미지의 사용은 영화의 비현실성을 극대화한다. 대상의 내면에 갇힌 인습을 과감히 폭로하며 비웃듯이 이를 과장하는 영화적 스타일은 흔들리는 카메라와 극적인 명암, 비현실적 연기로부터 파생된다. 그의 세계에 어울리는 작위적 대사와 행동은 배우의 연기로 구현한다. 시체스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윤여정 배우의 연기는 그 점에서 김기영의 메시지를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예측 불가의 디렉팅에도 윤여정 배우는 자신만의 기운으로 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 파국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버스 안 31빌딩의 거대함에 압도되기는커녕 "떨어져 죽기 편리한 높이"라며 킬킬대는 당돌한 모습은 관객과의 첫인상부터 전형적인 여성상을 철저히 거부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심어준다. 수직으로 높이 솟은 빌딩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공고한 남성성과 계급의식은 명자에게는 그저 농담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비극적 운명을 스스로 내뱉는 통한의 전조는 시대의 억압이 명자의 삶을 그냥 두지만은 않겠다는 역경의 출발선과 같다. 미시정치학을 관통하는 억압 기제에 놓인 영화는 비정상적인 충동과 질투, 살인과 범죄를 다루며 한국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드리운 트라우마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명자는 태연하게 쥐꼬리를 잡고 흔드는 과감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함께 쥐약을 설탕물과 바꿔치기해 정숙의 의도를 간파하는 얄궂은 지적 면모를 드러낸다. 평범한 부녀자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절규하지만 이내 주인집의 약점을 잡고 내면의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감정의 급격한 등락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윤여정의 연기는 순수하고 서늘한 광기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의 수줍은 몸짓은 곧 욕정과 복수의 감정을 담아 여러 이미지로 폭발한다. 과거 고향에서 동네 남성들에게 당했던 트라우마는 성적 욕망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이를 기괴한 신체의 뒤틀림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삶의 마지막 순간 욕망을 분출하는 명자는 이층 집 계단을 타고 거꾸로 추락한다. 붙잡은 동식의 걸음에 맞춰 계단 계단마다 머리를 찧는 명자의 장면은 비참하고도 강렬한 의지의 각인처럼 뇌리에 남는다. 이상한 여성들의 신체 훼손과 악다구니는 역설적으로 영화 곳곳의 비정상성에서 드러나듯 가부장이라는 거스를 수 없던 억압에 분열된 여성으로 사회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불의 여자’라는 제목이 무색할 만큼 영화는 물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고통과 욕망의 장면마다 물은 명자를 괴롭히는 갈급의 메타포로 사용된다. 공허를 채우는 물은 명자를 가득 메운다. 욕망과 고통의 액체는 곧 독약이자 생명수다. 정화와 죽음, 생명과 파멸처럼 물의 이미지가 가진 다중의 의미는 덧없는 가부장제의 반작용과 변주, 계급의 전복으로 나아가는 김기영식 사회비판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밖에도 나비와 쥐, 닭의 이미지 등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에 반복하여 인용하는 상징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물질과 생산 기계로 전락한 생명력, 무지의 충동과 위험한 유혹 같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영화는 개성 있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인간과 사회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노출한다. 윤여정 배우 못지않게 극의 감정과 서사를 지탱하는 정숙 역의 전계현 배우의 에너지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비극을 목도하는 반동 인물로서 정숙은 단지 전통적 여성상으로 신진 여성 명자와 대립하는 일차원적 인물로 남지 않는다. 홀로 양계장을 운영하는 직업여성이자 허울뿐인 가부장의 권력에 순종하는 그는 달리 보면 명자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내보일 기회를 얻는다. 정숙은 뒤틀린 가정의 보호 강박에 사로잡힌 채 사회적 평판이라는 대전제를 위해서라면 가정의 침입자를 언제라도 닭 모이로 만들 준비가 되어있다. 명자의 친구 경희 역시 전형적인 호스티스 영화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지만 유의미한 장면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숙이 모든 사실을 밝히고 비 오는 거리에 쓰러져 통곡하다 신발 한 짝을 잃는 마지막 장면은 50년 전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던한 연출을 보여준다. 정숙을 부축하는 경희의 뒷모습과 저 멀리 보이는 31빌딩은 억압과 통제의 사회라는 고고한 첨탑은 건재하며, 그 밑바닥에서 욕망을 억누른 채 뒤틀리며 살아남은 여성의 쓸쓸한 걸음만 남아 바뀌지 않는 시대의 모순을 상징한다.
김기영은 자신의 괴팍한 본성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표출하며 사회의 무의식을 짓이겨 근대화의 뒤편에 적재된 계급과 성별, 자본을 고발한다. 욕망이라는 절대자를 향한 파국의 행렬 한가운데 인물을 떨어뜨린 그의 결론은 한결같은 추락이다. 닿을 수 없는 갈증의 끝에는 거대한 31빌딩 옥상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에게 영감을 준 김기영의 영화는 윤여정이라는 대배우의 탄생을 열어젖혔고, 영화 속 그의 추락은 50여 년이 지나 지금의 자리에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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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춘기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인사이드 아웃2 속 감정 🌟 #인사이드아웃2 #픽사 #영화리뷰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 오늘은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인사이드 아웃2'에 담긴 세 가지 감정을 알려드립니다. 🎥🍿
엄청난 흥행 속도를 보여주고 있죠. 1편에 이어 2편도 공감가는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저와 함께 영화 속에 담긴 감정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픽사 #영화리뷰 #인사이드아웃2 #영화감성 #레빗구미 #감정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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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울프> 공식 예고편
과학 수사대를 이끄는 뛰어난 범의학자 울프 킨테 교수는 마음이 떠난 아내를 향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한편 육류 가공 공장에서 엔지니어가 사망하자 과학 수사대는 사고인지 타살인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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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공식 예고편
" 다 죽을거야. 희망 같은 거 갖지마요." 학교는 생존을 위한 전쟁터로, 친구는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죽기 싫다. 죽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