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1-06-24 23:54:42
미치광이 피에로 / Pierrot le fou
미치광이 피에로 / Pierrot le f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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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나름 재미있다.
역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른 고다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대책없이 행동하는 사랑에 빠진 막가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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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앤느와 사랑에 빠진 미치광이 피에로.
마리앤느가 자신을 배신하고, 이후 그녀의 존재를 본인이 없애버리니
항상 그녀의 선택에 따라 살았던 페르디낭(피에로)은 그녀의 부재가 자기자신의 부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결말에 줏대와 신념없는 자기자신, 그리고 마리앤느를 죽음에 이르게한 자기자신이 바보같다고 말하며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에 파란페인트로 자신의 얼굴을 칠하는 장면은 그런 바보같은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마리앤느가 없으니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몰라서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리는 행동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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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색감이나 배경이 너무 예뻐서 프랑스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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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마리앤느와 페르디낭(피에로)이 베트남전 뮤지컬을 미군들 앞에서 펼치는데.. 이 장면이 상당히 거슬리고 기분이 나쁘다.
마리앤느가 얼굴을 노랗게 칠하고 되지도 않는 외계어로 칭총총거리는데..
불쾌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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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위 한 스푼, 타란티노는 두 스푼 섞었는데 밋밋해
초대받으면 안 됐을 손님
급한 대로 싼 짐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지금 현재. 일제 경찰이 집에 무작정 찾아오는 것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짐 다 싸 놨습니다. 일본 경찰 졸개가 말했다. 어디론가 차경을 데려간다. 이동하는 차경. 도착한 곳은 어느 외진 호텔이다. 중앙 홀로 들어가니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는 얼굴이 몇몇 보인다. 조선 총독부에서 만난 사람들 같다. 무라야마 쥰지. 천 계장, 총독의 비서, 같은 부서 동료가 같은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중앙에 앉아있다.
머리를 맞대는 사람들. 다섯 명 모두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다.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네가 출신 성분이 다르지 않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확실히 위기에 몰렸다. 이 사람들을 호텔에 초대한 사람은 총독의 경호대장 카이토다. 일행 앞에 등장하는 카이토. 카이토는 일본어로 자기의 목적을 말한다. “여러분은 항일단체 '유령'의 구성원이자 스파이로 유력한 용의자들입니다. 여기서 스파이 ‘유령’이 누구인지 고발하는 분들을 먼저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유령이 나오기 전 까지는 못 나갑니다.” 충격적인 말에 술렁이는 호텔. 과연 유령의 정체와 목적은 무엇일까?
'박쥐' 향 첨가
영화를 보면서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은 극의 때깔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 색감 잘 뽑았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소품들을 잘 살렸다. 이 소품들이 떼거지로 있는 세트장 ‘호텔’이 감독의 의도를 잘 살린 좋은 선택지였다. 일단 영화는 1,2부로 이어져 있다. 영화의 핵심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게 1부고, 이 이후에 공간을 옮겨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2부다. 이 1,2부 구성에는 이야기를 이끄는 두 핵심 인물이 차이점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구분할 수 있다. 이 <유령>에서 1부는 후반부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임무가 있다. ‘유령’이 누구인가?라는 심리/스릴러물이 영화의 흡인력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형식이 바탕이 된 전개를 잘 소화한다. 이를 위해서는 색감으로 인물 간의 처지와 연대도 보여줘야 하며 극에서 개성까지 부여하는 영화 내적의 과제를 소화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비주얼적인 부분을 잘 뽑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무라야마/박차경, 두 인물의 비주얼이다. 설경구 배우는 연기를 그냥 잘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캐릭터를 코디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에 맞게 어울리게 잘 코디했다. 그 가죽으로 된 레더 코트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코디가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이 무라야마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캐릭터성을 좀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박차경의 인물 코디는 이하늬 배우가 비율 좋고 미녀라서 잘 살린 감이 있다. 이 인물 역시 무라야마와 유사하게 캐릭터성을 코디 안에서 품어야 한다. 극에서 주요한 사건이 있을 때 박차경의 시각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고, 과하다 싶은 클로즈업을 배우의 카리스마와 비주얼로 넘어가는 장면도 몇 군데 보인다. 사실 좀 박차경의 서사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체감상 이 캐릭터가 매번 비슷한 얼굴연기만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오케이’를 한 감독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를 아웃핏과 비주얼, 경험치로 그나마 끌고 간 이하늬 배우의 연륜이 돋보인다. 그리고 두 사람보다 더 빛난 연기가 있다 바로 박해수 배우다. 이 배우는 이번에도 목소리 톤만으로 다른 악역연기를 보여준다. 이 카이토는 극에서 서스펜스를 담당하며 호텔의 사람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 사람은 <SNL>의 콩트 연기도 잘하고 이런 역할도 잘하는 게 대단하다. 아마 이 영화의 가치 중 많은 부분이 이 배우의 연기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1월 2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마 연말 시상식에 이름을 볼 수 있을 듯?
왕가위와 타란티노 향 첨가
영화를 보며 두 명의 아티스트가 생각났다. 바로 왕가위와 쿠엔틴 타란티노다. 왕가위는 핸드헬드를 활용하고, 조명과 색감을 적절하게 쓴 영화감독이다. 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는 이 시각적인 스타일화를 잡은 덕택이 크다. 앞 문단에서도 썼듯 영화는 조명과 빛 활용을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빛을 활용한 연출은 인물 간의 연대와 갈등을 나타내는 데에 있어 나름의 역할을 한다. 특히 이 빛에 관한 연출은 유리코 역을 맡은 박소담 배우 쪽에 집중되어 있다. 또 초반부에 유령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의 행적에도 빛을 활용한 강약조절 연출이 돋보인다.
그러나 감독 자체가 이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을 좀 얕게 쓴 감이 있다. 너무 주제가 대놓고 다 드러난다/ 왕가위는 이 시각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의 기본이 되기 위해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해피 투게더>가 그렇다. 영화에서 아련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기억을 묘사하는 데 그의 연출방식은 최적화다. 반대로 이 영화는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언어가 부분 부분 희생된 감이 있다. 일단 액션이 그렇다. 영화에서 액션은 굉장히 중요하다. 2부에 들어가면 인물의 액션을 바탕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썼던 인물 간의 연대와 대립을 나타내는 것이 액션이기 때문이다. 또 영화에 나타나는 어떤 액션 신은 굉장히 처절해서 극의 다른 분위기를 묘사하기까지 한다. 이 액션 신을 보여주는 방식은 어쩐지 타란티노의 것이 생각난다. 우선 영화가 호텔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활용한 것이 <장고 : 분노의 추격자>와, 인물 간의 갈등을 <데쓰 프루프>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로 표현한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액션에서 피가 좀 많이 나오고, 칼이 찔리는 신체 훼손도 그냥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이 액션이 생동감이 있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뚝뚝 끊기는 느낌은 영화의 콤플렉스가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든다. 또 적지 않은 분들이 액션의 핍진성에 대해 의문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극에서 두 사람을 제외하고 액션 신을 보여준다. 어떤 인물들은 액션에 굉장히 능하다. 어떤 분들은 ‘주인공 버프’ 아닌가 싶기도 할 것 같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이 두 인물이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긴 하지만 좀 더 생동감을 더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외에도 타란티노와 왕가위가 좀 사족같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영화에서 어떤 소재는 액션과 유사하게 인물의 연대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 선택지가 과연 영화의 밀도를 높였는지는 의문점이 있다. 아니 포스터랑 예고랑 영화 본 편이랑 안 맞으면 어떡해? 또 2부에 <화양연화>의 빨간색 호텔 내부를 연상케 하는 지점이 있었다. 이 부분도 그냥 화려해서 쓴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후반부에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데, 공간의 특성 때문에 좀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그냥 휙 쓰고 말아
영화에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해친다고 해친다고 느낀 부분은 인물이다. 극에서 주인공 롤이 있는 인물들 중에 정말 초반부만 역할을 하고 아예 불필요한 캐릭터가 있다. 이 캐릭터는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깨며, 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코미디 하려고 넣었다기엔 안 웃기다. 아예 하드보일드하게 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인물을 아예 돌아이로 만드는 것이 어땠을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은 영화의 사실상 가장 큰 단점으로 생각이 든다. 또 영화에서 음악이 거의 쉴 틈 없이 계속 나온다. 여기서 설경구 배우가 맡은 무라야마는 대사를 속삭이며 치는 경우가 많다. 이거 설경구 배우 개인기로 넘어간 거지 다른 배우면 소리에 묻혔을 것 같다. 일본어 대사가 몇 개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런 걸까? 이 외에도 유리코 역을 맡은 박소담 배우의 역할은 뭔가 허술하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아쉽다. 영화 후반부에 처형의 이미지가 두 번 쓰인다. 첫 번째 처형은 좀 많이 과하다. 이 인물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끔찍한 걸 드러내기 위해 굉장히 잔혹한 방식을 택한 것이다. 다른 잔혹함이야 뭐 액션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 나름 괜찮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극의 개연성을 해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처형은 영화가 갑자기 급진적으로 변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연출은 너무 낡았다. 이 처형이 극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인데 이게 너무 멋이 없어서 카타르시스가 없다. 차라리 첫 번째 처형을 반복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서 사용한 이해영 감독의 영상언어는 좀 난잡하다. 분석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닌 ‘그냥 단지 영화에 집중해서’ 보면 편집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있었다.
정말 유령이 될 듯
감독의 전작 <독전>을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분이 미장센, 스타일리스트의 관점에서는 나름 호평을 받았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 솔직히 모르겠다. 상업적으로는 이 영화가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글쓴이의 관점이 세상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센 한 방이 없다는 것이다. 액션도 계속 있고 건물 불타고 와장창 깨지고 사람 죽고 이러는 와중에도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곤 이상한 액션 신뿐이다. 더 작가주의적인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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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포머 ONE | 너무 늦게 도착한 이야기의 시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이버트론 행성의 지하 광산에서 일하는 '오라이온 팩스'(크리스 헴스워스). 변신도 못 하는 하급 로봇이지만, 그는 오래전 사라진 에너존의 근원인 매트릭스를 찾아내려 한다. 사이버트론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 그 일환으로 오라이온 팩스는 둘도 없는 절친 'D-16'(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수다쟁이 로봇 'B-127'(키건 마이클 키),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타 원'(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출입이 금지된 지상에 도달한다.
그들은 과거 '쿠인테슨'과의 전쟁 이후 지상에 잠들어 있던 프라임, '알파 트라이온'을 찾아내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잠재되어 있던 변신 능력을 얻는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함께 따라오는 법. 그들은 사이버트론의 구원자로서 군림하던 '센티널 프라임'이 사실 쿠인테슨과 손잡은 변절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오라이온 팩스와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변신 능력과 힘을 살려 센티널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고질병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 10억 달러 돌파 작품을 두 편이나 배출했지만, 눈을 의심케 하는 화려한 CG만큼이나 허점투성이인 스토리텔링으로도 악명 높은 프랜차이즈였다. 특히 마이클 베이가 메가폰을 잡은 첫 5편이 유독 문제였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5편 내내 싸웠지만, 정작 그들이 충돌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의 행성, 사이버트론을 구할 에너지원과 자원이 하필이면 지구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 이에 메가트론은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려서 행성을 구하려 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은 메가트론의 욕망을 저지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메가트론에 반대한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 그가 메가트론을 저지하는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 내내 옵티머스 프라임의 행적은 다소 억지스럽다. '왜 그에게는 인간의 자유가 사이버트론보다 중요할까?' '대체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무슨 의미일까?' '인간이 그를 죽이려 하는 데도 그는 왜 인간을 도울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보니 <트랜스포머> 시리즈만의 볼거리만으로는 관객들의 관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침내 드러난 근본 원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트랜스포머 ONE>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실사영화만 본 입장에서는 17년 만에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갈등을 빚은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 둘도 없는 절친, 오라이온 팩스와 D-16는 사이버트론 사회의 최하위 계급이었다. 그들은 행성을 지탱하는 에너지원, 에너존을 채굴하는 광부 로봇으로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
<트랜스포머 ONE>은 그런 그들이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으로 거듭나고, 사이버트론의 영웅으로 알려진 센티넬 프라임의 실체를 깨달은 뒤 그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그토록 중시한 자유의 의미가 마침내 드러난다. 노예나 다름없었던 그와 동료들에게 자유는 추상적으로 선한 가치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생명력 그 자체였던 것.
더 나아가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였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센티넬 프라임 치하에서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었던 로봇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원동력도 그들이 직접 쟁취한 자유로부터 나왔으니까. 따라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보기에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살아남아야 했고, 그가 보호해 줄 이유가 충분했다. 설령 그들이 그를 배신하고 공격하더라도.
흥미롭게도 메가트론에게 자유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누구보다도 신뢰했고 경외했던 영웅, 센티넬 프라임에게 배신당한 그에게 생긴 자유의지는 복수와 동의어였다. 자기가 느낀 충격과 분노를 되돌려 줄 수 있는 힘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서 인간은 보호받을 이유가 없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표출하고 지켜낼 힘조차 없는 존재니까. 따라서 그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를 보여준 덕분에 <트랜스포머 ONE>은 시리즈 중 가장 몰입도가 뛰어나다. <엑스맨>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도 유사하지만,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더 높다. 사실 두 영화는 유사점이 적지 않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캐릭터의 관계성도, 두 절친이 적이 되고 각자의 팀을 모아 내전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모두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인상은 사뭇 다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두 주인공의 사연을 더 깊게 알 수 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반복하기에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에 반해 <트랜스포머 ONE>은 17년 간의 공백을 마침내 채워 넣었기에 더 새롭고, 흥미롭다. 과거 실사 영화에 등장했던 범블비, 재즈, 스타스크림과 쇼크웨이브 같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찾아내는 재미가 더해지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완성도만큼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미치지 못했다. 억지스러운 전개가 종종 보이기 때문. 특히 오라이온 팩스에 비해 D-16만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그가 메가트론으로 거듭나는 감정선의 변화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오라이온 팩스와 D-16가 전쟁 도중 실종된 프라임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손에 넣는 경위, 센티넬 프라임과 쿠인테슨의 관계를 알게 되는 과정 역시 다소 기능적으로 제시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단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 ONE>의 몰입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린 액션 연출이 평이하거나 작위적인 전개를 잊게 만든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 영화에 비해 연출과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트랜스포머 ONE> 이 장점을 극대화했다. 일례로 공중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를 자주 등장시켜 360도로 움직이는 현란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또 트랜스포머다운 변신 기능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트랜스포머끼리의 레이스 경기 도중에 신체 일부만 차량으로 변하거나, 전투 도중 차량과 로봇 형태를 빠르게 오가는 식이다. 이는 실사 영화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실사 작품이 변신하는 과정 그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활용했다면, 애니메이션은 변신이라는 기능 자체를 마치 하나의 무기로써 활용하는 듯하다.
액션 외의 볼거리도 인상적이다. 항상 오프닝 시퀀스 배경으로만 잠시 스쳐 지나간 사이버트론의 전경을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대표적이다. 물론 애니메이션다운 장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아무래도 <트랜스포머>만의 매력이 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연출이 가볍고 빠르다 보니 실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로봇다운 무게감은 느끼기 어렵다.
너무 늦게 도착한 근본
종합하면 <트랜스포머 ONE>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 <트랜스포머> 1편 이후로 재미와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부트 이후로 흥행력도 관심도 예전 같지 않은 현 상황을 타개할 작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실사 작품에 비해 애니메이션 작품의 소구력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트랜스포머 ONE>은 너무 늦게 도착한 듯 보인다. 탄탄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의 조합은 시리즈에 새 숨결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지만, 실사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아서 파급력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근본은 마침내 되찾았지만, 조금만 일찍 도착하거나 실사 영화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되기에는 이미 한계가 명확한 시리즈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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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인간다움을 만드는가?
* 본 포스팅은 많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신 후에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른들의 동화라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운 우화였다. 회화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물속에서 끌어안은 서로 다른 종의 연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 음악 선정도 적절하다. 아름답다.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에 대해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특별하다. 기존의 작품들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중심'의 사고 바깥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작품 속의 '어인(수륙양용(?)이니 양서인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의상 어인이라고 부르겠음.)'은 우리와 다르다. 이질적이다. 그에게는 아가미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고, 두 눈은 물고기의 그것처럼 크고 둥그며, 사람과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의 문화를 즐길 줄 안다. 엘레이자와 교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필자는 그랬다. 영화 초반까지만해도 끊임없이 한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의 사랑을 응원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우리는 지금껏 많은 비인간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서사를 경험해 왔지만 돌이켜보면 이토록 이질적인, 그러니까, 인간의 외모, 인간의 유머, 인간의 문화와 동떨어진 존재와의 결합은 그다지 빈번하게 목격하지 못한 것 같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도 결국은 언어를 구사하고 옷을 입는 존재였고(사실 원래부터 인간이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슈렉은 인간들이 혐오하는 오거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사정 역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인간인 관객이 보기에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도록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커녕 기괴한 꺽꺽거리는 소리만 내는 이 생물은 인간과 너무나 다르다. 때론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친구(?)의 애완 고양이를 잡아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과연 이 존재를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보아도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엘레이자의 절규에 찬 대사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훌륭한 해답을 제시한다.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트릭랜드는 인간을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 어인을 인간과 구별되는 야만적인 짐승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구분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서열화 혹은 자기우열화는 우리 인간 내부에서도 다시금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흑인보다는 백인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성소수자보다는 성다수자가 우월하고, 더 '신의 모습에 가까우며' 따라서 더 '완벽한 존재'이다. 그에게 '인간답다'는 것은 요약하자면, '서구 가부장 사회의 백인이자 헤테로 섹슈얼인 남성답다'라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서열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우열을 가린다. 그 악독한 스트릭랜드도 결국 호이트 장군의 아래에 있다. 호이트 장군의 위에 또 누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끝 없이 자신의 아래에 놓고, 위로는 끊임없이 '더 인간다운', '더 완전한', '더 그럴싸한' 삶을 갈구하는 그들(스트릭랜드와 호이트 장군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의 삶은 강박적이고 피로하며, 속에서부터 썩어들어있다. 결국 썩어버린 스트릭랜드의 두 손가락처럼.
반면 엘레이자와 그 친구들은 앞선 인물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인간'(혹은 인간에 비견되는 지적 생명체)을 바라본다. 엘레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자일스는 늙은 게이이며, 젤다는 흑인 여성이며,드미트리는 냉전시대의 러시아인 스파이이자 과학자다. 이들은 모두 냉전시대 미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약자로, 스트릭랜드의 정의에 따르자면 열등하거나 배척되어야 할 대상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불완전한 존재'로 정의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성 혹은 인간애(humanity)'라고 부를 만한 어떤 관념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엘레이자와 자일스의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을 보라. 그리고 엘레이자와 젤다의 끈끈한 유대감과 의리를, 어인을 살리고자 했던 드미트리의 노력을 보라. 이들은 불합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동시에, 선뜻 타인을 위해 손을 내밀고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이해하는' 어인이 이들에게 하나의 아름답고 경외로운 지적 생명체이자,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어인이 처한 상황은 그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엘레이자와 어인의 결합은 이들에게 그다지 꺼림칙한 일이 아니다. 두 존재는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육체적인 결합까지 이루어내지만, 그것은 두 지적 생명체가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엘레이자와 어인 본인은 물론, 드미트리도, 젤다도, 자일스도 이들의 사랑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그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비로소 인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이 작품은 어인과 여인의 사랑을 다룬 우화를 통해 인간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인물들의 선악구도가 매우 명확한 편인데, 극 중 스트릭랜드는 지독하게도 악랄하면서도 현실에 최소한 하나쯤은 있음직한 악역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화장실에서 손 안 씻고 나오는 데다 부하 여직원에게 추악한 시선을 던지는 남자, 다른 인종, 성별, 성소수자 등을 열등하게 여기는 편협한 우월주의자, 멀쩡하게 평범한 가정에서 잘 살고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허영덩어리... 작품 속에서는 소련과 미국이 살벌하게 경쟁하는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글쎄,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이런 사람은 꼭 있으니까.
4. 어인이 자일스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자일스가 충격에 휩싸여 어인을 비난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일스의 태도는 이 얼마나 관용적이었던가. '그는 야생이니 고양이를 먹은 건 어쩔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자일스의 모습은 작품이 추구하는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는 엘레이자와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우월성을 가지지 않고 어인을 대한다. 그에게 어인은 좀 다른 문화를 가진 대상일 뿐이다. 그는 어인을 용서했고, 어인은 그에게 사죄한다. 진정한, 성숙한 문화와 문화 간의 교류다.
이 장면은 언젠가 시끄러웠던 한 네덜란드 선수의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에 관한 발언과 비교된다. 자일스에 비하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다름을 '틀림'으로 섣불리 단정짓고 비난했던 그 선수의 태도는 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한가.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 문화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데에 동의한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비윤리적인 도축과 유통 과정이지, 문화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5. 엘레이자는 정말 사람이었을까? 강에서 발견되었다던 그녀의 목에 있던 아가미같은 흉터는 극의 후반부에서 정말 아가미로 변한다. 그녀의 조상 중에는 어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어인의 전지적인(??) 능력으로 바다 생활에 적합하게 변하게 된 걸까? 오픈 엔딩이니 상상의 여지가 있어 좋다. 확실한 것은, 그 둘이 행복했으리라는 사실이다. 그 둘은 더 이상은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6.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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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받는 축복
너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언젠가 헤어지자는 연인에게서 끝인사로 건네받은 말이다. 그런데 마침표가 찍힌 기억이 어찌 좋을수만 있으랴. 이 기억들은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나의 미숙했던 과거를 꾸짖으며 떠오른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지. 이놈의 기억은 꼭 잊고 싶은 장면만 선명하다. 기억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괴롭게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그만큼 가르친다. 삶을 단순하게 '탄생에서 죽음까지'라는 직선운동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기억함으로써 반성하고 그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성장한다.김희정의 영화 <프랑스여자>는 '과거의 기억'을 쥐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영화다.
영화는 프랑스의 한 술집에서 미라(김호정)가 프랑스인 남편 쥘(알렉산드르 구안세)에게 불륜 사실을 통보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무대는 한국으로 바뀌고, 미라는 함께 대학을 다니던 영화감독 영은(김지영)과 연극연출가 성우(김영민)와 재회한다. 그런데 그는 8년 만에만난 대학 동창들의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나 술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데,놀랍게도 술집에는 조금 전까지 함께한 영은과 성우 대신 20년 전 대학생의 얼굴을 한 성우와 영은, 그리고 성우의 전 여자 친구이자 2년전 자살한 후배 해란(류아벨)이 있다. 미라는 여전히 중년 여성의 몸 그대로지만 놀란 기색도 없이 자연스레 그들과 섞인다. 그리곤 성우와의 키스를 해란에게 들키는 장면을 끝으로 꿈에서 깨어난다. 이 시퀀스를 시작으로 미라의 '대학 시절', '프랑스 시절', '현재의 한국'의세 이야기가 어지럽게 섞이며 전개되는데, 영화가 절정에 다가설수록 세 층위의 이야기는 점점 더 뒤죽박죽 뒤섞여 어느 순간에는 경계조차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시간과 공간, 현실과 기억과 꿈이 위태롭게 연결되는 장면들에서 유일한 알리바이는 미라의 신체다. 그런데 그는 세 가지 시공간 모두 조금씩 비껴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마치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외국인이었던 그는, 한국에서는왠지 프랑스가 더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다. 과거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 영은과 상우가 늘어놓는 추억에도 끼지 못하고, 배우의 꿈을 포기한 자신과는 다르게 꿈을 직업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대화에서도 미라는 이방인이다. 이 지점들에서 그는 조용히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는데, 이 행위는 미라가 유일하게 자신의 육체가 현재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러서는호텔 방의 거울에서도 쥘의 모습이 나타나고 호텔에 찾아온 상우가 쥘로 겹치기도 하는 등, 거울 속에도 환상이 침범하면서 현실, 기억, 과거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게 된다.
<프랑스여자>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온다. 첫 장면처럼 쥘에게 불륜 고백을 들은 미라는 다시 거울 앞에 서는데, 이때 영은에게서 온 문자를 통해 첫 장면과 다시 돌아온 첫 장면 사이의 과정이 사실은 미라의 망상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곧이어 미라가 있던 술집에 테러가 발생하고, 무너진 건물에 깔린 미라는 죽음을 앞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영화 내내 미라를 괴롭히던 해란의 망령은 죽어가는미라 앞에 나타나 "언니 일어나. 사람들이 왔어."라는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미라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눈을 뜬다. 어떻게 미라는 죽음의 순간에 해란의 망령과 화해할 수 있었을까. 세 층위의 이야기는 영화 내부에서도 언급되는 프랑수와 트리포의 영화 <쥴 앤 짐>처럼 각각삼각관계를 이룬다(미라-성우-해란, 미라-성우-성우의 부인, 쥘의 내연녀이자 미라의 후배-쥘-미라). 주목할 점은 미라의 자리바꿈이다. 해란이 성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라는 쥘에게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의심하고, 어느 순간 미라의 등에 생긴 흉터는 자살하기 전 자해한 경험이 있는 해란의 육체와 겹쳐진다. 마지막 순간, 죽음까지 눈앞에 두게 된 미라는, 해란이 죽어가던 과정을 그의 위치에서 체화하면서 죄책감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던 해란의 망령과 화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해란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온전한 화해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괴로워하는 미라와 영화의 혼란스러운 인과와는 별개로, 이 영화에는 기억과 삶의 환대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영은이 미라에게 '바나나 우유'를 건네는 순간들이다. 영은은 감정을 잘드러내지 않는 미라에게 거듭 말을 건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모국어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나의 조국은 모국어"라는 말처럼 무대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뒤 영은과 미라가 나누는 일상적인 한국어 대화는, 외국어가 주는 경직을 무화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모국어로 이뤄지는 대부분의 대화는 기억의 공유다. 누군가의 기억과 내 기억이 연결되는 고리. 그 얕은 이음새에서 우리는 그 순간 우리가 거기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라가 즐겨 마시던 바나나 우유를 잊지 않고 선물하는 영은의 섬세함은, 나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당신에게도 남아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기억받는 축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헤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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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 루이스도 불완전한 사람이었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도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사람이었어!’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두 인물이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설전을 통해 밝혀지는 이들의 민낮에 집중한다. 지난한 삶과 사회적 편견,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앞에 너무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두 지성의 모습은 낯설음과 측은함을 오고가며 인간애를 느끼게 한다.
흡사 전쟁을 앞둔 이의 모습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3일, C. S. 루이스(매튜 구드)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프로이트(앤서니 홉킨스)의 초대로 런던에 위치한 그의 집을 방문한다. 도착 전 거리에서 만난 프로이트 딸 안나(리브 리사 프라이스)가 건투까지 빌 정도이니 세기의 대결이나 마찬가지. 무신론자인 프로이트와 유신론자인 C.S. 루이스는 만나자 마자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펼친다. 전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거리는 수면 아래에 있던 각자의 죽음이란 공포를 내보이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꿈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실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둘은 만난 적이 없다. 원작인 연극 <라스트 세션>을 집필한 희곡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은 M. 니콜라이의 저서인 ‘루이스 vs. 프로이트(THE QUESTION OF GOD)’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의 특성상 극 중 설전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내며 토론의 장보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C.S. 루이스를, C.S. 루이스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라보고 탐구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프로이트는 C.S. 루이스를 환자처럼 대한다. C.S. 루이스가 앉은 의자가 환자들이 앉는 의자라고 하는 등 보기보다 복잡한 삶과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된 이유는 캐묻는다.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얻은 공포증은 물론, 전장에서 죽은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유, 그리고 신을 믿고 성서를 연구하는 이유 등 무신론자인 프로이트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를 만난다.
반대로 C.S. 루이스는 기독교 변증론자로서 인간의 본성과 신앙을 함께 연구하듯 ‘꿈의 해석’을 내놓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탐구한다. 과거 자신과 남동생을 돌봐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존재, 모든 인간은 동성애적 관점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말하지만,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딸 안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신은 믿지 않지만, 온갖 신을 모시는 아이러니한 태도 등 학자의 관점에서 그의 이론의 시작점과 실제 삶의 오류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감독은 이런 두 인물의 극 중 위치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의 어둡고 다른 면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지만, 그들 또한 우리처럼 오류를 범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들의 민낯을 더 견고하게 다지는 건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죽음의 공포다. 신을 믿던 안 믿던 간에 죽음의 공포는 두 인물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프로이트는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고, 전쟁의 공포와 구강암의 고통은 날로 심각해진다. C.S. 루이스 또한 참전 당시 얻었던 공포와 전우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 그에게 죽음은 먼 일이 아니다. 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둘은 인간에게 고통과 악은 왜 존재하는지, 신이 있다면 전쟁 등 참혹한 세상을 방관하는지, 죄는 무엇이고, 사랑은 존재하는지 등 날이 선 대화를 통해 우리가 모르는 삶의 진리를 파헤친다.
서로 극단에 위치한 이들이 만나 설전을 벌이는 이야기는 안소니 홉킨스, 조나단 프라이스 주연의 <두 교황>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이 영화 또한 신을 섬기는 이들임에도 실수를 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또한 <두 교황>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다는 점 등) 생각보다 유쾌한 유머가 적다.
원작인 연극에서도 유머는 첨예한 대립과 논리 정연한 토론에 무거워진 공기를 환기시키는 작용으로서 큰 역할을 했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약하다. 두 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많지 않다면 이들이 나눈 내용 자체가 딱딱하게만 느껴지는데, 실없는 농담과 유머가 적어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 듯한 이들의 설전은 단순한 영상 구성에 의해 긴장감이 덜하다. 플래시백을 통해 두 인물의 심리와 전사를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토론이 고조되어 진검승부가 이뤄지는 찰나에 등장하기 때문에 몰입감을 저해한다.
그럼에도 이 110분의 토론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건 두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말이 필요 없다. 극의 심도를 조율하는 듯한 그는 연기 텐션을 통해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특히 3주 후 운명을 달리하는 가운데에서도 지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프로이트의 열정적인 모습, 딸 안나의 성정체성에 흔들리는 그의 불안한 눈빛은 빛난다. 매튜 구드의 이에 지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기억에 함몰되는 가운데에서도 신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심지 굳은 C.S. 루이스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우린 오류를 오가며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극중 프로이트가 C.S. 루이스에게 남긴 말이다. 이 세상 완전한 것은 없다는 것처럼, 극 중에서 만난 두 지성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 온전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 아래 이들이 행한 마지막 행동(클래식 듣기, 컴컴한 밤 지켜보는 시선)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사진제공: ㈜트리플픽쳐스
평점: 2.5 / 5.0
한줄평: 첨예한 구강 액션이 빠진 심심한 110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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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최신개봉영화
위드코로나 시대의
영화관의 부활을 시작하며
11월 2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11월 2주 개봉영화 5편!
강릉 Tomb of the River , 2021
믿고 보는 두 배우의 연기 열연
영화 "강릉"은 강릉 최대의 리조트 건설을 둘러싼 두 조직 간의 대립을 그리는 작품으로
개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던 도시 강릉이 올림픽을 계기로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들었던 양가적 감정을 영화에 담았는데요
정통 범죄 액션 누아르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영화의 탄생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6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장혁과 유오성 두 남자가 선보일 강렬한 카리스마는
범죄 액션 누아르 장르의 매력을 듬뿍 느끼고자 하는 관객들의 기대치를 100% 충족시켜줄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신세계', '범죄도시' 흥행 계보 잇는 범죄 액션 누아르!
첫번째 추천영화 "강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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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움직이지않는다 太陽は動かない , The Sun Stands Still , 2020
후지와라 타츠야, 타케우치 료마, 변요한, 한효주
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 세계에서 극비 정보들을 조사하는 AN통신 요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논스톱 스파이 액션 영화입니다.
역대급 글로벌 로케이션 촬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타케우치 료마, 변요한, 한효주 등이 한·일 스타들이 함께 출연합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의 작품을 포함한 타카노 시리즈 3부작을 원작으로,
6부작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제작된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보고하지 않으면 심장 속의 폭탄이 터지는 기발한 소재를 바탕으로
일본, 중국, 불가리아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분노', '악인' 등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첩보 소설 타카노 시리즈!
두번째 추천영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입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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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최동원 1984 CHOI Dong-won , 2020
무쇠팔, 부산의 심장, 최고의 투수, 등번호 11번, 불꽃 투혼, 금테 안경
영화 "1984 최동원"은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
1984년 가을 그야말로 기적 같은 우승을 이끈 롯데 자이언츠 무쇠팔 故 최동원의 투혼을 담은 최초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최동원은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 한국 스포츠사를 빛낸 인물이죠.
‘가을의 기적’이라 불리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시리즈 7차전 중 5경기에 등판,
만화 같은 4승 1패를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가 故 최동원의 10주기로
그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이 개봉해 그 의미가 더 깊습니다.
1984년 가을의 전설로 남은 최동원의 기적 같은 4승 1패의 활약상!
세번째 추천영화 "1984 최동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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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오더 Nuevo orden , New Order , 2020
<기생충>의 익스트림 버전! 올해 가장 강렬한 문제작!
영화 "뉴 오더"는 202X, 머지않은 미래,
마리안의 호화로운 결혼식을 앞두고 멕시코 사회의 질서가 완전히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담은 디스토피아 스릴러입니다.
칸영화제 3관왕에 빛나는 거장 미셸 프랑코 감독의 신작이자
도발적이면서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뉴 오더"의 놀라운 반전과 결말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간 전쟁에서 결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한층 더 과감하게 전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부를 꿰뚫어 본 통찰력 있는 문제 제기와 날카로운 연출로 빚어낸 마스터피스!
네번째 추천영화 "뉴 오더" 입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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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스패밀리2 The Addams Family 2 , 2021
<슈렉><마다가스카> 제작진의 NEW 시리즈
1930년 대, 미국 만화가 찰스 아담스가 ‘뉴요커’에 그린 신문 만화로 시작한 '아담스 패밀리'는
이후 ABC 방송국에서 코미디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1991년에는 동명의 작품으로 영화화되었죠.
그리고 2019년 '슈렉', '마다가스카' 제작진의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제작되며
전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거대해진 스케일로 아담스 패밀리2가 개봉을 하는데요
사춘기에 접어든 ‘웬즈데이(클로이 모레츠)’와 ‘퍽슬리(제이본 워너 월튼)’,
권태로운 가족 분위기에 위기를 느낀 아빠 ‘고메즈(오스카 아이삭)’와 엄마 ‘모티시아(샤를리즈 테론)’,
트러블 메이커 삼촌 ‘페스터(닉 크롤)’까지 여전히 독보적인 매력으로 중무장한 아담스 패밀리의 특별한 가족여행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웬즈데이’를 시작으로 가족 간의 보편적인 여러 문제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아담스 패밀리2" 입니다.
예고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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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니싱 : 미제사건> 티저 예고편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전대미문의 사건?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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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토리> 메인 예고편
응원력 만렙 (ง •̀_•́)ง 보기만 해도 에너지 충전되는 [빅토리]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