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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2021-02-11 00:00:00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The Band's Visit/2007/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낯 선 하룻밤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낯 선 하룻밤>
 

이스라엘 공항에 내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경찰관현악단"은 그들을 목적지로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버스가 보이지 않자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다. 

 

밴드의 권위적인 리더 투픽은 악단원 중 가장 젊은 할레드에게 버스표를 사오라고 지시하지만 영어가  서툰 할레드는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머뭇거린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격한 경찰 분위기를 풍기는 투픽은 한번 내뱉은 말을 거둬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할레드에게 '경찰을 그만두고 싶냐'며 윽박지른다.

 

버스표를 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할레드가 영어로 지명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악단은 그만 엉뚱한 마을에 이르고 만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시골 중의 시골.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황량한 들판 뿐이었다.

 

마을 풍경과 꽤나 잘 어울리는 낡은 자동차를 요란하게 몰며 지나가던 청년들은 악단의 제복을 보고 '장군'이라고 부르며 놀리고 칠 벗겨진 간판의 초라한 가게 겸 식당에 앉은 주민 세 명은 외계인 보듯 이들을 빤히 쳐다보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없어 배가 고팠던 단원들은 무엇이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푸념한다. 투픽은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죽이고 식당의 여주인 디나에게 이스라엘 화폐를 가진 것이 없다며 먹을 것을 좀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 디나의 친절 덕분에 일행은 다행히 시장기를 면한다. 악단이 내일 공연할 장소는 '파타 티크바'라는 곳의 '아랍문화센터'였는데 그들이 내리고 떠나보낸 버스는 막차였다.

 

악단의 딱한 사정이 마음에 걸린 디나는 그녀의 집과 동네 청년 두 명의 집에 단원들을 분산시켜 하룻밤 머물게 해준다. 그렇게 이집트인들과 이 동네의 이스라엘인들은 낯 선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가간의 관계가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세 가정으로 흩어진 두 나라의 사람들은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밤을 보낸다.

 

디나는 투픽과 할레드를 집으로 데려가 어떻게든 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변변한 것 없이 쇠퇴한 마을에서 그녀는 지루하고 외로운 날들을 견디고 있었던 것. 그녀는 투픽에게 마을구경을 시켜주겠다며 한껏 차려입고 나서고 할레드는 이웃 청년 파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블데이트에 끼어든다. 시몬 등 다른 단원들은 아브럼의 식탁에서 서먹서먹한 교제를 나눈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숙맥 파피의 데이트를 돕는 할레드, 썰렁한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투픽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나, 자신이 작곡한 짧은 미완성 곡을 연주하는 시몬과 큰 기대를 품고 귀를 기울이는 아브럼 가족의 표정 등은 예기치 못했던 두 나라 사람들의 난처한 상황을 지우고 이제 막 사귀기를 시작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분위기를 그려낸다.

 

다음날 아침, 이집트대사관에서 보낸 버스를 타고 이들은 여행이 예정되로 진행되었더라면 결코 들리지 않았을 작은 마을을 떠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여 관객들 앞에서 아름다운 공연을 펼친다.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은 타국에서 실수로 난처한 경험을 하게 된 이집트 경찰악단의 어색한 하룻밤을 그려낸 로드무비라고 하겠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게 마련. 그러나 '낯설다'는 말은 어쩌면 '특별하다'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열 명 남짓한 이스라엘 어느 작은 마을의 주민들과 그 비슷한 수의 이집트 경찰관현악단이 경험한 특별한 하룻밤을 통해 영화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뚱하고 낯선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좌절하거나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러지 않았다. 디나와 그녀의 이웃들은 어려움을 당한 이방인들에게 형편이 허락하는대로 친절을 베풀었고 이방인들은 감사함으로 그들의 친절을 받았으며 스쳐가는 만남에 진심을 담았다. 

 

하룻밤의 만남 가운데 드러나는 미숙한 청년기의 묘사가 웃음을 짓게 하고 서툰 영어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는 부부의 갈등, 못다 이룬 꿈을 향한 성실한 노력, 옳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자책 등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고민을 지니며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한여름 무더위에 비유한다면 한줄기 바람처럼 은근한 위로를 선사하는 영화이다.(©2020.최수형)

작성자 . breeze

출처 . blog.naver.com/breezein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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