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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미2021-07-01 14:35:03

웬디는 왜 네버랜드를 떠났을까, 영화 <웬디>

피터팬이 아닌 웬디를 통해 다시 보는 네버랜드, 그리고 나이듦에 대하여.

웬디 (Wendy, 2020)
제작 : 미국, 드라마·판타지 │ 감독 : 벤 자이틀린
출연 : 데빈 프랑스(웬디), 야슈아 막(피터) 외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1분

 

 

‘피터팬의 눈부신 재창조’ - New York Post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피터팬’ 진짜 주인공 ‘웬디’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모험

 

네버랜드. 그곳은 영원히 늙지 않는 섬이다. 어릴 적 디즈니 만화영화로 본 <피터팬>은 피터팬과 친구들이 네버랜드에 가서 경험하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 환상의 섬에 도착하고, 공동의 적 후크를 물리치고, 팅커벨은 웬디를 질투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았던 그때의 <피터팬>에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벤 자이틀린 감독의 <웬디>는 조금 더 어른들을 위한 버전의 피터팬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창가로 날라든 피터팬을 따라 소녀 웬디와 쌍둥이 형제가 네버랜드에 간다는 것까지는 같은 설정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포커스는 아이들이 얼마나 그곳에서 재미난 경험을 하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지루한 집을 떠나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는 아름다운 섬에 온 아이들은 처음에는 신이 나서 섬을 휘젓고 다닌다. 하지만 영원히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웬디는 어쩐지 두고 온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네버랜드 섬 밖의 것들 말이다.

 

섬 밖에는 사라진 아이들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고, 걱정과 근심을 동반하지만 자신의 시간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나이 듦’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대장 피터팬은 끝까지 늙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만 외친다. 처음엔 함께 아름다운 섬을 활보하던 웬디는, 시종일관 늙는 것을 거부하는 피터를 보면서 점점 대항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제목이 ‘웬디’이고, 그러므로 웬디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은, 기존의 피터팬과 이 영화가 다른 정수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디즈니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웬디는 수동적인 조연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거침없고 주체적이며, 피터가 꿰뚫어 볼 수 없는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웬디였다.

 

“늙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웬디가 피터에게 건넨 이 한 마디가 이 영화를 대변하는 가장 큰 울림이 아니었을까.

 

 

 

 

동심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딱딱해지지 않고 아이처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보다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잃지 말아야 할 좋은 자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채워 마땅한 것들이 과연 그런 순수함과 투명함 뿐일까.

 

웬디는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있는 섬으로부터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대학을 가고, 아이를 낳고, 결국엔 늙어가면서 현실의 어른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 삶에는 피터팬은 끝내 알지 못했던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딪치고 울고 실패하고 보다 냉정해지면서, 결국엔 세상을 통찰하게 되는 힘 말이다. 그 깨달음과 통찰을 통해서 영혼의 반쪽을 완벽히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의 삶이라는 걸, 웬디는 알았던 것이다.

 

어른의 삶에 대한 풍부한 통찰로 마무리되던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엔딩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어른이 된 웬디의 모습은, 어쩐지 나의 바람과는 달리 ‘타성에 젖은’ 어른의 모습이다. 찌들고 피곤한 어른의 삶. 동심도 즐거움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어른의 삶. 그런 웬디의 앞에 어느 날 피터가 다시 찾아온다.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피터는, 웬디의 아이들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떠나면서 웬디에게 이렇게 외친다.

 

“웬디는 (같이 가기엔) 너무 늙었어!”

 

그 엔딩에서 다시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과연 어른이 되고 늙는다는 것은, 값진 선물인 동시에 끊임없이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일러주는 것만 같아서.

 

 

 

 

 

이 영화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함과 어른의 고리타분함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조율을 이루며 살아야 할지를 너무도 강력하게 시사한다. 유연함과 투명함을 잃지 않되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나이 들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을 가다듬고 정비해야만 한다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가. 희망보단 절망을 학습하고 있진 않은가. 가능성보다는 불확실함에 초점을 두는 어른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활기차게 남은 내 삶을 바라보는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내 안의 웬디 그리고 피터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이 영화를 보고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작성자 . 우두미

출처 . https://brunch.co.kr/@deumji/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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