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7-20 13:53:13
9·11테러 소재 웰메이드 감동 실화 <워스>, 스크린 필람 포인트 BEST 4 공개!
전 세계 최초로 국내 관객이 먼저 만나는 영화 <워스>
영화 <워스> 메인 포스터
올여름 단 하나의 웰메이드 감동 실화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워스>는 9·11 테러 피해자 보상 기금 운영을 맡게 된 변호사 ‘켄’(마이클 키튼)이 주어진 시간 안에 피해자들을 설득해 보상 기금 프로젝트를 완수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최초의 9·11테러 보상 기금 실화 소재 영화부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까지, 7월 21일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관객들이 극장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필람 포인트 BEST 4를 소개합니다.
1. 전 세계 최초 극장 개봉!
2021년 최고의 화제작을 한국 관객이 가장 먼저 만난다!
영화 <워스>는 2021년 7월 2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적인 사건인 9∙11 테러가 발생한지 20주기인 2021년에 공개되어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데요. 언론에서는 “비극적인 사건 뒤에 남겨져 여전히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전한다”(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이견의 여지 없는 만듦새. 정의와 공정이란 무언인지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 등의 극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전 세계 어느 곳보다 한국 관객들이 가장 먼저 <워스>의 감동을 느낄 예정입니다.
2. 비극 이후 남겨진 이들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
9·11 테러 보상 기금 실화를 소재로 하는 최초의 영화!
영화 <워스>는 9∙11 테러 보상 기금 실화를 소재로 하는 최초의 영화입니다. 이제껏 수많은 9∙11 테러 소재 영화들이 사건 자체와 가해자인 테러리스트에 집중한 것과 달리 예상치 못한 비극 뒤 남겨진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실존 인물이자 보상 기금 특별운영위원장을 맡은 ‘케네스 파인버그’를 모델로 보상 기금 프로젝트가 시작된 때부터 약 25개월간의 여정을 담아냈습니다. 이처럼 남겨진 이들의 사연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다룬 실화 드라마는 보는 이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전할 예정입니다.
3.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스포트라이트> 제작진 X 명품 배우 마이클 키튼!
스탠리 투치, 테이트 도노반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열연
영화 <워스>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이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마이클 키튼과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담아내는 제작진이 2021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웰메이드 감동 실화로 돌아온 것인데요. 여기에 협상 전문 변호사 ‘켄’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을 필두로 피해자의 남편으로 분한 스탠리 투치, VIP 전담 변호사 테이트 도노반 등이 뜨거운 열연을 펼쳐 눈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4. 고유하고 존엄한 모두의 삶!
오바마 부부가 선택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울림 있는 메시지!
영화 <워스>는 버락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 부부가 2018년 설립한 콘텐츠 제작사 하이어그라운드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에 참여한 바 있는 뜨거운 화제작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원칙과 수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던 변호사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진심을 다한 협상에 임하기까지의 과정이 감동을 전하는데요. 또한 ‘모두의 삶은 고유하고 존엄하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전해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가져다줄 예정입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와 희망이 더욱 더 간절해지는 요즘,
영화 <워스>와 함께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Jad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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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아톤리뷰/소개]초원이는 커서 고니가 됩니다. 조승우의 지리는 연기력!
#말아톤#말아톤리뷰#영화말아톤
이 영상은 예고편이 아닌 본편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모든 저작권 및 수익은 영화사,제작사,배우 등 원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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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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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하야오 #그대들어떻게살것인가 #지브리애니메이션 #지브리스튜디오 #지브리 #일본반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이자 은퇴작(아마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본현지에 개봉했습니다.
일본 평점 반응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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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새로운 팀' 예고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함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것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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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트래커> 예고편
한계를 넘어선 액션이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 갱단의 납치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하칸슨. 10년 후 이탈리아 형사로부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곧장 이탈리아로 떠난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했던 형사는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같은 시기에 그 도시의 형사로 새로 발령받은 안토니오는 이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하칸슨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갱단으로 침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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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일어날 일 따위는없다
이 영화를 보긴했는데,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던진 떡밥에 대한 글은 충분히 많으니까, 이 글은 그저 어려운 영화 좀 봤다고 누군가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을 글로 옮겨온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한 남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고, 임무 수행 중 밀고를 한 사람에 의해 임무가 발각되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모든 고문들을 견뎌낸 남주는 테넷 작전에 합류하게 되고, 그 때,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닐을 소개받는다. 두 사람은 미래를 보는 기계를 가졌다는 한 남자, 사토르의 행방을 찾고, 그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멸망하게 하려는 계획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과연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악당 사토르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을까?
영웅과 조력자 포맷
이 영화는 세상을 지켜내는 영웅 남주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닐의 버디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 캐릭터의 차이점이 있다면, 남주는 임무수행에 있어서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본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본인의 행동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 불가능해보여도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반해, 닐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해박(물리학 박사랬나)하기 때문에 현재에 행한 일들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해 현재에 어떤 결론을 도달하게 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둘의 관계는 흡사 유비와 제갈공량 혹은 아이언맨과 자비스 정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 포맷에서 조력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선택을 리더에게 제시하지만 리더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 위험 가능성이 높은 선택들을 하고, 결론적으로 그 선택들을 성공시켰을 때, 비로소 그 리더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남주는 현재에서 가장 불리했던 상황(인버전에 대한 지식 전무, 사토르에 대한 정보 전무, 사토르의 계획과 그를 잡으려고 하는 단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지식 전무)에서 시작했지만 닐과 그 외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위험한 선택들을 했음에도 그 선택들을 모두 성공시켜 다가올 미래에 테넷 작전의 주도자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미래의 남주가 과거의 남주에게 닐을 보내서 테넷 작전을 성공시키는 데에 그를 잘 인도하도록 명령한 것을 암시하는 대사가 마지막에 나온다.
"내 우정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네의 우정은 이제 시작이야"
이 대사는 닐이 주인공과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주인공에 의해 인버전되어 과거로 온. 인물이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는 대사였다. 닐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토르 일당과 최후의 싸움을 하던 그 상황에 주인공의 눈을 사로잡은 가방고리는 그 상황 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닐의 가방 고리임이 밝혀지며, 닐이 작전 도중 인버전해서 주인공을 도왔고, 끝까지 주인공을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도해서 최종적인 작전 성공의 키를 쥐고 있던 캐릭터였음을 증명해냈다.
"무지가 우리의 무기야."라고 믿었던 그의 대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닐의 대사 중에
"또다른 과거를 구하러 가야지."는 닐에게 있어서 이 여정의 끝이 주인공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닐과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인도에서의 첫 만남 씬이 되겠구나 예상해볼 수 있게 한다.
테넷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포맷의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일본 영화 중에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장르가 로맨스인만큼 테넷과는 연관없는 영화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도 테넷의 관점에서 보면, 인버전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 가는 사람일 때, 여주인공은 미래에서 과거로 향해가는 시점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교하자면, 테넷에서 닐의 역할이 일본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같고, 일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테넷 속 주인공과 같은 시간 차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일본 영화에서는 이런 시간 차원의 뒤바뀜이 애절한 사랑의 기폭제가 되지만 테넷에서는 악당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일본 영화에서 인물들의 시간 차원이 뒤바뀌는 설정은 일반적인 러브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만 비틀었는데도 주인공들 사이의 사랑의 애절함의 크기가 커지는 효과를 보여주고, 테넷의 경우는 일반적인 어벤져스 영화같이 영웅이 악당이 해치우는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이 자유자재로 뒤바뀌게 만드는 설정은 영화의 결말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버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인물들도 각기 다른 차원에 시간에 살고 있고, 그 시간 차원을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뇌피셜)
이미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이야.
영화 속 주인공은 인버전하는 능력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캣을 이용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사토르의 계략에 당한다. 그 결과, 캣은 중상을 입고, 작전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그러면서 닐과 했던 대화 중에서 닐은 "이미 일어난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며,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주인공은 이미 일어날 일도 과거를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서 충분히 바뀔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닐의 주장은 시간을 뒤바꿔서 과거-미래 순이 아니라 미래-과거 순으로 시간이 바뀌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주인공은 인버전되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뀔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중에서 주인공의 말이 이긴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 영화는 결국 테넷 작전을 주도한 최종보스는 주인공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끊임없이 그에게 반론을 제시하며, 그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한 닐의 행동이 있었지만 아마 닐은 그에게 위험하다고 말려도 자신의 뜻대로 강행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해야 테넷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 테니, 어차피 발생할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결국 주인공의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더 다지고, 그게 과거를 바꾸는 것에 박차를 가하도록 묘하게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인공이 테넷 작전의 주도자였다면, 닐은 이 테넷 작전이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중도를 지키며, 성공을 향해 항로를 조종하는 항해사, 설계자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결국 이 영화가 어려운 과학적 개념들까지 동원해 가며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마도 발생할 일은 발생할 거다라는 운명론 같은 건 믿지 말고, 당신이 지금 현재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의 개척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인버전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충실히 살아놔야 한다는 미션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가진 정답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들 하루하루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적당히 행복하게, 그리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이 쌓여 마일리지가 되면 그 마일리지들이 쌓여 다른 내일을 만들 거라고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배워보는 것도 내일을 변화시키는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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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되는 법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우리, 둘>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꿈꾼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설령 그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당신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당신의 이야기는 다채로워질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진정한' 주인공(hero)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영웅담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1. 방황하는 젊은이
여기, 우리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품은 젊은 기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가웨인'이다.
가웨인은 그 유명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아서왕의 조카로, 그는 원탁의 기사 중 유일하게 그만의 '영웅담'이 없다. 기사 서임식은 다가오는데, 이렇다 할 업적도 세우지 못했으니 그는 날로 초조해지기만 한다. 그리하여 방황한다.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한다. 무엇도 해내지 못할까봐. 그래서 말한다.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나이다.'라고.
2. 과업의 서막
가웨인이 준비가 되었거나, 말거나, 운명의 순간은 다가온다. 어느 크리스마스 절기의 만찬에 정체 모를 녹색 기사가 찾아온 것이다. 한 손에는 죽음의 상징인 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호랑 가시 나무를 들고서! 그가 제안한 바는 이랬으니, '나의 목을 벨 기사는 누구인가? 내 목을 베는 자는 영광을 얻으리라. 그러나 1년 후 나의 녹색 예배당으로 와 내게 목을 베여야 하리라!'
그 섬뜩한 '목베기 게임'에 응한 것은, 다름 아닌 젊은 가웨인이었다.
가웨인은 녹색 기사의 목을 베었고, 이 초자연적 존재는 스스로 베인 목을 옆구리에 낀 채 말달려 돌아간다. 1년 후 가웨인의 목을 벨 날을 기약하며!
가웨인은 그 게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웅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시련의 시작임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녹색 기사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는 대단한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어떤 신비롭고 기괴한 제안을 했을 뿐이다. 가웨인은 얼마든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응했다. 우리들이 우리에게 닥치는 운명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운명의 여정에 어쨌든 올라야 하는 법이므로.
그리하여 가웨인은 1년 후 모험을 떠난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용기보다는 막막함과 걱정이 더 많이 맴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그리스도 같기도 하고, 신벌로 과업을 부여받은 비극적 운명의 그리스 영웅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1년 후에 죽을 것을 알면서 누리는 영광은 얼마나 찰나와 같았을까. 그는 매 순간, 녹색 기사에게 목을 베일 것을 걱정하며 살아갔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여정을 떠난다.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모름지기 모든 영웅의 필수 조건이니까.
3. 자아 찾기의 여정, 그리고 시련
여정은 고달프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는 도적에게 가진 것을 죄 털리기도 하고, 피로는 언제나 그의 몸을 뒤덮는다. 어쩌면 그는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안락한 성 안에서, 그가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을 받으며, 그저 향락에 빠져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므로 이런 고난은 다 내버리고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나 그는 나아간다. 그의 삶의 '영웅'을, 그의 삶을 빛낼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했으므로.
다행히 그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에게는 정체 모를 여우 조력자가 있고,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버틸락 성에서는 그를 살갑게 맞이해 주는 성주 내외가 있다. 그들 덕분에 그의 여정은 마냥 버겁지만은 않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젊은 가웨인에게 달콤하기만 했을까? 우리는 때론 달콤한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가장 화려한 독버섯의 독이 가장 치명적인 것처럼 말이다.
고달픈 여정만이 그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 아니란 소리다.
버틸락 성주는 그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특이한 제안을 한다.
"자네가 머무는 동안 나는 내가 사냥해 온 사냥감을 줄테니 자네는 자네가 여기 머물면서 이 성에서 얻은 것을 주게."라고. 그리고 가웨인은, 그 성에서 성주 아내의 입맞춤과 녹색 벨트를 받는다.
그는 정직한 기사로서 성주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성주 아내의 유혹을 애써 뿌리쳤지만 그녀가 내미는 마법의 녹색 벨트, 그러니까, 차고 있으면 어떠한 상처도 나지 않는다는 그 물건을 거절하지는 못한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1년간 고민했던 비극적 운명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을터였다.
성주가 그에게 성에서 묵던 며칠 간 무엇을 얻었냐고 하자, 그는 성주에게 그의 아내에게서부터 받았던 입맞춤을 돌려준다. 그러나 녹색 벨트는 돌려주지 않는다. 대담하게 꾀를 부리는 그 숱한 고전 속의 영웅들처럼. 그것은 부정직과 비겁일 수 있을테지만, 어쩌면 영웅이라는 미명 하에 그것이 용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으로 향한다. 그가 떳떳하지 못하게 얻은 녹색 벨트를 차고서.
4. 시련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녹색 벨트만 있으면 그는 죽음의 위협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의 순간까지 그것을 찬 채 고개를 숙인다. 속이려고 한 것이다. 그 초자연적 존재를!
그러나 가웨인은, 그 최후의 순간에, 주어진 과업을 불명예스러운 속임수로 마무리한 결과를 예측한다. 거짓으로 얻은 왕위는 그를 좀먹어 들어갈 터였다. 사랑하는 이와 저버리고, 그의 왕국을 위협에 빠트리리라. 그것이 부도덕한 영웅이 맞이할 결과일테니. 그 상상속의 말로는 처참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짧지만 끔찍한 고뇌 끝에 마침내 이야기한다.
"잠깐! 이 벨트를 풀고 나서 나의 목을 베시오!"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는, 마침내 과업을 완수한 영웅의 광채가 깃든다. 그렇다. 그는 그 많은 유혹들 중 가장 떨쳐내기 어려운 스스로의 유혹을 떨쳐낸 것이다.
가웨인은 목에 베였을까? 그는 목숨을 잃었을까?
영화 내용만 봐서는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가 그의 임무를 영웅답게 완수하고 영광스럽게 그의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으레 과업을 수행한 다른 영웅들이 그러하듯이.
숱한 시련과 유혹 속에서 방황하는 가웨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네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달콤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예측불허하며, 그래서 우리를 두렵게 한다. 삶은 녹록치 않다. 사람들은 우리가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대와 굴레를 씌우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앞날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삶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빛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뇌가 우리의 뇌를 가득 채우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달콤한 속임수에 눈을 돌린다. 나와 타인을 속이는 일은 내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쉬우므로.
그러나 우리의 젊은 기사 가웨인처럼, 우리도 때때로 우리의 '목베기 게임'에서 기꺼이 우리의 녹색벨트를 풀어내야 한다. 두렵다고 피해가는 것은 운명을 상대하는 바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속임수를 버리고 모두의 앞에서 떳떳해짐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영화는 신비롭고 상징적이다. 반지의 제왕처럼 스펙터클한 전쟁씬을 바랐다면 조금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중세 기사의 이야기라든가, 아서왕 이야기의 큰 팬이라면, 혹은 방황하는 청춘으로써 눈 앞에 닥친 운명으로부터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번쯤 관람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줄거리 외적인 부분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다양한 인종이 출연했다는 점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을 맡았던 데브 파텔은 인도계이고, 그의 어머니를 맡은 사리타 초우드리는 인도계 영국배우이다. 오늘날 영국 인구의 적지 않은 수가 인도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캐스팅은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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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스포일러가 다분하니, 보실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꼭.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시사회는 아니고, 이 영화가 강원도 올로케라 강원 특별 시사회를 진행했다. 원래는 감독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못 오셔서 자필의 편지를 제작사 대표님이 대독하셨다.
많은 분들이 홍종현배우, 정소민배우를 보고 싶어서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연주배우님이 궁금해서 갔다. SNL의 정연주배우님의 능청능청한 연기가 워낙 내 스타일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하면 귀신에 시달리던 어느 소녀, 아니 여성이 여성이 고모의 친구인 무당의 말을 듣고 어느 원더랜드라는 팬션에서 묵으며 벌어지는 호러? 스릴러? 로맨스? 뭐 그런거다.
사실 궁금했던 건 원더랜드와 소년의 조합이었다. 앨리스하면 당연히 '소녀'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소년이라니. 신박한데 싶었다.
영화 진행의 초반부터 '소년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해라~' 하면서 진행된다. 근데 이를 어쩌나.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알아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좀 불편했다. 아마 이것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배가 다른 남매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인 것을 무엇 때문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합방 장면이 심으로 불편했다. 가벼운 입맞춤 정도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무리 귀신이라도 남매간의 성행위라니 불편했다.
1살의 아이가 가지는 순수한 사랑(누나에 대한 애정)을 정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귀신과의 합방, 귀접이라고 하는 행위인데 이건 귀신이 인간의 기를 빼앗아가는 행위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왜?' 라는 것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면 재미 없는 것이 사실지만, 적당해야지 싶다. 아이가 누나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아주아주 많이 부족하다. 누나가 아이를 해치게 되었던 이유도 너무 간단해서 비극이긴 하지만 비극이 극대화 되진 않았다. 왜 그 가족이 그토록 정이 없게 되었던 건지도 안 나오고 여튼 너무 심하게 함축하고 줄였다 싶었다. 영화가 시는 아니지 않은데 말이다.
이승연배우(무당 역)가 말했던 게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잊으면 어쩌구 이랬다. 애초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잊는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건 '목숨이 죽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잊혀져서 죽는다'라는 원피스의 명대사와 일맥한 것 같다. 여기서 이해가 안 간 건,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귀신으로도 영영 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게 "너 때문에 죽어"라고 하며 분노만 내뱉었다는 것이다.
아이 이게 뭐야.
심지어 막판에는 죽은 사람이 실물 인간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럼 둘이 연애할거야? 남매인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나는 위안부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님이 아직 좀 불편하다)
너무 불평만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좋았던 것을 꼽자면 영상미.
청태산휴양림이 원래 좀 좋긴 한데, 그래도 정말 예쁘게 잘 찍었다. 숲도 예쁘게 나왔고, 꽃잎이 날리는 것 팬션 다 색감이 예뻤다.
한 두 발 양보해서 좋은데, 강원도 올로케인것도 좋고, 정연주님 나오는 것도 좋고, 예쁜 영상과 색감도 좋은데, 나한테 이 스토리는 영 안 맞았다.
혹시 원더랜드와 네버랜드를 헷갈려서 원더랜드라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그냥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이라고만 하지 왜 '앨리스'를 붙인건가 역시 헛갈린게 아니었구나 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세계로 간 여자 주인공 때문에 앨리스라고 한건가? 그렇다면 조금 이해를 해볼 수 있다.
여튼 그렇다. 영화보기 1년 전쯤 보았던 <좀비스쿨>이 생각나면서 몹시 안타까워졌다. 그래도 배우진들이 괜찮아서 볼 사람들은 좀 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 그래도 연기에 점수를 주자면 중간 점수만큼 줄 수 있을 듯 하다. 역할이 그래서 그냥 묻어갔지만 홍종현님은 연기 연습이 엄청 필요해보였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당시 정소민님의 연기도 그닥이었다. 아마 정연주님과 비교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지원했던 영화 중에 <조난자들> 같은 영화는 괜찮았는데 연달은 <좀비스쿨>과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정말 안타까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실무진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능력을 늘리던지,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서 로케를 제안하던지 해야하는 게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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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 The Conjuring: The Devil Made Me Do it, 2021
13년, 대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그 해에 영화 <컨저링>이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었던 영화의 광고 카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는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잊히지 않습니다.
박수만 쳤음에도 <킹스맨>에서 보았던 "뇌꽃놀이(?)"장면처럼 팝콘들이 흩날렸으니까요.
물론, 8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상황이 더 무섭지만 이를 시작으로 영화 <컨저링>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포함해 본편 3개과 4편의 외전만으로도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다가올 텐데요.
이를 제작진들도 알기에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은 많은 변화들을 시도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보기에 앞서, 팬들은 <컨저링>시리즈는 초자연적 현상을 바탕한 "오컬트 호러"임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이식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 거는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이제는 고착화된 시리즈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였습니다.
퇴마 의식을 진행하던 워렌 부부는 무사히, 일이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령은 사실 다른 이에게 옮겨진 것이고, 악령에게 빙의된 대상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에 워렌 부부는 법정에 선 범인이 '악령에게 빙의되었다'라는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을까?1. 3편까지 왔으니까, 변해볼까?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서 우리가 집중할 건 '숫자 3'입니다.
1에서 2로 커진 숫자만큼 스케일도 비례하듯이 커지는 것이 보이지만 ,'숫자 3'은 다르게 풀어 나가야 하는 숫자입니다.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켰던 2편과는 다르게, 3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익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앞서 말했듯이 "수사극"의 기법과 "법정"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게끔…그래서인지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기존 시리즈와 비슷한 분위기임에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이전 시리즈들이 피해자들의 모습만을 비췄다면, 이번 영화는 사건의 배후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데요.
보통 추리와 같은 수사극 장르에는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에 참여 즉,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화는 "신비함"이라는 큰 윤곽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차별화를 두니 8년이나 알고 지낸 영화라고 해도 새로이 보일 겁니다.
2. 장르의 호불호, 관객들이 갈라진다.
다만, 아쉬운 건 차용된 장르가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주 장르로 대체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오컬트 호러"로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관객들을 놀래는 영화입니다.
보통의 법정극이나 수사극이었다면, 법정에 서있는 범인이 영화의 평가를 좌우할 반전 카드로 쓰겠지만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이미 부제부터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화입니다.
이에 모자른지 이미, 초반부터 악령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니 이런 모호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주객전도가 되었어야만 했나?그렇기에 수사극과 법정 장르물을 기대했다가는 실망스러울 텐데, 특히 이를 수사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장르물은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므로,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수사하는 과정은 관객들을 해당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증거의 논리보다는 해당 장면의 감정들이 보이고 무엇보다 <컨저링>시리즈에서 "로레인"의 능력이 "영매"이기에 "이거다!"라고 정해둔 상태라서 맥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1차적인 해석, 조금만 더 풀었으면...
변화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만들었다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는 어땠을까요?
해당 영화를 먼저 챙겨 본 다른 분들의 평가처럼 초반 오프닝은 강렬했습니다.
다만, 이후 보이는 공포들은 이에 못 치는 감이 있어 금방 피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 연출이 "점프 스케어", 즉 깜짝 놀래는데 주력을 든 것이 클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를 풀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포는 없더라...이전 <어른들을 몰라요>의 리뷰에서 풀었듯이
"사람들이 많이 오인하는 것은 아이를 임신함으로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지만, 이때 사람이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내 밖으로 나오는 건 암과 같은 질환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소재를 바꾸어 '스킨십'과 '감염'에 대해서도 비교해도, 이 역시 똑같습니다.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해석처럼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사랑도 충분히 공포로 해석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극 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워렌 부부"도 있지만, 살인을 저지른 남자친구를 믿어주는 연인이야말로 공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가 이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됩니다.
4.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결국, 1차원적인 해석에 그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인상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 감정에 기댄 나머지 무서운 장면도 무섭게 느껴지지 못한 건 <컨저링>을 떠나 "공포 영화"로서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말로 들릴 겁니다.
물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가 보여준 시도들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오컬트 호러 시리즈에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접목해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는 점과 "사랑"과 "공포"라는 감정의 연결 지점을 생각하면 시리즈에서 가장 신선한 속편입니다.
다만, 시도에 비해서 결과물이 시원찮았다는 것이 그렇지만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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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가 가진 '진짜' 마법의 비밀
우리는 종종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할 때, <구체적으로 바뀌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바뀌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인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편, <해리포터 : 죽음의 성물>에서, 해리포터는 볼드모트를 무찌르고 드디어 '새로운 세계'를 여는데 성공한다.
해리는 어떻게 볼드모트를 무찌를 수 있었을까. 해리가 가진 그 어마어마한 힘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해리포터의 '진짜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부활의 돌'을 어떻게 깨웠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부활의 돌'이 담긴 '스니치'
부활의 돌은 세 가지 죽음의 성물 가운데 하나이다.
1) 천하무적 지팡이, 2) 투명망토, 그리고 3) 부활의 돌,
이 세가지 성물을 가진 자가 가장 막강한 마법의 힘을 갖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지팡이나 투명망토는 일단 얻기만 하면 사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지팡이는 휘두르면 되고, 망토는 뒤집어 쓰면 된다.
그런데 부활의 돌은 다르다.
부활의 돌이 '작동'이 되려면, '나는 끝에서 열린다(I open at the close)'라는 말을 이해해야만 한다.
나름 작동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동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해 해리포터는 오랫동안 부활의 돌을 작동시키지 못하고 스니치 안에 보관만 하고 있었다.
해리포터 힘이 완성되는 핵심 키는 바로 이 부활의 돌을 깨우는 것이다.
세 가지 성물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가장 강력한 마법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팡이, 투명망토의 사용은 쉽지만, 부활의 돌의 사용은 가장 까다롭게 되어 있다.
그래서 부활의 돌을 깨우는 것이 해리포터 마법의 완성에 가장 핵심 열쇠가 되는 것이다!!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 해리포터는 드디어 부활의 돌을 작동시킨다!
해리가 '나는 끝에서 열린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 직전, 무슨 일이 있었나.
해리포터는 어느 지점에서 이 까다로운 부활의 돌 작동 설명서를 이해하게 되었나.
죽기 직전 해리포터에게 자신의 '눈물'을 담아가게 하는 '스네이프'
해리포터는 스네이프와 오랜 원수지간이었다. 해리포터는 스네이프를 진심으로 증오하고 있었다.
볼드모트에 의해 스네이프가 죽게 되는 장면을 지켜보던 해리포터는, 스네이프의 소원대로 죽어가는 스네이프의 눈에서 눈물을 담아간다.
스네이프의 '눈물'을 '펜시브'에 넣어 스네이프의 '기억'을 보게 되는 해리포터
해리포터는 원수같은 스네이프지만, 죽어가는 스네이프의 마지막 부탁을 모른척 하지 않는다.
해리포터는 스네이프의 눈물을 펜시브에 넣어, <스네이프 관점의 이야기>를 오롯이 체험하게 된다.
(*펜시브 : 특정 사람의 기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도구,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직접 추출한 기억이나 눈물 등을 넣으면, 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해리포터의 엄마 릴리를 진심으로 사랑한 스네이프
해리포터는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되면서,
스네이프가 자신의 엄마 릴리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자신이 절대 선이라고 믿고 있던 아빠 제임스가 스네이프와의 관계에서는 악당이었다는 것,
스네이프가 자신의 엄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고 있었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리포터를 항상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해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진실을 왜곡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이는 것만을 전부라고 믿으며 그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에 대해서는 외면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금껏 스네이프와의 관계에서 고수하고 있던 '관계에 대한 이해 체계'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스네이프와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 체계에 '왜곡'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그 왜곡을 '수정'했을때, 비로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게 된다.
부활의 돌을 깨우고, 볼드모트에게 자발적으로 '죽임'을 당하러 가는 해리포터
해리포터의 죽으려는 결심, 스스로 볼드모트 앞에 나아가겠다는 결심은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그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임을 증명하는 일인 것이다.
해리포터는 스네이프의 기억을 통해,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볼드모트를 무찌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게 된다.
해리포터가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던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통해,
볼드모트를 무찌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진짜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힘,
더이상 진실을 왜곡하지 않을 힘,
진실을 감당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해리포터가 가진 진짜 힘의 비밀, 바로 '원수라 여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왜곡없이 온전히 이해하고,
그 관계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진짜 사랑"이다.
해리포터와 덤블도어
언젠가 덤블도어는 해리포터에게 말했었다.
너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그것이 너와 볼드모트의 결정적 차이라고.
해리포터는 실망했었다. '무슨 사랑이 나의 가장 큰 힘이란 말인가'. 어떻게 사랑으로 볼드모트를 무찌른단 말인가.
해리포터는 아직 몰랐었다. '진짜 사랑'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것인지!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근본 힘이 된다는 것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호감가는 사람, 나와 문제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얼마든지 그 사람의 사정, 그 사람 관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다. 내가 비호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이야기는 듣기 싫다. 관심도 가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입을 떼기도 전에 비하하고 싶다. 의심하고 싶다. 평가절하하고 싶다.
왜곡시키고 싶다. 어떻게든 나쁜놈으로 몰고가고 싶다.
보이는 것만 보아서는 '진짜 사랑'할 수 없다.
내 눈에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진짜 사랑'할 수 없다.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것, 내가 보고 싶지 않던 것, 내가 외면하던 것,
그것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진짜 사랑'도 가능해 진다.
부정적인 측면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를 볼 수 있을 때,
관계 속 '부활의 돌'을 작동시킬 수 있을 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세계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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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기적 (Miracle, 2020)
개봉일 : 2021.09.15
감독 : 이장훈
출연 : 박정민, 이성민, 윤아, 이수경, 김강훈, 정문성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올 추석 가장 볼만한 가족영화. 보는 이를 웃기고 울리는 휴머니즘 가득한 영화. 다소 진부하긴 해도 <기적>이란 영화를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또 없을 것이다.
<기적>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을 베이스에 두고 그 위에 주인공 준경의 가족과 준경이 가진 꿈을 얹어 완성한 이야기다. 준경이란 인물과 그의 꿈이라는 픽션에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이라는 실제 장소를 섞어서 리얼리티와 감정선을 한층 살려낸 이 영화는 적절히 가볍고 귀여우면서도 썩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영화,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신파'를 완벽하게 털어낸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의 신파라면 난 일단 환영한다고 말하겠다.
<기적>은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시국 때문에 몇 차례 개봉을 연기하며 내 속을 엔간히도 태웠다. "대체 준경이는 언제 만날 수 있지!" 아쉬움에 발길질을 해대던 찰나, 추석 연휴라는 대목을 끼고 개봉한 이 영화는 마치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를 기다려왔다!"는 듯 영화가 가진 매력을 사정없이 내뿜으며 추석 연휴 극장을 찾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의 매력 포인트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추억을 불러오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 아름다운 계절을 품은 기찻길의 모습 정도가 있겠다. <기적>은 누군가의 꿈 이야기이자 첫사랑의 두근거림, 가족 간의 깊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다. 또한 시대 배경을 따라 맞춰 입은 배우들의 스타일링은 “촌스럽다.”라기보단 귀엽고 정겹게 다가온다. 거기에 비디오테이프와 플레이어, 흰 편지지와 연필, 세월을 담은 집과 가구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시동>에 이어 새로운 느낌의 10대 소년 역할에 도전한 박정민 배우의 뚝뚝하지만 쑥스러움이 살짝 묻어나는 사춘기 소년 연기와 초반부의 발랄한 분위기를 책임지는 임윤아 배우님의 첫! 학생 연기, 원칙을 지키는 아버지와 준경을 벅찰 만큼 사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오가는 이성민 배우님의 안정적인 연기, 사실상 준경과 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선사하는 인물,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 배우님의 연기가 <기적>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이자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도로도 차도, 기차역도 없이 기찻길만 놓여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준경은 마을을 얄짤없이 지나쳐가던 기차가 아주 잠시라도 설 수 있는 안전한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한다. 기찻길도, 마을에 내려야 할 사람도 있는데 정작 기차역은 없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 나가고 돌아올 때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정해진 시간이라도 있는 여객 기차는 대비하고 피할 수 있지만 수시로 지나다니는 화물 열차는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다. 탈 사람이 없어 현실적으로 역을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준경의 기차역 건설에 대한 꿈은 매번 '제정신 아닌 소리'로 취급받고, 사람들은 역 만들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준경은 기차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준경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기찻길을 걸어가며 놓쳐야 했던 소중한 인연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그것을 지키고자 청와대에 50통이 넘는 편지를 쓴다. 준경이 왜 이토록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왜 더 큰 세상에 나가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뽐내는 일보다 위험하게 철교를 지나는 마을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차역 만들기와 별을 보고 싶다는 두 가지 꿈을 꾸는 소년과 소년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하는 첫사랑 라희와 태윤, 보경. '꿈'과 '가족' 그리고 '사랑'을 한곳에 뭉쳐낸 이 이야기에서 진한 사람 냄새가 풍긴다.
<기적>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다. 역을 만들겠다는 준경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기적이, 준경이 또 다른 꿈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길.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꿈도 기적처럼 이루어지길. <기적>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수많은 기적을 바라게 되고, 또 그것이 이뤄질 거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반짝이는 반딧불이로 가득 찬 기찻길을 보며 힘든 현실을 밝게 비춰줄 기적을 꿈꿔본다.
무뚝뚝한 말투에 덤덤한 표정, 고맙다, 사랑한다. 같은 감정 표현에 사뭇 서툴러 보이는 소년이 오래도록 품어온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피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쳐가는 기차의 앞, 옆모습이 아닌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을 기차역에 서있는 기차의 앞모습을 보는 날이 올때까지. 그리고 항상 흘깃거리며 볼 수 밖에 없었던 진짜 꿈에 얽혀있던 아픔을 풀어내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 순간까지 준경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적 시놉시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박정민)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이수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경상북도 1등 과학 영재이자 5분 만에 시험지를 후딱 풀어내는, 또라이 같은 천재. 준경. 준경이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2시간 이상. 준경은 위험하고 긴 등하굣길을 오래전에 떠난 누나 보경과 함께 걷는다. 매일같이 .
영화는 준경이 경시대회에서 1등 상을 타던 날, 보경이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기 전까지는 준경의 첫사랑과 라희, 그리고 간이역을 짓겠다는 준경의 두번째 꿈에 집중한다.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어느 순간엔 가벼운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라희와의 대화와 과거 기억들을 통해 준경이 별과 우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흘린다. 경시대회 상을 받기 전, 계절별로 나눠진 별자리 그림을 쳐다보던 준경은 수많은 별자리들로 가득 찬 하늘 한가운데 가장 특별한 엄마 별을 그린다.
준경에겐 별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준경은 그 꿈을 당당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준경은 간이역을 짓겠다는 꿈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청와대에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도 “니는 우주가 그래 좋나?"라고 묻는 라희에겐 그저 "별이 좋다. 그런 게 있다.”고 얼버무릴 뿐이다.
오래전 자신을 낳다 세상을 떠난 엄마와 경시대회 트로피를 지키려다 물에 빠진 누나. 준경은 보경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자신의 진짜 꿈을 가슴 깊숙이 숨겨놓고 마음의 짐을 덜어낼 두 번째 꿈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온 큰 이별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보경을 놓아주지 못한다. 준경은 모두가 “이 마을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라.”고 말해도 누나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지 못한다.
보경이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준경의 기억과 마음속에 담긴 보경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남매가 얼마나 각별하고 가까운 사이였는지 척- 짐작이 된다. 꼬맹이라고 부르며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 보경의 모습, 라희는 한 번에 찌르지 못했던 준경의 볼을 익숙하게 한 번에 찌르는 보경의 모습.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기찻길을 걷는 보경의 모습.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 어느덧 보경의 마지막 나이를 넘어선 동생 준경은 여전히 두려울 때면 보경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누나는 모른다. 내가 양원역을 왜 그래 만들고 싶었는지 아나?"
"아버지한테 칭찬도 받고 용서도 받고 싶었다."
"니를 사랑하는 걸 들킬까 봐. 니까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서."
"이제 네 짐은 덜어내야지."
준경과 태윤은 이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지만, 서로를 의지하지 못한다. 엄마와 보경을 지키지 못했다는 각자의 후회와 유일하게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준경은 태윤을 사랑하기에 태윤에게 용서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나를 잃게 된 오래전 그날의 실수를 만회할 기차역을 만들려 했고 태윤은 준경을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마음에 준경과의 거리를 넓힌다. 항상 서로의 옆얼굴만 바라봤던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속에 묵혀온 아픔을 내보이며 짐을 덜어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돌아 드디어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무뚝뚝한 옆모습만 보이던 아빠 태윤이 준경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순간, 힘 빠진 태윤의 등을 토닥이는 남매의 손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준경의 꿈에 나와서까지 태윤을 걱정했던 보경. 그런 꿈을 꿀만큼 태윤과 보경을 가장 사랑했던 어린 준경의 마음. 죄책감과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껴안고도 준경을 키워내기 위해 견뎌왔던 태윤의 무거운 사랑. 그리고 빼놓으면 섭섭한 준경의 첫사랑이자 뮤즈, 준경의 꿈에 대해 "꿈꾸는 게 뭐 어때서?"라며 처음으로 꿈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라희의 한결같은 사랑. 여러 가지 모습을 한 사랑과 빛나는 꿈이 한곳에 뭉쳐 만들어진 기적 같은 양원역과 기적 같은 준경의 꿈을 향한 첫 날갯짓이 참 예쁘다. 준경이가 오래, 더 높은 곳에서 행복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에 붙잡혀 어쩔 수 없이 나는게 아닌, 그의 비행을 바랐던 사람들의 사랑을 힘으로 삼아 마음껏 더욱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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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아톤리뷰/소개]초원이는 커서 고니가 됩니다. 조승우의 지리는 연기력!
#말아톤#말아톤리뷰#영화말아톤
이 영상은 예고편이 아닌 본편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모든 저작권 및 수익은 영화사,제작사,배우 등 원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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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들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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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하야오 #그대들어떻게살것인가 #지브리애니메이션 #지브리스튜디오 #지브리 #일본반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이자 은퇴작(아마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본현지에 개봉했습니다.
일본 평점 반응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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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새로운 팀' 예고편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텐 링즈’의 힘으로 수세기 동안 어둠의 세상을 지배해 온 ‘웬우’
'샹치’는 아버지 ‘웬우’ 밑에서 암살자로 훈련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평범함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샹치’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습격으로 더 이상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가 남긴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신비한 힘을 일깨우게 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자,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아버지 ‘웬우’를 마주해야 하는 ‘샹치’
악이 될 것인가? 구원이 될 것인가?
마블의 새로운 시대,
세상에 없던 힘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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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트래커> 예고편
한계를 넘어선 액션이 시작된다!
이탈리아에서 갱단의 납치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하칸슨. 10년 후 이탈리아 형사로부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곧장 이탈리아로 떠난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했던 형사는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같은 시기에 그 도시의 형사로 새로 발령받은 안토니오는 이 사건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하칸슨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갱단으로 침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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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일어날 일 따위는없다
이 영화를 보긴했는데,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던진 떡밥에 대한 글은 충분히 많으니까, 이 글은 그저 어려운 영화 좀 봤다고 누군가가 주절주절 떠드는 것을 글로 옮겨온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한 남자를 구하는 임무를 맡고, 임무 수행 중 밀고를 한 사람에 의해 임무가 발각되고, 고문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모든 고문들을 견뎌낸 남주는 테넷 작전에 합류하게 되고, 그 때, 인버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닐을 소개받는다. 두 사람은 미래를 보는 기계를 가졌다는 한 남자, 사토르의 행방을 찾고, 그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멸망하게 하려는 계획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과연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악당 사토르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을까?
영웅과 조력자 포맷
이 영화는 세상을 지켜내는 영웅 남주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닐의 버디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 캐릭터의 차이점이 있다면, 남주는 임무수행에 있어서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본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본인의 행동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면 불가능해보여도 정면돌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반해, 닐은 인버전에 대한 지식이 해박(물리학 박사랬나)하기 때문에 현재에 행한 일들이 인버전된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해 현재에 어떤 결론을 도달하게 할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둘의 관계는 흡사 유비와 제갈공량 혹은 아이언맨과 자비스 정도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 포맷에서 조력자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통계적으로 확률이 높은 선택을 리더에게 제시하지만 리더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 위험 가능성이 높은 선택들을 하고, 결론적으로 그 선택들을 성공시켰을 때, 비로소 그 리더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남주는 현재에서 가장 불리했던 상황(인버전에 대한 지식 전무, 사토르에 대한 정보 전무, 사토르의 계획과 그를 잡으려고 하는 단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지식 전무)에서 시작했지만 닐과 그 외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위험한 선택들을 했음에도 그 선택들을 모두 성공시켜 다가올 미래에 테넷 작전의 주도자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미래의 남주가 과거의 남주에게 닐을 보내서 테넷 작전을 성공시키는 데에 그를 잘 인도하도록 명령한 것을 암시하는 대사가 마지막에 나온다.
"내 우정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네의 우정은 이제 시작이야"
이 대사는 닐이 주인공과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주인공에 의해 인버전되어 과거로 온. 인물이 아닐까 예상해 볼 수 있는 대사였다. 닐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주인공이 사토르 일당과 최후의 싸움을 하던 그 상황에 주인공의 눈을 사로잡은 가방고리는 그 상황 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닐의 가방 고리임이 밝혀지며, 닐이 작전 도중 인버전해서 주인공을 도왔고, 끝까지 주인공을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유도해서 최종적인 작전 성공의 키를 쥐고 있던 캐릭터였음을 증명해냈다.
"무지가 우리의 무기야."라고 믿었던 그의 대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한 닐의 대사 중에
"또다른 과거를 구하러 가야지."는 닐에게 있어서 이 여정의 끝이 주인공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닐과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인도에서의 첫 만남 씬이 되겠구나 예상해볼 수 있게 한다.
테넷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포맷의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일본 영화 중에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장르가 로맨스인만큼 테넷과는 연관없는 영화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도 테넷의 관점에서 보면, 인버전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이 과거에서 미래로 향해 가는 사람일 때, 여주인공은 미래에서 과거로 향해가는 시점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교하자면, 테넷에서 닐의 역할이 일본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같고, 일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테넷 속 주인공과 같은 시간 차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일본 영화에서는 이런 시간 차원의 뒤바뀜이 애절한 사랑의 기폭제가 되지만 테넷에서는 악당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일본 영화에서 인물들의 시간 차원이 뒤바뀌는 설정은 일반적인 러브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만 비틀었는데도 주인공들 사이의 사랑의 애절함의 크기가 커지는 효과를 보여주고, 테넷의 경우는 일반적인 어벤져스 영화같이 영웅이 악당이 해치우는 스토리 포맷에 시간 차원이 자유자재로 뒤바뀌게 만드는 설정은 영화의 결말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버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인물들도 각기 다른 차원에 시간에 살고 있고, 그 시간 차원을 필요에 따라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뇌피셜)
이미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이야.
영화 속 주인공은 인버전하는 능력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캣을 이용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사토르의 계략에 당한다. 그 결과, 캣은 중상을 입고, 작전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그러면서 닐과 했던 대화 중에서 닐은 "이미 일어난 일이 일어난 것이다."라며,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주인공은 이미 일어날 일도 과거를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서 충분히 바뀔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닐의 주장은 시간을 뒤바꿔서 과거-미래 순이 아니라 미래-과거 순으로 시간이 바뀌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결말이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주인공은 인버전되어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뀔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중에서 주인공의 말이 이긴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 영화는 결국 테넷 작전을 주도한 최종보스는 주인공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끊임없이 그에게 반론을 제시하며, 그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한 닐의 행동이 있었지만 아마 닐은 그에게 위험하다고 말려도 자신의 뜻대로 강행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해야 테넷 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 테니, 어차피 발생할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결국 주인공의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더 다지고, 그게 과거를 바꾸는 것에 박차를 가하도록 묘하게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인공이 테넷 작전의 주도자였다면, 닐은 이 테넷 작전이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중도를 지키며, 성공을 향해 항로를 조종하는 항해사, 설계자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결국 이 영화가 어려운 과학적 개념들까지 동원해 가며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마도 발생할 일은 발생할 거다라는 운명론 같은 건 믿지 말고, 당신이 지금 현재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의 개척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인버전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충실히 살아놔야 한다는 미션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가진 정답이 아닐까. 그러니 모두들 하루하루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적당히 행복하게, 그리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시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이 쌓여 마일리지가 되면 그 마일리지들이 쌓여 다른 내일을 만들 거라고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고치려는 노력을 한다든지 새로이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배워보는 것도 내일을 변화시키는 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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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되는 법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우리, 둘>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꿈꾼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설령 그 이야기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당신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당신의 이야기는 다채로워질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진정한' 주인공(hero)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영웅담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1. 방황하는 젊은이
여기, 우리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품은 젊은 기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가웨인'이다.
가웨인은 그 유명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아서왕의 조카로, 그는 원탁의 기사 중 유일하게 그만의 '영웅담'이 없다. 기사 서임식은 다가오는데, 이렇다 할 업적도 세우지 못했으니 그는 날로 초조해지기만 한다. 그리하여 방황한다.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한다. 무엇도 해내지 못할까봐. 그래서 말한다.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나이다.'라고.
2. 과업의 서막
가웨인이 준비가 되었거나, 말거나, 운명의 순간은 다가온다. 어느 크리스마스 절기의 만찬에 정체 모를 녹색 기사가 찾아온 것이다. 한 손에는 죽음의 상징인 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호랑 가시 나무를 들고서! 그가 제안한 바는 이랬으니, '나의 목을 벨 기사는 누구인가? 내 목을 베는 자는 영광을 얻으리라. 그러나 1년 후 나의 녹색 예배당으로 와 내게 목을 베여야 하리라!'
그 섬뜩한 '목베기 게임'에 응한 것은, 다름 아닌 젊은 가웨인이었다.
가웨인은 녹색 기사의 목을 베었고, 이 초자연적 존재는 스스로 베인 목을 옆구리에 낀 채 말달려 돌아간다. 1년 후 가웨인의 목을 벨 날을 기약하며!
가웨인은 그 게임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웅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시련의 시작임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녹색 기사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는 대단한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니고, 그저 어떤 신비롭고 기괴한 제안을 했을 뿐이다. 가웨인은 얼마든지 그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응했다. 우리들이 우리에게 닥치는 운명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운명의 여정에 어쨌든 올라야 하는 법이므로.
그리하여 가웨인은 1년 후 모험을 떠난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용기보다는 막막함과 걱정이 더 많이 맴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그리스도 같기도 하고, 신벌로 과업을 부여받은 비극적 운명의 그리스 영웅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1년 후에 죽을 것을 알면서 누리는 영광은 얼마나 찰나와 같았을까. 그는 매 순간, 녹색 기사에게 목을 베일 것을 걱정하며 살아갔으리라. 그럼에도 그는 여정을 떠난다. 과업을 수행하는 것은 모름지기 모든 영웅의 필수 조건이니까.
3. 자아 찾기의 여정, 그리고 시련
여정은 고달프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는 도적에게 가진 것을 죄 털리기도 하고, 피로는 언제나 그의 몸을 뒤덮는다. 어쩌면 그는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안락한 성 안에서, 그가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을 받으며, 그저 향락에 빠져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므로 이런 고난은 다 내버리고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나 그는 나아간다. 그의 삶의 '영웅'을, 그의 삶을 빛낼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했으므로.
다행히 그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에게는 정체 모를 여우 조력자가 있고,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버틸락 성에서는 그를 살갑게 맞이해 주는 성주 내외가 있다. 그들 덕분에 그의 여정은 마냥 버겁지만은 않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젊은 가웨인에게 달콤하기만 했을까? 우리는 때론 달콤한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가장 화려한 독버섯의 독이 가장 치명적인 것처럼 말이다.
고달픈 여정만이 그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 아니란 소리다.
버틸락 성주는 그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특이한 제안을 한다.
"자네가 머무는 동안 나는 내가 사냥해 온 사냥감을 줄테니 자네는 자네가 여기 머물면서 이 성에서 얻은 것을 주게."라고. 그리고 가웨인은, 그 성에서 성주 아내의 입맞춤과 녹색 벨트를 받는다.
그는 정직한 기사로서 성주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성주 아내의 유혹을 애써 뿌리쳤지만 그녀가 내미는 마법의 녹색 벨트, 그러니까, 차고 있으면 어떠한 상처도 나지 않는다는 그 물건을 거절하지는 못한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1년간 고민했던 비극적 운명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을터였다.
성주가 그에게 성에서 묵던 며칠 간 무엇을 얻었냐고 하자, 그는 성주에게 그의 아내에게서부터 받았던 입맞춤을 돌려준다. 그러나 녹색 벨트는 돌려주지 않는다. 대담하게 꾀를 부리는 그 숱한 고전 속의 영웅들처럼. 그것은 부정직과 비겁일 수 있을테지만, 어쩌면 영웅이라는 미명 하에 그것이 용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으로 향한다. 그가 떳떳하지 못하게 얻은 녹색 벨트를 차고서.
4. 시련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녹색 벨트만 있으면 그는 죽음의 위협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의 순간까지 그것을 찬 채 고개를 숙인다. 속이려고 한 것이다. 그 초자연적 존재를!
그러나 가웨인은, 그 최후의 순간에, 주어진 과업을 불명예스러운 속임수로 마무리한 결과를 예측한다. 거짓으로 얻은 왕위는 그를 좀먹어 들어갈 터였다. 사랑하는 이와 저버리고, 그의 왕국을 위협에 빠트리리라. 그것이 부도덕한 영웅이 맞이할 결과일테니. 그 상상속의 말로는 처참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짧지만 끔찍한 고뇌 끝에 마침내 이야기한다.
"잠깐! 이 벨트를 풀고 나서 나의 목을 베시오!"
그렇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는, 마침내 과업을 완수한 영웅의 광채가 깃든다. 그렇다. 그는 그 많은 유혹들 중 가장 떨쳐내기 어려운 스스로의 유혹을 떨쳐낸 것이다.
가웨인은 목에 베였을까? 그는 목숨을 잃었을까?
영화 내용만 봐서는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가 그의 임무를 영웅답게 완수하고 영광스럽게 그의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으레 과업을 수행한 다른 영웅들이 그러하듯이.
숱한 시련과 유혹 속에서 방황하는 가웨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네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달콤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예측불허하며, 그래서 우리를 두렵게 한다. 삶은 녹록치 않다. 사람들은 우리가 '청춘'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대와 굴레를 씌우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앞날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삶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빛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뇌가 우리의 뇌를 가득 채우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달콤한 속임수에 눈을 돌린다. 나와 타인을 속이는 일은 내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쉬우므로.
그러나 우리의 젊은 기사 가웨인처럼, 우리도 때때로 우리의 '목베기 게임'에서 기꺼이 우리의 녹색벨트를 풀어내야 한다. 두렵다고 피해가는 것은 운명을 상대하는 바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속임수를 버리고 모두의 앞에서 떳떳해짐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영화는 신비롭고 상징적이다. 반지의 제왕처럼 스펙터클한 전쟁씬을 바랐다면 조금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중세 기사의 이야기라든가, 아서왕 이야기의 큰 팬이라면, 혹은 방황하는 청춘으로써 눈 앞에 닥친 운명으로부터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지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번쯤 관람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줄거리 외적인 부분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다양한 인종이 출연했다는 점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을 맡았던 데브 파텔은 인도계이고, 그의 어머니를 맡은 사리타 초우드리는 인도계 영국배우이다. 오늘날 영국 인구의 적지 않은 수가 인도계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캐스팅은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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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
스포일러가 다분하니, 보실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꼭.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시사회는 아니고, 이 영화가 강원도 올로케라 강원 특별 시사회를 진행했다. 원래는 감독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못 오셔서 자필의 편지를 제작사 대표님이 대독하셨다.
많은 분들이 홍종현배우, 정소민배우를 보고 싶어서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정연주배우님이 궁금해서 갔다. SNL의 정연주배우님의 능청능청한 연기가 워낙 내 스타일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하면 귀신에 시달리던 어느 소녀, 아니 여성이 여성이 고모의 친구인 무당의 말을 듣고 어느 원더랜드라는 팬션에서 묵으며 벌어지는 호러? 스릴러? 로맨스? 뭐 그런거다.
사실 궁금했던 건 원더랜드와 소년의 조합이었다. 앨리스하면 당연히 '소녀'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소년이라니. 신박한데 싶었다.
영화 진행의 초반부터 '소년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해라~' 하면서 진행된다. 근데 이를 어쩌나.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알아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좀 불편했다. 아마 이것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배가 다른 남매라고 해도 남매는 남매인 것을 무엇 때문에 넣었는지 알 수 없는 합방 장면이 심으로 불편했다. 가벼운 입맞춤 정도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무리 귀신이라도 남매간의 성행위라니 불편했다.
1살의 아이가 가지는 순수한 사랑(누나에 대한 애정)을 정말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귀신과의 합방, 귀접이라고 하는 행위인데 이건 귀신이 인간의 기를 빼앗아가는 행위 아닌가?
그것도 그렇지만 '왜?' 라는 것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가 모든 것을 다 알려주면 재미 없는 것이 사실지만, 적당해야지 싶다. 아이가 누나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아주아주 많이 부족하다. 누나가 아이를 해치게 되었던 이유도 너무 간단해서 비극이긴 하지만 비극이 극대화 되진 않았다. 왜 그 가족이 그토록 정이 없게 되었던 건지도 안 나오고 여튼 너무 심하게 함축하고 줄였다 싶었다. 영화가 시는 아니지 않은데 말이다.
이승연배우(무당 역)가 말했던 게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잊으면 어쩌구 이랬다. 애초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잊는 것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이건 '목숨이 죽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잊혀져서 죽는다'라는 원피스의 명대사와 일맥한 것 같다. 여기서 이해가 안 간 건,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귀신으로도 영영 살기를 바란다는 것. 그러려면 여자를 죽여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게 "너 때문에 죽어"라고 하며 분노만 내뱉었다는 것이다.
아이 이게 뭐야.
심지어 막판에는 죽은 사람이 실물 인간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럼 둘이 연애할거야? 남매인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나는 위안부로 누드를 찍은 이승연님이 아직 좀 불편하다)
너무 불평만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좋았던 것을 꼽자면 영상미.
청태산휴양림이 원래 좀 좋긴 한데, 그래도 정말 예쁘게 잘 찍었다. 숲도 예쁘게 나왔고, 꽃잎이 날리는 것 팬션 다 색감이 예뻤다.
한 두 발 양보해서 좋은데, 강원도 올로케인것도 좋고, 정연주님 나오는 것도 좋고, 예쁜 영상과 색감도 좋은데, 나한테 이 스토리는 영 안 맞았다.
혹시 원더랜드와 네버랜드를 헷갈려서 원더랜드라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그냥 "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이라고만 하지 왜 '앨리스'를 붙인건가 역시 헛갈린게 아니었구나 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세계로 간 여자 주인공 때문에 앨리스라고 한건가? 그렇다면 조금 이해를 해볼 수 있다.
여튼 그렇다. 영화보기 1년 전쯤 보았던 <좀비스쿨>이 생각나면서 몹시 안타까워졌다. 그래도 배우진들이 괜찮아서 볼 사람들은 좀 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 그래도 연기에 점수를 주자면 중간 점수만큼 줄 수 있을 듯 하다. 역할이 그래서 그냥 묻어갔지만 홍종현님은 연기 연습이 엄청 필요해보였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 당시 정소민님의 연기도 그닥이었다. 아마 정연주님과 비교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지원했던 영화 중에 <조난자들> 같은 영화는 괜찮았는데 연달은 <좀비스쿨>과 <앨리스:원더랜드에서 온 소년>은 정말 안타까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실무진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능력을 늘리던지,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서 로케를 제안하던지 해야하는 게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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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 / The Conjuring: The Devil Made Me Do it, 2021
13년, 대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던 그 해에 영화 <컨저링>이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었던 영화의 광고 카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는 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잊히지 않습니다.
박수만 쳤음에도 <킹스맨>에서 보았던 "뇌꽃놀이(?)"장면처럼 팝콘들이 흩날렸으니까요.
물론, 8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의 상황이 더 무섭지만 이를 시작으로 영화 <컨저링>은 하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포함해 본편 3개과 4편의 외전만으로도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먼저, 다가올 텐데요.
이를 제작진들도 알기에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은 많은 변화들을 시도들이 눈에 보입니다.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를 보기에 앞서, 팬들은 <컨저링>시리즈는 초자연적 현상을 바탕한 "오컬트 호러"임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이식해야 하는데요.
이 때문에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 거는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이제는 고착화된 시리즈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였습니다.
퇴마 의식을 진행하던 워렌 부부는 무사히, 일이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령은 사실 다른 이에게 옮겨진 것이고, 악령에게 빙의된 대상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이에 워렌 부부는 법정에 선 범인이 '악령에게 빙의되었다'라는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을까?1. 3편까지 왔으니까, 변해볼까?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에서 우리가 집중할 건 '숫자 3'입니다.
1에서 2로 커진 숫자만큼 스케일도 비례하듯이 커지는 것이 보이지만 ,'숫자 3'은 다르게 풀어 나가야 하는 숫자입니다.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시켰던 2편과는 다르게, 3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익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앞서 말했듯이 "수사극"의 기법과 "법정"을 배경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정체성이 흔들리지는 않게끔…그래서인지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기존 시리즈와 비슷한 분위기임에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이전 시리즈들이 피해자들의 모습만을 비췄다면, 이번 영화는 사건의 배후를 단면적으로 드러내는데요.
보통 추리와 같은 수사극 장르에는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에 참여 즉,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영화는 "신비함"이라는 큰 윤곽으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차별화를 두니 8년이나 알고 지낸 영화라고 해도 새로이 보일 겁니다.
2. 장르의 호불호, 관객들이 갈라진다.
다만, 아쉬운 건 차용된 장르가 이번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주 장르로 대체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오컬트 호러"로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관객들을 놀래는 영화입니다.
보통의 법정극이나 수사극이었다면, 법정에 서있는 범인이 영화의 평가를 좌우할 반전 카드로 쓰겠지만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는 이미 부제부터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화입니다.
이에 모자른지 이미, 초반부터 악령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니 이런 모호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주객전도가 되었어야만 했나?그렇기에 수사극과 법정 장르물을 기대했다가는 실망스러울 텐데, 특히 이를 수사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장르물은 '범인이 있다'라는 가정하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므로,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수사하는 과정은 관객들을 해당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증거의 논리보다는 해당 장면의 감정들이 보이고 무엇보다 <컨저링>시리즈에서 "로레인"의 능력이 "영매"이기에 "이거다!"라고 정해둔 상태라서 맥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1차적인 해석, 조금만 더 풀었으면...
변화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만들었다면,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는 어땠을까요?
해당 영화를 먼저 챙겨 본 다른 분들의 평가처럼 초반 오프닝은 강렬했습니다.
다만, 이후 보이는 공포들은 이에 못 치는 감이 있어 금방 피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공포 연출이 "점프 스케어", 즉 깜짝 놀래는데 주력을 든 것이 클 겁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를 풀어가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포는 없더라...이전 <어른들을 몰라요>의 리뷰에서 풀었듯이
"사람들이 많이 오인하는 것은 아이를 임신함으로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보지만, 이때 사람이 가지는 감정은 공포입니다.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이내 밖으로 나오는 건 암과 같은 질환과 크게 다를 바가 없거든요. 소재를 바꾸어 '스킨십'과 '감염'에 대해서도 비교해도, 이 역시 똑같습니다.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는 해석처럼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사랑도 충분히 공포로 해석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극 중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워렌 부부"도 있지만, 살인을 저지른 남자친구를 믿어주는 연인이야말로 공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가 이를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됩니다.
4. 아이디어는 많았는데...
결국, 1차원적인 해석에 그친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의 인상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겁니다.
그만큼 감정에 기댄 나머지 무서운 장면도 무섭게 느껴지지 못한 건 <컨저링>을 떠나 "공포 영화"로서의 정체성이 뒤흔들리는 말로 들릴 겁니다.
물론,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가 보여준 시도들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오컬트 호러 시리즈에 법정과 수사극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접목해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는 점과 "사랑"과 "공포"라는 감정의 연결 지점을 생각하면 시리즈에서 가장 신선한 속편입니다.
다만, 시도에 비해서 결과물이 시원찮았다는 것이 그렇지만요.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파천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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