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1-08-10 16:08:23
<모가디슈> - '이념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그들의 탈출기'
이념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그들의 탈출기
모가디슈 (Escape from Mogadishu, 2021)
개봉일 : 2021.07.28
감독 : 류승완
출연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김재화, 박경혜
'이념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 그들의 탈출기'
7월 28일 개봉 이후로 2주 동안 굳건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모가디슈>.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임에도 개봉 7일차에 100만 관객을, 글을 쓰고 있는 날짜 기준(2021.08.10)으로는 178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모가디슈>는 몸집이 크고 화려하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력 넘치는 카 체이싱 장면, 쉴 새 없이 고막을 강타하는 총소리, 실감 나는 로케이션과 화려한 배우진, 전작 <군함도>에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여러 작품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류승완 감독까지. 당연히 시선이 갈만한 관람 포인트들에 약간의 전우애와 인류애 같은 것을 더한 게 바로 이 영화의 색인 것 같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독재와 탄압에 저항하는 내전이 일어난 날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인공은 UN 가입을 위해 노력하던 그때의 대한민국과 북한 대사관 직원,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선명한 선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이념 아래 자라온 사람들이다. 두 나라 모두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 정치인들에게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고 서로를 견제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발생한 내전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만든다. 교육받은 이념이 머리에 자리 잡기 이전, 본능에 새겨진 절대적인 목표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탈출과 생존을 하나의 목표로 정하고 정치적 이념과 국가의 구분, 계산을 모두 내려놓으니 이들은 결국 비슷한 사람이었다. 생과 사를 함께 오간 동료들과 믿음을 나누고 그와의 이별에 아쉬움을 느끼는, 그런 감정이 있는 사람 말이다.
<모가디슈>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을 보여주기보단 인물들의 감정과 시선, 모가디슈에 일어난 내전의 시발점에 집중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는 독재와 탄압에 지쳐 내전이 일어난 소말리아의 모습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빵야 빵야-으아악! 하며 장난감 총을 들고 놀아야 할 아이들이 진짜 총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나라의 대사임에도 우스울 만큼 빠르게 외면당하는 한신성 대사관을 보여주며 그 시절 힘이 없었던 우리나라가 겪어야만 했던 설움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한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면 정치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주제들을 적당한 선을 지키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낸 연출이 참 좋았다.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롱테이크 촬영기법이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그 사이에 껴 넣은 작은 감동 포인트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슬픈 음악을 넣어놓고 "여기서 울어라!" 자리를 펴는 게 아닌 소소하게 쌓아 올린 공통점과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힘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영화는 순식간에 나를 그 긴박함 속에 끌어당기고 마지막쯤엔 긴장감을 탁 풀어내며 압축돼있던 감정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박진감과 인간미를 함께 갖춘 <모가디슈>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의 흥행 열풍에 함께 해보시길 추천한다.
모가디슈 시놉시스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모가디슈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
대한민국이 UN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한신성 대사관(이하 한 대사관)은 여러 경쟁을 이겨내고 소말리아의 한국 대사관 자리를 차지한다. 등장인물 들의 말을 따르면 소말리아는 '(우리 사람들이)6명만 남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이지만 그는 자신의 자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꿋꿋하게 버틴다. 북한의 림용수 대사관(이하 임 대사관)또한 태준기 참사관과 함께 조국의 득을 위해 일하고 있다. 대사관답지 않게 작고 소박한, 커다란 선풍기 하나 없아 손부채질과 조악한 선풍기로 버텨야 하는 대사관 안에서 그들은 각자 나라의 이득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여느 때와 같이 '저 나라 대사관이 어떤 로비질을 하는가-'하고 견제하고 있던 오후, 소말리아에 내전이 발발한다. 옅은 카키 베이지 빛과 하늘색 정장을 입은 한 대사관, 강 참사관과 연한 네이비, 진한 카키 계열의 정장을 입은 임 대사관과 태 참사관이 갑자기 발생한 폭동에 놀라 뒤로 물러서는 이 장면에선 인물들이 남 / 북의 구분대로 정렬되는 게 아닌, 자신의 의상 색과 비슷한 대립국 인물의 옆에 서며 남과 북의 구분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함께 구분 없이 섞이겠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를 견제하며 기사를 내고, 더 먼저 로비를 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하던 인물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에 모인다. 오랜 독재로 인해 쌓여버린 독을 뿜어내고 있는 반군들에게 당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 대사관에 온 것이다. 거리엔 분노와 광기가 가득하다. 대한민국 대사관에선 "우리는 친구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친구 같은 가족, 가족 같은 친구.."와 같은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건 평화, 친구와는 거리가 먼 폭력뿐이다. 국가 간의 평화를 위해 오갔던 돈은 독재를 도왔고 부패한 정부와 분노한 국민이 대립한다. 평화를 위해 오간 돈이 그 나라의 국민을 괴롭게 만들다니. 아이러니하다.
“지금부터 우리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
한 대사관은 북한 대사관과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위험한 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한 집에 들이다니.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이 걱정보다 앞서 한 대사관과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2배로 늘어난 인원수, 좁아진 식탁과 부딪히는 젓가락. 평생 한솥밥을 먹을 일 없는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신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앉아보니 그들은 살인 병기도 반역자도 아닌, 그냥 같은 사람이었다. 조국도, 수교국과도 당장 연락되지 않는 고립된 상황에서 어쩌다 식구가 되어버린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의기투합하게 된다.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참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밥을 먹는 식구가 되는 것만큼 끈끈하고 질긴 사이도 없는 것 같고,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들 사이의 감정을 바로 공감할 수 있게 되다니. 역시 한국인은 밥인 건가.
"같이 살 방법이 있는데, 해볼 건 다 해봐야지."
우린 이태리, 너넨 이집트. 살 사람은 살자고 다짐했지만 한 대사관과 강 참사관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고립된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지, 이곳을 빠져나갈 기회가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는지. 같은 상황을 해쳐온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태리 대사관에서 구조선 소식을 기다릴 때, 한 대사관이 강 참사관에게 묻는다. "(북한 사람들)내쳤어야 했는데, 그치?" 강 참사관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강 참사관은 태 참사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북한 사람들을 같이 살아나가야 할 동료가 아닌 정치적인 의미의 복덩이라고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침묵은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단번에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기회를 잡은 인물들은 버스를 타고 모가디슈를 탈출한다. 버스에 앉아 신기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거리에서 총을 들고 서있는 소말리아의 아이들.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 씁쓸한 풍경을 놓치지 않고 복기한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소말리아 아이들이 사람을 향해 총을 들이대며 장난을 치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북한의 아이들은 소말리아 아이들에게 맞춰 으악-하면서 쓰러지는 시늉을 하고 소말리아 아이들은 그를 보며 웃는다.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총을 쏘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며 웃을 수 있는 소말리아의 아이들의 손에 진짜 총을 쥐게 하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아낸 현실의 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더불어 다른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참 인상 깊었다.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위험을 피해 대한민국 대사관에 들어갈 때, 북한 대사관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북한의 아이들은 화려하게 진열된 88올림픽의 기록과 대한민국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탈출에 성공한 후 비행기에서 내려 각자의 길로 갈라지는 순간엔 생사고락을 함께한 정이 든 친구와 인사를 나눌 수도 눈을 맞출 수도 없었다.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고, 비슷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갈라진 두 갈래 길로 걸어가게 만든 하나의 다름이 가진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하지만 잠시나마 그걸 뛰어넘은 우정과 인류애가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생존이란 본능 앞에, 결국은 같은 사람이란 이해 아래에서 힘을 합친 인물들의 우정이 아름답고 결국엔 조용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 처연하다.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달리는 느낌이었다. 함께 뛰고 호흡하고 이해했다. 마지막에 닿아서는 함께 탄식했고, 여러 감정을 조금씩 깎아낸듯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특히 태 참사관이 유명을 달리하는 장면을 볼 땐 바짝 올랐던 긴장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공격적이고 예민한 모습을 보이며 극의 긴장감을 높이던 인물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 그게 참 마음 아팠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뤄낸 탈출과 생존이라는 결과물 앞에서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한 그가 못내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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