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8-28 12:05:56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저번주와 동일한 성적을 기록한 이번주 박스오피스 ! 오펜하이머가 230만명을 넘기고 1위 유지, <콘크리트 유토피아> 2위, <달짝지근해: 7510>가 3위를 유지했습니다. 한편 <엘리멘탈>이 누적관객수 700만을 넘어섰다고 하는데요! 8월 4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누적관객수와 분석까지 함께 하실까요?
[국내박스오피스]
<엘리멘탈>이 700만을 넘기며 픽사 작품중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되었고, <밀수>가 5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오펜하이머>가 개봉 2주 차에도 1위 유지에 성공하며 꺾이지 않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매율 역시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어 <오펜하이머>를 대적할 작품은 없어 보입니다.
이어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3주 차 누적관객 수 32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북미박스오피스]
게이머에서 레이서가 된 소년의 실화 스토리를 담은<그란 투리스모>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지난주 1위였던 <블루 비틀>이 3위까지 떨어졌으며<바비>가 2위, 7천8백억 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하며 올해가장 크게 흥행한 북미 영화가 되었습니다.이어 <오펜하이머>는 4위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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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 둘의 광기
그토록 기다리던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나서 '아 언제 개봉날 오냐'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소처럼 일하는 근면성실함 덕에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또 <문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디즈니 시리즈도 있었다! 오스카 아이작의 1인 다역 연기 보는 맛에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뭐 같은 사회복무요원 노예생활에서도 마블 덕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야에 무려 오후 반가를 쓰고 갔던 극장! 영화 자체는 나에게 엄청 재밌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은 기대치를 충족한 느낌이 좋았다. 샘 레이미 감독의 필모그래피 <드래그 미 투 헬>, <이블데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몇 군데 보여 보는 재미도 좋았다. 만약 안 본 분이 있다면 난 추천하고 싶다.
아. 안 본 분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완다 비전> 시리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없고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기 싫다 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내용 요약이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크 홀드의 존재와 비전의 존재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웬만하면 <완다 비전>을 구독해서 보는 걸 추천드린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요약본 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브루스 캠벨'이라는 배우가 감독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피 단골손님이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이 뭐 영화 자체에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배우의 등장이 갑자기? 싶은 구석도 있을 것 같다. 사전에 알려진 대로 호러 맛 첨가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또한 샘 레이미의 이름값과 어울리는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올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엄청났다! 아,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고 싶다. 이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읭? 싶으실 수도 있는 부분을 글로 풀어쓰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의 폭넓은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스칼렛 위치
이게 <완다 비전>을 봤는지 유무가 극 이해에 영향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다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봤겠지? 잠깐 언급하자면, 비전은 완다에게 타노스의 마인드 스톤 회수 방지를 위해 자기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한다. 완다와 비전은 서로 연인관계였기에 완다는 당연히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을 결심하는 완다. 어벤저스를 위해 자기 손으로 연인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타임 스톤을 활용해서 비전을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머리에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죽는다.
다시 <완다 비전>으로 돌아간다. 완다의 시트콤은 끝이 났다. 연인이 떠난 세상을 받아들이는 완다. 자기기만의 원인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에는 소드가 있었다. 실드와 유사한 조직인 소드. 소드의 국장이라는 놈은 비전의 몸을 오체 분시 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원 때문에 다. 고작 돈 때문에 내 연인을 죽이려고 한다. 국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한다. 완다의 동의도 없이 비전을 무작정 끌고 갔다. 그리고 그 해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완다. <시빌 워>에서 부터 시작해, 온 세상이 그녀에게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다. 멘토였던 스티브 로저스와 호크아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닉 퓨리? 의무만 주고 혜택은 뭐 준 게 있었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희생해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던 완다. 그녀에게 행복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에 돌아가려고 애쓴다. 굴곡진 그녀의 삶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유일한 전성기였다. 현재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돌리는 완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완다 비전>의 빌런 아가사가 말해준 다크 홀드를 꺼내는 완다. 그렇게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 전우주적으로 강력한 마법사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완다는 이 힘을 이용해 멀티버스를 파괴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고 싶어 한다.
짧게 완다의 서사를 써 봤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완다 비전>과 인피니티 사가의 모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하나라도 안 본 분은 영화의 갑작스러운 호러영화 전개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과수원이 지옥도로 변한다고? 갑자기 완다가 스티븐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고?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오기 이전에 완다는 이런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봤던 스타크 폭탄. 너무 어릴 때 하이드라와 엮여 생겼던 능력. 이 덕에 날 괴물 취급하는 세상. 히어로 노릇하다 떠난 오빠와 비전. 마음 둘 데 없이 자기 인생 찾아 떠난 선배들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녀가 희생해야 할 건 많았는데 세상이 해준 게 있을까? 솔직히 소드/실드/어벤저스가 도움 된 거라곤 비전의 오체 분시 직관이었다. 뭐 <시빌 워>에서도 그녀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전 세계가 두들겨 팼으니 어느 정도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그녀의 흑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크 홀드를 펼치기 전에 슈퍼히어로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내면이 뒤틀린 인간이다. 유일한 행복이라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인데, 히어로 짓 해서 얻었던 것도 없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적인 내면묘사로 인해 인물의 성격이 뒤틀렸고 이는 곧 <완다 비전>으로 이어진다. 아마 슈퍼 히어로서의 선함이 내면에 우세하다면 웨스트뷰 마을 주민들을 세뇌시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본작에서의 살육극은 완다가 MCU에 존재하며 갚아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전체에 대해서는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 이유
극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다. 슈퍼 히어로서의 닥터 스트레인지이며, 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마블의 영화를 꾸준히 정주행 했다면 그의 서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초반부다. 이상한 아저씨가 스티븐에게 스윽 나타나서 '정말 그것 빼곤 방법이 없었냐?'라고 묻는다. 스티븐은 대답한다. '응. 그거 빼곤 없었어'라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크리스틴과 대화한다. 그녀가 스티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어차피 우리는 안 됐을 거야'라고. 크리스틴 역시 '그 방법 빼고는 없었다' 식의 답을 한 것이다. 사랑에 미련이 남은 스티븐에게 비수가 꽂힌다. 그리고 마음이 깨진다. 마치 유리가 깨진 시계처럼. 정말 그 방법 빼곤 없었을까?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한 듯 보인다.
다른 스트레인지는 디펜더 스트레인지(꽁지머리 스트레인지)이다. 아메리카 차베즈와 멀티버스를 여행하다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사망하는 스트레인지. 그는 아메리칸 차베즈의 능력을 뺏으며 '이것 빼곤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차베즈를 살상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 스트레인지는 시체가 된다. MCU로 시체가 이송되고, 이 꽁지머리 스트레인지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극후 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슈프림 스트레인지다. 슈프림 스트레인지는 본인을 희생해서 타노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이언맨이 메인 세계관에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가 추앙받는다. 그러나 슈프림 스트레인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다크 홀드를 이용해서 멀티버스를 여행했고, 이 덕에 타노스 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내 기억상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 빼곤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의 행적을 뒷받침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변종 크리스틴이다. 크리스틴은 스티븐에게 '그 역시 독선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언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믿지 않았다.
네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역시 독선적인 판단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틴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한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이것에 대현 여파로 그 역시 흑화 했다.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수도 없이 밀어 죽여왔으며 메인 유니버스의 스티븐에게도 다크 홀드를 이용한 교환을 요청한다. 당연히 거절하는 스티븐. 이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요약하자면 역시 타인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역시 자기가 선택한 해결책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네 명의 스트레인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틴의 대사 '모든 스트레인지는 다 똑같군요'로 다시 재현된다. 그리고 이 독선적인 선택을 다른 주요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바로 완다다. 사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완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크리스틴/완다의 두 아이)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해 흑화 했으며 역시나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아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 이름이랑 외모만 다르다 뿐이지 완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MCU 스티븐의 대결이 완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완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인가? 와도 닿으며, 부제에 Madness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스티븐은 완다만큼 미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크 홀드가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역시 그걸 이용해서 스칼렛 위치를 저지했다. 그럼 그게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아닌가? 그가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그의 이런 광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변종 크리스틴과 변종 스트레인지를 투입해서, 자기가 쌓아놓은 이 '내로남불'과 마법사의 운명론을 서서히 깨트린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을 거라 믿었던 스티븐.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웠던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해 이제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그가 슈퍼히어로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유이며, 그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네 명의 스트레인지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변종 스트레인지의 모순이 완다와 유사해져 그의 성장 서사를 만든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빠른 퇴장?
극에 흥미로운 집단이 나왔다. 바로 일루미나티다. 일루미나티는 원작에서 굉장히 똑똑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변종 모르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잔인하게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특히 캡틴 카터와 변종 미스터 판타스틱은 어린이날 전날에 나온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잔인하게 죽었다. 찰스 자비에는 X맨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강력함 절반도 못 갔다. 얼핏 보면 슈프림 스트레인지가 다크 홀드를 써서 타노스를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 어느 정도는 이 일루미나티의 퇴장이 허무했다. 다른 세계의 어벤저스 같은 존재들이 마법사 한 명에게 먼지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난 이게 필요한 연출이라고 봤다.
첫 번째. 클리셰 뒤집기다. 우리가 익숙하던 사람들이 나왔다. 변종 모르도, 찰스 자비에, 변종 캡틴 마블, 캡틴 카터, 미스터 판타스틱 모두 사실 <왓 이프..?>와 <인휴먼즈>, X맨 시리즈 등 기존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집단이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찰스 자비에의 경우 본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세계관에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종 모르도도 소서러 슈프림이고. 캡틴 마블은 그냥 세고. 블랙 볼트는 입 열면 엄청 강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인물들이 스티븐과 차베즈, 웡과 동맹을 맺어서 완다를 상대하면 사실 좀 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이 평이하게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인피니티 워>가 생각난다. 이미 뒤집는 이야기를 몇 번 썼던 샘 레이미가 이걸 눈 뜨고 패스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완다가 울트론이고 뭐고 다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맨몸 히어로가 스티븐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들과 비등하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두 번째. 후반부에 드러나는 맥거핀 '비샨티'의 존재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에서도 썼듯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성장 서사가 중요한 영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오케이. 어느 세계관이던 궤변이 심한 스트레인지는 넣었어. 그리고 그 아치 에너미로 완다도 넣었어. 그러면 완다가 엄청 세야겠지? 그럼 그 완다가 세진 이유는 뭐야? 다크 홀드겠지? 근데 다크 홀드가 중요해? 아니야. 결국 중요한 건 다크 홀드를 쓰는 스티븐의 모순이야.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쓰게 만들어야 해. 멀티버스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완다가 아바타를 조종하듯 스티븐도 마찬가지의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 이를 위해서 비샨티의 존재에 힘을 점점 더 주게 된다. 비샨티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사용하는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완다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크 홀드에 의해 강해진 완다. 일루미나티를 바사삭 가루로 갈아버린다. 그럼 이 강해진 완다와 상대하기 위해서 비샨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비샨티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일루미나티는 필요했다. 스티븐의 모순을 보여주는 도구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일루미나티 역시 스티븐과 똑같은 모순을 범했다. 일루미나티는 스티븐에게 '완다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는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그들 역시 스티븐과 같은 실수를 범했고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난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 때문이라도 그들이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각본상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완다의 사망?
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도 모른다. 난 안 죽었다에 건다.
일단 배우가 마블과 재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고또 <호크아이>의 킹핀처럼 일부러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후속작과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나와주세요.. 히히..시계의 의미?
이 시계라는 매개체는 사실 영화 리뷰계의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다 근데 이 시계가 깨졌다? 당연히 그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븐에겐 미련이 있다. 크리스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질해진 스티븐. 사랑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전해지 못했던 마음을 크리스틴에게 전한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고치는 신이 나온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싸우는 자아에 대한 꿈을 꾸고 시계가 부서진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신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타났다. 내적인 성장 이후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마법사의 예언이 아닌, 나와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믿으니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슈피 히어로서의 성장이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의 진보와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언맨 2>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샘 레이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호러 분위기였다. 완다가 거울에 갇히는 장면 인상 깊었다. 또 어디에선가 좀비같이 튀어나오는 장면, 물웅덩에 눈 하나 짠 나오는 장면, 자비에의 죽음, 메이크업까지 섬세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하이라이트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가 영혼을 가지고 망토처럼 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멀티버스 내부 묘사나 가르 간 토스 외면까지 판타지에 의존하는 부분도 꼼꼼함이 가득했다. 샘 레이미라서 가득한 CG 느낌? 또 사운드도 몰입하기 좋았다. 아마 피아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감이 단 1도 없다. 고전적인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과연 1등 공신인 셈이다. 이 외에도 초반부 가르 간 토스를 사살하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엔딩신에선 <드래그 미 투 헬>이, 좀비 비주얼은 <이블데드>가 생각났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음표 전투신 좀 오그라들었다. 너무 샘 레이미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다. 굳이 음표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주변 물건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완다 비전>이 강제되는 부분은 라이트 하게 즐기는 분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뭐 뭘 만들든 제작자들 마음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두 마법사의 광기를 보여주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 잘하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1인 4역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미묘하게 달라야 한다. 그냥 대놓고 다른것도 뭐 어렵겠지만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신기할 정도. <문나이트>의 오스카 아이작을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냥 빙의한 사람 같았다. 특히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변종 크리스틴과의 대화신이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건 누가 보면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다른 배우 중 놀란 사람은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분노. 슬픔. 당황. 행복회로 굴리는 모습. 광기. 눈물. 모든 것을 소화하는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또 일단 비주얼적으로 너무 예뻤다. 피칠갑을 해도 미모는 못 숨겼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스타성 만으로도 티켓값을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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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누구의 무엇의 베테랑인가
- 믿고보는 황정민. (그 당시)조금 믿고 보는 유아인.더 믿고보는 오달수, 유해진.보면서 생각났던 것은 황정민의 다른 영화 '부당거래'였다. 같은 경찰인데, 둘 다 껄렁거리는 마찬가지인데 한 명은 아주 그냥 정의롭고 한 명은 아주 그냥 안타깝다.'베테랑'은 무언가에 전문가인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들은 어떤 것에 베테랑 이었을까?경찰 중에 베테랑, 부자계의 베테랑. 부자계의 베테랑은 사기와 거짓의 베테랑이었을까 싶으면서도 돈 버는 일의 베테랑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사기와 거짓이 곧 돈을 버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의 베테랑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도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통쾌하니까 그냥 넘어가자.개인적으로는 류승완 감독을 좋아한다. 그의 똘끼를 좋아하고, 그 동생의 똘끼도 참 좋아한다. 어느 배우가 류승완 감독에 대한 평가를 '동생 류승범이 양아치 연기의 달인이라면 형 류승완은 양아치다' 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무엇이라고 했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 류승완의 그런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류승완 감독 영화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정두홍'이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배우로도 나왔었다. 아, 그 때 남자 주인공은 류승범이었지.여튼 '베를린'에서는 나름 고급진 액션을 감독했었는데 이번에는 약간... 생활형 액션부터 차량 액션까지 보여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차량 액션은... 엄청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사설을 뒤로 하고 영화만 이야기 하면..잘 만든 재미있는 오락영화, 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 씁쓸했다. 그럴 수 밖에. 나오면서 했던 말은 하나 "씁쓸하구만. 저렇게 들어가도 특별사면으로 나오겠지?"참, 순간적이었지만 현실적인 평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아직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유전무죄, 무전 유죄' 이 말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지 당해본 사람과 없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재벌집, 그리고 연예계의 씁쓸함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었다. 연예계 더럽다 더럽다 말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이 거의 없으니 다들 뜬 소문으로만 알고들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쓰인다는 것은 전체가 아니더라도 일정부분은 사실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어떠한 창작물이든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어쨌든 통쾌하다. 그리고 조금 믿고보는 유아인은 이제 그냥 믿고 보는 유아인으로 바꿔야 겠다. 이 배우, 연기 잘하네.
배우와 스토리, 음악, 까메오까지 즐거웠던 영화다.
아, 하나 영화 속의 내용에서 정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유아인이 말한 '어이'는 어이가 아니라 어처구니다. 멧돌의 손잡이는 어처구니라고! 궁궐의 처마에 유인원처럼, 인류의 진화처럼 되어 있는 아이들 이름도 어처구니! 멧돌의 손잡이 이름도 어처구니!하지만 '어이없다'와 '어처구니없다'가 널리 쓰이고 있어서 둘 다 표준어로 삼는다고 한다. 사실 영화의 내용이나 흐름상 어처구니보다는 어이가 더 잘어울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지만. 결국 유행어까지 되었으니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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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록한 세계에서 이야기는 돌고 돌아
세계는 발명되는 것이지 발견되지 않는다. 전체가 곧 각각의 합이라면, 개인이 느끼는 감각의 총체적 집합을 통해 에도 시대 일본의 전반적인 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다. 하늘이 이어져있어 이 나라와 (기껏해야 가까이는 조선과 명나라뿐이었을) 저 나라들 바깥의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시대, 더군다나 배를 한참 타야만 수도로 나갈 수 있는 시골 마을에서라면 ‘세계’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개념이다.
나라를 위해 고언하다 면직된 사무라이 출신의 겐베이는 고명딸 오키쿠와 함께 빈곤층의 공동주택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 그들에게 계급적 추락은 별 타격이 없는 일이든가 아니면 그들이 변화에 원체 빨리 적응하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왜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평등이란 언어가 발명되기도 전에 평등의 감각을, 평등해야만 한다는 정언명령을 몸에 새겨 갖고 태어나는 것 같은 사람들. 시대에 따라 예수나 붓다 같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을 사람들.
겐베이는 올곧고 열려있는 사람답게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빠르게 친절한 ‘선생님’으로 인식되고, 불가촉천민처럼 취급되는 똥지게꾼 청년 츄지와 야스케를 포함한 모두와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츄지와 야스케는 똑같이 가난해도 가장 만지기 싫고 보기 싫은 배설물을 다루는 업에 속한다. 그 사람들 앞에서, 역류한 변소 앞에서 코 막고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겐베이다. 오키쿠 역시 겐베이의 성정을 똑닮은 사람. 그는 절에 나가 빈민층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
겐베이는 또한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는 유일한 마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게 최고의 말이야.”라고 일러주곤 운명을 받아들이러 가는데, 공교롭게도 츄지가 연정을 품은 상대는 그의 딸 오키쿠다. 이날 겐베이는 옛 후배였던 사무라이들이 청해온 결투 끝에 살해당하고 아버지를 지키려던 오키쿠도 목을 다쳐 목소리를 잃는다. 비극적이고 고전적이고, 겐베이의 말을 빌리자면 '뒤떨어진' 죽음 전후의 각 장 제목이 묘하다. 원통한 오키쿠. 분노한 오키쿠. 기력을 잃어 방에서 칩거하고 한 계절 넘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오키쿠.
츄지는 오키쿠를 걱정하고 츄지에게 똥지게꾼이 되라고 권유했던 형 야스케는 원래 하던 대로 할 일을 한다. 시대가 시대이지 않았다면 아무리 격하됐대도 전 사무라이 집안의 따님인 오키쿠와 천민 중의 천민인 츄지는 절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정쟁에 휘말린 겐베이가 파문되지 않았다면 오키쿠가 빈민들의 연립주택까지 끌려내려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850년대 후반, 메이지 유신이 채 5년도 남지 않았고 번은 막부의 사절단을 시해하기도 하는 혼돈의 시대라면 어떤 반체제적인 사랑이든 가능해진다.
계절이 몇 번 더 흐르고 오키쿠는 조금씩 회복하며, 츄지는 기어이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요?”란 질문에 수줍게 끄덕이는 오키쿠에게 차마 말로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는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그의 마음이 너무 크고 절절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눈이 소복이 쌓일 긴 시간 동안 하늘과 땅을 번갈아 계속 가리키고 두드리고 오키쿠를 가리키고 자기 가슴팍을 치는 반복된 모션으로 오키쿠를 어리둥절하게 할 뿐이다.
츄지와 오키쿠 사이 싹트는 마음만큼이나 야스케의 이야기-성,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치가 눈길이 간다. 야스케는 ‘본래’ 지게꾼으로 시작한 사람이라 처음엔 폐지를 주워 팔다가 사정이 정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지게꾼이 된 츄지와 출발부터 다르다. 츄지는 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글을 배우는 일에 대한 일말의 동경을 가졌고,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신분에 대한 불만 섞인 자각이랄까 확장으로의 욕심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는 젊은이다. 하지만 야스케는 무례에 발끈하되 운명에는 저항하지 않는다. 야스케에게는 성실하게 하루하루 일해 먹고살며, 종종 극장으로 놀음을 가는 취미만이 그와 남을 다르게 하는 자의식의 전부다.
야스케는 심지어 분별없는 상층민 고용주가 그들에게 똥지게를 통으로 들고 뿌렸을 때, 그래서 츄지가 벌떡 일어나 화낼지 말지 고민하던 그때조차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무릎 꿇고 먼저 잘못을 비는 이다. 이상하게 비굴하지 않은 그의 속죄는, 고민 없는 순응보다는 고민을 이미 모두 끝내버린 이의 체념과 요령 좋은 처세에 가까워 더 슬프다. 야스케가 웃자 망연히 서 있던 츄지까지 덩달아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하위계급(혹은 소수자)의 웃음은 언제건 무조건 권력자를 불안케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시대가 그를 그냥 그렇게 초연히 비껴서 있게 두지 않는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번 쫓겨나고, 똥을 맞고, 더러운 파리 소리를 듣고, 그 꼴을 오키쿠에게 목격당해 수치를 겪기까지 한다. 오키쿠와 츄지의 로맨스가 살금살금 전개될 때 그 옆에서 흐릿한 관찰자의 위치를 유지하던 야스케는 돌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야기꾼이 되는 거란 말이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츄지조차 흰소리를 하는 것처럼 여상히 넘겨버린 이 말이 사실 그의 가장 깊은 곳에 그도 모르게 잠재된 소망일지니.
야스케는 실제로 이야기를 잘한다. 그의 넉살은 츄지도 오키쿠도 (아직) 따라할 수 없는 겹겹의 애환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성실은 실제로 한 마을을 굴린다. 그가 오지 않으면 변소가 넘친 공동주택 인근은 아예 기능이 마비되고 만다. 에도 시대 막부 권력이 붕괴되고 ‘세계’가 도래하고 유신과 전쟁이 찾아오기 직전의 1858~59년, 이 마을에서 가장 천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한 사람을 고르자면 다이묘도 유지도 불경 외는 법사도 아닌 야스케인 것이다. 야스케를 겁박해 쫓아낸 한 무사의 집에서 내내 노름하던 동료 무사 중 하나가 정겹게 “아, 고생하는구먼 자네. 하지만 우리보단 자네 처지가 나을지도 몰라!”라고 인사를 건넨 것은 그가 (겐베이처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야스케는 가장 낮은 곳에 도사린 폭발적인 잠재력을 상징하는 이야기의 조각이다. 가장 천한 것과 가장 고귀한 것, 먹고 싸는 일, 이곳의 사람과 저 집의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순환하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 X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에무시네마 24/02/25 미니 GV
- 흑백 - 컬러 교차는 왜?
사카모토 준지 감독 : 일단 개인적으로 흑백극을 좋아하는데. 현대극을 찍으면서 흑백 시도하면 의도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맘껏 흑백일 수 있는 영화 찍고 싶었다. 단편집 영화이기 때문에 각 장의 엔딩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체 흑백으로 하면 옛날에 만든 영화인가 하고 착각할 수도 있고.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 기본적으로 순환형 경제에 대한 의식을 저변으로 삼은 영화인데, 이 ‘순환형 경제’란 현대에도 이어지는 얘기이기 때문에 컬러를 통해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려 했다.
- 일본의 ‘좋은날 프로젝트’(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영화) 일환으로 시작된 영화. 만든 계기는?
하라다 미츠오 : 삼십여 년간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파서 잠시 영화계 떠난 동안 우연찮게 환경과학자들을 만났다. 일반 대중에게도 드라마성을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전하고 싶어졌고, 그게 바로 여생 동안 만들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가 순환 경제의 최고봉이었다고 들었다. 과학자들이 많은 조언을 줬고, 분뇨의 순환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고 싶었다.
(감독님 반응은?) 감독님은 흔쾌히 받아들임… 그래서 심지어 처음 시나리오 제목은 ‘에도의 똥’이다…
- 똥은 어떻게 만드셨는지...
사카모토 준지 : 거리에 뿌리는 거나 일반적인 씬에 쓴 건 박스로... 입에 들어가는 장면에선 배우가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밀가루 글루텐을 썼다
- 현대 일본영화보다도 1900년대 일본영화 같았는데, 촬영 관련해 옛 느낌을 살리기 위한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사카모토 준지 : 시대극 두 번째로 만들어보는데, 이전 것은 사실 영화화되지 못했지만 공부는 많이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 다음 시대극은 완벽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검토하다 보니 그 시대 감독님들은 오히려 자유로웠고 극에 많은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현실의 속박을 좀 신경 쓰지 않고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사와 아키라는 흑백 영화를 찍은 대표적 감독인데 음영 대비를 위해 먹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방법도 참고하고, 세트에 분무기로 물 뿌려서 흐릿함과 더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흑백이라 더 도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배우들도 많이 노력해주었다. 쿠로키 하루는 마스크부터 기모노를 잘 소화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그 자신도 기모노를 입고 사는 방법이나 인사법을 공부해오기도 했다.
- 세계라는 단어 없었던 에도시대를 콕 집어 배경으로 한 이유?
270년간의 에도시대 중 말기를 표현했다. 조선 등 쇄국 정책 펴던 몇 안 되는 나라들과 함께 일본이 문호 개방하라는 압력 받던 시대여야 했다. 외부와 일본이 섞이려던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세대를 어떻게 볼지… ‘세계’를 굳이 끌어들인 후 삼 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세계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제작하지 않았다면 제목에 세계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 라스트씬의 볼록하게 찍은 숲의 의미는?
스님의 세계에 대한 설명, ‘여기서 출발하면 결국 반드시 저기서 돌아온다는 의미’를 구체화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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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조경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조경가 정영선!
영화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정다운
개봉 일자: 2024년 04월 17일
출연진: 정영선
시놉시스
조경가 정영선은 대한민국 곳곳의 도시에서 자연 경관을 조경해왔다. 정영선의 작품들 중에는 식물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많다고 한다. 그중에 서울의 도심 속에 있는 선유도 공원부터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이 있고 서울아산병원 신관 앞에도 조경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다녀간 발자취에는 수많은 식물들의 정원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조경가 장영선의 자연 사랑!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점인 사계절을 토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컨셉에 따라 정영선이 만든 조경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건 식물인데 식물에게 말을 걸고 식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본다. 또한 장영선의 조경 컨셉은 삭막한 도심 속이나 건물들 사이로 식물들이 살아있는 자연의 위대함을 자아낸다.
자연을 감상하며 느낀 영감을 조경 설계도에 색칠하고 그것을 자신의 조경 업체 직원들과 함께 만든다. 굵은 색연필로 칠하는 그녀의 정성 들인 작업에는 조경에 대해 얼마큼 진심인가를 보여준다. 세세하고 꼼꼼한 그녀의 조경 솜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도 10년이 넘어야지 알아듣는다고 할 정도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란?
조경가 장영선이 추구하는 건 미래의 아이들에게 병든 지구가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지구를 선물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자에게도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자신이 일궈놓은 꽃밭에서 놀게 해주고 꽃의 씨앗을 심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녀가 추구하는 건 아파트가 빽빽한 도시 경관이 아닌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 경관이다.
정영선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고 돌아다니며 옛 선비들이 서로 시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생각난다며 자연은 하나님이 만든 위대한 조경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정영선은 처음에 자신이 시인이 될 줄 알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조경 작업에 있어서도 시인들의 시를 인용하기 때문이다. 영화 인트로에서 나오는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은 보는 관객들에게 조경가 정영선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풀이 눕는다
비를 돌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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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
킹덤 : 아신전
줄거리
조선을 뒤흔든 좀비 사태, 그 시작에는 아신이 있었다!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
숨은 의미 찾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해석이니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조선의 북녘 끝자락, 압록강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한 번호부락.
애매한 위치만큼이나 마을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도 애매하다. 그들은 100년 넘게 조선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조선인에게는 여진족이라 불리고, 여진족에게는 동족을 배신한 무리라고 손가락질당한다. 추성훈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 불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이라 불린다던.
아신전은 킹덤에서 내내 언급되던 '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타합은 성저야인이 모여 사는 번호부락의 대표자이자 백정이다. 도축을 하는 백정은 천민 계급 중에서도 멸시당하던 계급이었다. 고기를 사러 온 조선인은 타합이 자신들의 짐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대는 물론이고, 아이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 이 짧은 장면에서 번호부락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흙이 묻은 고기를 집어 드는 타합의 손에 피가 흐른다.
그것은 조선인의 것도, 여진족의 것도 아니다.그들은 영원히 조선에 섞일 수 없다. 그리고 섞이지 못함은 죄가 된다. 어떻게든 곁다리를 걸쳐보려 해도, 공물을 바치고 온갖 충성을 다해도 타합에게는 관직 하나 내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인과 여진족 사이에 고립되어 존재를 부정당한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타합은 결국 파저위에게 ‘피를 배신한 밀정’이라고 낙인찍혀 죽임 당하고 번호부락은 몰락한다. 어떻게든 조선 땅에 머물고 조선인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시대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홀로 남은 아신은 ‘독한 년’ 소리를 들어가며 그저 묵묵히 살아남는다.
아신은 아버지와 달리 ‘파저위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설정한다.
조선에 속하고 인정받는 일 따위는 그녀에게 관심 밖의 일이다. 그저 복수 외에 그녀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예를 자처해 아무 대가 없이 궂은 일을 해도, 사람들에게 험한 꼴을 당해도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에게 ‘사람 대우’ 받기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타합이 첫 장면에서 돼지를 썰던 것, 아신이 돼지우리를 거처 삼아 자던 점을 생각하면 고통이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호 부락은 끝끝내, 죽어서까지도 애도조차 받지 못하는 ‘오랑캐 마을’ 일뿐이다. 추파진에게 타합과 아신의 희생은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사실 아신은 계속 괴물이었다.
가족과 마을을 잃은 날, 아신의 마음에는 분노의 싹이 텄다. 저 대신 복수를 해달라고 민치록을 찾아갔으나, 민치록 역시 자신이 복수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신은 꾹꾹 눌러 담아 참아오던 분노를 터트린다. 복수를 시작한다.
“조선땅과 여진 땅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면, 나도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
괴물로 변한 번호부락 사람들은 아신의 내면을 그대로 표출한다.
추파진 군사들이 아신이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모조리 묻고 왔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실은 아신이 생사초를 먹였다가 모두 괴물로 변한 상태였다. 그 사실이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이유도 아신의 심경변화에 있다. 그녀는 산짐승을 잡아다 주며 그들을 보살펴왔다. 하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사람의 피와 살이었다.
마찬가지로 아신은 조선이 파저위에게 복수를 해줄 것이란 헛된 희망과 믿음으로 자기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그저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 나름대로는 분노가 튀어나오지 않게 참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원했던 것은 번호부락을 몰락에 빠트린 모두의 피와 살이었던 것.
음식을 나눠먹고 웃음이 가득하던 번호부락은 더 이상 없다. 아신 역시 안다. 행복했던 그 시절은 그저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복수심뿐이다.
아신은 생사초를 먹지 않았으나, 결국 피와 살을 취하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번호부락의 ‘번호’는 ‘울타리 번’, ‘오랑캐 호’ 자를 쓴다. 이를 의역하면 ‘북방 경계에 울타리를 이루고 사는 오랑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번호부락이라는 단어조차 그들을 오랑캐로 낙인찍고, 그들을 울타리에 가둬 북방에 고립시키며, 조선인과의 선을 긋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아신을 괴물로 만든 것은 과연 누구냐고.
진짜 울타리에 갇혀있던 것은 누구였느냐고.
피의 역사, 그 시작
감상평
이창과 서비를 만난 아신을 기대했는데,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킹덤 프리퀄이라니 재미없을 수가 없다. 이쯤 되니 작가 양반 진짜… 이 모든 걸 설계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빨리 킹덤 3도 내놔요.
아, 올 때 시그널 2도 같이…어쨌든 킹덤은 ‘피’라는 단어가 늘 관통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이창과 아신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도 그렇다. 쉽게 비유하자면 해원 조 씨가 슬리데린 같이 적법한 혈통, 순수 혈통을 중요시하는 편이라면 이창은 그리핀도르 타입이랄까.
마땅히 권력을 잡아야 할 핏줄이 없다고 믿는 이창이니만큼, 마땅히 죽어야 하는 핏줄 또한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창이 아신과 대립하더라도, 분명히 아신을 괴물로 여기지만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선다.
아신전은 피의 역사, 그 시작을 향해 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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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 자욱한 담배 연기로 써 내려간 참회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대한의군은 일본군을 기습해 승리를 거두지만, '안중근'(현빈) 장군은 일본군 소좌 '모리 다쓰오'(박훈)를 비롯해 사로잡은 포로를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만국공법에 따른 의로운 선택이었으나 이 결정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풀려난 모리가 곧바로 일본군을 이끌고 역습을 가해 안중근의 부대원을 전멸시킨 것. 그로 인해 안중근은 대한의군 동료들에게도 의심받고, 본인도 자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안중근은 좌절하지 않고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이동욱) 등 각자의 이유로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못한 동료들도 모은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사살해 먼저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해내기 위해. 하지만 일본군은 밀정을 통해 의거 계획을 입수하고, 모리 소좌가 안중근을 필사적으로 추격하기 시작한다.
안중근의 참회록
독립운동과 참회. 두 단어를 합치면 한 인물이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이다. 흔히 그의 시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적극 항거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 떳떳한 삶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하니까. '참회록'의 끝이 대표적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사실 두 단어는 연관성이 곧바로 보이는 조합이 아니다. 독립운동은 보통 뜨겁게 느껴진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할 준비가 된 의사와 열사의 용기로 가득한 단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은 오히려 공감하기 쉽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선망의 대상일 때, 그는 그들처럼 되지 못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기 때문. 때로는 슈퍼맨보다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가 더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은 일반적이지 않다.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장군이 주인공인데,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안중근을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윤동주 시인처럼 약점이 많은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의 내면에 가득한 부끄러움과, 부끄러움을 원동력 삼은 의거를 쫓는다. 그렇기에 <하얼빈>은 연말 상업영화로서는 다소 의아하면서도, 쉬이 잊지 못해 곱씹어 볼 영화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참회
참회. 윤동주의 <참회록>처럼 <하얼빈>을 관통하는 감정선이다. 모든 캐릭터는 각자 뼈 깊숙이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우덕순은 어릴 적 자기 자신의 언행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박점출'(정우성)과 공부인은 동생, 남편 대신 전사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가 있다. 김상현은 눈앞의 쾌락을 이기지 못한 스스로가 한스럽다. 마지막으로 안중근은 누구도 지키지 않는 국제법을 따른 대가로 동료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회한이 있다.
<하얼빈>은 크고 작은 서로 다른 후회와 회한이 모여 어떻게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는지를 밝힌다. 전반부에서는 제각기 연해주와 만주의 추위만큼 뼈아픈 한을 토해낸다.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일본군과 일제에게 그 한을 되갚아 주는 지를 보여준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때,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총성을 울린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독립운동가들에게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해낸다.
이러한 참회의 서사는 한 소품에 집약되어 있다. 바로 담배다. 정확히는 담배의 연기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독립운동가들은 끝없이 담배를 피운다. 두 명 이상이 실내에서 모이면 그 순간 바로 라이터나 담뱃불부터 찾는다. 기차 1등석에서도, 회의실에서도, 안가에서도, 기차역에 숨어서도 그들은 연달아 담배를 피운다. 4D 영화가 아닌데도 스크린에서 담배 냄새가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카메라는 흡연하는 사람보다 담배 연기 그 자체에 집중한다. 실내 공간에서는 햇빛, 전등 같은 광원을 카메라 정면에 위치시킨다. 자연히 배우 얼굴은 잘 안 보인다. 모자도 쓰고, 머리도 길다 보니 대부분 검은 실루엣처럼 보일 뿐이다. 이때 어두운 배경과 여러 실루엣 사이로 담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마치 지난 전투에서, 지난 임무에서 남은 후회와 반성을 담배에 담아 태워 날려 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이.
인간 안중근과 장군 안중근
담배 연기처럼 인물들 사이를 떠도는 참회는 때로는 답답하지만, 그만큼 절절하고, 또 뭉클하다. 참회가 모이고 모여 인간 안중근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 신아산 전투가 끝난 직후, 안중근은 대한 의군 동료들 사이에서 밀정으로 의심받는다. 승전 후 사로잡은 일본 소좌 모리를 포함해 전쟁포로 모두를 만국공법에 따라 석방했기 때문. 모리는 풀려나자마자 안중근 부대의 은신처를 기습해 독립군을 학살해 버린다.
겉보기에 안중근의 선택은 이상적이거나, 순진하거나, 어리석다. 힘겹게 찾아낸 밀정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밀정을 처결하지 않는다. 대신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이창섭의 말마따나 고결하다. 그의 신념이 결국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나비효과를 낳았기 때문.
안중근 덕분에 목숨을 건진 모리는 군인답게 죽지 못했다는 수치심에 시달린다. 또 민간인을 학살한 자신과 다른 안중근을 보면서 더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결과 모리는 안중근 추격에만 열을 올리고, 결국 이토를 제때 지키지 못한다. 밀정에게 베푼 자비도 일견 지나치게 순진해 보이지만, 종국에는 이 선택이 또 다른 독립운동가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인간 안중근이 선택이 장군 겸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돕는 셈이다.
이처럼 안중근의 신념이 끝내 보상받는 전개는 그의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후대가 보기에 그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고결하다. 수감생활 중 일부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3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하지만 <하얼빈>은 그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참회의 시기를 살펴보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사상과 신념까지도 감정적으로 감싸 안는다.
차갑게, 관찰하듯이
이처럼 이야기의 주제부터가 참회이다 보니, <하얼빈>은 타오르지 않고 냉정하다. 시작만 보더라도 차갑다. 안중근은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걸어서 연해주로 넘어가던 중, 얼음 위에 쓰러져서 못 일어날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하얼빈>은 이런 안중근을 그저 관찰한다. 별다른 부연 없이, 두만강 위에서 마치 삶의 의지를 잃은 듯한 안중근을 비춘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앞뒤 상황을 설명해 준다.
달리 말해 <하얼빈>은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선택과 임무를 따라가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정적이고, 멀게 느껴진다. 우선 한번 구도를 잡은 카메라는 웬만해서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 고정된 구도 안에서 인물의 동선을 담아낸다. 일본군과 추격을 벌일 때도, 만주 벌판을 누빌 때도 컷의 전환이 빠르지도, 많지도 않다.
또 멀리서 관찰한다. 때때로 클로즈업도 활용하지만, 감정적인 대목마다 일부러 한 발씩 뺀다. 절대 관객이 주인공과 함께 불타오르도록 만들지 않는다.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안중근이 통곡하면서 괴로워할 때도, 마침내 이토를 쏴 죽이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거리감을 유지한다. 원거리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앵글로 안중근을 관찰할 뿐이다. 이는 과거 회상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냉정하게 타오르다
그 결과 <하얼빈>은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곱씹게 하는 힘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본군과의 전투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육박전을 관찰하면서 승리의 쾌감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결국 자기 선택 때문에 겨우 살아남은 동료들이 모두 죽었다는 안중근의 죄책감, 속죄와 참회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겠다는 결심 모두에 강력한 설득력과 당위를 불어넣는다.
이는 장르와도 조화를 이룬다. <하얼빈>은 액션이 강렬한 <007>, <제이슨 본> 시리즈보다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클래식한 첩보물에 가깝다. 속마음을 파악하기 어려운 여러 인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아리송하게 만들며 서스펜스를 쌓는다. 기차 안에서 밀정을 찾아내고, 그를 역이용해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막으려는 일본군을 떨쳐내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이는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연상시키는 시퀀스이면서도, 참회라는 모티브를 장르적으로 영리하게 풀어낸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밀정은 누구인지. 그 배신자는 어떤 이유로 동료들을 버렸는지. 그리고 과연 그는 다른 동료들처럼 참회할 수 있을지. <밀정>에 비하면 투박한 듯 우직한 연출 곁들여지면서 이 장면은 강렬한 서스펜스와 반전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렇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다. 같은 위인과 사건을 영상화한 <영웅>과는 정반대 되는 경험이다. <영웅>이 당장 안중근과 함께 하얼빈역으로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면, <하얼빈>은 나라면 안중근처럼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혹여 밀정이 된 인물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모난 영화의 매력
위 장점이 모두 더해진 결과 <하얼빈>은 2시간 동안 힘 빠지거나 지루한 순간 없이 긴장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고 나간다. 먹먹할 때도, 엄청난 흡입력을 뽐내는 순간도 있다. 다만 이는 상업영화로서 마냥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달리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 때문.
감독의 전작과도 대조적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1시간 반 넘게 쌓아 올린 긴장감을 박 대통령 시해 시퀀스에서 모두 터뜨린다. 그에 반해 <하얼빈>은 그 긴장감을 터뜨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가슴에 응어리지게 만드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이토를 죽인 후 곧바로 사형 집행 장면으로 넘어간다. 죽음은 두렵지만, 내심 홀가분한 안중근이 참회록에 마침표를 찍는듯한 인상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도드라지는 작품은 아니다. 눈에 띄는 캐릭터도 부족하다. 그나마 박정민의 우덕순 정도가 생동감 있다. 나머지 인물들은 예상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캐릭터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 배우들이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역할 그 이상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하얼빈>의 흥행 성적은 더 궁금해진다. 의도한 분위기와 메시지를 살리기 위해 익숙한 클리셰나 흥행 공식은 과감히 내려놓은 영화이니까. 겨울을 배경으로 유사한 화법과 톤을 구사한 <남한산성>이 극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던 사례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오징어 게임 2>와 거의 동시에 개봉되는 <하얼빈>은 과연 관객들을 집밖으로 이끌 수 있을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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