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댄2021-08-16 13:21:18
그린나이트, 이끼 낄 명예 대신 선택해야 하는 것
데이빗 로워리의 신작 영화 <그린나이트> 리뷰
▲ 영화 <그린나이트> 포스터 영화 <그린나이트> 포스터 ⓒ 팝엔터테인먼트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성찰적 여정의 문을 열었다. 중세 유럽, 가웨인의 여정을 이끈 어느 크리스마스 게임처럼 말이다
영화 <그린나이트>는 상실의 의미를 다룬 작품 <고스트스토리>를 연출한 데이비드 로워리의 신작이다. 14세기 영국에서 집필된 작자 미상의 두운시 '가웨인경과 녹색의 기사'의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극중 가웨인경(데브 파텔)은 아서왕(숀 해리스)의 조카로, 아직 본인이 기사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왕족임에도 위대한 무용담이 없는 본인이 부끄러워 왕의 옆자리에 앉는 걸 불편해한다.
그가 쭈뼛거리며 왕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어느 크리스마스, 궁정에 의문의 존재가 찾아왔다.거대한 고목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한 녹색기사(랄프 이네슨)였다. 녹색기사는 본인과 맞서는 자에게 명예와 근사한 도끼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다만 그에게 했던 일들을 정확히 1년 뒤의 크리스마스에 되돌려주겠다고 말한다. 이 대결에 나선 자는 가웨인이었다. 그는 신념도, 대비책도 없이 녹색기사의 머리를 검으로 내려쳤다. 녹색기사는 잘린 본인의 머리를 들고 유유히 자리를 뜬다. 그리고 1년 뒤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웨인은 녹색 예배당을 찾아 나선다. 영화 <그린나이트>는 광활하고 신비한 대지를 방황하며 진정한 가치를 알아가는 가웨인의 모습을 그렸다.
게임은 왜 하필 크리스마스에 시작될까
게임은 왜 하필 크리스마스에 시작될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예수의 탄생, 두 번째는 빨강과 초록이라는 색채를 쓰기 적합한 시기라는 점이다. 가웨인은 어쩌다 저질러버린 녹색 기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색 예배당을 찾으러 나선다. 그리고 광활하고 신비로운 대지를 방황하는 내내 정령들을 마주한다. 정령들은 소년 강도들의 모습으로 또 언젠가는 머리를 찾고 있는 성녀 위니프레드의 모습으로 그리고 또 다른 언젠가는 안식과 매혹이 공존하는 성과 성주 부부로,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여우로 등장한다.
그들은 가웨인에게 자연이자 '기사다움'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가웨인은 그들과 엮이고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새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된다.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관용과 공경, 자선, 용맹함 같은 것들 말이다. 예를 들어 소년 강도들은 예수가 겪는 시련처럼 가웨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존재인 동시에-가웨인은 십자가 대신 나무에 묶였지만- 작은 친절, 관용에 대해 알리는 역할이었다.
그런가 하면 파리한 얼굴의 위니프레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태도, 이타성을 심어준다. 머리를 찾아주면 뭘해줄 거냐는 가웨인의 말에 왜 그것을 생각하고 하냐는 무심한 대사로 말이다. 온전히 머리와 숨이 붙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가 사실은 헛것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위니프레드는 가웨인이 현상이 아닌 본질을 보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이 일화는 또한 후반부 가웨인의 환상 속 사건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여정 중 몇 번이나 가웨인의 죽음이 암시되었던 바, 환상 속 그의 목은 이미 수년 전에 기능을 다한 것처럼 쉽게 떨어져 나갔다.
▲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녹색과 빨강을 언급한 이유
안락한 성에서 만난 성주 아내(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앞서 본 정령들보다도 영화 가이드 급으로 친절하다. 녹색은 생명의 색이자 부패의 색이고 빨간색은 욕망의 색이라고 직접 언급하기 때문이다. 다른 색 대신 두 가지 색의 특성만 소개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영화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관람객에게는 굉장한 힌트인 셈. <그린나이트> 속 무한한 자연의 녹색, 그리고 존중받지 못하는 왕의 머리 위 왕관의 이끼 낀 녹색을, 나중에는 넝마가 되어버리는 녹색 띠를 눈여겨 보라는 것이다. 또 대비하라는 것이다. 시작과 끝을 모두 담당하는 녹색에 비해 너무도 폐쇄적인 붉은 욕망을. 더불어 핏덩이 인간을. 여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을 적절하게 사용한 조명에서 가웨인의 심경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에도 훌륭했다.
이끼 낄 명예 대신
마지막 장면에서 가웨인은 징표로 가지고 있던 녹색 띠를 벗어던지며 이제 준비가 됐다고 말한다.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위적으로 목숨을 이어갔을 때 본인이 살게 될 삶에 대한 시나리오를. 이끼 낀 왕관처럼 유한하게 빛나던 생에 대한. 그는 이끼 낄 명예를 택하느니 겸허하고 단호하게 멍에를 끊는 쪽을 택한다. 사랑했던 여성 대신 '고귀해보이는' 인종의 여성을 반려인으로 맞는 생은 과연 명예로운가.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의 왕을 고귀하다 할 수 있는가.
▲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환상 속 왕이 된 가웨인의 뒤편 낯익은 초상화도 눈길을 끈다. 앞서 만난 성주의 아내가 그려준 초상화가 똑바로 놓여 있다. 성주의 아내가 그린 그림은 광활한 우주 배경에 가웨인의 상이 거꾸로 맺혀 있는 듯한 작품이었는데 다시 뒤집어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태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 그는 신비롭고 고통스러운 여정 뒤에 확실히 성장했다. 녹색기사 앞에 무릎을 꿇고 녹색 띠를 벗어던지던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녹색기사는 가웨인의 목을 베었을까
최후의 순간,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국 녹색기사가 가웨인의 목을 베었을 거라 추측한다. 자연이 위대하고 잔인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릇 훌륭한 기사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된다는 교훈을 주고자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가웨인이 1년 전 녹색기사에게 그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인류가 자연에게 행한 치욕이 고스란히 인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데이비드 로워리는 보여주고 싶었을 테다. 실제로 로워리는 한 인터뷰에서 "산 사람이 숲에서 뼈 더미가 되는 시간은 우주적 차원에서 볼 때 단 1초 정도면 된다. 우리는 사라져 먼지가 될 것이고 머잖아 땅엔 이끼가 낀다. 이 영화에서 그런 우주적 스케일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어느 쪽이라도 우주적 스케일이 느껴지기는 한다. 인간의 오만을 되돌려주는 자연은 자연스럽다. 인간을 용서하는 자연은 또 한 번 거대해진다.
▲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영화 <그린나이트>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로워리는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잘 구슬리기 위해 기능하는 기독교 윤리나 기사도 정신을 추앙하지 않았다. 명예욕에 대해서는 이미 영화 초반 가웨인의 연인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대사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왜 위대해져요? 좋은 걸로는 부족해요?"라고. 어머니 역할을 희생과 무한한 사랑의 아이콘으로 뻔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그는 기사도 정신으로 대변되는 너무나도 귀한 가치인 관용, 공경, 자선, 용맹함, 겸양과 같은 것들을 2021년에 다시 꺼내보고자 한 것이다. 녹색기사,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자연의 머리를 메론 한 덩이처럼 쉽게 베어버리는 수많은 가웨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세속적 명예, 가부장 문화, 목숨에 말 그야말로 '목숨 거는' 현대 인간들에게 영화 <그린나이트>는 더없이 시의적절하게 찾아온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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