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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2021-08-24 08:56:01

시간의 마술사는 낭비를 모르지

<팜 스프링스> 리뷰

외진 사막에서 사랑을 나눌 준비를 하는 나일스(앤디 샘버그)와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 결혼식에서 만난 둘은 꽤나 빠른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애틋하게 무르익을 무렵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나일스의 어깨에 박힌다. 혼란에 빠진 세라에 반해 의외로 덤덤한 나일스는 붉은빛으로 가득한 동굴 속으로 사라진다. 나일스가 걱정된 세라 또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녀는 이미 지났을 11월 9일 결혼식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 과연 세라에겐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친숙의 탈을 쓴 세련된 이야기꾼”. <팜 스프링스>는 우리에겐 이미 친숙해져 버린 시간여행과 로맨틱이라는 두 장르를 결합시킨다. 친숙한 소재는 관객에게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오용하면 진부함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맥스 바르바코우 감독에게 친숙함이란 위험보단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무기인 듯하다. 분명 다른 작품에서 봤음직한 장면을 능수능란하게 재구성하는 모습은 이번 작품이 첫 장편 영화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한다. 특히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의 예술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이끌어내는 모습은 ‘시간의 마술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획기적인 개입

<팜 스프링스>의 친숙함은 <사랑은 블랙홀>과 <해피 데스데이> 사이를 오간다. 바르바코우 감독은 두 작품에 대한 단순한 모방과 변형에 그치지 않고 색다른 시도를 꾀한다. 바로 ‘중간자의 개입’이다. 반복되는 시간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중간자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시간 속 기억의 축적은 주인공에게만 적용되기에 그들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미래를 예견하는듯한 모습으로 설득하지만 주인공들과 같은 시간을 적용받는 관객들에겐 지루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바르바코우 감독은 중간자의 개입을 통해 단순하지만 획기적인 방법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 동일한 시간 축 위에 다양한 인물의 등장

나일스, 세라, 로이는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상영시간이 한 시간 반에 지나지 않는 작품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다루기엔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팜 스프링스>는 인물들의 과거를 최대한 절제하고 11월 9일이란 하루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들의 행동에 따라 하루는 변한다. 매번 다른 시간 속에서 함께 쌓인 경험이 인물들의 과거가 되고 이는 곧 그들의 개성으로 자리 잡는다. <브루클린 나인>, <파고>, <위플래시> 등으로 대중에게 인증받은 배우들은 훌륭한 연기를 통해 각자 맡은 캐릭터의 개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작성자 . 이정원

출처 . https://brunch.co.kr/@nukcha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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