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2021-08-24 08:56:01
시간의 마술사는 낭비를 모르지
<팜 스프링스> 리뷰
외진 사막에서 사랑을 나눌 준비를 하는 나일스(앤디 샘버그)와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 결혼식에서 만난 둘은 꽤나 빠른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애틋하게 무르익을 무렵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나일스의 어깨에 박힌다. 혼란에 빠진 세라에 반해 의외로 덤덤한 나일스는 붉은빛으로 가득한 동굴 속으로 사라진다. 나일스가 걱정된 세라 또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녀는 이미 지났을 11월 9일 결혼식 아침에 눈을 뜨게 된다. 과연 세라에겐 무슨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친숙의 탈을 쓴 세련된 이야기꾼”. <팜 스프링스>는 우리에겐 이미 친숙해져 버린 시간여행과 로맨틱이라는 두 장르를 결합시킨다. 친숙한 소재는 관객에게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오용하면 진부함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맥스 바르바코우 감독에게 친숙함이란 위험보단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무기인 듯하다. 분명 다른 작품에서 봤음직한 장면을 능수능란하게 재구성하는 모습은 이번 작품이 첫 장편 영화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한다. 특히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의 예술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이끌어내는 모습은 ‘시간의 마술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획기적인 개입
<팜 스프링스>의 친숙함은 <사랑은 블랙홀>과 <해피 데스데이> 사이를 오간다. 바르바코우 감독은 두 작품에 대한 단순한 모방과 변형에 그치지 않고 색다른 시도를 꾀한다. 바로 ‘중간자의 개입’이다. 반복되는 시간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중간자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시간 속 기억의 축적은 주인공에게만 적용되기에 그들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미래를 예견하는듯한 모습으로 설득하지만 주인공들과 같은 시간을 적용받는 관객들에겐 지루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바르바코우 감독은 중간자의 개입을 통해 단순하지만 획기적인 방법으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 동일한 시간 축 위에 다양한 인물의 등장
나일스, 세라, 로이는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상영시간이 한 시간 반에 지나지 않는 작품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다루기엔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결국 <팜 스프링스>는 인물들의 과거를 최대한 절제하고 11월 9일이란 하루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들의 행동에 따라 하루는 변한다. 매번 다른 시간 속에서 함께 쌓인 경험이 인물들의 과거가 되고 이는 곧 그들의 개성으로 자리 잡는다. <브루클린 나인>, <파고>, <위플래시> 등으로 대중에게 인증받은 배우들은 훌륭한 연기를 통해 각자 맡은 캐릭터의 개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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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욕망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이나 지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실현하고 싶어 하는 ‘꿈’과는 엄연히 다르다. 삶에서 부족한 무언가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자라나면서 장난감을 비롯한 다양한 것을 욕망한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대부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건 인간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때론 괴롭게 하고 또 황홀하게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욕망을 채우는데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것을 탐하다가 그것이 채워진 순간, 그 황홀한 기분에 도취되기 쉽다. 그런 성취감은 점점 그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고 더욱 크고 완벽한 것을 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금기의 선을 쉽게 넘게 된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저 계속 앞으로만, 욕망에만 이끌려 가게 된다. 사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몰락하는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파멸로 이끄는 독약처럼 위험하기도 하다.
한 남자의 욕망의 변화를 따라가는 영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주인공 스탠튼(브래들리 쿠퍼)이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스탠튼은 영화 초반 아버지로 보이는 시체를 집에 묻고 불을 낸다. 그만의 장례식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영화는 그저 그가 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그가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우연히 만나게 된 유랑극단을 만나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나 그곳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와 그의 남편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는 스탠튼에게 그들의 독심술을 조금씩 알려주게 된다.
독심술은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스탠튼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를 만나기 전까지 스탠튼의 모습은 큰 욕망 없는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그가 독심술을 접하고 나서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간다. 그 이후부터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려 애쓴다. 극단에서 만난 몰리(루니 마라)에게 대시를 하고, 그에게 도시로 가서 자신들만의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스탠튼은 조금씩 대담하게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영화에는 스탠튼의 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를 미스터리로 두면서 스탠튼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극단을 떠난 이후 몇 년이 지난 모습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그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이어진다. 실제로 그는 독심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심령술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아주 작은 심리 술로 시작한 그의 욕망은 독심술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것을 발전시킨 심령술을 이용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친다.
심리학자 릴리스를 만나면서 더욱 욕망에 집착하는 스탠튼
후반부에는 심리학자인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를 등장시킨다. 스탠튼 역시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재능이 있지만 릴리스는 스탠튼의 심리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욕망까지 투영해보게 된다. 사실 이 두 사람이 만난 그 순간은 스탠튼이 가진 욕망의 선이었다. 스탠튼이 그 선을 넘는지 넘지 않는지는 그가 릴리스를 계속 만나는지 아닌지로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것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스탠튼이 술을 거부하다 처음 마신 순간이다. 그 이후 스탠튼은 욕망의 선을 완전히 넘어버린다.
릴리스의 이미지는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스탠튼이 이전에 만난 어떤 인물보다 화려한 느낌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만날 때, 스탠튼의 욕망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스탠튼과 같이 살고 있는 몰리는 사실 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조절하게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그가 가진 화려함 때문인지, 스탠튼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시켜 파국으로 이끈다.
영화 초반, 유랑극단에는 이상한 기인이 등장한다. 그 기인은 극단 주인(윌렘 데포)이 어디선가 데려온 술주정뱅이였다. 주인이 술과 마약을 미끼로 데려온 기인은 술을 얻기 위해 주인의 말에 따라 이상한 공연을 하게 된다. 기인은 공연에서 살아있는 닭을 물어뜯고 이상한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기인이 갇혀있는 곳에서 그를 만난 스탠튼은 기인이 하는 혼잣말을 듣는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난 이렇지 않았어”. 스탠튼은 그 말을 그냥 듣고 흘리지만, 그 말은 결국 스탠튼에게 다시 돌아간다. 영화 속의 그 기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미쌍관처럼 영화의 앞과 뒤에 비슷한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그 처음과 끝의 장면들을 곰곰이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화려한 파멸의 이야기를 담은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에는 소소하고 직접적이지만 아기자기한 유랑극단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있고, 후반부 스탠튼과 몰리가 고급스러운 무대에서 벌이는 공연도 화려하게 담겨있다. 마치 스탠튼의 욕망이 계속 크고 화려하게 변하는 것처럼 작은 불꽃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그 규모와 색감을 넓혀간다. 그러다 파멸의 순간 다시 회색빛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영화의 색감과 분위기, 음악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윌리엄 린지 그레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1947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이 있지만 이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한 2022년작은 영화판의 리메이크라기보단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다시 재구성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과거 영화들과 달리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지 않지만 한 남자의 욕망이 괴물처럼 무섭게 변해가는 과정을 고급스러운 화면과 분위기로 담았다.
이 영화는 스탠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진 남자가 자신만의 욕망을 가지게 되고, 결국 파멸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브래들리 쿠퍼는 원초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으면서까지 욕망으로 거칠게 달려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루니 마라, 토니 콜렛 같은 좋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나이트메어 앨리>
https://www.youtube.com/watch?v=KFUGkN-bf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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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 스토리> - '가벼운 영혼의 손으로 쓰다듬는 이별'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개봉일 : 2017.12.28.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로워리
출연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그로버 콜슨, 윌 올드햄
‘가벼운 영혼의 손으로 쓰다듬는 이별’
지독할 만큼 고요하게 변한 집안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추억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추억은 무거운 슬픔과 고통이 되어 남은이를, 다시 돌아온 이를 짓누른다. <고스트 스토리>는 그런 이야기다.
<고스트 스토리>의 포스터만 보면 8월에 잘 어울리는 공포영화일 것 같고, 예고편을 보면 <사랑과 영혼>같은 판타지 로맨스일 것 같다. 만일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고 ‘무서울 것 같아서’, ‘로맨스는 싫어서.’ 이 영화를 넘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영화가 주는 무게와 여운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
“사랑하는 이가 내 옆을 떠나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민해 보고, 그런 꿈을 꾸고 눈물 흘렸던 적은 있었지만, 오히려 떠났던 이가 돌아와 나를 기다릴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고스트 스토리>에선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 C와 M이 나온다. 어느 날,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M은 실의에 빠진다. 두 사람의 추억이 가득 묻은 집안에 홀로 남겨진 M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영혼만 남은 C는 유령이 되어 자신의 기억을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M은 떠난 C를 그리워하고, C는 M의 곁으로 돌아와 M의 모습을 지켜본다.
내 눈엔 그녀가 보이지만, 그녀의 눈엔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보여서는 안 될 것 같다. 남겨진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무겁고 슬픈 떠난 자의 시선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완벽하게 고요하고 차갑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흐를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담긴 조잘거림이 아닌 적막뿐이라는 사실이 숨 막히게 슬프다.
고스트 스토리 시놉시스
사랑을 잃다
교외의 작고 낡은 집 - 작곡가인 C와 그의 연인 M은 조용하지만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C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M은 무거운 슬픔에 잠긴다
사랑을 기억하다
창백한 조명의 병원 영안실 -고스트가 되어 깨어난 C는 마치 홀린 듯 M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그녀와 고스트는 사랑했던 기억을 추억하며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사랑을 잊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집 -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며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M은 결국 집을 떠난다. 남겨진 고스트는 영원히 그녀를 기다릴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C와 M은 교외에 위치한 한적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연인이다. 화려하고 넓은 집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아늑한, 어딘가 포근하게 느껴지는 집이다. 작곡가인 C는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며 연인 M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이 집이 마음에 든다. 그에 반해 M은 더 깔끔하고, 시내에 가까운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한다. 다정하게 누워 이사에 대한 기억을 나누던 중, M은 이사를 할 때면 메모를 남겨 떠나는 집에 숨겨놓는다고 말한다.
“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었으면.”
M은 돌아올 확률이 없단 걸 알지만, 혹시라도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쪽지를 남긴다고 말한다. 큰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이 집에 살면서 좋았던 기억들, 마음에 들었던 것들. 또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것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의 내가, 나의 기억이 반겨준다면 외롭거나 쓸쓸하진 않겠지.
“이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
C의 사고가 있기 전날 밤, 1층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에서 쿵-소리가 난다. 화가 난 무언가가 힘껏 내리친듯한 소리. C와 M은 급하게 1층으로 내려와 거실을 확인해보지만 그 어떤 것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그날은 C에겐 마지막 날이 되었고, M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날이 되었다.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영안실, M은 홀로 서서 C의 시신을 마주한다. 어두운 방 안에서 바라보는 M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M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현실을 외면하듯 C의 얼굴 위에 천을 다시 덮는 것 외에는. M은 크게 울 힘도,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M이 떠나고, C는 혼자 남겨진다. 그리고 이내 하얀 천이 불쑥 솟아오른다. C는 무거웠던 몸을 내려놓고 영혼만 남아 유령이 된 채 병원 복도를 걷는다. 보이지 않는 C의 존재를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령이 된 C의 앞에 밝은 빛이 넘쳐흐르는 문이 열리지만, C는 그 문을 바라만 볼 뿐이다. 문은 그의 뜻을 알았다는 듯 사라지고 C는 당연하게도 집으로 향한다.
M에 대한 사랑이, 미련이 너무 깊어서. 혼자 남겨진 M이 걱정돼서. 우리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서. C가 집으로 향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광활한 땅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도착한 C는 문쪽에 서서 M을 지켜본다. 이제 두 사람의 집이 아닌 M만 남겨진 그곳은 지독히 고요하고 적막하며, 시린 공기가 흐르는듯하다. M은 주방에서 말없이 파이를 퍼먹는다. 미련스러운 일이란 걸 M도 알고 있었겠지만, M은 멈추지 않고 파이를 먹는다. 약 5분에 걸쳐 우악스레 파이를 퍼먹던 M은 결국 먹은걸 전부 게워낸다. M은 다시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숨을 쉬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 파이를 토해낸 순간,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C는 그런 M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지만, 영혼만 남은 C의 손은 예전 같은 따스함도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C는 어떤 수를 써도 사랑하는 M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슬픔을 누르려는 듯 파이를 욱여넣던 날이 지나고, M은 이불을 정리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외출을 한다.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 유령이 된 C는 같은 자리에서 M을 지켜본다. 남겨진 사람이라 생각했던 M은 조금씩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떠난 사람이라 생각했던 C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우리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그녀가 다른 누군갈 찾아? 날 두고 떠났어”
C를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 M은 자신의 세계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 C는 새로운 남자의 옆에 있는 M을 보고 화가 난 듯 책을 떨어트리고 전등을 흔든다. C는 아직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M은 바닥에 누워 예전에 C가 들려줬던 노래를 듣는다. 남자를 남겨두고 떠난 여자와 홀로 남겨진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였다. 노래를 듣던 M의 손이 C가 서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M이 손가락만 살짝 펴도 닿을듯한 거리. 하지만 M은 이내 손을 오므리고 C와의 거리는 다시 멀어진다. 그렇게 M은 C에게서 멀어진다.
M은 함께했던 흔적을 지우고 짐을 싼다. 그리고 언제나 했던 것처럼 집에 쪽지를 숨겨놓는다. C는 홀로 남겨진다. 자신이 들려줬던 그 노랫말처럼. C에게 남은 건 집에 깃든 둘의 추억과 M이 남겨놓은 쪽지뿐이다.
“누굴 기다리고 있어요.”
유령이 된 영혼들은 생전의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을 다시 찾는다. C와 M의 옆집에도 C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유령이 산다. 두 유령은 각자의 창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눈다. 유령들은 추억과 사랑, 미련이라는 창틀에 갇힌 듯 창을 넘어가지 못한 채로 그 앞에 서있을 뿐이다. 누굴 기다리는지도, 무엇이 그리운지도 명확히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C는 M이 떠난 후에도 집을 떠나지 못한다. 이전부터 집을 떠나고 싶어 했던 M은 집에 홀로 남겨지자 슬픔과 추억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떠나고, 집을 떠나지 않고 싶어 했던 C는 여전히 이 집에 남아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사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가 M이 C에게 이 집이 좋은 이유를 묻는 장면이 있다. C는 “추억이 있잖아.”라고 답한다. C는 추억에 묶여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결국, 무엇을 하든, 팽창하는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집에서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리던 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우주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연설을 하던 예언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무한하게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그것은 의미가 없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C의 존재가 그렇다. C는 M의 쪽지를 꺼내기 위해서 사람을 내쫓고, 무게가 사라진 손을 내밀어 문틀을 긁어낸다. 드디어 쪽지를 손에 쥔 순간. 집이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C는 무너진 집 위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C의 노력은 한순간 사라질 아주 작은 것이었고, 집이 허물어지는 순간 C의 미련은 모든 의미를 잃는다.
C의 미련은 C를 다른 시간으로 이끈다. C는 집이 지어지기 전, 첫 정착자 가족의 딸이 쪽지를 적어 바위 밑에 깔아두는 순간을 지켜본다. 그리고 이내 그 가족은 인디언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 아이의 시신이 보이고, 뼈가 보이고, 그 위에 풀이 자라 모든 흔적을 덮어버린다. 아이가 남긴 쪽지도 가족의 시신과 함께 그대로 썩어버렸겠지. 어떤 의미를, 미련을, 추억을 담은 것이든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든 모든 건 결국 우주에서 사라지게 된다.
“여기 남고 싶어?”
시간은 빠르게 흘러 C와 M이 함께한 순간을 비춘다. 처음 집에 들어서던 날과 C가 이사를 결정했던 날까지. C와 M은 유령이 된 C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셋이 함께 그 집에 추억을 남긴 것이다.
M은 유령이 된 C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C에 비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긴 M은 영화의 초반, “이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문득 잠에서 깨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말한다. 유령이 된 C는 당연히 자신이 사랑하는 M의 곁을 맴돌았을 테고, C에게 C의 유령은 또 다른 자신이었으니 M만 홀로 유령의 존재를 느꼈을 것이다.
M은 꺼림칙한 이 집이 아닌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C를 설득한다. C의 유령은 C와 M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C가 이사를 결정하자 피아노 앞에 털썩 앉으며 쿵 소리를 낸다. C의 유령은 이사를 결정했던 그 밤을 후회했을까?
시간은 다시 흐르고, M은 집을 떠난다. C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C는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M의 쪽지를 다시 찾아낸다. 그리고 쪽지를 보자마자 사라진다. 이승에 남아있어야만 했던 미련이 사라진 것이다. 유령들은 미련과 기억을 갖고 그 장소로 돌아온다. 떠나는 게 아닌, 남겨진 사람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머문다. 옆집에 있던 유령은 집이 철거되자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 거란 걸 깨닫고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난다. C는 M의 쪽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M의 쪽지엔 어떤 내용이 적혀있었을까? 이 집에 있으면서 행복했던 추억? 아니면 C가 들려줬던 노래의 가사 한 구절? 예상컨대, C가 미련을 가질 만큼 큰 의미를 담은 쪽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떠났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와 오랜 시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곳을 떠돈다. 남겨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떠난 사람을 뒤로 밀어두고 새로운 시간을 살아간다. 떠난 사람의 시간은 남겨진 사람이 떠난 순간부터 그 자리에 멈춘 채, 더 이상 흐르지 못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남겨지는 날은 생각해 본 적 있어도, 먼저 떠난 내가 미련에 끌려 돌아온다는 건, 그것도 남겨진 사람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건 상상해본 적 없다. 미련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떠난 자의 시간이 이토록 무겁고 시릴 줄은 몰랐다. 떠난 사람을 생각하며 왜 먼저 떠난 것인지 원망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도 미련이 남아있다면 그 또한 지겨울 만큼 아파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결국은 사라질 추억이고 사랑이고 미련이지만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덧없는 감정에 휘둘린 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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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톺아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국내 3월 개봉 예정인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담은
<스펜서>의 주인공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톺아보고자 합니다.
1. 프로필(Profile)
이름 : 크리스틴 제임스 스튜어트
(Kristen Jaymes Stewart)
출생 :1990년 4월 9일
국적 : 미국
직업 : 배우
2.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데뷔과정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어렸을 적에는 감독이나 작가를 꿈꿨다고 합니다.
우연히 어린시절 학교 크리스마스 학예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에이전트가 연락을 해왔고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아역 시절 작품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패닉 룸>, '조디 포스터'의 딸 역할로 출연하면서 점차 배우로서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도 알고 있듯이 2008년 영화 <트와일라잇> '이사벨라 스완'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3.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주요 필모작
- 2008년 작 <트와일라잇>, 이사벨라 스완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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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지는 인간소녀 '이사벨라 스완' 역으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풋풋하고 사랑에 빠지는 설레는 감정연기를 볼 수 있다"
- 2010년 작 <런어웨이즈>, 조앤 제트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다코타 패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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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커를 꿈꾸는 '조앤 제트' 역으로
못마땅한 현실에 반항하며 저항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강렬하며 반항기어린 연기를 볼 수 있다”
- 2015년 작 <스틸 앨리스>, 리디아 역
출연진 :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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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줄리안 무어)'의 막내딸 '리디아' 역으로
엄마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차분한 모습과 세심한 연기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엄청난 존재감의 연기를 볼 수 있다
"
- 2016년 작 <이퀄스>, 니아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니콜라스 홀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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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할 수 없는 통제구역에서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와
사랑에 빠지는 '니아' 역으로 특이한 소재 SF영화 안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절제되면서 큰 몰입감을 주는 연기를 볼 수 있다 "
- 2016년 작 <카페 소사이어티>, 보니 역
출연진 : 제시 아이젠버그, 크리스틴 스튜어트, 블레이크 라이블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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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여자 '보니' 역으로
극 중 뉴욕 남자 '바비(제시 아이젠버그)'에게 청혼을 받게 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매력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로맨스 연기를 볼 수 있다"
- 2016년 작 <어떤 여자들>, 베스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미셸 윌리엄스, 로라 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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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 '베스' 역으로
경제적인 압박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대하는
공감을 자아내는 현실감있는 연기를 볼 수 있다"
- 2017년 작 <퍼스널 쇼퍼>, 모린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라르스 아이딩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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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미국 여자 '모린' 역으로
극 중 영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
미스터리하면서 긴장감있는 연기로 극의 몰입감을 더해준다 "
- 2021년 작 <세버그>, 장 세버그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안소니 마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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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할리우드와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아이콘 '장 세버그' 역으로
화려환 외모는 물론 실제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낸 연기력 절정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를 볼 수 있다 "
- 2022년 작 <스펜서>, 다이애나 역
출연진 :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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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 역으로
여성의 외로움과 슬픔을 훌륭하게
그리고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연기력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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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 #톺아보기 시간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씨네랩은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P.S 혹시 #톺아보기 배우로 추천하고 싶거나 관심있으신 배우들이 있으면
주저말고 편안하게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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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H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Carlos PARDO ROS
Spain|2022|68min|DCP|Color|Fiction|12|Asian Premiere
시놉시스
1969년 7월 12일, 산 페르민 축제의 황소 몰이 행사 도중 H는 황소에게 심장을 찔려 죽는다. 오늘, H의 유령들은 죽음을 앞둔 육신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바로 그 거리에서 웃고, 마시고, 춤을 춘다.
프로그램 노트
“이 영화는 머리가 아닌 뱃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 감독이 영화를 소개하며 언급한 말이다. 영화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개최되는 산 페르민 축제를 배경으로 감독의 삼촌인 H가 황소 돌진으로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는 내용이다. 가족 구성원이 사건을 추적하는 전형적인 다큐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상황을 배치해 감독의 소개말이 사실로 증명됨을 보여준다. H는 기억의 공백을 채우는 영화이자,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교차하며 서로의 공간을 완성하는 미스터리에 대한 탐구이다. 다양한 스토리텔링과 영화의 형식이 쌓여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삶과 밤의 끝으로 향하는 진정한 탐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문성경)
우주 속을 부유하듯,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듯
H는 황소 몰이 행사 중 갑자기 돌진한 황소에게 심장을 찔려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H의 영혼을 찾아 축제의 현장으로, 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길거리로 나선다. 이 영화는 단순히 줄거리를 보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삼촌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우리는 주인공을 따라 우주 속을 부유하듯 조금은 붕 뜬 느낌으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술 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축제 현장의 길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단순히 축제 속의 사람들을 지켜 보는 것을 넘어서서 관객인 '내'가 이 축제의 현장에 있는 느낌을 준다. 시각적인 것을 넘어서 체험적인 작품이다. 영화제에서 먼저 접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이다.
시놉시스에서는 H의 유령들이 죽음을 앞둔 육신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축제의 광란의 현장에서 웃고, 마시고, 춤을 춘다며 이 작품을 소개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폭력적이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몸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H>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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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는 앞으로도 찬란히 빛나고
BTS 팬 무비 성공 이후 아이돌 팬 무비들이 쏟아졌다.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의 생존 전략 중 하나인 동시에,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연을 즐길 수 없는 아이돌 팬들이 즐길 거리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상영 시간표 하나 확보하기 힘든 영화들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꼭 반갑지만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팬 무비 중 <마이 샤이니 월드>를 보러 간 건, 우리 집에 샤이니 팬이 하나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팬 아닌 내게도 샤이니 2시간 보는 일은 즐겁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샤이니의 팬으로 정의해 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지만, 샤이니 노래를 거의 다 알고 있으며 꽤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 나 정도로 자주 듣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 동년배는 기본적으로 샤이니를 다 알지. 아이돌로 대표되는 케이팝 시장의 판도가 한참 바뀌어 요즘 남자 아이돌은 음반 백만 장이 팔려도 대중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10-15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텔레비전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가 요즘보다 쉬웠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2세대 남자 아이돌 대다수가 연예면 대신 사회면에 실리면서 매우 불편해진 지금, (체감하기로는 그룹당 평균 1.8명 정도 살아남은 느낌이다.) 영화 <성덕> 관객과의 대화 자리마다 ‘구 오빠 성토대회’가 열리는 판국에, 샤이니처럼 빛나는 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그룹은 많지 않다. 덕분에 샤이니의 역사는 샤이니와 팬들만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나처럼 샤이니에 호감을 가진 일반 대중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마이 샤이니 월드>의 의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무대 장인인 동시에 예능도 되는 걸 대중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뭐 샤이니라면 믿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2시간 후 다시 나온 나는 어쩐지 ‘독기 풀 충전’ 상태가 되어 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고 있었다.
#Let’s go back to the time now
샤이니는 2008년 데뷔했다.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당시는 지금처럼 아이돌 시장이 포화되기 전이었으므로, 누가 데뷔하면 주변인 대다수가 대충 아는 분위기였다. 근데 뭐 노래 제목이 ‘누난 너무 예뻐’라고? 막내가 아직 초졸이라고? 그렇게 시작부터 센세이셔널했던 샤이니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현란한 이름을 달고 나왔다. 수능 대비 영단어장에서 contemporary를 “현대의, 동시대의”라고 달달 외우기는 했지만, 당시의 내게 샤이니와 그 단어의 연관성은 이해하지 못했다. 알게 뭐야 내가 신나는데. 당시 <사.계.한>, <real>, <in my room>까지 앨범 수록곡을 전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샤이니는 정말로 “컨템퍼러리” 밴드였음을 깨닫는다. 16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컨템퍼러리”함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룹으로서 위기를 맞은 순간이 없지는 않았음에도, 그 모든 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샤이니의 팀 색깔을 지켜냈다. 여기에는 데뷔 16년차가 되도록 단 한 번의 무대도 설렁설렁 하지 않는 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종현을 멀리 보낸 후, 추모의 마음을 담는 동시에 샤이니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한 정규 6집. 샤이니는 커다란 빛 모양 하나 주변을 네 개의 빛이 둘러싼 로고를 쓰고, 종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사로 담아 노래하고, 그렇게 종현의 자리를 명확히 지켜냈다. 누군가의 앨범이 ‘꽉 차 있다’는 표현은 관용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정규 6집은 꽉 차 있다 못해 넘쳐 흐른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명반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절로 느껴지는, 그 앨범으로 샤이니는 자신들이 영원히 건재할 다섯 명임을 명확히 했다.
슬픈 일이었지만, 여전히 종현의 말과 글과 음악이 그립지만, 언급을 피해야 하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샤이니가 그 동안 열심히 다져 둔 자리가 이미 탄탄하기에, 이 영화 또한 종현을 슬프게 언급하거나 과하게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후 각자의 군백기를 거치고 나와 <Don’t call me>로 또 센세이션을, 올해 나왔던 앨범 <HARD>는 데뷔 16년차가 기존 색깔과 다른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새로울 수 있다는 놀라움을 주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시간을 공연 영상 위주로 세심히 담는다. 영상 속 샤이니는 땀 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노래를 한다. 노래를 왜 저렇게 잘하지? 아니 원래 잘하는 거 몰랐던 건 아닌데… 그래도 신기하네… 저 춤을 저렇게 추면서 어떻게 잘하지? 그리고 왜 다 아는 노래지? 물론 샤이니 노래는 명곡도 많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만 해도 숱하게 많고… 그러다 보니 통사적으로 모든 곡을 담을 수는 없다. 2시간 동안 모르는 노래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 노래는 없네…’는 많았다. 실제로 콘서트 할 때도 무슨 곡을 담을지가 아니라 무슨 곡을 뺄지 고민한다고 하니까.
공연 영상 사이사이 샤이니 멤버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오직 샤이니만이 할 수 있는 ‘라떼 토크’다.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라떼 토크’다. 이들이 매 순간 얼마나 열심히 임했는지가 물씬 느껴지는, 듣다 보면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그리고 이들이 왜 ‘왕년의’ 이름이 되지 않는지, 왜 앞으로도 쭉 건재할 것 같은지도 느껴지는. 연차가 아무리 차도 눈빛의 독기가 빠지지 않는 그룹들이 있다. 샤이니가 그렇다. 샤이니는 앞으로도 늘 “컨템퍼러리 밴드”일 것이다.
#뜨거워지자 터질 것처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했을 당시의 샤이니를 볼 때는, 이토록 오래 샤이니를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 본다는 건, 그렇게 서서히 스민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인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동태 눈깔’ 되지 않고 건재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런 샤이니의 지난 역사를 2시간 동안 볼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보고 싶다. 팬이 아닌, 샤이니에 호감을 가진 대중에게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팬에게는 이 영화가 얼마나 뜻깊을지 궁금하다. 영화 속에 자리를 내어 팬의 페르소나를 앉혀 두고, 함께한 시간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담아내기도 한 만큼. ‘마이 샤이니’의 세상인 동시에 마이 ‘샤이니 월드(샤이니 팬클럽 이름)’이기도 한 영화로 만들어낸 만큼.
대중 입장에서는 그냥 샤이니가 앞으로도 자기 심지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럴 것 같아 걱정되지 않는다. (걱정이라는 말은 우습지만, 우리는 이미 그 시절 명곡을 많이 잃었어요.) 단지 온유가 건강을 회복하여 다음 활동은 꼭 같이 할 수 있길. 오래오래 샤이니를 보고 싶다. 한일전 중립을 지켜야 되네 어쩌네 하는 자의식 과잉 아이돌이나, 영상통화 팬사인회에 비싼 돈 주고 온 팬에게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만 주억거리는 아이돌조차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서, (몰랐죠? 저도 이 글 쓰느라 조사하다가 알았습니다. 대중성에서 멀어진 아이돌의 장점일까요.) “샤이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16년차 아이돌은 얼마나 소중한가.
대중에게 샤이니는 감을 잃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고, 자기 색깔을 잃은 적도 없는 그룹이다. 여전히 무대에서는 데뷔 때 못지 않게 열정적이지만, 연차에 따른 여유까지 갖추어 더욱 빛나는 그룹이다. 그렇게 비춰질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지, 이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전히 “새로운 히트 멈추지 못했다지” 소리를 들을 자신이 있고, “왕관은 주인을 되찾아내”고 있으며, 물려줄 생각이 없는 샤이니를 보니, “샤이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보고 나오는데 괜히 힘이 났다.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저렇게 독기 풀 충전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훌륭한 선배 직장인들에게서 엿본, 연차에서 나온 여유와 여전히 빛나는 열정의 조합을 샤이니에게서도 본다. 샤이니의 세계는 앞으로도 찬란히 빛날 것이다. 때로는 야근 노동요로, 때로는 여행 BGM으로, 때로는 밥 친구 예능으로… 언젠가 디너 쇼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오래오래 빛나는 샤이니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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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나풀거리며 날아온 무근본 코미디
새삼 신기한 이야기지만 300여 일 남았다. 시간 겁나 안 간다고 한탄할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근데 사실 그건 엊그제 일이 맞다. 시간 정말 안 간다. 무려 336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안 가는 건 매한가지다. 신기한 일이다. 아마 반강제적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또 막상 이렇게 시간 안 간다고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100일이 지나 있겠지. 뭐 그런 행복회로가 없으면 정말 정말 지루해서 못 견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막연하게 지루한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소집해제 하면 뭘 할까? 적금을 깨는 거야. 적금으로 여행을 가는 거지. 그리고 남은 돈 얼마 남겨서 노트북을 바꾸면 되겠어. 10개월이나 남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꿈 정도는 꿀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럼 건물 한 두 채 사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잉여롭게 누워있어도 될 것 같다. 엄마, 아빠한테 효도도 하고 말이지. 없는 지갑 털어서 복권을 살 까 싶지만 5천 원은 소중하기에 참기로 한다. 최전방의 어느 군부대. 여기에 나와 비슷한 꿈을 꿨던 말년 병장이 있다. 갑자기 날아온 복권 한 장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자. 장소는 극장이다!
길 가다가 만원 주운 것과는 달라
이게 뭐야? 갑자기 웬 복권? 군생활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말년 병장 천우는 종이 한 장을 주웠다. 복권? 갑자기? 사실 군대와 복권이란 단어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천우도 아무 생각 없이 복권을 주웠다. 이거 발표는 언제 하는 거지? 뭐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결과를 확인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방송을 보는 천우. 숫자 하나가 맞았다. 맞았네. 무덤덤한 천우. 두 번째 숫자도 맞았다. 어. 맞았네. 오늘 운이 좋은가보다. 세 번째 숫자도 맞았다. 어? 뭐지? 뭔가 이상한 것 같다. 그런데 말년병장이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재미가 없어지는 마력이 있는 시기다. 금세 평정심으로 돌아온 천우. 근데 맞는 숫자가 네 개가 되고 다섯 개가 된다. 응? 여섯 번째 숫자 하나 남았다. 이것까지 맞았다. 엥? 이게 뭐지? 실화인가? 눈앞에 보이는 건 꿈이 아니다. 말년병장 천우는 여섯 개의 복권 전부를 맞춘 당첨자가 됐다.
헐. 헐. 헐. 말도 안 돼.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조회해봤다. 57억이라는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57억이면 집 한 두 채를 사도 남는 돈 아닌가. 집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꿈이었던 농장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전역까지는 3개월이 남았다. 안 그래도 안 가는 시간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아니. 57억이라니. 밥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웃음이 나오다 못해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동안의 고생이 왠지 모르게 생각나는 것 같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내무반. 천우는 복권 용지를 가지고 밖에서 후임과 대화하고 있었다.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근무지도 왠지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안 읽던 책을 읽기 시작하던 천우. 책을 읽으며 근무를 하고 있는데 후임 한 명이 말을 건다. "병장님. 저 화장실 가고 싶지 말입니다." "갔다 와~" 배가 아픈 후임은 천우의 앞을 스윽 지나가며 아픈 배를 움켜잡았다. 그때, 후임이 지나가던 찰나에 복권 용지가 사르륵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복권 용지가 북으로 넘어갔다. 자. 57억이 눈앞에서 증발되게 생긴 천우. 천우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단 웃겼어
일단 장르는 코미디다. 이 장르의 가장 첫 번째 본분은 무엇? 웃겨야 한다. 별생각 없이 상영관에 들어가서인진 모르겠지만 난 꽤나 웃다 나왔다. 가장 최근에 봤던 코미디 향 첨가 영화는 두 편이었다. <외계+인> 1부와 <불릿 트레인>이다. 전자에선 그냥 내내 정색하고 봤고 후반부에는 정확히 두 번 웃었으므로 코미디 타점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에 '티켓 값이 4천 원이니까 봤지 아니었으면 중간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들어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선회하는 재미를 느꼈으니 내 기준에서 코미디의 기능을 충분히 한 셈이다.
이 웃긴 고경표 배우가 복권 당첨을 확인하고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각본을 상상하면 좀 허무맹랑할 수도 있다. 근데 고경표 배우는 이를 굉장히 잘 소화한다. 좀 실없는 인물의 내면 묘사,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초중반부의 인물 구도를 설계하기 위해 나름 중요한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 시퀀스는 좋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좀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있는 연기를 진짜 미친놈같이 소화해서 '역시 이 배우는 좋은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에 공개됐던 <서울 대작전>, 배우의 전작 <헤어질 결심> 세 역할의 톤이 다 다른 건 이 배우가 얼마나 욕심이 있고 능력까지 받쳐주는지를 볼 수 있는 훌륭한 단면이었다. 이 장면 이후에도 좀 여러모로 입장이 난처한 인간의 마음이 표정에서 잘 드러났다. 전체적인 코미디 톤을 이끄는 좋은 연기였다.
다른 배우들의 호연 외적으로 이 영화의 코미디 요소에 대해 쓸 수 있다. 바로 '무근본'코미디라는 것. 이 코미디는 근본이 없다. 일단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 써보자면, 솔직히 아쉽다(그리고 이 부분은 후술 할 것이다). 극을 전개할 때마다 '와 이러면 진짜 웃기겠는데?'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면 따라오는 단점이 뭐냐. 일단 뻔하다는 전개와 이야기 간의 접착력이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뒤집어서 표현하면 상황상황마다 인물의 표정이나 구도 촬영을 잘해놨어서 웃기기에는 최적화됐다는 뜻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코미디에는 웃음 강박이 없는 것 같다. 뭐 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은 알던 웃음 패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러분이 이 글과 영화의 예고편을 읽으며 바로 눈에 들어오는 설정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다. 우리나라 군대 하면 생각나는 것이 뭐가 있을까? 폐쇄된 공간, 억압된 자유, 남북한의 군사 긴장상태 등등이 있을 것이다. 이때 생각날 수 있는 소재를 경제적으로 박박 긁어모은다. 그 외에도 우리가 예능프로그램을 본다거나, 수많은 짤에서 볼 수 있던 유머 소재들도 적재적소에 잘 쓰였다. 뭔가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보다 익숙한 패턴을 잘 변용했다는 점에서 코미디 영화로서의 안전장치는 잘 구성한 것 같다.
얕게 쓰이진 않았던
이 영화가 <D.P>처럼 우리나라 군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뭐 그런 사회비판적인 코드가 주요하게 작동할만한 영화가 아닌 것도 맞다. 애초에 코미디 영화니까. 그 이유 때문에 사실 좀 불필요하게 들어간 부분이 없진 않다. 굳이 그 상황이 아니어도 인물이 그런 행동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이 마저도 코미디로 활용한 재기 발랄함은 강점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말 단순히 웃기기 위해 모든 세포를 기울인 효과다.
또 반대 측면에서 북한 묘사도 코미디로 활용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남북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때 어려운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럼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북한에 대한 묘사다. 일단 남북한 현실에 대한 묘사 중 어느 쪽에 힘을 더 줬냐고 묻는다면 북한 쪽에 힘을 더 줬다고 생각한다. 일단 북한은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농축산업도 유지하기 어려운 국가로 묘사된다. 또 군 내부가 어떻게 평소에 운영되는지 모를 정도로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또 북한 내부 시스템의 문제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쓰자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인재가 등장하기 어려운 현실’에 관한 내용이 코미디 요소로도 쓰이지만 소재의 활용에서도 적절하게 잘 쓰인 부분은 흥미롭다. 그리고 병사의 동기부여에 관한 부분, 나라를 위해 10년씩이나 꿈을 희생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까지 단순히 웃기려고만 이런 것들을 설정한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시각적으로 북한군을 묘사하는 방식이 있다. 앞에서 상기한 내용은 글쓴이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 그런데 몇몇 장면들은 이 감독이 북한이란 나라를 조롱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모두가 들 것이다. 이 외에도 인물 간의 처지를 의도적으로 대비시켜서 북한이란 나라를 더 깊게 비판하는 부분은 어렵지 않게 관객들이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물들이 상대 나라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것을 어떻게 영화가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면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각본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점 당연히 있지
뭐 이렇게 순수하게 웃기고 남북한 현실 묘사 깔끔하게 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능사인 건 아니다. 이 영화 단점 당연히 있다. 일단 각본의 퀄리티다. 일단 영화 시작되고 한 10분까지 설정에서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뭐 이런 소소한 것들이 말이 안 되는 건 그렇다 치자. 모든 영화에서 핍진성, 개연성을 따지는 건 피곤하니까. 그런데 이 가정법이 영화 끝까지 쭉 이어진다는 건 분명한 호불호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밌겠는데!’를 때려 박은 이 영화. 그런 코미디 요소에 모든 걸 다 투자했기 때문에 이야기 몰입하는 데 있어 좀 깨는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야기가 불협화음으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내적 논리와 함께 진행되는 영화. 그냥 웃기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래, 싶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살짝 위험한 부분이 있다. 후반부다. 남한에서 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겪기 전에 배경으로 제시되는 부분은 나름 잘 설정했다. 이 나름대로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허무맹랑하긴 해도 다음에 이어지는 일의 배경이 되는 점에서 꼼꼼함은 어느 정도 챙긴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을 극 중 타인들이 지켜보거나 대응하는 방식은 의문부호가 들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는 둘째 치고, 얼핏 보면 이 사람들을 혐오하는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역시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그냥 이 상황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식이라 이런 식으로 전개한 건 그럴 수 있다. 근데 이 지점은 살짝 다르게 변용해도 이야기 전개가 말이 된다. 그 부분까지 코미디로 소화시켜야만 하는 이유도 없고.
또 이 외에는 극후 반부가 살짝 아쉽긴 하다. 일단 CG가 엔딩부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안 그래도 결말 부분의 이야기 전개가 아쉬운데 이 부분까지 있으니 더욱 도드라지는 느낌이 강하다. 또 앞 문장에도 썼듯 이야기를 쓰다 만 것은 좀 아쉽다. 엔딩부에서 보여주는 떡밥 하나는 아예 불필요했고, 물렁했던 극 전개가 빈약해지기까지 한다. 뒷심이 강했으면 조금 더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다려 왔던 영화
뭐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운 부분도 있는 영화지만 사실 많은 분들이 이런 작품들을 기다려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해 개봉했던 이른바 '빅 4'들은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었다. 반면에 이 영화는 규모가 작다. 그러다 보니 큰 스케일의 영화에 익숙했던 글쓴이 같은 분들에겐 눈이 편한 느낌이 든다. SNL이나 여타 시트콤에서는 보기는 좀 크지만 규모가 크지도 않아 왠지 잊고 있었던 정통파 코미디를 그리워했던 분이라면 안성맞춤이다.
또한 한국영화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주인공인 천우 역의 고경표 배우는 드라마에 많이 나왔다. <응답하라 1988>로 유명세를 얻었던 고경표 배우는 영화판에서는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왔다 하더라도 영 시원찮은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고경표 배우가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난 연기자라는 걸 알게 된다. 난감하면 난감핟대로, 맘먹고 웃기려면 웃긴대로 표정연기가 뚜렷하니 이 배우는 유아인 배우처럼 큰 존재감을 뽐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에 이어 이 <육사오>에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은 음문석 배우다. 아마 올해 12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 2>에서 봤던 얼굴로 많이 기억하실 것 같다. 이 배우 연기 잘했다. <범죄도시 2>에서도 연기 잘했는데 이 영화에선 특히 더 잘했다. 감정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뻔뻔함,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대위 역이기 때문에 장병들을 이끌어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위치까지 이 작품의 최전선에서 극을 이끈다. 래퍼 겸 댄서 겸 배우신 것 같은데 이 쪽에 굉장한 포텐이 있는 것 같다. 얼굴도 잘생겼다. 39세 안 같다. 또한 박세완 배우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반짝반짝하는 존재감은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겁나 예쁘시다.
또 윤병희 배우와 이이경 배우도 기억에 남는다. 윤병희 배우는 얼굴이 굉장히 익숙하다. <범죄도시 2>에서 휘발유 역을 맡았을 때도 뭔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이 배우는 휘발유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을 보여준다. 개성이 센 마스크라 이 배우 하면 휘발유가 먼저 생각나겠지만 후반부까지 극을 끌고 가는 힘은 굉장한 박력이 있었다. 또 이이경 배우는 얼마 전에 본 <공조>에서 봤었다. 그런데 이 배우는 확실히 여기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우리나라 그 좁은 면적에서 이렇게 예술 잘하는 사람들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유치할 수도 있고 질척댈 수도 있는 유머를 생기 있게 잘 소화한 건 이 배우들의 뛰어난 역량 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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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별점 및 한 줄 평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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