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의문의 병을 앓고 있는 엄마 대신 수하물을 부치는 어린 소년 엘리아스.
아들의 도움으로 가발과 선글라스로 자신을 무장하곤 주사를 맞은 뒤 비행기에 타는 나디아.
평화로운 비행기 안은 갑자기 칼과 총을 들이미는 테러범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고,
비행기가 반대로 돌자, 나디아는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감상 포인트
1. 처음 보는 장르인 듯, 그동안 봐 왔던 장르인 듯 신선한 영화.
2. 잔인함 지수 매우 높음 주의!
3. 강렬한 악역 등장!
감상평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예고편만 보고 튼 영화. 처음에는 좀비를 기대했는데 초반부를 좀 보다 보면 뱀파이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완전히 좀비가 아니라고 하기엔 비슷한 특성을 가진 독특한 흡혈귀를 만든 것 같다. 알고 보니 이미 넷플릭스에선 유명한 영화라고 한다.
"여인은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간 힘겹게 숨겨온 어둠의 힘을 뿜으며."
이게 네이버에 등록된 영화 소개인데, 마지막 구절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생존하기 위해 어둠의 힘을 빌린다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재난 영화의 치트키인 가족, 모성애나 부성애를 등장시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서는 어김없이 어린 빌런이 등장한다. 내 생각엔 처음부터 엘리아스가 가만히 있으라는 엄마 말만 잘 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어쩜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일을 다 그르치는지... 뒷목 잡고 쓰러질 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영화는 오히려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극한의 상황이 펼쳐진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뱀파이어라는 형태로 화답을 하는 것처럼.
"네 안에 사악한 힘이 있어. 넌 그걸 통제할 수 없어."
뱀파이어의 모습은 인간 내면의 악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이 악함을 극대화해 절정에 치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악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좀비가 원초적 본능만 남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로는 아무래도 승무원으로 위장했던 테러범, '에이볼트'를 꼽을 수 있겠다. 그는 나디아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자 겁에 질리거나 도망가기는커녕, 혈액을 채취하는 미친 사이코패스다. 그 피를 취하기 전부터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 능숙한 천부적 또라이. 에이볼트는 나디아의 피를 스스로 주사한 후에 본격적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VS 내면에 가두어놓은 악한 본질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그렇다. 나디아와 에이볼트가 대립하는 것은 사실 나디아 내면의 악함과 싸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나디아는 계속해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발악한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나온다. 나디아가 수하물 칸에서 어떻게든 인간의 피만은 마시지 않겠다고 개의 피를 마시는 것에 반해, 에이볼트는 자신이 살기 위해 한때 동료였던 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장면에 있다. 이 장면도 본질적으로 인간과 동물에 대한 부분을 떠올리게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닐 테니 지금은 잠시 넘어가겠다.
나디아는 피를 마시고 이성을 잠시 잃어도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곧장 마음속의 동아줄을 붙잡는다. 그러나 에이볼트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인간의 피를 마신다. 나디아의 얼굴이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더뎠던 것에 비해, 에이볼트는 곧바로 이빨이 돋고 귀가 뾰족해졌던 것을 생각하면 쉽다.
나디아에게 아들이라는 존재는 굉장한 아이러니다.
아들 때문에 악한 본성을 억누르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어둠의 힘이 필요하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나디아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으려 애쓴다.
비행기에서 에이볼트를 물리친 후, 엘리아스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나디아의 입속에 떨어트린다. 하지만 깨어난 나디아는 다가오는 아들을 뿌리치며 거세게 저항하고, 이내 도망쳐 버린다. 악한 본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으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는 것이 창피하단 듯.
그러나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내렸을 땐,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뛰어오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앞에서 아들을 뿌리치는 장면보다 아들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더욱 슬펐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은 바로 파리드다.
파리드는 미국의 컨벤션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에 탄 물리학자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열리지도 않는 컨벤션에 초대받은 것으로, 테러범들이 나중에 중동인인 파리드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기 위해 수를 쓴 것이었다. 그를 데려가 성명서를 읽게 한 것까지,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였던 것. 그 때문에 파리드는 마지막까지 아이를 구하고 한 쪽 팔을 잃었는데도 테러범으로 오해를 받는다.
영화 중반에서는 비행기를 돌리자는 그의 말에 백인 남성이 반대하는 것도 그렇고, 끝까지 그를 체포하려 드는 경찰들도 그렇고,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뱀파이어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성악설을 주장하지 않는다.
파리드는 뱀파이어에게 물리고도 끝까지 멀쩡한 유일한 인간이다. 손을 물렸지만 곧바로 잘라냈기에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이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스스로 뱀파이어에게 물려 영생의 길을 택했던 환자와 대조된다. 마음속에서 계속 피어나는 악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 내 마음속 악의 뿌리를 잘라내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악한 본성은 인간이라는 가면으로 가려지는 것 아닐까?